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의 말에 불만스러운 듯 입을 삐죽인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다른 목표도 없고 오로지 운동만을 위한 운동은 카사에게 지루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일단은 따를 생각인지,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선다. 무슨 운동부터 할지도 모르겠는데. 그래도 역시 지루하다 생각했는지,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 지금까지 자신에게 가장 호의적(?)이었던 근육의 여학생에게 고개를 돌린다. 으음, 어떻게 설득을 하지?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옆으로 기울인다!
"같이 가줄꺼야?"
# 카사 나름의 애교로 운동 파트너 부탁. 안되면 우울하게 혼자서 학교 한 바퀴 뛸 생각이다.
>>859 에반은 대답하지 않습니다. 다만 얼굴에서 미소를 지은 채 에릭을 바라보고 있을 뿐입니다.
" 그러게 말입니다. 어째서 그런 운명이 당신에게 쥐여졌는지. 어째서 당신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를 일입니다. 그리고 그에 대해선 저도 글쌔요. 그러게요 하는 심심한 위로밖에 전할 수 없습니다. "
그 말은 얼핏 잔혹하기마저 합니다. 혼란스러운 에릭에 대한 이야기는 들어있지 않고 단지 동정만이 느껴지는 언어이니까요. 하지만 옆에 있던 하나미치야는 조용히 에릭의 손을 붙잡습니다. 말은 하지 않습니다. 하나미치야는 손을 붙잡고, 꼭 붙잡고 있기만 합니다.
" 솔직히. 에반. 아니 검성님이라 부를게요. "
하나미치야는 에반을 바라보며 말합니다.
" 그렇다 해도 당신은 그런 말을 해선 안 되는 것 아닌가요? "
하나미치야는, 지금까지 말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겁을 먹어 손이 파르르 떨리고, 겁을 가득 먹었는지 목소리도 떨리고 있지만 명백히 목소리에는 분노가 느껴지고 있습니다.
" 우리는 아직 학생이에요. 난 에릭에게 이런 존재가 있다는 것도 몰랐고, 에릭도 말하지 않았어요. 맞아요. 난 에릭에 대해 잘 알지 못해요. 단지 의뢰 몇번. 심부름 몇번. 같이 노는 시간 몇 번. 그런 사소한 시간과 수업들을 같이 나눈 친구일 뿐이에요. 그런 내가 에릭에 대해 무어라 할 수는 없어요. 그런데. 그런데! "
그 눈에는 명백히 분노가 서려있습니다.
" 당신은 영웅이잖아. 에릭은 당신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면 눈을 반짝이곤 했다고. 서포터로 힐 건을 사용하기 전에 당신을 동경해서 검을 잡기도 했던 애였어. 목표로 당신과 같은 위대한 영웅이 되고 싶다고도 했던 애였다고. 그런데 당신이 어떻게.. 어떻게. 에릭에게 그리 간단하게 위로라는 말을 꺼내는거야? "
하나미치야의 의념이 폭주하듯 주위에 퍼지고 있습니다. 이는 명백한 문제점. 가디언 칩이 미친듯이 울리고 있지만 하나미치야는 그런 것을 무시하고 에반을 바라봅니다.
" 나는 당신을 이해할 수 없어. 에반 보르도쵸프. "
그것은 적의입니다. 한참이나 약한 하나미치야이지만, 하나미치야는 친구의 고통에 걱정해 한번에 에릭에게 달려왔고, 그런 에릭을 진정시키기 위해 데이트란 핑계를 대고 끌려왔으며, 지금은 에릭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에릭은 혼란감을 느낍니다. 어째서.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혹시라도 하나미치야의 명백한 적대를 느낀 검성이 하나미치야를 베기라도 한다면? 누구도 하나미치야의 죽음을 막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적의를 받아내고도 에반은 덤덤히 말을 잇습니다.
" 아직 제 얘기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
하나미치야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습니다. 그것은 사죄나 그런 뜻이 아닙니다. 에릭은 알고 있습니다. 저것은 적의에 반응하여 나타나는 기운입니다. 적의를 지우기 위해 그의 의념이 아주 조금 방출되었을 뿐이지만 주위 공간은 무너지며,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 증거로 에릭은 지금 조금의 의념도 움직일 수 없습니다. 이 안에서 에릭은 그저 평범한 일반인일 뿐입니다.
" 하지만.. 하지만!! "
하나미치야는 분노하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무력하다는 듯.
"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난 단지 들어주는 것밖에 할 수 없으니까! 친구에게 해줄 수 있는 게 그런 것밖에 없는데! 내가, 내가! 어떻게 해야 하냐고! "
하나미치야의 말을 들은 에반이 입을 열기 전에.
" 잠깐. "
세계는 정지합니다.
" 에반 보르도쵸프. 여긴 신한국과 마도일본. 중국. 3국에 소속된 가디언 아카데미야. 그러니 엄연히 여긴 내 땅이라고 할 수 있고 말야. "
에반도, 하나미치야도, 에릭도. 단지 '그' 가 존재하는 것 하나만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단지 숨 쉬는 것만을 허락받았기에. 그에게 '대답'을 허락받진 못하였기에.
" 그러니 그 기운. '치워라' "
에반의 기운은 사라집니다. 하나미치야는 겨우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그 모습을 보며 만족하는 얼굴로 그는 미소를 짓습니다.
에릭의 레벨이 6으로 상승합니다. 스테이더스에 투자할 수 있는 포인트 5를 획득하였습니다.
" 여기는 죽은 자들을 위한 추모공간이니까 말야. "
지금부터 이 곳에서 모든 무력 행위는 금지됩니다.
" 내가 그러기로 했어. "
그 모든 것은
의념기
사상 예속
" 이 유찬영이 말야. "
그가 바라는 대로.
" 그러니 이제 다시 물어보지. "
에릭을 바라보며 유찬영은 입을 엽니다.
" 네게는 두 선택지가 있어. 하나는 지금 내 손에 죽는다. 아 물론 죽는다 하더라도 걱정하진 마. 가족들에겐 시체가 온전히 전해질거고 원한다면 신한국에 작은 작위라도 마련해주지. 겸사겸사 그 핏빛 대가리 쓴 여자도 내가 죽여주고 말야. "
그는 펼친 두 개의 손가락 중 하나를 접습니다.
" 다음 하나는 네가 '노력'해서 그 존재를 통제하는 방법이야. 많이 힘들겠고 죽는 게 나을지도 모르지만 최소한 내 손에 죽진 않아. 어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