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랑 놀자. 난 너무나 슬퍼...” “난 너하고 놀 수가 없어. 난 길들여지지 않았단 말야.” “아. 미안해... 길들인다는 게 무슨 뜻이야?” “넌 여기 아이가 아니구나. 넌 무엇을 찾고 있니?” “난 사람들을 찾고 있어. 길들인다는 게 무슨 뜻인데?” “그건 너무나 잊혀져 있는 거지. 그건... '관계를 맺는다' 는 의미야.”
☞ 이 어장은 두 레스더의 상호교류 및 합의하에 세워진 1:1 스레입니다.
상황극판 규칙
☞ 상황극판은 익명제입니다. 본인이나 타인의 익명성을 훼손하는 행위는 삼가주세요. 하지만, 자신의 위치(스레주/레스주) 등을 밝혀야 할 상황(잡담스레 등에서 자신을 향한 저격/비난성 레스에 대응할 시 등)에서는 망설이지 말고 이야기해도 좋습니다. ☞ 서로를 존중하고, 자신이 먼저 배려하는 마음가짐을 가집시다. 모니터 너머의 이용자도 당신처럼 '즐겁고 싶기에' 상황극판을 찾았다는 것을 기억해주세요. 모두 두루두루 친하게, 잘 지냅시다. 말도 예쁘게해요, 우리 잘생쁜 참치들☆ :> ☞ 상황극판은 성적인/고어스러운 장면에 대해 지나치게 노골적인 묘사를 허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약물과 범죄를 미화하는 설정 또한 삼가해주세요. ☞ 상대방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은,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행동이 결코 아닙니다. 바람직한 상판을 가꾸기 위해서라도 서로에게 관심을 가져주세요. 다만 잡담스레에서의 저격이나, 다른 스레에서의 비난성 및 저격성 레스는 삼갑시다. 비난/비꼬기와 비판/지적은 다릅니다. ☞ 상황극판의 각 스레는 독립되어 있습니다. 특정 스레에서의 인연과 이야기는 해당 스레 내에서만 즐겨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잡담스레에서 타 스레를 언급하는 일도 삼가도록 합시다. 또한 각 스레마다 규칙 및 특징이 다르기 마련입니다. 해당 스레의 이용자들에게 문의해주시고, 그 규범에 따라 행동해주세요.
자기가 계약연애를 하자고 해 놓고서는 그것이 얼마나 얄팍한지를 엉뚱한 데서 깨닫고 엉뚱하게 좌절하다니. 참 웃기기 그지없는 꼬락서니다. 자신의 마음에 무지한 대가는 그렇게 때때로 조금씩 한 조각씩 천천히 징수되고 있었다.
집단으로 떠드는 이들 가운데서라도, 순간적으로 잠깐 침묵이 흐르는 때가 한 번쯤은 있는 법이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모두가 말을 잠깐 쉬는 타이밍이 일치하는 그 순간. 유럽권에서는 그것을 보고 낭만적으로 "천사가 지나갔다" 고 표현하던가. 그렇지만 그 잠깐의 침묵에는 천사가 지나갔다는 부드럽고 말갛기 그지없는 표현을 쓰기에는 네 피부로도 느낄 수 있을 만큼이나 살벌한 어떤 흐름이 있었다. 그가 화났다, 는 것을 알 수 있을 법한.
"미안이라뇨."
그러나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능청을 떠는 소년의 유순한 목소리에, 그런 기색은 마치 꺼져가는 이명처럼 흩어져 사라졌다. 그런데도, 괜찮아? 하는 네 물음에, 네 손안에 깍지가 끼여 꼬옥 쥐어져 있는 소년의 손이 다시 한 번 움찔한 것은 무슨 까닭일까. 이현은 손전등을 받아들며 조심스레 네게로 뒤돌았다. 머리 위에 쫑긋하게 튀어나온 고양이귀 아래로, 하얀수선화 꽃잎 빛깔을 닮은 머리카락 아래로 샛노란 눈동자가 너를 응시하고 있었다. 조금은 슬프고, 조금은 겁에 질린. 왜인지, 네게 죄의식을 갖고 있는 듯한 그런 눈빛이며 표정이었다.
"놀래켜서 미안해."
그것은 괜찮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아니었다. 그는 그 질문에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그 대신에 네 머리 위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는 방금 선배가 펼쳐놓았던 토끼귀를, 네가 신경쓰인다는 듯 만지작거린 토끼귀를 다시 잡고는 네가 그래놓았던 것처럼 살며시 접어내리려 했다.
