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랑 놀자. 난 너무나 슬퍼...” “난 너하고 놀 수가 없어. 난 길들여지지 않았단 말야.” “아. 미안해... 길들인다는 게 무슨 뜻이야?” “넌 여기 아이가 아니구나. 넌 무엇을 찾고 있니?” “난 사람들을 찾고 있어. 길들인다는 게 무슨 뜻인데?” “그건 너무나 잊혀져 있는 거지. 그건... '관계를 맺는다' 는 의미야.”
☞ 이 어장은 두 레스더의 상호교류 및 합의하에 세워진 1:1 스레입니다.
상황극판 규칙
☞ 상황극판은 익명제입니다. 본인이나 타인의 익명성을 훼손하는 행위는 삼가주세요. 하지만, 자신의 위치(스레주/레스주) 등을 밝혀야 할 상황(잡담스레 등에서 자신을 향한 저격/비난성 레스에 대응할 시 등)에서는 망설이지 말고 이야기해도 좋습니다. ☞ 서로를 존중하고, 자신이 먼저 배려하는 마음가짐을 가집시다. 모니터 너머의 이용자도 당신처럼 '즐겁고 싶기에' 상황극판을 찾았다는 것을 기억해주세요. 모두 두루두루 친하게, 잘 지냅시다. 말도 예쁘게해요, 우리 잘생쁜 참치들☆ :> ☞ 상황극판은 성적인/고어스러운 장면에 대해 지나치게 노골적인 묘사를 허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약물과 범죄를 미화하는 설정 또한 삼가해주세요. ☞ 상대방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은,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행동이 결코 아닙니다. 바람직한 상판을 가꾸기 위해서라도 서로에게 관심을 가져주세요. 다만 잡담스레에서의 저격이나, 다른 스레에서의 비난성 및 저격성 레스는 삼갑시다. 비난/비꼬기와 비판/지적은 다릅니다. ☞ 상황극판의 각 스레는 독립되어 있습니다. 특정 스레에서의 인연과 이야기는 해당 스레 내에서만 즐겨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잡담스레에서 타 스레를 언급하는 일도 삼가도록 합시다. 또한 각 스레마다 규칙 및 특징이 다르기 마련입니다. 해당 스레의 이용자들에게 문의해주시고, 그 규범에 따라 행동해주세요.
8.8 이현주에게 선레 부담 지어주는 걸까, 또 기다리게 하는 걸까 싶어서. 내가 써야겠다, 하고 고집부리는 건 아니었어. 어린애 고집부린 것 같아서 조금 부끄럽다. 응, 시간 생각하면 이현주도 나도 늦게까지는 못 있고 자야할테니까... 이현주가 써주겠다고 하면 고마울 뿐이야. 8.8
"한 번만 우리 반 부스 맡아주면 안돼? 우리 반 애들이 다 힘내서 꾸민 부스인데, 현이도 조금만 도와주면 더 멋진 부스가 될 것 같아서..." "현이 너도 알다시피 메이드 버틀러 카페니까, 타임마다 여섯 명씩 들어가는데 그렇게 힘든 일은 없을 거야. 백준이랑 해인이가 음료랑 요리 담당하기로 했구..." "이현이 오후에는 페스티벌에 나가기로 했었지? 그러니까 오전에 두세 시간 정도만 도와줘. 우리가 주는 옷 입고 앉아만 있어도 되니까! 시간 다 지나고 나면 옷 벗어놓고 가도 되니까." "너랑 같이 오전 담당할 애들?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영빈이랑... 혜정이랑... 도아랑..."
