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랑 놀자. 난 너무나 슬퍼...” “난 너하고 놀 수가 없어. 난 길들여지지 않았단 말야.” “아. 미안해... 길들인다는 게 무슨 뜻이야?” “넌 여기 아이가 아니구나. 넌 무엇을 찾고 있니?” “난 사람들을 찾고 있어. 길들인다는 게 무슨 뜻인데?” “그건 너무나 잊혀져 있는 거지. 그건... '관계를 맺는다' 는 의미야.”
☞ 이 어장은 두 레스더의 상호교류 및 합의하에 세워진 1:1 스레입니다.
상황극판 규칙
☞ 상황극판은 익명제입니다. 본인이나 타인의 익명성을 훼손하는 행위는 삼가주세요. 하지만, 자신의 위치(스레주/레스주) 등을 밝혀야 할 상황(잡담스레 등에서 자신을 향한 저격/비난성 레스에 대응할 시 등)에서는 망설이지 말고 이야기해도 좋습니다. ☞ 서로를 존중하고, 자신이 먼저 배려하는 마음가짐을 가집시다. 모니터 너머의 이용자도 당신처럼 '즐겁고 싶기에' 상황극판을 찾았다는 것을 기억해주세요. 모두 두루두루 친하게, 잘 지냅시다. 말도 예쁘게해요, 우리 잘생쁜 참치들☆ :> ☞ 상황극판은 성적인/고어스러운 장면에 대해 지나치게 노골적인 묘사를 허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약물과 범죄를 미화하는 설정 또한 삼가해주세요. ☞ 상대방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은,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행동이 결코 아닙니다. 바람직한 상판을 가꾸기 위해서라도 서로에게 관심을 가져주세요. 다만 잡담스레에서의 저격이나, 다른 스레에서의 비난성 및 저격성 레스는 삼갑시다. 비난/비꼬기와 비판/지적은 다릅니다. ☞ 상황극판의 각 스레는 독립되어 있습니다. 특정 스레에서의 인연과 이야기는 해당 스레 내에서만 즐겨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잡담스레에서 타 스레를 언급하는 일도 삼가도록 합시다. 또한 각 스레마다 규칙 및 특징이 다르기 마련입니다. 해당 스레의 이용자들에게 문의해주시고, 그 규범에 따라 행동해주세요.
그 말을 들으면 널 볼 수가 없어서, 시선을 떨궈버리고 말아. 좋아하는게 뭔지 모르겠다고 했었던 네가, 어느새부터인지 좋아한다는 말을 하고 있어. 네가 날 좋아하고 싶다고, 사랑하고 싶다고 말했던 것을 기억해? 고맙다고도, 기쁘다고도 말하지 못하고 거짓말이면 안 된다고 응석부리고 말았잖아. 지금도 같아. 네가 말한 그 좋아한다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가 없어. 내 손을 잡으려하는 네 손길에 선뜻 손을 쥐어주지 못 하고 있는 나는, 뭐가 그렇게 머뭇거리게 만드는 지. 다만 피할 수도 없는 게 나라서, 네 손을 꼭 마주잡으면서 물어봐.
"좋다는 거... 뭔지 알 것 같아?"
그리고 물어보는 순간, 물어본 것을 후회했어. 네가 무슨 대답을 할 지 가늠도 가지 않고, 어떤 대답을 돌려줘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됐는데.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둘러대고 싶은데 말이 생각나지 않아. 별걸 다 물어봤다고 웃어넘길 수도, 쓸데없는 말을 했다고 웃어넘길 수 없어. 무슨 말을 해야할 지 모르겠는 동안 시간은 흘렀을 거고, 아무렇지 않게 덮어버리기에는 늦어버렸겠지. 우리 사이에서는 엄청 큰 질문이잖아. 정말 중요한 말인데. 분명 너한테 고백할 때는, 네 앞에서 생글생글 웃으면서 사랑스러운 모습만 보여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아... 응, 맞아. 내가..."
