자 한번 생각해보자. 여기는 제노시아 고교다. 그리고 매점이다. 그런데 저런 중상자같이보이는 이가 왜 여기 있는 것이며 슈크림을 사는 건 물론이고 나가서 더 나아가지를 못하는 것인가. 주위의 다른 학생들도 뭔가 접근하기 애매한 모양인지 눈치를 보는 듯하자. 다림은 결국 접근하고야 말았다. 사근사근한 외양과 나긋나긋한 성격을 써서라도 말해야지. 어쩌겠니.
"저.. 보건실이나. 병원에는 가지 않으시는 건가요?" 모두의 궁금증을 해결해줄 질문이다! 아마. 다림의 속으로는 하이고.. 요래 뿌사믁은 걸 끌고 와갔고 머하는 짓이고.. 같은 말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교복으로 보이는 게 보이지 않는 걸로 봐서는 성학교 학생인 것 같았는데..
"성학교.. 로 보이는데. 가시는 길에 쓰러질 것 같아서요.." 말을 건 이유를 덧붙인다. 얼굴이 걱정가득한 얼굴과 한께 나긋나긋한 말투를 유지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결혼 적령기가 16세로 내려오며 인구의 증가도 이뤄졌고, 혼란기 상황에서 이루어진 수많은 범죄들로 인해 사라지고 태어난 아이들이 많음에도 세계의 인구가 아직 60억 정도에서 유지중인 이유는 그만큼 수많은 게이트에 의해 사람들이 아직도 죽어가고 있고, 헌터나 가디언의 수가 늘어나고 싸우는 인원은 많아졌지만 게이트도 그에 맞춰서 늘어나고 있고. 아프리카 지역에는 어째서인지 가디언들이 등장하지 않아서 타 국가에서 뽑힌 가디언들이 사실상 들이부어지면서 게이트를 닫고 죽어가는 현장이고 남극에선 초대형 게이트가 현실과 공명해서 거대한 몬스터 제국이 나타나고 하는 상황이라 절대로.. 세상은 평화롭지 않아. 약하면 도태된다. 가 아닌 거야.. 약하면 아무것도 못 하게 되니까. 다들 어느정돈 절박함을 가지는 거지.
옆에서 누군가 다가왔다. 창백과 미백 사이의 차가운 피부와 검청색 머리를 한 여자가 와서,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그래, 강찬혁은 이런 사람이 좋다. 굳이 얼굴 험해지거나 협박 안 해도 처음부터 서로 좋게좋게 말할 수 있는 사람! 하지만 강찬혁은 지금 대화를 할 때가 아니었다. 강찬혁은 오크와 싸운 여파로 어깨가 박살났고(광폭화된 오크의 글레이브가 꽂힌 부위라는 사실을 고려해보면, 강찬혁은 팔이 일단 "붙어라도"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었다.) 게다가 오크와 싸울 때는 아드레날린과 엔도르핀이 분비되어 아픈 줄도 몰랐는데, 나중에 보니 오크에게 튕겨나갔다가 낙법을 쓰는 과정에서 발목이 박살난 상황이었다. 강찬혁은 상대방이 좋게 말했으니, 나름의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좋게 말해주기로 했다.
"신경써주셔서 고맙네요. 오크랑 싸우다가... 죽을 뻔했거든요. 원래 병원에 있어야 하는게 맞는데..."
강찬혁은 제노시아 전문고교에서만 살 수 있다는 행복의 슈크림이 담긴 봉지를 흔들었다. 강찬혁은 힘들게나마 웃어보였다.
소년의 삶은 언제나 단념과 함께했다. 그것은 지긋지긋한 지병이나 기벽처럼 항상 쫓아다니면서 그를 괴롭혔다. '가족이 없어서 고아원에서 지내야하지만 어쩔 수 없지. 그런 시대인걸' '장난감을 뺏겼지만 어쩔 수 없지. 우리 고아원은 장난감이 금지인걸' '친구가 죽었지만 어쩔 수 없지. 우리 고아원은 돈이 없는걸..'
하나 둘 단념의 범위가 늘어날수록, 소년의 정신 역시 병들어갔다. '어차피 저기까지 도달하려고 발버둥처봤자 실패하겠지. 의미없는 노력인걸'
그리고 그런 모습을 안쓰럽게 여긴 고아원의 선생님은 한가지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것은 소년이 사는 나라에서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였다. 소년과 반대로 단념하지 않는 영웅에 대한 이야기였다. 영웅은 게이트를 닫고, 사람들을 구하고, 언제나 포기하지 않았다. 단념하지 않았다. 그 이야기에 매료된 소년은 한밤중 몰래 고아원 밖을 나와 그 영웅을 흉내내기도 해보았다.
