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랑 놀자. 난 너무나 슬퍼...” “난 너하고 놀 수가 없어. 난 길들여지지 않았단 말야.” “아. 미안해... 길들인다는 게 무슨 뜻이야?” “넌 여기 아이가 아니구나. 넌 무엇을 찾고 있니?” “난 사람들을 찾고 있어. 길들인다는 게 무슨 뜻인데?” “그건 너무나 잊혀져 있는 거지. 그건... '관계를 맺는다' 는 의미야.”
☞ 이 어장은 두 레스더의 상호교류 및 합의하에 세워진 1:1 스레입니다.
상황극판 규칙
☞ 상황극판은 익명제입니다. 본인이나 타인의 익명성을 훼손하는 행위는 삼가주세요. 하지만, 자신의 위치(스레주/레스주) 등을 밝혀야 할 상황(잡담스레 등에서 자신을 향한 저격/비난성 레스에 대응할 시 등)에서는 망설이지 말고 이야기해도 좋습니다. ☞ 서로를 존중하고, 자신이 먼저 배려하는 마음가짐을 가집시다. 모니터 너머의 이용자도 당신처럼 '즐겁고 싶기에' 상황극판을 찾았다는 것을 기억해주세요. 모두 두루두루 친하게, 잘 지냅시다. 말도 예쁘게해요, 우리 잘생쁜 참치들☆ :> ☞ 상황극판은 성적인/고어스러운 장면에 대해 지나치게 노골적인 묘사를 허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약물과 범죄를 미화하는 설정 또한 삼가해주세요. ☞ 상대방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은,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행동이 결코 아닙니다. 바람직한 상판을 가꾸기 위해서라도 서로에게 관심을 가져주세요. 다만 잡담스레에서의 저격이나, 다른 스레에서의 비난성 및 저격성 레스는 삼갑시다. 비난/비꼬기와 비판/지적은 다릅니다. ☞ 상황극판의 각 스레는 독립되어 있습니다. 특정 스레에서의 인연과 이야기는 해당 스레 내에서만 즐겨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잡담스레에서 타 스레를 언급하는 일도 삼가도록 합시다. 또한 각 스레마다 규칙 및 특징이 다르기 마련입니다. 해당 스레의 이용자들에게 문의해주시고, 그 규범에 따라 행동해주세요.
붉은 발자국의 의도가 읽혀 이현의 입에 웃음이 걸렸다. 복도에 찍혀있는 이 발자국들 중에는 오늘 아침에 너와 같이 이상한 아르바이트를 했던 우리 반으로 돌아가는 발자국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네가 이끄는 붉은 발자국을 따르는 게 우선이었다. 너와 함께 걷고 있자면 피를 연상시키려고 한 듯한 빨간 발자국도 그냥 빨갛게 피어 있는 제라늄으로 보여서, 축제가 열리고 있는 마을의 꽃장식된 오솔길을 너와 함께 누비고 있는 기분이 들어서, 앨리스의 손에 이끌려 안내받는 이상한 세상이 조금 낯익게 느껴져서, 소년은 헤실헤실 웃으며 네가 이끄는 대로 너와 보폭을 맞춰 걸었다.
"아, 스태프 패스 같은 거구나."
소년은 금방 네 말을 이해했다. 작년 학교 축제에는-기억이 잘 안 나는데 참가했던가, 참가하지 않았던가?- 아마 참가하지 않았을 소년이기에 그에게는 모든 것이 생소했다. 아니, 사실은 참가했는데 그때는 네가 없어서, 딱히 기억할 만한 추억이 아니었기에 기억하지 않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올해의 학교 축제는 기억에 선명하게 남을 것 같다. 너와 함께 발을 맞춰서 걸어가는 한 발짝 한 발짝이 너무 특별했기에. 네가 흠칫 놀라며 쥐어오는 그 손에 실린 네 체온까지도 특별했기에. 하나도 놓치거나 잊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네 소개에 "안녕하세요." 하고 가볍게 인사치레를 건네준 그 의사가운 차림의 선배가 대뜸 네 머리에 씌워진 토끼귀를 잡고 더럭 펴버리자, 네 손안에 쥐여 있던 소년의 손이 크게 움찔했다. 자신도 모르게 목구멍으로 함부로 손대지 마요,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왈칵 치솟아올라왔다. 그 말을 뱉어야 할지 삼켜야 할지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그 선배의 손은 네가 접어놓은 토끼귀를 아무렇지 않게 펴버리고는 다시 거두어지고 있었고, 그는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소년의 얼굴에 아주 잠깐, 표정이 사라졌다.
