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에게 비 오는 날은 반갑다. 드세게 내릴수록 기껍다. 물에 정신 쏟는 사람이 불어나고 더러는 고장난 우산과 씨름한다. 정신이 분산되고 돈이 사라진들 알지 못한다. 덕분에 흠뻑 젖은 손으로 돈을 세느라 여념이 없던 시절이 있었다.
근래는 다르다. 한 살 두 살 몸이 자라면 한 층 두 층 염세적 시각이 두터워진다. 그와 동시에 삶의 의지를 잃는다.
'뭐 때문에 이렇게까지 해야하지?'
아마도 이 의문이 발단이었다. 어차피 일주일도 가지 못할 돈. 하루이틀쯤 굶어도 상관 없거늘 비 맞으며 훔칠 까닭이 무엇인지 고뇌했다. 없었다. 그러면 반면이 떠오른다. 이를테면 비 오는 날 도둑질의 단점: 젖은 옷의 처사가 귀찮다, 감기 걸릴 소지가 있다 등. 좋다. 다른 것은 없나? 나름대로는 논리적이라 여길지 모르지만, 이런 생각을 할 지경이면 슬슬 핑계만 떠오르는 것이 당연지사다. 그것도 구차한 것들로. 생각해보니 비 올 때의 습기가 싫다, 물기 가득한 발소리가 거슬린다, 그냥 빗소리가 짜증난다, 듣고 있으면 미칠 것 같다 등......
그리하여 제풀에 의욕을 꺾었다. 알아서 도둑질을 관두는 - 정확히는 일부분이지만 여하간 - 도둑의 이야기는 희극이라면 가히 희극이라 부를 수 있었다.
*
온종일 잠만 잤더니 머리가 아프다. 침대도 아니고 아무 허름한 건물 1층, 구석에 기대 잤더니 목이 떨어질 것 같다. 그러게 외상은 죽어도 사절이라고 지랄을 떨 것이 다 뭐람?
"전에는 받았으면서, 씨발."
마음만큼은 이미 그 여관 주인 면상에 침을 여러 번 뱉고도 남았다. 소년은 무의식적으로 손톱을 물며 앞으로는 돈을 미리 쟁여둬야 하나 고민했다.
'......그냥 집어 치워. 씨발, 날씨를 미리 알 수가 있어야지.'
허무할 만큼 짧은 고민을 마친 소년은 이제 바깥으로 의식을 옮겼다. 짜증나는 빗소리는 여전하다. 여름도 아닌데 도대체 언제 그칠 작정인지 모르겠다. (간간이 그쳤다는 사실을 소년이 알 턱이 없다. 잤다가 깼다가 반복한 것이 이틀 가까이 된다는 사실도.) 더 잘 마음은 없어 입구로 나가 바깥을 보았다. 빈약한 가로등에 비친 빗발은 하나하나 굵었다. 옅은 잠기, 짙은 두통에서 느릿느릿 벗어남에 따라 마른 계단을 밟고 내려간 소년은 검고 휑한 길 저편을 보았다. 어느 행인이 있었다. 행인은 우산을 쓰고 목적지로 속히 향하는 성싶었다. 가까워지는 인형은 어쩐지 낯이 익었다. 소년은 머지않아 누구인지 알았다.
소년은 계단 중도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한 뼘 앞에 축축한 면을 두고 말없이 남자를 바라보았다. 말하지 않아도 못마땅한 빛이 낯에 여실했다. 남자가 가까워지자, 어찌된 심사인지 소년은 고개를 움츠리더니 이내 다른 곳을 보는 시늉을 했다. 후드를 잡는 모습이 얼굴 또는 머리를 가리려는 동작으로도 보였다. 그런데 한편으론 남자를 힐금 노려보니, 제삼자로서는 무엇하는 짓인가 싶을지도 모르고.