소년은 그 자리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오전에 반 부스 운영을 도와주겠노라고 장담했다. 그 뒤로는 반의 여자아이들 사이에서 '이현이를 간판으로 세우면 이번 축제 부스 매출은 우리 반이 쓸어담는다!' 는 계산이 있었지만, 그는 그런 것에 신경쓰지 않았다. 그저 축제 운영 때문에 바빠서 소년과 함께 축제를 즐기기 힘들 것 같다고 네가 했던 말을 되새기며, '그러면 나도 도아를 도와서 축제 운영을 하면 되는 거잖아. 내가 봐도 좋은 생각인 것 같아...' 하고 속으로 만족스레 흐뭇한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너와 같이 오전에 부스 운영을 하게 되었다고 너를 깜짝 놀래켜주면 네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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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익숙치 않은 구두를 꺼내신고, YW의 의상실에서 빌려온 양복을 꾸며입는 데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화장실에서 교복을 벗어두고 옷을 갈아입고 나올 때는 여기저기서 시선이 느껴졌다. -시선을 받는 것이라면 익숙하다 못해 둔감할 지경이었기에, 이현은 그런 것에 별로 개의치 않았지만. 소년은 자기 옷차림을 돌아보며, 왜인지 자신이 예기치 못한 티파티에 불려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그에게는 거부권이 있었고, 그가 이런 티파티를 달갑게 여기지도 않았지만... 그렇지만 여기엔 네가 있잖아. 하고, 이현은 누군가가 솜씨좋은 손길로 고풍스럽게 그려놓은 메이드&버틀러 카페의 간판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이현은 반의 문을 드르륵 열었다. 부스 운영 개시를 준비하고 있던 눈길들이 이현에게로 와르르 쏟아졌고, 이현은 익숙하게 빙긋 웃으면서 반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를 건넸다.
새하얀 셔츠 위에 멋진 회색 조끼와 까만 바지를 차려입고, 한쪽 팔에는 집사들이 팔에 걸고 다니는 달력을 늘어뜨린 채 주머니에는 회중시계 줄을 늘어뜨리고 있는 회백색 머리카락의 집사가 거기 있었다. 다만, 이 집사에게 있어 별난 점이 있다고 한다면... 와이셔츠의 카라 아래에 넥타이나 리본이 걸려있는 게 아니라 조그만 방울이 매달린 초커가 매여 있다는 것이었고, 머리에는 이현의 머리색과 엇비슷한 고등어 칼라의 고양이귀 머리띠가 씌워져 있었다는 점일까. 그의 미소는 조금 쑥쓰러워하는 것 같기도 했다.
이 초커와 고양이 귀 머리띠는, 이현이 등교해서 교실에 도착하자마자 자신에게 부스 운영을 도와달라고 제안했었던 아이에게 넘겨받은 것이다. 이런 것까지 한다는 말은 없었잖아... 하는 생각이 없지는 않았지만, 별 상관없으려나. 오히려 더 재밌을지도 몰라.
응, 해야 해. 안 해도 된다는 대답이 돌아올 것을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기어코 머리 장식까지 다 해야 한다는 손길에 이끌려 얌전히, 이제는 교실이 아니라 카페가 되어버린 반의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고. 머리 장식의 양쪽 끝을 리본으로 매듭지을 거라는 말에 그저 고개만 끄덕이고, 옷에 있는 리본 장식을 만지작거렸어. 옷에 리본이랑 프릴이 엄청 많다고, 그런 생각을 하면서. 무릎 위까지 올라오는 하얀 양말에도 프릴과 리본 장식이 있었고, 옷에는 말할 것도 없지. 까맣고 하얗고, 무난하다 못해 무채색뿐인 옷인데 왜 이렇게 부끄러울까. 아냐, 어차피 해야 하는 거 열심히 하자고 마음을 다잡은 횟수만 100번이 넘어가는 것만 같아.
근데, 여기에 네가 나타난 거야. 반의 문이 열리는 소리에, 아직 부스 운영 시작은 안 했을 텐데. 오전 부스 운영할 사람이 더 와야 했던가, 아니면 선생님이려나. 그런 생각만 하고서 돌아본 문 쪽에는 네가 있어서,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기도 잠시. "악, 아직인데!" 안 끝났는데 움직이면 어떡하냐는 소리에 다시 고개는 돌아가. 뭐야. 뭐야. 꿈인가? 나 지금, 아침에 너무 일찍 등교해서, 그래서 일하다가 피곤해서 깜빡 잠들었나 봐. 그래서 꿈꾸고 있나 봐. 어떡하지. 아냐, 아냐. 안 돼. 애들도 다 있는데, 좋아하는 티 내면 안 되잖아. 만약 얼굴이 빨갛게 물들어버리면, 응, 옷이 부끄러워서라고 하자. 거짓말은 아니니까, 부끄러우니까, 쑥스러우니까.
"다 됐는데... 도아도 이현이처럼 머리띠 하는 게 나으려나. 도아는 토끼?"
