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랑 놀자. 난 너무나 슬퍼...” “난 너하고 놀 수가 없어. 난 길들여지지 않았단 말야.” “아. 미안해... 길들인다는 게 무슨 뜻이야?” “넌 여기 아이가 아니구나. 넌 무엇을 찾고 있니?” “난 사람들을 찾고 있어. 길들인다는 게 무슨 뜻인데?” “그건 너무나 잊혀져 있는 거지. 그건... '관계를 맺는다' 는 의미야.”
☞ 이 어장은 두 레스더의 상호교류 및 합의하에 세워진 1:1 스레입니다.
상황극판 규칙
☞ 상황극판은 익명제입니다. 본인이나 타인의 익명성을 훼손하는 행위는 삼가주세요. 하지만, 자신의 위치(스레주/레스주) 등을 밝혀야 할 상황(잡담스레 등에서 자신을 향한 저격/비난성 레스에 대응할 시 등)에서는 망설이지 말고 이야기해도 좋습니다. ☞ 서로를 존중하고, 자신이 먼저 배려하는 마음가짐을 가집시다. 모니터 너머의 이용자도 당신처럼 '즐겁고 싶기에' 상황극판을 찾았다는 것을 기억해주세요. 모두 두루두루 친하게, 잘 지냅시다. 말도 예쁘게해요, 우리 잘생쁜 참치들☆ :> ☞ 상황극판은 성적인/고어스러운 장면에 대해 지나치게 노골적인 묘사를 허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약물과 범죄를 미화하는 설정 또한 삼가해주세요. ☞ 상대방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은,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행동이 결코 아닙니다. 바람직한 상판을 가꾸기 위해서라도 서로에게 관심을 가져주세요. 다만 잡담스레에서의 저격이나, 다른 스레에서의 비난성 및 저격성 레스는 삼갑시다. 비난/비꼬기와 비판/지적은 다릅니다. ☞ 상황극판의 각 스레는 독립되어 있습니다. 특정 스레에서의 인연과 이야기는 해당 스레 내에서만 즐겨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잡담스레에서 타 스레를 언급하는 일도 삼가도록 합시다. 또한 각 스레마다 규칙 및 특징이 다르기 마련입니다. 해당 스레의 이용자들에게 문의해주시고, 그 규범에 따라 행동해주세요.
그냥 갑자기 널 꼭 끌어안고 싶어서. 너는 네가 한가득 피어난 가슴팍에 너를 던졌고, 그런 너를 이현은 살며시, 그러나 마음껏 끌어안았다. 너는 아직도 조금 두렵고, 조금 낯설고, 조금은 불안해하고 있지만, 그래도 어느샌가 소년의 가슴속에 파종된 너는 어엿하게 자라난 모양이다. 너만큼이나 곱게 물든 뺨을 하고, 소년은 네가 되묻는 것처럼 나직이 콧소리로 대답했다.
"응."
너를 사랑한다고 아직 장담하지 못하는 소년이 낸 소리였지만, 달고 따뜻한 감정이 한 가득 담겨있는 소리였다. 눈을 깜빡깜빡, 하고, 가까이에서 네 분홍색 눈에 소년이 맺힌다. 그러니까, 너무 가까이에서. 어느덧 네가 끌어안고 너를 끌어안은 그 소년과 너와의 거리는 한 발짝도, 아니 손가락 한 마디만큼도 떨어져 있지 않았다. 소년의 속눈썹 갯수를 셀 수 있을 만큼. 반지르르한 그의 입술 표면이 들여다보일 만큼, 소년의 입에서 속살거리는 소리를 담고 나오는 숨결이 네 입술을 간지럽히기 충분할 만큼, 너와 소년의 거리는 가까웠다.
나는 내가 했던 것 중에 무엇이 네 마음을 톡 건드려버렸는지 몰라서, 한 번만 더 해달라는 네 말에 그저 가만있을 뿐이야. 가까이서 멈추어 서 있는 네게 더 다 가갈 수도, 뒤로 물러나는 것도, 그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서. 네 눈에 시선을 꼭 맞추고, 내 떨린 숨이 너에게 닿아버려 널 간지럽힐 동안 곰곰 생각해보고 있었어.
