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6244314> [1:1] 이방인 :: 750

◆QuMdEQJ6Kc

2020-11-27 14:16:18 - 2021-11-16 20:00:54

0 ◆QuMdEQJ6Kc (/Kr4cbM/Pk)

2020-11-27 (불탄다..!) 14:16:18

내가 태어나던 순간을 떠올리려니 상당히 힘드오. 그 당시의 모든 사건들은 혼란스럽고 불분명하오. 기묘한 여러 감각들이 일시에 나를 사로잡았소. 그런 까닭에 나는 동시에 보고 느끼고 듣고 냄새맡았소. 사실, 나는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다양한 감각 작용을 구분할 줄 알게 되었소. 조금씩 더 강렬해지는 빛이 신경을 압박해서 눈을 감아야 했던 기억이 떠오르오. 그렇게 눈을 감자 어둠이 몰려왔고, 나는 불안감에 사로잡혔소. 지금 생각해보니, 다시 눈을 떴고, 그때 내게 빛이 쏟아졌던 거였소.
-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 中


>>1 벨리타 릭먼 Belita Rickman
>>2 클리프 Cliff

563 수면 위로 (l1nrIusJq6)

2021-05-29 (파란날) 00:03:14

“네. 좀 이상한 동물 사체…”

호란은 방금의 부사를 ‘많이’로 정정하고 싶었지만, 득도 실도 없는 말이 될 것 같아 입을 더 움직이진 않았다. 그리고 혼자만 다른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한나를 봤다. 자리가 좁아서 거기에 있는 거라고 단단히 착각한 그는 제 몸을 틀어 공간을 넓혔다. 발은 게으른 혀보다 쓸데없이 부지런했다.

꽃은 원래 있던 것이냐는 그녀의 질문에 정원사는 고개만 저었다. 언제, 왜, 누가 심었는지 모를 꽃들. 의문투성이인 현 상황은 그 갈피마저 잡히지 않는 것 같았다. 호란은 적어도 그랬다.

“꽃은 아마도 저 때문인가 봐요!” 클리프가 혼란을 틈타, 손가락으로 저를 가리키며 확신에 가까운 추측을 벨리타만 들을 수 있게 속삭였다. “그치만 저건 제 탓이 아닌 것 같은데.” 검은 동자가 괴상한 동물들을 슥 훑는다. 만약 저들이 숨을 다시 쉬게 되어 벌떡 일어나 춤이라도 춘다면— 분명 서커스를 보는 것 같겠지.

564 벨리타주 ◆QuMdEQJ6Kc (useh2SIc7.)

2021-05-29 (파란날) 00:23:52

아 ㅋㅋㅋㅋㅋㅋㅋ 호란이 비켜주는 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늘의 귀여움 포인트 1번이네요... 꽃 자기 때문이라고 속닥속닥해주는 클리프는 2번이구요... 세상에 얘들아 너희 너무 귀엽다! 🤦🏻‍♀️

565 클리프주 ◆oSnT.Ehang (l1nrIusJq6)

2021-05-29 (파란날) 14:01:21

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 Cute... 큩하니까 좋네..... ㅋㅋㅋㅋㅋㅋ 👍👍👍👍👍 에잇 다 귀여워져라!

566 떠오르는 것들 (H3EhuXnU76)

2021-05-30 (내일 월요일) 01:53:48

처음에 한나는 호란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다. 딛고 있는 자리가 불편해 자세를 고친 줄로만 알았을 뿐. 자신을 위해 자리를 비켜준 거라는 걸 알았을 땐 한 걸음 정도 다가서긴 했으나 여전히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다. 애석하지만 고마운 마음도 들지도 않았다. 한나는 여전히—아마 앞으로도— 이 무리에 끼고 싶지 않았다. 어쩌다 보니 알게 된 벨리타와 클리프는 한나의 상상 밖 존재인 탓에 두려웠고, 호란은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였다. 그러니 저 괴상한 것들을 두고도 저런 반응이겠지!

한나는 직감적으로 저것들이 벨리타의 작품이라는 걸 알아챘다. 부패가 시작되어 온전한 형태는 아니었으나 보편적으로 멀쩡하다 불리기엔 기이하다는 건 알 수 있었다. 누군가 인위적으로 잘라다 붙여놓은 꼴이었으니까. 이 중에 그런 일을 할 사람이라곤 벨리타 하나뿐이었다.

“다시 묻어두는 게 좋지 않을까 싶은데요…….”

한나가 벨리타를 흘끔 보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벨리타는 클리프의 말을 듣고 있었다.

“꽃에 대한 건 둘이 있을 때.”

벨리타가 작게 읊조렸다. 몇 걸음만 떨어져 있어도 잘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소리였다.

“저건… 네가 아닌 걸 알아.”

벨리타가 느리게 눈을 감았다가 떴다. 어느 시절의 절박함이, 비참함이 머릿속을 헤집어놓고 사라졌다.

“한나 말대로 하는 게 좋겠어요. 어차피 썩어 없어질 텐데, 굳이 뭘 해야 하나 싶네요.”

뒤늦게 벨리타가 얘기했다. 제 의견에 동조하는 말을 들은 한나의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여전히 다가오지는 않았지만.

“꽃은… 어디서 씨앗이라도 날아온 모양이죠. 그것도 그대로 둬요. 보기에 나쁘지 않네.”

567 아직도 가라앉은 것이 남았나? (D7JgqjPHSo)

2021-06-01 (FIRE!) 00:08:52

“네. 그럴 줄 알았어요.”

비밀 대화를 하느라 벨리타의 옆에 붙어있던 클리프는 ‘둘이 있을 때.’를 듣고 알겠다는 듯 거리를 두었다. 여기서 둘이란 당연히 저와 벨리타를 일컫는 말이란 걸 알았다. 자신의 얘기가 넷이 모여있을 때 얘기하기에는 좋지 못한 주제라는 것도 잘 알았다. 그러니까 결론은, ‘둘’이 좀 더 매력적이고 편하다.

