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길을 불러오고 암석으로 내려치며 기온을 영하 수준으로 내려버린다. 캐스터는 소위 재능이라 불리우는 오리지늄 아츠에 정통한 유능한 마법사다. 이런 기상천외한 아츠들은 대부분의 상황에 때리고 베는것보다 효과적인 공격법이라는걸 캐스터들은 알고있다. 하지만 한 분야의 아츠를 본격적으로 다루게 되는대에는 엄청난 고생이들며 그 본질을 깨우치는 것은 영원한 과제라는것 또한 알아야 진정한 캐스터라고 할 수 있다.」
이거 참 곤란하네만. 칼리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면서 눈 앞에서 소파를 차지하고 잠들어 있는, 익숙한 얼굴의 여자를 응시하고 있었다. 오후의 시간은 그리 바쁘지 않게 지나갔고 칼리는 방으로 돌아가기 전 잠시 쉬었다가 갈 참으로 휴게실에 들렀으며 그리고 소파에서 잠들어 있는 사샤를 발견한 것이다. 허물없이 친한 사이라면 모를까 년차도 두배쯤 차이나는 선배를 깨우는 정도의 성격까진 못됐기 때문에 칼리는 곤란하다는 말과 다르게 느긋한 태도로 팔짱을 낀 채 잠자코 소파에 누운 그녀가 일어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을 때 칼리는 소파에 누워서 잠들어 있는 그녀가 일어나는 기척을 들을 수 있었고 히죽이며 입매를 끌어올려서 오- 하는 감탄사를 흘리곤 끼고 있던 팔짱을 풀었다.
"이제야 일어났군. 선배. 기다리다가 목이 빠지는 줄 알았구려."
여전히 상대는 소파에 누워있긴 했지만 그 모습은 칼리에겐 익숙했으니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칼리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익숙한 풍경이기도 했고. 칼리는 주머니에 양손을 쑤셔넣고 히죽거리느냐고 올라간 입매가 호선을 그려냈다.
"본인이 온 시간은 정확히 모르네만, 본인이 왔을 때 선배 자네는 이미 잠들어 있었다네. 그리 자면 허리 아프지 않나? 늘 보는 풍경인데 신기할 따름일세."
나른한 금색 눈이 향할 때, 칼리의 푸르스름한 눈동자도 그쪽으로 향했다. 툭 하고 휴게실 바닥을 차던 칼리가 여전히 누워있는 그녀, 사샤를 향해 걸음을 옮겨서 가까이 다가갔다.
도나의 손에 과자랑 우유, 사탕이랑 그리고 젤리가 쥐어졌어. 하나씩 받을 때마다 커다란 눈이 깜빡거렸어. 결국, 작은 손으로 다 들고 있기 어려워서 간식들을 품에 안은 모양새가 되었어.
"스승... 정말 이거 다 받아도 돼요?"
너무 많이 받는 것 같아서 놀란 얼굴로 스승님을 올려봤어. 처음부터 이만큼 다 사줄 생각이었던 거야, 스승님은!
"에, 산책은 못하겠네. 이거 잠깐만 받아줘요."
도나는 품에 안은 간식들을 잠깐 들어달라 하고선 입고 있던 우비를 벗어서 작은 보따리처럼 만들었어. 그리고 다시 간식을 그 안에 넣었고. 평소에는 불투명한 코트로 가리고 있던 몸이 다 드러났어. 거기에 어울리지 않는 장화까지. 조금 민망한 모습이 됐지만 도나는 별로 신경쓰지 않아.
너는 마치 사샤가 일어나길 기다렸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소파에 앉으려고 했던 것일까. 사샤는 고개조차 까딱이지 않은 채 눈동자만을 굴려 소파의 남은 면적을 확인해본다. 사샤는 몸을 조금 더 둥글게 말아 네가 앉을 만한 충분한 자리를 내어주었다.
"미안해요. 깨워도 됐었는데."
허구헌날 잠만 자고 있는 인간이다. 평소에 수면 부족에 시달리는 것도 아니고, 깨운다 한들 문제 될 것은 없었다. 물론, 사샤의 연차를 생각하면 아무래도 허물없이 깨우기에는 어려웠을 수도 있겠지만.
"음, 조금 뻐근하긴 하지만 아프진 않아요. 익숙해져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있는 것이 꼭 거대한 고양이와도 같다. 사실상 사자라는 동물의 특성을 띄고 있으니 반쯤은 고양이가 맞을지도 몰랐다. 사샤의 꼬리가 가볍고 또 부드럽게 흔들거렸다.
