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나던 순간을 떠올리려니 상당히 힘드오. 그 당시의 모든 사건들은 혼란스럽고 불분명하오. 기묘한 여러 감각들이 일시에 나를 사로잡았소. 그런 까닭에 나는 동시에 보고 느끼고 듣고 냄새맡았소. 사실, 나는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다양한 감각 작용을 구분할 줄 알게 되었소. 조금씩 더 강렬해지는 빛이 신경을 압박해서 눈을 감아야 했던 기억이 떠오르오. 그렇게 눈을 감자 어둠이 몰려왔고, 나는 불안감에 사로잡혔소. 지금 생각해보니, 다시 눈을 떴고, 그때 내게 빛이 쏟아졌던 거였소. -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 中
양소의 원인인 책은 고약한 미로에라도 빠진 것처럼 비슷하지만 다른 내용의 글들로 페이지가 반복됐다. 아득한 날짜와 낯선 이름들. 그 밑으로 늘어지는 하루의 기록과 번번이 보이는 실패. 유쾌한 내용은 눈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지만 괴물의 얼굴 전면, 위태로운 번순은 계속 이어졌다.
책의 모서리를 매만지는 손가락.
좋게 말해서 이 책은 클리프가 클리프로 눈 뜨는 데까지에 있어 다양한 것을 말해주는 물건이었지만 아니꼽게 보자면 자신을 괴물이라고 일컫는 손짓에 첨언하는 종잇조각이었다. 상관없다. 뭐가 됐든 이 책 또한 결국 이 방에 있던 물건 중 하나. 클리프의 손이 책을 올바른 곳에 끼워 넣고 천천히 내려왔다. 아까 이 손은 본디 누구의 것이라고 했더라. 생각 많은 시선에 들어오는 것은 수지 여섯 개. 하나둘셋넷다섯여섯.
아무리 세어 봐도 변함없는 숫자에 시큰거릴 정도로 눈을 감았다가 떴다. 가락은 확실하게 모두 다섯. 숨을 길게 뱉은 뒤 다른 손으로 제 손목을 감쌌다. 여전히 뛰고 있는 맥박이 이 와중에 느껴졌다. 이 와중에? 살아있다면 당연히 뛰어야 하므로 이 와중에 느껴졌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못하다. 쿵쿵. 어느새 턱밑까지 치고 올라온 심장 소리가 두 쪽 난 귀를 꽉 메웠다. 사방에서 심장이 뛰는 끔찍한 공간의 흐름이 사지를 옭아맸다. 꼭 나가지 말라는 거처럼. 끝내 몸을 웅크렸다.
밭은 숨, 흉측한 괴물이 본연과 어울리지 않게 소동물처럼 몸을 말고 있기를 한참. 어느덧 잠잠해진 귀에 적력이 파고들었다. 창문을 두드리던 수준의 물방울은 비가 되어 심장 소리를 대신했다. 빗소리의 틈새로 벨리타의 것이 아닌 희미한 인기척이 느껴지니 클리프는 이제 열쇠를 돌려줘야 했다.
이번 일상두~ 끝!! 🎊 헉 글씨 보기 넘 편하겠다.. 벨리타가 그러면 뭔가 클리프는 악필이란 설정을 넣고 싶어지네 ㅋㅋ ㅋ 이게 청개구리 심보...? 그래두 머 벨리타가 한소리 했거나 자기가 고쳐야겠다! 맘 먹었거나 하면 벨리타가 쓴 글씨로 연습했을 것 같기두 하구.. 그렇게 되면 비슷한 글씨체겠네!!