//으 아 악 !!!!1 일이 어떻게 맞아 떨어져서 오늘은 여유를 낼 수 있게 됐어;ㅁ; 드디어.. 드디어 선레랑 함께 갱신! 아직 해당 일이 끝난 건 아니라서 완전히 풀리려면 다음 주말까진 버텨야할 듯싶네...:< '목적지로 속히 향하는 성싶었다' <-이건 첫 일상 이안이 레스를 참고해서 작성한 것이지만 혹시 이안이 설정과 충돌하면 그냥 김케든이 그렇게 느꼈을 뿐이다~~ 로 처리하면 되니까 부디 얽매임 없이 써주길 바라구.. 잇는 게 힘들면 말해주길 바라구.. 응. 아무튼 기다려줘서 미안하고 고마워 😢
오늘은 어떻게 금방 끝났지만 낼부터는 다시 빡세게 들어갈 예정이라구.. 그니까 오늘 충분히 쉬어뒀다 갈 거야 (´Д`) 암튼 이안주 안녕~~~!!(껴안) 잇는 건 여유롭게 해주구! 이아니야말로 세계최강귀요미라구. 김케든은 그저 한마리의 지■냥(...)일 뿐...(*°▽°*)
ㅋ ㅋ ㅋㅋ ㅋㅋㅋㅋㅋㅋ으아악 그립감이라니 젤나가 맙소사 이아니는 안는 것이야말로 제격인 거예요!! 자캐 투척을 멈춰주세요(?) 김케든은...아낄 것이 아니라 부려먹어야 해요...! 부려먹는 맛이 얼마나 좋은데! 도둑질이나 하는 녀석 일하는 법도 좀 가르치고! 사회성도 좀 길러주고!(??
이안 그레이는 비 오는 날을 싫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좋아하는 편에 속했다. 창문을 살짝 열어 두면 빗소리와 함께 비에 젖은 흙과 아스팔트 냄새가 그 사이로 새어 들어온다. 평소에 집에 있을 때는 배경음악 대용으로 TV를 켜 놓지만, 비 오는 날은 그마저도 필요 없었다. 조용히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소파에 앉아 나른한 시간을 보내는 건 그의 몇 안되는 취미 중 하나였다. 비록 취미라고 부를 만한 것도 뭣도 아니었지만.
하지만 비를 뚫고 출근해야 한다면 상황은 좀 달라진다. 출근길의 지하철은 축축한 우산과 신발이 말 그대로 지뢰밭을 이룬다. 공기는 눅눅하고, 바짓단과 외투 자락에는 흙탕물이 튄다. 퇴근길이라고 별 다를 건 없었다. 일하는 내내 창 밖을 기웃거리며 비가 그치기를 간절히 빌었지만, 간간히 빗발이 잦아드는 걸 제외하고는 그야말로 습기 가득한 하루였다.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인 건 퇴근 시간이 지난 지하철이 한산했다는 점이었다. 원래대로였다면 사람들로 가득 찬 지옥을 통과해야 했겠건만, 오늘은 퇴근 후 근처에서 동료들과 저녁을 먹은 덕분이었다. 식사를 마친 뒤 술까지 한 잔 하자 시간은 어느새 이렇게 되어 있었다. 참고로 말해 두겠는데, 그의 의사가 충실하게 반영된 결정은 아니었다.
아침이 되면 지하철을 타고 출근해, 하루 종일 일을 하다, 퇴근 후 동료들과 식사하고, 그대로 다시 지하철을 타고 돌아온다. 현대 사회 직장인의 전형적인 일상으로 교과서에 제시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생활 패턴이었다. 요컨대, 눈에 띄는 부분 없이 평범하다는 소리였다. 실제로 지금 그의 인생은 모난 부분 하나 없었다. 평평한 길을 골라 걷고, 또... 모난 부분은 스스로 깎아내고. 그의 선택의 결과였다.
하지만 그 안에서 단 한 가지 평범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면, 그가 한 십대 소매치기와 안면을 텄다는 점이리라. 물론 두 사람의 관계는 빈말로도 친분이 있다고는 할 수 없었다. 잘 해 봤자 모르는 사람 이상 아는 사람 미만. 이름도, 어디서 뭘 하고 사는지도 모르는 사이. 길에서 마주치면 얼굴은 알아보겠지만―이마저도 그로서는 장족의 발전이었다―마주하지 않고 있을 때도 생각하게 되는 사람은 아닌. 적어도 그에게 묻는다면, 소년과의 관계를 이와 같이 설명하리라.
이 모든 사족은, 결국 그가 저편에 떡하니 자리잡고 있는 소년의 존재를 아직 알아채지 못했음을 설명하기 위함이다. 소년이 다가온다면 알아볼지도 모르나, 애석하게도 그는 길 반대쪽에 있는 행인의 정체까지 신경쓸 정도의 사람이 아니었다. 지금 그가 신경쓰는 것은 오직 한 가지, 세탁한 지 얼마 안 된 바지 끝이 젖어 버렸다는 사실 뿐이었다.
