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그저 털어내는 모습에 그는 말을 멈췄다. 분명히 안 좋은 기억인 것 같긴 하다. 하지만 억지로 끌어내려고 해봤자 역효과만 날 것 같았고... 애초에 지아가 그것을 원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는 그저 입을 조용히 하려고 했다.
" 아마 그렇겠지. 근데... 날 잊어버리시진 않으셨겠지? "
살짝 걱정되는지 중얼거린다. 시간이 많이 지나서 날 잊어버리셨다고 해도 이상하진 않지만... 그래도 친구를 넘어서 거의 가족처럼 지냈는데 잊어버리셨다고 하면 조금 슬프네. 이런. 왜 자꾸 우울한 이야기로 빠진담. 그는 고개를 갑자기 도리도리 젓더니 헝클어진 머리를 가다듬으며,
" 아. 지아는 동아리 어디에 가입했어? 궁금해졌어. "
지금은 뭘 좋아하는지 잘 모르니까 추측하기 어려웠다. 어렸을 때 좋아했던 건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있지만, 지금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동아리를 들어가셨는지 안 들어가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들어가신다면... 들어가기 전에 생각 한번, 두번, 아니, 세번 정도 더 하고 들어가세요. 특히! 전투계열 동아리는요. 끄윽..."
진심을 담았다. 그의 썩어버린 표정이 말해주고 있었다. 그는 지금 동아리 하나 잘못 들어가서 그렇게 되었음을. 게다가 입에서 작은 목소리로 '전투연구부장 임마 내가 조금만 더 강했어도 콱...' 이라는 저주가 새어나왔으니 더욱 잘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만약 강찬혁이 조금이라도 굼떴다면? 그는 지금 이곳이 아니라 그의 고향 기차역에 "동탄시의 영웅 강 찬 혁"이라는 명판과 함께 동상 신세가 되어 서 있었으리라. 그것도 실제 시체는 머리와 몸이 분리된 채로.
업어준다? 그런 건 바란 적도 없다. 의무 계열 서포터들은 당연히 자기 체중의 두배 정도 되는 가디언들은 들고 움직일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 는 꼰대스러운 생각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꼰대스러운 생각이었지 바깥으로 내뱉어진 "의견"은 아니었으니까. 강찬혁은 혹시 몰라서 물었다.
"혹시 그런거 없나요. 혈액순환이랑 상처재생에 좋거나, 아니면 하다못해 진통이라도 되는 의념이라던지..."
정신을 차리자마자 본 것은 기숙사의 익숙한 천장도, 졸다가 번뜩 깬 교실 안도 아닌 항구구역이었다. 두 뺨이 젖은 느낌에 손을 뻗어 따라가보니 눈물이었다. 어째서? 무의식 중에 벌어진 일을 인지하기도 전에 지아는 뒤이어 따라오는 수많은 물음표에 잠시 숨이 멎는 듯 눈 앞이 아찔해졌다.
나는 왜 울고있는거지? 꿈속의 그 풍경은? 그 아이는 대체 누구? 한번 터져나오기 시작한 의문의 연쇄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끊임 없이 이어지다, 어느 한 순간에서 필름이 끊어지듯 뚝 하고 끊어져버린다. 처음으로 각성하기 전날부터 각성한 후의 몇년. 그 몇년 사이의 기억이 먹으로 덧칠한 듯 새카만 것. 떠올리려 하면 감정이 받쳐 올라 울고 싶어지는 것. 너무나도 무거운 죄책감.
"...이상해."
이미 흘러내린 눈물을 닦은 지아는 울고싶어지는 기분을 애써 억누르며 기숙사로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여전히 의문투성이인 채로, 여전히 죄책감에 물든 채로.
[ 속보입니다. 현재 해운데 앞바다에 거대한 태풍이 관측 되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현재 면밀한 조사중이며... ]
[ 속보입니다, 현제 해운대 근해의 폭풍은 이상기후가 아닌 게이트의 영향으로 판단되어... ]
[ ...이번에 출현한 것은 매우 드물게 관측되는 재해형 게이트로 전문가들은 판단하고 있으며, 해운대 인근 시민들은 대피를... ]
[ 속보입니다. 현재 해운대 앞바다에 출현한 재해형 게이트는 강한 환각현상을 불러 일으키는 것으로 연구 및 조사에 의해 밝혀졌으며 '하멜른'이라는 이름이 부여되었습니다. 환각현상에 양성반응을 보이는 것은 대부분 12세 미만의 어린 아이들로써, 공통적으로 피리소리가 들린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실종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각 가정에서는 각별히 주의를 기울이시길 당부드립니다. 이어서 하멜른 관련소식... ]
─빨리! 내 손 잡아! 가면 안돼!
