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오늘의 일과를 마무리 하고 숙소로 향하고 있었다. 이따가 학교 밖에 나가서 가벼운 산책이라도 즐길까 하는 가벼운 생각을 하고 있던 하루는 이내 어디선가 땅을 힘차게 내딛는 발소리가 들리는 것을 알아차리곤 눈이 조금 커진다.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는 것 같은 발소리. 그 발소리를 들은 하루는 천천히 뒤돌아선다. 역시나 하루의 금색 눈동자에는 맹렬히 달려오는 카사가 보였고, 하루는 방긋 미소를 지어보였다.
" 카사양. "
상냥하기 그지 없는 목소리로 하울링처럼 자신의 이름을 외치며 달려오는 카사를 바라본 하루는 부드럽게 이름을 부르더니 천천히 한손을 뻗는다. 새하얗고 자그마한 하루의 손바닥이 카사의 정면에 보일 즈음, 하루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간다.
" 착한 카사라면 제 말을 들어주겠죠? 자, 제 앞에서 멈추도록 해줄래요, 카사 양? 안 그러면 카사양을 쓰다듬어줄 수 없어요. "
약간은 곤란하다는 듯, 그러면서도 반갑다는 듯 미안함을 담은 듯한 목소리로 맹렬히 다가오는 카사에게 말을 던지며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보이는 하루였다. 한없이 자애로운 듯 하면서, 어딘가 말을 어겨서는 안될 것 같은 분위기라는 점은 미묘했지만.
"힐 건이라... 그런데 이상하네? 내가 배우기로는, 힐 건 같이 의념을 이용해서 사용하는 무기는, 장전 같은 건 필요없다고 들었는데?"
이거 제대로 된 거 맞아? 강찬혁은 의심했다. 그가 알기로 힐 건이건 뭐건, 투사체를 발사하는 "총기" 형태의 무기는 장전이 필요없다고 들었다. 분명히 그럴 텐데, 생각보다 묵직하기도 했다. 강찬혁은 에릭과 힐 건을 번갈아보다가, 자신의 무릎에 대보았다. 뭐, 어차피 강찬혁은 서포터가 아니라 워리어니까 소용이 없을 테지만 한번 궁금해서 쏴보고는 싶었다. 하지만 강찬혁의 의심이 미처 닿지 못한 곳이 있었으니... 어쩌면 그 총이 실총일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탕!
"끄아아아아악!!!!"
다행히도 대충 조준하고 쐈던지라 총탄은 강찬혁의 무릎을 스쳐갔다. 하지만 스치기만 해도 바지와 살갗이 찢어진 것을 보고 강찬혁은 알 수 있었다. 이건 실탄총이었다. 강찬혁은 벌벌 떨면서 에릭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맹렬한 사자후(?)에 뒤돌아 보는 하루의 모습을 발견한 카사는 활짝 웃는다. 하루다! 하루! 카사는 하루가 좋았다! 상냥하고, 예쁘고, 친절하고, 예쁘고, 많은 것을 안다! 그리고 예쁘다! 하루는 이 온통 새하얀 소녀가 좋았다! 그 좋아함을 온몸으로 표출하려 하루에게 파운싱을 하려하지만...
끼이익.
멈추는 소리가 요란하지만 완벽히 하루의 코앞에 착지한다.
나보고 착하다고 했어! 카사는 웃어주는 하루가 좋았다. 하루의 말이라면 뭐든지 들어주고 싶었다! 주섬주섬, 네발로 착지한 상태에서 일어난다. 일어나도 하루보다는 머리 하나 더 작았으니까. 그러는 도중에 흙이 묻어 더러워진 양 손바닥을 바라보다 머쓱하게 옷에 쓱쓱 문질러 닦고, 의기양양하게 하루를 반짝이는 눈으로 쳐다본다. 꼬리가 있다면 반가움에 맹렬히 흔드는 것이 보일테다. 쓰다듬기 쉽게, 약간 고개를 아래로 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하루는 순무의 말에 좋은 생각이라는 듯 좀 더 밝아진 미소를 지어보인다. 자신이 애정하는 주에게 기도를 올릴 사람이 늘어난다는 것을 하루가 마다할 리 없었다. 좀 더 이세상의 사람들이 주의 애정을 알 수 있다면 좋을텐데, 하는 것은 언제나의 바램이나 다름없었으니까. 하루는 순무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는지 천천히 새하얀 손목을 내민다.