이번 일상도 고생하셨습니다~ 대화하면서 동시에 다른 상황 진행되는 일상은 첨이었는데 덕분에 재밌게 굴렸어요! ☺️ ㅋㅋㅋㅋ 클리프는 악필이어도 되구 고쳐도 되구요! 근데 악필시절에 지나가듯이 글씨 쓰는 게 힘드냐고 물어봤을 것 같긴 하네요 😇 ㅋㅋㅋㅋㅋㅋ 아니라고 했음 그냥 악필이구나... 글씨체도 안 따라오는구나(?)... 했겠지만요! >>362 헉 재밌을 것 같아요 조금씩 써서 잊힐 때쯤 들고와볼게요!!! 📜🖋✨
노력파 클리프...! 클리프 글씨 보고 급하게 휘갈겼을 때 자기 글씨랑 비슷해서 미묘하게 느껴졌을 것 같기도 해요 ㅋㅋㅋㅋㅋ 편지 주고받을 때가 절정이었을 것 같구... 아 이번에 열어본 일지에 적힌 게 클리프 글씨랑 유사했겠네요! 뒤로 갈수록 훨씬 엉망이었겠지만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잔잔하게 까먹어주신다는 말에 맘이 편해졌어요... 개미처럼 조금씩 멈추지 않고 적어보겠습니다 🐜💦 영차영차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금 아하 그렇구나에서 헉 진짜 재밌겠다를 거쳐 다시 아하 그렇구나로 돌아왔습니다,,, 진짜 첨 눈 뜬 순간 어떤 모습이었는지 궁금하기도 하네요 🥲 나중에 일지처럼... 샤샥...... 사심이랍니다 흘려들어주세욬ㅋㅋㅋㅋㅋ 한 3일 정도면 될까요? 정확한 날짜는 편하신대로~ 혹은 좋아하는 숫자로~(ㅋㅋㅋㅋㅋ) 정해주세요! 일단 첫날부터 클리프 방은 알려줬을 거예요! 벨리타는 동일인이 아니라는 걸 이미 알면서도 부정하는 어떤,,, 부정기를 겪고 있을 것 같네요 ㅋㅋㅋ큐ㅠㅠㅠㅠ
ㅋㅋㅋㅋㅋㅋㅋㅋ아이쿠ㅋㅋㅋㅋㅋ ㅜㅠ ㅋㅋㅋ (사심냠냠) 앗 그래그래 11월 20일에 일어나서 3일 지난 11월 23일인 걸루~!~! 📝부 정ㅠ기 라니. . ㅠ 📝 근데 생각해보니까 일지랑 여행 이야기 하다가 일지가 11월 20일에 오면 그때부터 역극을 돌리는 게 나으려나..? 먼가 그런 생각이 드네,,,,
눈 떴을 때는 한치의 의심도 없이 앨런이라 불렀을 거고, 그 뒤로 뭔가 이상한데 단순히 기억이 없어졌을 거라고 합리화 중일 때 당신이라고 부르고 존댓말을 썼을 것 같아요. 그리고 사이사이에 침투하는 주입식 앨런교육(,,,) 23일의 벨리타는 말할 때는 당신과 앨런을 번갈아가면서 사용하고, 일지에는 약간 다른 단어가 등장할 것 같아요! 아직 직접 괴물이란 단어를 뱉는 시점은 아니랍니당
ㅠㅠ (뭐 항상 생각하는 거지만 이방인 스레에서는 짠내가 나지 않을까 싶어...)ㅋㅋㅋㅋㅋㅋ.. 헉 주입식 앨런교육 ㅋ ㅋ ㅋ ㅋ 되게 기대된다!!(!) 클리프는 몰라도 클맆주는 매우 관심이 많은 교육....ㅋㅋㅋㅋ 좋당 좋아 👍👍 이만큼 얘기하고 정해서 그런지 든든하다!!
여기가 그 광활한 염전인가요 🥲... 짭짤하다! (지금도 그렇지만,,,) 벨리타도 한참 예민할 때라 용과 호랑이의 기싸움이 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많이 정했네요! 저도 벌써 든든합니다 ☺️ 저번 선레 클리프주가 써주셔서 이번에는 제가 시작하는 게 도리에 맞을 것 같은데, 초반의 클리프는 보통 어디에서 발견(?)할 수 있나요? 이렇게 말하니까 포켓몬 같네요...