/으아악 뭘 했다고 벌써 이 시간인지..ㅇㅁㅇ
>>298 자캐 투척은.. 한 번 중독되면 쉽게 벗어날 수 없는 대단히 위험한 것으로..(?? ㅇㅁㅇ일하는 거 가르쳐 주고 사회성 길러 주는 건 전부 부둥부둥해주는 과정이잖아! 역시 케든이=뽀담뽀담의 공식은 성립하는 것이었어+ㅁ+ (??
소매치기 일을 그저 해먹은 것이 아니다. 소년은 남자의 시선과 주의가 어느 곳을 향하는지 쉽사리 알아챘다. 그리고 속이 얕게 뒤집어짐을 느꼈다. 물론 그가 망상증 환자는 아니다. 즉, 고작 두 번 본 것으로 시야의 사각에 든 애송이를 신경쓸 사람은 없음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속이 울렁이는 것은 어쩐지 불가피한 사고와도 같은 탓에 소년이 원한다고 어찌 처사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소년의 인내심은 좋은 편이 아니다. 그만큼 깊이 생각하는 법도 알지 못한다. 제가 왜 그러는지도 모른 채 소년은 걸음을 내딛었다. 재차 무시 당해 기분이 더러워서라고 막연하게 한 구석에서 여길 뿐이었다.
그 순간만큼은 퍼붓는 비도 뒷전이었다. 물을 신발에 튀기며 다짜고짜로 걸어간 소년이 우산대를 우악스레 움켜쥐었을 때는 이미 후드티의 모자며 어깨가 젖어들어갈 무렵이었다. 충동적인 소년은 신경쓰지 않는 듯했다. 뭐, 내심으론 이게 무슨 웃기지도 않은 짓이냐며 스스로 욕설을 퍼붓고 있을지는 몰라도 남자가 신경쓸 일은 아니리라. 그의 입장에선 여지껏 귀찮게 한 예의 소년이 이번에는 뒤에서 튀어나와 느닷없이 우산을 붙잡은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테니까.
"그, ..."
소년은 뒤늦게 현실을 파악한 듯싶었다. 이리 되면 낮의 만남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다르게 말해 같은 실수를 반복한 것이고. 인내심 없이 성급하게 움직이는 성정은 늘 소년을 함정에 빠뜨리곤 했다. 기분이 팍 상하는 것은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미간을 좁히며 분한 듯이 인상을 구긴 소년은 어금니를 앙다물며 남자의 시선을 피해 땅을 내려다보았다. 우산대의 차가운 감촉이 선명했다. 우산 밑에 들어와도 어설프게 들어온 탓에 맞을 비는 거지반 맞았다.
"......내놔, 이거."
소년이 겨우 말을 이었다. 기십 초의 묵언 이후였다. 목소리는 마치 고집불통의 것으로, 이전의 행적과 종합해 생각하면 어떤 식으로 거절해도 막무가내식으로 나올 성싶었다. 요컨대, 내놓으라는 말은 망신을 면키 위한 같잖은 구실에 불과했다. 아무리 막 살기로서 씨알만큼의 자존심은 남아있어 비웃음거리로 전락하기 싫다는 일종의 의사 표출이렷다.
답레는 부디 느긋하게 줘~~ ;3 솜사탕으로 보듬보듬.. 솜사탕을 머리에 문질러주면 되는 건가🤔(?)
맥주 삥뜯는ㅋㅋㅋㅋㅋㅋㅋ꼬맹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팩튼데? 과연 소밍아웃 때 이아니의 반응은 어떨지..(두근세근) 약-간 티미로 김케든 머릿속 이아니는 부족한 거 없이 지내는 짜증나는 호구(...) 정도로 잡혀있다는 거시야 :3c 물론... 얘가 이안이를 마음껏 쥐락펴락() 못하는 시점에서 이미 이 '호구'도 희망사항에 가까운 거지만🙃
암튼 잠시 들러서 레스 남기고 가:3 일의 진척을 보니 주말엔 나름 쉴 수 있을 듯하네! 야호 즐거운 불금~o(*°▽°*)o
갑자기 다짜고짜 우산 밑으로 기어들어온 소년에 그는 드물게도 놀랐다. 하기사, 아무리 세상 만사에 무심한 사람이라도 지금 이 상황에서 초연하기는 힘들겠다만. 원래도 축축하던 신발이 소년이 튀긴 물에 맞아 더 젖어들어갔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는 신발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대체 이 무슨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란 말인가.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마른 하늘은 아니었지만.
"...아."