─난. 저 피리소리를 따라 가야해.
─싫어! 제발 가지 말아줘!
─안녕, 지아. 다녀올게. 다음에 또 놀자.
소녀가 그날의 기억과 함께 떠나보낸 것은, 자신의 친구를 지키지 못했다는 짙은 죄책감. 그리고 남은것은 그날의 거센 폭풍을 기억하라고 절규하는듯한 풍의 의념속성. 이 사실을 다시 기억해내기까지, 그리고 극복해내기까지 얼마나 걸릴까.
"저는 전투 쪽이 처지는 편이니만큼 그런 쪽도 생각했는데.." 학생분의 말을 들으니 몇 번은 생각해야겠네요. 라고 말합니다. 먼저 통성명을 해야하는가? 라는 생각은 약간의 망설임을 담고 있었을 것이다. 그냥 해도 되는 걸까?
찬혁이 말하는 것에 전투부는 무서워지기 시작했을지도 저정도로 다치는 건 다림주 생각으론 아마 한번도 없었을걸! 그야 걸어다니기만 해도 종잣돈이 모이는(농담이지만) 행운아가 저정도로 다치는 거면 주위 사람들 떼거지로 죽어나가는 게이트에 휘말림 정도의 일이지 않을까. 아니 그래서 진짜 휘말린 적 있어? 그거야 다림은 알지만 다림주는 모르는 영역이지. 찬혁의 부탁을 듣고는 귀 뒤로 반짝거리는 백색과 청색의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넘기고는
"아. 따끔하겠지만 일단은 바라는 것을 좀 드릴까요?" 바라는 것이 그렇다면 그렇게 되도록 버프해줄 수는 있다. 그러니까.. 대충 말하자면 이 경우에는 버프를 빌어서 순간적이나마 잊도록에 가장 가까울까. 라는 느낌? 꺼내든 게 화살이라서 문제지만. 사근사근한 표정으로 한번 따끔이에요. 라니. 언밸런스하다!
"저는 워리어거든요. 아시잖아요. 맞짱 뜰 줄 모르는 워리어는 제주도 수학여행 가서 노점상이 500원 받고 파는 중국산 싸구려 돌하르방 열쇠키 기념품 수준으로 쓸모가 없다는거. 그래서 들어갔는데... 보시다시피... 네..."
강찬혁은 그렇게 말했다. 다른 건 몰라도 그건 사실이다. 싸움을 못하는 워리어는, 500원짜리 기념품만큼이나 쓸모가 없다. 약하면 도태된다는 청월고의 살인적인 엘리트주의도, 한 우물만 판다는 제노시아 고교의 비실용적인 외길인생도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어찌됐든 가디언이 된 이상 인생을 날로 먹을수는 없었기에 그 길을 선택했다. 하지만 그렇다쳐도... 이번 건 좀 심했다. 강찬혁은 상대방이 제안하는 것을 보고 한번 받아나 보기로 했다.
"네, 부탁드릴게요."
강찬혁은 그렇게 말하며 몸을 곧게 폈다.
//다림주. 기다림 의념기 중에 다이스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보니까 낮은 확률로 아군의 상태 최악화가 있던데 불행하게도 하필 강찬혁이 그거에 딱 걸렸다는 서사 괜찮을까요?
"어.. 그정도로 쓸모가 없나요?" 500원이라면 길가다 주우는 정도인데 그정도라니. 상당히 곤경에 처해있게 된 상황처럼 보인다. 청월고교도 제노시아도.. 라는 말을 들을 순 없었지만.
"서포터라도 전투 자체를 할 줄은 알아야겠죠." "그랬는데 무서워지니..." 그래도 생각해보니 활을 쏘아야 할 일이 많겠으니 궁도부라도 가야 하나. 라고 중얼거립니다. 네 성이 기인 건 양궁선수도 감안한 거야.. 라는 건 헛소리입니다. 이 참치는 그런 거 생각없이 했다가 아. 하고 나중에 붙인 거에요.
"묘하게 동음이긴 하지만 이의어니까 괜찮겠죠." 바라는 것이니까요. 바라는 대로. 라니 엄청 대단해보인다고 누가 말한 적은 있지만 그다지..? 화살촉이 콕 하고 따끔하면 버프가 걸릴 것이다. 버프라고 한다면 일종의 활력을 더해주는 것일지도 모르고.. 불안점이라면...?