표정이 사라진 얼굴 위의 금색 눈이 선배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아주 잠깐의 응시였지만, 그 응시에는 누구라고 하더라도 순간 말문이 막힐 만한 안력이 있었다. 그러나 이내 그것은 소년의 얼굴에 다시 걸린, 다른 이에게 보여주기 위한 보기좋은 미소 속으로 사라졌다. 이현은 미소를 띠면서 조금 뒤늦게 한 발짝 앞으로 나서, 너와 그 선배 사이에 끼어들듯이 섰다. 밴드부 부장 선배가 건네어온 농에, 이현은 마주 농담조로 대답했다.
영업용 미소 모양의 가면 뒤로, 난생 처음으로 겪어보는 감정들이 와글와글 쏟아져들어온다. 당혹. 박탈감. 분노. 선배는 그저 친근한 마음에 짓궂은 장난을 쳤을 뿐인데. 그런 단순한 장난일 뿐인데. 겨우 그런 별 것도 아닌 일 하나만으로 질투와 독점욕으로 가득 채워진 녹색이 소년의 흉곽 안에서 독안개처럼 뭉클뭉클 피어올랐다. 너무도 생소한 통증이었다. 문득 이현은 직감했다. 자신과 너의 관계가 얼마나 알량하고 얄팍하며 위태위태한 것인지. 그리고 자신이 그 사실을 고통스럽게, 아니, 비통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까지.
소년은 혼란에 빠졌다.
뭔가 더 일이 잘못되기 전에, 소년은 네 손을 부드럽게 잡아끌며, 생각이 어지럽게 뒤섞이는 머릿속에서 억지로 멀쩡한 문장을 쥐어짜내어 선배에게 마지막으로 허락을 구했다.
"그럼 들어가봐도 되죠?"
/ 선배가 도아의 토끼귀를 펴려 했다- 하는 레스였으면 현이가 막는 걸로 끝났을 텐데, 완결형 상황이라 일이 커졌다..
네가 곧 이해한 듯이 답해준 말에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인 지 얼마나 지났을까. 아무리 길어도 고작 몇 분 밖에 안 지났을 텐데, 그때랑 다른 분위기라서. 쥐고 있던 네 손이 크게 움찔거렸을 때, 그때부터였나 봐. 세워진 토끼 귀가 신경 쓰여서 만지작거리다 보니까, 이상한 정적을 느꼈어. 분명 여긴 축제가 한창인 학교고, 제일 인기 있는 부스 앞에 서 있고, 푸름이 소란스러운 여름인데, 꼭 다 지워버린 것처럼 조용하게만 느껴져서. 뒤늦게서야 뭔가 이상하다고, 움찔거렸던 네 손을 꼭 잡아봤지만 네 표정을 볼 수가 없었어. 이상한 적막은 네 목소리로 깨졌지만, 너는 한 발자국 앞에 있어서 난 네 뒷모습밖에 안 보였으니까.
"아, 깜짝 놀랐네. 초면에 고양이는 좀 심했나?"
