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피터지게 싸우는 것만이 전략적 열쇠는 아니다. 메딕은 다른 이들과는 달리 치유라는 방법으로 싸움터에 섰다. 오리지늄 아츠는 공격적인 방식뿐만이 아닌 치유적인 방향으로도 발달되었으며, 메딕은 그 힘과 지식을 아군을 보살피는데에 사용한다. 이것은 상당히 고도의 지식이며 그렇기 때문에 메딕의 존재는 희귀하고, 이런 포지션을 도맡으려 하는 자들도 드물지만 절대 이들을 등한시해서는 안된다. 싸움이 길어지며 기세등등했던 동료들이 점점 지쳐갈때, 결국에 찾는 것은 항상 메딕의 존재유무일것이기 때문이다.」
“애들은 다 그렇게 말하더라고. 그보다 보이스 체인저는 안 된다니 그러면 키는 오히려 줄여버리라고. 키는 사춘기가 지난 남자를 기준으로 잡고 목소리는 그러니까 위화감이 장난 아니야. 차라리 어린애인척을 하는게 더 쉽게 먹힐 걸?”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당신이 하려는 말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외골격을 쓴다고 하더라도 외모나 목소리 혹은 체형 같은 부분까지 교정 시키는 것은 어느정도 한계가 있었다.
“그래, 그건 다행이네. 솔직히 말하면 배에 들어가면 다 똑같다고 생각해서 말이야. 가끔씩 다른 녀석들이 식사를 챙겨주더라도 다 그 맛이 그 맛처럼 느껴지거든. 솔직히 이 집도 나 혼자 그렇게 생각하는 거 아닐까 하고 있었어. 거 봐, 지금도 손님 없고.”
그녀는 가볍게 가게 안을 돌아보고는 다시 당신에게로 시선을 맞추었다. 그녀는 스스로 요리해 본 적이 거의 없기도 하거니와 애초에 식사에 그다지 공을 들이는 타입은 아니었다. 평소에도 배만 채울 수 있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돌아다니기에 맛이라는 개념 자체에 그다지 신경을 쓸 필요도 없을 테니 말이다.
“아니 그거 요리는 맞아? 연금술 뭐 그런건가?”
그녀는 자신에게 요리를 잘하냐고 물어보는 당신에게 그대로 대답해주려 했으나 이내 당신의 입에서 흘러나온 이 세상의 요리가 아닌 무언가와 비슷한 것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한참을 당황하다가 이내 마음을 가다듬고서 말을 이었다.
“뭐, 아무튼 나는 요리 안해. 재료비도 들고 시간도 들고. 그 시간에 돈을 따러 돌아다니는 편이 낫거든. 예전에 근위국에서 일 할 때에는 쉬는 날마다 아무리 생각해도 별로 생각나는 게 없어서 가끔 해먹어보기는 했는데 다른 사람 초대해서 파스타 해줬을 때 면을 태워 버린 뒤로는 전혀 안해. 이것도 벌써 몇 년 전이더라?”
그녀는 그렇게 말한 뒤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숙여버렸다. 무언가 회상을 하는 것 같기도 했으나 단순히 자기가 생각하기에도 얼이 빠진 사람 같기에 조금 부끄러웠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런거지. 요리는 하는 사람이 하라고 그래. 먹는 사람은 따로 있거든. 그러고보니 오라클 너는 방금 그 말 보면 요리는 제법 자신이 있나봐? 왜, 할로윈 케이크 같은 건 일부러 그렇게 만들잖냐. 푸드 아트? 뭐 그런건가?”
