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막과 신중한 사격은 언제라도 도움이 된다. 스나이퍼는 원거리에서의 지원을 통해 화망을 구성하는 사수들이다. 근거리 교전과 오리지늄 아츠가 주된 지금의 전장에서 스나이퍼의 존재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이들은 원거리 무기를 통해 싸움을 유리하게 이끌어가며 적의 공습에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 유연함을 지녔다. 이런 입체적인 전술의 폭은 다른 포지션에는 없는 장점이기도 하지만 이것은 모두 충분히 전선이 갖춰진 후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동료가 스나이퍼를 믿는 만큼, 스나이퍼도 동료를 믿어야한다. 이들을 대표하는 무장은 석궁이다.」
조금 따끔하다는 네로의 말에 그저 무덤덤한 표정으로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오니는 조용히 주사바늘을 꽂는 것을 지켜본다. 그렇지만 주사바늘이 박혀도 오니는 표정의 변화 없이 그저 평온해보였다. 어쩌면 이젠 주삿바늘을 꽂는 정도의 통증에는 무감각해졌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 그치만, 임무에 나서는게 제 가치라서. "
사무소에 온 자신의 가치는 결국 그 누구보다도 앞에 서서 휘젓는 것이 오니의 역활이자 가치였다. 그것을 하지 못하면 가치가 없어지고 결국 사무소에 있을 수 있는 입장이 되지 못한다. 그렇기에 그녀는 늘 임무에 나섰다. 몇번이고, 몇번이고 쓰러진다고 하더라도 치료를 받는다면 임무에 나선다. 그것이 오니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으니까.
" 그리고, 내일 임무도 다들 신입들이라... "
챙겨주지 않으면 안된다는 듯, 말을 끝까지 하지는 않았지만 씁쓸하게 웃는 네로를 바라보며 덤덤한 말을 남긴다. 신입들은 온전히 적응하고, 어엿하게 한사람 몫을 하는 존재들이 되었으면 한다. 그 길을 자신이 돕는다면 분명 자신의 가치에 맞는 일을 한 것일테니까. 그리고 어쩌면 조금이나마 보람이 있는 일이 될 것이라는 생각일지도 몰랐다. 단순히 창을 휘두르는 것 밖에 할 줄 모르는 하나의 오니로서 할 수 있는 가장 큰 보람찬 일.
" ... 그래서, 혹시 진통제도 받아갈 수 있나... 물어봐도 되나 싶고... "
오늘은 진통제가 없어서 결국 임부의 후반부에선 몸이 둔해지고 말았다. 전열의 흔들림은 임무에 나선 동료들의 안정성을 무너트리니까. 조금이라도 더 버틸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다. 조심스럽게 말을 건넨 오니는 자신의 상처를 꿰매는 네로의 표정을 살피기 시작했다.
리타가 음료수를 한 모금 들이켰다. 하늘에 별이 참 많다. 혹자는 하늘의 별이란 죽은 사람의 영혼이라 했다. 사람이 죽으면 검은 하늘에 묻힌 별이 된다고. 라테라노에 있을 적 그녀는, 그저 죽은 사람들은 신의 요람으로 돌아간다 믿었다. 신의 저울에 따라 죄의 유무가 가려지고 신의 부름에 따라 생을 반복하거나 영원한 휴식을 취하노라고. 때문에 밤하늘의 별 따위보다는 신의 손길과 은총에 감명을 느끼곤 했다. 하지만 자유를 쥐고 난 이후로는, 밤하늘의 별이, 눈동자 위로 그리도 아름답게 비추어지는 것이 아닌가. 별이 예쁘네. 그녀는 밤하늘의 별이 누군가의 영혼이라는 말을 믿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저리 아름다운 빛을 내겠는가.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으로 만들어졌기에 그 빛마저 아름다운 것이리라.
" …사고. 아뇨, 사고는 아니었어요. "
리타가 차분히 말을 골랐다.
" …저에게는, 금기가 아니었거든요. "
그녀의 말이 참으로 알쏭달쏭하다. 차라리 표정이라도 좀 변한다면 그 말의 결을 읽어내겠다만, 평소와는 다르게 잔잔한 그 얼굴이, 마치 가면이라도 쓴듯 이질감이 느껴지는 것이다.
" 그럼, 류드라씨는 왜 산크타를 죽이게 된 거예요? "
리타가 몸을 돌려 류드라를 바라보았다. 돗자리 위로 몸을 웅크린 채, 두 무릎을 모으고서 류드라를 빤히 바라보는 그 얼굴이 퍽 진지하다. —저도 궁금해요. 그녀가 나직히 덧붙였다.
"혼나도 신제품을 먹을 수 있다니. 그래도 안 혼나는 게 좋잖아요?" 잘 하면 칭찬할 수도 있고.. 라는 생각을 하고는 로브에 관해서는 미묘합니다. 알바로 돈 모을 때에는 돈으로 억지로 눌러뒀던 것이겠지요.