>>291 그러면 도아, 건네받은 거 고맙다고 받아서 두르려다 이현이 그대로 있으면 바로 다시 이현이한테 둘러주지 않을까..... 나 <<< 너 라고 생각하는게 도아니까. 자기 부끄러운 거보다는, 이현이 감기 걸릴까 하는게 더 우선이지 u.u! 위에 꼭 묶어서 망토마냥 만들거 같고. ((비치타월 실수로 하나뿐이면 어떡하지))
>>293 ...한 장뿐이면 서로가 서로를 위해주다가 마음 상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을 것 같으니 타월 넉넉히 있는 걸로 하자..!! 이현: 나 감기 같은 거 잘 안 걸리는데. (키드득) 라는 소리가 무색하게 언제 이현이를 한번 앓아눕게 하고 도아 반응을 보고 싶은 못된 이현주입니다
다시 한번, 내 손 안에서 네 손이 움찔거리면 괜찮지 않다고밖에 생각 못 해서. 그런데도, 네가 답해주지 않았으니까 앞서 생각하지 말자고 아랫입술을 조금 깨물었어. 불안함이 일으킨 일렁임은, 파도 너울처럼 어딘가에서는 몸집을 잔뜩 키운 채로 덮쳐올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그렇게 되도록 두지 않으려고 깨물린 입술은, 뒤돌아준 너에게 웃어주려고 했는데. 널 마주하는 순간 그러려던 사실을 잊어버리고 말았어. 네 표정을 알고 싶었지만, 어째서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지 모르겠어. 화가 났거나, 놀랐을 거로 생각했었는데. 지금에 와서는, 네 표정에서 찾을 수 있는 건 오히려 슬픔인데.
네가 그렇게 바라보면서 사과하면, 난 가슴 깊숙한 아래 어딘가에서 울렁거리고 말아. 울렁일 뿐인데, 분명 아픈 것이 아닌데 아픈 것만 같아서. 네 사과에 고개를 저었어. 사과를 받아주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라, 네가 왜 사과를 하는지 알 수 없어서. 네가 그런 표정을 짓는 이유는, 네가 사과를 하는 이유라는 같을까. 물어보지도 못할 말을 울렁거림 속으로 밀어 넣고, 네 그 표정을 계속 바라보고 있을 자신도 없어서 고개를 떨어트리고 말아. 좋아하는 사람이 나에게 미안해한다는 거, 엄청 힘든 일이잖아.
"여기 말고 다른 데 가도 돼."
너를 따라 했어. 괜찮냐는 질문에 사과한 너를 따라서, 네 사과에 다른 말을 하는 거야. 축제에서 인기가 많다는 이유로 왔을 뿐이니까, 네가 싫다고 한다면 인기가 많은 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잖아. 그러다가, 머리 위에 쓰고 있는 머리띠에서 네 손길이 머무르고 있단 걸 눈치채.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금방 알 수 있어서, 네 손길에 접어 내려진 토끼 귀를 만지작거려. 내가 신경 쓰여 했단 걸 기억해준 걸까, 싶어져서. "귀, 고마워." 만지작거리다, 나직하게 네게 한 마디를 건네.
대답이 조금 늦었다. 소년의 가슴속은 아직도 와글와글 시끄러웠다. 너에게 누군가가 손을 댈 때 치솟아오른 독기어린 분노의 갈피를 소년은 아직 잡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마음속 한켠에선 계약이라지만 나는 네 애인인데, 네게 함부로 손대는 사람이 있으면 화 좀 내도 되는 거잖아- 하는 볼멘소리 가득한 항변이 울리고 있었지만, 소년은 그게 과연 이치에 맞는 것인지도 알지 못했다. 너에게 그 정도의 독점욕을 느껴도 되는 것일까. 자신이 바락 쏟아버린 성질에 여린 네가 깜짝 놀라지 않았을까, 그게 두려웠고, 그 두려움이 네게 영문모를 사과를 건넨 이유였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를 이런 데서 구구절절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는 그 대신 그저 다 괜찮다는 것을 전해주려는 듯, 네 손을 부드럽게 꼬옥 거머쥘 뿐이었다.
"그러니까 도아가 날 데려가고 싶은 데로 데려가 줘."