어설픈 검술을 어설프게 만든 나무검으로 흉내냈지만 그 어느때 보다 가슴이 뛰었다. 처음으로 단념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
소년은 운이 좋은 케이스였다. 그는 가디언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심장이 터질 것 처럼 기뻤다. 왜냐면 단념하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그것이 너무 기뻐서 견딜 수 없었다. 하지만 곧 다가온 현실은 언제나 소년의 발목을 잡는 단념과 동시에 찾아왔다. 재능의 차이가...너무나 잔인했다.
자신보다 재능이 많아 보이는 이도 단념하고 마는 곳 이었다. 재능을 지닌 몇몇 소수도 영웅의 꿈을 접고마는 잔인한 곳. 소년이 들어간 학교는 그런 곳 이었다.
태어났을 때 부터 쭉 혼자였던 소년은 처음으로 친구를 사귀었다. 소년은 친구들에게 자신이 들었던 이야기를 하며, 검을 들었다. 하지만 곧, 자신은 검에 재능이 없다는 현실을 마주하였다. ..소년은 단념하였다. 자신이 동경하는 영웅 처럼 되고 싶다는 꿈을 접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다니는 학교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인생이란 동화처럼 달콤하지 않기에, 검에 대한 동경을 가슴에 묻은 소년은 힐건을 들었다. 영웅에 대한 열망을 가슴에 묻은 소년은 그저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좋은 사람이라면... 그 정도라면 재능이 없어도 할 수 있을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열망과 동경은 여전히 그의 가슴 한켠에 남아 뜨겁게 타올랐다. 힐건을 마치 권총처럼 쏘는 것은 아주 조금이나마 그것에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결국 소년은 단념했다..........
그리고 이젠, 그 좋은 사람 마저 될 수 없는 현실을 마주하였고. 그 현실을 부정하기 위해 소리치는 소년에게 어쩔 수 없다고. 안타깝다고 말하며 단념을 선언하는 자는. 그 누구도 아닌 소년이 동경하던 영웅이었다.
심장이 찢어지는 기분이다. 주마등처럼 스쳐지가나는 모든 기억이 의미없이 녹아내린다. 이것도 의미없고, 저것도 의미없고, 불등하나에 의지하며 용돈을 모아 산 검성의 이야기를 읽던 시절도 의미없고, 나무를 엮은 검을 휘두르며 기뻐하던 시절도 의미없고. 뭐 어쩔 수 있나..... 단념해야지. 이건 자연재해 같은 것 이다. 태풍이나 지진에게 화를 낼 순 없지 않은가.
...단념해야지.
["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난 단지 들어주는 것밖에 할 수 없으니까! 친구에게 해줄 수 있는 게 그런 것밖에 없는데! 내가, 내가! 어떻게 해야 하냐고! "]
목소리가 들렸다. 하나미치야가 내 손을 잡고, 검성님을 향해 외치는 목소리는.. 너무나 절박하였다. 나는 네가 재능을 가지고 있다 여기고 거리를 유지했는데, 너는 내가 걱정되서 와주었고, 나와 시간을 보내주었고. 나를 대신해서 화를 내주고 있었다. 내가 동경하는 이 마저 단념하라고 말하는 것을 너는 화내주고 있었다.
[" 네게는 두 선택지가 있어. 하나는 지금 내 손에 죽는다. 아 물론 죽는다 하더라도 걱정하진 마. 가족들에겐 시체가 온전히 전해질거고 원한다면 신한국에 작은 작위라도 마련해주지. 겸사겸사 그 핏빛 대가리 쓴 여자도 내가 죽여주고 말야. "]
그리고 뒤 이어 찾아온 왕은 나에게 선택지를 주고 있었다. 이것은 단념의 선택지였다. 내가 할 수 없다면 그냥 이곳에서 포기하면 된다. 어찌보면 현실적이었다. 그 여왕에 의해 하나미치야도 다치지 않을 것 이고, 행여나 다른 사람이 다칠 위험도 줄어든다. 언제나 그랬던 것 처럼 단념해버리면 .......
단념하고 단념해서 목숨마저 단념해버린다면.. .. 주먹을 강하게 쥐었다. 너무나 분했다. 사실 단념하고 싶지 않았다. 영웅이 되고 싶었다. 적어도 조금이나마 욕심을 낼 수 있다면, 이딴식이 아니라 적어도 같은 풍경을 보는 자리에서 검성에게 '당신을 동경해서 가디언이 되었습니다' 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영문을 모르는 자연재해 같은 것에 의해 이런 식으로 꿈을 잃고 싶지 않았다. 재능의 벽에 막혀, 둔재의 구덩이에 떨어져, 천재들이 하늘을 나는 모습을 멍하니 올려다보고 싶진 않았다. 그렇기에.
" 할거야. ...빌어먹을 통제하면 되잖아...! 그러니까..."
자신에게 단념하라 말한 동경하는 영웅이 보는 자리에서. 자신을 위해 대신 화내주는 의지되는 친구가 보는 이곳에서. 자신에게 선택지를 주는 왕의 앞에서 나는 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