내가, 널 데려가고 있었는데. 발목만 적시고 있다고, 별로 깊지도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보면 가슴 아래까지 차올라있고는 해. 퍼뜩 정신을 차리면, 지금 같아. 고장났다고 밖에 말 못하겠어. 정말 물에 잠겨있기라도 했던 것처럼, 치맛자락에서 물기라도 짜내고 싶은 걸까. 치맛자락을 꼭 쥐었다가 놓고. 종이에 꾹꾹 글씨를 눌러 적는 것처럼 마음 속에 꾹꾹 새겨. 그럴 새 없어, 정신 차리자, 하고. 나 때문에 축제날 부스 운영까지 도와준 너잖아. "3학년 1반이 귀신의 집이고, 1학년 7반에 솜사탕 있다고 했었어. 3학년 3반이 포토존이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기억했던 걸 조금씩 꺼내봐. 원래 귀신의 집이 제일 인기 많은데, 네가 좋아할까. 아니, 괜찮을까. "공포 영화, 잘 봐...?"
도아주 학창 시절 축제를 그대로 가져왔어. 1학기 말에 축제를 하니까, 여름철인 만큼 귀신의 집이 제일 인기가 많았거든... 이현주는 그동안 잘 지내고 있었을까 모르겠다. 도아주는 현생에 정말, 정말 갈렸어. 하도 야근을 자주해서 도아주네 부서 임원급이... 도아주 바로 윗 상사한테 야근 시키지말라고 찔렀거든... 그래서 일 남으면 집에 가져와서 퇴근 후에 하고, 주말에 하고있고, 앞으로도 그렇겠지... 멘탈이 정말 펑 터졌는데 이제 좀 괜찮은 것 같아.
나는 잘 지내고 있고, 아무 문제도 없어. 걱정해줘서 고마워... 그렇지만 나는 지금 도아주가 너무 걱정이야.
퇴근 이후의 시간도 주말도 개인 시간도 모두 반납하고 일이라니. 퇴근하고 나서도 심지어 쉬어야 하는 주말에도 쉬지 않고 일을 시키는 거야? 그래서야 야근을 하던 때랑 다른 게 없잖아. 아니, 더 나빠. 그거 집에서도 회사의 지시로 근로했다는 사실을 본인 스스로가 제대로 증빙하지 못하면 회사가 그 부분을 악용해서 도아주가 받아야 할 초과근무수당을 나몰라라 할 수도 있는 거잖아.
도아주가 앞으로 바빠진다고 예고했을 때 도아주가 '일이 바빠지는 것은 감수해야겠지만 그것만 감수하면 업계에서 어느 정도 입지를 다질 수 있다' 는 뉘앙스로 말했던 것을 나는 기억하고 있고, 그래서 도아주의 사정을 다 알지는 못할지언정 도아주를 응원해주자고 생각했지만... 본인이 갈렸다고, 멘탈이 펑 터졌다고 표현할 정도면 마냥 응원만 하고 있을 수는 없어. 도아주가 이제 더이상 그걸 견뎌내고 있는 것 같지가 않아. 도아주 지금 일에 휩쓸려가고 있어.
어떤 업종인지 어떤 사정인지 모르기에 내가 뭐라 함부로 말을 얹지는 못하겠지만, 도아주, 초과근무수당에 대해서는 회사랑 분명히 이야기해서 받아내고, 재택근무 시간을 증빙할 수 있는 수단에 대해서도 생각해두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리고... 일이 너무 괴롭다면, 일을 그만두는 것도 고려해보는 게 좋을 것 같고.
아무래도 도아주가 석식비랑 야간교통비를 제일 많이 써서 그렇지 않을까 싶어. 야간교통비, 4-5만원 나오는데다 석식도 웬만하면 엄청 잘 챙겨먹었거든. 거기다 분기별로 주는 상여도 두번이나 타먹었고. 그렇다고 회사가 하는 짓이 정당하단 건 아냐. 이현주가 그렇게 말해줘서 정말 고마워. 일은 정말 그만두고 싶지만 사정이 있어서 아마 못 그럴거고, 이직도 같은 이유로 힘들어 u.u... 능력 인정은 받고도 남았지만. 재택근무 증빙은 걱정말아. 특근수당도 받아낼 거고. 돈이라도 제대로 줘야지 u.u...
