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정면 교전만으론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스페셜리스트는 그것을 위해 탄생한 용병들이다. 이들은 작전에 있어서 원래 없던 새로운 길을 만들거나 은신 및 기습, 혹은 갖가지 묘한 트릭에 정통함을 보인다. 다른 포지션이 손도 쓸 수 없는 상황에 이들은 기꺼이 나서서 문제를 해결해준다. 스페셜리스트의 그런 싸움을 육안으로 지켜본 혹자들은 신묘하다고도 비겁하다고도 말하지만, 다들 틀렸다. 이건 전투의 기본인 전술이다.」
대충 말뜻을 미루어보아 같은 팀을 돕고 적에겐 전술적 훼방을 놓는다 이런 말인거같다. 이렇게 쉬운 말을 두고 '신'이라고 하는 존재는 왜 다들 굳이 어려운 단어를 선택해 쓰는것인지 이해하지 못하겠다. 애초에 신이 있긴한건지 긴가민가 하지만 이런 말을 자칭 신관이라는 녀석앞에서 꺼내들고 싶지는 않았다. 리유니온같은 폭동 단체도, 어비스 워커도. 자기들 나름의 '신'이 있는 법이니까.
"이러니 저러니 해도 너희들 먹여살리는게 지금 내 일이니까."
처음에는 순수 용병단체로 가고 싶었지만. 그러기 위해선 무지막지한 용문폐가 필요했지. 다행인건 도미닉은 감염자 차별에 대해 별 생각 없는 사람이었고, 그걸 감수할 수 있는 녀석이라면 누구든지 받아들일 수 있는... 귀찮음의 소유자였다. 발랄하게 말하는 오라클이 자신이 타온 커피를 뜨겁지도 않은지 꿀꺽꿀걱 삼켰다.
"그래. 하는 말은 대충 알겠다. 나도 네 걱정은 안하지만. 그래도 무슨 일 있으면 바로 말해 줘. 그걸 위해 있는게 나니까."
세상을 휩쓰는 이런저런 재해에도 아랑곳않고, 컬럼비아의 번화가는 예쁜 빛들에 둘러싸여 붐빈다. 사람들의 무리를 헤치고 번화가의 골목 사이로 들어가, 블럭 두 개를 건너면 번화가의 소음은 제법 백색소음으로 여겨줄 수 있을 정도로 줄어든다. 번화가와 인접해 있는 조그마한 거주지구에, 에덴이 자신이 거주하고 있노라고 일러주었던 조그만 오피스텔이 있었다. 컬럼비아 번화가를 이루고 있는 마천루들 뒷편에 끼어있는 그것은 눈에 잘 띄지 않게 숨어 있었지만 분명히 거기 있었다. 건축에 소양이 있는 이가 눈여겨보면 바로 어느 정도의 오리지늄 방호 설계가 적용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을 그 오피스텔은, 컬럼비아의 그늘에 숨어서 한정적이나마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는 감염자들의 삶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다.
인터폰을 누르고, 에덴이 알려준 자신의 방 번호를 누르면, 이내 인터폰에서 에덴의 목소리가 들려오고는 오피스텔의 문이 열릴 것이다. 3층 5호... 복도 끝방.
문을 열어보면, 바깥의 찬 공기와 대비되는 따뜻한 공기와 함께 잘 부푼 빵반죽에서 나는 냄새 같기도 하고, 풀꽃에서 나는 냄새 같기도 한 에덴의 방의 향기가 옅게 풍겨나온다. 타일로 된 현관과 신발장에는 에덴의 것임직한 신발이 몇 켤레. 가벼운 운동화, 더 가벼운 슬리퍼, 예비용으로 갖춰뒀음직한 튼튼한 부츠 세 켤레, 그리고 예쁜 구두가 두 켤레 놓여 있었다. 갈색으로 에나멜 칠이 된 메리제인 슈즈는 언제 신으려고 그렇게 곱게 갖춰놓았을까.
그리고 나무 무늬가 새겨진 타일로 깔려 있는 마룻바닥 위로는 아라베스크 무늬가 새겨진 카페트가 깔려 있었고, 골동품점에서 구해온 것인지 예스러운 장식이 된 테이블이며 의자들이 돋보인다. 텔레비전은 작은 것이, 벽걸이로 하나 걸려 있지만 다른 가구들이 다 앤틱한 물건인데 혼자서 매끈하니 모던한 모양인 게 좀 어색하다.
그리고 에덴이, 짧은 바지에 가디건 차림을 하고는 현관으로 리아를 마중나왔다. "어서 오세요, 리아 언니."
도나는 고개를 반대쪽으로 뉘이면서 오니를 바라보았다. 저도 와보고 싶었다는 그녀의 솔직한 이야기에 두 눈이 상현달 모양으로 부드럽게 휜다. 오니의 처음이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도나는 감히 추측하지 않았지만, 도나에게 있어서 그것은 단순히 이런 공간이 처음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모든 것이 새로운 낯선 곳이기도 했지만, 지금 도나의 어휘로는 표현할 수 없는 이질적인 행복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래도 되는 걸까 싶을 정도로.
"정말 그래도 돼요?"
도나는 테이블에 엎드린 채 즐거운 듯이 고개를 까닥거렸다. 종종 오자는 것이 그저 말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제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알아서, 마냥 응석부리고만 있을 수는 없었기에 약속을 하자고 새끼손가락을 내밀지는 않았다. 제 사욕으로 상냥한 선배에게 폐를 끼칠 수는 없으니까.
"선배님도요."
도나는 더 행복해질 거라는 말에 그렇게 답하곤, 테이블을 짚고 몸을 일으켰다. 종업원이 들고 오는 파르페를 본 도나의 눈이 다시 천진하게 반짝인다.
"잘 먹겠습니다!"
도나는 또 한 번 포근한 행복을 가슴에 새긴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소소한 일상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