또다시 작게 나온 탄성. 그래도 지난번보다는 빠르게 알아 보았으니, 이 정도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처음에는 라이터, 그 다음은 장바구니. 그럼 이번에는 뭘 달라고 하려나. 속으로 떠올린 질문에 대한 답은, 예상보다 빠르게 얻을 수 있었다.
"우산을요?"
그렇게 말하며 우산을 흔들어 보이려고 했지만, 소년이 꽉 잡고 있던 탓에 우산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다짜고짜 동행이 생긴 건 그도 매한가지였기에, 어깨가 우산 밖으로 불쑥 비어져 나가 있었다. 짙은 색 코트는 물에 젖어도 크게 티가 나지는 않았지만, 어깨가 점점 싸늘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건 곤란한데요."
아직 집까지는 걸어갈 길이 많이 남았다. 바로 앞이라면 몰라도, 빗속에서 그 거리를 맨몸으로 걸어간다는 건 나 감기에 걸리게 해주십사 비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감기는 안 될 말이었다. 당장 내일도 회사에 나가야 하는 몸인데.
하, 씨발. 집 앞까지 씌워다 줄 수는 있다는 말에 소년은 욕설 섞어 헛웃음을 지었다. 이유는 딱히 설여를 요하지 않으리라. 남자는 알 턱 없겠지만. (애초에 소년이 남자의 말을 잘못 파악한 탓이다. 그런데 이를 소년 역시 알 턱이 없으니 문제지.) 소년은 이를 갈며 남자에게 못마땅한 시선을 던졌다.
"이 등신 같은 새끼가 달라 하면 그냥 처주면 되지 지랄이야. 사람 말 못 알아듣냐? 설마 귀까지 장식이야?"
그렇게 말하며 남자를 위협하다시피 우산대를 몇 번 강하게 흔들려 했다. 물론 유의미한 위협은 되지 못할 뿐더러, 우산마저 남자가 그랬을 때와 같이 타인의 손을 지지대 삼아 둔하게 덜컹거릴 따름이었다. 이래서야 소년의 기분이 풀릴 리가 없다. 되려 답답함만 배가된다. 소년은 발이라도 구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내놓으라면 그냥 내놔, 씨발."
이를 악물며 가까스로 침정을 가장한 소년은 남자를 보지 않고 말했다. (가장은 반쯤 실패한 듯하다.) 이쯤 되면 다시금 아집이다. 빵은 없냐 투덜거리고 맥주를 집어던진 것 이상의 폐를 자랑하는 고집. 이 모든 짓이 겨우 감정에 비롯되었다는 사실이 못내 우스울 지경이다.
//으 아 아 아 아ㅏ아 !!!! 자유로워져서 리갱이야!! 답레도 있지롱~! ;3 으아아 너무 기쁘다 이제 밤까지 귤이나 까먹고 있을 거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니 그 집이 이아니 집이었어 ㄴㅇㄱ 그렇게 김케든은 놀라운 오해를 성취해내고... 끝내 논리적인 반박을 포기하기에 이르는데....(??
그나저나 김케든 캐해석이 정확하다니...! 'ㅁ') 김케든 소매치기 때려치고 캐해 전문가나 해야할 듯(아무말) 쥐락펴락은... 케든이가 지금까지 이안이 부려먹을() 때 큰 흡족감을 느낀 적이 없다는 점에서 완전한 쥐락펴락은 아닌 듯하고...? 🤔🙃 지금도 혼자 답답해하고 있으니 아무래도 호구는 희망사항이 맞는 듯하다는 거시야 ;3 오히려 빈틈 많은 케든이야말로 호구에 더 어울리는 상 아닐까(킹리적갓심)(?) 아는 것도 없으니 쉽게 속을 듯도 하고! ;>
예전부터 생각한 바지만, 입이 참 직설적인 소년이었다. 적어도 살면서 화를 참고 쌓아두다 죽을 일은 없어 보였다. 오히려 너무 기운이 넘쳐나서 문제랄까.
"안 된다니까요."
두 사람 중 누구도 우산을 차지할 수 없는, 이른바 팽팽한 대치 상황이었다. 애초에 그의 소유물인 우산을 두고 어째서 이렇게까지 사투를 벌여야 하는지는―표현이 다소 과장된 감이 없지 않으나, 어찌 되었건 그에게는 사투나 다름없었다. 어깨와 발이 축축해진 상태라면 더더욱―알 수 없었으나, 단 한 가지 확실한 건 그도 소년도 물러설 생각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었다.