호란은 잠깐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다 그냥 묻자는 말과 꽃은 놔두자는 말이 나오자 고개만 끄덕였다. 보기에 나쁘지 않다니, 오늘 제 고용주의 취향을 알게 된 것은 뜻밖이었다.
괜히 사람을 모았나? 정원사는 남의 시간만 동냥한 것 같아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그래, 악질적인 애들이 장난쳐둔 듯한 동물들이 뭐라고. 후회를 삼킨 호란은 다음부턴 사람을 신중하게 불러 모으자고 다짐했다.

“꼼꼼하게 잘 묻어주세요. 괜히 또 누가 파낼라···.”

잘 익은 미소가 클리프의 얼굴 위로 덧씌워진다. 실개천 같은 입술의 곡선이 담백했다. 잠깐 그를 깊게 응시하던 호란은 멋쩍게 웃었다.

“죄송한데 한나, 저 조금만 도와주실래요?”

거칠거칠한 손의 끝이 괴상한 것들을 향했다.

568 기다리다 (ZHoR9GjRrw)

2021-06-02 (水) 00:23:41

벨리타는 두 가지 지시를 내린 뒤엔 상황을 관망하듯 조용히 서 있기만 했다. 무리와 조금 떨어진 한나보다 멀리 있는 사람처럼 느껴질 정도로. 입을 여는 클리프를 잠시 바라보았다가 호란을 보고선, 침묵을 지키는 한나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새삼 기묘한 조합이라는 생각을 했다. 제가 모은 것들인데도.

한나는 클리프의 미소를 보고 어쩐지 꺼림칙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클리프가 ‘보통의’ 인간인 줄 알았어도 그렇게 느꼈을까? 문득 든 생각에 제대로 답을 내리진 못했지만, 그보다 먼저 치고 들어오는 생각이 있었다. ···클리프와 파헤쳐진 것들은 얼마나 다른가?

“···네?”

한나는 전혀 예상치 못한 듯 화들짝 놀랐다. 제 생각이 읽히기라도 했을까 심장이 쿵쿵 뛰었다. 동그랗게 뜬 눈을 깜빡이던 한나는 곧 앳된 얼굴을 해 보이며 곤란하게 웃었다.

“제가 딱히 도움이 될 것 같진 않은데······.”

한나는 저 괴상한 것들—어느 순간부터는 이 저택의 모두인 것 같기도 했다.—과 엮이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그러나 제가 고용주의 손님이 할 부탁을 듣지도 않고 거절할 수는 없었기에,

“어떤 일을 도와드릴까요?”

하고 묻는 수밖에 없었다.

569 벨리타주 ◆QuMdEQJ6Kc (ZHoR9GjRrw)

2021-06-02 (水) 22:58:52

(>>470 관련해서 조금 이르지만... 제가 멀쩡하지 않은 관계를 좀 많이 좋아해서 😇ㅋㅋㅋㅋㅋ 불행이나 죽음처럼 초월적인 존재랑 인간의 조합도 좋을 것 같네요... 써놓고 보니 요즘 방영하는 드라마 중에 비슷한 게 있었던 것 같은데,, 그래도 그거랑은 다르게 로맨스든 아니든 약간 매운맛이 아닐까 싶긴 하구요,,, 까먹을까 봐 일단 하나 던져놓을게요!)

570 클리프주 ◆oSnT.Ehang (EQp9NuAfJc)

2021-06-03 (거의 끝나감) 19:48:18

어멍머 혹시 어느날 현관 멸망 말하는 건가!? 좋아 좋아 막 던져~~~ ⚾️⚾️⚾️ 언제나 그런 관계는 보는 맛이 넘 좋징 👍 최고.. 최고! (클리프 굴리고 있어서 그런지 평범한 인간이 넘 그리워진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앗 얘기 나와서 물어보는 건데 혹시 벨리타주는 HL BL GL 다 좋아해? 🕺💃

571 벨리타주 ◆QuMdEQJ6Kc (HmwiVDmy06)

2021-06-03 (거의 끝나감) 22:56:06

앗 맞아요! 띄엄띄엄 본 게 전부이긴 한데 초월자 or 불멸자랑 필멸자라는 공통점은 있더라구요 ㅋㅋㅋㅋ 던졌는데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 (앗 인간이 그리우신가요 ㅋㅋㅋㅋㅋㅋㅋ 그렇다면...! 👉😉👉) 넵 저는 가리지 않고 다 좋아한답니다! 🥰🥰

572 클리프주 ◆oSnT.Ehang (EQp9NuAfJc)

2021-06-03 (거의 끝나감) 23:20:41

나두 엄청 열심히 챙겨 보지는 않았어 ㅋ ㅋ ㅋ ㅋ 암튼 재밌을 것 같당! ⚾️😉찡😉😉긋😉 벨리타주는.. 📝가리는.. 커플링이.. 📝없다.. 📝📝📝📝

573 개굴개굴 팔랑팔랑 (EQp9NuAfJc)

2021-06-03 (거의 끝나감) 23:27:31

“정원사님이 무서워하시는 것 같아서, 제가 대신 묻으려고요.”

옆에서 불쌍한 동물들을 위해 기도만 해주세요—. 전부 다 말 같지 않은 소리다. 호란의 안색은 평범하기만 하고 기도야 본인이 직접 하면 될 텐데 남의 시간을 기어코 뺏는다. 저를 무서워하는 사람을 단순히 놀리고 싶은 건지, 더러운 두 손으로 합장해봤자 쓸모없는 짓이라는 걸 잘 아는 건지 뭔지.

졸지에 겁먹은 정원사가 된 호란은 자신의 얼굴을 만져보았다. 저것들이 꺼림칙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렇게 겁을 먹은 얼굴이었나? 호란이 자신의 입꼬리, 뺨, 눈가를 순서대로 더듬었다. 하지만 근육이 변한 곳은 하나도 없었다. 착한 호란은 이 점에 대하여 굳이 따지고 들지 않았다. 그래, 날개 달린 개구리는 확실히 별로였으니까…

만약 호란마저 비밀을 알게 된다면 날개 달린 개구리와 클리프 사이의 어마어마한 공통점에 놀라 자빠질지도 모르겠다.