미안미안, 그렇게 사과를 건네는 선배의 목소리가 들려왔어. 네 표정이 보고 싶은데, 손이 왜 움찔거렸었는지, 물어보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어서 답답해. 내가 지금 선배와 너 사이에 끼어들어도 될까. 장난기가 많은 편인 선배라고 말할 걸, 아까 그저 밴드부 부장 선배라고만 일러준 게 화근이었을까. 넌 화가 났을까, 아니면 놀랐을까. 아예 다른 이유일 지도 모를 일이야. 잔잔한 수면 위에 톡 떨어진 깃털 하나가 물결을 일으켜서 일렁이는 것처럼, 어디서 작은 불안함이 하나 톡 튀어와서는 일렁거리고 있어. 네가 괜찮지 않으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함이라서 너를 꼭 잡고 말아. 잡고 있는 손 모양을 고쳐서, 네게 깍지를 낀 거야.
"잠깐, 들어가기 전에 이거 받고."
손전등 하나였다. 귀신의 집이 대부분 그렇듯, 안은 어두울 테니까. 나는 네가 선배를 껄끄러워하고 있을까, 싶어서 작게 한 발자국을 디뎠어. 네 옆에 설 수 있을 만큼만. 그러고서는 선배가 건네는 손전등을 받으려고 한 거야. 입장 직전이 되어버리면, '선배의 분장만 보고도 조금 놀랐었는데, 안에 들어가면 더 무섭겠지.' 라거나, '비명 지르면 어떡하지.' 같은 생각을 할 줄만 알았는데. 아니, 아까라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텐데, 지금은 한 가지 생각밖에 들지 않아. 안에 들어가고 나서 어두워지면, 네 표정을 더 볼 수 없을 텐데.
"괜찮아?"
그래서, 조심스럽게, 조그맣게. 네게 속삭이다시피 물어보면서, 널 바라보는 거야. 네 표정을 본다고 모든 걸 알아챌 만큼 눈치가 좋은 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표정조차 모른 채, 아무것도 묻지도 못한 채 지나가고 싶지 않아. 귀신의 집에 정말 입장해도 괜찮냐고 들렸을지도 모를, 너에게만 묻는 말이야. 오로지 네가 괜찮은지가 궁금해.
있다가 오후 축제때는, 아예 이현이가 만져준 머리로 진행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싶어졌어. 그러고보니 축제는 원래 사복이라는 느낌이라서 당연히 이현이랑 도아네 학교도 사복이겠지 생각했어. 그래서 이현이 교복 입고 온거 귀엽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교복입고 축제할 수도 있으니까... u.u....... 만약 사복이면, 도아도 사복...... 이긴 하려나....? (생각안해봄)
두 사람이 바닷가에서 노는 걸 보고 싶었던 이현주의 욕망이었습니다.. 제성합니다.. (도아 눈가려주기)
이현이 여름 사복스타일은 후드집업이나 오버핏 오픈카라 셔츠에 청바지 같은 단순한 스타일인데, 신발이나 가방 같은 걸로 포인트를 주거나 할 것 같아. 아마 이현이랑 데이트 나가자고 하면 볼 수 있을 것.. 이것은 도아주가 아니라 도아에게 하는 말에 가깝습니다만 지금 도아는 계약연애건 어쨌건 이현이의 애인이니까, 데이트 나가자는 말 정도는 아무 부담없이 해도 좋다구
>>284 짝사랑 1년 반 정도 하다가 고백한거면...... 데이트도 1달 반 정도 앓다가 신청할 수 있지 않을까?
다른 거 다 둘째치더라도 도아는 수영복이 제일 관건이지....... 뭘 입어도 물에 들어가는 순간 젖어서 몸에 달라붙거나 비치거나 하니까 어떻게든 꾸욱 옷이 몸에 안 붙게 떼어내려 붙잡고 있을 거 같아. u.u.......... 물에 안 들어가는 극단적 선택지 고르기가 있긴 하지만 도아주가 금지했습니다. 바다한테 실례지(?)
자기가 계약연애를 하자고 해 놓고서는 그것이 얼마나 얄팍한지를 엉뚱한 데서 깨닫고 엉뚱하게 좌절하다니. 참 웃기기 그지없는 꼬락서니다. 자신의 마음에 무지한 대가는 그렇게 때때로 조금씩 한 조각씩 천천히 징수되고 있었다.
