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정면 교전만으론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스페셜리스트는 그것을 위해 탄생한 용병들이다. 이들은 작전에 있어서 원래 없던 새로운 길을 만들거나 은신 및 기습, 혹은 갖가지 묘한 트릭에 정통함을 보인다. 다른 포지션이 손도 쓸 수 없는 상황에 이들은 기꺼이 나서서 문제를 해결해준다. 스페셜리스트의 그런 싸움을 육안으로 지켜본 혹자들은 신묘하다고도 비겁하다고도 말하지만, 다들 틀렸다. 이건 전투의 기본인 전술이다.」
그가 손을 뻗어보이는 것엔 반응하지 않았지만 그녀가 입을 가리고 있는 손을 가볍게 내리려 하는 것에선 약간의 저항감이 있었다. 물론 그나마도 금방 순응한듯 손이 내려갔지만 어쩌면 살짝 머쓱해진듯한 표정을 지었을지도 모른다.
"마음이 꺾일지도 모른단 말 치고는 어째 하는 말이 다른데?"
장난스럽게 말하는 그에게 의문을 가지듯 살짝 고개가 옆으로 기울어졌다. 하지만 잠깐일뿐, 다시 완연한 미소로 돌아가며 자기할당량을 채워가고 있었다. 아직도 주방은 분주했고 요리사는 한명뿐이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먹는 것도, 대화하는 것도 놓치는 법이 없었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천부적인 멀티태스킹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일석이조다마다~ 그도 그럴게 식사자리에 한사람이라도 더 늘어나는 건 의외로 여러가지 의미로 와닿거든, 적어도 먹는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말야."
마치 그런 생각은 못했다는듯 이쪽을 바라보다가도 무언가 생각이 난건지 잘게 자르지 않은 칠면조를 입에 집어넣으려던 그가 난데없이 패배를 인정하자 그녀는 잠깐 멍한 표정을 짓다가도 바로 키득거리며 웃어보였다.
"억지로 따라하려다가 입 찢어질지도 몰라~ 다쳐도 책임 안질 거니까? 약 정도는 발라줄 수 있겠지만~"
그러면서도 그녀 본인은 크게 떼어낸 한조각을 아무 문제도 없이 그대로 입안에 가져갔다. 실로 만화적이라고밖에 설명할수 없을 정도의 모습이었다.
입이 커서 안 좋은점이 있다고 생각도 안해봤기에. 머쓱한 표정을 보고 흠~ 하고 일단은 뭐라고 더 하지는 않았다. 어디서 봤는데 남의 컴플렉스 같은건 쉽게 건드리는게 아니라고는 했으니까. 너무 참견해도 귀찮겠지.
"음~ 그야 인간의 마음은 그렇게 쉽게 꺽이는게 아니거든."
요리를 생업으로 하는 사람은 또 어떨지 모르지만. 그게 아니면 요리를 비평 받다가 마음이 부러지면 그건 그거 나름대로 대단하게 섬세한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뭐 그건 그렇고. 나는 요리와 먹는건 오차없이 병행하는 그녀의 모습에 엄청나다고 생각하며 식사를 하고 있었다. 평범하게 말이다.
"여러가지 의미?"
나는 같이 먹는거에 뭔가 의미가 있는건가 싶어 묻고는 입크기가 좀 커졌으면 좋겠다고 중얼거렸다. 그야 음식을 한입에 쏙 넣을 수 있으면 편하잖아.
"다시봐도 대단하단 말야. 근데 지금 생각해보니 먹는건 그렇다쳐도 어떻게 입안에서 그 커다란걸 뼈만 쏙 발라낼 수 있는거야?"
생각해보니 그러네. 그게 더 신기한 기술 아닌가? 나는 혹시 찢어지면 약은 부탁한다고 대답하며 물었다. 내 눈앞에 달인이 있었잖아?
되려 의문을 가지던 그의 물음에 대해 돌아오는 대답은 딱히 없었겠지만 살짝 붉어진 표정이 그걸 대신해주었다. 그나마 그가 부정적으로 바라보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어찌보면 컴플렉스라고 여길만한 가장 큰 두가지 이유가 있었으니 그녀는 최대한 내색하지 않으려고 해도 언젠간 드러날 것이었다.
"으음... 그건 그러려나? 사람이란게 그렇게 쉽게 좌절하는 존재도 아니고..."
그렇게 말할때, 무언가 을씨년스러운 기운이 등 뒤에 수치는걸 느꼈다. 아니면 그저 순간적으로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고 해야 할까? 갑자기 밀려온 공포심은 금방 억눌러졌지만 또다른 잡다한 생각을 만들어냈다. 그나마 정신을 쏟을만한 다른게(음식) 있었기에 망정이지
"응. 여러가지 의미... 무언가를 먹는건 좋아. 그것 자체로도 나쁘지 않아. 나 혼자서 아무런 외부적인 요인 없이 그저 음식에만 집중할 수 있단건 꽤 기분이 좋지. 하지만 때로는 그걸 나누며 함께하는게, 나의 즐거움을 상대방에게도 나누어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니까..."
그리고 그런 기쁨은 그녀에게 있어 꽤나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혀 있었다. 그가 어떻게 생각할진 몰라도, 어쩌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대도 그녀는 변함없이 그리 생각할 것이다.
"음... 그건 비밀~ 사실 비밀이랄 것도 없지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도 모르겠구, 체리 꼭지 매듭이랑 비슷하다고 보면 되려나?"
그렇게 컴플렉스인가. 하기사 남의 컴플렉스는 쉽사리 이해할 수 있는게 아니라고 했으니 나는 적당히 이해하기로 했다. 그냥저냥~ 지나가는 말로 사람이 너무 착해도 손해라고 덧붙이는걸 끝으로 나는 냠냠 고기를 씹었다. 식감이 좋았으므로. 먹는게 편해서 좋았다.
"보통은~ 정도일까. 사람마다 다 다르긴 하니까."
진짜로 좌절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일단 나는 아니라며 가볍게 웃고는 칠면조 고기를 빤히 바라보았다. 칠면조.. 생각해보니 칠면조 요리는 해본적이 없었지. 지금까지 새 요리는 닭으로밖에 해본적이 없었다는걸 깨달았기에. 옆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있는지 눈치채지 못한채 나는 칠면조는 무슨맛인가 생각했다.
"아아~ 뭐 그런게 있다고는 들었어. 나는 주로 혼자 먹으니까 남하고 같이 먹는게 유별난 상황이긴한데. 인싸들은 맨날 같이 먹는다고 하길래 어떤 느낌일까 궁금하긴 했었지. 즐거움은 나눈다라~"
뭐라고 단언하긴 어려워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단 시점에서 대견하다고 말한 나는 고개를 기울였다. 지금까지 누구랑 먹는다고 해도 그런 생각은 한 적 없으니. 그저 거슬린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보통은 그렇긴 하지만 사람마다 다르다는 그의 말도 옳다. 모두 다 강인한 정신력을 가진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연약한 멘탈을 가진 것도 아니니까, 이런저런 사람들이 섞여있는데 그 중간에 애매하게 걸쳐있는 사람 정도는 충분히 있을 법했다.
"물론 그렇긴 하지만 딱히 같이 먹는다는게 인싸의 전유물이진 않으니까~ 혼밥 하는 인싸들도 꽤 많고, 무엇보다 난 그런쪽하곤 거리가 멀만큼 평범하니깐..."
그렇다고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는 건 아니었고, 오히려 혼자 있는 경우도 거의 없었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이 그런 인싸들에 속하진 않을 것이라는 무의식적인 생각이 지배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기업 비밀일거 까지야~ 그러고보니 그런 영상도 있던데? 이렇게 날개를 잡아서 두세번 비틀어준 다음에 잡아당기면 뼈 하나가 빠지고 그걸 입으로 가져가면... 이렇게?"
그녀는 시범을 보이듯 날개 하나를 집어 가볍게 비틀어보였고, 정말 그 말대로 뼈 하나가 쏙 빠져나오더니 입안에 들어갔다 나온것 또한 말끔하게 살이 발라져있었다. 그걸 손이 아닌 혀로만 할 뿐이라 설명하고 싶지만, 비약이 심하단걸 자신도 알고 있기에 그저 이정도로만 알려줄 수밖에 없었다.
"딱히 뭘 알고 싶어서 그러는 것도 아닌걸~ 아, 그래도 같은 곳에서 일하는 입장에서 서로를 더 잘 알고 지낸다면 그것도 좋은 일이겠네? 무엇보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이렇게 식사도 같이 했잖아?"
오리지늄이 발견된 후 인류는 오리지늄을 이용해 물질의 고유 성질을 바꿀 수 있는 기술을 발견했다.
통상적으로는 '오리지늄 아츠'라고 불렸으나, 또 다른 말로는 '마법' 이라고도 불렸다. 흔히 오리지늄 아츠는 오리지늄 자체에서 나오는 에너지에 기반을 둔다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사용자의 아츠 사용 가능 여부, 아츠 시전의 형식, 시전 강도, 시전 효과 등, 선천적 재능과 후전적 학습에도 영향을 받는다.
"글쎄... 인싸처럼 보일 뿐인게 아닐까 싶지만 이런 무난하고 평범한 성격도 나쁠 건 없으니깐, 물론 혼자인걸 즐기는 사람들도 있긴 하니까 그런 부분도 이해가 가긴 하지? 어울리는 사람들이 많을때 에너지를 얻어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혼자 있을 때 에너지를 얻어가는 사람도 있다곤 하니..."
그리고 그가 어느쪽인지는 당장 들려오는 대화로도 유추할 수 있었지만 그게 사람과의 관계에 문제될 일은 없기에 그저 그의 개성인것 뿐이라 생각하는 정도였다.
"뭐 그게 대수겠어~? 그러면서도 친해질 사람은 친해진다고 하니까~"
그런 구구절절한 생각보단 먹는게 우선이었다. 먹지 않으면 온갖 잡생각이 들곤 했으니까, 그녀 나름대로 주변의 소음에 신경쓰지 않기 위해선 그만큼 신경을 다른곳으로 돌릴 필요가 있었다. 그렇다고 만날 먹기만 하는건 아니겠지만, 좌우지간 많이 먹긴 한다는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항이겠지.
"아... 아하하하하~ 뭐, 그럴 수도 있지~ 설마 그거 가지고 재능이 없다던가 하겠어? 이런건 요리랑은 그리 큰 관계가 없으니깐~"
재능과 실용성은 조금 다른 문제니까, 큰 틀 안에서 말하자면 교집합 같은 관계였다.
그래도 나름 자신의 말이 일리는 있었는지 편하게 질문을 건네는 그를 보며 그녀는 똑같은 미소를 유지한 채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냥 요나카,라고 불러주면 돼. 코드네임이지만 곧 이름이기도 하니까, 딱히 숨길 생각은 없거든."
"어디가서 남을 묻지마 살인하고 다니는게 아니라면야 성격에 문제가 된다는건 없겠지~ 그러니까 나도 문제 없고~ 아무튼간에 그건 그렇지. 혼자는 재미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면 혼자가 재밌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이런 성격적인 부분에서 정답이란게 없으니까. 나는 그렇게 말하며 뼈를 발라내 내려놓았다. 나중에 굽는 시간이나 온도 같은거 물어봐둘까..
"뭐, 그러네~ 친해질 사람들끼린 친해지겠지."