이제 클리프는 쪼그려 앉아서 행동을 시작했다. 연민과 동정이 가득 담겨 금방이라도 긍휼할 것 같은 눈빛이었다. 하지만 속으로는 전소를 염두에 두기도 하고 짜증도 냈다.

호란은 맨손인 클리프를 보고 깜짝 놀라 황급히 장갑을 건넸다. 당연하지만 그 장갑은 벨리타가 준 것이 아니었기에, 클리프의 마음에 쏙 들 수 없었다. 그래도 클리프는 군말 없이 받았다.

574 때때론 내키지 않는 일도 해야 해요 (yJtXqgXqho)

2021-06-04 (불탄다..!) 00:41:14

클리프의 말에 벨리타와 한나가 동시에 호란을 바라본다. 조용히 서 있던 벨리타는 얼굴 한쪽을 찌푸리며 의아한 기색을 표했고, 클리프의 부탁으로 머릿속이 엉망이 된 한나는 이도 저도 못한 채로 난감한 표정만 지었다. 두 사람의 반응은 달랐지만, 하는 생각은 같았다. —도대체, 호란의 얼굴 어디에 두려운 기색이 있는가?
그러나 벨리타는 구태여 클리프의 행동을 막지 않았다. 어쩌면 그냥 두는 게 빠른 상황 종결에 도움이 될 것이란 생각에서였다. 이 괴상한 것들을 묻어내고 나면 갑자기 생겨난 꽃에 대해서 들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제 곤란한 건 한나뿐이다. —어디까지나 한나의 입장이다.— 호란은 두려움을 강요당하긴 했으나 더는 저것들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었다.
한나는 차라리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고 싶었지만, 클리프가 정확히 저를 지목한 이상 그를 도울 수밖에 없었다. 호란이 클리프에게 장갑을 건네자 한나가 조금씩 구덩이를 향해 다가갔다. 여전히 찜찜한 얼굴인 와중에, 용케 근처에 있는 모종삽은 챙겼다.

“어떻게… 흙을 덮을까요?”

한나가 클리프를 보며 물었다. 저것들에 안쓰러운 마음이라도 느끼는 건가? 짧게 이런 생각도 했을 것이다. 그럼 스스로에 대해서는……? 영원히 답을 알 수 없을 질문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적당히 정리해요.”

금세 무심한 얼굴로 돌아와 상황을 지켜보던 벨리타가 툭 던지듯 말했다. 그 말로 한나의 마음에 한 줄기 빛이 들기 시작했다.

575 벨리타주 ◆QuMdEQJ6Kc (yJtXqgXqho)

2021-06-04 (불탄다..!) 00:43:54

날개달린 개구리가 제일 별로였던 착한 호란... 🥲
클리프주도 재밌을 것 같은 소재 있으면 편하게 던져주세요 😉✨✨ 클리프주는 커플링 어떤 거 좋아하시구 어떤 거 어려워하시나요?

576 클리프주 ◆oSnT.Ehang (.2aYJiBUmY)

2021-06-04 (불탄다..!) 08:48:27

🐸깨굴
오키오키 ⚾️ 음 나도 셋 다 좋아하기는 하는데... 찝어내 보자면 HL이랑 BL을 더 많이 보고 좋아하는 것 같아!!

577 벨리타주 ◆QuMdEQJ6Kc (tjkaNTovNI)

2021-06-04 (불탄다..!) 12:06:07

앗 감사합니당 🕺💃 ✨ 저도 잘 메모해둘게요! HL과.. 📝📝BL.... 📝📝📝

578 빛이 들어오지 못한 (.2aYJiBUmY)

2021-06-04 (불탄다..!) 23:58:44

평소에도 클리프는 남의 속을 뒤집어까서 보고 싶을 만큼 궁금증이 많았다. 다행인 건 아직 괴물에게 까발려진 사람은 없다는 거다. 겉과 속이 바뀐 시체가 나온 적이 없으니까. 그런 일은 없어야 하는 것이 세상 평화에 좋고, 만약 발생하더라도 알려지지 않아야 하겠지만, 어찌 됐든 지금 클리프는 찜찜한 얼굴의 한나를 보자마자 그녀의 속생각이 궁금해졌다. 궁금증— 역시 클리프에게 궁금증은 삿된 마음이다.

기껏 나온 동물들은 난데없이 나타난 괴물 탓에 다시금 흙 위로 안와했다. 클리프는 한나의 질문에 제 손을 휘적거리며 내용을 전달했다. 골고루. 잘. 쉽사리 파낼 수 없게. 뭐 대충 그런 내용일 거다. 눈치가 빠른 한나는 알아듣기 쉬운 손동작. 호란은 부가 설명이 좀 필요할 수도 있겠지만…

적당히 정리하라는 말이 들리자 클리프는 눈만 접으면서 웃어 보였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마음에 선미한 빛이 든 사람은 따로 있는데, 얼굴만 보면 꼭 본인이 빛을 받은 사람 같았다. 그렇다면 지금 빛을 받은 사람은 2명인가? 2명이 맞다. 고지가 멀지 않았다고 생각한 호란도 잠깐 빛을 봤기 때문이다. 아마 호란의 생각은 적중할 거다. 클리프도 농땡이를 피우지 않을 거고 한나도 누구처럼 느릿하게 손을 움직이지 않을 것이니.

