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막과 신중한 사격은 언제라도 도움이 된다. 스나이퍼는 원거리에서의 지원을 통해 화망을 구성하는 사수들이다. 근거리 교전과 오리지늄 아츠가 주된 지금의 전장에서 스나이퍼의 존재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이들은 원거리 무기를 통해 싸움을 유리하게 이끌어가며 적의 공습에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 유연함을 지녔다. 이런 입체적인 전술의 폭은 다른 포지션에는 없는 장점이기도 하지만 이것은 모두 충분히 전선이 갖춰진 후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동료가 스나이퍼를 믿는 만큼, 스나이퍼도 동료를 믿어야한다. 이들을 대표하는 무장은 석궁이다.」
네로는 의무실에 한가히 앉아 진료 기록 차트를 훑어보고 있었다. 여러 사람들이 다녀간 의무실이지만, 그 중에서도 여러 번 이름을 올린 사람이 있었다. 리아 에미히. 네로가 앞으로 의무실에서 자주 볼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야 걱정되니까. 고요한 의무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문 너머에서 잔뜩 지쳐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로는 자리에서 일어나 의무실의 문고리를 잡고 당겼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처참한 몰골의 리아. 유감스럽게도 그녀가 또 다시 찾아왔다.
"이런, 어쩌다가 이렇게... 빨리 들어오세요."
네로는 꽤나 걱정스런 표정으로 리아를 맞이했다. 아무리 자주 다쳐오는 단골이라 한들 이런 상처투성이의 모습엔 전혀 익숙해질 수가 없었다. 네로는 리아를 의무실 한 켠에 놓인 수술대로 이끌었다.
"여기 누워계세요. 치료 준비를 할게요."
네로가 의무실의 안쪽에서 의료도구들이 담긴 카트를 끌고 왔다. 그 행동이 꽤나 성급해보였다.
>>548 걱정스런 얼굴로 자신을 반기는 네로를 보며 잠시 고민을 하듯 눈을 좌우로 굴리며 고민을 한다. 그러다 이내 마음을 정한 듯 천천히 자그마한 입술을 열며 의무실 안으로 걸음을 옮긴다.
" .. 늘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
오니도 자신이 꽤나 자주, 아니 솔직히 말하면 하루에 1번은 출석을 하는 것처럼 의무실에 찾아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네로를 번거롭게 만든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물론 네로는 오니의 몸을 걱정하는 것이겠지만, 오니의 사고로는 그저 귀찮게 만드는 것으로 인해, 네로의 기분이 상할 것만 생각하는 듯 했다.
" .. 네 "
이제는 익숙하기도 한 치료과정이었기에 머뭇거림없이 너덜너덜한 코트를 아무렇게나 벗어 옆에 내려놓고는, 코트와 다를바 없는 상태의 슈트 차림으로 수술대 위에 눕는다. 눕는 순간, 부상과 격한 활동으로 인한 피로가 몰려오기 시작했지만 나른한 기운을 머그믄 눈으로 카트를 끌고 오는 네로를 바라본다.
" 내일도 움직일 수, 있겠죠? "
오니가 중요시 하는 것은 결국 자신이 움직일 수 있냐 없느냐였고, 그것이 네로에게는 어떻게 비춰질지 알 수 없었다. 다만 확실한 것은 네로가 가능하다고 한다면 오니는 똑같이 다음날에도 몸을 던질 것은 분명했다.
리타가 곰곰히 말을 고르는 듯 하더니, 음료잔을 내려놓으며 작게 웃었다. 아르고에 들어온 이후로도, 리타는 그다지 재미있게 산 편이 아니었다. 구태여 금욕을 지킬 필요도, 입과 몸가짐을 조심할 필요도 없었지만, 진득하게 달라붙은 습관이란 좀처럼 떼어낼래야 뗄 수가 없는 것이었다. 리타가 테이블 위에 올려진 음료캔 중 하나를 쥐었다.
" 정말, 마음에 안 드실 수도 있어요. "
리타가 앞장을 서며 말했다.
" 조금만 걸어가면, 하늘이 되게 잘 보이는 공터가 있어요. 건물이 철거되고... 좀처럼 새 건물이 안 들어오는 부지인데… "
리타가 말 끝을 흐리며 당신의 눈치를 살폈다. —근데 아는 사람들은 아는 곳이라, 앉을 곳도 있고... 아무튼, 그렇거든요. 인즉, 잔잔한 펍이나 왁자지껄한 술집 대신 밤하늘이나 보며 시간을 보내잔 이야기였다.