너와 함께라면 떠들썩한 곳이건, 인기많은 곳이건, 단 둘이 있을 수 있는 곳이건 어디든 좋을 것 같아. 오후에 있을 학교 장기자랑 콘서트까지 남은 시간이 그렇게 짧지는 않았지만, 준비하는 데 걸리는 시간까지 생각하면 긴 것도 아니었다. 그 시간 동안 너와 이 곳에서 즐거울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했다. 그러다 네가 나직하게 감사인사를 건네자, 소년의 얼굴에 걸쳐져 있던 쓰라린 기색이 곱게 옅어졌다.
"고맙긴."
하더니, 그는 네게로 고개를 기울여선 조심스레 속삭였다.
"난 네 남자친구니까."
입구 옆에 어정거리며 서 있는데, 지금 이 순간은 왜인지 아무도 두 사람이 여기 있는지 모르는 듯했다. 소년은 고개를 들었다. 이상한 일이다. 네가 조금 비치는 불안한 기색에 그렇게나 마음이 쿵 떨어졌는데, 네가 팔랑팔랑 실어보내는 한 마디에 언제 그렇게 처참하게 추락했냐는 듯 마음이 피어나는 것이다.
"정말 괜찮아졌어."
하고 그는 대답했다.
// >>147에서 말했듯 이현이와 함께 있다 보면 이따금 조금씩 이상한 일이 벌어지곤 하는데, 이런 것들 괜찮아? // 귀신의 집으로 들어갈지 아니면 다른 곳으로 갈지는 도아의 선택이긴 한데, 그런 이상한 일들을 좀더 보고 싶다거나.. 아니면 보기 싫다면 그건 도아주가 생각해서 나한테 말해줘! // 답레가 많이 늦어졌네, 미안해..
네게 축제가 어떤지 알려주고 싶었어. 네가 론이 아니라, 이현이 너로서 축제에서 즐거운 기억을 가져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네가 그렇게 말해버리면, 나는 너랑 둘이 있고 싶은 욕심쟁이라서, 꽃봉오리가 가득 물고 있는 게 달콤한 꿀이 아니라 널 향한 욕심이라서. 그래도 괜찮을까, 머릿속이 어지러워서, 아득해져서, 네가 꼬옥 내 손을 거머쥐면 그 손을 위로 끌어왔어. 네가 좋아, 현아. 욕심부려도 돼? 아니, 욕심 부릴 거야. 네 손을 두 손으로 그러쥐어서, 고개를 기울여서 내 뺨이 고스란히 닿도록. 그러고서는 잠시 눈을 꼭 감았어. 욕심쟁이라서 미안해. 오늘, 네 축제에는 나밖에 없을지도 모르겠어.
"그럼, 오늘은 방송부실로 도망가자."
점심시간에서 한 시간 전까지는, 그러니까 너와 내가 같이 있을 수 있는 시간까지는 방송부실은 조용할 거야. 점심시간 안내 방송을 시작으로 방송부는 오후의 공연 축제 때문에 바빠지겠지. 필요한 건 전부 강당으로 옮겼고, 리허설도 어제 엄청나게 했어. 본 무대 전에 한 차례 더 있는 리허설도 원래는 4교시였을 시간과 점심시간 동안 진행될 거고. 바빠짐의 시작인 점심시간 안내 방송도, 점심 방송도, 아나운서는 나니까. 올 사람 아무도 없는걸. 오늘 너랑 나랑 숨을 곳은 방송부실이야. 그러다가, 도망가자, 꼭 그렇게 속삭이듯 네 손에 뺨을 부빈 건 널 따라했을지도 몰라. 꼭 지금도 너랑만 단둘이 있는 것 같아서 불쑥 용기가 났을지도 몰라.
그리고 네 속삭임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얼굴을 붉히다가, 시선을 맞추지 못하다, 늘 부끄러워하던 그 모습을 여실히 비추다가, 그제야 난 뒤 늦게서야 네가 왜 움찔거렸는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어. 선배가 네게 장난을 쳐서가 아니라, 내 머리띠 때문인가 봐. 선배가 내 머리띠를 만져서 그런가 봐. 나도 누가 네 머리띠로 장난을 친다고 생각하면, 괜찮을 수가 없을 거 같아. 나도 하고 싶고, 내가 네 여자친구니까 엄청나게 질투 났을 거야. 너도 그런 기분이었던 거야?
"현아, 그럼 나—"
"머리 꾸며줄 수 있어?"