사람간의 관계에도 연이란건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기에 그녀의 말에 동의하면서 요리들을 바라봤다. 양도 양이지만 하나같이 정성들여 요리한게 보였고, 그걸 또 다 먹고 있는 모습이 신기하다. 이쪽은 아무래도 슬슬 배가 부르긴 해서 먹는 속도는 줄어들긴 했지만. 뭐 식감도 좋고 문제될건 없다.
"그런가~~~~? 먹는것도 재능이긴 하니까. 요리와 관련됐냐고 하면 당연히 관련 되어있고."
그렇다고 요리라도 불러도 되나 싶지만 나는 그런 세세한걸 따지지 않기 때문에 넘어가기로 했고. 자신의 이름 겸 코드네임을 말해주는 그녀에게 기억해 두겠다며 입꼬리를 올렸다.
"이름하고 코드네임이 같구나, 뭐 가끔 있기는 하지. 나는 알트. 이름은~ 뭐 리제 정도면 돼."
파스터 접시를 받으며 말했다. 저쪽에서 묻지는 않았지만 대답은 해줘야지. 그리고 마침 파스타 같은 면 요리는 식감이 좋으니 좋아한다.
오라클의 오늘 풀 해시는 날아다니는_문어를_본_자캐 오라클: 세상에. 신님이 현현하셨어! 신님! 어쩌다 문어인 거에요! or 오라클: 어..어비설 헌터즈가 필요해! 꺄아아악! 이라는 반응(?) 비오는_날_우산이_없다면_자캐는 비 맞고 다녀요. 와아 물 속에 있는 기분이야! 같은 말을 하려나? 자캐가_F학점을_받는다면_그_이유는 오라클: F학점의 F는 Fantastic의 F니까요! 전 아주 우수하니까요! F학점은 대단한 거에요! 오라클주: 흐음.. 아무래도 출석미달일 가능성이 높다..!(?) #오늘의_자캐해시 #shindanmaker https://kr.shindanmaker.com/977489
"음~ 그건 그렇네! 확실히 묻지마 수법이라던가는 좀 너무 나갔다 싶긴 하지만... 그렇게 제멋대로인 것만 아니면 딱히 지장도 없으니까~"
사람과의 관계에서 특히나 조율이 힘든게 바로 그런 성격차였다. 아무리 가까운 관계가 되어도 성격차로 갈라서게 되는 일은 꽤 빈번하게 일어났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과의 갈등을 가장 크게 다루는 주제이기도 하고,
"역시 그렇지~?"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어렴풋이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물론 먹는 것으로 서로 대화를 트게 된 계기가 있었기에 이야기를 주고받는데에도 수월했다는 건 부정할 수 없지만 단지 그것뿐었다면 금방 이야기가 동이 나버릴 테니까, 확실히 먹는 속도는 느릿해보였지만 그가 그럴만하다는건 이미 생각해 두고 있었기에 그녀 역시 딱히 들이밀며 권유하진 않는 편이 좋으리라 생각했다.
먹는 것 또한 재능, 그것도 요리의 일부분이라면 일부분이긴 했다. 그런 그의 말이 신기하게도 잘 와닿는건 과연 기분탓 뿐이기만 할지,
"헤에... 그렇구나~? 어느쪽으로 부르면 좋을지 고민이네... 허락해준다면 적어도 이렇게 있을 때만큼은 원래 이름으로 부르고 싶지만,"
역시 자신부터 이름을 밝혀서 그런지 딱히 거부하는것 없이 그에게서도 본명이 들려오자 그녀는 살짝 이가 드러날 정도로 기쁜 표정을 지어보였다.
히메라기 요나카의 오늘 풀 해시는 물웅덩이에_대처하는_자캐의_모습 - 것참~ 이건 당연히 있는 힘껏 풍덩!! 해야죠 쓰앵님~~! 자캐가_믿고_싶어_했던_것은 - 이런 자신도 언젠간 이해받을 수 있을 것이다...? 자캐끼리_만났을_때_가장_상성이_나쁜_조합은 - 비밀이 있는걸 싫어해서 뭐든 캐물으려고 하는 캐릭터만 아니라면 상성이 나쁠 것도 없지 않을까? #오늘의_자캐해시 #shindanmaker https://kr.shindanmaker.com/977489
나는 굳이 큰 피해라고 강조했다. 작은 피해는 워낙에 사람마다 달라서 피해를 입히지 않아야 한다. 그렇게 정의해버리면 정말 피곤해지기 때문이다. 뭐 아무튼 생각보다 어려운 이야기를 하게된거 같은데 솔직히 내가 무슨 말 하는지 다음날되면 내가 까먹을거 같은데.
"뭘해도 안 맞는 사람도 있긴하니까~ 하지만 너무 극단적인게 아니면. 결국 오래지낸 정도 있다나봐."
티격태격, 하나도 맞지 않는 성격. 그런데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알고 지내며 정은 붙인 이들도 있었다. 나는 갑자기 옛날에 봤던 이들이 생각나 그렇게 말하며 파스타를 냠냠. 삼키고는 다 그렇다는건 아니지만~ 하고 덧붙였다. 그야 그들도 아예 하나부터 열까지 안 맞진 않았을테니까. 하긴 전부 다 맞는게 어려운만큼 전부 다 틀리는것도 생각보다 어려울지도 모른다.
"나는 별로 상관없어~ 나는 선배님들한테는 코드네임도 아니고 그냥 선배라고만 부르기도 하고. 호칭에 관해서 별 생각이 없어가지고~ 편한대로 불러."
호칭뿐 아니라 별별거에 다 생각이 없는거 같긴 하지만. 나는 크게 신경쓰지 않고 파스타를 호로록거리고 있었다. 역시 넘어가는건 면요리가 제일 좋단 말이지.
"그래도 코드네임이랑 이름이 같다니 그건 좀 좋네. 내가 코드네임하고 이름을 자주 햇갈리거든."
>>169 1위가 가드 2위가 캐스터 3위가 뱅가드입니당 대원이 작전 중 사망까지 이르는 경우는 대부분 지휘관이 제때 퇴각 시키지 않은 경우입니다 작전파견 빈도는 가드가 공동 1위네요 인구가 많아서 그런가
>>174 안될건 없는데 그러면 진행때에 도나의 전력이 분산될 가능성이 높아보이네용 갠적으로 저는 현재 모든 캐릭터들의 개인 전력을 1이라고 보고있는데, 그게 아츠와 무장상태 그리고 순수 작전능력 이걸 전부 합쳐서 1인거거든요 그래서 아마 도나가 그렇게 바꾼다면 판정이 분산되서 들어가 애매해질 확률이 높습니당 포지션도 포지션이구요 그래서 바꾸신다면 다른 방법을 생각해보시는걸 추천드리고싶네요
좀 극단적인 사람이야 심심찮게 볼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하나도 맞지 않는다 해서 가까워지지 못할 이유도 없었다. 그녀 역시 그런 경험이 있고, 누군가에게는 자신이 그렇게 와닿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다만 오래지낸 정이란 것은 조금 생소한 부분이었을지도 몰랐다. 그녀에게 있어 그러한 종류의 정은 겪어본적이 그리 많지 않았기에 난해하게 와닿는건 당연했을까? 어쩌면 같은 동료도 그렇게 볼 수는 있겠지만,
"그렇구나... 오래지낸 정이라, 그것도 나쁘진 않은 것 같네?"
어쩌면 외롭단 감각이 너무 강해진 나머지 사람간의 정에 대해서 조금 판단이 흐려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떤 이유로 세상과 강제로 분리된 적이 있던 자신처럼, 어째서 그랬던 건진 기억나지 않지만? 오랫동안 겪어보지 않은 감각은 알게모르게 점점 잊혀져간다고 했을까, 그게 정말 타당한 이야기인진 모르겠지만.
"사이가 나빠보이기도 하고, 티격태격 했지만. 그래도 마지막까지 알 수 없는 뭔가가 있는거 같더라고."
오히려 맞지 않았기에 생길 수 있는 유대일지도 모른다고. 나는 답지않은 소리를 했다간 내가 뭔 소리를 하는지 나도 모르겠다며 웃었다. 적어도 그 두사람은 그랬지만. 내가 당사자가 아니니 뭐.. 정확하게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을터였다. 뭐 말한 당사자도 잘 모르니 상대에게 잘 전해졌을런지 모르겠지만. 크게 중요한것도 아니니 상관없지 않을까.
"언젠가 너도 그런 사람을 만날지도 모르지~"
만약 아르고에 계속 있을거라면 만날 수 있을거라며. 나는 이곳에는 특이한 사람들 천지니까~ 라며 파스타 접시를 비웠다. 감염자, 비감염자. 정말 별 별 사람들이 다 있으니까 잘 맞는 사람도, 잘 맞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 뭐 그래서 재미는 있으니까 사람마다 달라도 지루하진 않을.. 까?
"나는 그냥 성격이지만, 임무에 자주 나가는 녀석들은 아예 자기 이름을 말해야할때 실수로 코드네임으로 말하는 녀석들도 봤다고~"
나는 예전에 겪었던 일을 이야기하며 웃었다. 그때는 되게 웃겼는데 말이지.
"음, 앞으로 한 접시 정도일까? 괜찮아~ 나는 과식을 못하거든. 배부르면 딱 거기서 알아서 멈춰~"
<초반부의 음원이 손실됨> ...이렇듯 우리는 갑자기 닥쳐오는 천재지변, 혹은 그보다도 더한 심판이 도래했음을 알수 있습니다. 저마다가 이동도시를 만들어 위험에서 멀어지려 하고 있으나 이 역시 근본적인 해결은 되지 못합니다. 아직도 땅을 뒤덮고 있는 오리지늄은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많은 이들이 감염자라는 명칭 하에 천대받으며 죽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다가온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그것을 이용하고자 했습니다. 위기를 감수하고서라도 얻어낸 오리지늄이란 것이 우리에게 또다른 희망을 주지 않았습니까? 그럼에도 여전히 박해는 계속되고 있으며 오로지 힘있는자만이 권리를 취해갔습니다. 많은 이들의 살고자하는 몸부림이 수포로 돌아갔으며 오리지늄 채굴을 위한 노동을 하다 죽어가는 이웃들도 있습니다. 감염된 사람들은 그저 목숨만 붙어 있을 뿐 매일같이 밀려오는 격통과 싸워야 했으며 죽는다 해도 곱게 눈을 감지 못한 채 또다른 이들을 고통스럽게 만들 뿐입니다.