사람을 밤늦게까지 일시킬 거면 당연히 식비랑 교통비는 줘야지. 특근수당도 다 타낼 거라고 하니 걱정을 야아아아악간은 덜었어. 그렇지만 도아주, 기왕 오지랖을 부린 김에 한 마디만 더 하자면... 돈을 많이 번다고 해서 일에 휩쓸려서 삶을 잊지는 말아줘. 일을 그만두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차선으로 이직을 고려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라고 생각해.
내가 도아주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곤 이야기를 들어주고, 응원해주고, 이따금 오지랖을 부리는 정도지만... 그래도 정말로, 나는 도아주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부둥)
소년은 네가 건넨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날 좋아하게 만들게. 네가 소년에게 건네어준 매 순간순간들이 그 말 위에 조금씩 켜켜이 쌓이고 있었다. 아무 것도 없는 백지 위에 8H짜리 연필만큼이나 흐릿하게, 힘도 주지 않고 사각사각 스치듯이, 그러나 너와 함께 보내는 매 순간마다 똑같은 자리에 한 획씩 한 겹씩 거푸 쓰여지는 사랑이라는 글자는 매 순간마다 조금씩 조금씩 너의 분홍색으로 짙어지고 있었다. 사랑을 모르는 소년에게, 사랑이라는 글자는 너로 쓰여지고 있었다.
네가 던진 그 질문이 또다시 한 겹, 소년의 가슴속에 남아 있는 그 말 위에 얹혔다.
그는 금색의 눈동자를 깜빡, 하며, 너를 가만히 바라보더니, 다시 너에게로 돌아섰다. 그리고는 따뜻하고, 애틋하게, 소년은 너를 품에 잠깐, 그렇지만 꼭 다가붙여 끌어안았다. 그게 소년의 대답이었다. 말은 필요없었다. 웃어넘길 필요도, 둘러댈 필요도, 대답할 필요도 없는. 꼭 다가붙은 소년의 품에서, 옅게나마 그의 심장박동이 전해져 오는 것만 같았다.
내가 너를 사랑하게 해 줘.
포옹은 길지 않았고, 그는 곧 당신을 품에서 놓아주었다. 그렇지만 꼭 쥔 손만은 놓지 않았다. 길을 모르는 체셔 고양이는, 물에 잠겨도 너와 함께 잠기고, 길을 헤메어도 너와 같이 헤메이길 원했다. 생글생글 웃는 사랑스러운 모습만으로 사랑을 쓸 수는 없는 법이기에.
"공포 영화..." 네가 꺼낸 질문에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 잠깐 뜸을 들이던 소년은, 이내 배시시 웃었다. "너랑 같이 보면 잘 볼 수 있을 것 같아."
가만 바라볼 뿐이었던 너의 시선에, 역시 괜히 물어봤다고 생각했어. 실수한 거라고, 늦더라도 대답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할 걸 그랬나 봐. 후회가 쏟아져서 무릎 아래까지도 잠기면, 네가 안아주는 거야. 아래로 떨궈, 물에 비친 그림자만 보고 있었는데 그림자가 둘이 된 거야. 물소리도 없었고, 일렁이지도 않았는데. 인제야 난 엄청 바보였다는 생각이 들어. 아직 여름이잖아. 네가 놓아주면 그림자는 다시 하나로 줄어들었지만, 난 이제 알고 있으니까 괜찮아. 네 품이 얼마나 따뜻한지도, 네 토라진 표정도, 밝게 물들인 네 볼의 색깔도.
"...나 많이 기대할 거고, 마음대로 오해할 거야."
너를 맘껏 좋아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봐. 네가 날 좋아할지도 모른다고 기대하면, 그 기대가 저버려졌을 때 너무 아플까 봐서 기대하지 않았던 거. 어떻게 날 좋아하게 만들겠다고 말한 사람이 그럴 수 있어. 끝을 생각하고서 먼저 겁내고 있었잖아. 그러니까, 겨울로 다 미뤄버릴 거야. 아직 모르는 일로 아파하느라 머뭇거리기 싫어.