네가 마음껏, 하고 싶은 대로 묶어도 되고, 핀을 꽂아도 상관없어. 왜냐하면,
"넌 내 남자친구고, 난 네 여자친구잖아."
소곤소곤, 네가 했던 말을 고스란히 돌려주었어. 그다음에는 두 손으로 꼭 잡고 있던 네 손에 좀 더 꼭 뺨을 기대고서, 분홍빛 눈을 꼭 숨기면서 웃어버리는 거야. 네가 내 남자친구고, 내가 네 여자친구라는 말이 너무 간지러운 거 있지. 계약이라고 해도, 일방적이라고 해도, 아픈 건 전부 미뤄버리기로 했으니까. 게다가 네 목소리로, 네가 내 남자친구라고 말해준 게 너무 기뻐서. 그래서, 그 기쁜 만큼, 네가 좋은 만큼 사랑스러움을 가득 머금고서 말갛게 웃어버렸어.
도아주는 짝사랑하고 싶다! 란 생각만 하고 캐릭터 설정도 없이 무작정 자유 상황극에 글을 던졌던 거라, 도아는 그때서야 짜인 캐릭터이기도 하고... 열심히 짝사랑하고 있으니까 딱히 안 괜찮을 것도 없다고 생각해 u.u! 세계관 쪽도 짜야한다면 맞춰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축제라는 것이 무엇인지 머리로는 잘 알고 있다. 뮤지션으로서, 이현은 본격적인 축제라고 할 수 있는 뮤직 페스티벌 같은 곳에도 출연한 경험이 있다. 몰려드는 인파들, 화려한 조명이 비추는 스테이지, 하늘을 수놓는 불꽃놀이, 물병이며 펜라이트며 핸드폰 조명 등을 키고 날뛰거나, 제각기 즐겁게 소리지르는 관객들의 제각각의 소리가 모여 만들어내는 하나의 환호성. 거대한 화음이면서, 불협화음이기도 한.
그러나 축제가 무엇인지 정말로는 알지 못했다. 자신을 바라보며 자신의 선율에 귀기울이며 합창하는 그 무수한 사람들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의 열기로 가득찬 그 콘서트장의 무대 위에서 소년의 기억속에 남은 것이라고는, 여전히 자신은 이 세상 속에 홀로인 것 같은, 마치 혼자인 방에 앉아 모니터 너머로 그 관객들을 내려보고 있는 것만 같은 공허하고 차가운 괴리감뿐이었다. 뜨겁지도 않고, 차갑지도 않고, 마치 공기가 없어 온도가 전도되지 않는 텅 비어있는 우주처럼.
그것은 소년이 떨거나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차분히 노래할 수 있게 해주는 강점이 되기도 했지만, 가장 큰 고민이기도 했다. 자신이 가장 믿을 만하다고 생각되는 어른인 소속사의 프로듀서에게 상담해보기도 했지만, 그가 내어주는 답이라곤 '그 정도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거냐. 욕심이 많구나. 걱정 마라,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너를 바라보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너를 눈부신 별로 만들어줄 테니까.' 같은, 소년에게는 어떠한 의미도 갖지 못하는 공허한 약속에 불과했다.
이현은 자신이 언제까지고 제 4의 벽 너머로 유배되어서, 자신이 살아 존재하는 세상을 영영 실감하지 못하는 삶을 살아야 할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그에게 너라는 기적이 일어났다.
나는 너를 통해서만 무언가를 실감할 수 있어, 도아야. 그러니까 애초부터 내 축제에는 너뿐이었던 것이나 다름없어. 너는 소년에게 많은 처음을 너로 선사해줄 수 있는 특별한 위치에 있었다. 그러니 이제 와서 소년의 가슴속에 축제의 풍경을 네 모습으로 새겨준들, 손등 위에 부드럽게 스치는 네 뺨의 감촉으로 남겨준들, 그것을 탓할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소년의 가슴속에 피어난 너는 소년에게 스며들고 있었다. 이현의 마음속에 떠오르는 좀더 보통의 감정. 질투. 분노. 그것마저도 네가 새겨준 사랑에서부터 피어난 것이다.
"머리?"