우리는 이 악순환을 반드시 끊어야만 합니다! 우리는 자유를 위해 이곳에 모였습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광석병으로부터 구원될 날이 곧 다가올 것이라 했으나 그것 또한 옛날 이야기입니다. 아직도 전쟁은 계속되고, 무의미한 살생이 늘어나고 있으며, 힘없는 이들은 계속 약해져만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우리는 더 나은 삶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애석하게도 다가오는 재앙을 막을 수는 없으나, 이전부터 그래왔듯 그것을 이용할 뿐입니다. 우리는 과거로 돌아가 다시금 성장하고, 새로운 체계를 만들어갈 것입니다. 우리는 이곳에 모여 미래를 향할 것입니다. 그런 우리들에게 누군가는 반란군이라 할 것이고, 이성을 잃은 집단이라면서 매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가 여태껏 회피해왔던 진실을 목도할 뿐입니다! 위기에서 멀어짐으로 해결점을 찾지 못한다면 그것을 돌파할줄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닥친 편협된 시선, 무차별적인 학살을 막을 수는 없으나 저항할 수는 있습니다! 그들만큼의 힘은 없으나 좌절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그들에겐 없는 희망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이미 증명되었습니다! 이 전란과 재앙에서도 인간은 진화하고, 거듭나고 있다는 증거말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거머쥔 자유를 지키기 위해 나아갈 것입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언젠가 찾아오게 될 안식을 받아들이십시오!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나 진리를 깨달을 때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더이상 고통받고 있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녹음 종료됨>
아마 라샤의 눈에도 라이레이의 머리 위에 솟은 커다란 귀 한 쌍이 보일 것이다. 라샤는 라이레이가 카우투스임을 잊은 적이 없었을 것이며 커다란 귀 만큼이나 예민한 청각을 자랑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변명은 아무 의미도 갖지 못한다는 사실을... 라샤 본인이 누구보다 더 잘 알 테지만 라이레이도 라샤도 그에 대해서 아무런 말을 꺼내지 않는다. 어른스러운 대처방법이란 이런 것이다. 뭔가 일이 벌어진걸 알지만 알려져서 좋을게 없으니 모르는 척 해주는 것...
북극곰이란 말에 그녀가 얼핏 웃음을 터트렸다. 리타는 그제야 사블랴의 머리에 툭 돋아난 귀를 떠올린 것이다. 사블랴가 건네준 겉옷을 주섬주섬 걸쳐입자, 곧이어 아르고 에이전시의 기숙사들이 모인 복도가 나타난다. 거봐, 금방이라니까.
" 뭐, 깔끔해서 좋네. "
그녀가 그리 웃으며 대꾸했다. 말이야 짓궂게 했다만, 사블랴의 방은 리타가 생각한 모습과 얼추 비슷했다. 깔끔하게 잘 정돈된, 어느정도 사람 사는 향취가 남아있는, 그런. 사블랴의 방을 한 번 돌아보며 그녀는 자신의 방을 떠올렸다. 저 위치에 이런 물건을 두면 좋겠구나, 이런 색감이 잘 어울리는구나. 와 같은 생각을 함께 하면서.
" 가끔 심심하거나 배고프면, 맛있는 거 많이 들고 올게. "
리타가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켰다. 따가운 탄산과 쌉쌀한 뒷맛이 잔잔히 입 안을 맴돈다. 리타는 술을 잘 마시는 편이 아니었던지라, 여러 종류의 술을 도전해보기보단 자신에게 잘 맞는 하나를 찾아 그것만을 고집하곤 했다. 리타가 오늘 고른 맥주 역시, 항상 그녀가 고집하던 브랜드의 맥주였다.
" 요즘은 별 일 없고? "
가장 전형적인 안부 인사. 그마저도 고심에 고심을 다하여 선택한 말이었다. 용병단에게 '별 일'이란 요즘 어디 다친 곳은 없었는지, 큰 일날 뻔한 일은 없었는지, 내지는 재미있는 일은 없었는지. 따위의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친구로서 '별 일'이란, 글쎄. 어디 내가 걱정할 만한 일은 없었는지, 재미있는 일은 없었는지, 새로운 변화는 없었는지. 그정도의 뜻이 아닐까.
어색한 정적속에 라샤의 눈에 비춰진 라이레이의 커다란 귀. 오를까 말까했던 취기는 방금의 참사로 전부 날아가버려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위스키에 손을 댈 수는 없었다.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그래서 라이레이의 화제 전환으로 어색한 침묵이 깨져나가자 눈을 깜빡이며 그녀의 얼굴를 바라보았다.
"음... 무슨 말인진 잘 모르겠지만, 의미정도는 알거 같아. 미운정 고운정... 뭐 그런 거지?"
무슨 말인지 모른다면서 용케도 그런 이야기를 꺼내는 그녀였다. 물론 타인의 기분을 느끼듯 실질적으로 와닿지만 않을 뿐, 그것이 어떤 뜻이며 어떤 개념인지는 감정적으로는 대강 알고 있었다. 맞지 않았기에 생길 수 있는 유대도 있을 법한 논제였다. 사람은 본래 자신의 단점을 커버하기 위해 자신과 다르거나 반대의 성향을 가진 사람을 따르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하니 말이다.
"응. 그럴 수 있으면 좋겠어..."
파스타 한접시를 마저 비워나가며 말하는 그의 이야기에 그래도 어느정도 자신감이 붙었는지, 그녀는 시선을 마주하다가도 으레 그래왔다는 것처럼 다정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아, 그거 어떤 느낌인지 알거 같아~ 일종의 직업병 같은 거겠지 뭐... 하도 그렇게 불리다보면 나라도 본명을 까먹을지도 몰라."
그래서 더 잊지 않으려고 자신처럼 이름 그대로를 코드네임으로 부여하는 이들도 적잖이 있었다. 여기선 그리 많지 않아보이는데다 그녀랑 똑같은 이유일 거라고 장담할 수도 없지만 말이다.
"몸이 한계치를 잘 정해두고 있다면 다행이네~ 그럼, 한접시 정도는 괜찮단 거지?"
아직은 들어갈 여유가 있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있을까, 그녀는 자신의 몫을 하나 더 입속으로 흘려넣고선 다시 새로운 접시를 가져와 담아내었다. 방금 전과는 다른 고기가 들어간걸 보아 그래도 피날레 정도는 화려하게 장식 하라는 의미가 섞인 플레이팅일지도 모른다.
이제와서 물어볼수도 없으니. 나는 영원히 풀 수 없는 문제에 직면했으나 풀지 않아도 되는 문제였기에 그저 어깨를 으쓱였다. 나한테 그런 상대가 나타날거 같지도 않았으니까. 그저 넘어가면 되는 문제. 잠시 눈을 가늘게 떴을뿐, 별다른 반응없이 나는 그런 상대도 재밌긴 하겠다고 미소지었습니다.
"그렇게 될거야."
그래도 여기서, 나쁜 사람은 아직 못봤으니까. 아니 어쩌면 신경을 쓰지 않았을뿐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뭐 적어도 눈앞의 그녀가 나빠보이진 않으니까 그런걸로 치자~ 가볍게 가볍게~
"그렇지~ 나도 이제는 이름으로 불리는 일이 거의 없으니까."
물론 난 애초에 이름에 관심이 없다고 말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도 5년이나 됐으니 당연한걸지도. 아무튼 새로운 고기가 담긴 접시를 받아들고는 뭐야 뭐야 서비스야? 라며 웃으며 포크를 움직였다.
겉옷을 건넨 후 얼마 안 가서 도착했기에, 사블랴는 머쓱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렇게 금방 도착하니 너무 과하게 신경 썼던게 아닐까 싶기도 했지만, 그래도 좋은게 좋은 거니까. 더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는
" 정말 그렇게 생각한 거 맞지? "
내가 핀잔주니까 방금 생각해낸 칭찬이라는 기분이 드는데~? 라며 의심스럽다는 듯 그녀를 빤히 바라보다가 살풋 웃는다. 그나저나 너무 어질러놓은게 아닐까? 주변을 빙 둘러보던 사블랴는 자꾸 눈에 들어오는 어질러진 공간을 불편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널 초대할 줄 알았으면 조금 더 깨끗하게 치우는 건데." 라며 약간 후회섞인 말을 중얼거렸다. 어차피 이렇게 그녀가 놀러온 것도 오늘 급하게 만든 약속? 같은 거였으니 후회해도 소용 없기는 했지만.
" 한번쯤은 빈 손으로 와. 같이 만들어 먹게. "
느긋하게 맥주를 목 뒤로 넘기며 말했다. "너 요리 잘 할 것 같은데, 한번쯤은 그래보고 싶어서." 라며 싱긋 웃어보였을까. 그것 외에도 함께 만들어보고 싶은 디저트가 있긴 했지만 그건 굳이 말할 필요 없을 것 같은 이유니까. 손을 뻗어 과자를 하나 집어들고는 입에 물며 리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반응을 살피는 느낌이었을까?
" 별 일 없지. 아직 별 일 있을만한 시기도 아니고. "
"요새는 의뢰도 잘 없으니까." 라며 어깨를 으쓱인다. 사실 별 일이 있으면 더 큰일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던 사블랴는 이번엔 친구로서의 별일에 대해 고민해보기 시작하다가, 역시나 특별할 일은 없었기에 고개를 설레 내저었다.
" 그러는 너는 별 일 없었어? 상담이 필요한 이야기라던가. "
안부 인사를 받았으니 되갚자는 의미로 리타에게 같은 질문을 던져본다. 상담은... 최근에도 악몽 때문에 새벽에 리타에게 전화를 건 적이 있었으니까, 그거에 보답하고 싶은 심정이었겠지.
오니는 생각보다 일찍 끝나고, 그다지 많이 다치지 않은 임무에서 복귀하곤 무엇을 할지 고민하며 멍하니 거리를 걷는다. 딱히 목적지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할 것을 찾지 못하면 분명 이대로 거리를 걷다가 저녁에 배를 채울 간단한 음식을 사서 돌아가는 것이 일정의 끝일 것이다.
오니의 새하얀 롱코트는 군데 군데 찢어지거나 낡아있는게 보였지만, 그다지 주인은 그것을 신경쓰지 않는 듯 했다. 주인이 워낙 험하게 구르니 그러지 않기도 힘든 탓이었다. 물론 주인이 패션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 한몫 했지만. 아무튼 그렇게 정처없이 걷던 오니는 갑자기 걸음을 멈춰선다.
오니의 붉은 눈동자에 핑크빛 간판과 내부의 인테리어가 들어온다. 근래에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아무래도 생긴지 얼마 되지 않은 디저트 가게로 보였다. 그 안에서는 각자 자신을 예쁘게 꾸민 여성들이 자리에 끼리끼리 앉아 즐거운 듯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것을 지나쳐 그 너머에 있는 디저트를 발견한 오니는 자켓의 카라부분을 손으로 끌어모아 입가를 가리며 침을 꿀꺽 삼킨다.
" 맛있겠다... "
먹고 싶은 생각이 한껏 솟아오른 오니였지만 엉거주춤하게 멈춰선 체 들어가지 못했다. 저 안에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과 자신의 옷차림이 너무 다르고, 분위기마저 달라서 선뜻 안으로 들어가질 못 하겠다는 생각인 듯 했다. 그래서인지, 가게의 입구에서 왔다갔다 하며 안을 들여다보다가도, 막상 문앞에 서면 한숨을 내쉬곤 다시 왔다갔다 하길 반복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결국엔 돌아가야겠다는 듯 눈을 내리까는 오니였다.
리타가 가볍게 대꾸하며 후드 모자를 벗었다. 편의점만 나왔다가 들어갈 생각으로 정돈을 잘 하지 않았던 터라, 그녀의 머리칼은 다소 부스스한 느낌이 들었다. 그대로 머리칼을 가볍게 빗어내린 뒤 리타가 맥주를 한 모금 넘기며 옅게 미소를 지었다. 한밤중의 맥주라, 나쁠 게 없지.
" 요리는… 엄청 잘 하는 편은 아니지만… "
리타가 과자 하나를 우물이며 말끝을 흐렸다.