바로 그 때, 차 한 대가 쌩하니 옆을 지나쳐 가면서 지면에 고인 물웅덩이를 바퀴로 밟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 여파는 고스란히 두 사람에게 향했다. 전적으로 차도에 붙어 실랑이를 벌이고 있던 그와 소년의 탓이었다. 이제 몸에서 젖은 부분이 비단 어깨와 발뿐만이 아니게 된 그는 곤란하다는 기색으로 혀를 찼다. 이게 대체 웬 수난이람.
"그러길래 씌워준달 때 응했으면 오죽 좋아요."
타박하듯 말하며 다시 한 번 우산을 잡아당겼다. 사실, 꾸준히 체력을 길러 왔는지 여부와는 상관 없이 그는 성인이고 소년은 아직 어렸다. 작정하고 힘으로 몰아붙이면 뺏지 못할 것도 없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소년을 빗속으로 내몰지 않았다. 다만, 이제라도 같이 쓰고 가죠, 따위의 말을 할 뿐이었다.
/케든주 자유로운 몸이 된 걸 축하해!! 느긋하고 즐거운 불금 보내자구>:3
흡족감을 느낀 적이 없다니.. 그렇다면 이번에야말로 케든이를 백 프로 만족시켜서 박이안을 진정한 호구로 거듭나게 해야..! (? 케든이가 호구라니ㅋㅋㅋㅋ 그렇게 되지 않게 박이안이 옆에서 잘 잡아줘야 하는데.. 박이안이..(미간짚
비 올 때 발생할 수 있는 짜증나는 일을 열거해보자. 우산을 들지 않아 옷과 손이 젖는 것. 웅덩이를 잘못 밟아 물이 튀는 것. 신발에 스며드는 것. 다음날 감기에 걸리곤 하는 것... 이건 '비 올 때'가 아니니 제쳐두고. 몸이 떨리는 것. 손발이 비에 미끌리는 것. 등등. 대부분은 크게 상관없다. 머리가 잘못된 것도 아니고 그런 일은 당연한바 감수하기로 한 채 빗속에 나오기 때문이다. 자신이 자초한 일이라고 생각하면 한결 짜증이 '덜'하기도 하다. 하지만 차가 밟은 물을 고스란히 전신에 뒤집어 쓰는 일은 어떻게 해도 용납하기가 힘든데, 그것은 자신이 자초한 일이라고 결코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다. 씨발, 사람 멀쩡하게 봐놓고 굳이 거길 지나칠 것이 뭐야?
"이런 개씨발...!"
이미 젖을 대로 다 젖었지만 타인 때문에 다시금 젖었다고 생각하면 당장 찾아가 욕을 퍼붓고 싶은 역정이 치솟는다. 적어도 화를 참다가 죽을 일은 없어 보인다는 남자의 생각은 따지면 절반만 정답인데, 화가 나면 참지 않고 욕을 하든 물건을 던지든 쏟아내기 때문에 절반이 맞는 추측이고, 아무리 쏟아내도 시원하게 기분이 풀리는 일이 없기 때문에 절반이 오답인 것이다. 쌍욕을 뇌까리며 빈손을 아무렇게나 턴 소년은 타박하듯한 말에 남자를 어처구니없다는 듯 노려보았다.
"너 때문에 이렇게 된 거잖아-"
남자가 강제로 빗속으로 내몰지 않는 호의 - 설령 의도한 것은 아니라 해도 결과적으로는 호의이리라 - 를 눈치도 못 채는 성싶었다. 소년은 한마디도 지지 않으려는 양 막무가내로 남자에게 잘못을 뒤집어 씌우다가는, 이제라도 같이 쓰고 가자는 말에 문득 말문이 막힌 모습을 보였다. 반박할 말을 못 찾아 절절매기보다는 잠시 고민에 잠긴 모습에 가까웠다. 어떻게 해야 완전히 우산을 뺏을 수 있나 고민하는 것일지 몰랐다, 어떻게 해야 남자를 한바탕 골탕 먹일 수 있나 고민하는 것일지도 몰랐고, 어떻게 해야 자신이 관계에서 우위에 설 수 있나 고민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시선을 이곳저곳 옮기며 생각을 거듭하던 소년은 결국은 머지않아 조금 주저하며 우산대를 놓았다. 차가운 감촉만 남은 손이 허탈하게 늘어져 주먹을 쥐었다. 그러고는 아무 말도 않는 소년은 어쩐지 수응한 것으로 보였다. 무슨 생각인지는 남자에게 알 수 없을 일이나, 모로 비낀 시선이 구겨진 것으로 보아 스스로도 이 선택이 크게 탐탁지는 않은 듯싶었다.