집단으로 떠드는 이들 가운데서라도, 순간적으로 잠깐 침묵이 흐르는 때가 한 번쯤은 있는 법이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모두가 말을 잠깐 쉬는 타이밍이 일치하는 그 순간. 유럽권에서는 그것을 보고 낭만적으로 "천사가 지나갔다" 고 표현하던가. 그렇지만 그 잠깐의 침묵에는 천사가 지나갔다는 부드럽고 말갛기 그지없는 표현을 쓰기에는 네 피부로도 느낄 수 있을 만큼이나 살벌한 어떤 흐름이 있었다. 그가 화났다, 는 것을 알 수 있을 법한.
"미안이라뇨."
그러나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능청을 떠는 소년의 유순한 목소리에, 그런 기색은 마치 꺼져가는 이명처럼 흩어져 사라졌다. 그런데도, 괜찮아? 하는 네 물음에, 네 손안에 깍지가 끼여 꼬옥 쥐어져 있는 소년의 손이 다시 한 번 움찔한 것은 무슨 까닭일까. 이현은 손전등을 받아들며 조심스레 네게로 뒤돌았다. 머리 위에 쫑긋하게 튀어나온 고양이귀 아래로, 하얀수선화 꽃잎 빛깔을 닮은 머리카락 아래로 샛노란 눈동자가 너를 응시하고 있었다. 조금은 슬프고, 조금은 겁에 질린. 왜인지, 네게 죄의식을 갖고 있는 듯한 그런 눈빛이며 표정이었다.
"놀래켜서 미안해."
그것은 괜찮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아니었다. 그는 그 질문에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그 대신에 네 머리 위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는 방금 선배가 펼쳐놓았던 토끼귀를, 네가 신경쓰인다는 듯 만지작거린 토끼귀를 다시 잡고는 네가 그래놓았던 것처럼 살며시 접어내리려 했다.
>>291 그러면 도아, 건네받은 거 고맙다고 받아서 두르려다 이현이 그대로 있으면 바로 다시 이현이한테 둘러주지 않을까..... 나 <<< 너 라고 생각하는게 도아니까. 자기 부끄러운 거보다는, 이현이 감기 걸릴까 하는게 더 우선이지 u.u! 위에 꼭 묶어서 망토마냥 만들거 같고. ((비치타월 실수로 하나뿐이면 어떡하지))
>>293 ...한 장뿐이면 서로가 서로를 위해주다가 마음 상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을 것 같으니 타월 넉넉히 있는 걸로 하자..!! 이현: 나 감기 같은 거 잘 안 걸리는데. (키드득) 라는 소리가 무색하게 언제 이현이를 한번 앓아눕게 하고 도아 반응을 보고 싶은 못된 이현주입니다
다시 한번, 내 손 안에서 네 손이 움찔거리면 괜찮지 않다고밖에 생각 못 해서. 그런데도, 네가 답해주지 않았으니까 앞서 생각하지 말자고 아랫입술을 조금 깨물었어. 불안함이 일으킨 일렁임은, 파도 너울처럼 어딘가에서는 몸집을 잔뜩 키운 채로 덮쳐올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그렇게 되도록 두지 않으려고 깨물린 입술은, 뒤돌아준 너에게 웃어주려고 했는데. 널 마주하는 순간 그러려던 사실을 잊어버리고 말았어. 네 표정을 알고 싶었지만, 어째서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지 모르겠어. 화가 났거나, 놀랐을 거로 생각했었는데. 지금에 와서는, 네 표정에서 찾을 수 있는 건 오히려 슬픔인데.
네가 그렇게 바라보면서 사과하면, 난 가슴 깊숙한 아래 어딘가에서 울렁거리고 말아. 울렁일 뿐인데, 분명 아픈 것이 아닌데 아픈 것만 같아서. 네 사과에 고개를 저었어. 사과를 받아주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라, 네가 왜 사과를 하는지 알 수 없어서. 네가 그런 표정을 짓는 이유는, 네가 사과를 하는 이유라는 같을까. 물어보지도 못할 말을 울렁거림 속으로 밀어 넣고, 네 그 표정을 계속 바라보고 있을 자신도 없어서 고개를 떨어트리고 말아. 좋아하는 사람이 나에게 미안해한다는 거, 엄청 힘든 일이잖아.