" 좋아. 그럼 공부 좀 해서 와야지. 같이 요리해서 먹으면 재밌겠다. "
제법 신난 어린아이 같은 얼굴로, 그녀가 말을 이었다. 보바는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니까, 요리를 잘 하지 않을까—라는 추측을 해보면서. " 뭘 만들어보면 좋을까? " 리타가 다시 과자 하나를 입에 넣으며 중얼이듯 말했다. 벌써부터 계획을 떠올리다니, 사블랴의 제안이 퍽 마음에 든 눈치다.
이어진 사블랴의 대답에, 리타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용병단에게도 비수기와 성수기가 있는 것일지, 요즘은 유난히 의뢰가 적었다. 의뢰가 적다는 것은 세상이 평화롭다는 뜻일까? 너무 비약인 것 같기도 하고…
" 나는… "
리타가 잠시 입을 다물었다.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 같기도, 떠올리는 것 같기도 한 얼굴이었다. 후드티 소매에 반쯤 덮인 채로, 맥주캔을 쥐고 있던 리타의 손이 작게 꼼질였다. 별 일, 별 일이라…
" 요즘은… 사람들을 되게 많이 만났어. 보바의 조언이 많은 도움을 줬나봐. 친구도 많아졌거든. "
리타가 맥주를 마셨다. 별 일이라면 별 일이라 칠 수 있을 것이다. 근 일 년간 그리도 사람을 어려워하던 그녀가, 제법 여럿의 친구를 사귀었다는 소식은. 리타가 잠시 얼굴을 찡그렸다. 뭔가 평소보다 탄산이 강해진 것 같은 느낌이다. 기분 탓이겠지. 그 뒤로 쓸려온 쌉쌀한 뒷맛은 그대로였다.
" 고마워. "
그 말을 건네는 것이 조금 어색했을지도 모르겠다. 때문에 리타는 그리 말하고 잠시 뒤 작게 웃는 것을 택했다.
소장님을 보는 건 들어오고 나서 많은 사례가 아닙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래도 아르고 에이전시는 쪼들리는 모양이니까요..는 아닌가? 맞나? 모르겠다면 모르는 채로 넘기는 게 좋아요. 당직을 혼자 설 정도의 짬이냐라는 것은 논외고, 훈령장이라던가. 로비등등을 좀 돌아보고 숙소로 올라가려다가 소장님이 들어오는 것을 봅니다.
"아. 소장님이다. 안녕이에요." 로브의 소메자락을 펄럭펄럭거리며 들어오는 소장님에게 인사하려 합니다. 그래도 요즘은 로브 후드 정도는 간혹 벗고 다닌다니 다행인 걸까..
"갑자기 궁금해진 건데요. 헬멧의 앞부분에 LED로 글자 띄워서도 의사소통 가능해요?" 정말 쓸데없는 물음입니다.
수수한 사복 차림의 작은 피티아는 오늘 치 훈련을 열심히 수행한 댓가로 주어진 자유시간을 시내에서 보내고 있었다. 번화가는 이전에 소장님이나 다른 선배들과 동행해서 와보았던 적이 있었지만, 이렇게 혼자서 돌아다니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도시의 사람들은 너무나 평화로워 보여서, 저희 같은 대원들과는 다른 세상에 사는 것 같이 느껴진다.
온갖 점포에서 풍기는 맛있는 냄새, 줄지어 늘어선 신기한 볼거리가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다. 전부 도나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것들이다. 한 블록, 한 블록 지날 때마다 새로운 것들이 도나의 시선을 잡아끈다. 몇 발짝 걷다가 멈춰 서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을까, 저 앞에 달콤한 냄새가 나는 곳 근처에서 반가운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선배~ ... 리아 선배~"
가게 앞에서 서성이는 오니를 반갑게 부르며 잰걸음으로 달려간 도나는, 그녀의 팔을 와락 끌어안으려 한다.
오니는 그렇게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서성이다, 갑작스레 자신의 팔을 감싸안아오는 감촉에 눈이 동그랗게 커진다. 하지만 이내 그 목소리가 자신을 잘 따르는 후배의 것이라는 걸, 자연스레 따라오는 도나 특유의 향기가 코에 느껴지면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오니는 자신의 팔을 안은 체 싱글벙글 웃는 도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천천히 반대편 손을 뻗어 살살 머리를 쓰다듬어주려 한다.
" 안녕.. 도나. "
차분한 목소리로 자그맣고 앵두빛을 띈 입을 연 오니는 임무에서의 복장 그대로인 자신과 다르게 수수하고 여성스러운 사복을 입은 도나를 바라본다. 자신과는 다르게 이대로 디저트 가게에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전혀 어색하거나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도나를 조금은 부럽다고 생각하며, 아까까지 고민하던 것을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한다.
" ... 디저트 가게, 갈지 고민했어. 근데.. 역시 들어가긴 그래서.. "
자신이 있을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을까, 눈을 내리깐 오니가 작게 중얼거리며 말하곤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뜬다. 역시 이대로 집으로 돌아가면서, 간단한 음식이나 사들고 방으로 가는게 좋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퍼렇.. 그렇죠. 참치는 등푸른 생선이니까요. 애초에 참치가 고등어랑 친척인 시점에서 퍼럴 수 밖에 없던가..
"무녀가 아니라 신관이라니까요. 소장님도 참." 사실 점차 소속되어있다는 것에 익숙해지면 저절로 벗게는 되겠지만 한달차에게 바로바로는 무리인 것입니다. 바다무녀라는 말에 신관이라니까요? 라는 말을 하며 의미없는 변장이라는 말에는 그저 히 웃기만 하고는 로브의 후드도 살짝 걸치듯 쓰려 합니다. 언젠간 이 의미없는 변장을 제대로 만들거나, 변장을 안하거나.. 그렇게 되겠지.
"진짜 돼요?" 보여줄까라는 물음에 고개를 열성적으로 끄덕이면서 보여달라 합니다. 소장님의 LED 공연! 사진을 찍어둘거야! 라며 스마트폰 같은 걸 들어서 카메라를 실행시킬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그게 어려운거라고. 너의 그런 설명은 어려운 말 2개 설명하려고 어려운 말 4개 더 늘리는거랑 똑같아."
직위니 성직자니 뭐가 다른지도 모르겠고. 종교는 이래서 문제다. 하나같이 직관적이지가 않아서 머릿 속에서 강제로 이해하는걸 틀어막는 기분이다. 그것이 아마 그들이 말하는 '신앙심'이라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뭐, 나는 신앙심이 한 없이 바닥을 치는지라 뭣하나도 이해하지 못하는 걸지도.
"에...음.. 어려운 말이에요?" "노래부르듯 설명하면 다들 알아들을 거라고 생각했는데!"(※아닙니다) 하긴. 어려운 말을 내뱉으면 오라클 본인부터가 이해에 어려움을 겪으니 무리는 아니겠지요. 만경창파가 너의 발끝을 적시리라같은 고상한 말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둥의 말도 안 들어먹으니..
" 조각케이크? 좋아. 나중에 실력이 좀 늘어나면… 마카롱 같은 것도 만들어보고 싶다. "
리타가 맥주캔을 식탁 위로 올리며 말했다. 마카롱은 요리를 잘 하는 사람들도 어려워하는 메뉴라는데, 과연 그녀가 만들 수 있을까 싶지만서도…
" 그렇지… 사실 아르고에 입사하고 일 년이 지나서야 친구가 좀 생겼다니… 좀 웃긴가 싶기도 해. "
리타가 키득이며 웃었다. 처음 아르고에 왔을 땐… 정말 곤욕스러웠다. 그녀는 용병단이 처음이었고, 여차하면 목숨이 날아갈 수도 있는 업무 환경도 처음이었다. 누구 하나에게 말을 거는 것도 벅차 일주일 내내 입을 다물고 살았던 적도 있었다. 아르고의 사람들이 착해서 정말 다행이었지, 음.
" …아, 그런가? "
리타가 제 눈을 깜빡였다. 보바가 그 말을 듣고 부끄러워할 줄은 몰랐는데. 하지만 물그럼 그런 사브랴를 보고 나니 장난기가 생긴 것일지, 사블랴를 조금 더 놀리고 싶어진 것이다. 조금 더 다정한 말을 해보면 어떨까와 같은. —사블랴가 단숨에 맥주를 비워내는 것을 보고선 그 마음을 접고 말았지만…
" 음, 놀러간다면… 쉐라그? 쉐라그는 일 년 내내 눈이 내린대. "
리타의 목소리가 어딘가 들떠있다. 리타는 눈을 좋아했다. 눈이 내리는 밤이나, 새하얀 눈밭은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는 힘이 있지 않던가. 유난히 그녀가 깨끗하다거나, 순수해보이는 것을 좋아하는 탓도 있었다. 그녀가 느릿히 맥주캔을 기울였다. 그리곤, " …보바는 북극곰이라며? 가면 좋아하겠다. " 라는 농담을 덧붙이며 웃어보인다.
코트의 소맷자락에 뺨을 부비는 도나의 머리를 살살 매만져주던 오니는 자신의 말을 들은 도나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을 보며 무어라 설명할지 망설인다. 말재주가 부족한 오니로서는 지금 자신이 고민하는 이유를 짧게 정리해서 들려줄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결국 오니가 택한 것은 별것 아니라는 듯 가볍게 고개를 저어보인다. 그저 자신과는 영 어울리지 않는 곳 같아서 들어가지 못했다는 말 한마디로 충분했겠지만.
" 시내 구경.. 도나가 즐거워보이니 괜찮은 것 같네. "
시내 구경을 하는 것이 어떤 즐거움이 있는지는 오니로서는 잘 알지 못 했지만 도나가 이렇게 들떠있는 것을 보아하니 나쁘지는 않은 일 같았다. 그래서 오니는 가벼운 말로 도나의 장단에 맞춰주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후배가 좋다면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좋은 일이 될테니까. 그러다 옆에서 꼬리를 살랑이며 조심스럽게 물어오는 도나의 모습에서, 오니는 자신과 비슷한 느낌을 받고는 잠시 숨을 멈춘다.
" 나라도 괜찮다면, 같이 들어가는거.. 괜찮은데. "
아직까지도 저 안에 자신이 들어가도 될지 자신이 없었던 오니였기에 제대로 확답을 들려주지 못하고, 그저 도나가 좋다면 같이 안으로 향하겠다는 듯 답했다. 그렇지만 애원하는 도나의 눈을 몇번이고 더 바라보던 오니는 들릴 듯 말 듯한 한숨을 내쉬며 팔에 매달린 도나를 데리고 디저트 가게의 문을 열며 안으로 들어가려 한다.
"노래를 불러서도 소통이 가능하니까요?" "나아가는~ 걸음에 서린~ 불꽃이~" 흥얼거리는 노래는 들을 만은 하지만, 메세지 전달이라는측면에서는 부족하긴 하죠.
"비싼 거면...." 비싼 거라던가 기스난다는 말에 톡톡 건드리던 것은 멈춥니다. 그나마 오라클의 몸이 무지막지한 강도를 가지고 있다던가 해서 손가락으로 구멍낸다는 그런 건 아니니 다행인가. 그런 거 가능할 인재가 이 아르고 에이전시에 존재할 것 같지만 오라클이 알기엔 아직 이르죠(?)
"네엡. 타올게요" 그리고 오라클이 타온 커피는 물 양의 조절을 실패해서 믹스를 두 개 더 넣어서 간신히 맛을 맞춘 대신 커피 세 잔어치가 되어버린 것이었습니다(?) 그나마 황천의 요리모양은 아니어서 다행이려나?