아니, 그러니까 진작에 받아들이면 됐잖아. 아무리 봐도 이건 다짜고짜 남의 우산을 갈취하려 든 소년의 책임 또한 있었다. 그런 소년의 주장은 단박에 납득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조목조목 반박할 마음은 들지 않았다. 어쩌면 이대로는 대화가 빙빙 돌 뿐이라는 사실을 무의식적으로 깨달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뭘 해도 원점으로 돌아오고야 마는 대화만큼 피곤한 게 또 없는 법이었다.
빼앗으려는 자와 빼앗기지 않으려는 자의 사투는 그러나, 의외로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방금 전까지의 기세는 어쩌고 맥없이 떨어져 나가는 손을 내려다보며, 그는 이걸 승리라고 쳐야 하는지 잠시 고민에 빠졌다. 나잇살은 먹을 대로 먹어 놓고 십 대랑 길거리에서 유치하게 실랑이를 벌이다 물벼락까지 맞은 게 좀 머쓱하기도 했고. 어찌 되었건, 아무래도 소년은 일시적으로나마 협조하기로 마음먹은 듯했다. 이왕 같이 쓰는 거 두 사람 모두의 어깨를 사수하기 위해 소년의 옆으로 가까이 붙어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우산은 어디까지나 1인용이었으니 이 경우에는 소년의 체구가 작은 편이라는 게 다행이라고 해야겠다.
"궁금한 게 있는데요."
그렇게 얼마간 걸음을 옮기던 그는 문득 말문을 열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였다.
"왜 하필 납니까?"
그 말인즉슨, 길거리에 우산을 쓰고 다니는 행인은 차고 넘치는데 어째서 굳이 자신을 콕 집어 노렸냐는 뜻이었다. 두 번에 걸친 만남 때문일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글쎄, 우리가 그럴 만한 사이였나. 애초에 만남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만큼 엉망진창인 마주침 아니었나. 그보다는 조우라는 말이 차라리 적절해 보였다.
남자의 의도가 무엇이거나, 갑자기 가까이 붙는 움직임에 소년은 필요 이상으로 주춤거리며 얼굴에 짙은 난색을 표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질색에 가까운 반응이었다. 남자끼리(나이 차는 차치물론하고) 한 우산 아래 붙는 사실에 대한 거부감 같기도 했고, 그저 타인과 신체적인 접촉을 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 같기도 했다. 걷는 내내 소년은 인상을 찌푸렸으며, 간간이는 은근히 남자에게서 몇 인치 떨어지려고 했음이다. 아, 입안으로 욕도 뇌까렸나.
감정에서 비롯해 남자에게 시비를 걸고, 그 다음으론 단순히 체면을 살리기 위해 우산 내놓으라 실랑이를 시작하고 종국에는 나란히 걷는 처지까지 자초하는 일은 그다지, 아니 절대로 유쾌한 일이 되지 못했다. 사실 우산 따위 필요할 것은 손톱만치도 없었다. 향할 목적지도 없고 젖기는 온통 젖었다. 그러니까 무턱대로 충동적으로 굴면 안 될 일이었는데. 소년은 이제 이 상황은 어떻게 모면할까 하고 돌아가지도 않는 골머리를 앓을 따름이었다.
"......그냥, 씨발."
도중에 꽉 물고 있던 손톱을 놓으며 신경질적인 어조로 대답했다. 쪽팔려서 우산을 달라 했음인데 그것을 어떻게 대놓고 말하는가? 하지만 그냥이라고만 대답한 말도 영 마뜩지 않았는지, 소년은 조금 고민하는가 싶더니 머지않아 부언했다.
"그냥 네가 존나 빡치게 하니까. 그것도 눈치 못 채냐?"
그다지 영양가 있는 부언은 아니었지만서도. 심지어 논리력도 어디론가 사라진 대답 되시겠다.
