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에 한 책에 손이 향했다는건 둘 다 같은 책을 읽는것을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왠만해서는 둘중 하나가 포기하거나 서로 자기가 가지겠다 다투는 경우가 많았지만. 후안은 크게 방해 되지 않으면 상관 없는 파였기에 같이 읽자는 제안에 아무말 없이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카사는 솔직이 말해서, 예쁜 것에 사족을 못쓰는 편이었다. 말 그대로 짐승들만 보아오다가, 위급한 상황에서 만나게 된 하루는 정말로, 말 그대로 반짝였다! 새끼오리가 태어나고 처음보는 사람에게 각인하듯, 카사는 그렇게 현재 하루에게 무한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의 목소리에 기분이 하늘까지 치솟아 올랐다가 내용에 금방 다시 울상이 되어버린다.
옷 같은 것은 괜찮은데! 그보다 쓰담는 것이 더 중요한데! 큰 실망에 몸을 부들부들 떨 뻔하지만, 이내 이어지는 "예쁜 사람"이라고 부르는 말에 이내 헤실헤실해진다.3 그럼그럼, 하루가 그렇게 말한다면 그런 것이지! 순식간에 만족한 카사, 하루가 편하게 양 팔을 옆으로 펼치고 있다가 손을 모아 손수건을 받는다. 그러다 마침내 닿은 하루의 손길! 기분 좋은 듯이 눈을 감으며 최대한 가만히 만끽한다. 동물이 의레 그렇듯이, 오히려 하루의 손길에 머리를 부비적거린다.
"응, 응! 저기 멀리 담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어! 하루는 오늘 뭐했어?"
또 다시 그 '신'이라는 사람이랑 얘기하고 있었던게 아닐까? 하루가 감사하고 있다는 그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가끔은 조금, 아주 조금 질투나기도 했다. 하지만 하루가 그렇게 좋아하니, 크흠, 크흠, 너그러운 카사는 그 사람을 좋게 봐주고 있었다. 만약에 직접 만나게 된다면 약간은 과시하겠지만, 고기를 조오금 나눠줄 의향도 있었다!
반짝, 하루의 인삿말에 눈이 다시 번쩍 뜨여진다.
"나도!! 나도 하루가 보고 싶었어!"
흔들 꼬리를 대신하듯이, 기어코 온몸이 진동하기 시작하는 카사. 햇살만큼 강렬한 눈빛을 하루에게 쏘아보낸다.
본래 의자와 의자사이에는 어느정도의 간격이 있지만, 둘이서 한 책을 읽기에는 거리가 있기때매 타다는 조심스레 의자를 당겼다. 그리고는 말 없이, 마치 그렇게 정했다는 듯 책을 천천히 넘기며 읽기 시작했다. 상대방의 페이스를 알지못하니, 속독은 피하기로 하고 정독을 한다. 어쩌다보니 앉은 자리가 자신이 페이지를 넘기는 자리가 되었으니 한편으론 편하다고 생각하였다.
그 모습이 주변에서 책을 읽던 학생이나, 사서에게는 어떻게 생각됬을지는, 전혀 알지 못했지만,
바로 머리를 쓰다듬어주지 않아 몸을 부들거리던 카사가 자신의 말 한마디에 다시 헤실거리는 모습을 보며 하루는 쿡쿡거리는 맑은 웃음소리를 흘렸다. 정말이지, 고아원의 동생들 - 나이를 한손으로 셀 수 있는 - 을 보고 있는 느낌이야. 하루는 마음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정성껏 하루를 보듬어주고 쓰다듬어주었다. 일종의 힐링일지도 몰랐다.
" 저는 기도를 드리고, 보건부 활동도 하고, 도서관 좀 들렸다가 오는 길이었답니다. 카사 양이 힘이 넘치는 것을 보면 제대로 낮잠을 즐긴 모양이네요. "
잘했어요. 하루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손에 부비적대는 카사를 상냥하게 매만져주었다. 누군가를 돌봐준다는 것, 누군가가 자신에게 의지한다는 것은 하루에게 있어 큰 기쁨 중 하나였다. 신께서 자신을 세상에 남겨둔 이유가 바로 이런 일을 하라고 남겨둔 것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하면서 다정하게 카사를 바라보는 하루였다. 갑작스런 만남에 제대로 건내지 못 했던 자신의 인사말을 들은 카사의 눈이 갑작스레 커지자 잠시 의아한 듯 고개를 살짝 기울이자, 새하얀 머리카락이 비단처럼 살짝 옆으로 흘러내렸다.
" 후후, 그건 기쁜걸요. 카사 양이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절 만날 수 있겠지만 말이에요. 적어도 저랑 카사 양이 학교에 머무르는 동안에는 확실히. "
하루는 온몸을 진동하기 시작한 카사를 따스한 눈으로 바라보며 다정하고 솔직한 말을 돌려준다. 카사가 바란다면 자신은 얼마든지 카사를 만나주겠다고, 언제든 자신을 부르라고. 다정하게 대답을 돌려준 하루는 가볍게 양팔을 벌려보인다.