"성가 정도는 부를 수 있는걸요." "음... 가사가 어땠더라~" 실제로 부르려던 게 아니라 슬쩍 놀리듯 말해보려는 것이었으므로 부르진 않았지만. 여담으로. 저 나아가는 걸음이라는 노래의 뜻은 걸어가는 발걸음마다 서린 귀화가 태워버린다는 살벌한 노래일지도 몰라요?(농담)
"제가 마실 거에요? 소장님이 마실 거라서 소장님 헬멧의 입 부분에서 빨대 튀어나오거나 트랜스포머같이 변형되는 거 기대하고 만든 건데." 아니 대체 뭘 상상한 거야.. 제대로 된 작전을 뛰어본 적이 없단 것에 맞아요. 라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한 달차라서 이제 조금씩 가능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곤 있지만요." 그치만 보통은 한달에서 세달 정도는 수습이라고도 하니까. 그래도 의지가 있으면 투입될 수 있지요? 라고 묻듯이 말을 이어갑니다. 적어도 광석충 하나정도는 해치우는 게 가능했지요(엑칼과의 선관 내용 중 하나) 라는 생각으로 말하던 걸까..
"당장은 어려워도 나중에 꼭 시도해보자." 라며 리타를 바라보다가 머릿속으로 레시피를 떠올려본다. 머랭 만들기도 꽤 힘들고 반죽같은 것도 만들기 난이도는 높지만... 뭐 실패해도 상관 없다고 생각하면 재미있을 것 같기도 하고. 혼자서 생각하며 아무 말 없이 손가락으로 무릎을 톡톡 두드렸다.
" 사람은 다 친구 사귀는 속도가 다르니까, 웃기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거에 가까우려나. 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미소지었다. 친구 사귀기 어려워하면 어떡하나 싶기도 했지만 다행이도 지금은 두루 친하게 지내고 있는 것 같으니까. 아르고 사람들이 착한 덕도 있겠지만 본인도 노력했다는 거겠지.
" 그래. 부끄럽다고. "
입술을 삐죽 내밀더니 손에 든 과자를 만지작거린다. 삐진 건 아니었지만 부끄럽게 만든 것에 대한 투정이었을까? 물론 기분 좋은 부끄러움이기는 했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였다.
별말을, 이란 말은 끝까지 이어가지 못한 체 도나와 함께 오니는 디저트 가게 안으로 들어선다. 가게에 들어선 순간 사람들의 이목이 쏠리는 것 같아 눈꺼풀이 파르르 떨려오는 오니였지만 옆에 있는 도나는 예쁘다며 들뜬 상태였기에 어쩌지도 못 한 체 빈자리를 향해 나아간다. 다행히 빈자리가 멀지 않은 곳에 있었고, 도나도 내부를 구경하다가 자리에 앉자, 조심스럽게 오니도 자리를 잡고 앉는 것이었다.
" ... 테이블이라기 보단, 여기 안에 디저트 냄새가 가득, 이야. "
코가 예민한 오니는 코가 마비될 것처럼 달콤한 향이 가득한 디저트 가게를 슬쩍 붉은 눈동자로 훑어보며 작게 중얼거리곤, 괜스레 움츠러든 몸을 가리려는 듯 롱코트를 여민다. 그렇게 다시 도나에게로 시선을 돌리자 황홀하다는 듯 웃고 있는 도나를 보곤 희미한 미소를 지어보인다.
" ... 주문 해야하는데, 먹고 싶은거 있어? 나는 잘 몰라서.. 도나가 고르는 걸 먹을까 하는데. "
디저트 가게 앞에서 달콤한 냄새에 이끌려 멈춰섰던 오니였지만, 정작 메뉴라던가 그런건 잘 알지 못했기에 선택을 조금이라도 자신보다 더 알 것 같은 도나에게 미루는 것이었다. 대신에 그 값은 자신이 지불할테니 그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면서.
" 도나가 고르는게, 맛있을 것, 같거든. 그러니 한번 골라볼래? "
마침 여자 종업원이 웃는 얼굴로 다가왔기에 잠시 움찔했던 오니는 종업원이 내려놓은 메뉴판을 도나에게 밀어주며 고개를 살짝 기울인다. 검은 머리카락이 흘러내려 새하얀 얼굴이 좀 더 들어나자 종업원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짐짓 모르는 척을 하면서.
역시 그럴법 했다. 내가 당사자인건 아니니까, 그 말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조금은 석연치 않은 느낌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한길 속도 알 수 없는 원석만큼이나 어렵구나, 사람살이란건.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뭐, 그런 말을 해준다는 것 자체부터가 이미 그런 사람들 부류에 들지 않을까 싶긴 하지만~?"
나쁜 사람이란건 사실 각자가 생각하기 나름이었다. 그것이 가식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사람마다 다르게 생각할 테니까, 각기 다른 모습의 사람이 있는데 각기 다른 성격이라고 문제될게 있을까?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슬픈데~? 모처럼 지어진 진짜 이름을 부를 일이 없단건 좀 아쉽지 않아?"
물론 그를 포함한 일부 사람들은 이름이 불리지 않는대도 딱히 관심이 없다곤 하나, 그래도 이름인데... 자기 이름을 싫어한다거나 하지 않는 이상은 그러지 못한다는 것에 대해 아쉬움을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 결국 어찌 생각하는지는 상대방, 즉 그에게 달려있겠지만 말이다.
"입맛에 맞았다면 다행이야~"
그녀 역시 밝게 반응하며 여느때처럼 한입에 음식을 털어넣었다. 왠지 모르게 뿌듯한 느낌이 들었기도 하고, 새로운 견해를 가진 사람을 만나기도 해 썩 나쁘지 않은 하루였다 생각하기엔 충분했다.
어느덧 과자가 반절이나 줄었다. 리타는 허리를 꼿꼿히 펴 자세를 바로잡는가 싶더니, 다시 두 무릎을 세우고는 식탁 위로 올려둔 맥주캔을 잡았다. 캔 위로 얇게 맺힌 물방울이 차갑다. 다시 느릿히 고개를 젖히고, 맥주를 한 모금 넘겨낸 그녀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고맙다는 말에 부끄러워하는 걸 보면, 꼭 칭찬에 인색한 어린아이 같기도 했다. 물론 사블랴는 그녀보다 더욱 어른스러운 면이 있었지만서도.
" 응. 난 겨울이 좋더라. 겨울 옷도 좋고, 눈 오는 날도 좋고… "
어릴 적에는 커다란 눈사람을 쌓으며 놀곤 했다. 그마저도 머리가 조금 커지고 나서는 그만 두고 말았지만. 하여튼간 눈이 내리는 날은 묘하게 기분이 들떴고, 새하얀 눈에 비친 세상이 어딘가 밝아진 것 같기도 했다. 또, 첫 눈을 기다리는 그 낭만이란 어디에도 비교할 수 없는 설렘이 아니던가.
" …좋아. 나중에 시간이 난다면 같이 쉐라그에 가자. "
리타가 잠시 맥주를 마시며 뜸을 들인 뒤, 옅은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 시간이 된다면 ' 이란 조건이 핵심이긴 했지만, 그리 바쁘지 않은 시기에 조금만 시간을 낸다면 못할 것도 없지 않던가. 보바가 건넨 말은 언뜻 지나가는 이야기에 불과했으나, 들뜬 그녀의 얼굴을 보니 쉬이 지워지지 않을 약속으로 삼은 듯하다. …뭐, 보바가 바쁘면 혼자 가도 되는 일이지.
" 그럼… 쉐라그에 가기로 했으니까, 앞으로 일 나갈 때는 더 조심해야해. "
그녀가 장난그레 덧붙였다. 반쯤은 진심이고, 반쯤은 그저 던지는 말이리라. 그녀는 항상 미래를 불안해하는 편이었으니까.
"다음에가 반복되다가는 소장님이 헬멧 벗고 요들송을 부를 때까지 못 듣겠네요!" 진지하게 톡 쏘는 게 아니라 그럴 때까지 안 들을 것 같당! 이라는 재미성 말에 가까울 겁니다.
"어떻게 알았어요?" 컬럼비아에 오기 전에 있던 곳에서는 그런 영화를 상영해 줘요. 라는 말을 하지만 그다지 진지하지 않을 걸 봐서는 농담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교전이라던가의 경험을 묻는 것에
"음... 어.. 나라를 넘나들 때에 이동도시 밖으로 나가서 여행한 것도 경험으로 치신다면 있다고 봐야겠죠?" 예를 들자면 용문에서 우르수스로 가면서 뭘 마주하면(그게 무엇이 되었건 간에) 디버프를 걸고 튀는 거라던가. 라는 느낌으로 생각합니다. 유감스럽게도 직접 공격능력은 부족하기 때문에 디버프만 걸고 튄 것에 가깝겠지. 이런 말을 하는 것으로 스스로가 쫓긴다고 여기는 것이 강박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으련만.
갑자기 자신을 바라보다 눈이 초승달 모양으로 변하는 도나를 보며 왜 그러냐는 듯 고개를 살짝 기울인 체 평소의 표정으로 바라본다. 아무래도 자신이 미소 지은 것을 도나가 봤을거라곤 생각하지 않는 듯 했다. 사실 오니의 옅은 미소는 자신도 모르게 나오는 것이 태반이었으니까.
" 괜찮아. 느낌 가는데로 골라보렴. "
메뉴판을 보며 걱정스레 말하는 말에 괜찮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모르기는 오니도 마찬가지였으니까, 자신보단 이런 것을 고르는데 감이 더 좋을 것 같은 도나에게 맡기는 것이 훨씬 좋은 결과를 가져올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파르페로 정한 후에 맛을 골라야 하자 망설이던 오니는 조심스럽게 메뉴판을 확인한다.
" 저는 쿠키 앤 크림 파르페로.. "
나눠먹으려면 다른 맛을 고르는 것이 좋았기에 눈으로 대강 훑은 오니는 가장 눈에 띄는 것을 손가락으로 짚어 주문을 한다. 종업원을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말을 남기곤 돌아갔고, 그제야 오니는 한결 편해진 얼굴로 도나를 바라본다.
" 파르페 하나면 괜찮겠어? 더 먹어도 괜찮은데. "
혹여 도나에게 부족하기라도 할까 조심스런 물음을 던진다. 물론 자신도 파르페 하나로 자신의 식욕이 다 채워질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지만 디저트로만 배를 채우는 것은 무리였기에, 도나와 헤어지고선 집에서 가볍게 배를 채울 생각이었다. 하지만 도나는 어떨지 모르니 물음을 던지는 오니였다.
" 나도 눈이 많이 오는 곳에서 살았지만... 리타는 나보다도 더 눈을 좋아하는 것 같아서 신기하다고 할까. "
이쪽은 아마도 너무 추웠기 때문에 환상이 사라졌던 것일까. 어쩌면 눈 오는 풍경과 혼란스러운 상황이 맞물려 좋은 이미지를 조금 깎아먹은 걸지도 모르지. 어느 쪽이건 간에 별로 유쾌한 추측은 아니었기에, 사블랴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눈은 좋았지만.
