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 낮과 밤의 중간기, 개와 늑대의 시간. 과정일 뿐이라 사람을 홀리기에 더 적합한 이 시간대의 정적은 바다에게 환청이라도 들려주나 보다. 인적이 드문 골목길이 하울링을 하다니, 게이트라도 열리지 않는 이상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똑똑히 들렸지만, 고개를 절래절래 저으며 들었던 사실을 부인했다. 그리고, 읽어왔던 책을 기준으로 생각해 보았을 때 이런 사건에 휘말리면 계속해서 이상한 사건들에 휘말리게...
- 아우우우우우~~~
" ! "
스스로도 만화같은, 소설같은 상황이라 여기며 바다는 소리의 근원지로 두 눈을 크게 뜨고 달려갔다. 인적이 드문 어두운 골목길. 카샤를 기준으로 조명은 역광.
" .....찾았다. "
침착한 목소리를 흘리며 작은 발걸음으로 다가가는 모습이, 카사에게는 어찌 보였을까. 파란 머리카락에, 인외적인 뿔에, 흉흉하게 빛나는 포식자의 눈동자를 지닌 존재가 꼼짝없이 갇힌 자신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으며 다가온다는 사실은.
기민한 귀에 누군가가 뛰어오는 소리가 포착된다! 크게 벌린 입으로 고개를 휙, 들어올린다. 형제처럼 생겼다면 귀가 쫑긋, 거리고 꼬리가 방방 미친듯이 흔들리는 것이 눈앞에 선하다. 자신을 구하러온 구세주가 오는 것이었다!! 구해준 다음에는 꼭! 자신의 몫의 고기도 나누어줄꺼라 다짐한다!
하지만 점점 가까워지는 그 인영.
"...히끅. "
방금의 환희 가득찬 표정이 거짓말이었듯이, 얼굴이 딱딱하게 굳고 동공이 크나 큰 지진을 일으킨다. 상상의 귀는 찹, 순식간에 내리깔려지고 꼬리는 순종의 표로 바닥에 붙어있을 모양새다. 역광. 아무도 없는 한산한 거리. 음산한 대사. 왜 인지 동물의 감에게 친근하게 느껴지는 분위기... 그리고 무엇보다 뿔! 바로 그 뿔!
지금까지 잡아먹은 사슴의 원혼이 자신을 찾아온 것이었다!!! 자신이 꼼짝 못하는 틈을 잡아서 찾아온 것이었다!!! 간신히 멎은 눈물이, 댐이라도 터진듯 더욱 더 우렁차게 콸콸 흘러내리기 시작한다. 도리도리도리, 고개를 흔들면서 울음 때문에 발음이 뭉게져도, 푹풍의 나뭇잎처럼 떨면서도 필살적으로 설득하려하는 수밖에 없었다!
"흐어엉 사슴씨 미안해요... 흑, 흐끕, 계속 잡아 먹어서 미안해요!! 하지만 너무 맛있었어요.... 잡아먹지 말아주세요오.....흐헝허허헣ㅇ헣ㅎ"
연바다는 눈 앞의 작은 존재가 자신의 모습을 인지하자마자 충격에 빠진 체 의미없는, 불온한 정신상태의 사람들이 의레 지껄이고는 하는 말을 내뱉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직감했다. 설마 내가 오는게 아닌가?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난입해야 성립하는 이벤트였나? S급의 영성은 바다의 감정을 쉽게 표정으로 내비치지 않았고, 아직 상대에게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비춰질지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눈은 크게 뜬 체였다. 그러니까, 파충류의 차감고 무감정한, 등골이 서늘해질법한 동공이 카사를 찬찬히 훑어보고 있다는 말이 되겠다.
" 누구를 기다리는거야? "
뚜벅이는 소리를 내며, 카사의 케이지에 다가가 눈높이를 맞춘 뒤에는 낮고 차가운 목소리가 카사에게 전해졌다. 케이지를 쓸어보니 차가운 강철이 오돌토돌하게 쓸리며 소름끼치는 소리가 작게 케이지 안을 우렁우렁하게 울렸다. "누구를 기다리는거야"라니 꽤 중의적이게 들리는 말이지 않는가. 바다가 의도한 것은 자신 외의 다른 사람, 그러니까 "주인공의 등장을 기다리는 것이냐"고 물어보는 것 이었지만 카사에게는 "널 구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어."라고 들릴 법 하기도 했다. 바다가 지금 소설 속 주인공이 된 것 같다는 고양감에 사로잡혀 있지만 않았어도 이런 발상과 발언은 하지도 않았을 텐데! 아,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회경험이 결여된 소녀에게 이런 빅 이벤트를 겪으며 상식적으로 행동하라고 말 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카사는. 카사는 공포에 질린 나머지 혼절한 위기에 처해있었다. 몸이 전체적으로 진동하는 중이었고, 목에선 무의식적으로 끼잉... 하는 신음이 나오는데다가 식은 땀은 폭포처럼 쏟아져 나오고, 눈물은 또 그보다 빨리 흘러내리는 중이었다. 얼굴은 방금 닦은 것이 무색하게 다시 한번 눈, 콧물 범벅이 되어버리 보기 흉해진지 오래이다. 카사가 왜 이리 공포에 질렸는가? 첫째! 갇혀있다! 반항할 공간도 얼마 없다! 둘째! 혼령이라는 것은 실체가 없다. 그러므로 반격도 못하고 잡아먹힐 것이 틀림없다!