"응? 응? 나? 아니, 아니!"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면, 늘 반 묶음으로 묶여 뒤에서 흔들리던 머리카락은 느껴지질 않아 허전하고, 하고 다닌 적이 없는 머리 장식이 느껴져서 어색해. 평범한 교실인 뿐이던 우리 반이 카페로 변해 버린 것도, 내가 이런 복장을 하고 있는 것도 어색하고, 어색한 것밖에 없어서 고장이 났나 봐. 거기다, 이렇게 갑자기 마주해버린 너는, 늘 그랬듯이, 언제나 그랬듯이. "현이는 멋지고 귀여우니까 어울리는 거고…!" 말하다 보니, 목소리가 너무 커져서. 놀란 만큼이나 커져서, 교실을, 부스 안을 데구르르 살펴봤다가 입을 꾹 다물어. 어떡하지. 다 들렸을까. 티 났을까? 아냐, 현이는 누가 봐도 그러니까. 이제는 어색하게 굴면 안 돼, 절대 안 돼.
"안녕, 현아..."
살랑, 네게로 조그맣게 손을 흔들어. 구석에 자리 잡고 있느라 네게 못한 인사를 자연스럽게 해보려 하지만, 이렇게 어색할 수가 없을 것 같아. 얼굴이 빨갛지 않으면 좋겠다. 얼굴에 느껴지는 열기가 더위를 타버려서 그런 거라면 좋겠어.
하고 그 소년이 손을 흔들고 들어올 때는, 이 소년이 교실에 들어설 때면 늘상 펼쳐지는 그런 풍경들이 펼쳐진다. 친근한 제스쳐로 아는 척을 하는 붙임성좋은 남자애들과, 그에게 시선을 사로잡히거나 그에게 눈길도 주지 못하는 여자애들이라거나. 그의 등장은 크건 작건 교실의 거의 모든 아이들에게서 어떤 종류의 반응을 이끌어내곤 했다. -더군다나 오늘은 축제날, 반과 반 사이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날답게 창밖에 몰려온 다른 반 여자애들도 평소보다 좀더 많았다.
그러나, 아이들의 친근한 제스쳐를 받아주고 인사에 대답해주는 동안에도, 그게 얼추 마무리되고 나서도 그 소년이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따로 있었다. 타이밍이 나쁘다면 나쁜 걸까, 네가 딱 현이는 멋지고 귀여우니까 어울리는 거고- 하고 무의식적으로 언성을 조금 높인 그 순간이, 소년이 인사치레를 끝내고 너에게로 발길을 돌린 순간이었지. 네 머리를 단장해주고 있던 네 친구는, 눈치가 없는 건지 좋은 건지 하필이면 네게로 다가오고 있던 이 소년에게 그 토끼 모양 머리띠를 내밀며 물었다. 이 머리띠가 너에게 어울리는지, 어울리지 않는지.
"없어도 도아는 귀여울 것 같긴 한데... 그러니까 씌워도 되게 잘 어울릴 것 같아."
하고, 소년은 얼굴에 얄궂기 그지없는 개구진 미소를 씨익, 하고 해사하게 띄운다. 안녕, 현아, 하고 네가 조심스레 인사를 건네자, 그는 당신을 가만히 바라보더니 당신의 목 옆으로 고개를 부드럽게 숙였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구석진 곳이라지만 모두가 있는 교실에서, 네 목 옆에, 뭔가 따뜻하고 말랑한 게 인사처럼 콕 붙는다. 너의 인사에 입으로 하는 대답이지만, 말은 아닌 대답. 아주 잠깐의 그 접촉이 끝나고 나서, 이현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장난스런 미소를 띈 채로 고개를 들어올린다. 소년의 손에는 웬 하얀 실밥 하나가 쥐어져 있다.
"목덜미에 실밥이 엄청 큰 게 붙어있었어. 안녕, 도아야."
그제서야, 소년은 네 인사에 말로 대답한다. 그러나 이상한 점은, 이 소년이 네게 건넨 그 아침인사는, 남들 눈에 최대한 안 보이게 조심스레 했을지라도 교실의 공기가 발칵 뒤집어지거나 싸늘하게 가라앉아도 이상하지 않은 만한 파격적인 인사였는데- 아무도 그것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네 옆에 가까이 붙어앉아서 네 몸단장을 해주던 친구들도 그가 그저 네 목덜미에 붙어있는 실밥을 떼어주었을 뿐이라는 것을 굳게 믿어 의심치 않고 있는 듯했다.
