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길을 불러오고 암석으로 내려치며 기온을 영하 수준으로 내려버린다. 캐스터는 소위 재능이라 불리우는 오리지늄 아츠에 정통한 유능한 마법사다. 이런 기상천외한 아츠들은 대부분의 상황에 때리고 베는것보다 효과적인 공격법이라는걸 캐스터들은 알고있다. 하지만 한 분야의 아츠를 본격적으로 다루게 되는대에는 엄청난 고생이들며 그 본질을 깨우치는 것은 영원한 과제라는것 또한 알아야 진정한 캐스터라고 할 수 있다.」
도나는 의구심 가득한 눈빛으로 스승님과 스승님이 장바구니에 담은 젤리를 번갈아 보았어. 그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부럽다는 표정으로 바뀌었지만. 스승님은 뭘 좋아하나~ 하고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상품들을 구경하는데, 스승님이 자꾸만 뭘 사려다 말고 다시 내려놔. 왜 그러는 걸까?
"아~니. 구경하는 것도 재밌어요."
틀린 말은 아니었지. 도나에게는 모든 게 다 새로운 것들이었으니까. 하지만 뭘 사지는 않고 간 보듯이 이 코너 저 코너 돌아다니기만 하는 스승님이 왠지 수상해 보여. 특히 간식 코너만 골라서 다니고 있잖아. 과자는.. 감자 맛이나 옥수수 맛이 무난하게 입에 맞기는 하지만 역시 초코가 제일 맛있잖아.
"나는 초코맛!"
아. 무심코 대답해버렸어. 이건 유도심문이야! 치부를 드러낸 것 같은 기분이 되어서, 부- 하고 뺨을 부풀리며 장바구니를 든 스승님의 옆구리를 주먹으로 푹푹 찌르는 시늉을 했어. 스승. 지금 나 놀리는 거지?
여느때와 다름 없는 오후였다. 여느때와 다름이 없었다는 것은, 사샤의 일과 역시 평소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오전에 간단한 임무 하나를 끝내고 돌아와 점심을 먹은 뒤 그때부터 이제까지 주욱 휴게실에서 뒹굴거리던 참이었다. 숙소도 바로 같은 건물에 있는데, 굳이 방으로 돌아가지 않고 휴게실에 남은 이유는 깊은 잠에 빠져들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사샤는 휴게실의 소파에 머리를 대기 무섭게 잠들어 버렸고, 누가 오든지 말든지, 몇 시간을 잠으로 날려버리고 난 뒤에 눈을 뜬 게 지금이었다.
사샤는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소파에 몸을 웅크린 채 구석탱이에 놓여있던 쿠션을 껴안은 채였다. 잘 때는 뭐라도 껴안는 것이 편하니까. 사샤는 눈을 끔뻑였다. 잠을 쫓아내고자 애를 쓰려는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정 잠이 안 깨면 조금 더 자지 뭐. 그런 안일한 생각을 하는 찰나, 인기척이 느껴져 사샤는 네게로 시선을 올렸다. 아직은 무거운 눈꺼풀 너머로 빠르게 상대를 식별했다. 새하얀 머리카락과 검푸른 안대. 아직 잠이 완전히 깨지 않은 상태인지라, 상대가 언제부터 그곳에 있었는지 알 길이 없었다. 사샤는 너를 보고도 아랑곳 않고 소파에 누운 채 작게 하품을 했다.
"후배님, 언제부터 거기 있었어요?"
자다 깨자마자 흘리는 목소리는 건조했고, 또 낮았다. 혹시, 내가 여기에 있어서 편히 쉬려는 후배를 방해라도 한 것일까 하는 고민이 잠깐 들었지만, 사샤가 휴게실에서 잠을 자는 것이야 매일 같이 보이는 모습 중 하나니 딱히 특이한 일도 아니었으니 그건 아니겠지. 나른한 금색 눈빛이 네게로 안착했다.
비참한 참사의 현장, 흩날려있는 피, 미친듯이 웃는 한 산크타. 검게 물든 날개에 검은 링을 가진 광기에 물든듯한 그 산크타는 광소하며 다른 산크타들을 향해 석궁을 쏘고 있다. 그 화살 끝이 차츰차츰 자신을 향해 다가온다 그리고 나는 ───
"...또 그 꿈인가."
잊을만하면 떠오르는 그 날의 꿈, 스스로 하얀 날개를 버려야했던 그 참사의 날.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을 수 밖에 없던, 이제는 돌아가지 못할 시절에 대한 추억. 그러나 후회는 남기지 않는다.
"죽는 것보다는.. 죽을 것 같이 살아가는게 나으니까"
그녀는 그리 말하며 캔맥주를 꺼낸다. 최초의 살인. 깨버린 금기, 잊혀져버린 신앙. 교리조차 기억나지 않고, 나는 그저 죄인이 됬으며, 그 때부터 내 삶에 빛이라고는 보이지 않았으니. 나는 그저 살아가고자 발악하고 있을뿐인 그저 그런 존재인거야.
"..안 그러냐 류드라"
거울을 보고는 중얼거린다. 부스스한 머리, 금기의 증거인 검은 날개와 검은 링 그리고 '뿔' 더이상 돌아가지 못한다고 현실에 붙박은 내 죄의 상징. 한때는 한탄했다. 한때는 슬피 울었고, 한때는 누군가를 원망했으며, 한때는 그저 분노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잃어야할 모든 허망에 지나지 않았고.
"자, 그럼 오늘도 살아가볼까."
더 많은 죄를 범하더라도, 손에 피가 얼마나 묻어도, 영혼마저 검게 물들어 구제의 여지가 없어진다해도. 나는 그저 살아가기 위해 뭐든지 하겠어. 설령 지금 들어선 회사인 아르고 에이전시를 배반한다고 해도. ...나라는 존재는 방주에서조차 받아들여지지 못할 방황자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