"네, 앉으세요."
물론 일어나지는 않을 거다. 사샤는 소파에 몸을 말고 누운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간간히 눈이 깜빡이거나 꼬리가 흔들거리는 것을 제외하면 죽은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움직임은 최소화 되어 있었다. 그래도 일단 누군가 다가오는데, 조금 정도는 그곳에 신경을 기울여도 좋지 않을런지...
"다음부턴 그냥 깨워도 돼요 후배님. 깨운다고 물거나 하지 않으니까."
사샤가 나른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아, 뒤에 덧붙인 말은 사샤 그녀 나름의 농담이었을 것이다. 전혀 미소 짓지 않은 채 진지한 목소리로 저런 말을 한들 농담으로 받아들일만한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오늘부터 일기를 쓰기로 했어.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야. 그냥, 어딘가 말을 하고 싶을 뿐이야. 속내를 털어놓을 곳이 없다면 사람은 썩어버리잖아? 어디서 들은 이야기지만. 그래서 이렇게, 말을 거는 것처럼 일기를 쓰려고. 솔직히 좋은 생각 같지는 않아. 하지만, 그래도, 뭐, 음, 요즘 내가 좀, 상태가 안 좋은 것 같기도 해서. 탈이 났다고 하면 좋을까? 갑자기 자유가 오니까, 일단 메딕으로써의 일이나 그런게 있지만 아무튼 뭘 해도 좋을 시간이 생기니까 좀 (여러 문장이 써졌다가 지워졌다가를 반복해 알아볼 수 없다) 모르겠다. 비유하자면 하얀 도화지 중간에 갑자기 빨간 장미가 그려진 것처럼? 의학적으로 보자면 오래 굶은 사람이 갑자기 기름진 음식을 잔뜩 먹은 것 처럼. 위가 아니라 정신이 놀란 거지. 여긴 좋은 사람들이 많고, 여기 있다 보면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란 착각이 들지만, 시답잖은 일에 화가 나거나 하는 짜증이 나는 걸 보면 나는 바뀐 게 없고, 쓸데없이 예민하고 어두컴컴한 녀석이야. 스모크 블루처럼 울적하지. 요 근래 그리는 그림들도 그래서인지 죄다 그로테스크한 느낌이야. 누구에게 보여주기 알맞지 않으니까 태워버릴까도 고민하고 있어. 이것도 화풍이나 개성이라고 하면 그렇지만, 크림즌으로 가득 칠해진 내 속을 누구한테 보여주는 기분이니까 내키지 않거든. 이 일기가 누군가의 손에 들어가 읽힌다면 그날 나는 아마 천장에 밧줄을 매달 거야.. 어 아무튼, 오늘은 여기까지야. 우울한 얘기만 잔뜩이네. 내일 보자.
(이하의 내용은 무척이나 작은 글씨로 노트의 줄에 맞추지 않고 비스듬히 기울어져 써있다) 행복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26명의 웃는 얼굴이 그려진 그림에 나도 슬그머니 끼어들어 웃고 있고 싶네.....
매일 잠을 자고 있다곤 해도 두배나 차이나는 연차의 선배를 함부로 깨울 사람이 어디있을까 싶다만. 칼리는 히죽거리는 웃음을 짓고 사샤의 말에 대답한 뒤에 소파 위에 둥글게 몸을 말고 자리를 내어준 사샤의 모습을 물끄러미 응시하다가 뻐근하다는 말에 나이가 지긋하게 들어보이는 이처럼 혀를 끌끌 내둘렀다.
"그러다가 한방에 골로 가는수가 있소? 허리 건강은 유념하셔야지. 선배."
앉으라고까지 이야기를 해줬고 자리까지 내줬으니 소파의 비어있는 공간에 앉기 위해 걸치고 있던 코트를 벗어서 단정하게 접은 뒤에 사샤가 몸을 둥글게 말고 누워 있는 소파의 빈공간에 몸을 안착시키자마자 소파 팔걸이에 팔을 올리고 칼리는 몸에 배어 있는지, 그대로 다리를 꼰다.
"방금 그거, 선배. 귀하의 농이였다고 생각하겠소만.. 사자가 문다는 말을 들으니 일개 본인같은 늑대는 털이 쭈뼛선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구려."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어서 농담인지 아닌지 구분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칼리는 턱을 괸 채로 소파에 올려져 있는 꼬리를 쓸듯이 움직이며 귀를 한번 뒤로 젖혔다가 똑바로 세우고는 히죽거리는 미소를 지어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