벼랑 근처 구미가 확 당기네요 😋 말없이 갑자기 사라져 그쪽으로 향했을 확률이 높겠죠? 벨리타가 미친 사람처럼 저택과 정원을 뒤진 다음 숲까지 헤집다 발견한 상황으로 써보려고 해요! 혹시 약간 다른 상황을 원하시면 짧게 언질 주셔도 좋아요~ 허어억 종류가 다양하고 화려해서 벨리타 정신혼미해지기 딱이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짠내는 나지만... 굴리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보다 재밌을 수 없음입니다......
오늘은 시간이 이래서 답레는 아마 낼 가져올 것 같아요! 천천히 기다려주시면 슬쩍 올려놓겠습니다... 클리프주 오늘도 같이 얘기해주셔서 감사해요! 덕분에 설정도 천천히 구체화 되어가고 굴려보고 싶은 상황도 끊임없이 생기는 것 같아요 ㅋㅋㅋㅋㅋ 고생 많으셨고 푹 주무세요~ 😌🖤💙
벨리타는 몇 개의 문을 거칠게 열어보다 견디지 못하고 저택을 뛰쳐나왔다. 정원을 가로지르는 발걸음엔 여유가 없고, 더 빨리 걷기 위해 스커트 자락을 꽉 쥔 손엔 핏기가 없다. 발소리라곤 제 것밖에 들리지 않는 정원. 바람과 나뭇잎이 스치는 소리가 주변을 맴돌지만, 그 사이에 사람의 것은 없다. 허공을 보며 눈을 깜빡이던 벨리타는 더 빠르게 걸어, 뛰어 저택으로부터 멀어졌다. 정원을 빠져나와 침엽수가 자란 숲을 끝도 없이 달렸다. 무릎이 꺾여 그대로 바닥을 구르고서도 멈출 생각은 않았다. 돌아갈 생각은 더더욱 하지 않았다. 벨리타는 다시 뛰었다. 옷은 흙과 마른 풀이 묻어 엉망이고, 드러난 살갗은 벗겨져 피가 흐르고 있었으나 여전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이제 벨리타는 숲이라 부를 수 없는 곳까지 도달했다. 달리기를 멈추자 쿵쿵 뛰는 제 심장 소리만이 울렸다. 그 소릴 들으며 벨리타는 짧게 죽음을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혹은, 벼랑을 앞에 두고 선 ‘그’를 바라보고서.
“…한참 찾았어요. 왜 여기에 있어요.”
벨리타는 한 걸음 다가섰으나 그 이상 가까이 가진 못했다. 잘못 디뎠다가는 주변이 모두 무너져 끝도 없이 추락할 것 같다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물론 벨리타와 벼랑 끝은 아직 멀고, 멀쩡한 땅이 갑자기 무너질 리 없지만. 벨리타는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시달렸다.
“위험하니까 이쪽으로 와요. 그리고… 같이 돌아가요.”
여전히 심장은 바쁘게 달음박질치고 있었다. 호흡이라고 고를 리 없다. 말 사이사이 헐떡인 벨리타가 조금 지친 기색을 비쳤다.
누군가가 뇌를 좀먹는 듯한 통증에 방바닥에서 구르길 십여 분. 차마 밖으로 내뱉지 못한 신음은 들끓는 속으로 삼켜져 뭉개졌다. 도와달라는 소리도 하지 못하는, 결함 투성이인 목이 필요한 이유가 몇 개나 있을까. 독을 한껏 품은 손가락이 서서히 올라가 하얀 목을 긁어내렸다. 희던 살갗이 시뻘겋게 물드는 건 너무나도 빨랐다. 여기는 곧 무너질 거야. 총준해 보이는 누군가의 속삭임이 귀를 파고들었다. 핏발 선 눈깔은 추잡하게 창문 밖으로 굴러갔다.
성상처럼 번쩍이는 문을 열고 담황색 바다를 건너 광활한 측루를 가로지르니 숲이었고 벌레가 득시글거리는 하늘을 밟아서 향화를 비껴 지나가다 보니 벼랑 근처였다. 아래에서 들리는 북소리가 양옆에서 들리는 트럼펫 소리, 위에서 들리는 심벌즈 소리와 합쳐져 고약한 연주를 해 댔다. 하지만 휑한 벼랑에 겁이라도 먹었는지 지금은 잠잠했다.
