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 발각이라면 학을 떼는 장사치 때문에 사용법을 익혔지만 그뿐, 다른 상황이면 건들 이유가 손톱만치도 없다. 소년이 어이없는 양 반문한 것은 그 사실에 충실하게 착안했기 때문이다. 어지간히 단순한 반응은 감기 기운의 톡톡한 공로다. 번거로운 사고이며 언행을 절로 제한해버리니. 아, 아직껏 감기를 인정하지 않은 것도 어쩌면 그 때문일지도 모른다.
"네 폰 주라고, 씨발. 말을 한 번에 못 알아 처들어..."
먼저 손을 펼쳐 내민 것도 아마도 그 때문. 어질증 위시한 여러 감기 증상을 앓습니다, 하고 이마에서부터 적힌 듯한 소년은 슬슬 인내심도 다하는 것 같았다.
//맛저하고 왓다구 ;3~! 이안주도 맛저하기 바라!
'ㅁ')))))....!! 아안이 쉬라구 이안주..,, 쉬는 거시야,,, 이안주는 휴식을 취할 권리가 이따,,,, (냠냠쩝쩝(???
그러고 보니까 >그땐 한마디 할 셈이었다<ㅋㅋㅋㅋㅋㅋ이 부분 뻘하게 귀여운데 만약에 그대로 김케든 보호자(특: 업음) 만났다면 이아니 어떻게 말했으려나:3!! 소소하게 궁그매져따 >.0
공중전화를 왜 써야 하냐는 질문에 그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대뜸 근본을 찌를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탓이다. 그야, 보아하니 전화를 필요로 하는 것 같은데 마침 바로 저기 공중전화가 있으니까요...? 라는 대답으로는 절대로 만족하지 않을 것만 같은 소년의 기세는 그를 고민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공중전화는 왜 저기 있는 것이며, 나는 왜 여기 있는 것이고, 이 소년은 왜 내 소매를 놓아주질 않는 것인가. 우리 모두 따지고 보면 우주의 작은 부스러기... 이런. 열에 들뜬 머리는 툭하면 샛길로 빠지기 십상이었다.
"그러니까, 내 폰은 대체 왜..."
멍하니 질문하던 그는 일순 엄습하는 두통에 미간을 찡그렸다. 밖에 너무 오래 나와 있었나. 제 주인을 닮은 몸은 지금 이 순간에도 착실히 침대를 원하고 있었다. 이대로 집에 돌아가서 약을 먹은 뒤 이불에 둘러싸여 한숨 푹 잘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회사도, 길에서 만난 꼬맹이도, 식탁 위에서 눅눅해져 가는 햄버거도 전부 잊고 아무런 생각 않은 채.
"전화 필요하면 공중전화 쓰세요. 볼일 없으면 이만 갑니다."
결국 폰을 내놓으라는 소년의 요구를 다소 일방적으로 잘라먹은 그는 제 할 말만 끝내고 이만 가겠다는 듯한 입장을 취했다. 그대로 소년을 지나쳐 집으로 갈 수 있었더라면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아직 소매를 붙들린 상태였다. 그는 소년을 쳐다보며 잡힌 손목을 흔들어 보였다. 그대로 뿌리치지 않는 것으로 소년에 대한 마지막 예의를 지킨 것이었다, 는 건 다 헛소리였고, 단순히 그럴 기력조차 없어서였다.
/맛저했다니 다행이야:3 나도 맛저했지롱!
휴식.. 그게 뭐죠 먹는 건가요? (으아악!(잡아먹힘(디-엔드(?
만약 진짜로 케든이 보호자를 만났다면 그쪽애인지조카인지동생인지아무튼피보호자가나한테라이터셔틀시키고내맥주집어던지고우산뺏어쓰고햄버거를30달러어치나뜯어낸걸로도모자라서이제아픈사람까지들들볶고다니는건알고온건가요 <- 라고 말한다! 물론 마음 속으로만. 실제로는 저걸 다 말하자니 귀찮아서 별 말 안 하고 ( ._. ) 이 상태로 집 갈 것 같네:3
으음.. 사실 박이안이 태도는 저따구로 나오긴 했지만 케든이가 무슨 말이라도 하면 일단 순순히 반응은 할 거야:3 그러니까 케든이는 맘껏 박이안을 괴롭히면 된다>:3 (박이안: ??? 하지만 케든이 기침은 아니아니아니되오 우리 케든이 건강하자;ㅁ; (근엄(케든주 빠가사리 아니다 케든주 저세상 귀요미다!
끝내 소년의 인내심은 끄트머리에 도달했다, 이 소리가 되겠다. 물론 남자의 입장은 조금도 고려하지 않은 태도였다. 소년은 머리가 아팠고, 어지러울 대로 어지러웠고, 온몸은 오한이라는 이름의 벌레가 갉아먹는 듯했다. 어떻게든 망할 지폐 쪼가리를 얻어서 오늘 하루를 보전해야하는데 이 개좆같은 새끼가 협조를 하지 않는다. 마트 근처서 조우했을 때부터 이 지랄이다. 도움되는 것 하나 없고, 어제만 해도 햄버거는 흥정하고 우산은 내놓질 않고... "어쩌란 거야." 손목을 흔드는 행동을 흘깃 눈질한 소년이 신경질적으로 중얼거렸다. 그 뜻을 모를 리가 없었음에도. 몇 번 잔기침하고는 답답하단 양 남자를 노려보았다.
