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란 대한 모든 사람이 가지고있는 적성이지만 한편으론 재능이기도 하다. 사람마다 그 분야와 자신에게 맞는 아츠는 제각각이며 아츠를 제대로 다루기기 위해선 재능도 중요하지만 후천적인 노력도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오리지늄과 아츠는 서로 불가분의 관계이며, 지팡이나 완드와 같은 오리지늄제 마법 도구를 사용해 아츠의 효율을 더더욱 끌어낼 수 있다. 마법 적성은 감염 여부와 크게 관계가 없지만, 광석병에 감염되면 촉매를 몸에 달고 사는 격이 되기 때문에 같은 마법사용자라도 감염자 쪽이 더 강력한 마법을 보인다.」
그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자각하지 못하고 바닥에 물을 부어버리는 비합리적인 행동을 한 데는 깨다 만 졸음이 한몫했다. 골치아픈 사고를 쳐놓고서도 모르는 일이라는 양 앉아 있는 폼이 태평스럽기만 했다. 실제로 그는 나름대로 바닥에 고인 물 따위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심각한 문제에 처해 있기는 했다. 갈아입을 옷을 찾으러 나가야 할까, 하지만 그건 귀찮다. 그렇다고 젖은 채로 자버리기엔 찝찝한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않고' 구부정하게 앉아서 불만만 떠올리고 있던 차에 다가온 제안은 꽤 반가운 것이었다. 즉답이라도 하듯 눈동자가 먼저 번뜩 상대에게로 빛났다. 그 뒤로 조금 늦은 말문이 열렸다.
"나한테 맞다면 옷. 아니면 수건만이라도."
제 몸에 맞는 사이즈에 멀쩡한 디자인이라면 옷이 좋고, 아니라면 수건이라도 가져오라는 의미의 함축이다. 잠깐 신경쓰지 않았던 사이 여자는 어느새 가까이에서 눈치를 보는 듯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불현듯 그는 어떤 사실 하나를 떠올렸다.
"근데 너 멀쩡하게 갈 수는 있겠냐?"
그러고보니 애초에 이 상황이 벌어진 원인은 상대의 좋지 않은 몸상태에 있었지 않은가. 오히려 보냈다간 못 돌아오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게다가 그는 막 제 입으로 아프면 그냥 앉아 있으라고 핀잔을 주기까지 한 참이다. ……이놈의 주둥이가 문제지. 이러라 했다가 저러라고 말 바꾸는 일은 영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라, 그는 결국 손으로 머리카락을 흩어대며 무겁게 몸을 일으켰다. 이렇게 될 거라면 애초에 고민할 필요도 없었는데. 걸음을 터벅터벅 대충 옮기는 뒷모습으로부터 설명하듯 말이 늘어졌다.
"그냥 내가 가고 말지. 나도 숙소 사니까 그냥 내 방 갔다 오련다……. 너는 그동안 이것 좀 치우고."
'이것'이라며 가리키는 것은 처음의 커피와, 그의 헛짓이 더해져 만들어진 대홍수 파티였다. 반절은 자기가 친 사고였으면서 명령하는 투가 어째 자연스럽다 못해 당연스럽다. 나름대로 상대와 본인의 상황을 고려해서 한 행동이었겠지만 태도가 이러니 과연 뜻이 곱게 전해질지 모르겠다…….
사샤에게는 보호막을 세우는 능력은 존재치 않았다. 이 당시에 디펜더로써 활약했더라면 손에 방패라도 들려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사샤의 손에 들린 것은 방패가 아니라 창이었다. 사샤는 아쉬운대로 제 앞쪽에 불길로 높은 벽을 세운다. 불로 총격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잠시 적들의 시선을 분산시키고 몸을 피할 필요가 있었다. 바닥에 낮게 굴러 겨우겨우 치명상 정도를 피한 뒤 네 근처까지 가까이 다가갔다.
"괜찮아요. 선배는요?"
경력이 있으니만큼 어련히 알아서 잘 했으리라 믿지만, 어찌 되었건 혹시라는 것이 있으니까. 미처 제대로 피하지 못해 팔을 스치고 지나간 부근을 손으로 꾸욱 눌렀다. 그나마 빠르게 피할 수 있었으니 스친 정도로 끝났지, 자칫했으면 벌집이 될 뻔 했다. 사샤는 굉장히 침착했다. 긴장한 채 네게 부딪히던 아까와는 딴판이었다. 아니, 오히려 이런 상황이었기에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었는지도 몰랐지. 이런 상황에서 침착함을 잃었다간 바로 개죽음 당할 수도 있다고 본능이 외치고 있었으니. 사샤는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원래라면 적들이 인질에게 일부러 위해를 끼치지는 않겠으나, 저희들이 건물까지 침투했다는 것을 적이 알게 되었으니 더는 인질의 안전조차 보장할 수 없었다.