하고 소년은 되물었지만, 말을 끝맺을 때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입을 다물려던 찰나, 네가 건네어온 말이, 네 얼굴에 한가득 피어난 봄이 소년의 가슴에 따뜻하게도 파고들어왔으니까. 자기가 먼저 그런 부끄러운 말을 해놓고, 소년의 벌어진 입에는 이내 쑥스러운 미소가 걸린다. 너를 따라 양 뺨에는 연연한 봄꽃이 한가득 피어난다. 소년이 얼굴을 붉히고 쑥스럽게 웃고 있다. 자기 입으로 꺼내는 것과 네게서 듣는 것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법이다.
"응. 좋아. 그러자... 둘이서, 실컷."
오늘의 축제가 그랬듯, 네가 잡아끌면 소년은 쉽게 끌려올 것이다. 아니, 기쁘게 따라올 것이다. 서로 맞잡은 이 손이, 좋아서 견딜 수가 없었다.
네 손에 꼭 뺨을 기대고서 있다 보면, 있지, 사람들이 다 쳐다봐도 좋으니까 너를 안고 싶어져. 나는 네가 웃어주는 게 좋아. 네가 내가 한 말에 얼굴을 붉힌 게 너무 사랑스러워서, 안 그래도 머릿속에는 네가 가득한데, 더 그렇게 되는 거야. 그래서 나도 똑같이 홍삼 사탕을 먹어야 할 텐데도 넘치는 마음을 감당할 수가 없어서 저질 버릴까 하고 고민하고 말아. 그렇지만 역시, 그런 일을 저질러버리면 나보다는 네가 훨씬 더 곤란할 거라는 걸 아니까. 손톱에 꼭 물들인 봉숭아 물이 겨울까지 남으려면, 손톱에 올린 봉숭아가 조금이라도 오래 머물러 있도록 참아야 하잖아.
"응! 나 가방에 다 있으니까."
가방은 방송부실에 있고, 방송부실은 너랑 나의 둘만의 공간은 아니지만 그래도 지금만큼은 그럴 거야. 그럼 들떠버려서, 뺨을 기대고 있던 네 손을 꼭 잡아끌고 방송부실로 너를 데려가. 너한테 이것저것 머리핀을 꽂아주고 싶어. 귀여운 머리핀을 많이 갖고 다녀서 다행이다. 네가 내 머리를 어떻게 해줄지도 엄청 많이 기대 돼. 네 솜씨는 좋을까, 나쁠까. 네 머리 모양을 보면, 아무래도 솜씨는 좋은 편 같아. 그렇지만 내 머리는 날개뼈를 다 덮어버릴 정도로 긴 데다가 곱슬머리인데, 머리는 내가 빗어도 되려나. 팔 아플 것 같으니까. 이런저런 생각으로 들떠서 조금 발걸음이 가벼웠을까, 평소보다 보폭이 커졌을까.
"오늘이 두 번째네."
너랑 나랑 둘이 방송부실에서 있는 거 말이야. 방송부실에 걸린 자물쇠를 익숙하게 풀고, 총총 먼저 방송부실로 들어가서는 너를 돌아보며 그렇게 말했어. 들떠버린 건 발걸음뿐만이지 않았을 테니까, 표정에서도 고스란히 티가 났을 거야. 불을 켜지 않아도 아직 밝은 시간, 방송부실은 어제와 똑같이 포근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굳이 어제와 다른 점은 가방뿐일까. 축젯날에는 수업을 안 해서 학교 가방을 메고 오지는 않았으니까, 그 가방 대신에 낙낙한 크기를 가진 아이보리 빛의 캔버스 메신저 백이 아기자기한 와펜 배지를 달고서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 옆에는 부스를 위해서 갈아입었던, 원래 등교할 때 입고 왔던 옷가지가 차곡히 개어져 있었고 그 외에 다른 누군가의 흔적은 없었다. 어제와 온전히 같았다.
나 왜 이걸 오늘에사 봤지...888 정말 참치게시판 특정스레랑 핸드폰이랑 연동해서 푸시알람 보내주는 기능 안 나오려나.. 아니, 늦어지는 건 개의치 않아. 도아주가 늦어지건 말건 도아주가 돌아오고 싶다면 난 기쁘게 기다릴 수 있는걸. 그보다 도아주가 아직도 일 지옥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 슬프다. 도아야.... 도아주....... 답레는 천천히 써둘게. 축제날은 사복이었던 걸로 하자. 도아도 이현이도 사복 입고 왔다가 옷 갈아입었던 걸로.. 연분홍색 오버핏 남방... 음 이현이라면 소화할 수 있는 아이템이겠네 몬다이나이(?????)