//서사 자체를 해도 괜찮기는 하지만 제가 찬혁이에게 미안하고.. 다림이가 불행을 몰고오는 느낌이라.. 미안해진다아앗...!
짧지 않은 생을 살았지만 모든 것에 적당히 선이 있어야 한다는 건 안다. 그리고 선을 넘게 두는 것에는 좀 더 신중해야 한다는 것도 안다. 물론 지금도 사실상 미션스쿨을 다니고 있긴 하지만 사오토메 에미리는 다년간의 미션스쿨 생활을 통해 뼈져리게 깨달은 점이 있다. 역린은 정말 믿고 있는 사람이 아니면 공개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캐묻지 않길 바라냐는 말에 에미리는 특별히 말로 대답하진 않았다. 그저 살짝 오른눈을 감고 윙크하고 말았다. 말로 뭘 답할 수가 없으니 사실상 노코멘트나 마찬가지다.
쨘! 하고 잔을 가볍게 부딪히고는, 잔을 조용히 입에 가져가 조금씩 홀짝이고는 이내 3분의 2만 남기고 잔을 내려놓았다. 따뜻한 밀크티로 주문한 덕에 게이트에서 쌓인 피로가 조금은 풀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쌉싸름한 홍차에 부드러운 우유가 적당히 좋은 비율로 섞여 담긴 게…
“으음~ 이맛이어요🎵 노곤해지면서 사르르 녹는듯한~ 정말이지 천상의 맛이와요~! “
오른손을 뺨에 올리며 한츰 맛을 음미하다 다시 잔을 들어 조금씩 마셔넘겼다. 내가 진짜 이 맛에 차를 마신다…티라미슈도 조금 한 스푼 떠서 입에 넣고는 또다시 감동했다는듯 왼손을 뺨에 올렸다. 아아, 어쩜 이렇게 사랑스러운 맛인지💕에미리는 감동했사와요~! 이 카페의 단골이 될것이와요!
막 슬라임이 되어버리는듯한 느낌~? 이라고 하면 맞으려나요…~🎶 덧붙이면서도 끝이 늘어지고 있는 것이 정말 밀크티 몇모금으로 온몸에 긴장이 싹 풀어지긴 했나 싶다. 차가운 콜라던 따뜻한 밀크티건간에 게이트 끝내고 나서 마시면 노곤노곤해지는건 다 똑같다. 살짝 눈을 감으며 다시금 밀크티를 머금었다. 역시 티타임은 이런 맛에 즐기는 거지요, 느물느물해지는 이런 맛에요…🎵
그렇게 노곤하다면 노곤하고, 느물느물하다면 느물느물해지는 티타임을 보낸 둘이었다…
//끝까지 다 썼는데 막레 날려서 처음부터 다시 쓴 사람이 있다????? (그것이 알고싶다 BGM) 눈물나는거에요 늦게나마 막레 올립니다 수고하셨어요 지훈주~~! ♪(๑ᴖ◡ᴖ๑)♪
"서포터라고 하셨죠? 생각해보세요. 눈 앞에서 적이 랜서랑 서포터를 씹어먹으려고 달려들고 있는데 워리어가 그거 하나 못 막고 넘어져서 접근을 허용했다면? 힘싸움에서 밀려서 넘어졌다면? 차라리 돌하르방 열쇠고리는 단돈 500원이면 되니까 싸기라도 하지, 그런 워리어는 나중에 의뢰 수고비도 1/3 만큼씩 받아갈거 아니에요. 얼마나 짜증나요."
강찬혁은 그렇게 말한다. 사실 이건 다른 직업군에도 적용될 수 있었다. 워리어가 전방에서 틀어막고 적이 뒤로 못 가도록 차단하는 일, 그러니까 탱킹을 못 한다면 가만히 앉아서 중후한 표정으로 장중을 압도하는 모아이 석상보다도 쓸모없는 워리어고(차라리 그건 잘만 배치하면 뚫기라도 힘들다), 랜서도 워리어가 버틸 수 있는 한계점까지도 적을 못 쓰러뜨리면 그 사람은 랜서가 아니라 끊어진 랜선보다도 쓸모가 없고, 서포터도 서포트를 제대로 못하면... 말을 말자.
"한번 해 보세요. 음..."