579 클리프주 ◆oSnT.Ehang (.2aYJiBUmY)

2021-06-04 (불탄다..!) 23:59:34

이제 벨리타랑 클리프만 쏙 빠져도 되려나..? 🤔 어떻게 이을 예정이야 벨리타주?! 🦋

580 벨리타주 ◆QuMdEQJ6Kc (YhL0aNhXiE)

2021-06-05 (파란날) 00:09:24

클리프가 알려준대로 한나가 슥슥 정리하면 각자 일 보라고 한 다음에 벨리타가 클리프한테 산책하자고 하는 식으로 답레를 써보려구요. 😉
산책 장소는 예전 과거 일상 때 돌렸던 숲 지나 절벽까지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581 은폐, 혹은 (YhL0aNhXiE)

2021-06-05 (파란날) 00:27:31

한나는 처음으로 클리프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가 보통의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 후에는 의식적으로 시선을 오래 두는 일을 피했고, 그전에도 그의 요청이 있거나 식사 등을 챙길 때엔 섬세하고 부드러운 태도를 보이긴 했으나 별로 귀담아듣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최대한 빠르게 그의 의중을 알아내야 이 상황이 끝날 것이므로.
클리프를 보던 시선은 곧 구덩이로 처박혔다. 한나는 약간은 허술한 모종삽으로 흙을 파냈다. 깊게. 더 깊게. 그 누구도 발견할 수 없도록. 묻은 자리를 삽으로 두드려 단단하게 만드는 작업도 잊지 않았다. 제 몫의 일이 아님에도—한나에게 정원은 완전히 호란의 영역이었다.— 이렇게 열심히 일하다니! 어딘가 억울한 마음이 번지는 것 같다가도, 드디어 이 지긋지긋한 무리에서 완전히 떨어져 나올 수 있다는 사실에 감격했다.

한나의 마음을 알아채기라도 했는지, 벨리타는

“잘 해결되었으니 돌아가도 좋아요.”

하고 얘기하기까지 했다. 한나는 사근사근 웃으며 대답하곤 서둘러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삽은 호란이 알아서 하겠거니, 하고 적당한 곳에 두고서.

벨리타는 잠시 구덩이였던 자리를 쳐다봤다. 파헤쳐졌다는 티는 났지만, 곧 바람 타고 날아온 씨앗들이 터를 잡고 자라면 이곳에 무엇이 있는지 아무도 모르게 될 것이다. 모든 죽은 것은 썩어 없어지기 마련이니,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누군가 다시 헤집는다고 해도 남아 있는 건 없겠지.

“…클리프.”

벨리타가 나지막이 그를 부르고선 별다른 말 없이 앞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만일 클리프가 따라오지 않는다면 뒤돌아 그를 바라볼 테고, 따라온다면 계속해서 걸을 것이다.

582 벨리타주 ◆QuMdEQJ6Kc (YhL0aNhXiE)

2021-06-05 (파란날) 00:54:39

맞다, 그리고 제가 알기로 요즘 시험기간으로 알고 있는데 많이 바쁘시지 않은지 걱정이에요... 🥲 답레 주시는 거랑 스레 들러주시는 거 다 부담없이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또 며칠, 몇 주 정도 쉬었다 가는 게 편하면 말씀해주시구요! 건강이 최고입니다......

583 클리프주 ◆oSnT.Ehang (ydcgUc7mSI)

2021-06-05 (파란날) 01:09:39

ㅠㅠㅠㅠㅠㅠㅠㅠ 고마워.. 😭😭😭 진짜 짱이야 고마우어 ㅠㅜㅜ ⭐️⭐️⭐️⭐️⭐️ 벨리타주도 편하게 건강을 챙기도록! 💃🕺

584 벨리타주 ◆QuMdEQJ6Kc (YhL0aNhXiE)

2021-06-05 (파란날) 21:40:58

아이구 아니에요 ㅋㅋㅋㅋㅋㅋ 저는 건강하게 지내고 있답니다 😉 이번 시험도 파이팅하세요...! 🦾🦾

585 (ydcgUc7mSI)

2021-06-05 (파란날) 22:34:47

호란은 한나의 삽질이 야무지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물론 흙을 파고 무언가를 묻고 단단하게 하는 것은 누구나 큰 어려움 없이 해낼 수 있는 과정이겠지만, 저택의 ‘안’ 일에도 바쁜 한나가 삽을 든 모습을 보니 괜히 대단하고 그랬다. 이상한 부분에서 감동한 호란은 한나가 적당한 곳에 두고 간 모종삽을 챙겼다. ‘가는 뒷모습이 좋아 보인다.’ 남은 두 명에게 간단히 인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제 호란은 잠깐 배를 채운 뒤에 ‘밖’의 일을 시작할 것이다.

한나와 호란에게 손까지 흔들던 클리프도 흙이 막 솟아오른 곳을 바라보았다. 만약 저 동물들이 숨 쉬게 된다면 서커스 같을 것 같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이 일이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정확히는 또 저런 것들을 파헤치기가 싫었다. 저런 해괴망측한 무덤이 이곳에 몇 개나 남았을까? 오늘 본 한 개가 끝이라면 다행이겠다.
아니. 그래도 한편으로는 저런 무덤이 더 나왔으면 했다. 계속 나와서 과거가 끊임없이 들추어지고, 우리가 망각할 수 없게 만들고 부단히 자각하게 되어 단말마적 비명을 내지를 때까지… 음. 그러면 좋은 점이 있나? 클리프는 머릿속이 난잡해 종잡을 수 없는 이 생각을 관두었다.

클리프는 오랫동안, 아주 깊게 벨리타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뒤를 따랐다. 벨리타가 이름을 부르고 클리프는 그 부름을 받았으니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괴물은 목적지가 어디인지 묻지 않았다. 왜 가는 것이냐고 묻지 않았다. 가까이 다가가 나란히 걷지도 않았으며, 시시콜콜한 얘기조차도 꺼내지 않았다.