" 아니면, 이 근처에... 직원들이 자주 가는 술집이 있긴 한데… 어떠세요? "
리타가 2층 계단 앞으로 천천히 걸어나가며 물었다. 류드라씨는, 어떻게 하고 싶으신가요? 라는 눈빛으로.
네로는 고개를 살살 저었다. 아무리 자주 다쳐온다 한들 어떻게 환자에게 쓴소리를 할 수 있을까. 네로는 그럴 만한 성격이 못 되었다. 그만 다치고, 그만 무리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있지만. 카트를 끌고 온 네로는 의료용 장갑을 낀 뒤 도구들을 꺼내들었다. 수술대에 누운 리아의 팔 부분에 베인 상처들이 밀집되어 있었다. 환부의 옷가지를 잘라내고, 소독을 끝마친 네로는 카트에서 빈 주사기와 조그만 약물 병을 꺼냈다. 주사기에 약물을 채워넣은 그는, "조금 따끔해요." 잠깐의 경고와 함께 주사바늘을 리아의 팔에 꽂아넣은 뒤 마취약을 서서히 주입했다.
"리아 씨는 항상 그 얘기시네요. 이렇게 심하게 다쳤을 땐, 무리는 금물인데..."
네로가 말 끝을 흐렸다. 어느새 의료용 바늘과 봉합사를 꺼낸 그는 의자에 앉아 팔의 절상 부위를 꿰매기 시작했다. 마취된 통각은 꿰매는 감각마저 느끼지 못할 것이다.
"진짜 혼나면 안되겠으니까요." 신제품 개발 때 먹으려면 안 혼나는 게 좋으니까요? 라고 말합니다. 그리고는 그대로라는 말에 그대로면... 나아가지 못한다니까요... 조금씩 변해야.. 라는 중얼거림을 속삭이듯 말합니다. 으아아악 할짝당해버려엇!
"외골격 입으면 효과가 없어요? 로브 입고 뛰면 안 되나요?" 외골격 입지 말라는 것은 괜찮지만. 로브는 무리입니다. 아침 7시보다 더 무리에요!(물론 아침 7시에 깨어나도 비몽사몽으로 뛸 것이 분명하지만) 다시 물어보지만 사실 그러면 안 된다는 건 압니다.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해 보려 하지만 생각이 흘러가는 걸 막을 수는 없어요.
"...안하면 안돼요?" 로브 안 쓰면 안 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말하려 합니다. 안심할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신에게 복종하며, 몸에 딱 맞추어진 사각형 안을 벗어나본 적 없는 그녀는, 세상의 유행을 잘 알지 못했다. 무엇이 재미있는 것이고 무엇이 예쁜 것인지. 항상 한 발 늦게 따라가고 한 발 늦게 손을 뻗을 뿐이었다. 그나마 가장 운치 좋은 곳으로 텅 빈 공터를 소개하는 모습 역시, 그녀답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리타가 계단을 따라 내려가기 시작했다. 밤바람이 차다. 아직까지는 그리 차가운 겨울이 아니라 생각했는데, 제 생각이 무색하게도 겨울 바람은 한(恨)을 품은 듯 날카롭기 그지 없다.
걸어서 대략 칠 분, 외딴 곳에 불쑥 솟아난 아르고의 건물을 벗어나 모퉁이를 두 번, 자그마한 잔디길을 한 번 가로지르면 리타가 말한 작은 공터가 나타난다. 공터의 진입로로 접근한 리타가 익숙한 듯 공터의 구석에서 돗자리 하나를 꺼내들었다. —좀, 촌스러운 느낌이긴 하네요. 리타가 류드라를 향해 멋쩍은 듯 웃었다. 자리에 앉고, 캔을 따고, 탄산이 톡톡 튀어오르는 음료를 한 모금 들이킨다. 라테라노를 떠난 이후로, 그녀는 좀처럼 여유롭게 반하늘을 바라본 적이 없었다. 하늘이 보이지 않는 곳에 숨었고, 하늘을 바라보면 지긋이 저를 내려다보는 '그 눈'과 마주할까 무서웠기 때문이다. 아르고에 들어온 이후로는, 이따금 밤하늘을 바라볼 여유가 생기긴 했지만—
" 그래서, 물어보려도 하셨던 게 뭔가요? "
꽤나 단도직입적이다. 리타는 스스로 그리 평가했다. 알코올은 한 방울도 들어가지 않았지만 어딘가 평소보다도 대담한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