“왜 여기에 있냐니.”
분명 똑바로 전달됐을 게 확실한 벨리타의 목소리가 놈의 머릿속으로 들어오자마자 소음과 함께 나부꼈다. 이것이 고약한 연주를 대신했다. 대답하지 않을 것처럼 보이던 놈은 미간을 찌푸리거나 입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용케 소음 속을 뒤적여 말의 내용을 찾아냈다. 그리고 하던 말을 이었다.
“거기가 무너진다고, 해서 여기로 온 건데.”
어설프게 나오던 말은 뚝 끊어졌다. “같이 돌아가요?” 벼랑을 뒤로한 채 고개를 돌리니 그 시선의 끝이 벨리타를 향했다. “어디로? 벨리타?” 균등하게 분배한 것도 아닌데 상대보다 숨이 고르다.
그가 처음 입을 떼고 다음 말을 하기 전, 벨리타는 이미 숨을 고르고 난 후였다. 심장이 원래의 박동을 찾아가자 멋대로 날뛰던 머릿속도 차츰 정리되고 있었다. 어떤 이유로 이곳에 있든 다시 돌아가면 그만일 뿐이다. 깨어난 지 고작 삼 일이니, 혼란을 겪는 건 당연했다. 당연한 일인데……. 벨리타의 표정이 천천히 굳어갔다. 장난이라면 도를 지나쳤고 사실이라면 무언가 잘못된 것이다. 누가 당신에게 그런 말을 했지? 저택에는 우리 둘뿐이었는데.
“…나쁜 꿈을 꿨겠죠. 다른 소리를 착각했거나.”
벨리타는 이상한 점을 집어 묻는 대신, 침착한 얼굴을 가장하며 한 걸음 다가갔다. 금방이라도 발아래가 무너질 것 같은 느낌이다. 아니, 어쩌면 그런 일을 바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애써 묻어둔 의심이 다시 고개를 쳐든다. 앨런이 아니야. 기억을 잃은 게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놈의 눈에 엉망이 된 옷과 선혈이 들어찼다. 나쁜 꿈을 꾼 사람의 몰골을 고르자면 적어도 그녀 쪽이라고 생각했다. 그 속삭임은 나쁜 꿈도 뭣도 아니다.
깜깜한 머리칼이 바람과 맞닿아 흐트러진다. 찬 바람이었다. 이 바람이 깊숙한 곳까지 냉기를 심어서 끔찍한 기분을 끝내주길 바랐는데, 계속해서 뭉쳐지는 몸 안의 불쾌한 덩어리는 죽기 직전까지 은거할 모양인가 보다. 덩어리의 불만과도 같은 더운 숨을 아슬하게 뱉었다. 그녀가 한 걸음 다가오자 놈은 후미에 가까워졌다.
원래 같이 있었다.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 아까처럼 모든 말은 잡음에 휩싸여 저 멀리 날아가고 말았지만 앨런이라는 단어만큼은 이상하리만큼 뚜렷했다. 좀 더 상세히 설명하자면, 소음에 아무리 휩싸여도 인지하는 것에 불편함이 없었다. 듣고 싶든 아니든 어쩔 수 없이 들리는. 그런 이상한 단어. 이상한 단어를 벨리타가 왜 자꾸 제게 말하는지 구체적인 연유는 모른다. 착각도 역시 그녀 쪽이 더 가까운 걸까.
“나쁜 꿈도 그렇고, 착각도 그렇고,”
자신보다는 벨리타에게 어울리는 것 같다며 잔화만큼의 여력이 남은 애매한 표정이 말을 마쳤다.
벨리타가 내밀었던 손을 떨어뜨렸다. 더 이상 그에게 다가가지도 않았다. 회유하든, 억지로 끌고 오든 그를 데려가려던 것처럼 굴던 벨리타는 한순간에 모든 걸 포기했다. 그러더니 돌연 웃음을 터뜨렸다. 무대 위라도 작위적이라 비난받을 법한 웃음이었다. 입술 양 끝만 찢긴 듯 올라간 얼굴로, 벨리타가 그를 바라보았다.