리타는 평균적인 수면 시간이 적은 편에 속했다. 아르고에 들어오기 전까지 수면 리듬이 굉장히 불규칙했던 탓도 있고, 일종의 불면증인것일지 늦은 시간까지도 잠이 잘 안오기 때문이었다. 터무니없이 적게 자는 날은 임무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적어도 4시간은 자려 노력하곤 했지만… 습관을 뜯어고치는 일이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 않던가. 사블랴는 잠이 오지 않아 깨어있었던 모양이다. —그러게, 이 시간은 진짜 자꾸 뭘 먹게 되더라. 리타가 가볍게 덧붙여 말하며 웃었다. 늦은 시간 땡기는 야식의 욕구는 종족을 가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 그럼, 숙소로 가자. 음… 그래, 보바네 방에서 먹을까. "
—불편하진 않지만… 리타가 그리 입을 다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리타의 방은, 아르고 '에이전시의 숙소 쇼 하우스입니다.' 라 말해도 믿을 정도로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정말 필요할 수준의 가구가 아니고서는 들이지 않았고, 게다가 리타 본인의 짐도 굉장히 적었기에 볼 품이 없던 것이다. 정말 사람이 살고 있는 것이 맞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 자자, 앞장 서. "
리타가 장난스레 말했다. 그러고보니, 보바의 방에 놀러가는 건 또 처음인 거 같네. 겨울바람이 꽤나 차갑다. 리타는 익숙히 계단을 오르며, 보바를 향해 뒤를 돌며 먼저 올라가라는 듯 사블랴를 재촉했다. 그리 장난을 칠 수 있던 것은, 사블랴가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그..그런가요..?" 생각지도 못한 방법을 찾아버린 에기르(족으로 추정되는)인이 충격먹은 표정을 짓습니다! 뻐끔거리며 키를 차라리 줄이라던가. 하는 현실적 충고를 아무도 안 해줬던 탓이었을까요..
"...노..노력해야겠어요! 세상엔 이렇게나 지혜로운 사람이 많아요.." "아뇨.. 그게 아니잖아요. 아니. 아차차..." 두 번째의 말은 혼잣말이지만 입 밖으로 내선 안 될 말이었는지 아차. 라며 입을 다뭅니다. 손님이 없다는 것에는 카레만 전문으로 하면 괜찮은데 다른 건 맛없어서일지도 모르죠? 라는 일침을 쏴버립니다. 참...
"그렇군요.." 요리를 안 한다는 것에 순순히 납득합니다. 본인이야 약간의 강박증세로 요리를 직접 하곤 했던 거라 그렇지.. 그냥 사먹는 게 오히려 경제적일 때가 가끔 있으니까요.
"아뇨.. 그냥 레시피대로 하는데 외양이 그렇게 나오더라고요..." 그게 대단한(?) 점이지 않을까요? 황천의 요리같은 비주얼인데 그게 레시피를 따른 거라니. 머리와 손이 꼬이기라도 한 걸까? 근데 그런 걸 노리면 더 충격적인 비주얼이 나오더라고요. 라는 말을 합니다. 그래도 제단에 올릴 음식은 정상적으로 하려고 무던히 노력해요. 라고 재잘재잘.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떠올라있는 거품을 걷어내고서 흐릿한 기억을 찬찬히 되짚어보니 그런걸 본 기억이 한켠에 남아있긴 했다. 타조알을 가지고 오믈렛을 만들어먹은 사람 이야기였나? 세상에는 신기한 사람들 천지인가 싶은 그런 기행이었을지도 모른다.
"음... 다시 생각해보니 전에 들었던 기억이 있었을지도?"
조금은 흐릿했던 미소가 비죽여지더니 찬찬히 올라가며 고운 호를 그렸다. 물론 잠깐의 실수가 필요이상으로 길어진 입꼬리를 만들어냈지만, 그것도 정말 찰나의 순간이었기에 어쩌면 잘못 본거지 않을까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엔 충분했다.
"정말? 만약 그래준다면 그것만큼 고마운 일도 없을것 같아."
받은대로 돌려준다는 취지인지, 아니면 그의 말대로 너무 귀한건 부담된다는 의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가 선뜻 건넨 말이 다른 것도 아닌 요리라는 이야기에 미소가 절로 지어질만도 했다. 겉으로 드러나는 표현에 꽤 솔직한 편이었던 그녀이기 때문에 웃음을 아낄 이유 역시 없지 않을까,
"그런 일도 있었구나... 여러모로 유감인 요리였겠네. 아... 그건 그렇지? 같이 구하는 것도, 분명 재밌을 테니까."