강찬혁은 잠깐 기다려보았다. 오, 왠지 몸이 좋아진 느낌인데? 그렇게 생각하면서 표정이 밝아졌다.
"와, 서포터 능력 확실하시네요. 뭔가 고통이 사라진 느낌이에요. 병원까지 제발로 걸어갈 수 있겠는데요?"
"비유를 들어주시니 이해하기 편하네요. 그... 중상자 씨." 여러가지 상황에서 워리어나 랜서가 잘 하지 못한다면 그것 참... 뒷사람은 뭔가 메 모 씨가 POTG인가 뭔간가를 먹은 걸 상상했다! 통성명이 없었으니까 중상자 씨라고 부르다니. 묘하네.
"수고비를 받아가는 것..." 의뢰를 다녀본 적 없지만 와닿는 설명이었다. 화살을 톡 건드립니다. 하는 생각을 알았다면 워리어가 워리어를 못하면 월월 짖는 거고. 랜서가 랜서 일을 못하면 랜서가 신다! 고 서포터가 서포트를 못하면 스팟만도 못한 게 되겠다면서 맞장구를 쳐줬겠지. 근데 사실 따지고보면 다림 네가 저 스팟만도 못한 게 되지 않을까? 일단 버프가 먹혀들어간 걸 보고 몰래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버프일 뿐이니까요. 대신 풀리면 피로감이나 아픈 거나 그런 거 한번에 닥칠지도 몰라요?" 겁주듯 말하는 게 진짜인지는 모를 일이다. 그냥 바로 싹 사라지게 하는 거라면 좋겠지만 그걸 바란다고 해도 그대로 될지는 모르잖아? 사근사근함은 줄어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가는 동안 무슨 일이 생기면 안 되니까 따라가겠다는.. 오지랖이라고 불릴 만한 일을 자처하나?
강찬혁은 모르는 사람들이나 자신을 얕잡아보려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사용했던 지칭어들을 떠올려보았다. 거지, 깡패, 양아치, 조폭, 미친놈, 또라이, 싸이코, 문신충(놀랍게도 강찬혁은 어떤 문신도 하지 않았다), 폭력전과 47범(실제로 강찬혁이 체포되었다면 50범 정도는 노려볼 수 있었겠지만 강찬혁은 체포된 적이 없다), 멍청이, 뇌근육, 얍삽이, 인성질맛집, 테러리스트, 싸가지, 강도범, 빚쟁이, 사채꾼, 그 외 기타등등. 그 중에서 "중상자"라는 아주 점잖은 지칭어가 추가되니 강찬혁은 기쁠 따름이었다. 그래도, 중상자보다는 사람을 더 낫게 부르는 법이 있으니, 이름이었다. 강찬혁은 가디언 칩이 담긴 팔을 내밀며 말했다. 괜찮다면 통성명을 하자는, 그 나름의 의사 표시였다.
"네, 워리어 겸 무직 백수 겸 중상자 겸 아프란시아 성학교 학습부진아 겸 전투연구부 마루타 강찬혁입니다."
그리고 닥칠지도 모른다는 말에 껄껄 웃었다. 강찬혁은 자신의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진짜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어차피 병원까지만 가면 의사들이 알아서 다 해주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중상자가 예의바른 지칭이라니." 몰랐네요. 라며 생글생글 미소짓습니다. 그러고보면 자신을 지칭하는 것 중 가장 나쁜 건 뭐였더라. 그렇게까지 신경쓰지 않아서 잘 기억나지는 않는데. 역시 두려움을 사는 것이 그랬을까? 생각을 안하는 게 가장 나아. 찬혁이 말하는 말이 통성명인 것을 알아차리는 것은 끝에 이름이 나올 무렵이었다.
"앞에 붙는 수식어들이 대단하네요." 찬혁 씨. 라고 말한 뒤 저는... 제노시아 학교의 기다림이라고 해요. 다림이라고 불러주세요. 라고 모호한 표정으로 통성명을 하지만 악수하기엔 중상자라서 멈칫하네요. 괜찮다면 가디언 칩이 들어있는 팔을 내밀어 악수를 했겠지.
"그래도 의사 말을 들어서 나쁠 건 없지요...?" 의사 말 무시까고 130세까지 산 할머니의 이야기를 생각하지만 여기에서 할 말은 아닌 것 같아서 그저 걸어가면서 알아서 해줄 거라는 말을 듣곤 의사선생님께서 등짝에 스매싱을 날리려다가 참으실지도 모르죠. 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