“내가 뭘?”
새파란 눈이 그를 노려보듯 응시했다.
“난 아무 문제 없어요. 멀쩡한 저택이 무너질 거라는 헛소리를 들은 적도 없고, 하루아침에 모든 기억을 죄다 잃어버리지도 않았거든요.”
그를 보는 눈에는 비난의 기색이 역력했다. 거기에 약간의 경멸과 원망, 비참함이 섞여 탁한 색을 자아냈다. 벨리타는 그에게 내밀었던 손을 제 눈가를 쓸어내리는 데에 썼다. 눈물을 흘리는 대신, 잔뜩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선.
“내가 바란 건 이런 게 아니야.”
벨리타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조금은 바뀌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맞잡으면 적당한 온기가 느껴지던 손도, 다정한 녹색 눈동자도, 늘 비슷한 박자로 뛰던 심장까지 다른 사람의 모양을 하더라도 결국은 앨런이라면.
“…나를 기억은 해요? 당신에 대해 알고 있는 건?”
이 질문이 벨리타 자신에게 최악의 수가 되리라는 건 이미 짐작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에게선 절대로 원하는 대답을 들을 수 없을 테니까. 한 걸음 뒤에 어깨를 붙잡은 절망이 서 있다.
실밥이 다 터진 싸구려 인형 같은 미소가 놈 안의 덩어리를 마구잡이로 찌르고 갈라서 살점을 도려냈다. 비명을 내지른 덩어리는 빠르게 용솟음치며 이 신체의 주인을 더더욱이 괴롭히기 시작했다. 시야로 보이는 것은 어째 정전이 잦은 세상. 온몸의 피가 끈적끈적해지고 순환에 있어 속도가 느려지는 것만 같았다. 결국 손이 목 위로 올라간다. 처음으로 눈을 뜬 지 얼마 되지 않아 개념조차 제대로 박히지 않은 죽음. 그것에 대한 감각이 시기적절인지 뭔지 날카롭게 선 손톱 끝으로 스며든다. 이 감각을 발판으로 삼아 여러 차례 빠져나간 더운 숨이 덩어리의 불만을 개괄했다. 끝까지 호흡을 멈추지 않고 있는 아무개의 시선은 어딜 향하는가? 느껴지는 모든 것을 다 열거하기도 어렵고 무어라 형용하기도 어려운 파란 눈이다.
“······크게.”
뜬금없이 소음의 자리를 꿰찬 불명의 클래식 탓에 그녀의 입 모양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놈이 주먹을 꽉 쥐었다. 대단한 것이라도 말할 줄 알았더니 고작 입에서 봇물 터지듯 나온 건 ‘크게’라는 말뿐. 다른 건 없었다. 특이 사항이 있다면 목소리가 갑자기 커져 불시에 들었다면 깜짝 놀랄 만한 정도라는 점? 목청이 큰 거야 좋다고 하면 좋겠지만 목청에 실린 내용이 너무 빈약한 탓에 말을 크게 하라는 건지 클래식의 볼륨을 올리라는 건지 명확하지가 않았다. 클래식은 보란 듯이 소리가 커졌다.
클래식으로 귀먹은 놈은 운 좋게도 벨리타의 마지막 물음을 들은 것인지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벼랑과는 조금 멀어졌다. 앞으로 가면서, 상대와 가까워지면서 돌을 하나 들었다. 완전히 벨리타의 앞으로 온 놈은 그녀의 어깨를 옆으로 밀어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돌을 내던졌다. 돌이 맥없이 흙바닥 위로 굴렀다. 놈은 벨리타의 어깨를 붙잡고 있던 교사자를 죽이고 있다 생각했다. 식은땀이 흐르는 이마. 팔을 모로 휘두르고 휘청대길 반복하는 사이 의외로 입에선 대답 비스름한 것이 나왔다. 누구야. 몰라. 알 리가 없잖아. 꺼져! 놈의 상태가 워낙 비정상인 데다가 정확히 지칭된 대상이 없으니 이걸 대답으로 칠지 말지는 온전히 듣는 이 마음이겠다.