숨을 들이쉬면, 네 향기로 가득 차버리는 이 거리에서는 네게로 살짝 기울이기만 해도 닿아버리잖아. 그래서 조심스럽게, 깃털이 닿았던 것처럼 느껴질 수 있게. 네 뺨에 꼭 입맞춤이 아니라 그 흉내를 내는 것처럼 작게 입 맞췄어. 혹시라도 네가 너무 가벼워서 닿지 않았다고 착각할까 봐, 엄청 부끄럽지만, 입 맞추는 소리도 조그맣게 남겼어.
"...이거?"
한 번만 더 해달라는 거 말이야. 그리고는 잠시 발갛게 익은 마음이 두근대서 시선을 한 번 내렸어. 그러다가, 이번에는 네 품속으로 숨기라도 하는 것처럼 꼭 너를 안았어. 내 향기가, 네 향기가, 전부 섞여버려서 너무 달아. 아주 잠시, 다시 너와 눈을 맞출 수 있을 때까지 너를 안고 있다가 팔은 그대로 둔 채 힘을 빼. 힘을 빼면서, 너를 바라보면 하나 더 물어보는 거야.
소년은 너를 품 안에 폭 끌어안는다. 마치 너를 숨겨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소년에게서 숨기 위해 소년의 품에 파고들어가는 것이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소년은 기꺼이 너를 위해 자신의 품을 내어주었다. 내게서 잠깐 숨으려 택하는 곳마저도 나의 품... 이현은, 난생 처음으로 느껴보는 생소한 뿌듯함에 가슴속이 참을 수 없이 간질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도아야, 내 마음을 톡 건드려버린 건 네가 했던 어떤 행동이 아니라, 도아 너야. 그냥 너랑 같이 있는 이 순간이 견딜 수 없이 좋아서... 조금 바보같이 되어버려서... 그러니까, 내가 지금 너에게 해달라고 하는 건, 다시 한 번 마음을 건드려달라는 게 아니라, 바보같이 잔뜩 피어버린 이 마음을 조금이라도 베어먹어 달라는 거였어.
"네가 나한테는 하지 말라고 했던 거."
그래서 내가 너한테 할 수 없는 거. 소년은 품 속의 너를 바라보며 나직이 대답했다. 그렇지만 그것이 좋은 생각인지는 모르겠다. 그 향기가, 너와 소년의 숨결이 섞이는 순간이 너무 달다고 느끼는 것은 비단 너뿐만이 아니었으니까. 너무 달아서 어쩌면 중독되어 버릴지도 모르겠다고, 소년은 생각했다.
일부러 선택지를 주지 않았던 건데, 하지만 네가 그렇게 콕 집어 말해버린 이상 모른 척 시침을 뗄 수도 없어서. 초여름도 여름이었다는 걸 잊고 있었나 봐. 참을 수 없이 부끄러워서 숨어버린 곳이 네 품이라는 걸 잊고 있었나 봐. 내가 널 보지 못하고, 네가 내 눈을 볼 수 없다고 숨어진 것은 아닌데.
"그건... 이번이 마지막이야."
두 번은 못할 것만 같은데, 지금 그 두 번을 하는 거야. 그러니까 우선은, 더는, 이번을 마지막으로 안 해줄 거야. 말을 마치면서, 입술을 꾹 다문 채로 널 한 번 바라보았어. 눈을 한 번 깜빡일 동안 너와 눈을 맞췄다가, 내가 입을 맞춰야 할 곳으로 내려와. 네 목 옆과 꼭 눈싸움이라도 할 듯이 쳐다보다가, 눈을 꼭 감아. 정말 눈싸움이라도 했다면 내가 져버렸나 봐. 그리고는 힘을 뺐던 팔에 다시 힘을 주면서 쪽. 그러니까, 널 꼭 끌어안으면서 입 맞춘 거야. 그야 내가 다시 한번 네 목 옆에 닿았다가 향할 곳은 한 곳뿐인걸. 제대로 숨을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걸 알아도, 지금 너에게서 숨을 수 있는 곳이라고는 여전히 네 품 밖에 생각나질 않는단 말이야. 입 맞추고는 바로 고개를 숙여서 네 품 안으로 숨는 거야.