>>78 (((사망))) 귀... 귀여워 도아... >>77 응응 그렇지. 이런 메이드/버틀러 카페라던가 그런 데에서 메이드가 입는 거... 그러니까 픽크루에서 도아가 입고있는 것처럼 프릴이랑 레이스 많이 달린 건 보통 프렌치 메이드라고 부르더라구. 도아주 말대로 앨리스 복장에서 파란 부분만 까만색으로 바꾸면 될거야.
잽(진심펀치)이 조금 매웠나 보구나 ミ๏v๏彡 답레를 다시 써올까? 음 도아를 어떻게 설득(??)해야 하나. 이건 이현주가 이현이도 설득해야 돼서 조금 어렵네(?) 이현이는 도아가 자기 좋을 대로 했으면 할 것 같으니까. 조금 졸았어? 피곤하면 얼른 자러 가. 도아주에겐 내일이 있으니까. 내일은 내일의 현생이 있겠지만 적어도 오늘이 마지막은 아닐 테니까.
서이현 너...! 소리 내서 말하지도 못하고, 오늘따라 얄미워 보이는 네 미소를 흘겨봤어. 귀여울 것 같다니, 잘 어울릴 것 같다니 하는 거 전부 장난치는 거지, 놀리는 거지. 뭐라 한 마디 쏘아주지도 못해서 한 번 흘기기만 하는 거야. 그리고나서, 벌써 씌울 준비는 끝났다는 듯이 토끼 머리띠를 쥐고 있는 저 손을 붙잡으려고 했는데, 뭘 어찌할 새도 없었어. 짓궂기 그지없는 네 인사에 흠칫 놀라서 멈춰버렸으니까. 너무해. 전부 다 너무해. 오늘같이 오전 부스 운영하게 됐다고 말 안 해준 것도, 그런 모습으로 나타난 것도, 아까 한 말들도, 지금 이 인사도. 장난스럽게 웃고만 있는 네가 짓궂기만 해서, 얄미워, 짓궂어. 놀리지 마. 이 말들이 고맙다는 말 뒤에 따라붙을까 봐서. 고맙다고 맞장구치지 못하고 입술을 꼭 물어. 부끄러워서 속눈썹이 잘게 떨리는데, 네가 얄밉다고 한마디 못 하는 게 삐죽거려서, 눈꼬리가, 눈썹이 축 처지고 말아.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까, 전해질까.
"도아야, 쓸까? 쓰자!" 우물쭈물, 대답을 바로 하지 않아서 결국 머리 위에는 토끼 머리띠가 씌워졌지만, 알고 있어. 말리려면 말릴 수 있었고, 지금도 벗으려면 벗을 수 있다는 거. 네 인사 덕분에 빨개진 얼굴이 이 머리띠 탓이라고 말하려고, 장난이더라도 잘 어울릴 것 같다는 네 말에 조금 흔들려버려서. 그래서 쓰고 있지만, 그렇지만.
"...... 부끄러워..."
조그맣게 웅얼웅얼, 네 쪽은 쳐다보지도 못하고. 머리 위로 쫑긋 솟아있을 토끼 귀가 신경 쓰여서 손을 뻗어 구부려버렸어. 와이어 일부러 펴놓은 건데!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렇지만, 어디에라도 숨고 싶어서. 토끼 귀를 한 손에 하나씩, 그 끝을 살짝 쥐고 붙잡고 있어. 숨겨지지도 않을 테지만, 가리고 싶어서 어쩔 줄을 모르는 거야. 그러다가 서야, 너를 온전히 바라보지 못하고 토끼 귀 사이로라도 힐끗거리면서 뒤늦은 한 마디.
"... 실밥 떼줘서 고마워."
그리고 궁금한 것도 한 마디. "부스 운영하기로 했었어?" 정말 궁금한 건, 왜 말 안 해줬어. 그렇게 물어보고 싶지만, 너랑 나랑만 아는 우리 사이에서만 말할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나 조금 삐진 거 같다고도 말 못 해.