586 깜빡이는 조명 아래에서 (YhL0aNhXiE)

2021-06-05 (파란날) 23:42:43

벨리타는 천천히 걸으며 과거를 생각했다. 벨리타의 과거는 대체로 눅눅했고, 그래서 물에 번진 것처럼 흐렸다. 벨리타는 손이 엉망이 되도록 흙을 파헤치던 때를, 연고 없는 사람에게서 ■■■을 ■■■■ 했던 때를, 흔적을 지우기 위해 다시 땅을 파헤치던 때를 떠올렸다. 그러나 장소가 어디였는지는 기억이 흐리다. 화사한 꽃이 피는 정원 어딘가일 수도 있었고, 창고 옆일 수도 있었으며, 지금 걷는 이 길 어딘가에 누운 자도 있을 법했다. …그러나 아무도 모를 것이다. 누군가 파헤치지만 않는다면. 자신이 그렇게 만들 테니까.

자기도 모르게 손을 꽉 쥐고 있던 벨리타는 문득 주변이 고요하다는 걸 깨닫는다. 새소리나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 같은 건 들렸지만, 벨리타가 예상했던 소리는 아니었다. 걸음을 멈춘 벨리타가 뒤를 돌았다. 가만히 서서 클리프를 바라보던 벨리타가 클리프에게 물었다.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질문이었다.

“…힘드니?”

그리고 벨리타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닫는다. 방금 뱉은 말은 클리프에게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말이다. 뒤늦게 어색함을 느낀 벨리타는 졸지에 무대에 오르게 된 어설픈 연극배우가 된 듯한 기분이 된다.

587 숲에 누가 있는지 알면 나무나 새들은 다 도망갈 텐데 (nqg2148Oxc)

2021-06-06 (내일 월요일) 17:23:21

오랜만인 것 같기도,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한 산보. 상당한 길이의 둘 사이를 메꾸는 것이라곤 정적뿐인 숲. 클리프는 벨리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저렇게 가다가 떨어지거나 넘어지면, 같은 시답잖은 걱정을 했다. 행진하는 듯 당당한 걸음도 아니고 구체적인 목적지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 어찌 보면 당연한 걱정일지도 모르겠다. 걱정. 과연 정말로 클리프가 하는 건 걱정이 맞을까? '저렇게 가다가 떨어지거나 넘어지면...' 이걸 걱정이라고 불러도 되는 걸까? 단순히 후일을 상상해보는 것일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만약 걱정하는 게 사실이라면... 꼴에?

새, 바람, 나뭇잎! 벨리타가 듣는 소리를 클리프도 들었다. 문득 클리프는 이 숲에 동식물의 수가 몇이나 있는지 궁금해졌다. 새소리는 여기로 돌아온 후부터 지겹게 들었으니 엄청나게 많을 것이고, 나무도 똑같이 많을 것이다. 이참에 클리프는 새의 수만 세어보려 했지만 그들의 날개가 너무 빠른 탓에 금방 포기하고 굉대한 나무들의 수만 셌다. 한 그루. 두 그루. 세 그루. 그러다가 앞에서 들린 질문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힘들다 하면 멈추시게요? 괜찮아요. 계속 가요."

클리프는 그 질문에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 네 그루. 다섯 그루.

588 바람에 꽃이 흔들흔들 (SeqomaQUyo)

2021-06-06 (내일 월요일) 21:35:31

벨리타는 잠시 생각한다. 클리프가 힘들다고 하면 멈출 생각이었나? 쉬었다 가는 게 좋은지는 물어보았을 것이다. 벨리타가 원래 알고 있는 방법은 그런 것이었으므로. …벨리타는 방금 어설픈 예의를 차린 것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클리프에게, 그가 정말로 제 손님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우습기도 해라! 벨리타가 맥 빠진 웃음을 뱉었다. 그건 웃음보다는 한숨에 가까운 것처럼 들리기도 했다.

“…그래.”

짧게 대답한 벨리타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벨리타가 향하는 방향에 있는 거라곤 낭떠러지뿐이다. 그런 곳은 누군가의 목적지가 될 수 없는 곳이다. 잠시 머물렀다 가기에도 좋지 않다. 산책로로 삼기에도 위험한 곳인데, 벨리타는 익숙한 사람처럼 그곳으로 향했다. 일말의 희망이 있었던 때, 그 희망을 버려야 했던 때. 어쩌면 그 기억을 찾으러 가는 걸까.

땅이 끝나는 지점이 보이기 시작하자 벨리타는 걸음을 늦추다 완전히 멈춰 섰다. 그리곤 돌아서 클리프를 보고는,

“꽃이 네 탓이라니?”

하고 물었다. 정원에 있던 시간을 떼어다가 붙였다고 해도 믿을 만큼 자연스러운 물음이었다.

589 클리프주 ◆oSnT.Ehang (jeZyia86LU)

2021-06-09 (水) 00:18:09

작은 소재 같기는 한뎅 뭔가 치정으로 시작하는 일도 재밌을 것 같다 👍 던져두고 갈게!!

590 벨리타주 ◆QuMdEQJ6Kc (RMAhxvhlgk)

2021-06-09 (水) 00:36:43

치정으로 시작하는 얘기...! 아주 좋아합니다...... 치정극이 오랫동안 사랑받는 이유가 있죠 😎✨
크게 기립박수치며 잠깐 다녀갑니다! 클리프주 좋은 밤 되세요🖤💙

591 복수 선택 (2eF2GbYX2M)

2021-06-10 (거의 끝나감) 23:23:27

그냥 힘들다고 할 걸 그랬나. 클리프는 날아가버린 기회가 아쉬워서 눈가를 비볐다. 연한 살이 붉어질수록 선택은 왜 하나만 해야 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클리프는 여러 개의 선택권을 갈망하기 시작했다. 욕심보다 더한 그 이상의 것이었다.

낭떠러지가 보이자 클리프는 그날의 기억이 날 듯 말 듯 아리송했다. 방금까지는 기억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지금 기억이 맞는지도 모르겠고. 머릿속에서 흐릿한 기억이 낭인처럼 떠돌아다녔다.

"제 영향을 받은 거죠. 아마?"