네가 놓아준 게 무색하게, 이번에는 내가 꼭 너를 안아버렸어. 안고 있었던 시간은 너와 비슷했을 거야. 너를 꼭 끌어안았다. 놓고서는, 얼굴을 발갛게 물들였어. 좋아해, 입 모양으로 벙긋거리고는 웃어버려. 배시시, 웃음을 뚝뚝 떨어트리는 거야. 네 뺨이 언제까지고 이런 색이었으면 좋겠다고 했었지. 그때랑 지금이랑, 여태까지 늘 같았으면 좋겠다고 바라봐.
"그럼 가자!"
귀신같은 건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이미 어떻게 꾸미는지 조금 본 것도 있고, 무엇보다 네게 축제가 재미있는 기억으로 남았으면 좋겠어. 그러니까, 제일 인기 있는 부스를 빼놓고 갈 수는 없잖아. 잡은 손을 그대로 꼭, 놓치지 않고 3학년 1반이 있던 곳으로 발을 디뎌.
너무 늦게 본데다 손이 느려졌어....... 좀 쉴 수 있냐는 물음도 못 봤네 8-8 도아주네 집이...... 수도가 터져버려서 물부족 상태라, 물 길러 다녀왔었어. (이웃집으로) 다행스럽게도 내일 공사 일정이 잡혔는데, 하루 안에 끝날지는 모르겠대. 원래 오늘 하려했는데, 인부들이 안 나왔다나!!! @.@
너와 함께한 서툰 봄은 낯설면서도 기뻤고, 행복했다. 여름부터 가을까지도 그럴 거라고 생각해. 네가 기쁘고 내가 기쁘다면, 나는 너를 떠나지 않을 거야. 이현은 네가 품에 덥석 안겨오는 것을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마주 끌어안았다. 소년의 품 안은 여전했다. 네가 결심하듯 꺼낸 말에 소년은 나직이 대답했다.
"나도 그럴래."
때로는 절망하거나, 아파하거나, 머뭇대거나 오해하거나 주저하거나 절룩일 수도 있다. 그럴 수도 있고, 그래도 괜찮다. 그러나 너를 이렇게 살갑게 끌어안아 주는 소년을 보자면, 소년의 가슴 속 한가운데서 네 것과 똑같이 뛰고 있는 박동을 느끼고 있자면, 그렇게 심각하게 절망하거나 그렇게 오래 머뭇대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 마음껏 기대해도 좋을 만큼 전망은 긍정적이다.
네가 입모양으로 건넨 한 마디도, 볼을 붉히며 배시시 배어나오는 웃음도 소년은 단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분명 그의 눈동자는 짙은 금색일 텐데 네가 웃을 때에는 문득 그 색깔이 너와 같은 색깔인 것처럼 보였다. 그의 가슴에 네가 한번 더 씌워진다. 너를 따라, 그의 얼굴에 수줍은 행복이 담긴 미소가 걸린다. 언제까지고 그런 색이면 좋겠다고 너에게 빌었던 그 색깔이, 이제는 소년의 뺨에도 번지고 있었다. 이현은 문득 네게 다시 한번 입맞춰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응."
그러나 그는 그것을 잠깐 접어두고, 네가 이끄는 대로 네 손길을 따랐다. 그는 축제가 행복한 기억으로 남았으면 했고, 네가 자길 데려가고 싶은 곳이라고 한다면 행복한 체험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아니, 이미 너와 함께 다니는 그 자체가 그에게는 행복이었다.