그의 이야기를 찬찬히 들어보면 스스로 만들어 먹는 것에도 꽤 재능이나 실력이 있는 것으로 보였다. 확실히 음식이란건 그림처럼 여러 견해를 보며 그것들을 흡수하기 마련이었다. 그가 어떤 쪽으로 재능이 있는진 알수 없지만,
"아... 그, 그렇구나... 응. 그건 그래... 편히... 생각해야지..."
딱히 긴장하거나 경계하는건 아니었지만 그녀는 상대방에게 꽤 신경을 많이 쏟는 편이었기에 종종 상대방이 마음에 담지 않는 부분까지도 세세히 신경쓰는 버릇이 있었다. 그래도 그가 긍정적인 사인을 보냈기에 그녀는 조금 부끄러운 이야기를 했다는듯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살짝 멍한 표정에 붉은기가 어릴 즈음 갑자기 들려오는 알람소리, 그 소리가 어디에서 나는지 알고 있던 그녀는 오븐을 열었고, 방금 전보다 더 진한 향내는 허브 뿐만이 아니라 따로 맛을 입힌 건진 몰라도 꽤 먹음직스러운 느낌을 주기엔 충분했다.
"지혜로운 건 사람마다 다르다니까. 로우씨에게도 배울 건 많아요.." 지혜로우려고 노력한다는 것은.. 다른 걸까?
"많이 하지는 않아요." 하고 싶으면 하지만요! 라면서 할로윈 때 평범한 거 만들면 재미있어 할 것 같으니까 한다거나? 라고 농담처럼 말합니다. 맛보기 담당 정도는 가능하다는 말에 그럼 만들면 하나 정도는 드릴 수 있겠네요~ 예를 들자면 곰팡이핀 빵 같지만 블루베리빵이라던가. 시커멓게 다 타서 숯에 불 피워서 붉게 된 것처럼 보이지만 오징어먹물과 토마토소스를 써서 만든 짭쪼름한 피자빵이라던가..요?
"에.. 음... 완전 종교인...이라고 하긴 애매하지만요.." 네에네에. 전직.. 신관이었습니다아. 라고 말하려 합니다. 사실 실제 무녀였으니.. 지위를 잘 대조해 보면(물론 1대1 대응은 무리이기는 하지만) 카란의 성녀 같은 느낌? 지도자는 아니고 훗날. 을 기약하는 거였으니. 좀 다르겠지만서도. 그런 말은 하지 않으면서 방글방글 웃기만 합니다.
" 그럼 안 되는데. 수면 푹 안 취하면 내가 잔소리 할 거야. 수면 안 취하다가 네가 쓰러지기라도 하면 나에게도 지장이 있는 거 알지? "
사블랴의 말투는 느릿했지만 어쩐지 잔소리하는 느낌에 가까웠다. 자신의 활동에 지장이 생기는 것도 물론 맞다. 사블랴가 리타만큼 의지하고 있는 사람은 더 없으니까. 다만 그걸 제쳐두고서라도 리타가 걱정되었을까. 짱친이니까. 자신처럼 뭘 하느라 일부러 늦게 자는 거라면 걱정을 좀 덜겠지만 만약 불면증 같은 요인으로 늦게 자는 거라면... 어쩐지 걱정이 두배는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어버렸다.
" 내 방이 좋겠지. 언젠가는 리타 방도 구경해보고 싶지만. "
농담스레 말하며 웃어보였을까? 실제로 구경해보고 싶은 것도 사실이었으니까. 다만 리타가 입을 다무는 것을 눈치채고는, 반쯤 농담이니까 허락 안 해줘도 괜찮지만. 이라고 덧붙였다. 보여주고 싶지 않은 이유가 있다면 굳이 파고들지 않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다. 내가 파고드는 쪽이든, 그 반대든 간에.