" 자, 이제 아까 하려던 것을 해드려야겠죠? 카사 양이 하고 싶으셨던거. 잊지 않았죠? "
얼마든지 품에 안겨도 좋다는 듯 가느다란 팔을 양옆으로 벌려보이며 부드럽게 눈웃음을 얼굴에 새겨넣는 하루였다.
하루 만나는 것만으로도 둘 다 이렇게 기분이 좋다니, 이것은 마법이 틀림없다! 저절로 올라가는 입꼬리를 주체하지도 않는 카사. 새하얀 커튼처럼 내려오는 하루의 머리카락을 가지고 노는 본능을 꾸욱, 억누른다.
"많이 바빴나보네! 난 자기만 했는데!"
하루종일 잉여짓이나 했던 것을 아주 자랑이라고 당당하게 선언한다. 더구나 도서관이라니! 씨끄럽다고 일주일간 출입금지 당한 카사에게는 부지런한 사람들을 위한 미지의 공간이라, 더더욱 하루에게 감탄하게 되었다!
"그런가? 그래도 하루도 바쁘니까, 나 잘 참을 수 있어."
대견하지? 착하지? 칭찬을 바라는 듯이 주억거린다. 실제로 그랬다. 다정한 하루를 위해 카사는 잘 참을수 있었고, 그것을 소소한 자랑거리로 여겼다.
그리고 그 상이라는 듯, 양팔을 벌리는 하루. 와, 눈 부셔! 호박빛눈을 깜박이는 것도 잠시, 기다렸다는 듯이 폭, 품안으로 쏙 들어간다. 머리를 부비적거리며 꽈악, 하루를 안는다. 햝지도 않고, 물론 힘조절은 살살하면서! 온 힘으로 껴안다간 척추가 아작난다고 교육한 할멈의 피나는 노력 덕분인 성과였다.
하루에게선 햇살느낌이 난다. 카사는 늘 그렇게 생각하고, 그런 하루를 좋아했다. 담위에서 든 햇볓이 생각나, 다시 잠이 들거 같다고 생각된다. 흐아암, 길게 하품을 내뺀 카사.
// 뻘이지만. 늑대는 서로 만날때 인사로 입안을 햝는다 하네요! 그리고 하루주! 미안하지만 갑자기 가봐야 해서 여기서 잠시 멈출 수 있을까요! 하루 그저 빛...
다행히도 아직 종교에 관심은 없지만 성당에서 마음을 다스리고 싶다고 이야기한 것이 실례가 되는 언사는 아니었는지 소녀는 밝은 미소를 보였고, 소년은 그녀를 따라 순하게 미소 지었다. 소년은 학교에 출입이 가능한지 알아봐 준다는 말에 "네, 부탁드릴게요."하고 가볍게 대꾸하고선 소녀가 내민 손목을 바라보았다.
"네. 그럼..."
새하얀 손목은 손 대면 바스러질 듯 가냘파 보인다. 조금 과장해서 닿으면 안 될 것 같은, 눈에 담는 것만으로 죄책감이 들게 만드는 순수한 여림이다. 소매를 약간 걷어올린 소년은 입을 꾹 닫고 머뭇거리며 두 손목을 조심스럽게 가까이했다. 긴장이라도 했는지 동그랗게 말아 쥔 손의 엄지 끝이 파르르 떨린다.
"... 해요?"
가디언 칩이 익숙하지 않은 것 이전에 누군가와 연락처를 공유한다는 것 자체가 처음인 소년에게 있어서 지금처럼 손목을 맞대는 것은 꽤나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더구나 그 상대가 제 또래의 예쁜 소녀였기에. 아무튼, 지금은 소년의 가디언 칩에 처음으로 누군가의 연락처가 등록되는 순간이었다.
두 손목은 아주 살짝 닿았다 떨어졌고, 소년은 괜스레 뺨을 붉히며 팔을 도로 물렸다. 어쩌면 손목을 맞대지 않아도 연락처 공유가 이루어졌을 지도 모를 일이지만. 소년은 "된 거... 겠죠?"하고 웅얼거리며 시선을 내리깔아 연락처가 제대로 등록되었는지를 확인한다.
"저, 감사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소년은 소녀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고개만 꾸벅여 감사를 표했다. 이제 언제든 연락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마음이 든든해져 오지만, 한편으로는 바쁜데 괜히 발목을 잡은 것은 아닌가 하는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책에서 알려주는 지식은, 유익한 지식들이 쓰여있었다. 과연 청월고교의 도서관일까. 만족하며 이 책을 고르길 잘했다 생각하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페이지의 막바지에 다다르자, 타다는 다음 스케쥴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항상 그렇듯이 그녀가 도서관을 찾아온 목적은 단순히 탐구심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체계적으로 짜둔 스케쥴을 순서대로 소화하고 있을 뿐이니까,
...하지만 생각에 너무 빠졌던 탓일까, 그녀의 손은 거의 마지막 쪽에서 멈춘채로 움직이지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