3학년 1반으로 점점 가까워지다 보면, 아기자기한 축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학교 복도에 붉은 발자국이 섞여 있어. 내가 널 어디로 데려가고 있는지, 너도 짐작할 수 있을 만큼 발자국들을 쫓아가. 그럼 점점, 귀신의 집다운 소품들이 늘어나겠지. 헤진 검은 비닐을 천장에 늘어놓는다거나, 붉은 물감을 사용해서 창문에 손자국을 찍어놓는다거나. 3-1이라고 적혀있었을 명패에는 31병동이라고 적은 종이를 덧씌워놓았고, 복도에서 교실 안을 볼 수도 없게, 접근금지 테이프와 검은 비닐로 가려져 있었어. 매번 축제에서 인기 부스 타이틀을 달고 있는 만큼, 부스가 되어버린 교실 밖 복도에도 길게 대기 줄이 늘어 서 있어.
"현아, 그거 알아?"
"축제 부스 입장, 학생회랑 방송부는 우선권 있다?"
그러니까, 너랑 나는 기다릴 필요 없이 바로 들어갈 수 있어. 대기 줄을 그냥 지나쳐 가면서, 너를 살짝 뒤돌아보고는 뿌듯하게 웃는 거야. 축제 준비부터, 축제 당일까지 일하는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에 주어진 배려였지만, 여태 축제에서 이 배려를 제대로 활용해 본 적은 없었어. 근데 오늘 너랑 같이 보낼 시간에서, 그 덕택을 톡톡히 볼 수 있을 것 같아 들떠버린 거야. 그래서 조금 신난 걸음으로 부스 입구까지 갔을지도 몰라. 입장을 돕는 진행 역할의 도우미조차 분장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조금 놀라서 네 손을 꼭 쥐어버렸지만.
"우선 입장은 학생회랑 방송— 엌, 뭐야. 방송부에 토끼가 있었나?”
얼굴은 하얗게 칠하고, 눈가와 입술은 거멓게 칠한 남학생. 낡고, 핏자국이 튄 의사 가운을 입고서 안내 문구를 읊다가, 날 보고서는 그렇게 말하는 거야. 누군지 못 알아보고 있다가, 다시금 살펴보고서는 누군지 알아채. "우리 학교 밴드부 부장 선배!" 네게 소곤소곤, 저 남학생이 누구인지 알려주고, 그러고 나서 선배에게 인사를 꾸벅하면 다시 안내를 시작할 줄 알았는데. "방송부 토끼 하나, 친구 하나 우선 입장합니다~" 여전히 장난을 치고는 말아서. 평소 같았으면 이렇게 놀려도 받아치거나 했을 텐데, 옆에 네가 있어서, 부끄러운 게 커져 버려서 아무것도 못 하고.
"귀는 왜 쳐져 있어? 쫑긋 세워야 귀신 소리 잘 듣지. 친구는 고양이, 오."
애써 와이어를 구부려놓았던 토끼 귀가 선배의 손길에 의해 쫑긋 펴지다 못해, 이제는 너에게까지 고양이라며 말을 거는 거야. "론이잖아! 이거 론도 왔다 간 귀신의 집이라고 홍보해도 되나?"
붉은 발자국의 의도가 읽혀 이현의 입에 웃음이 걸렸다. 복도에 찍혀있는 이 발자국들 중에는 오늘 아침에 너와 같이 이상한 아르바이트를 했던 우리 반으로 돌아가는 발자국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네가 이끄는 붉은 발자국을 따르는 게 우선이었다. 너와 함께 걷고 있자면 피를 연상시키려고 한 듯한 빨간 발자국도 그냥 빨갛게 피어 있는 제라늄으로 보여서, 축제가 열리고 있는 마을의 꽃장식된 오솔길을 너와 함께 누비고 있는 기분이 들어서, 앨리스의 손에 이끌려 안내받는 이상한 세상이 조금 낯익게 느껴져서, 소년은 헤실헤실 웃으며 네가 이끄는 대로 너와 보폭을 맞춰 걸었다.
"아, 스태프 패스 같은 거구나."