째릿, 하고 퉁명스럽고도 가련하게 흘기는 네 시선 끝에 닿은 소년의 미소는 조금 처량한 빛을 띄었다. 네 눈빛에 담긴 그 얄궂음에 대한 하소연이 와닿은 모양이지. 그렇지만 그렇다고 미소를 거둘 수도 없는 게... 귀엽거든. 네가. 엄청. 그렇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가 너를 사랑할 수 있게 되기 전에 너를 놓쳐버릴지도 몰라서. 이렇게 하지 않기엔 네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네가 이런 게 부담스럽다면 줄여야 맞는 건데, 너만 보면 도저히 그렇게 할 수가 없어. 나 바보가 돼버린 것 같아.
네가 토끼귀를 잡아내린 채로 힐끔거리며 질문하자, 이현은 너를 가만히 보다가 다시 미소를 지었다.
"네가 부스 운영 오전파트에 들어가 있는 걸 어제 봤거든... 조금 급하게 결정했어. 방송부 일 하느라 바쁜데, 반 부스까지 도와주려면 더 바쁘겠다 싶었고, 은정이 말로는 오전반 인원이 모자라다길래."
하며, 이현은 "어, 잠깐만. 여기 또..." 하고는 실밥이라도 떼려는 것처럼 네 옆으로 고개를 숙였다. 가만, 또, 또 짓궂은 장난을 치려는 걸까. 아니, 다행히도 이번에는 그게 아닌 모양이다. 진짜로 실밥이 있는 걸까? 그러나 곧, 네 귓가에 소년의 귓속말이 나직이, 조심스레 전해져온다.
"그리고, 기왕 한 번뿐인 고등학교 2학년의 학교축제인데... 너랑 최대한 많이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하고, 소년은 다시 고개를 들며 손끝에 쥐어져 있는 실밥을 톡 털어냈다. 그리곤 너를 바라보며, 앞뒤 없는 질문 한 마디를-적어도 남들이 보기에는- 조금 애처로운 눈빛을 하고 너한테 건네왔다.
네 말을 듣고 있으면 마냥 삐질 수 없을 것 같아서, 어떡해야 하나 고민했어. 내가 있어서 같이 하기로 했다는 말을 듣고 누가 계속 삐져 있을 수 있겠어. 그래서 토끼 귀를 내려 잡고 있던 손가락 끝에서도 힘이 빠지고, 너를 얄밉다고 쳐다보던 눈길에서도 힘이 풀리나 했더니. 네가 다시금 내 옆으로 고개를 숙이는 거야. 네가 다시 실밥을 떼려 그러는 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나는 흠칫거리는 거로는 모자라서 움찔거리기까지 했는데, 귓가에 흘려 들어온 네 목소리뿐이라서. 내가 있어서, 나랑 시간을 많이 보내고 싶어서. 왜 그런 말을 이렇게 장난치면서 하는 거야. 네 말 한마디에, 네 손짓 하나에 심장이 이리저리 뛰어대서 어지러운데, 그걸 몰라서 그러는 것도 아니잖아.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여기서 다시 한번 말할 수도 없는데.
"아—니."
절대 싫지 않지만, 삐져있을 거야. "그럼 일하러 가자." 일하러 온 거잖아. 그치. 일하면서 보내는 시간도, 나랑 같이 보내는 거잖아. 머리 장식 때문에 앉아 있었던 자리에서 바로 일어나. 구두 굽 때문에 조금이라도 너랑 가까워졌을까, 너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휙 돌려. 일하러 갈 거야.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이러다가 너한테 미움받아버리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멈칫 다시 뒤돌아.
"... 도와주러 와줘서 고마워, 이현아."
삐졌다고 해도, 네가 그렇게 말해줘서 기쁜 것조차 숨길 수는 없으니까. 삐진 것치고는, 조금 수줍게 말했을지도 몰라. 내 생각을 해줬다는 걸 아니까. 그렇다고 안 삐진 건 아니라서, 일부러 이현이라고 네 이름을 불러. 이런 장난은, 약속했었잖아. 장난치고 싶으면 우리 둘만 있을 때 하기로 했었잖아. 잘 참을 거라고도 말해줬었으면서, 거짓말쟁이야. 조만간 너 때문에, 난 먹지도 않는 홍삼 사탕을 조만간 살지도 모르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