"이젠 싸울 수 밖에 없겠네요. 저 메카닉부터 어떻게든 해야 할 것 같은데..."
더 이상 조용히 인질만을 구출해 나갈 수는 없다. 사샤는 창을 제대로 집어들었다.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날 배치했나. 사샤는 빠르게 주변을 훑어보았다. 동공이 얇게 축소되며 고양이의 눈과도 비슷해진다. 기계음이 계속해서 들려온다. 사샤는 뱅가드에 처음 배치 되었을 때 배운대로, 앞으로 달려나가려다 몸을 움츠리곤 너를 돌아보았다. 뱅가드가 맞긴 한데, 일단은 뒤에 사람도 있으니 혼자서 움직일 순 없겠지. 생각해보면 단순히 뱅가드에는 어울리지 않는 성품이었던 것이다.
라샤는 당황했다. 어째서 이런곳에 메카닉이 있는거지? 상대는 단순 테러리스트가 아닌가? 스페셜리스트가 파견되얶다면 살아남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이런저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하지만 그러한 내색을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았던 그는 다시 침착하게 자신의 근처로 다가오는 사샤를 바라보았다.
쏟아지는 탄환세례에 팔을 스친 것 만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건 엄청난 행운이 뒤따른 결과였지.
"괜찮다면 준비해. 네 말대로 저것을 때려부순 다음 강행돌파다. 이미 이 정도의 소란이라면 들키고도 남았겠지."
들킨게 아니라 처음부터 자신들이 올 것이라는걸 눈치채고 있었다는듯한 메카닉의 등장이 그의 뒤를 켕기게 만들었지만 지금은 눈 앞의 골칫덩이를 최우선으로 정리해야하는 상황이었기에 머릿속에 떠오르는 불안감은 나중으로 미뤘다.
"......"
먼지구름이 거쳐가며 짧은 담소의 시간이 지나자 기계는 다시 한 번 거센 예열음을 내뿜었다. 이런곳에서 광범위한 아츠를 사용할 순 없다. 폐쇄된 공간, 아군과 근접한 상태에서 그가 할 수 있는건 최소한의 지원뿐이었기에 소량의 연기를 흩뿌려 기계의 취약한 관절부를 타격하며 말했다.
"내 아츠는 이런곳에서 풀포텐셜을 발휘하기 힘들어, 전적으로 너에게 맡기겠다. 저 기계는 덩치가 큰데다 무기가 몸체와 일체화 되어있어 선회속도가 느릴테니 빠른 움직임으로 사각을 노려 공격해."
사샤는 네 말에 고개를 끄덕인 뒤 바로 움직였다. 사샤의 아츠 역시 다소 광범위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으나, 조절만 잘한다면 적에게만 피해를 줄 수 있을 것이다. 사샤는 빠르게 기계의 근처로 다가갔다. 창을 든 뱅가드에게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감이 있어 보이는 조심스러움이다. 사샤는 네가 아츠를 이용해 공격했던, 기계의 약점이나 다름 없는 관절부를 창으로 있는 힘껏 내리쳤다. 원체부터가 기술이나 속도 보다야 힘으로 몰아붙이는 스타일이었으니 공격 자체의 타격은 꽤나 유효했을 것이다.
공격 한 발 한 발의 위력이 세지만 선회속도가 느린 기계를 상대로 택할 수 있는 전투 방식은 극히 한정적이다. 일격에 끝낼 수 있는 위력이 없다면 치고 빠지고를 반복할 수 밖에는 없다. 사샤는 기계에게 아츠나 창을 이용해 공격을 퍼부은 뒤 자신의 방향으로 기계가 선회하는 틈을 타 잽싸게 피했다. 그러곤 또 다른 방향으로 접근해 공격을 퍼붓고. 다만 아무래도 창은 날이 나갈 수도 있었기에 아츠를 이용한 공격이 주를 이루었다. 기계의 내구도가 완전히 닳아 버릴 때까지 단순하다면 단순한 공격들의 반복이다. 몇 번의 치고 빠지는 형식의 공격이 반복되자 메카닉은 굉음과 함께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다만 이런 공격 이후에 지치지 않을 턱이 없었기 때문에, 사샤는 스러진 메카닉을 내려다보며 지친 기색으로 한숨을 내뱉었다가 네 곁으로 다가갔다.
"이후의 일은 어느정도 선배한테 맡길게요. 아츠를 사용하고 나면 늘 지쳐버려서."
아츠의 사용 자체는 꽤나 자유자재로 하는 편이나, 신체적 특성인지 제 아무리 훈련에 훈련을 거듭해도 아츠의 사용 이후에는 지쳐버린다는 것이 흠이었다. 당연하지만 지혈도 하지 않았으니 총탄세례에 스친 부위에서 피가 멎질 않았다. 경험이라도 풍부했다면 모를까, 경험조차 부족했다. 이제부터는 서포트 정도가 한계려나. 사샤는 너를 잠시 빤히 바라보았다. 아까, 분명 연기를 흩뿌렸었지. 그리고 그 연기는 아군 적군을 가리지 않는 모양이었고.