" 좋지. 나중에 시간이 난다면- 이긴 해도 미리 계획을 생각해 두는게 좋을지도 모르겠네. "
느릿하게 이야기하다 리타의 표정을 보고는 푸스스 웃음을 흘려버린다. 아무래도 그냥 지나가는 말로 넘기기는 어려워 보였으니까. 자신도 반쯤은 진담이기도 했으니 별로 상관은 없었던가. 간간히 여행 갈 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할 때쯤-
" ...못 당하겠네. "
그 와중에 자신을 걱정하는 말을 덧붙이는 그녀를 보며 키득 웃었다. 반 쯤은 장난이겠지만 아마도 반 쯤은 진담일테니까. 물론 싫은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오히려 이렇게 덧붙여주는 것을 좋아했을지도.
"언젠간 들을 수 있겠지요!" 들려줘 봐라고 말하면 꼬리.. 아니 오라클에게는 좀 더 직관적으로 입 삐죽임을 그만두고는 슬쩍 빼는군요. 진짜냐라는 물음같은 빛의 가늘어짐을 보고도 휘파람을 불며 말해줄 생각은 전혀 없는 태도를 보입니다.
"팀 단위로는... 아주.. 오래 전에 수습으로요? 아니다.. 참관.. 같은 거였던가요.." "나온 이후에는 팀으로는 제대로 한 적은 없었고요" 머뭇거리면서 말하려 합니다. 하긴. 팀 단위로 많이 움직였다면 지금 이렇게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지도 않았을 거라 생각하는 뒷사람.
"기도해주거나. 그들을 위해주기도 하니까요." 그들이 사냥하는 것은 필적하는 것이라 하던가.. 라고 약간은 멍댕해보이는 표정으로 중얼거립니다. 싸운다는 말에 답하는 것 치고는 진지하지는 않습니다.
돌아온 도나의 대답에 오니는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보인다. 본인이 만족하면 오니는 독촉하지 않는다. 강요도 하지 않는다. 그저 본인이 바라는대로 해주는 것이 오니였다. 적이 아닌 동료에게는. 그러다 알 수 없는 미소와 함께 건내져 오는 말을 가만히 듣고 있는다.
" 그건, 나도 도나랑 똑같아. 나도 와보고 싶어서, 앞에 서있던거야. 처음이거든 "
테이블에 엎드린 도나의 말에, 도나만이 아니라는 듯 덤덤하게 말한다. 자신과는 다르지 않게 숨김없이 기쁨을 표시하는 도나를 보고 생각의 전환이라도 생겼는지 솔직하게 말을 한 오니는 괜스레 자신의 손가락을 만지작거린다. 역시 솔직하게 말하는 건 괜히 간질거린다고 느끼면서.
" .. 도나가 즐거워진다면 앞으로도 종종 오도록 할까. 지금 도나, 평소보다 더 즐거워보여. "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던 오니는 살며시 턱을 괸 체 부드러운 눈으로 도나를 바라보며 다정한 말을 남긴다. 물론 표정이나 말투는 평소의 그것과 다를바 없어서 어떨지 모르지만 나름대로 도나를 생각해서 하는 말인 듯 했다.
" 이번 한번이 마지막은 아닐테니까. 더 행복해질거여, 도나. "
도와줄게, 라는 말은 굳이 하지 않은 체 물끄러미 말한 오니는 이내 종업원이 주문한 것을 들고 오는 것을 바라본다. 종업원은 익숙하게 각자의 앞에 메뉴를 두고 돌아갔고 오니는 스푼을 건낸다.
맥주가 겨우 두 입 정도 남았을까. 리타가 붉게 열이 오른 제 뺨을 문질렀다. 취한 것은 아니었지만 술을 조금만 먹어도 그새 얼굴에 티가 나는 체질이었던지라, 벌써부터 두 뺨이며 눈가가 붉게 오르고 만 것이다. 아, 슬슬 정리해야겠네. 리타가 두 눈을 꿈뻑였다. 아직 취한 건 아니지만…
" 으응… 조심해야지. 나도. "
말했다시피, 누군가를 걱정시키는 건 싫으니까.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맥주도 다 마셨고, 과자도 동이 나버렸다. 채 자리를 뜨려는 것이 아쉽다가도, 너무 오래 있으면 보바가 불편할까 걱정이 되는 것이다. 내일 일도 나가야하고 말이야.
" 오늘 즐거웠어. 역시 보바랑 노니까 좋다. "
리타가 느릿히 몸을 일으켰다. 빈 캔들과 남은 쓰레기를 비닐봉투에 쓸어담으며, 그녀는 " 쓰레기는 내가 가지고 갈게. " 라고 말했다. 집주인에게 뒷정리까지 맡기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 아니던가. 그러고보니, 이런 말도 부끄러워하려나. 문득 궁금해졌다. 그다지 중요한 의문은 아니었지만서도.
" 갈게. 내일 늦게 일어나지 말고, 음, 옷 따뜻하게 입고… "
술이 들어가면 말이 길어진다더니. 어째 사소한 잔소리를 늘어놓은 그녀였다. 아무튼. 진짜 가야지. 리타가 쓰레기를 담은 봉투를 챙겨들며 손을 흔들었다. 내일 또 봐. 하는 눈빛으로.
# 야야얍 막레입니다!! 꼬미주 일상 수고 많으셨어용~!! 저 나중에 쉐라그 가서 눈싸움 하는 일상 예약해둔 겁미다.... 아츠 사용하시면 안돼요(아무말)
>>649 아뇨!! 당연히 즐거웠죠~ 제가 뭘 먹으면서 대화하는 상황을 어려워하는 것도 있고, 핑크핑크한 디저트 카페에서 조금 진지한 속얘기를 나누긴 힘들 것 같아서 지루하시진 않을까 걱정됐거든요. 재미없어서 그런거 아니니까 오해말아주셨음 해요!! 제가 텀이 느린것도 있고 내일도 현생이 있어서 중간에 끊기면 질질 끌게되기도 하니까.. 혹시나 답레가 짧아서 성의 없어 보였다면 죄송해요! 텀 맞춘다고 급하게 쓰느라.. 너무 마음 쓰지 말아주세요. 막레는 좀더 힘써서 가져올게오!!
"그들에게 깊은 진주를 건네주고... 바람에 부스러지지 않게 해주어야겠지요.." "반대로 그들에게는 그들의 눈을 가리우고 맹세를 허무러뜨려야죠.." 그러니까 가호를 내리고 축복(버프)해줘야 하고 디버프를 걸어준다는 걸 이딴 식으로 어렵게 표현하는 게 문제입니다. 이거는 분명 그 신이라는 게 개입한 결과일 겁니다.
"그래서 저는.. 적들에게 염류의 파도를 그 발에 닿게 하고.. 아군에게 부족한 소금을 먹여줄 수 있겠네요." 그러니까 이 말도 적에게는 디버프를 주고 아군에게는 버프를 주겠다는 말입니다. 금방 배시시 웃고는 소장님도 이것저것 고생하시니까요. 쫓는 이들도 이제는 덜한 것 같으니까.. 이젠 괜찮을 거에요! 라고 발랄하게 말하려 하고는 커피를 꼴깍꼴깍 마십니다.
>>712 좋아요!! 가능할때 엑칼주한테 꼭 먼저 여쭤볼게요! 내일도 시간이 안되면 주말중에라도 꼭이요! >>715 앗 같은 스페셜리스트인 알트의 활약 기대할게요!! >>717 상냥한 볼냐암~은 괜찮지만 너무 세게 볼냐냐냐냠!! 해버린다면 다음날 곰씨의 조각 케잌이 사라져 버릴지도 몰라요!! u.u
아주 잠깐이었다 할수 있겠지만... 입을 다문채 벗어나던 시야를 되돌렸던 그가 보였다. 슬쩍 이쪽을 바라보나 싶다가도 피식 웃으며 하는 말엔 그녀 역시 농담인듯 농담아닌 말로 받아쳤을까?
"나쁘게 안보였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좋게 보였으니까~"
설령 지어낸 말이건 지나가듯 하는 말이건, 그런 말을 한다는 자체에서 사람은 원인모를 안도감이나 기쁨을 얻곤 한다. 그것이 곧 사람들이 사는 법이었고, 그녀가 배워나가는 방법이었다. 상실감 같은건 처음부터 없었지만 그 그릇을 채우기엔 턱없이 부족한 정보들만이 모였기에, 허기란 것이 그러했듯이...
"맞아. 솔직히 말해서 이런 시대에는 그것만큼 사치인 것도 없지."
평화를 모방할 뿐, 진정한 평화는 오지 않은 땅에서 여유부리는 것만큼은 사양하고 싶었다. 그것만큼 허영심에 찬 자살행위는 없겠지.
"그래도... 그 이름을 읊조리고, 되뇌이고, 부르기에 의미가 생기는 때도 종종 있으니까. 이름의 본질이란건 그런 거니까,"
그저 혼잣말일 뿐이다.
"아, 벌써 갈 시간이야~? 그래그래~ 배부르고 노곤한데 지금 누워있으면 잠도 잘 올테니깐? 그럼 나중에 또 보자~"
하품과 함께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던 그가 예의바른? 인사를 하고선 돌아가자 그녀 역시 일어나 주변 정리를 하며 끊겼던 노래를 다시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대충 말뜻을 미루어보아 같은 팀을 돕고 적에겐 전술적 훼방을 놓는다 이런 말인거같다. 이렇게 쉬운 말을 두고 '신'이라고 하는 존재는 왜 다들 굳이 어려운 단어를 선택해 쓰는것인지 이해하지 못하겠다. 애초에 신이 있긴한건지 긴가민가 하지만 이런 말을 자칭 신관이라는 녀석앞에서 꺼내들고 싶지는 않았다. 리유니온같은 폭동 단체도, 어비스 워커도. 자기들 나름의 '신'이 있는 법이니까.
"이러니 저러니 해도 너희들 먹여살리는게 지금 내 일이니까."
처음에는 순수 용병단체로 가고 싶었지만. 그러기 위해선 무지막지한 용문폐가 필요했지. 다행인건 도미닉은 감염자 차별에 대해 별 생각 없는 사람이었고, 그걸 감수할 수 있는 녀석이라면 누구든지 받아들일 수 있는... 귀찮음의 소유자였다. 발랄하게 말하는 오라클이 자신이 타온 커피를 뜨겁지도 않은지 꿀꺽꿀걱 삼켰다.
"그래. 하는 말은 대충 알겠다. 나도 네 걱정은 안하지만. 그래도 무슨 일 있으면 바로 말해 줘. 그걸 위해 있는게 나니까."
세상을 휩쓰는 이런저런 재해에도 아랑곳않고, 컬럼비아의 번화가는 예쁜 빛들에 둘러싸여 붐빈다. 사람들의 무리를 헤치고 번화가의 골목 사이로 들어가, 블럭 두 개를 건너면 번화가의 소음은 제법 백색소음으로 여겨줄 수 있을 정도로 줄어든다. 번화가와 인접해 있는 조그마한 거주지구에, 에덴이 자신이 거주하고 있노라고 일러주었던 조그만 오피스텔이 있었다. 컬럼비아 번화가를 이루고 있는 마천루들 뒷편에 끼어있는 그것은 눈에 잘 띄지 않게 숨어 있었지만 분명히 거기 있었다. 건축에 소양이 있는 이가 눈여겨보면 바로 어느 정도의 오리지늄 방호 설계가 적용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을 그 오피스텔은, 컬럼비아의 그늘에 숨어서 한정적이나마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는 감염자들의 삶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다.
인터폰을 누르고, 에덴이 알려준 자신의 방 번호를 누르면, 이내 인터폰에서 에덴의 목소리가 들려오고는 오피스텔의 문이 열릴 것이다. 3층 5호... 복도 끝방.