오랜만이야, 응. 소화불량(먹은 것도 없는데 부글부글 속이 끓어서 억울해)이 조금 있는 거 같긴 한데 말고는 잘 지냈어. u.u! 이현주는 잘 지냈어? 설 연휴도 잘 보내려나. 도아주네는 아무도 안 와도 차롓상을 차리겠다는 엄포와 김치참치만두를 드시고 싶다는 불호령이 있어서... 정말 설 당일 지나고서야 편하게 올 것 같네. 밤에는 올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 느낌 알지... 그럴 땐 소화제보다는 가스활명수나 탄산수 같은 걸 먹으면 조금 나아지더라구. 어디까지나 내 케이스지만. 잘 지냈다니 다행이다. 나는.. 응, 잘 기다리고 있었어. 우리 집은 그나마 설 연휴를 간소하게 보내려고 노력하는 편이라 다른 연휴와 크게 다름없는 연휴를 보내게 될 것 같아. 어머니가 꼬지전 굽는 걸 무슨 숭고한 사명이라도 되는 것처럼 여기고 있어서, 아무리 간소하게 보내도 명절에 꼬지는 있어야겠다고 강경하게 나오시는 바람에 완전히 편하게 보내진 못할 것 같지만. 응, 잠깐 들러가는 것이라도 좋아. 언제까지고 기다리고 있을 수 있어. 응답이 늦어서 미안해. 저녁식사하고 설거지까지 하느라 늦었네..
갑자기 발자국만 남긴 건..... 있다는 표시였는데 지금 생각하니 민망하네 u.u.... 가스활명수랑은 안 좋은 추억이 많아서, 탄산을 시도해볼게. 고마워 u.u 그나마 다행일까... 이현주에게는 연휴가 연휴답길 바랐는데 8.8 지금은 퇴근하면서 온 거니까, 들렀다가는 건 아냐. 오늘은 아마 계속 있을거야. 내일 아침 일찍부터 회의가 있어서 밤 늦게는 무리일거 같지만... 답이 늦은걸로 미안할 필요는 없는걸. 식사 잘 챙겨서 다행이야. u.u
엇갈리면 이현주가 속상해하니까 u.u....... 내가 자주 못 오는 편이기도 하니까 u.u.......... 쭉쭉 글을 쓰는 시간 찰나에 엇갈릴까 싶어서 u.u........... 응, 다행이다. 이번 설은 집합금지 때문에 더 모여서도 안 되니까 u.u! 저녁은 아직이야, 아직 퇴근길이거든. 퇴근하면 간단하게 챙기려고 해.
(부둥둥꼬옥) 아니, 그 정도는 괜찮아.. 난 꽤 오래 들여다보고 있는 편이고.. 속상해하다니 그 정도까지 걱정됐나 보구나. 너무 걱정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견딜 만하니까88... 아 아직 퇴근길이구나. 얼른 따뜻한 집에 들어와서 저녁 챙겼으면 좋겠다. 답레는 천천히 쓰고 있을게.
>>>정시퇴근한 적이 까마득<<< 이 부분에서 왠지 엄청 화가 나.. 나는 아무래도 좋으니까 도아주가 삶에 여유를 좀 갖게 됐으면 좋겠어. 도아주는 잠들어 있는 시간만 빼면 항상 일에 치여사는 것 같아서 내가 다 속상해.. 도아주가 괜찮다면 나라도 여기서 도아주를 맞아줄게.
아홉 시구나. 나도 집안인 마치면 그쯤 되겠다. 날씨도 춥고 빙판도 다 안 녹았을 텐데 조심히 들어와!
네 눈꺼풀이 감길 때는 소년도 길다란 속눈썹을 내리감았다. 이내 네 입 끝에 메론 냄새 같기도 하고, 화장품 냄새 같기도 한 달큰한 향이 걸렸다. 초여름 한 모금이 또 다시 네 입술에 와서 닿았다. 네 초여름이 거기 있었다. 서늘한 그늘이 드리운 학교 계단에는 너와 그 둘뿐이었다.
"응."
그는 나직이 대답하면서, 양 팔을 벌려 너를 품에 부드럽게 안았다. 소년의 향기가 그 품 안에 가득했다. 희미한 메론 냄새와, 숲에서 나는 냄새 같은 옅은 화장품 냄새가 소년의 살냄새와 부드럽게 엉켜서 소년이 입고 있는 드레스셔츠와 조끼 사이로 옅게 배어올라오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품 안에서 네가 나직이 한 한 마디, 더 없지, 하는... 어찌 들으면 차가운 선고처럼도 들리는 그 말에 소년은 문득 자기 자신을 실감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나는 아직 너를 제대로 품어줄 준비도 안 되었는데, 너도 아직 나를 버거워하고 있는데... 네가 너무 달아서 너에 눈이 멀어 욕심을 부렸다는 것을. 아직 너와 보내고 싶은 시간은 많이, 많이 남아 있는데.