그 손목은 한없이 가늘어서 그녀가 꽤나 가냘픈 몸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듯 했다.
" 학교에 출입하는 것이 가능한지는 제가 금방 알아봐드릴게요. "
어려운 일은 아니니까요, 하루는 그렇게 말하며 상냥한 눈웃음을 더한다. 자신과 기도를 함께 올릴 수 있는 사람이 늘어난다면 신도 기뻐하실 것이다. 게다가 그로 인해 순무의 삶에 행복함이 솟아난다면 더욱 더 마다할 리 없는 하루였다.
자신의 말을 듣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멈춰서는 카사를 금빛 눈동자가 따스하게 바라본다. 코 앞에 착지한 카사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흙먼지가 묻은 손을 옷에 문질러 닦는 것을 지켜보던 하루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자신을 향해 맹렬하게 쓰다듬어달라는 시선을 보내고 있는 카사를 바라보던 하루의 분홍빛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 카사 양, 그렇게 옷에 손을 닦으면 옷이 더러워져요. 카사양처럼 예쁜 사람이 더러워진 옷을 입고 다니면 안되잖아요? "
'미모가 아까워져요' 하고 상냥하게 말을 건낸 하루는 주머니에서 새하얀 손수건을 꺼낸다. 머리를 쓰다듬는 것은 조금 있다가 해주겠다는 듯, 능숙한 손놀림으로 손수건이 더러워지는 것도 신경쓰지 않고 살살 카사의 옷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준다. 옷이 깔끔해졌을 때엔 상냥하게 카사의 손도 감싸서 흙먼지를 닦아내주고 나서야 하루는 부드럽게 카사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기 시작한다.
" 좋은 하루 보냈어요, 카사? 오늘은 학교에서 못 본 것 같은데.. 날이 좋은 것을 보니 햇살이 좋은 곳에서 잠이라도 잤을까요? "
하루는 카사의 하루가 궁금하다는 듯 차분한 목소리였다. 처음에는 정수리 부근을 매만져주던 손길은 천천히 카사의 머리카락을 타고 옆머리로 향하다, 가볍게 카사의 뺨에 내려앉는다.
"아, 제대로 인사도 안 했었네요. 카사양, 안녕하세요, 그리고 보고 싶었답니다. "
카사의 눈동자에 화사하게 밝은 미소를 짓는 하루의 얼굴이 가려짐 없이 온전히 새겨졌을 것이다.
동시에 한 책에 손이 향했다는건 둘 다 같은 책을 읽는것을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왠만해서는 둘중 하나가 포기하거나 서로 자기가 가지겠다 다투는 경우가 많았지만. 후안은 크게 방해 되지 않으면 상관 없는 파였기에 같이 읽자는 제안에 아무말 없이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카사는 솔직이 말해서, 예쁜 것에 사족을 못쓰는 편이었다. 말 그대로 짐승들만 보아오다가, 위급한 상황에서 만나게 된 하루는 정말로, 말 그대로 반짝였다! 새끼오리가 태어나고 처음보는 사람에게 각인하듯, 카사는 그렇게 현재 하루에게 무한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의 목소리에 기분이 하늘까지 치솟아 올랐다가 내용에 금방 다시 울상이 되어버린다.
옷 같은 것은 괜찮은데! 그보다 쓰담는 것이 더 중요한데! 큰 실망에 몸을 부들부들 떨 뻔하지만, 이내 이어지는 "예쁜 사람"이라고 부르는 말에 이내 헤실헤실해진다.3 그럼그럼, 하루가 그렇게 말한다면 그런 것이지! 순식간에 만족한 카사, 하루가 편하게 양 팔을 옆으로 펼치고 있다가 손을 모아 손수건을 받는다. 그러다 마침내 닿은 하루의 손길! 기분 좋은 듯이 눈을 감으며 최대한 가만히 만끽한다. 동물이 의레 그렇듯이, 오히려 하루의 손길에 머리를 부비적거린다.