점점 가까워지는 인영에 몸은 저절로 빳빳히 굳는다. 거기에 드러나는 바다의 동공. 마침 하나 둘 켜지는 가로등에 빛추어져 서늘하게 빛나는 눈. 사, 사, 사, 사슴의 혼령은 아닌가? 개미 눈물만한 안도감도 잠시. 자신은 알았다. 저런 세로 동공의 눈이 누구의 눈인지 알았다!
뱀! 그것도 - 슥, 눈이 바다의 눈을 마주치자 다시 울먹이는 소리가 새어나온다.- 170은 가뿐히 넘는, 자신보다 비교할수 없게 큰 뱀! 더욱 더 위험했다! 뱀은 '독'이란게 있어, 저번에 싸워 이겼을 때도 몇달 끙끙 앓았는데... 설마설마 그 혼령이 섞인 것은 아닌가!! 저번에 거기에 카사는 저 대사를 알았다!!! 할멈의 소설에서 누구를 딱 잡아 먹기 전의 대사였다!! (참고로 이 대사는 할멈이 침대밑에 숨어둔 '로맨스'소설이란 곳에서 나왔다. 카사는 당시 소설의 상황을 오해했다.)
"흐허헝... 나, 킁, 맛없어! 나 맛없어요오...."
굴러라, 머리! 여기서 쓰러지면 안된다. 카사는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올라가야한단 말이다! 덜덜 떠는 와중에도 작디작은 D의 영성이 빛을 발한다.
잡아 먹는다? 피식자? 다년간 읽어온 소설에 의하면 초반에 이렇게 작고 연약한 존재는 특정한 계기로 각성해 폭풍성장을 이루고 세계관 최강자가 되지 않던가! 그런 대상을 눈 앞에 두고 있자니 너무 가슴 떨리는 일이어서,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그 뿐인가, 인간이 그렇듯 바다도 흥미로운 일을 겪으면 동공이 커진다. 그러나 S급의 영성은 그녀 스스로가 흥분했음을 인지하고, 다분히 징크스적이지만, 철제 케이지에 올려둔 손가락을 툭 툭거리며 규칙적인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케이지 밖으로 들리는 소리는 굉장히 일상적인 축에 속했지만, 케이지 안쪽에서는 천둥이 옆에 떨어지는 듯이 크게 들렸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또, 바다는 혹여나 주인공에게 나쁜 인상을 심어주지 않도록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은체 위의 모든 행동을 진행했다.
탄성을 절로 자아내게 한 마법의 그 한 마디! 이에 바다는 손가락으로 철제 케이지를 툭툭거리기를 즉시 멈추었다. 뭐든지? 주인공에게 빚을 씌워둘 수 있다고? 그런 기회를 마다할 바보는 세상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 일도 하지 않은체 그저 우연히 만난 일 정도로 누군가의 기연을 빼앗는 것이 과연 올바른 일인가, 바다는 깊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고민의 내용을 그조 추측할 수 밖에 없는 카사에게 이 모습이 어떻게 보일지는 꽤 정확한 추리가 가능하다. 그렇게, 누군가에게는 짧고 또 누군가에게는 길 무거운 침묵의 시간이 기약없이 흘러가기 시작했다.
도도ㄷ도동공이. 동공이 커졌다. 이것은 사냥개시 할때의 짐승에 흔히 보이는 신호로 으아ㅏㅏㅏ
퉁. 퉁. 퉁.
작은 한정된 공간. 고요한 주위. 거기에 민감한 귀와 크나큰 공포. 작은 툭툭치는 소리는 카사의 심장만큼이나 쾅쾅 대는 크나큰 굉음이 되어 또 다른 공포감으로 찾아온다. 어째서. 자기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리 가지고 노는 가!! 약한게 죄다, 약한게 죄였다!!
다만 이런 절망적인 상황의 한 줄기의 빛. 먹이 사슬 윗층의 포식자가, 자신의 말에 흥미를 보였다! 살수있다! 박박, 두손으로 열심히 얼굴을 문질러도 새롭게 축축해져, 오히려 붉어진 얼굴을 더 빨가게 했다.
"뭐, 뭐든지..."
고개를 내리깔고, 힐끔, 옆으로 바다를 바라보아 흰자위가 보이게 한다. 어깨를 움츠리고 목에서 저절로 끙...끼잉... 하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개과의 순종과 복종의 표시. 이거라도 할테니 제발 살려주세요. 그러나. 그러나 그 노력이 무색하게도. 침묵은 점점 길어진다. 길어질수록 무거워지고 카사의 작디작은 목을 옥죄인다. 무기질한 푸른 뱀의 눈동자가 자신을 찬찬히 탐색하고 저울질하는 모양새. 살아서 이렇게 필사적인 기분을 자아내는 것이 있을까.
"나나나나는, 그, 사냥감! 다른 사냥감 가져 올수 있어요! 그, 그, 전 막, 쎄고, 빠르고... 다 할수 있어요오..."
눈을 꾸우우욱, 감고 결국 최후의 결정을 내린다. 탁, 철장을 손에 놓고.. 벌러덩, 뒤로 누워 배를 위로 보인다. 철장의 바닥은 차갑지만, 죽음은 더욱 더 차가울꺼다! 배를 보이는 것은 개과 뿐만 아니라 모든 동물의 순종 표시! 카사는 살아야 한다! 그래도 공포를 못 이기는지, 누워있어도 두 눈을 손으로 꼬옥 가린다. 자기한테 안 보이면 자신도 남에게 안 보일 것이라는 새끼동물의 본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