"미안해."
네가 충분히 숨을 수 있도록 품을 오롯이 네게 내어주며, 이현은 시선을 떨구고는 나직이 중얼거렸다.
9시보다는 좀 늦었네... 답레는 늦게 줄 수 있을 것 같아. 오늘 안에 줄 수 있을지 장담할 수가 없어서, 이현주가 쉬러가고 싶다면 편히 쉬러가도 돼 u.u... 벌써 차롓상 장을 봐오셨을 줄은 몰랐는데...... 8.8... 재료 다듬기부터 하고는 해서, 응...... 할 수 있는 한 빨리 오겠지만 모를 일이니까...... 8.8
앗... (토닥닥) 응, 난 다른 일 하면서 느긋하게 밤늦게까지 있다가 1~2시 전후해서 자러 갈 것 같아. 명절 푸닥거리를 벌써부터 하는구나.. 아니, 이번 주말이니까 할 때도 됐네. 조급해할 필요 없어. 답레는 나아아아아중에 받아도 상관없으니까, 재료를 다듬는다면 칼을 쓸 텐데 손가락 조심해서 천천히...!
왜 사과하는지 모르겠어. 근데 사과하지 말라고도 말 못 하겠어. 네가 미안하다고 했을 때 심장보다 더 아래 어딘가가 욱신거렸는데, 그 이유를 모르겠어. 욱신거린 게 꽤 아팠나 봐. 눈물도 날 것만 같아. 너 때문인 것만 알겠는데, 네가 내 눈앞에 있어도 실마리는 잡히질 않아서. 그냥, 또 그렇게 생각할 뿐이야. 널 너무 많이 좋아해서, 좋아하다 못해 아픈가 보다. 하고. 널 꼭 끌어안고서 대답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 하지만 울먹이는 소리가 혹시라도 날까 봐, 그러기 싫어서 고개를 끄덕거렸어.
"...시간, 너무 잡아먹었지."
얼마나 네게 안겨있었는지는 몰라. 다만 욱신거림이, 욱신거림에서 비롯된 눈물이 가라앉기 기다릴 만큼의 시간이 필요했으니까, 그 시간이 짧지는 않았을 거 같아서. 조금 차분해지면 네 품에서 떨어지면서 어색하게 말을 건네.
"이제 가도 돼!"
"어디, 가고 싶은 곳 있었어?" "궁금하다거나, 재밌어 보였다거나 하는 곳." 일부러 말수를 조금 늘린 건, 난 내가 쉽게 빨개진다는 걸 잘 아니까. 더워서, 추워서, 부끄러워서, 그리고 지금처럼. 왠지 모르게 날 것 같다고 생각한 눈물을 참았으니까. 내가 서 있는 곳은 물에 잠겨있단 걸 잊으면 안 됐는데, 있지, 네가 나한테 조금은 가까워졌다고 생각해서 까먹고 있었나 봐. 조잘조잘 말하면서 방글 웃는 이유는, 네가 눈치를 못 챘으면 하는 거야.
네 손을 잡아주려고, 너를 그 물가에서 끌어내주려고, 그럴 수 없다면 너와 함께 그 물가를 거닐기라도 하려고 너에게 계속 손을 뻗고 있는데, 너에게 어떻게 손을 뻗어야 할지 모르겠어. 이 거리를 어떻게 좁히면 좋을지 모르겠어. 내 속에는 네가 이렇게도 많이 피었는데 나는 언제쯤 너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게 될까. 이렇게 가까이 붙어있는데 왜 손이 닿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까. 품에서 나직이 흘러나오는 네 눅눅한 말에, 소년이 할 수 있는 일은 얼마 없었다. 그저 네 등을 가만히 다독여주고, 네 목소리에 맞추어 나직이- 솔직한 대답을 들려주는 것뿐이다.
"상관없어. 너랑 같이 있기만 하면 그걸로 좋으니까."