밤하늘을 바라보면 그렇게 외로웠는데, 이젠 밤하늘을 바라보며 너를 헤아린다. 소년의 밤하늘에 네가 핀다.
그렇게 소리도 온도도 어느 것 하나 와닿지 않는 우주를 떠돌고 있던 소년에게 네가 그렇게도 와닿아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한없이 작고도 한없이 커다랗게. 한없이 옅고도 한없이 선명하게... 그리고 한없이 따뜻하게. 네 애정이. 네가 끌어안고 있는 마음이. 그게 너무도 따뜻하게 빛나고 있어서.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버리고 만 거야.
처음 보는 것에 대한 단순하고 알량한 호기심에서 시작되었던 이 기묘한 계약연애가 가져다준 것에 소년은 지나치게 취해버렸고, 그 사이는 조금씩조금씩 당연한 보통의 것으로- 그러나 그만큼 소중한 것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서로에게 한 순간씩 설레고 서로가 한 순간씩 설레게 하는. 소중한 것을 조금이라도 더 붙들기 위해 봉숭아를 잡아맨 손을 소중하게 꼭 거머쥐는 그 마음은 과연 효과가 있어, 봉숭아 물뿐만 아니라 갈 곳 없던 소년의 손까지도 꼬옥 거머쥐었던 것이다. 그러니 봉숭아물이 다 흐려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성싶다. 다시 물들여달라고 하면 될 것이다.
"가방- 네 가방에 다 있는 거지?"
그러면 내 가방은 안 가져와도 되겠네, 하며, 소년은 너와 함께 보폭을 맞춘다. 나란히, 너와 꼭 같은 보폭이다. 평소에 항상 너와 보폭을 맞춰주었던 것처럼 너에게 발맞추는 걸까, 아니면 너처럼 들떠버리고 만 걸까. 너에게서 떨어지지 않는 금색의 눈동자를 바라보자면, 황수정을 카보숑으로 잘라붙여 놓은 듯 예쁜- 그렇지만 조금 붕 떠서 왠지 차갑게 비어있는 것만 같았던 눈이, 이제는 네가 안겨준 기쁜 마음을 한가득 끌어안고 생생히 살아서 반짝이고 있다. 마치 네가 비쳐보이고 있는 것처럼. 네 들뜬 표정이 모두 비쳐보이고 있는 것처럼.
"오늘도 붙여둘까, 도아 데려간다고."
방송부실을 열며 네게 하는 말에 소년은 쿡쿡 웃으며 농담을 건넸다. 포스트잇 이야기를 하는 모양이다. 그러다 네가 웃으며 어서 와, 하고 건네는 말에, 소년은 문득 너를 다시 한 번 꼭 끌어안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먹는 홍삼 캔디라면 몇 알이라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문득 그의 얼굴에 장난기가 가득 묻은 웃음이 걸린다.
방송부실로 향하는 그 복도에서, 문득 너를 돌아보면 눈이 꼭 마주쳐. 내가 그 서툴렀던 엉터리 고백을 하기 전에는, 네 눈에 내가 담기는 일을 상상도 못 했었던 나야. 그래서 네 시선이 나한테 머물러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벅차오르도록 행복한지 알려주고 싶은데, 나조차도 그 행복한 물살에 쓸려 넘어질 것만 같아서 어쩔 줄을 몰라. 그래서 활짝 웃어 보일 뿐이야. 활짝 웃어버리면 눈이 깜빡 감겨버려서 네가 시야에서 잠깐 사라지고 말지만, 그만큼이나 기쁘다고 말하고 싶으니까. 정말 새삼스럽게, 네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게 너무 기뻐서.
"그거, 다들 누구냐고 난리여서..."
포스트잇 이야기에 순식간에 얼굴을 붉히면서, 고개를 조금 떨궈버리고 말았어. "저기." 조그만 목소리와 함께, 집게손가락 하나로 방송부실 벽면에 걸려있는 화이트보드를 가리켜. 네가 써 붙였던 그 포스트잇이 그 화이트보드 한가운데에, 포스트잇을 돋보이기 위한 낙서들과 함께 붙어있었어. 어제만 해도 내 이름 옆으로는 아무것도 체크되어 있지 않았던 벌점 표에도 짓궂은 하트 모양의 체크가 붉은 보드마카로 여러 칸 채워져 있었고, 주간 일정표와 월간 일정표에는 이상한 일정들이 잡혀 있었어. '백도아양 열애 논란 기자회견'이라거나, '○○고등학교 방송부의 연애 상담' 같은.