"여기 말고 다른 데 가도 돼."
너를 따라 했어. 괜찮냐는 질문에 사과한 너를 따라서, 네 사과에 다른 말을 하는 거야. 축제에서 인기가 많다는 이유로 왔을 뿐이니까, 네가 싫다고 한다면 인기가 많은 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잖아. 그러다가, 머리 위에 쓰고 있는 머리띠에서 네 손길이 머무르고 있단 걸 눈치채.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금방 알 수 있어서, 네 손길에 접어 내려진 토끼 귀를 만지작거려. 내가 신경 쓰여 했단 걸 기억해준 걸까, 싶어져서. "귀, 고마워." 만지작거리다, 나직하게 네게 한 마디를 건네.
대답이 조금 늦었다. 소년의 가슴속은 아직도 와글와글 시끄러웠다. 너에게 누군가가 손을 댈 때 치솟아오른 독기어린 분노의 갈피를 소년은 아직 잡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마음속 한켠에선 계약이라지만 나는 네 애인인데, 네게 함부로 손대는 사람이 있으면 화 좀 내도 되는 거잖아- 하는 볼멘소리 가득한 항변이 울리고 있었지만, 소년은 그게 과연 이치에 맞는 것인지도 알지 못했다. 너에게 그 정도의 독점욕을 느껴도 되는 것일까. 자신이 바락 쏟아버린 성질에 여린 네가 깜짝 놀라지 않았을까, 그게 두려웠고, 그 두려움이 네게 영문모를 사과를 건넨 이유였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를 이런 데서 구구절절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는 그 대신 그저 다 괜찮다는 것을 전해주려는 듯, 네 손을 부드럽게 꼬옥 거머쥘 뿐이었다.
"그러니까 도아가 날 데려가고 싶은 데로 데려가 줘."
너와 함께라면 떠들썩한 곳이건, 인기많은 곳이건, 단 둘이 있을 수 있는 곳이건 어디든 좋을 것 같아. 오후에 있을 학교 장기자랑 콘서트까지 남은 시간이 그렇게 짧지는 않았지만, 준비하는 데 걸리는 시간까지 생각하면 긴 것도 아니었다. 그 시간 동안 너와 이 곳에서 즐거울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했다. 그러다 네가 나직하게 감사인사를 건네자, 소년의 얼굴에 걸쳐져 있던 쓰라린 기색이 곱게 옅어졌다.
"고맙긴."
하더니, 그는 네게로 고개를 기울여선 조심스레 속삭였다.
"난 네 남자친구니까."
입구 옆에 어정거리며 서 있는데, 지금 이 순간은 왜인지 아무도 두 사람이 여기 있는지 모르는 듯했다. 소년은 고개를 들었다. 이상한 일이다. 네가 조금 비치는 불안한 기색에 그렇게나 마음이 쿵 떨어졌는데, 네가 팔랑팔랑 실어보내는 한 마디에 언제 그렇게 처참하게 추락했냐는 듯 마음이 피어나는 것이다.
"정말 괜찮아졌어."
하고 그는 대답했다.
// >>147에서 말했듯 이현이와 함께 있다 보면 이따금 조금씩 이상한 일이 벌어지곤 하는데, 이런 것들 괜찮아? // 귀신의 집으로 들어갈지 아니면 다른 곳으로 갈지는 도아의 선택이긴 한데, 그런 이상한 일들을 좀더 보고 싶다거나.. 아니면 보기 싫다면 그건 도아주가 생각해서 나한테 말해줘! // 답레가 많이 늦어졌네, 미안해..