소년은 금방 네 말을 이해했다. 작년 학교 축제에는-기억이 잘 안 나는데 참가했던가, 참가하지 않았던가?- 아마 참가하지 않았을 소년이기에 그에게는 모든 것이 생소했다. 아니, 사실은 참가했는데 그때는 네가 없어서, 딱히 기억할 만한 추억이 아니었기에 기억하지 않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올해의 학교 축제는 기억에 선명하게 남을 것 같다. 너와 함께 발을 맞춰서 걸어가는 한 발짝 한 발짝이 너무 특별했기에. 네가 흠칫 놀라며 쥐어오는 그 손에 실린 네 체온까지도 특별했기에. 하나도 놓치거나 잊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네 소개에 "안녕하세요." 하고 가볍게 인사치레를 건네준 그 의사가운 차림의 선배가 대뜸 네 머리에 씌워진 토끼귀를 잡고 더럭 펴버리자, 네 손안에 쥐여 있던 소년의 손이 크게 움찔했다. 자신도 모르게 목구멍으로 함부로 손대지 마요,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왈칵 치솟아올라왔다. 그 말을 뱉어야 할지 삼켜야 할지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그 선배의 손은 네가 접어놓은 토끼귀를 아무렇지 않게 펴버리고는 다시 거두어지고 있었고, 그는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소년의 얼굴에 아주 잠깐, 표정이 사라졌다.
표정이 사라진 얼굴 위의 금색 눈이 선배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아주 잠깐의 응시였지만, 그 응시에는 누구라고 하더라도 순간 말문이 막힐 만한 안력이 있었다. 그러나 이내 그것은 소년의 얼굴에 다시 걸린, 다른 이에게 보여주기 위한 보기좋은 미소 속으로 사라졌다. 이현은 미소를 띠면서 조금 뒤늦게 한 발짝 앞으로 나서, 너와 그 선배 사이에 끼어들듯이 섰다. 밴드부 부장 선배가 건네어온 농에, 이현은 마주 농담조로 대답했다.
영업용 미소 모양의 가면 뒤로, 난생 처음으로 겪어보는 감정들이 와글와글 쏟아져들어온다. 당혹. 박탈감. 분노. 선배는 그저 친근한 마음에 짓궂은 장난을 쳤을 뿐인데. 그런 단순한 장난일 뿐인데. 겨우 그런 별 것도 아닌 일 하나만으로 질투와 독점욕으로 가득 채워진 녹색이 소년의 흉곽 안에서 독안개처럼 뭉클뭉클 피어올랐다. 너무도 생소한 통증이었다. 문득 이현은 직감했다. 자신과 너의 관계가 얼마나 알량하고 얄팍하며 위태위태한 것인지. 그리고 자신이 그 사실을 고통스럽게, 아니, 비통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까지.
소년은 혼란에 빠졌다.
뭔가 더 일이 잘못되기 전에, 소년은 네 손을 부드럽게 잡아끌며, 생각이 어지럽게 뒤섞이는 머릿속에서 억지로 멀쩡한 문장을 쥐어짜내어 선배에게 마지막으로 허락을 구했다.
"그럼 들어가봐도 되죠?"
/ 선배가 도아의 토끼귀를 펴려 했다- 하는 레스였으면 현이가 막는 걸로 끝났을 텐데, 완결형 상황이라 일이 커졌다..
네가 곧 이해한 듯이 답해준 말에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인 지 얼마나 지났을까. 아무리 길어도 고작 몇 분 밖에 안 지났을 텐데, 그때랑 다른 분위기라서. 쥐고 있던 네 손이 크게 움찔거렸을 때, 그때부터였나 봐. 세워진 토끼 귀가 신경 쓰여서 만지작거리다 보니까, 이상한 정적을 느꼈어. 분명 여긴 축제가 한창인 학교고, 제일 인기 있는 부스 앞에 서 있고, 푸름이 소란스러운 여름인데, 꼭 다 지워버린 것처럼 조용하게만 느껴져서. 뒤늦게서야 뭔가 이상하다고, 움찔거렸던 네 손을 꼭 잡아봤지만 네 표정을 볼 수가 없었어. 이상한 적막은 네 목소리로 깨졌지만, 너는 한 발자국 앞에 있어서 난 네 뒷모습밖에 안 보였으니까.
"아, 깜짝 놀랐네. 초면에 고양이는 좀 심했나?"