문을 열어보면, 바깥의 찬 공기와 대비되는 따뜻한 공기와 함께 잘 부푼 빵반죽에서 나는 냄새 같기도 하고, 풀꽃에서 나는 냄새 같기도 한 에덴의 방의 향기가 옅게 풍겨나온다. 타일로 된 현관과 신발장에는 에덴의 것임직한 신발이 몇 켤레. 가벼운 운동화, 더 가벼운 슬리퍼, 예비용으로 갖춰뒀음직한 튼튼한 부츠 세 켤레, 그리고 예쁜 구두가 두 켤레 놓여 있었다. 갈색으로 에나멜 칠이 된 메리제인 슈즈는 언제 신으려고 그렇게 곱게 갖춰놓았을까.
그리고 나무 무늬가 새겨진 타일로 깔려 있는 마룻바닥 위로는 아라베스크 무늬가 새겨진 카페트가 깔려 있었고, 골동품점에서 구해온 것인지 예스러운 장식이 된 테이블이며 의자들이 돋보인다. 텔레비전은 작은 것이, 벽걸이로 하나 걸려 있지만 다른 가구들이 다 앤틱한 물건인데 혼자서 매끈하니 모던한 모양인 게 좀 어색하다.
그리고 에덴이, 짧은 바지에 가디건 차림을 하고는 현관으로 리아를 마중나왔다. "어서 오세요, 리아 언니."
도나는 고개를 반대쪽으로 뉘이면서 오니를 바라보았다. 저도 와보고 싶었다는 그녀의 솔직한 이야기에 두 눈이 상현달 모양으로 부드럽게 휜다. 오니의 처음이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도나는 감히 추측하지 않았지만, 도나에게 있어서 그것은 단순히 이런 공간이 처음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모든 것이 새로운 낯선 곳이기도 했지만, 지금 도나의 어휘로는 표현할 수 없는 이질적인 행복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래도 되는 걸까 싶을 정도로.
"정말 그래도 돼요?"
도나는 테이블에 엎드린 채 즐거운 듯이 고개를 까닥거렸다. 종종 오자는 것이 그저 말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제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알아서, 마냥 응석부리고만 있을 수는 없었기에 약속을 하자고 새끼손가락을 내밀지는 않았다. 제 사욕으로 상냥한 선배에게 폐를 끼칠 수는 없으니까.
"선배님도요."
도나는 더 행복해질 거라는 말에 그렇게 답하곤, 테이블을 짚고 몸을 일으켰다. 종업원이 들고 오는 파르페를 본 도나의 눈이 다시 천진하게 반짝인다.
"잘 먹겠습니다!"
도나는 또 한 번 포근한 행복을 가슴에 새긴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소소한 일상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자신의 집과는 전혀 다른 오피스텔에 찾아온 것은 얼마전, 멘티였던 아이가 자신의 연인이 되었기에 얼굴을 보기 위함이었다. 그날은 오니도 무언가에 홀린 듯 에덴을 받아들였고, 그 약속을 위해서라면 좀 더 에덴과 가까워질 필요가 있었다. 다만 그것은 좀처럼 말하기가 쉽지 않아서 며칠을 고민하다 결국 결론을 내리고 찾아온 것이었다.
다만, 그 결심도 잠시. 언제나와 같은 자신의 흰 코트와 슈트 차림과 다르게 잘 어울리는 숏팬츠와 가디건을 걸친 체 자신을 맞이하는 에덴을 보며 오니는 잠시 머뭇거릴 수 밖에 없었다. 에덴이 평소에도 이것저것 옷을 잘 챙겨입는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괜스레 이렇게 비교가 되면 움츠려들고 마는 오니였다. 차라리 전장이었다면 기죽지 않았을텐데.
" 에덴.. 안녕 "
자그마한 목소리와 언제나 변함없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에덴의 마중에 답한 오니는 일단 문을 닫고 집에 들어선다. 아무래도 둘의 이야기가 밖에 새어나가는 것도 원치 않았고 지금부터 할 일도 누군가의 눈에 들어가길 바라지 않았다. 어쩌면 오니가 제대로 부려보는 독점욕의 시작이 아니었을까. 자신을 마중한 에덴을 보며 잠시 입술을 달싹이던 오니는 신발도 벗지 않은 체 문이 닫혀진 현관에 서서 에덴의 사복에 비해 초라하고 낡은 새하얀 롱코트를 매만지다 천천히 양팔을 벌린다.
책에서 보았던 자세. 서로 마음을 나눈 연인이라면 이런 표현 정도는 자연스럽게 한다고 적혀있었는데, 오니에게는 이런 것도 너무나도 낯설었다.
" 들어가기 전에, ..이리 와볼래? "
양팔을 어색하게 벌린 오니가 고개를 살짝 기울여 에덴과 눈을 마주하며 조용히 말을 건낸다.
에덴이 눈치가 없어 리아의 머뭇거리는 모습을 놓쳤더라면 차라리 괜찮았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리아와 함께 전장의 최전방으로 과감하게 돌진하는 나날들을 보내면서 에덴은 사소한 소리나 조그마한 풍경의 변화만으로 상황을 판단하는 눈썰미를 익혀야만 했다. 그리고 그것은 원망스럽게도 자신의 낡은 코트를 만지작거리는 리아의 손길에 담긴 의미를 포착해버리고 말았다.
...그냥, 집에서 편하게 입는 옷 위에 언니한테 예쁘게 보이려고 가디건 한 벌을 덧입은 것뿐인데. 그렇지만 영 반대방향으로 작용해버린 모양이다. 아랫입술을 꽉 깨무는 대신, 그녀는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이번 주말에는 언니랑 옷을 사러 가야지, 하고 결심하면서. 리아가 현관 문을 닫자, 왜인지 편안하던 방 안의 공기가 조금 다른 분위기로 변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에덴의 뇌리를 스쳤다. 그렇지만, 에덴은 그것이 기분좋았다.
리아가 양팔을 벌리자, 에덴은 "응?" 하고 코대답을 하면서 현관으로 내려서 슬리퍼를 딛고 리아에게 다가섰다. "왜요?" 하며, 에덴은 고개를 살짝 기울이고는 리아의 것을 닮은 새빨간 보석 같은 눈으로 리아를 마주 올려다본다.
자신의 앞에 선 에덴을 말없이 바라보던 오니는 '왜요' 라는 에덴의 물음에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부드럽게 감싸안으려 한다. 에덴을 감싸안으려 하면서 자신의 가슴팍에 에덴의 얼굴이 닿게 한다.
" 보고 싶었어, 그리고 안아주고 싶었어. "
오니는 자그맣게 자신이 바래왔다고 속삭인다. 그 누구에게도 먼저 자신이 바라왔던 것들을 말하는 법이 없던 오니였지만 에덴에게는 조금이라도 더 솔직하게 다가가고 싶었다는 듯 조용히 읊조리는 오니였다. 에덴을 품에 안은 체, 나지막이 속삭인 오니는 손을 움직여 에덴의 볼을 손끝으로 살며시 어루만져주려 했다.
" 바빠서 못 봤잖아.. 그래서 이래야 할 것 같았어. "
결국은 떨어져 있었을 에덴이 마음에 걸렸다는 이야기였다. 오니는 좀처럼 연인으로서 해야할 일을 잘 알지 못해서 책도 이것저것 찾아봤지만 그것들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단편적인 것들밖에 없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하다는 건 솔직하게 말을 전하라는 것이었고 오니는 그대로 그것을 실천하고 있었다.
" 잘 지냈어..? "
볼을 살며시 어루만지던 손은 자신의 가슴팍에 기대어졌을 에덴의 얼굴을 살며시 들게 하려하고선 천천히 뺨응 따라 내려와 에덴의 입술 위에 내려앉는다. 자그마한 말을 한번 더 더한 오니는 붉은 눈동자를 마주 하며 아주 옅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리아의 말에, 에덴은 한 치의 거부나 망설임도 없이 몸을 기울여 리아의 품에 몸을 기댔다. 리아의 어깨 위에 살며시 그 머리를 올려놓을 때는 따스하고 부드러운 어떤 향기가 섞인 뭉근한 온기가 리아의 품에 한 가득 안겨왔다.
"나도, 보고 싶었어요."
하고 속삭이며, 에덴은 리아의 어깨에 기댔던 머리를 들어올리려다가- 리아의 손끝이 뺨을 어루만지자, 고개만 다시 세운 채로 들어올리려던 시선은 그대로 내려놓고는 흡사 손 탄 고양이라도 되듯 리아의 손에 자신의 뺨을 기댔다. 솔직하게 말을 전하는 것. 리아가 받은 가르침은 그렇게 틀리지 않았다. 리아가 마음을 표현할 때마다, 에덴 역시도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의 마음을 꺼내서는 리아의 마음 위에 포갠다.
"언니가 걱정하지 않도록... 평소처럼 보내고 있었어요."
"그렇지만 언니 생각이 자주 났어."
리아의 손가락이 에덴의 입술 위에 내려앉았을 때, 에덴은 조그맣게 쪽, 소리를 내면서 리아의 손가락 끝에 입맞춤을 남겼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게 리아의 손끝에 콕 와닿는 게 느껴진다.
에덴의 잔잔한 속삭임과 온기에 오니는 한순간 숨을 멈춘다. 쑥스러움, 역시나 익숙지 않은 감정이 몰려와 오니를 잠식하기 시작한다. 자신이 말했을 때도 이처럼 부끄러웠나 싶을 정도로 에덴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올곧게 오니를 관통한다. 오니는 간신히 숨을 뱉어내며 그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그 답을 대신 했다. 차마 무언가 입에 담을 수 없었다. 입에 담는 순간 분명 자신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을 것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 ... 잘했어. 너라면 그럴거라고 생각했어. "
"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
잔잔한 목소리로 속삭이곤 손가락 끝에 입을 맞춰오는 에덴의 말에 오니 역시 평소의 잔잔한 목소리로 답을 돌려준다. 그 말에는 에덴에 대한 신뢰와 애정이 담겨 있었다. 서툴지만 분명 그것은 애정이 담긴 오니의 말이 분명했다. 손가락 끝에 입을 맞춘 체 고양이처럼 올려다 보는 에덴을 잠시 응시하던 오니는 고민을 하는 듯 하더니 천천히 드 손을 자신의 입술로 가져와 작게 쪽하는 소리를 낸다.
" 이제, 들어갈까..? 앉아서 이야기 하는게 좋겠지? "
오니는 자신이 한 일을 떠올리곤 얼굴을 서서히 붉히모 천천히 손을 내린다. 그리곤 붉어진 얼굴로 잠시 시선을 먼곳으로 돌리다 천천히 에덴에게 되돌리며 자그마한 목소리로 물음을 던진다. 에덴이 자신이 방금 전 한 일을 못 본 척하고 넘어가길 바라는 듯 했다. 수줍어서 입맞춤을 해주는 것도 무리였기에, 그나마 용기를 낸 것이 그 행동이었고 그것 마저도 하고 나니 과부하가 노는 듯한 오니였다.
" 들어가서도 안아줄테니.. "
오니는 혹여 지금 떨어진다고 에덴의 기분이 안 좋아질까 자그맣게 말을 덧붙인다. 여전히 덤덤한 얼굴에는 홍조를 띄고 있었지만.