원래의 벨리타였다면 놀라고 말았을 것이다. 앨런은 쉽게 목소리를 높이는 일이 없었고, 맹세나 다짐의 말마저 낮게 건넸던 사람이기에. 그러나 지금 벨리타는 웃는다. 고개를 젖힌 채 파안대소를 하던 벨리타가 천천히, 천천히 뱉어내던 웃음을 다시 삼켰다. 꽉 다문 채 열리지 않는 입술 대신, 목울대가 조금씩 움직였다. 삼키고 있는 것이 웃음만은 아닐 테다. 그가 눈을 뜨지 않았다면 영영 몰랐을 것들이라, 감히 이름 붙일 생각은 하지 못한다. 안에서 잘 녹아 없어지기만을 바랄 뿐이다. 벨리타는 벌겋고 번들대는 눈으로 다가오는 그를 보다 그대로 밀려난다. 돌이 바닥을 구르는 소리가 들으며, 일어나지 않은 일을 상상했다. 바닥에 피 흘리며 쓰러진 몸, 그대로 차게 식어가는 몸, 천천히 느려지다 결국엔 완전히 멎고 마는 숨. 벨리타의 심장이 홀로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호흡이 가빠지며 목 뒤가 뻣뻣하게 굳는다. 방금 그것은 사람이 사람에게 악의를 가지고, 명백히 죽이거나 다치게 할 목적으로 한 행동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벨리타에겐 허공일 뿐인 곳에서 허우적대는 모습과 거칠게 뱉는 말. …저걸 멀쩡한 사람의 것이라 볼 수 있나? 앨런은 죽었다. 그리고 벨리타는 그를 살려내고자 했다. 무언가 눈을 떴으나 앨런과는 영 딴판이었다. 그를 이루고 있는 것은 앨런과 다른 몇몇 죽은 사람들의 몸. …이런 존재를 인간이라 부를 수 있나? 불현듯 등골이 서늘해진다. 아, 내가 무슨 짓을. 충격에 젖은 얼굴을 한 벨리타가 그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래, 모르는 게 당연하지. 나도 이제야 알았으니까.”
초점이 흐린 시선이 갈피를 못 잡고 이리저리 흔들렸다.
“너는 앨런이 아니야. 다른 사람일 리도 없지.”
한차례 커다란 충격이 지나간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저 무無. 후회와 허망함마저 사치일 뿐.
놈이 그렇게 죽이고 싶어 했던 교사자는 맞아 죽었을까? 아님 돌에 즉사했을까? 안달 난 몸으로 추태를 보인 놈을 포함해 그 누구도 모르니 참으로 불분명한 생사다. 사기가 극에 달한 몸짓이 멈췄다. 불분명한 생사의 교사자가 허깨비라는 것을 이제야 안듯 귀신처럼 몸을 떨기 시작했다. 분명히 그것은 기지사경이었는데! 자신이 눈을 깜빡일 때 홀라당 사라진 교사자를 원망하고 원망했다. 한편으론 또다시 나타날까 봐 두려움에 찌든 마음이 쿵쿵 전신을 울렸고 벼랑에서 피철갑을 한 채로 올라와 자신을 끌어내린다는 만일의 상황에 있어 긴장해야 했다. 뒷골을 움켜쥐었다. 제게로 떨어지는 시선을 타고 올라가니 어떤 여자가 있었다.
무엇을 이제 알았다는 걸까? 낯설기만 한 얼굴은 아니니 찬찬히 바라보았다. 곧이어 나오는 앨런이라는 소리에 벨리타를 기억해냈다. 벨리타를 기억해내니 그녀가 아까까지만 해도 교사자에게 어깨를 붙잡혀 있었다는 사실이 머릿속으로 딸려 들어왔다. 클래식의 피아노가 부서진다. 고개를 움츠린 놈이 무슨 소리냐며 물음을 던졌다. 허락된 질문도 아니고 말을 한 마디 한 마디 내뱉는 것조차 놈에겐 가당치 않지만 머뭇거림은 없었다. 몇 초 후 상대의 어깨에 닿으려고 올라가는 오른손. 그녀의 중얼거림과 동시였다.
