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막과 신중한 사격은 언제라도 도움이 된다. 스나이퍼는 원거리에서의 지원을 통해 화망을 구성하는 사수들이다. 근거리 교전과 오리지늄 아츠가 주된 지금의 전장에서 스나이퍼의 존재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이들은 원거리 무기를 통해 싸움을 유리하게 이끌어가며 적의 공습에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 유연함을 지녔다. 이런 입체적인 전술의 폭은 다른 포지션에는 없는 장점이기도 하지만 이것은 모두 충분히 전선이 갖춰진 후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동료가 스나이퍼를 믿는 만큼, 스나이퍼도 동료를 믿어야한다. 이들을 대표하는 무장은 석궁이다.」
네로는 고개를 살살 저었다. 아무리 자주 다쳐온다 한들 어떻게 환자에게 쓴소리를 할 수 있을까. 네로는 그럴 만한 성격이 못 되었다. 그만 다치고, 그만 무리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있지만. 카트를 끌고 온 네로는 의료용 장갑을 낀 뒤 도구들을 꺼내들었다. 수술대에 누운 리아의 팔 부분에 베인 상처들이 밀집되어 있었다. 환부의 옷가지를 잘라내고, 소독을 끝마친 네로는 카트에서 빈 주사기와 조그만 약물 병을 꺼냈다. 주사기에 약물을 채워넣은 그는, "조금 따끔해요." 잠깐의 경고와 함께 주사바늘을 리아의 팔에 꽂아넣은 뒤 마취약을 서서히 주입했다.
"리아 씨는 항상 그 얘기시네요. 이렇게 심하게 다쳤을 땐, 무리는 금물인데..."
네로가 말 끝을 흐렸다. 어느새 의료용 바늘과 봉합사를 꺼낸 그는 의자에 앉아 팔의 절상 부위를 꿰매기 시작했다. 마취된 통각은 꿰매는 감각마저 느끼지 못할 것이다.
"진짜 혼나면 안되겠으니까요." 신제품 개발 때 먹으려면 안 혼나는 게 좋으니까요? 라고 말합니다. 그리고는 그대로라는 말에 그대로면... 나아가지 못한다니까요... 조금씩 변해야.. 라는 중얼거림을 속삭이듯 말합니다. 으아아악 할짝당해버려엇!
"외골격 입으면 효과가 없어요? 로브 입고 뛰면 안 되나요?" 외골격 입지 말라는 것은 괜찮지만. 로브는 무리입니다. 아침 7시보다 더 무리에요!(물론 아침 7시에 깨어나도 비몽사몽으로 뛸 것이 분명하지만) 다시 물어보지만 사실 그러면 안 된다는 건 압니다.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해 보려 하지만 생각이 흘러가는 걸 막을 수는 없어요.
"...안하면 안돼요?" 로브 안 쓰면 안 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말하려 합니다. 안심할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신에게 복종하며, 몸에 딱 맞추어진 사각형 안을 벗어나본 적 없는 그녀는, 세상의 유행을 잘 알지 못했다. 무엇이 재미있는 것이고 무엇이 예쁜 것인지. 항상 한 발 늦게 따라가고 한 발 늦게 손을 뻗을 뿐이었다. 그나마 가장 운치 좋은 곳으로 텅 빈 공터를 소개하는 모습 역시, 그녀답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리타가 계단을 따라 내려가기 시작했다. 밤바람이 차다. 아직까지는 그리 차가운 겨울이 아니라 생각했는데, 제 생각이 무색하게도 겨울 바람은 한(恨)을 품은 듯 날카롭기 그지 없다.
걸어서 대략 칠 분, 외딴 곳에 불쑥 솟아난 아르고의 건물을 벗어나 모퉁이를 두 번, 자그마한 잔디길을 한 번 가로지르면 리타가 말한 작은 공터가 나타난다. 공터의 진입로로 접근한 리타가 익숙한 듯 공터의 구석에서 돗자리 하나를 꺼내들었다. —좀, 촌스러운 느낌이긴 하네요. 리타가 류드라를 향해 멋쩍은 듯 웃었다. 자리에 앉고, 캔을 따고, 탄산이 톡톡 튀어오르는 음료를 한 모금 들이킨다. 라테라노를 떠난 이후로, 그녀는 좀처럼 여유롭게 반하늘을 바라본 적이 없었다. 하늘이 보이지 않는 곳에 숨었고, 하늘을 바라보면 지긋이 저를 내려다보는 '그 눈'과 마주할까 무서웠기 때문이다. 아르고에 들어온 이후로는, 이따금 밤하늘을 바라볼 여유가 생기긴 했지만—
" 그래서, 물어보려도 하셨던 게 뭔가요? "
꽤나 단도직입적이다. 리타는 스스로 그리 평가했다. 알코올은 한 방울도 들어가지 않았지만 어딘가 평소보다도 대담한 모습이었다.
조금 따끔하다는 네로의 말에 그저 무덤덤한 표정으로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오니는 조용히 주사바늘을 꽂는 것을 지켜본다. 그렇지만 주사바늘이 박혀도 오니는 표정의 변화 없이 그저 평온해보였다. 어쩌면 이젠 주삿바늘을 꽂는 정도의 통증에는 무감각해졌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 그치만, 임무에 나서는게 제 가치라서. "
사무소에 온 자신의 가치는 결국 그 누구보다도 앞에 서서 휘젓는 것이 오니의 역활이자 가치였다. 그것을 하지 못하면 가치가 없어지고 결국 사무소에 있을 수 있는 입장이 되지 못한다. 그렇기에 그녀는 늘 임무에 나섰다. 몇번이고, 몇번이고 쓰러진다고 하더라도 치료를 받는다면 임무에 나선다. 그것이 오니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으니까.
" 그리고, 내일 임무도 다들 신입들이라... "
챙겨주지 않으면 안된다는 듯, 말을 끝까지 하지는 않았지만 씁쓸하게 웃는 네로를 바라보며 덤덤한 말을 남긴다. 신입들은 온전히 적응하고, 어엿하게 한사람 몫을 하는 존재들이 되었으면 한다. 그 길을 자신이 돕는다면 분명 자신의 가치에 맞는 일을 한 것일테니까. 그리고 어쩌면 조금이나마 보람이 있는 일이 될 것이라는 생각일지도 몰랐다. 단순히 창을 휘두르는 것 밖에 할 줄 모르는 하나의 오니로서 할 수 있는 가장 큰 보람찬 일.
" ... 그래서, 혹시 진통제도 받아갈 수 있나... 물어봐도 되나 싶고... "
오늘은 진통제가 없어서 결국 임부의 후반부에선 몸이 둔해지고 말았다. 전열의 흔들림은 임무에 나선 동료들의 안정성을 무너트리니까. 조금이라도 더 버틸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다. 조심스럽게 말을 건넨 오니는 자신의 상처를 꿰매는 네로의 표정을 살피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