하며, 그는 너를 품에서 놓아보낸다. 그러나 네가 너무 멀어질새라, 소년은 이내 조금 쭈뼛거리며 손을 내밀어오는 것이다. 네가 피하지 않는다면 그의 하얀 손길이 살며시 수줍게 네 손을 잡아오겠지. 도아야, 난 여기 있고 싶어. 네 옆에 있고 싶어. 너와 같이 있고 싶어. 수줍음 속에 이미 눈이 멀어버린 애절함을 담아서.
네가 재잘대는 말에, 소년은 눈을 깜빡이다 너를 보고 가만히 옅게 웃었다.
"네가 나를 데려가는 곳."
너랑 같이 있기로 했잖아. 하고 소년을 대답했다. 그러고 보면 그를 어디론가 데려가는 중이 아니었던가?
그 말을 들으면 널 볼 수가 없어서, 시선을 떨궈버리고 말아. 좋아하는게 뭔지 모르겠다고 했었던 네가, 어느새부터인지 좋아한다는 말을 하고 있어. 네가 날 좋아하고 싶다고, 사랑하고 싶다고 말했던 것을 기억해? 고맙다고도, 기쁘다고도 말하지 못하고 거짓말이면 안 된다고 응석부리고 말았잖아. 지금도 같아. 네가 말한 그 좋아한다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가 없어. 내 손을 잡으려하는 네 손길에 선뜻 손을 쥐어주지 못 하고 있는 나는, 뭐가 그렇게 머뭇거리게 만드는 지. 다만 피할 수도 없는 게 나라서, 네 손을 꼭 마주잡으면서 물어봐.
"좋다는 거... 뭔지 알 것 같아?"
그리고 물어보는 순간, 물어본 것을 후회했어. 네가 무슨 대답을 할 지 가늠도 가지 않고, 어떤 대답을 돌려줘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됐는데.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둘러대고 싶은데 말이 생각나지 않아. 별걸 다 물어봤다고 웃어넘길 수도, 쓸데없는 말을 했다고 웃어넘길 수 없어. 무슨 말을 해야할 지 모르겠는 동안 시간은 흘렀을 거고, 아무렇지 않게 덮어버리기에는 늦어버렸겠지. 우리 사이에서는 엄청 큰 질문이잖아. 정말 중요한 말인데. 분명 너한테 고백할 때는, 네 앞에서 생글생글 웃으면서 사랑스러운 모습만 보여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아... 응, 맞아. 내가..."
내가, 널 데려가고 있었는데. 발목만 적시고 있다고, 별로 깊지도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보면 가슴 아래까지 차올라있고는 해. 퍼뜩 정신을 차리면, 지금 같아. 고장났다고 밖에 말 못하겠어. 정말 물에 잠겨있기라도 했던 것처럼, 치맛자락에서 물기라도 짜내고 싶은 걸까. 치맛자락을 꼭 쥐었다가 놓고. 종이에 꾹꾹 글씨를 눌러 적는 것처럼 마음 속에 꾹꾹 새겨. 그럴 새 없어, 정신 차리자, 하고. 나 때문에 축제날 부스 운영까지 도와준 너잖아. "3학년 1반이 귀신의 집이고, 1학년 7반에 솜사탕 있다고 했었어. 3학년 3반이 포토존이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기억했던 걸 조금씩 꺼내봐. 원래 귀신의 집이 제일 인기 많은데, 네가 좋아할까. 아니, 괜찮을까. "공포 영화, 잘 봐...?"
도아주 학창 시절 축제를 그대로 가져왔어. 1학기 말에 축제를 하니까, 여름철인 만큼 귀신의 집이 제일 인기가 많았거든... 이현주는 그동안 잘 지내고 있었을까 모르겠다. 도아주는 현생에 정말, 정말 갈렸어. 하도 야근을 자주해서 도아주네 부서 임원급이... 도아주 바로 윗 상사한테 야근 시키지말라고 찔렀거든... 그래서 일 남으면 집에 가져와서 퇴근 후에 하고, 주말에 하고있고, 앞으로도 그렇겠지... 멘탈이 정말 펑 터졌는데 이제 좀 괜찮은 것 같아.
나는 잘 지내고 있고, 아무 문제도 없어. 걱정해줘서 고마워... 그렇지만 나는 지금 도아주가 너무 걱정이야.
