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향한 총구를 보고 강찬혁은 가슴이 싸하게 식었다. 아니, 아무리 불량배가 싫어도 그렇지 이렇게 대놓고 총을 쏜다고? 가디언이? 강찬혁은 이쯤 되면 그냥 왔던 길로 돌아가서 선도부하게 가까이 가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의 모든 신이시여, 대체 이런 미친 사람을 만나는 저주는 왜 거셨는지. 그리고...
철컥!
"으악!"
강찬혁은 이대로 순순히 장전을 기다려주다가는 자신이 죽겠다는 생각이 들어, 의념의 힘을 다리에 집중했다. 아까 전에 다리를 쏘려는 것 같던데, 대체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의념의 힘이 잘못 꽂히면 죽을지도 모른다. 미치겠네 진짜. 어차피 반병신이 된 다리로 살기는 힘드니, 저 녀석이 총을 다 쏘거나, 아니면 총을 맞았는데도 견디는 것을 보고 당황하는 틈을 타 총을 뺏고 몸싸움을 할 생각이었다.
소년은 "선배님이셨네요. 반갑습니다."하고 답하며 예의 바른 자세로 인사를 해 보이는 소녀를 마주 보고 말갛게 웃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소녀의 말을 경건한 표정과 자세로 귀담아들었다. 중간중간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기도 하면서 말이다.
"말씀 감사합니다. 새겨들을게요. 사실 지금 이렇게 쉬고 있으면서도 마음이 편하지가 않아요. 말씀해 주신 것처럼 성장하기 위해서는 휴식도 꼭 필요한 건데, 저는 이렇다 할 취미도 없고 아직 친구도 제대로 사귀지 못했거든요. 제가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몸을 쓰는 것밖에 없어서 쉰다는 것이 더 답답하게 느껴져요."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소년은 착잡한 표정으로 가볍게 그러쥔 주먹으로 제 허벅다리를 툭툭 두드렸다. 이윽고 다시 소녀를 바라본 소년은 작은 목소리로 "저..." 하면서 운을 떼었다.
"있잖아요. 혹시 다른 학교 학생도 성당에 들어갈 수 있나요?"
긍정적인 대답을 기대하는 눈치다. 키워준 삼촌의 영향으로 불교에 가까운 무교인 소년은 여태 신앙이라는 것에 관심이 없었지만, 가시방석에 앉은 것처럼 불안정한 마음으로 휴식을 취하는 것보다는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은 생각이었다. 그것이 꼭 성당이리라는 법은 없었으나 괴로워하는 제 앞에 나타나 따뜻한 말을 건네어준 소녀가 수녀복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의 바른 자세로 말하는 순무에겐 손짓으로 저어보이며 그냥 편하게 대해달라는 듯 차분한 말을 돌려준다. 왠지 경건한 표정으로 자신을 보는 느낌에 조금 어색한 미소로 변했다는 것을 순무는 알지 모르지만.
" 확실한 것은 순무군이 무언가를 하면 할수록, 알게 모르게 순무군은 나아가고 있다는 것만 기억하면 되는거에요. 노력하는 사람이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일은 없거든요. 배에서 노를 젓는데 나아가지 않을리 없잖아요? 속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죠. "
하루는 주먹으로 자신의 다리를 두드리는 순무를 바라보며 걱정할 것 없다는 듯 다정하게 말한다. 애초에, 나아가지 않는 사람은 나아가려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 뿐이니까. 개인마다 속도의 차이가 있을 뿐, 노력을 하면 분명히 나아간다. 그것은 신이 내린 은혜니까. 신은 노력하는 자를 버리지 않으시니까.
" ... 글쎄요, 제가 타학교의 학생을 알게 된 지 그리 오래 되지 않아서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교문만 지날 수 있다면 예배당은 언제나 열려있답니다. 하지만 신께서는 장소를 가리는 분이 아니니, 그저 때때로 신에게 기도를 드리는 것 만으로도 기뻐하실거에요. "
장소도 물론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이라고 말하고 싶은 듯 하루는 차분하게 말을 이어간다. '들어올 수 있는지는 알아보도록 할게요. 이따가 연락처를 알려드릴 필요는 있겠네요' 라는 말을 덧붙인 하루는 후후 하고 웃음소리를 흘리며 또다시 손으로 입을 가린다.
강찬혁은 총을 이따구로 다루는 가디언이 어떻게 가디언이 된 건지 의심했다. 가디언이 되어서 대체복무역으로 판정되면서 훈련소에 일주일 간 입소한 적이 있었는데, 첫날에는 줄 서는 법을 배우고 이튿날에는 애국가를 부르는 법을 배웠으며(강찬혁이 애국가를 그때 처음 배웠다.) 사흘날부터는 총기교육을 했다. 그곳에서 배운 것은 다른 게 아니라 죽일 생각이 없는 사람에게는 총구를 들이대지 말라, 당장 죽일 무언가가 없으면 방아쇠에 손가락을 넣지 말라는 교육이었다.
그런데 눈 앞에 저 사람은, 당장 장전도 못 해, 총구를 막 갖다대, 아예 쏴죽이려 해. 진지하게 강찬혁은 선도부가 잡아서 '참교육'을 해야 할 대상이 자기가 아니라, 저 사람이 아닌가 고민했다. 강찬혁은 해봤자 매점 좀 가자고 담벼락을 타고넘거나 유리창 몇개를 깨먹을 뿐이지만 이 사람은 잘못하면 나중에 어디서 사람을 죽일지도 모를 일 아닌가. 안 되겠다. 아무래도 이 사람에게 이성을 기대하는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