벨리타는 그가 무언가 두려워하고 있는 듯 보인다고 생각했다. 그게 큰 관심사가 아니었을 뿐. 그가 뱉는 모든 말과 행동은 이제 벨리타에게 비정상의 범주에 속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세상에 정신 나간 자를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일단 벨리타는 아니었다. 이미 충분히 지치고 피로했다. 이런 데까지 쓸 여력 같은 건 남아있지 않다. 어깨 위로 올라온 손을 끌어내려 붙잡는다. 어디까지나 관찰을 위한 행위로, 벨리타는 잡은 손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무연고자의 시신으로부터 나온 손. 벨리타가 어느 밤 마구 휘갈겨 썼던 글씨를 떠올렸다.
“심장이 뛰고 숨을 쉬니 살아 있다곤 해야겠지.”
그의 질문을 완전히 무시하고 나오는 대로 뱉는 말이었다. 손에 박혀 있던 시선이 천천히 올라갔다. 새파란 눈이 검은 눈동자를 바라본다. 이것도 다른 사람의 것. 벨리타가 허공에서 그대로 손을 놓는다.
“하지만 이미 죽어서 땅에 묻힌 걸 꺼내고 또 다른 자의 몸뚱이를 잘라 붙인 것에 ‘인간’이라 이름 붙이는 건 너무 과분한 처사 아닌가?”
벨리타는 자신이 완전히 틀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그가 눈을 뜬 순간부터 어렴풋이 느껴온 감각을 끊임없이 부정하고, 애써 바라는 모습을 덧씌우는 걸 포기하기로 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정상이 아닐 법도 하지.”
다 말라 버석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앨런은 이제 영원히, 누구에게서 무엇도 받을 수 없다. 추모도, 그리움도 덧없이 맴돌다 흩어지고 말겠지. 그의 명예로운 이름이 적힌 비석 아래에는 아무것도 없고, 벨리타는 그를 살려내지 못했다. 눈앞에 서 있는 건 누구도 아닌 괴물 하나. 나는 이제 어디에 속죄해야 하나.
“미친 짓을 하려거든 얼마든지 해. 단, 밖에서는 안 돼. 저택으로 돌아가. 내겐 네게 명령할 자격이 있고, 넌 그걸 따라야 해.”
그러나 속죄에 대한 생각도 잠시, 초조함이 벨리타의 뇌리를 잠식한다. 존재해선 안 되는 것을 다름 아닌 제 손으로 만들어냈다. 이 사실은 누구에게도 들켜서는 안 되며, 이것이 세상 밖을 휘젓게 두고 다닐 수도 없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400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요,,, 규칙적인 생활 규칙적인 식습관 운동,,, 우엥 안 할래요 🥲🥲🥲 이번 주 월요일 고되네요...... 2월의 마지막 월요일이라는 사실은 아주 놀랍구요 ㅋㅋㅋㅋㅋ큐ㅠㅠㅠㅠㅠㅠ 늦었으니 저는 화요일을 위한 파이팅을 하겠습니다! 답레는 천천히 주세요~
붙들린 손은 본디 제 것이 아닌 듯했다. 벨리타도 이 손을 그렇게 대했다. 관찰에 의거해 찬찬히 뜯어보는 시선은 여전히 손을 향하지만 손을 보고 있다고 말하기에는 망설여진다. 징그럽게도 요동치는 심장과 계속해서 이어지는 숨. 붙들린 손이 자유로워지자 어째 심장은 자유와 멀어진다. 클래식은 이미 명을 다한 지 오래. 잘게 잘게 조각난 벨리타의 말이 머릿속, 아니 그보다 더 깊숙한 곳에서 돌고 돌았다. 정상인이라면 한낱 말 따위 의미만을 남기고 어디론가 사라졌을 텐데 놈이 어디 정상이던가. 조각들은 너무 불필요하게 많이 돌았다. 귓속을 가르는 험한 쇳소리를 애써 무시하며 놈이 입을 열었다.
“그럼 난 뭐지?”