"싫으면 돈이라도 내놓든가."
번거로운 사고가 제한되면 십상 표현이 단순해지고 판단도 단순해진다. 결과적으로 튀어나온 것은 남자가 들었을 때 다소 뜬금없을지도 모르는 소리다. 소년은 거기까지는 변별이 뻗지 않는 눈치였다.
혹시나가 역시나가 되어가고 있었다. 처음에야 그도 그저 전화를 할 데가 있겠거니, 하고 어련히 생각했지만 소년의 태도는 아무리 봐도 수상 그 자체였다. 이대로 순순히 폰을 내줬다간 멀쩡한 상태로 돌려받는 건 어려울 것이라는 확신 아닌 확신이 점점 들었다.
"놔 달라니까요. 환자 괴롭히지 말고."
그는 다시 한 번, 이번에는 조금 더 힘을 줘서 손목을 흔들었다. 벌건 대낮에 마스크 낀 거 보면 감이 안 오나. 소년도 컨디션이 최상은 아니어 보였지만, 그 역시 엄연한 환자였다. 이래봬도 방금 전 병원에서 버젓이 감기 몸살 판정까지 받고 온 몸이란 말이다. 물론 자랑할 만한 거리냐고 묻는다면 절대로 아니었지만.
"이보세요, 저 돈 없다고요."
물론 거짓말이었다. 방금 병원비에 약값까지 내고 온 사람이 남은 돈이 없을 리가 만무했다. 그럼에도 입에 침도 안 바른 채 뻔뻔하게 거짓을 고한 이유는 두 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그 또한 순순히 돈을 뜯기긴 싫다는 오기가 치밀어 올랐기 때문이요, 다른 하나는 순전히 더 생각을 이어가기 귀찮아서였다. 두통은 지금 이 순간에도 착실히 몸집을 불려 가고 있었다.
/와랄랄라는 생사를 가리지 않는다구>:3 (???(미궁으로 빠져드는 와랄랄라의 정체.. (쓰담받음) 케든주가 더 귀엽다구! (뽀다다담
앞서도 누차 설여했지만, 소년은 참을성이 좋지 못하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곳곳의 창유는 괜히 있는 것이겠는가. 환자라는 말의 뜻을 뒤늦게 파악하고(마스크의 공로가 크다) 잠시 머뭇하는가 싶었지만 금세 '고소하다'로 생각을 고쳐먹고 남자를 아니꼽게 노려본다. 어느 순간부터 시작해 지금까지도 답답하게 구는 것에 대한 자업자득 정도로 여긴 것이다. 잘됐네.
"어제만 해도 50달러 말한 주제에 돈 없다 지랄하고 있네. 그냥 빨리 내놔. 없으면 집에라도 다녀오든가. 싫으면 폰 내놓고. 집 바로 근처에... 썅, 그냥 아무거나 빨리 내놔. 존나 개빡치게 해, 씨발."
신경질적으로 말하다가 저 혼자 말이 꼬이고, 저 혼자 성을 내다가 숨이라도 잘못 쉬었는지 고개 숙이고 콜록거리며 기침한다. 감기 기운 있다고 성질이 다른 곳 가지는 않는지 기침 사이에 씨발 따위의 욕설이 들린 듯도 싶었다.
//시간 났다:3! 슥삭 답레 내려놓고 가 :>!
>>595 으앗 그렇게 상처 받으면 맘이 약해진다구... 이안주 쭈구리하지 말라(뽀다듬뽀다듬(병주고 약주고 응애하는 이안주.. 최고 기여워....(동영상 촬영(????
가감 없는 날것 그대로의 욕설에 그는 눈썹을 찌푸렸다. 항상 일관되게 필터링이라고는 눈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는 소년이었다. 평소대로였다면 그저 무시하고 말거나, 혹은 돈 몇 푼 쥐어주고 현장을 뜨면 그만이었겠지만, 지금은 어쩐 일인지 그러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열이 오른 머리가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않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혹은 단순히, 지친 걸지도.
"이보세요, 왜 멀쩡히 길 가던 사람 붙잡고 시빕니까? 그렇게 할 일이 없어요?"
후회할지도 모른다. 아니, 아마 높은 확률로 후회할 것이다. 지금 그는 머리를 거치지 않은 채 말하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도 이성의 작은 한 부분은 아직 덜 자란, 한참 어린 소년에게 대체 이게 뭐 하는 짓이냐고 거센 항의 중이었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저쪽도 딱히 거리낄 것 없어 보이는데, 그렇다면 나야말로 예의를 지킬 이유가 뭐가 있지?
의외로, 소년은 별다른 불응 없이 소매를 놓았다. 정확히는 불쾌감을 - 아마도 처음으로 - 한껏 담아 말하는 남자를 노려보다가 이윽고 거의 밀쳐버리듯 놓은 것이지만. 기본적인 체격 차 때문에 오히려 제가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났지만 눈길은 하릴없이 남자를 똑바로 보고 있었다. 원망하는 눈빛으로도 보였고, 허망한 눈빛으로도 보였다. 남자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보며 가책하는 눈빛 같기도 하였다. 너는 늘 이런 식이지. 무언가 말하려는 것처럼 입을 몇 번 열었다가 닫던 소년은, 결국 아무 말도 않고는 후드를 잡아당겨 남자를 외면했다. 감기 기운에 한껏 둔해진 움직임이 발을 돌리고, 몸을 돌렸다. 남자가 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면 소년은 그대로 자리를 떠났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