"다치는 건 괜찮아요. 나. 재생도 빠른 편이고.." 정말 안된다면... 피..필라인이지만 메딕씨도 있고.. 라고 말하려 합니다. 필사적으로 말하려 합니다. 시간이 필요한 것일까요? 아니면 로브를 개조해서 발은 보이게 만들어놓는다거나? 로브 못잃어 상태라니. 그래도 일단 아침 7시나 뛰는 것 자체는 괜찮은가 봅니다.
"가면..이 다 가려줄 수 있어요..?" 아니 다 가리려면 소-장님의 헬멧같은 것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나.. 싶지만 다 가려진다면 의외로 괜찮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자꾸 무리하면 몸을 못 쓰게 될 수도 있어요. 그 가치를 계속 지키려면 자신의 몸도 소중히 해야죠."
네로는 계속해서 상처를 꿰매며 말했다. 진심에서 우러나온, 리아를 걱정하는 말이었다. 부상이 계속해서 누적되면 언젠가는 몸이 상할 것이다.
"리아 씨는 일을 너무 혼자서만 짊어지려 하는 것 같아요."
신입을 챙겨주는 일은 굳이 그녀가 아니라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무소의 대원들도 환자가 무리하는 꼴을 가만히 두고 보진 않을 테고. 그런데도 그녀는 계속해서 고집을 부리고 있다. "그리고 고집도 세시고요." 그가 나직히 중얼거렸다. 봉합을 마친 네로는 붕대를 꺼내 꿰맨 상처 위에 감았다.
"진통제라면 한 통 챙겨드릴게요."
네로는 리아의 반대쪽 팔이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다시 주사가 놓아지고, 바늘이 피부를 통과했다.
혼자만 짊어지는 것 같다는 네로의 말에 잠시 입을 닫고 있던 오니는 천천히 입술을 떼어내며 중얼거린다. 창을 든 것이 까마득하게 어린 시절인데 하루하루 창을 쥐고 움직이는 것으로 살아온 오니는 그것 외에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할지 몰랐다. 창을 쥐고 임무에 나서고, 돌아와서 밥을 먹는다.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워 곤히 잠을 청한다. 이것이 그녀의 일상이었다.
물론 그 사이에 술집을 간다던지, 카페를 간다던지 하는 것은 대다수는 자신의 생각이 아닌, 남의 의견에 따라 이리저리 다녔던 것 뿐이었다. 그나마 혼자서 무언가를 해보기로 마음 먹었던 것은 책 읽는 것이 전부였던가.
" 안 하면 뭘 할지 몰라요. 그래서 하는거에요. 할 줄 아는거. "
그렇지만 임무에 나선다면 고민은 필요없었다. 눈에 닥친 임무를 해결하는 것에만 집중하면 고민을 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래서 더욱 더 일에 매달리는 것이다. 고민을 하지 않으면 맘이 편하다. 불안하지 않다. 그리고 살아남으면 또다시 다음 하루를 살아갈 수 있다. 그래서 오니는 오늘도, 내일도 임무에 나서는 것이었다.
" 감사합니다. 그, 걱정을 끼치고 있다는 건 ... 알고 있어요. 그래서 늘 미안해요. 올 때마다. "
안 올 수는 없어서. 언젠가 자가치료법을 배워볼까 했던 오니였지만 결국 책으로도 좀처럼 방법을 이해할 수 없었기에 네로가 있는 의무실에 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네로의 마음을 모르는 것도 아니었기에 오니는 늘 미안하다는 말을 머금없다. 광기에 젖어있는 상태에서 만날 때는 이런 인사조차 못하기에.
리타가 제 고개를 가볍게 까딱였다.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 언제부터 이 말을 문제없이 납득할 수 있는 세상이 되어버린 것일지. 리타가 물그럼 류드라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렇게 검은 고리와 날개를 얻게 된 것이구나.
" 참 다양한 사연이 있네요… "
리타가 음료수를 마셨다. 추운 날씨에 차가운 음료를 마셔대니 온 몸에 오한이 돌았으나, 아무렴 상관이 없을 일이다. —재미없다뇨, 아… 그렇가고 류드라씨의 이야기가 재밌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리타가 느릿히 덧붙여 말했다. 제 과거는 재미있는 이야기일까, 재미 없는 이야기일까.
" 뭐… 저는… "
리타가 머리를 굴렸다. 이대로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에 대해. 구태여 거짓을 덧붙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몇 되지 않는 '동포'에게 거짓된 말을 해보았자, 들키는 것은 시간 문제가 아니던가.
" 그저 신이 원하는 대로… "
리타는 그렇게 입을 다물었다. 또 다시 무언가를 잔뜩 골몰하는 모양새였다. 신이 원하는 대로. 전혀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정말로' 신이 그것을 원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찌되었든 사람들은 그리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