짓궂은 장난으로 붉혀버린 부끄러움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물어본 이유가 무엇인지 너무나도 잘 보이는 네 물음이 들려와. 그래서 얼굴은 여전히 붉히고 있는 채였으면서도 네 장난기 어린 웃음과 똑 닮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거렸어.
네가 꾸며준 머리를 하고 무대에 오를 생각을 하고 있던 소년은, 네가 홍당무가 되어 가리켜보인 화이트보드를 바라보더니 그만 너와 똑같은 얼굴로 활짝 웃어버리고 말았다. '웃기다' 는 느낌뿐만이 아니라, 말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를 어떤 감정들, 행복, 조금의 부끄러움, 조금의 따뜻한 마음, 그런 것들이 섞여서... 소년의 한가득 웃음이 담긴 얼굴에서 조금 넘쳐흐른 감정이 조금 쑥스럽게, 홍조가 피어 발개진 얼굴에서 킥킥대는 웃음소리로 새어나왔다.
"같이 나가줄까? 아니면, 저 날에는 널 좀더 일찍 데리러 갈까?" 키들대고 웃던 소년은, 얼굴에 장난스런 웃음기가 함뿍 담긴 채로 다시 너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는 홍당무처럼, 아니, 해당화 꽃처럼- 똑 닮은 웃음을 너무나 곱게도 띄고서 발그레하게 피어나 있는 너를 보고는 팔을 벌려주었다. 어디선가 서늘한 메론향이 옅게도 피어 네 코끝에 걸린다. 생각을 거치지 않은 자연스러운 동작이었다. 그래야만 한다는 듯이. 네가 온 눈에, 온 마음에, 한꺼번에 너무 많이 번져와서. 고운 웃음을 웃는 채로 웃는 네가 너무 예뻐서.
그는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너를 가만히 안은 채로, 조금 더 너에게 가까워져서는. 그러나 그는 그 이상 다가오지 않고, 거기서 가만히 멈추어섰다. 마치 발치 언저리에 멈춰서서 사람이 손길을 뻗어주길 기다리고 있는 고양이 같은 태도였다. 그의 뺨에 네가 열꽃으로 피어 있었다. 거기서 멈추어서서는, 그는 너를,
"도아야."
하고, 나직이 불러보는 것이다. 조심스럽게, 조금 애닳는 마음으로. 너와 같이 있을 때 행복하면, 너와 같이 이런 시간을 보내는 게 기쁘면, 이걸 사랑이라고 말하면 되는 걸까?
도아의 덕분 아니겠습니까 사돈어른... 피곤할 텐데, 답레는 나중에 줘도 좋으니까 우선은 푹 쉬고, 도아주가 답레 주고 싶을 때 줬으면 좋겠어!
응, 정주행해보니 그 부분은 내가 기말을 중간으로 착각한 거였어.. 이현주는 바보가 맞았습니다.. 굳이 시간을 다시 앞으로 되돌릴 이유는 없을 것 같으니까(꽃놀이는 내년에 가기로 하고) 여름을 즐기자uu! 여름에 해보고 싶은 것들이 많거든. 수학여행이라던가 여름방학에 바닷가로 놀러간다던가 기타등등
>>329 그리고 실제로 이현이가 그런 사태를 일으키진 않을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좋아..!! 도아 심약한 건 이현이도 이현주도 잘 알고 있으니까.
네 품에 꼭 안겨서, 부끄러움을 진정시키려는 듯 널 꼭 끌어안았어. 한 번 널 안고 있는 팔에 힘을 꼭 주다가, 자연스레 힘이 빠지면 그 품에서 가만 너를 올려다봤어. 조금 늦은 답을 조곤조곤 너에게로 날려 보내. "그래도 돼?" 그랬다가 모두에게 들키면 큰일 날 지도 모르잖아. 널 조금이라도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은걸. 아냐, 사실은 거짓말이야. 그래 줬으면 좋겠어. 아무것도 모르는 척, 내가 정말 좋아하고 있는 아이가 너라고 말하고 싶어. 널 생각하면 선생님의 필기가 빼곡한 칠판에도 한 아름 꽃이 피어버린다고 말하고 싶어. 널 향한 마음이 시도 때도 없이 피어나 버리고 있단 말이야. 아침 일찍 피는 나팔꽃보다도 먼저 피어서, 밤에 반짝이는 달맞이꽃과 같이 계속 피어있다고. 이 욕심이 네게 드러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네가 알아줬으면 하기도 해서 차마 표정에서까지는 못 숨겼을까.