네게 축제가 어떤지 알려주고 싶었어. 네가 론이 아니라, 이현이 너로서 축제에서 즐거운 기억을 가져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네가 그렇게 말해버리면, 나는 너랑 둘이 있고 싶은 욕심쟁이라서, 꽃봉오리가 가득 물고 있는 게 달콤한 꿀이 아니라 널 향한 욕심이라서. 그래도 괜찮을까, 머릿속이 어지러워서, 아득해져서, 네가 꼬옥 내 손을 거머쥐면 그 손을 위로 끌어왔어. 네가 좋아, 현아. 욕심부려도 돼? 아니, 욕심 부릴 거야. 네 손을 두 손으로 그러쥐어서, 고개를 기울여서 내 뺨이 고스란히 닿도록. 그러고서는 잠시 눈을 꼭 감았어. 욕심쟁이라서 미안해. 오늘, 네 축제에는 나밖에 없을지도 모르겠어.
"그럼, 오늘은 방송부실로 도망가자."
점심시간에서 한 시간 전까지는, 그러니까 너와 내가 같이 있을 수 있는 시간까지는 방송부실은 조용할 거야. 점심시간 안내 방송을 시작으로 방송부는 오후의 공연 축제 때문에 바빠지겠지. 필요한 건 전부 강당으로 옮겼고, 리허설도 어제 엄청나게 했어. 본 무대 전에 한 차례 더 있는 리허설도 원래는 4교시였을 시간과 점심시간 동안 진행될 거고. 바빠짐의 시작인 점심시간 안내 방송도, 점심 방송도, 아나운서는 나니까. 올 사람 아무도 없는걸. 오늘 너랑 나랑 숨을 곳은 방송부실이야. 그러다가, 도망가자, 꼭 그렇게 속삭이듯 네 손에 뺨을 부빈 건 널 따라했을지도 몰라. 꼭 지금도 너랑만 단둘이 있는 것 같아서 불쑥 용기가 났을지도 몰라.
그리고 네 속삭임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얼굴을 붉히다가, 시선을 맞추지 못하다, 늘 부끄러워하던 그 모습을 여실히 비추다가, 그제야 난 뒤 늦게서야 네가 왜 움찔거렸는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어. 선배가 네게 장난을 쳐서가 아니라, 내 머리띠 때문인가 봐. 선배가 내 머리띠를 만져서 그런가 봐. 나도 누가 네 머리띠로 장난을 친다고 생각하면, 괜찮을 수가 없을 거 같아. 나도 하고 싶고, 내가 네 여자친구니까 엄청나게 질투 났을 거야. 너도 그런 기분이었던 거야?
"현아, 그럼 나—"
"머리 꾸며줄 수 있어?"
네가 마음껏, 하고 싶은 대로 묶어도 되고, 핀을 꽂아도 상관없어. 왜냐하면,
"넌 내 남자친구고, 난 네 여자친구잖아."
소곤소곤, 네가 했던 말을 고스란히 돌려주었어. 그다음에는 두 손으로 꼭 잡고 있던 네 손에 좀 더 꼭 뺨을 기대고서, 분홍빛 눈을 꼭 숨기면서 웃어버리는 거야. 네가 내 남자친구고, 내가 네 여자친구라는 말이 너무 간지러운 거 있지. 계약이라고 해도, 일방적이라고 해도, 아픈 건 전부 미뤄버리기로 했으니까. 게다가 네 목소리로, 네가 내 남자친구라고 말해준 게 너무 기뻐서. 그래서, 그 기쁜 만큼, 네가 좋은 만큼 사랑스러움을 가득 머금고서 말갛게 웃어버렸어.
도아주는 짝사랑하고 싶다! 란 생각만 하고 캐릭터 설정도 없이 무작정 자유 상황극에 글을 던졌던 거라, 도아는 그때서야 짜인 캐릭터이기도 하고... 열심히 짝사랑하고 있으니까 딱히 안 괜찮을 것도 없다고 생각해 u.u! 세계관 쪽도 짜야한다면 맞춰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