퇴근 이후의 시간도 주말도 개인 시간도 모두 반납하고 일이라니. 퇴근하고 나서도 심지어 쉬어야 하는 주말에도 쉬지 않고 일을 시키는 거야? 그래서야 야근을 하던 때랑 다른 게 없잖아. 아니, 더 나빠. 그거 집에서도 회사의 지시로 근로했다는 사실을 본인 스스로가 제대로 증빙하지 못하면 회사가 그 부분을 악용해서 도아주가 받아야 할 초과근무수당을 나몰라라 할 수도 있는 거잖아.
도아주가 앞으로 바빠진다고 예고했을 때 도아주가 '일이 바빠지는 것은 감수해야겠지만 그것만 감수하면 업계에서 어느 정도 입지를 다질 수 있다' 는 뉘앙스로 말했던 것을 나는 기억하고 있고, 그래서 도아주의 사정을 다 알지는 못할지언정 도아주를 응원해주자고 생각했지만... 본인이 갈렸다고, 멘탈이 펑 터졌다고 표현할 정도면 마냥 응원만 하고 있을 수는 없어. 도아주가 이제 더이상 그걸 견뎌내고 있는 것 같지가 않아. 도아주 지금 일에 휩쓸려가고 있어.
어떤 업종인지 어떤 사정인지 모르기에 내가 뭐라 함부로 말을 얹지는 못하겠지만, 도아주, 초과근무수당에 대해서는 회사랑 분명히 이야기해서 받아내고, 재택근무 시간을 증빙할 수 있는 수단에 대해서도 생각해두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리고... 일이 너무 괴롭다면, 일을 그만두는 것도 고려해보는 게 좋을 것 같고.
아무래도 도아주가 석식비랑 야간교통비를 제일 많이 써서 그렇지 않을까 싶어. 야간교통비, 4-5만원 나오는데다 석식도 웬만하면 엄청 잘 챙겨먹었거든. 거기다 분기별로 주는 상여도 두번이나 타먹었고. 그렇다고 회사가 하는 짓이 정당하단 건 아냐. 이현주가 그렇게 말해줘서 정말 고마워. 일은 정말 그만두고 싶지만 사정이 있어서 아마 못 그럴거고, 이직도 같은 이유로 힘들어 u.u... 능력 인정은 받고도 남았지만. 재택근무 증빙은 걱정말아. 특근수당도 받아낼 거고. 돈이라도 제대로 줘야지 u.u...
사람을 밤늦게까지 일시킬 거면 당연히 식비랑 교통비는 줘야지. 특근수당도 다 타낼 거라고 하니 걱정을 야아아아악간은 덜었어. 그렇지만 도아주, 기왕 오지랖을 부린 김에 한 마디만 더 하자면... 돈을 많이 번다고 해서 일에 휩쓸려서 삶을 잊지는 말아줘. 일을 그만두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차선으로 이직을 고려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라고 생각해.
내가 도아주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곤 이야기를 들어주고, 응원해주고, 이따금 오지랖을 부리는 정도지만... 그래도 정말로, 나는 도아주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부둥)
소년은 네가 건넨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날 좋아하게 만들게. 네가 소년에게 건네어준 매 순간순간들이 그 말 위에 조금씩 켜켜이 쌓이고 있었다. 아무 것도 없는 백지 위에 8H짜리 연필만큼이나 흐릿하게, 힘도 주지 않고 사각사각 스치듯이, 그러나 너와 함께 보내는 매 순간마다 똑같은 자리에 한 획씩 한 겹씩 거푸 쓰여지는 사랑이라는 글자는 매 순간마다 조금씩 조금씩 너의 분홍색으로 짙어지고 있었다. 사랑을 모르는 소년에게, 사랑이라는 글자는 너로 쓰여지고 있었다.
네가 던진 그 질문이 또다시 한 겹, 소년의 가슴속에 남아 있는 그 말 위에 얹혔다.
그는 금색의 눈동자를 깜빡, 하며, 너를 가만히 바라보더니, 다시 너에게로 돌아섰다. 그리고는 따뜻하고, 애틋하게, 소년은 너를 품에 잠깐, 그렇지만 꼭 다가붙여 끌어안았다. 그게 소년의 대답이었다. 말은 필요없었다. 웃어넘길 필요도, 둘러댈 필요도, 대답할 필요도 없는. 꼭 다가붙은 소년의 품에서, 옅게나마 그의 심장박동이 전해져 오는 것만 같았다.