//얍 리갱! 이안주도 맛저했길 바란다구 :3~! 그으리고...ㅎ..ㅎ... 으아악 너무 비행기 태워주는 것도 무슨무슨법에 저촉된다구~~~ 으악 케이든주 살려(곹옹
...라고 올렸었는데 알고 보니 테스트인 걸 알았을 때의 심정을 서술하시오(5점). 으ㅏ 아ㅏ아 시간차 답레 등장이야....ㅇ<-<
그러다가 쫄딱 젖겠다,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다가 도로 내려갔다. 이유로는 우선 소년이 그러겠다는데 그가 구태여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는 것이고, 보다 근본적으로는 이미 젖고 말고 할 것도 없다는 데 있었다. 무엇보다, 서로 챙겨줄 만큼 살가운 사이도 아니었고 말이다. 지금의 이 상황은 일종의 휴전에 가까운 상태였다. 이 뒤에 만약 다시 마주치게 된다면 소년은 어김없이 무언가를 갈취하려 들 것이라고, 그는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흠."
소년의 대답을 듣고도 그는 의미 불명의 소리를 한 번 내뱉을 뿐이었다. 그 뒤로 그는 계속해서 침묵을 유지했다. 흠뻑 젖어 옷자락에서 물을 뚝뚝 흘리면서도 같이 우산을 쓰고 가는 두 사람을 이상하다는 듯이 바라보는 시선이 간혹 있었지만, 그는 알아채지 못한 듯했다. 묘하게 생각에 잠긴 표정의 그가 입을 연 것은, 신호를 기다리며 멈췄을 때였다.
"내가 기분 나쁘게 생겼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는 그것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누군가를 싫어한다는 것도 결국은 그 당사자를 안다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 법이다. 그는 소년을 잘 안다고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소년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렇다면 거의 타인에 가까운 사람을 저렇게 싫어하는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 결국 얼굴이 기분 나쁘게 생겼다는 결론밖에 나오지 않았다. 살면서 그닥 자주 들어본 말은 아닌데.
무엇을 그렇게 생각하는가 했더니, 고작 저딴 개소리를 하기 위해 그동안 시간을 질질 끌었던 모양이다. 소년은 결국 어처구니가 없어져 눈동자를 위로 굴리며 입에서 나오는 대로 대응했다. 그 말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상당성과는 별개로 슬슬 본격적인 현실자각타임이 오려고 한다. 무슨 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뭣하러 저딴 등신과 한 우산씩이나 쓰고 다니고 지랄인 거지...... 같은 것. 자신이 모든 일을 자초했다는 사실은 현재 고려조차 않는 듯했다. 책임을 뒤집어 씌우기 딱 알맞은 상대가 곁에 있었으니만큼.
비 오는 날 큰도로는 방금 실랑이 하던 곳보다는 분주한 성싶었다. 흠뻑 젖은 두 사람을 이상하게 보는 사람도 있었고, 도로 위를 급히 달리는 승용차 따위도 있었다. 횡단보도 너머에는 몇몇 점포들이 늦은 시간까지 불을 켜놓고 끈질기게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민감하게 그 모든 것을 눈길로 훑던 소년은 새삼스럽게도 허기를 느끼며 말라 비틀어질 것 같은 입맛을 다셨다. 이틀이 가까워지도록 아무것도 먹지 않았으니 당연하고도 남는 일이었다. 둔감하게도 이제야 그 사실에 집중하게 되었을 뿐. 공복에 익숙해지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될 수 없는 것 같다. 원인 면에서든, 결과 면에서든.
"...야, 나 먹을 거나 사줘."
득될 것이 없으면 만들면 그만이겠다. 어차피 사달라는 것 다 사준 호구인데 이제 와서 거부하겠는가? 근거 없는 자신감과 함께, 신호가 바뀌기 앞서 뻔뻔하게 요구 사항을 들이민 소년은 못된 생각을 먹은 양 비딱하게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목도 존나 말라."
...정리하건대, 소년의 갈취 주기는 남자의 예상보다도 훨씬 짧은 셈이었다.
//사람은 할 말이 없으면 욕을 한다. -볼테르 이 명언... 긴 천 위에 예쁘게 적어서 김케든 이마에 둘러줘야 한다(진지
그러므로(?) 김케든 말은 믿을 구석이 완벽한 0프로라는 거시다 >:3!! Q.E.D.!!
그걸로 끝이었다. 정확히 어디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생겼는데요, 하는 질문도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화를 냈냐고 한다면 그것도 또 아니었다. 직설적인 표현을 그대로 인용하자면, 얼굴이 존나 씹창났다는 소년의 말은 그에게 그저 하나의 사실로 받아들여졌을 뿐이었다. 원래 외모에 딱히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이기도 했고, 고작 길 가다 만난 소년 하나의 말에 연연하기에 그는 정신적으로 그리 여유가 넘치는 사람이 아니었다. 들은 건 듣고 흘릴 건 흘리면 그만이었다. 물론 소년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다만.