"아, 필요하면 알아서 피해다닐테니 아츠 사용하셔도 돼요."
인질이 근처에 있다면 조금 위험할지도 모르겠지만, 다치지 않게 구조해내지는 못해도 살리기는 해야 할 것 아닌가. 이미 잠입이 들통났으니 더는 인질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조금 위험할지 몰라도 강하게 밀고 나가는 수 밖에는 없겠지.
리타는, 행거 가장 안쪽에 걸려있는 녹색 후드티를 떠올렸다. 실수로 사이즈를 잘못 선택하는 바람에 실패하고만 그 옷. 디자인은 너무나 마음에 들었건만, 직접 입어보고나니 꼭 펑퍼짐한 원피스를 걸친 것만 같아 애물단지가 된 옷이었다. 그거라면 저 남자의 체격에도 충분히 맞지 않을까. 아니, 어쩌면 조금 작을지도…
" …네? 아, 괜찮아요. 이젠… "
차마 —커피를 쏟고 나니 정신이 번뜩 들게 되었다. 라는 말은 할 수 없다. 때문에 리타는 어색한 웃음으로 말을 대신했다. 어지러운 것도 많이 나아졌고, 방향 감각은… 아직 조금 위태롭긴 하지만. 어찌되었든 아까처럼 뭣도 모르고 중심을 잃을 정도는 아니다. 리타가 정말로 괜찮다는 듯, 당당한 얼굴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뒤이어진 그의 말에는 조금 당황한듯 표정이 흔들리긴 했지만 말이다.
" 아, 아니예요. 저 때문에 이렇게 된거잖아요. 숙소는 금방 가니까 괜찮은데… "
리타가 다시 말끝을 늘이며 입을 다물었다. 자신의 숙소로 가겠다는 상대를 너무 귀찮게 만드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 것이다. 그래. 어쩌면 불편함에 애둘러 완곡히 거절을 표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애꿎게 옷을 버리고 갈아입을 옷까지 직접 가지러 가야한다면… 그건 정말이지 귀찮고 짜증나는 일이 아니던가. 리타가 힐금 제 뒤를 바라보았다. 커피와 물줄기가 뒤섞인 그 무언가. 그러고보니, 저것도 빨리 치워야하는데…
" 저건 신경 쓰지 마세요. 제가 치울테니까… 아무튼, 저 진짜 멀쩡해요. 숙소까지 다녀올 수 있어요. "
리타가 종종걸음으로 남자의 뒤를 따르며 대꾸했다. 남자의 입장에서는 성가신 무언가가 들러붙은 꼴일지도 모르겠다. 허나 정말이지, 이대로 남자를 혼자 보내는 것은 예의에 벗어난 일이란 생각이 드는 것이다.
" 옷도 드릴 수… 있는데… "
리타가 걸음을 천천히 늦추었다. 점점 힘을 잃어가는 말투가 확신에 차있던 방금과는 퍽 다른 느낌이다.
끄응 하고 앓는 소리를 내는 칼리를 보며 눈을 깜빡이던 오니는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이미 칼리의 손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다는 것이 눈에 들어왔기에 상당히 당황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엇지만, 칼리의 그런 반응을 보는 것은 오니에게도 꽤나 즐거웠기 때문이었다.
" ... 칼리한테 보이는게 신경쓰이는게 아니라, 다른 녀석들이 신경쓰이는거야. 이런건 아껴뒀다가 소중한 사람한테만 보이는거라고 그랬어. "
안그래도 힐끔힐끔 자신을 쳐다보는 다른 테이블들의 손님을 고개를 돌려 바라보며 한숨을 푹 내쉰 오니는 앞치마를 받아선 서툴게 앞치마를 한다. 앞치마로 찢어진 부분을 가리고 나니 원래의 기분으로 돌아온 오니는 종업원이 가지고 온 고기를 올리는 것을 발견하곤 다시 초롱초롱한 눈으로 돌아온다.
" 그러고 보니... 이번 임무에서도 나 날뛴거지? 아무래도 창을 들고 나서부턴 기억이 흐릿해서. "
그다지 많이 다치지 않은 날에는 기억이 비교적 온전하게 남는 오니였지만 이렇게 많이 다치고, 한계까지 날뛴 날은 휴식을 취하고 나서야 제대로 기억이 어느정도 돌아오는 오니였기에 조심스럽게 물음을 던진다. 이런 전투 방식을 고쳐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그런 것이 그리 쉬운 것은 아니었기에 조금이라도 스위치를 붙잡고 있을 방법을 찾아보려는 오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