클리프도 본인의 영향력을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다. 어떠한 조건과 상황이 있어야 그런 일이 생기는지조차도 알지 못했다. 신문에 실린 기사들로만 자신의 영향을 체감했다 해도 틀린 말이라고 할 수 없었다. 쨍쨍하던 날도 먹구름이 잡아먹게, 모이를 잘만 쪼아먹던 새들도 사멸하게, 지금 기억나는 것들을 추려보니 대강 그러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클리프의 영향을 받은 것들이 꿈틀거리고 있을지 모른다.

"그래도 큰일은 아니라 다행이에요. 꽃 밑에 있던 그게 좀 이상했던 거지."

592 늦은 후회 (ZQo/j.33kk)

2021-06-11 (불탄다..!) 17:59:54

벨리타는 클리프의 눈을 바라봤다. 무언가를 찾아내기라도 하는 것처럼 집요한 시선이었다. 물론 클리프가 작정하고 숨긴다면 벨리타가 알아낼 길이란 영영 없을 테지만. 어느 순간부터 벨리타는 클리프가 제 손 밖에 있다고 느꼈다. 아니, 원래부터 그랬던 걸 뒤늦게 깨달은 걸지도. 벨리타가 클리프를 찾아 다시 불러들일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운과 그의 의지였던 것이다.
벨리타는 무겁고 진득한 무력감이 천천히 발 아래로 고이는 걸 느꼈다. 클리프가 말한대로라면 갑자기 생겨난 정원의 꽃무리도 기사에서 봤던 기현상과 같은 종류라는 말이었다. 벨리타는 그런 일을 의도한 적 없었다. 의도한 적 없으니 막을 방법도 알지 못했다. 일순간 느껴지는 두통에 얼굴을 찌푸렸다.

“그건 내 거야.”

어쩌면 그 이상한 것들이 눈 뜨지 않았을 때쯤에 그 정신나간 짓을 멈췄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앨런과 다른 사람인 걸 알았을 때, 다시 돌아와 노크를 했을 때에는. 바닥을 보며 파란 눈을 불안하게 굴리던 벨리타가 급하게 덧붙였다.

“신경 쓸 필요 없어. 다시 묻었고 그걸 다시 파헤치는 멍청한 짓을 할 사람은 없으니까.”

……지금은?
벨리타가 고개를 들고 클리프를 바라본다.
너무 늦었지.

“…신경 쓸 필요 없어.”

벨리타가 조용히 읊조렸다.

593 겨우 잘랐는데 누가 다시 붙이면 안 되니까 (fAZk0NYoIg)

2021-06-13 (내일 월요일) 22:16:14

"네에."

클리프가 한나의 말투를 흉내 냈다. 모조와 복제에 나름대로 일가견이 있는 클리프였지만 지금 말투는 조금 묘했다. 딱 들으면 한나가 떠오르긴 하는데, 평소의 한나보다는 웃음기가 많고 더 밝은 어조였다. 클리프의 안에서 한나는 이렇게 해석되고 있는 걸까? 역시 괴물은 인간을 완벽히 따라 할 수가 없다.

"그렇게 말하면 신경을 쓰고 싶어지는데요."

땡그란 눈이 벨리타를 향했다. 클리프는 워낙에 심보가 이상해서 신경 쓰지 말라고 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다 개입해야 직성이 풀렸다. 청개구리? 청개구리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제 누가 뭐라고 하든 클리프는 오늘 일에서부터 시작될 앞으로의 모든 문제에 끼어들 것이다.

"혹시 땅속에 그런 것들이 더 있나요?"

공연히 발 장난을 하던 클리프가 벨리타에게 물었다. 의중을 살피려고, 대답을 예측하려고, 클리프는 벽수의 눈을 흘낏 쳐다보았다. 그리고 앞으로 걸었다. 방향은 절벽. 클리프는 아직 대답도 듣지 않았는데 이렇게 말을 붙였다. "호란이 못 파헤치게 손을 잘라서 버려둘까?" 그림자가 절벽 끝에 걸렸다.

594 보통은 다른 걸 먼저 얘기할 텐데 (2fUneM1X9w)

2021-06-14 (모두 수고..) 20:02:33

“네가 무슨 자격으로?”

표정을 구긴 벨리타가 코웃음을 쳤다. 어처구니가 없다. 나는 뭘 살린 거지? 아니, 살렸다고 할 수 없지. 저건 앨런이 아니니까. 앨런은 죽었다. 제가 한 일은 그를 재료 삼아 새로운 걸 만들어 낸 것이다. 후회하느냐 묻는다면, 우습게도 여전히 후회하지 않는다. 기회를 놓치기 전에 끝냈어야 했다는 생각은 들지만.

“이 저택은 내 거야. 거기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내 관할이고. 네가 끼어들 자리는 없어.”

벨리타가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동안 잠잠하던 신경증이 도지기라도 한 듯 날카롭게 머리를 찌르는 통증이 일었다. 거슬리는 감각에 눈가를 찌푸리기도 잠시, 클리프의 질문에 벨리타가 천천히 눈을 들어 그의 눈을 바라본다.

“있다고 해도 너와는 상관없는 일이지.”

잔잔하게 일렁이는 푸른 눈. 그것은 곧 괴로운 얼굴로 바뀐다. 벨리타는 제가 완전한 제정신이라 말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란 걸 안다. 그리고 동시에 완전히 미치지 않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어정쩡한 위치에서 어디에도 발 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 마.”

지금 뱉은 말은 상식적이다.

“정원사가 필요하다 한 건 너였잖아.”

지금의 것은, 상식적인가?

595 남의 감정, 의견, 주장 따위에 대하여 자기도 그렇다고 느낌. 또는 그렇게 느끼는 기분. (MJVUzv.pOM)

2021-06-17 (거의 끝나감) 18:53:56

원하는 대답을 듣지 못한 클리프는 금방이라도 절벽으로 굴러떨어질 것 같은 고개를 돌려 벨리타를 봤다. 상관없는 일이라는 말 한마디로 클리프와 저택의 모든 것 사이에는 벽이 생긴 듯 했지만, 괴상한 동물들로 향하는 클리프의 공감은 가로막히지 않았다.