"햄버거면 됩니까?"
소년의 당당한 요구에도 그는 그저 한숨을 한 번 쉰 뒤 근처에 있는 패스트푸드점으로 방향을 틀 뿐이었다. 그러니 소년의 예상은 정확하게 맞아떨어진 셈이었다. 애초에 이 시간에 문을 연 식당의 가짓수는 한정적이었다. 대충 세트 하나 사 주면 되겠지. 그런 생각으로 그는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갔다. 식사 시간은 벌써 한참 전에 지났음에도 안에는 아직 사람이 제법 있었다. 원래 패스트푸드점이란 건 항상 비는 적이 없는 법이었다.
"골라요."
그렇게 말하고 뒤로 물러서려던 그는 문득 멈칫하더니 덧붙였다.
"50달러 안으로."
금액을 미리 정해두지 않으면 소년이 메뉴판에 존재하는 음식이란 음식은 죄다 싹쓸이할지도 모른다는 강한 예감이 들어서였다.
/ㅋㅋㅋㅋㅋㅋㅋ저런 명언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거야ㅋㅋㅋㅋㅋㅋ 안니요 쓰앵님 전혀 증명이 되지 않았읍니다! 케든이 말이라면 메주로 된장을 쑨대도 믿어야 한다구요>:3 까짓 메주로 쑤면 될 거 아입니까 된장쯤이야!! (????
정해주는 품목에 좋다 싫다 떠들지는 않기로 했다. 다른 것을 원한다며 성가시게 굴 수도 있었지만, 정말 호구같이 받아들이는 남자의 태도에 빗방울만한 승리감을 느낀 탓이었다. 그래 이번은 봐주지, 하는 승자의 여유였다(제 딴에는). 한편 남자의 호구력은 어디까지 뻗어나갈지 조금 궁금하기는 했다.
"50(fifty)이라고?"
소년은 순간 15(fifteen)를 제가 잘못 들었는지, 내지는 남자가 잘못 말했는지 의심했다. 그래서 -ty를 강조해 되물었지만, 사실 소년은 똑똑히 50을 들었고 남자는 그다지 발음 실수를 할 위인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50달러라는 게 원래 본 지 얼마 안 된 애새끼에게 내줄 만한 쉬운 돈이었나? 그도 그럴 것이, 가장 값싼 버거가 1달러다! 상한선 50달러가 말이 될 소린가? 소년은 남자가 지나치게 유복하거나, 지나치게 경제 관념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즉, 저놈의 호구력은 어디까지가 문제가 아니고 끝도 없이 뻗어나간다는 결론이 도출되었다. 물론 정답은 한 푼 한 푼 버겁게 버는 꼬마의 뒤틀린 경제 상식과 밑도 끝도 없는 의구심일 테지만.
정답을 모르는 꼬마는 꽤나 단순해서 그저 '호구인' 남자를 엿먹이고 싶었다. 지금까지 쉼 없이 뜯기고도 태연을 유지하는 면상을 구기고 싶어 메뉴판에서 필사적으로 비싼 메뉴를 찾는 것이었다. 50달러를 말한 것을 후회하게 해주마, 하는 기세로. 세트를 여럿 사면 50달러에 닿을 수 있겠지. 가장 비싼 세트가 7달러를 하회하니까, 그러니까... 7 3은 21이고, 7 6은... 42고, 7 8이 56이니까... 그럼 7 7이...
"저거 세트 7개."
약 49달러. 소년은 남자가 받아줄지 않을지 반신반의하며 흘긋 눈질했다. 솔직히 혼자 먹을 자신은 추호도 없는데, 설마 그걸 그대로 알아듣고 또 사주는 건 아니겠지. 막상 말하자니 제정신 아닌 발상임이 실감되어, 실상 떠보는 말에 가까워졌다.
//김케든(ft. 오기): (¬_¬ ) .oO(사준다 하면 대충 7개 같이 먹으라 하고 남으면 책임지라고 해야지) 케든주: 와 인성 보소
으아악 어제는 너무 정신 없었네;^; 웬만하면 말하고 가고 싶었는데.. 암튼... 늦은 답레랑 함께 갱신이야^-ㅠ)9~~!
>>327 아니ㅋㅋㅋㅋㅋㅋㅋㅋ 그거슨.. 그거슨 김케든이 된장을 모르기 때문에 실패라는 거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