미안미안, 그렇게 사과를 건네는 선배의 목소리가 들려왔어. 네 표정이 보고 싶은데, 손이 왜 움찔거렸었는지, 물어보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어서 답답해. 내가 지금 선배와 너 사이에 끼어들어도 될까. 장난기가 많은 편인 선배라고 말할 걸, 아까 그저 밴드부 부장 선배라고만 일러준 게 화근이었을까. 넌 화가 났을까, 아니면 놀랐을까. 아예 다른 이유일 지도 모를 일이야. 잔잔한 수면 위에 톡 떨어진 깃털 하나가 물결을 일으켜서 일렁이는 것처럼, 어디서 작은 불안함이 하나 톡 튀어와서는 일렁거리고 있어. 네가 괜찮지 않으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함이라서 너를 꼭 잡고 말아. 잡고 있는 손 모양을 고쳐서, 네게 깍지를 낀 거야.
"잠깐, 들어가기 전에 이거 받고."
손전등 하나였다. 귀신의 집이 대부분 그렇듯, 안은 어두울 테니까. 나는 네가 선배를 껄끄러워하고 있을까, 싶어서 작게 한 발자국을 디뎠어. 네 옆에 설 수 있을 만큼만. 그러고서는 선배가 건네는 손전등을 받으려고 한 거야. 입장 직전이 되어버리면, '선배의 분장만 보고도 조금 놀랐었는데, 안에 들어가면 더 무섭겠지.' 라거나, '비명 지르면 어떡하지.' 같은 생각을 할 줄만 알았는데. 아니, 아까라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텐데, 지금은 한 가지 생각밖에 들지 않아. 안에 들어가고 나서 어두워지면, 네 표정을 더 볼 수 없을 텐데.
"괜찮아?"
그래서, 조심스럽게, 조그맣게. 네게 속삭이다시피 물어보면서, 널 바라보는 거야. 네 표정을 본다고 모든 걸 알아챌 만큼 눈치가 좋은 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표정조차 모른 채, 아무것도 묻지도 못한 채 지나가고 싶지 않아. 귀신의 집에 정말 입장해도 괜찮냐고 들렸을지도 모를, 너에게만 묻는 말이야. 오로지 네가 괜찮은지가 궁금해.
있다가 오후 축제때는, 아예 이현이가 만져준 머리로 진행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싶어졌어. 그러고보니 축제는 원래 사복이라는 느낌이라서 당연히 이현이랑 도아네 학교도 사복이겠지 생각했어. 그래서 이현이 교복 입고 온거 귀엽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교복입고 축제할 수도 있으니까... u.u....... 만약 사복이면, 도아도 사복...... 이긴 하려나....? (생각안해봄)
두 사람이 바닷가에서 노는 걸 보고 싶었던 이현주의 욕망이었습니다.. 제성합니다.. (도아 눈가려주기)
이현이 여름 사복스타일은 후드집업이나 오버핏 오픈카라 셔츠에 청바지 같은 단순한 스타일인데, 신발이나 가방 같은 걸로 포인트를 주거나 할 것 같아. 아마 이현이랑 데이트 나가자고 하면 볼 수 있을 것.. 이것은 도아주가 아니라 도아에게 하는 말에 가깝습니다만 지금 도아는 계약연애건 어쨌건 이현이의 애인이니까, 데이트 나가자는 말 정도는 아무 부담없이 해도 좋다구
>>284 짝사랑 1년 반 정도 하다가 고백한거면...... 데이트도 1달 반 정도 앓다가 신청할 수 있지 않을까?
다른 거 다 둘째치더라도 도아는 수영복이 제일 관건이지....... 뭘 입어도 물에 들어가는 순간 젖어서 몸에 달라붙거나 비치거나 하니까 어떻게든 꾸욱 옷이 몸에 안 붙게 떼어내려 붙잡고 있을 거 같아. u.u.......... 물에 안 들어가는 극단적 선택지 고르기가 있긴 하지만 도아주가 금지했습니다. 바다한테 실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