아. 또 머리가 아픈가 보다. 눈가를 잠시 찡그린 벨리타를 보고 클리프는 그렇게 생각했다. 환하게 웃는 얼굴보다는 살짝 찌푸린 얼굴이 더 자연스러운 (적어도 클리프에게는) 벨리타였으니까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니었다. 클리프는 언제부터 그녀에게 두통이 달라붙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1번, 자신이 막 깨어났을 때. 2번, 주위에 차차 익숙해지고 있을 때. 3번, 이상 증세가 심해졌을 때. 4번, 저택에서 나왔을 때. 0번, 자신을 만들 때. 클리프는 이에 관하여 한번 물어보고 싶었지만 말을 아꼈다. "......"

확실히 클리프도 손 없는 정원사라면 싫었다. 마땅히 식물을 어루만지고 도와줘야 할 정원사가 두 손이 없다니... 끔찍하다. 물론 방금 손의 절단에 관하여 얘기한 건 자신이 맞지만, 그거랑 이거는 다르다! 진담으로 한 말이 아니었으니.
그래도 정말 만약 호란에게 두 손이 없어진다면, 입이나 발 따위로 식물을 보살펴줄 사람이 호란이라는 게 클리프의 생각이었다.

"그랬어요?"

벨리타의 말이 거짓이든 비상식적이든 클리프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결국 저만 가만히 있으면 다 괜찮겠네요."

596 이방인 (TnReEQw22A)

2021-06-17 (거의 끝나감) 20:02:09

침묵이 머무는 동안 벨리타는 모든 것을 불태우고 어딘가로 훌쩍 떠나는 상상을 한다. 아, 활활 타는 것들이 재가 될 때까지 지켜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럴 만한 시간은 없겠지. 상상 속의 벨리타는 누군가에게 쫓기는 사람처럼 쉬지 않고 달렸다. 목적지는 먼 곳. 기왕이면 바다가 있는 곳이라면 좋겠다. 해가 오래 뜨는 곳도 좋다. 나무가 무성한 곳은 피하고 싶다. 이제 벨리타에게 숲은 거대한 무덤처럼 느껴졌다…….

클리프의 물음에 벨리타는 고개를 끄덕인다. 정원사의 필요에 대해 말하도록 유도한 건 자신이었지만, 어쨌거나 그렇게 말을 한 건 클리프가 아닌가.

“원래부터 그랬고 계속 그럴 거라고 얘기하면,”

벨리타는 클리프와 눈을 맞췄다. 느리게 눈을 깜빡인 벨리타가 입을 연다.

“어떻게 할 거니.”

벨리타의 말은 클리프를 모든 것으로부터 배제하겠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뻔한 불행을 보여주며 묻는 일이지만, 클리프가 아무렇지 않게 수긍한다면 벨리타에겐 그렇게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클리프를 영원한 객客으로,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못하고 떠돌아다닐 이방인으로 만드는 일. 벨리타는 그게 아무것도 아닌 일이라 생각했다. 이미 본인부터가 그러했으므로.

597 벨리타주 ◆QuMdEQJ6Kc (oLQiZOVVK.)

2021-06-19 (파란날) 17:20:15

John Atkinson Grimshaw, Lovers in a Wood, 1873.

제가 생각한 숲이랑 분위기가 비슷한 것 같아서 갱신 겸 올려봅니다. 배경이 밤이다보니 상당히 어둡긴 한데 🥲 ㅋㅋㅋㅋㅋ 이분이 그리신 도시 풍경도 제가 상상한 거랑 꽤 비슷하더라구요...!

598 클리프주 ◆oSnT.Ehang (ZIKaaOOEog)

2021-06-19 (파란날) 20:30:16

우와오아.... 내가 생각한 숲이랑도 어느 정도 들어맞는 것 같아!!!!!!! 👍👍 평소에 우리 이방인 스레 속 도시 모습은 구체적인 상상 이미지가 없었는데... 도시 그림 보니까 딱 정리된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 덕분에 머리가 깔꼬롬해졌어!!

599 클리프주 ◆oSnT.Ehang (ZIKaaOOEog)

2021-06-19 (파란날) 20:30:49

>>597 왼쪽의 삐죽빠둑한 나무 넘 좋당..

600 벨리타주 ◆QuMdEQJ6Kc (.vAfsv92ns)

2021-06-20 (내일 월요일) 17:31:26

John Atkinson Grimshaw, Boar Lane Leeds,1881.

제가 생각하는 도시 이미지는 이 그림이랑 제일 비슷하답니다. 😉
>>599 제일 왼쪽에 있는 나무 멋지죠... 뭔가 아담해지면 정원의 검은 나무랑도 유사할 것 같구요...

601 클리프주 ◆oSnT.Ehang (td72vMfsTM)

2021-06-22 (FIRE!) 21:41:22

앗 도시 그림 너무 촉촉꾸덕해.. 👍👍👍

검은 나무 진짜 딱 ㅋㅋㅋㅋ 분위기 맞는 멋있는 그림 보니까 기분이 좋닥 🍾🍾

602 벨리타주 (WBujmvAe9g)

2021-06-24 (거의 끝나감) 15:05:10

적당히 어둡고 반짝반짝하고 촉촉하죠...! 뭔가 크리스마스 때 벨리타가 돌아다닌 거리는 저런 느낌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그리고 일주일이 돼서 >>596에 답레가 있다는 사실을 조심스럽게 소곤소곤합니다... 재촉은 아니구 혹시 못 보셨을까 봐 말하는 거니까 바쁘시면 일 보시고 충분히 쉬신 다음에 답레 주세요. ☺️🖤💙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클리프주!