어설프기로는 에덴도 마찬가지다. 살카즈, 광석병 감염자... 거친 삶 한가운데에서 에덴은 자신이 누군가를 사랑할 것이라고는 추호도 생각지 않았다. 그나마 예전에 몸담고 있던 광석병 감염자 예술가 단체에서, 자신의 감정을 예술로 승화시키며 표현하는 이들을 보면서 혹시 나에게도 그런 순간이 찾아올 수 있으려나, 하는 희망 정도는 가졌지만, 리아를 만나기까지, 아니 리아를 만나고 나서도 한동안 그것은 가설의 단계를 벗어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을 그저 늑골 속에 담아두기만 하기에는 그것은 너무 뜨겁게 부풀어올라 있었기에. 주저하기에는 에덴에게 주어진 시간이 에덴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짧을지도 몰랐기에. 전투를 할 때마다 죽음을 바라기라도 하듯 위험의 한복판으로 스스로를 내던지는 당신을 보면서 에덴은 머뭇거리며 후회하기보다는 리아에게 털어놓는 선택을 했다.
에덴은 자신이 입맞춘 손끝을 다시 자신의 입가로 가져가는 리아를 빤히 올려다보다가, 그녀가 입가에서 손을 떼자 살며시 발돋움을 해서는- 자신의 입술을 리아의 입가로 가져갔다. 못 본 척하고 넘어가기에는, 에덴에게 그것은 너무 분명한 애정표현이었던 모양이다. 리아가 그 입맞춤을 받아주었건 그러지 않았건, 에덴은 리아의 품에서 사뿐히 벗어나서는 다시 현관으로 올라섰다. 그러나 현관에 올라선 에덴은, 아직 할 말이 있는지 리아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곤 얼마 안 가 입을 뗐다.
"너무 두려워하지 않아도 돼요... 저는 언니를 사랑하지만 제 사랑이 언니를 지나치게 옭아매는 것을 바라지는 않아요. 어쩔 수 없는 일이라던가 당연한 일이라던가 하는 일이 있다는 것쯤은 아니까, 언니가 덥거나 귀찮으시다면 잠깐만 안아주어도 좋고, 다른 귀여운 후배들이라던가, 언니의 친구라던가 선배분들과도 마음껏 어울리셔도 돼요. 그러니 저 때문에 스스로의 행동에 제약을 두신다던가, 너무 주저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냥 언니의 마음이 제 마음과 함께 있다는 것만 안다면... 절 몇 달씩 내버려두거나 하지 않는다면 그걸로 충분하니까요."
"-잔소리는 이쯤하고, 그럼 들어갈까요? 식사는, 하셨어요?"
/ 살짝 에덴을 어떻게 대하면 좋은지 에덴의 입을 빌려서 말한다는 느낌으로 적었어요..uu
하나였던 것이 조각이 되어 떨어져 나가는 것처럼 에덴은 살며시 입을 맞추고 떨어진다. 그 과정은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져 오니는 떨어질 때까지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물론 입을 맞추어준 손가락을 입술로 가져갔을 때에는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에덴의 그 행동은 군더더기 하나 없이 깔끔했다. 그렇지만 떨어져나가는 뒷모습을 본 순간 오니는 무엇이라도 말해야 할 것만 같은 생각에 자신도 모르게 눈 앞의 소녀의 이름을 읊조리게 되는 것이었다.
자신에게서 떨어져나간 에덴이 다시 자신을 마주보고 서서 천천히 뱉는 이야기를 말없이 듣고 있던 오니는 이야기가 끝날 무렵에는 왠지 모를 열기를 띈 한숨을 뱉어낸다. 이야기의 처음부터 끝까지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째서일까, 어느 부분이 마음에 안든 것일까. 오니는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몸이 조금 뜨거웠다. 마치 임무에 들어가서 앞으로 한걸음 내딛기 직전처럼 몸이 달궈졌고, 호흡이 빨라졌다. 아아, 오니는 그제야 자신이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분명 에덴의 말에 은은하게 묻어나는 자기 희생의 마음 때문이라고 오니는 생각했다. 그래서 오니는 신고 온 신발을 빠르게 벗어던지곤 성큼성큼 에덴의 집 안으로 발을 들였다. 어딘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에덴의 입에서 이런 말을 듣는 것을 바라는 건 확실히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다면 분명 이렇게 열기가 오르지 않을테니까.
" 아니야, 아니야. 그건 아니야. 내가 바라는 것은 그런게 아니야, 에덴. "
머리 속에서 스위치라도 켜진 것처럼 정신이 맑아진다. 그러면서도 아까까지의 망설임이나 부끄러움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아서 오니가 들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좋다, 이 상태라면 좀 더 제대로 자신의 마음을 전할 수 있다. 그렇다면 망설이지 않는다.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이곳은 지금 둘만의 공간이었고, 그 누구도 볼수도, 들을수도 없을테니까. 오니는 그렇기에 고개를 저으며 다가가 에덴에게 입을 맞추었을 것이다. 거절하지 않았다면 짧지 않은 입맞춤을 거칠게 몇번이고 했을 것이다. 한손은 에덴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얇은 손목을 움켜쥔 체 두려워 하지 않아도 된다던 에덴의 입술을 빼앗을 것이었다.
" 나는 - 네가 날 옭아맨다고 하더라도 널 꺼려하거나 싫어하지 않아. 네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나를 보면서 질투하고, 화를 내고, 나를 원해서 끌어당기는 것도 괜찮아. 그것이 네 바램이라면 나는 얼마든지 받아들이고, 그것을 위해서 움직일 수 있어. 오니의 사랑은 분명 널 옭아맬거야. 네가 다른 누군가와 함께 나랑 하는 것처럼 시간을 보낸다면, 나는 너에게 마음껏 내 소유욕을 발산할거야. 그쪽으로 가지말고 내게로 와, 난 저사람보다 내게 가까이 있었으면 좋겠어. 저사람 말고 나를 봐, 저사람 보다 내게 그 예쁜 입술을 움직여줘. 저사람의 옷을 잡지말고 내 손을 잡아. 네 숨소리 마저 다른 누구보다 내게 제일 잘 들리게 해줘. 나는 네게 얼마든지 요구할거야. 왜냐하면 나는 널 사랑하니까. 이젠 내 마음 속에 네가 들어와버려서 어떻게 할 수 없어. 널 갖고 싶게 만들었으니까. "
오니는 몇번이고 입술을 겹치던 것을 멈추곤 살며시 고개를 떼어낸 후에 방금 전 에덴의 말을 부정하듯 잔잔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 목소리는 잔잔했지만 에덴의 손목을 잡은 손은 에덴이 그녀에게서 떨어져 나가지 못하게 강하게 붙잡고 있었을 것이다. 에덴이 떨어지려고 한다고 해도 좀처럼 떨어져 나가지 못하게. 오니는 아직도 정신이 맑고 부끄러움 같은 것이 몰려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분명 지금 에덴의 눈에 비치는 오니의 눈에선 오니 특유의 붉은 안광이 번뜩이고 있을테지만, 오니는 그것까지는 알아채지 못 했다. 그것을 알아채기엔 아직도 할 말이 남아있었으니까.
" 사랑이란건 자기희생이 아니야, 에덴. 나는 네가 그런 것을 하길 바라지 않아. 그건 비참해, 잔인해. 사랑한단 말 하나 때문에 네가 혼자서 아파하고 슬퍼하고 괴로워하고 좌절하고 포기하고 주저앉는 것을 나는 보고 싶지 않아. 바라지 않아. 나는 널 사랑해, 에덴. 사랑받는 이가 고통받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직도 사랑이 어떤 것인지 모두 알지 목하는 나라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 그러니 지금 네 말은 나는 받아들일 수 없어. 앞으로도 받아들이지 않을거야. "
" 그러니 너도 나를 옭아매. 네가 바라는대로, 널 봐주길 원하는대로 나를 옭아매고 붙잡아. 네가 바라는 것을 망설이지 말고 말해. 나를 신경쓴다고 마음 속 깊은 곳에 숨겨두지 말고 입으로 뱉어내. 나는 바보라서, 에덴이나 다른 사람들처럼 똑똑하지 못한 오니라서 말해주지 않는다면 제대로 모르는 것이 태반이야. 하지만 지금 네 말은 내가 바랬던 말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해. 안그러면 이렇게 에덴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리가 없으니까. " 오니는 망설이지 않았다. 자기희생따위 가져다 버리라고 잔잔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선 격렬한 감정이 담겨있는 것처럼 오니는 눈 앞의 연인에게 망설임없이 자신의 바램을 토해낸다. 옭아매라, 튼튼하고 빠져나올 수 없는 그물처럼 서로를 옭아매고, 옭아매서 서로에게서 빠져나올 수 없게 옭아매라. 그것을 망설이고 억누르려 할 필요가 없었다. 망설임 같은 것은 이미 처음으로 마음을 나누었던 날, 저 멀리 보이지 않는 곳으로 날려보냈으니까.
" 네가 바라는 건 뭐야, 내가 해줬으면 하는게 뭐야. 네 바램을 말해. 나부터 말하길 바란다면 지금 말해줄게. 나는 너를 원해. 내가 저번에 말했지. 오니의 사랑은 무거울거라고. 그리 가볍지 만은 않을거라고. 그러니 지금 말할게. 나는 너를 원해, 에덴. 네 부드러운 머리카락부터 발끝까지 온전히 내 것이었으면 좋겠어. 그래서 나는 지금 네게 내 흔적을 새겨넣을거야. "
오니는 붉은 안광이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눈을 마주한 체 완고한 목소리로 말을 하곤 대담하게 에덴의 새하얀 목덜미로 고개를 기울여 다가간다. 평소의 오니였다면 대범하게 이런 짓을 하지는 못 했을테지만 지금 오니는 전장의 오니처럼 마음 한 구석에서 스위치가 올라가 있는 상태였다. 너를 원한다는 증표를 남긴다. 내것이라는 낙인을 네 몸에 새겨넣는다. 오니는 에덴이 밀쳐내지 않았다면 그 새하얀 목덜미에 조금은 아팠을지도 모르지만 자신의 이빨자국을 새겨넣었을 것이다. 깊게 새겨져 며칠은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을 이빨자국을.
" 그러니까, 그러니까 너도 지금부터는 오로지 네 마음과 바램에 충실해져. 그게 내가 바라는거야. 너라는 아이에게 내가 바라는 것은, 솔직하게 네가 원하는 것을 숨기지 않고 앞으로 계속해서 말해줘. 말해주지 않으면 나는 모르고 지나칠지도 몰라. 나는 섬세한 사람이 아니라서 말해주지 않는다면 네 속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할지조 몰라. 그러니까, 굼기지 말고 올곧게 네가 바라는 것을 표현해줘. 얼마든지 옭아매도 좋으니까. "
그렇게 하겠다는 대답을 듣고야 말겠다는 듯 오니는 고개를 떼어내 에덴의 루비처럼 빛나는 눈을 마주하며 천천히 열기를 띈 숨을 뱉어낸다. 이야기를 하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점점 더 열이 올랐던 모양이다. 뺨에는 한줄기 땀이 흐르고 있었고, 몸이 뜨거웠다. 분명 에덴의 손목을 잡은 손도 한없이 뜨거워서 에덴에게도 그대로 전해지고 있을지도 모를 닐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는 듯, 놓치지 않겠다는 듯 에덴을 바라보며 그 입술에서 나올 답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