"응, 응! 저기 멀리 담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어! 하루는 오늘 뭐했어?"
또 다시 그 '신'이라는 사람이랑 얘기하고 있었던게 아닐까? 하루가 감사하고 있다는 그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가끔은 조금, 아주 조금 질투나기도 했다. 하지만 하루가 그렇게 좋아하니, 크흠, 크흠, 너그러운 카사는 그 사람을 좋게 봐주고 있었다. 만약에 직접 만나게 된다면 약간은 과시하겠지만, 고기를 조오금 나눠줄 의향도 있었다!
반짝, 하루의 인삿말에 눈이 다시 번쩍 뜨여진다.
"나도!! 나도 하루가 보고 싶었어!"
흔들 꼬리를 대신하듯이, 기어코 온몸이 진동하기 시작하는 카사. 햇살만큼 강렬한 눈빛을 하루에게 쏘아보낸다.
본래 의자와 의자사이에는 어느정도의 간격이 있지만, 둘이서 한 책을 읽기에는 거리가 있기때매 타다는 조심스레 의자를 당겼다. 그리고는 말 없이, 마치 그렇게 정했다는 듯 책을 천천히 넘기며 읽기 시작했다. 상대방의 페이스를 알지못하니, 속독은 피하기로 하고 정독을 한다. 어쩌다보니 앉은 자리가 자신이 페이지를 넘기는 자리가 되었으니 한편으론 편하다고 생각하였다.
그 모습이 주변에서 책을 읽던 학생이나, 사서에게는 어떻게 생각됬을지는, 전혀 알지 못했지만,
바로 머리를 쓰다듬어주지 않아 몸을 부들거리던 카사가 자신의 말 한마디에 다시 헤실거리는 모습을 보며 하루는 쿡쿡거리는 맑은 웃음소리를 흘렸다. 정말이지, 고아원의 동생들 - 나이를 한손으로 셀 수 있는 - 을 보고 있는 느낌이야. 하루는 마음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정성껏 하루를 보듬어주고 쓰다듬어주었다. 일종의 힐링일지도 몰랐다.
" 저는 기도를 드리고, 보건부 활동도 하고, 도서관 좀 들렸다가 오는 길이었답니다. 카사 양이 힘이 넘치는 것을 보면 제대로 낮잠을 즐긴 모양이네요. "
잘했어요. 하루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손에 부비적대는 카사를 상냥하게 매만져주었다. 누군가를 돌봐준다는 것, 누군가가 자신에게 의지한다는 것은 하루에게 있어 큰 기쁨 중 하나였다. 신께서 자신을 세상에 남겨둔 이유가 바로 이런 일을 하라고 남겨둔 것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하면서 다정하게 카사를 바라보는 하루였다. 갑작스런 만남에 제대로 건내지 못 했던 자신의 인사말을 들은 카사의 눈이 갑작스레 커지자 잠시 의아한 듯 고개를 살짝 기울이자, 새하얀 머리카락이 비단처럼 살짝 옆으로 흘러내렸다.
" 후후, 그건 기쁜걸요. 카사 양이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절 만날 수 있겠지만 말이에요. 적어도 저랑 카사 양이 학교에 머무르는 동안에는 확실히. "
하루는 온몸을 진동하기 시작한 카사를 따스한 눈으로 바라보며 다정하고 솔직한 말을 돌려준다. 카사가 바란다면 자신은 얼마든지 카사를 만나주겠다고, 언제든 자신을 부르라고. 다정하게 대답을 돌려준 하루는 가볍게 양팔을 벌려보인다.
" 자, 이제 아까 하려던 것을 해드려야겠죠? 카사 양이 하고 싶으셨던거. 잊지 않았죠? "
얼마든지 품에 안겨도 좋다는 듯 가느다란 팔을 양옆으로 벌려보이며 부드럽게 눈웃음을 얼굴에 새겨넣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