603 클리프주 ◆oSnT.Ehang (VlZlMIJlts)

2021-06-25 (불탄다..!) 00:00:58

앗 고마워!!! 🔥🔥 답레는 주말 내로 가져와보께
담주가 시험도 끝나고 여름방학만 기다리면 돼서 좀 더 상태가 나아질 것 같아 ㅋㅋㅋㅋㅋ 벨리타주도 6월 마지막주 무사히 마무리!! 🍔

604 (VlZlMIJlts)

2021-06-25 (불탄다..!) 00:44:43

땅벌레 하나가 클리프의 발치를 아슬하게 기다 절벽으로 떨어졌다. 클리프는 벨리타의 물음을 곱씹었다. 정말 어떻게 해야 할까? 가만히? 미동 없이? —정적? 쉽게 답이 나오지 않자 클리프는 스스로가 매욱스럽게 느껴졌다. 분명 이곳은 뻥 뚫린 절벽인데, 주위에 답답한 벽이 있는 것 같았다.

클리프는 지금부터 행동을 시작하기라도 한 것인지 굳게 서 있기만 했다. 입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게 좋아하던 웃음도 보이지 않았다. 꼭 얼굴에 경련이라도 난 것처럼 찡그리는 눈이 약스러웠다. 클리프는 이것으로 벨리타의 말에 제대로 된 대답을 한 것일까? 하면 한 거고 안 한 거면 안 한 거다. 몽매한 분위기 속 사실 클리프의 속생각은 이랬다. 저게 정말 대답이 필수불가결한 질문인가?

새들은 다 어디로 날아갔나, 우리의 숲은 원래부터 조용했구나! 이제 클리프는 언어도 까먹고 욕구도 까먹고 죄다 까먹어버린 기분마저 들었다. 까먹은 것을 정말로 먹어버린 거라고 치면 배는 부르다. 하지만 사방팔방 돌아다니며 평생 온전한 곳에 자리 잡지 못할 객이 배불러서야 쓰나. 극심한 허기에 몸부림쳐도 모자랄 판에.

결국 놈은 실쭉 웃어버리고 만다.

605 클리프주 ◆oSnT.Ehang (VlZlMIJlts)

2021-06-25 (불탄다..!) 00:48:12

>>603~ 막레로 해도 될 것 같당 금요일 파이팅!

606 벨리타주 ◆QuMdEQJ6Kc (kynrBUV.oY)

2021-06-26 (파란날) 13:54:33

아니 클맆주 아직 학기 안 끝나신 거였나요 😭...... 바쁘셨을 텐데 막레 고생하셨구 감사합니다!
클리프..... 벨리타가 이래서 언제나 미안해..........🥲

607 클리프주 ◆oSnT.Ehang (YBJGpC29HE)

2021-06-26 (파란날) 20:27:10

벨리타주도 고생했솨! ㅋㅋㅋㅋㅋㅋ큐ㅠ 슬픈 얘기긴 한뎅 내가 폰을 30분 덜 봤다고 해서 30분 더 공부하지 않더라구 ㅎ...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익 둘다 고생이 많다...!

608 벨리타주 ◆QuMdEQJ6Kc (C.6kYkthj6)

2021-06-26 (파란날) 20:51:01

제가 너무 자주 놓쳐서 자연스럽게 놓치셨나보다 했네요... 시야가 좁은 건 저뿐이었음을 😇......
아 ㅋㅋㅋ큐ㅠㅠㅠㅠㅠㅠ 뭔지 알 것 같아서 슬퍼요 🥲 하기 싫은 일은 그냥 집중이 안 되더라구요... 그래도 얼마 안 남았으니까 파이팅입니다! 방학아 빨리 클리프주 향해서 달려와 줘~!
벨리타의 고생... 본인은 고생이라 생각할지 몰라도 클맆 만든 건 벨리타니까 어떤 방식으로든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견뎌! 😠

609 클리프주 ◆oSnT.Ehang (YBJGpC29HE)

2021-06-26 (파란날) 23:23:28

ㅋㅋㅋㅋㅋㅋㅋㅋ 나두 시야 넓어졌다 좁아졌다 하는데 멀...🤦‍♀️ 벨리타주도 여름에 알찬 휴식 많이 가졌으면 좋겠다!! 🏖🏖🏖🛳🦀
견뎌! 😠 <- 이거 너무 기엽잖아!!! 벨리타주가 호되게 나간다면... 난 벨리타에게 따뜻한 어깨를.. 😏😏😏

610 벨리타주 ◆QuMdEQJ6Kc (0MYMGcyw4c)

2021-06-27 (내일 월요일) 21:22:38

여름부터 조금 바빠야 할 예정인데 그래도 짬내서 잘 놀아보려구요!

611 벨리타주 ◆QuMdEQJ6Kc (0MYMGcyw4c)

2021-06-27 (내일 월요일) 21:24:15

아니 중도작성...🤦🏻‍♀️ ㅋㅋㅋㅋㅋㅋㅋ 클리프주도 즐거운 여름 보내셨으면 좋겠어요! 방학이니까 푹 쉬시고 하고 싶었던 재밌는 일들 많이많이 경험하시구요 ☺️
벨리타는 저보다 클리프주를 좋아하겠네요...... 그렇다면 맨날 잔소리하는 벨리타 대신 제가 클리프를 업겠습니다(!)

612 클리프주 ◆oSnT.Ehang (52M//awmdQ)

2021-06-29 (FIRE!) 08:21:21

오예잉 🦀🦀🦀 ㅋㅋㅋㅋㅋㅋㅋㅋ 클리프 누가 업으면 질질 끌릴 것 같다 ㅋ큐ㅠㅠ
무튼 다음 일상도 얘기해보구.. 난 주말만 보고 달리면서 들락날락할게!!

613 벨리타주 ◆QuMdEQJ6Kc (kq6iWqSl3o)

2021-06-30 (水) 20:05:33

클리프 워낙 키가 커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비록 성장기는 지났지만 우유 마시고 키 커볼게요... 클리프 업어줘야 하니까...! 🥲
넵 천천히 얘기해봐요~! 주말까지 화이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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