내가 너를 사랑하게 해 줘.
포옹은 길지 않았고, 그는 곧 당신을 품에서 놓아주었다. 그렇지만 꼭 쥔 손만은 놓지 않았다. 길을 모르는 체셔 고양이는, 물에 잠겨도 너와 함께 잠기고, 길을 헤메어도 너와 같이 헤메이길 원했다. 생글생글 웃는 사랑스러운 모습만으로 사랑을 쓸 수는 없는 법이기에.
"공포 영화..." 네가 꺼낸 질문에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 잠깐 뜸을 들이던 소년은, 이내 배시시 웃었다. "너랑 같이 보면 잘 볼 수 있을 것 같아."
가만 바라볼 뿐이었던 너의 시선에, 역시 괜히 물어봤다고 생각했어. 실수한 거라고, 늦더라도 대답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할 걸 그랬나 봐. 후회가 쏟아져서 무릎 아래까지도 잠기면, 네가 안아주는 거야. 아래로 떨궈, 물에 비친 그림자만 보고 있었는데 그림자가 둘이 된 거야. 물소리도 없었고, 일렁이지도 않았는데. 인제야 난 엄청 바보였다는 생각이 들어. 아직 여름이잖아. 네가 놓아주면 그림자는 다시 하나로 줄어들었지만, 난 이제 알고 있으니까 괜찮아. 네 품이 얼마나 따뜻한지도, 네 토라진 표정도, 밝게 물들인 네 볼의 색깔도.
"...나 많이 기대할 거고, 마음대로 오해할 거야."
너를 맘껏 좋아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봐. 네가 날 좋아할지도 모른다고 기대하면, 그 기대가 저버려졌을 때 너무 아플까 봐서 기대하지 않았던 거. 어떻게 날 좋아하게 만들겠다고 말한 사람이 그럴 수 있어. 끝을 생각하고서 먼저 겁내고 있었잖아. 그러니까, 겨울로 다 미뤄버릴 거야. 아직 모르는 일로 아파하느라 머뭇거리기 싫어.
네가 놓아준 게 무색하게, 이번에는 내가 꼭 너를 안아버렸어. 안고 있었던 시간은 너와 비슷했을 거야. 너를 꼭 끌어안았다. 놓고서는, 얼굴을 발갛게 물들였어. 좋아해, 입 모양으로 벙긋거리고는 웃어버려. 배시시, 웃음을 뚝뚝 떨어트리는 거야. 네 뺨이 언제까지고 이런 색이었으면 좋겠다고 했었지. 그때랑 지금이랑, 여태까지 늘 같았으면 좋겠다고 바라봐.
"그럼 가자!"
귀신같은 건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이미 어떻게 꾸미는지 조금 본 것도 있고, 무엇보다 네게 축제가 재미있는 기억으로 남았으면 좋겠어. 그러니까, 제일 인기 있는 부스를 빼놓고 갈 수는 없잖아. 잡은 손을 그대로 꼭, 놓치지 않고 3학년 1반이 있던 곳으로 발을 디뎌.
너무 늦게 본데다 손이 느려졌어....... 좀 쉴 수 있냐는 물음도 못 봤네 8-8 도아주네 집이...... 수도가 터져버려서 물부족 상태라, 물 길러 다녀왔었어. (이웃집으로) 다행스럽게도 내일 공사 일정이 잡혔는데, 하루 안에 끝날지는 모르겠대. 원래 오늘 하려했는데, 인부들이 안 나왔다나!!! @.@
너와 함께한 서툰 봄은 낯설면서도 기뻤고, 행복했다. 여름부터 가을까지도 그럴 거라고 생각해. 네가 기쁘고 내가 기쁘다면, 나는 너를 떠나지 않을 거야. 이현은 네가 품에 덥석 안겨오는 것을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마주 끌어안았다. 소년의 품 안은 여전했다. 네가 결심하듯 꺼낸 말에 소년은 나직이 대답했다.
"나도 그럴래."
때로는 절망하거나, 아파하거나, 머뭇대거나 오해하거나 주저하거나 절룩일 수도 있다. 그럴 수도 있고, 그래도 괜찮다. 그러나 너를 이렇게 살갑게 끌어안아 주는 소년을 보자면, 소년의 가슴 속 한가운데서 네 것과 똑같이 뛰고 있는 박동을 느끼고 있자면, 그렇게 심각하게 절망하거나 그렇게 오래 머뭇대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 마음껏 기대해도 좋을 만큼 전망은 긍정적이다.