‘나’가 아니라 ‘우리’라고 일컬어야 맞는 말인가? 확실히 그럴지도 모른다. 누구에게서 파왔는지 모를 눈알과 짝짝이인 손. 그리고 발. 다리. 어쩌면 뼈나 내장까지. 이 중에서 당당히 드러낼 수 있는 게 얼마나 될까? 놈이 목을 더듬었다. 몸 곳곳에서 구더기가 들끓는 것 같았다.
“자격은 무슨.”
날서 있던 상태는 좋아질 기미가 없었다. 두 개의 다리는 벨리타의 명령과 달리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대로 어디론가 도망가면 그녀는 쫓아올까? 반항적인 의문이 동동 떠오른다. 곧이어 눈썹이 슬쩍 올라간다.
“앨런은 뭐지?”
앞뒤 다 잘라먹고선 그 단어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함부로 그걸 발음한다. 반응을 구경하고픈 마음 조금. 앨런의 뜻을 알고 싶은 마음 적당히. 비정상인 상태가 제멋대로 입을 놀린 것이니 이거다 싶은 연유는 없다. 삐이익. 조성에 흠칫한 놈은 주위를 힐끗거릴 뿐 다른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벨리타가 짧게 말했다.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으나 사람이라 할 수 없는 것. 보통의 사람이 알고 느끼는 걸 모르는 것. 달리 어울리는 호칭이 어디에 있을까. 괴물 아닌 다른 것이 있을 리 없다.
“내가 아니면 누구에게 자격이 있지? 스스로가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너에게?”
속에서 알 수 없는 것들이 들끓었다. 날카로운 형상을 한 것들은 벨리타의 안을 굴러다니며 통증을 유발했다. 벨리타는 그중 하나가 제 어딜 찔렀다고 생각하며, 잠시 제 목을 움켜쥐었다. 동시에 그의 물음이 귀에 꽂힌다. 헛웃음이 나왔다. 다소 거칠게 내뱉은 호흡에도 보이는 것이 없다. 벨리타는 제 속을 찌른 것이 아주 깊이 박혔는가보다 여긴다. 다시 웃는다. 예리하게 찔리는 고통이 지끈대는 것으로 변모한다.
“너는 평생 될 수 없고 감히 알아낼 수조차 없는 것.”
혹독한 기억이라곤 없는 유년 시절. 늦은 시간까지 침대에 누워 책을 읽다 잠이 들던 기억. 나이가 차자마자 정해진 약혼자에 제 의사는 개입되지 않았지만, 큰 불만은 없었다. 오히려 운이 좋은 편이 아닐까 했다. 비슷한 가문, 비슷한 나이, 자세한 모습은 몰라도 모임에서 짧게 마주쳐 인사한 기억 속에 큰 결함은 없었다. 사랑으로 시작하는 결혼이 얼마나 된다고. 남들과 비슷한 출발을 하게 되는 것뿐이다. 어쩌면 사랑하게 될 수도 있지. 사랑은 아니더라도 행복을 느끼는 순간들은 있을 것이다. 불가해한 일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견고하고 단단해 보이는 것이 쉬이 무너지는 일은 생각보다 빈번하게 일어난다. 벨리타가 속절없이 앨런을 사랑하게 된 일처럼. 그는 다정하고 온화했으며, 관계에 대한 책임을 아는 사람이었다. 대화는 즐거웠고 —제대로 된 ‘대화’를 할 줄 아는 사람은 얼마나 귀한가!—그의 친구들은 곧 벨리타의 친구가 되었다. 벨리타는 앨런과 함께할 수록 발 딛고 있는 세계가 넓어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벨리타는 사랑을 확신했다. 누군가는 아니라고 했지만.
“···빨리 돌아가서 아무것도 하지 말고 얌전히 있어. 이 이상은 나도 내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르겠으니까.”
벨리타가 치켜뜬 눈으로 그를 보며 말했다. 불어오는 바람에 마른 풀냄새가 섞여 나는 것 같지만, 착각일 것이다. 바람이 쓸고 지나간 발아래서 작게 흙먼지가 일었다가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