고개가 조금 기울어서 네가 나한테 가까워지면, 이윽고 거기서 네가 가만 멈추어 서도 내 이름을 불러준다면. 나도 너한테 가까워질 방법은 있으니까, 발 뒤꿈치를 들어 올리는 거야. 해도 될까, 말까. 잠깐의 망설임 끝에 눈을 지그시 감아버리고, 그렇게 네 뼘에 살포시 입 맞추는 거야. 꽃잎 위에 나비가 내려앉듯이 조심스레, 그런데도 흔들리고 마는 꽃잎만큼 간지럽게. 네 뺨이 꽃잎 색만큼이나 예쁘게 물들어 있어.
"응, 현아."
네 부름에 두 번째 답을 하면서, 발 뒤꿈치를 내리기 전에 너를 안을 때와 똑같이 웃었어. 수줍을 한 조각, 장난기를 한 움큼, 널 좋아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온갖 간지러운 마음을 한 아름씩 품고 있는 그런 웃음이야.
이현이가 귀엽고 사랑스러웠던 만큼 달달하게 해보려고 했는데....... 됐으려나 u.u........ 달았으면 좋겠다고 바라고 있어 u.u
도아는 모르지만 "응, 현아." 라고 대답한 건 '이걸 사랑이라고 말하면 되는 걸까?' 라고 끝난 답레에 대한 뒷사람의 사심이 잔뜩 들어간 대답이야.
그리고 가끔 생각해봤는데, 이현이가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거... 도아 머리색이랑 눈색은 현실에서 거의 불가능한 쪽의 컬러링이니까, 도아도 판타지 요소...라고 할까, 그런게 전혀 없는 건 아니니까..... 사람이 아니다! 에 비하면 작은 판타지 요소이기는 하지만. 이현주가 너무 많이 고민하고 있을까봐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었어!
그렇게 많이 걱정하지는 않았어. 걱정해줘서 고마워! 이현이도 꽤나 눈색과 머리색이 현실이랑 동떨어져 있는걸. 그래서 그냥 현이랑 도아가 있는 세계선은 (코로나바이러스도 없고) 머리색과 눈색이 우리가 있는 세계보다 더 자유분방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어. 그래도 그런 비일상적인 변칙 모먼트는 어디까지나 플레이에 즐거운 양념이 될 정도로만 넣고 싶은데, 그 '정도' 라는 걸 이현주가 잘 컨트롤할 수 있을지 조금 고민됐을 뿐이야. 도아주가 걱정할 정도로 고민하고 있진 않았지만, 걱정해 줘서 고마워! 음, 그래도 그렇게 말해주니 머리는 마음껏 예쁘게 꾸며줄 수 있겠다 ^▽^
두 번째의 미소에는 장난기가 없었다. 그저 순전한 애정만이, 소년 스스로는 아직 정의하지 못하는 감정만이 부드럽게 묻어있었다. 문득, 연애하고 있다는 사실을 남들에게 말해도 괜찮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추장스러운 날개를 내려놓아도 괜찮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천 명이 들어찬 콘서트홀에서 노래해도 공허하던 마음에 백도아가 가득 피어났다고,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별들 사이로 도아의 얼굴이 보인다고 시인해도 좋을 것 같았다. 이현은 문득 손을 들어 네 뺨끝을 살며시 쓸어보았다. 자신을 향해 피어있는 네가 너무 예쁘다고 생각해서, 어떤 말로도 어떤 가락으로도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소년은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고 너를 받아줄 뿐이었다.
네 꽃잎이 뺨 위에 한 잎 내려앉았을 때는, 울렁거리는 가슴에 떨리는 숨마저도 열에 겨워 소년은 조금 어지럽다고 생각했다. 이미 가슴속에 네가 이렇게나 많이 피어있는데 네가 얹어주는 이 사랑이 너무도 가슴을 벅차게 했다.
"...머리, 네가 머리 꾸며준다고 했는데."
소년은 조심스레 말을 흘리며, 네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네 웃음에 담겨있는 게 무언지 알아버릴 것만 같아서. 그것이 내 속에도 이미 한가득 피어있다는 것을 알아버릴 것만 같아서. 이러다가 널 안고만 있다가 시간이 다 지나버리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