네가 입모양으로 건넨 한 마디도, 볼을 붉히며 배시시 배어나오는 웃음도 소년은 단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분명 그의 눈동자는 짙은 금색일 텐데 네가 웃을 때에는 문득 그 색깔이 너와 같은 색깔인 것처럼 보였다. 그의 가슴에 네가 한번 더 씌워진다. 너를 따라, 그의 얼굴에 수줍은 행복이 담긴 미소가 걸린다. 언제까지고 그런 색이면 좋겠다고 너에게 빌었던 그 색깔이, 이제는 소년의 뺨에도 번지고 있었다. 이현은 문득 네게 다시 한번 입맞춰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응."
그러나 그는 그것을 잠깐 접어두고, 네가 이끄는 대로 네 손길을 따랐다. 그는 축제가 행복한 기억으로 남았으면 했고, 네가 자길 데려가고 싶은 곳이라고 한다면 행복한 체험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아니, 이미 너와 함께 다니는 그 자체가 그에게는 행복이었다.
3학년 1반으로 점점 가까워지다 보면, 아기자기한 축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학교 복도에 붉은 발자국이 섞여 있어. 내가 널 어디로 데려가고 있는지, 너도 짐작할 수 있을 만큼 발자국들을 쫓아가. 그럼 점점, 귀신의 집다운 소품들이 늘어나겠지. 헤진 검은 비닐을 천장에 늘어놓는다거나, 붉은 물감을 사용해서 창문에 손자국을 찍어놓는다거나. 3-1이라고 적혀있었을 명패에는 31병동이라고 적은 종이를 덧씌워놓았고, 복도에서 교실 안을 볼 수도 없게, 접근금지 테이프와 검은 비닐로 가려져 있었어. 매번 축제에서 인기 부스 타이틀을 달고 있는 만큼, 부스가 되어버린 교실 밖 복도에도 길게 대기 줄이 늘어 서 있어.
"현아, 그거 알아?"
"축제 부스 입장, 학생회랑 방송부는 우선권 있다?"
그러니까, 너랑 나는 기다릴 필요 없이 바로 들어갈 수 있어. 대기 줄을 그냥 지나쳐 가면서, 너를 살짝 뒤돌아보고는 뿌듯하게 웃는 거야. 축제 준비부터, 축제 당일까지 일하는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에 주어진 배려였지만, 여태 축제에서 이 배려를 제대로 활용해 본 적은 없었어. 근데 오늘 너랑 같이 보낼 시간에서, 그 덕택을 톡톡히 볼 수 있을 것 같아 들떠버린 거야. 그래서 조금 신난 걸음으로 부스 입구까지 갔을지도 몰라. 입장을 돕는 진행 역할의 도우미조차 분장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조금 놀라서 네 손을 꼭 쥐어버렸지만.
"우선 입장은 학생회랑 방송— 엌, 뭐야. 방송부에 토끼가 있었나?”
얼굴은 하얗게 칠하고, 눈가와 입술은 거멓게 칠한 남학생. 낡고, 핏자국이 튄 의사 가운을 입고서 안내 문구를 읊다가, 날 보고서는 그렇게 말하는 거야. 누군지 못 알아보고 있다가, 다시금 살펴보고서는 누군지 알아채. "우리 학교 밴드부 부장 선배!" 네게 소곤소곤, 저 남학생이 누구인지 알려주고, 그러고 나서 선배에게 인사를 꾸벅하면 다시 안내를 시작할 줄 알았는데. "방송부 토끼 하나, 친구 하나 우선 입장합니다~" 여전히 장난을 치고는 말아서. 평소 같았으면 이렇게 놀려도 받아치거나 했을 텐데, 옆에 네가 있어서, 부끄러운 게 커져 버려서 아무것도 못 하고.
"귀는 왜 쳐져 있어? 쫑긋 세워야 귀신 소리 잘 듣지. 친구는 고양이, 오."
애써 와이어를 구부려놓았던 토끼 귀가 선배의 손길에 의해 쫑긋 펴지다 못해, 이제는 너에게까지 고양이라며 말을 거는 거야. "론이잖아! 이거 론도 왔다 간 귀신의 집이라고 홍보해도 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