" 네에네에 앞장 서겠습니다 누님. "
자신을 재촉하는 모습을 보고는 피식 웃으며 장난스럽게 답했다. 겨울바람이 스치자 몸에 소름이 돋는 것이 느껴졌을까. 얇게 입은 리타를 한번 바라보더니
" 혹시 추우면 내 잠바라도 걸칠래? "
하며 가볍게 물어보는 것은 덤이었다.
사블랴의 뒤를 따라가다보면 아지트의 숙소로 들어가 사블랴의 방으로 금방 이동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블랴는 익숙한 듯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꾹꾹 누르고는 문을 열며 들어와도 괜찮아. 라고 덧붙였다. 방의 안쪽은 깨끗하기는 했지만 군데군데 어질러진 곳이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었다. 느긋한 성격이지만 나름 정리는 하고 사는 것일까? 사블랴는 가볍게 거실 식탁 위에 비닐봉지를 내려놓으며 리타를 향해 들어오라고 손짓한다.
아주 순간적이었지만. 엄청나게 올라가는 입꼬리를 보았다. 오 입이 엄청 크네. 하긴 그러니까 그 음식을 한입에 넣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타당한 입 크기였기에 그렇구나~ 하는 표정을 지었다.
"입이 크네. 웃는거 보고 알았어. 음식을 한번에 많이 넣는 비밀을 좀 알겠다~"
먹을때도 그렇지만 웃을때도 좋겠다고 말하며. 나는 기지개를 켰다. 뭐 졸리거나 그런건 아니고 그래도 음식을 먹었으니 운동삼아? 뭐 아무리 크기가 커도 아직 저녁도 안 먹었는데 다리 하나를 먹었다고 배가 부른것도 아니었다만.. 하지만 이미 음식은 없는거 같으니 이따가 편의점이나 갈까~ 생각하던중.
"흠~ 괜히 실망하진 말고."
만약 요리가 입맛에 안 맞으면 이 뼈로 날 때리는거 아니야? 라며 나는 다리뼈?를 들고서 내 머리를 때려보았다. 뭐 이미 구워진거고 그렇게 아프진 않았지만 그래도 진짜 때릴 기세로 휘두르면 아프지 않을까? 아무튼 뒤로 새어버린 생각을 바로잡고 나는 농담이고 말만하면 언제 한번 만들겠다며 다시 웃었다.
"이야 진짜 엄청났다니까. 사람들이 너 대체 무슨짓을 한거야?! 라며 놀랐어~"
나는 그때 일이 생각나서 작게 웃음소리를 내고는 재밌을거란 이야기에 말없이 동의하는 제스쳐를 취했다. 혹시 어디서 직접 잡아오는건 아닐까~ 하는 뻘생각도 들긴 했지만 말하진 말자.
"뭐 남을 배려하는거니까~ 좋은거긴 하지. 하지만 나 자신을 억지로 바꿔서 배려하는것보단 내가 먼저 식사를 마치고나서 그 이후 어떻게 할지를 생각하는게 어때 그럼?"
만약 먹고나서 혼자 멀뚱멀뚱 보고있으면 그건 확실히 부담이니까. 그 후 어떻게 상대를 위할지라거나. 나는 그렇게 설명하면서 물론 타인을 위해 나를 바꾸는게 나쁘기만 하다는건 아니라고 덧붙였다.
흠.. 그래도 안면이 튼 사이도 아닌데 너무 참견한거 같기도해서. 일단 이 이야기는 잠시 멈춰두고.
"오, 뭐야~ 더 있었네? 아직 좀 출출하던 차인데."
나는 새로운 칠면조의 등장에 밝은 표정으로 생각 못했다고 말했다. 아까 그 한마리도 혼자서 먹기에는 좀 많은양이었기에 내 기준대로 생각했지만. 아까의 속도로 보건데 이쪽이 정상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