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비아의 섹터 09 이동도시, 그 한복판에 위치한 사무소. 인력대행사무소라는 간판을 내걸고 있지만 그 실상은 온갖 용병들로 들어찬 사설경비업체이다. 이 업체가 특이한 것은 시류의 상황을 따지지 않고 이익이 된다고 독자적으로 판단한 가치를 따른다는 것이다. 어찌되었든 아르고 에이전시는 당신이 누구던, 어디서 뭘했던간에 방주 밖에 남겨진 모두를 받아들인다.」
"그 짬에, 라기에는 육개월도 안 된 애들을 당직에 세우려는 네가 나쁘다고 생각하는데...."
용병단 짬만 십수년의 라이레이의 눈에 6개월 된 친구들을 소장 대리로 세우자는 말은 너무나도 위험해 보여서 종종 당식을 서주고는 했는데... 이는 유구한 전통으로서 라이레이의 어쩌구 저쩌구. 말을 하는 사이에 화 비스무리한 감정은 가라앉아서 재떨이를 다시 책상 위에 살포시 올려두었다.
"나도 이제 나이가 있어서 예전처럼 팔팔하게 연속당직은 못 하겠네."
눈을 느리게 꿈뻑이며 품 안의 담배를 찾다가, 이미 돗대까지 다 피워버린 것을 알고는 눈쌀을 찌푸렸다.
"무슨 소리야. 왔으면 일을 해야지. 이건 아르고의 운영 방침이라고. 안 그래도 너네 평소에 내가 일 안 주면 맨날 과자 까먹으면서 놀고 있을거 아니야. 무슨 저기, 다과회 온 리베리 아가씨들처럼."
확실히 아르고의 수습기간은 짧다. 대원 중 누군가는 여기를 형벌부대라고 말했는데 그 표현이 완전 틀려먹은 것은 아니었다. 어쨌든 이곳은 자기 발로 걸어오는 이들도 많았지만, 테러활동을 하다가 잡혀서 운이 좋게 기회를 찾고자 온 녀석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사상이나 선과 악의 관계없이, 도미닉은 그들을 이미 당장 투입할 수 있는 전력이라 판단했고 기간이 끝나면 바로 자신의 대리로 써먹기를 원했다.
"그럼 일단 담배부터 끊지. 다시 전설의 연속당직 생체리듬이 돌아올지 누가 알아."
도미닉이 코 앞에서 가볍게 부채질 하는 시늉을 해보였다. 정확히는, 홀로그램이 번뜩이는 헬멧 앞에서. 딱히 담배를 기피하는건 아니었지만 여기는 소장실이고 도미닉의 방이다. 심지어 실내흡연은 그녀 말마따나 '애들'에게 좋지 않다. 도미닉은 안 그렇게 보이지만 은근히 그런걸 신경쓰는 구석이 있었다. 근데 그런 헬멧을 쓰고도 냄새가 나기는 하는걸까?
"별거 아니야. 보안협력차 우르수스 쪽에 잠깐 다녀왔는데 이미 일은 다 끝나있더라고. 학교가 완전 개판이 나있더라. 거기 애들, 눈이 완전 맛이 가있었어. 나라도 못 버텨 그런건."
무엇을 보고온건지 고개를 가볍게 절레절레 저었는데 중요한 것은 그 일이란게 파토가 났다는 사실이었다. 결국 도미닉은 헛탕만치고 돌아온 것이다.
"그거는 임무를 충분하게 받아서 로테이션 파견을 보내지 못 하는 누구누구의 잘못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라이레이는 성과급도 성과급이지만 연차가 높고 이런저런 일에 관여하는 덕에 임무에 잘 나가지 않아도 충분히 많은 돈을 번다. 심지어 임무 도중에 구매하는 담배도 경비 처리가 되니까 돈 나갈 일이 거의 없지. 도미닉이 그 조항을 땅을 치고 후회할지 아닐지는 모르지만 분명 뼈아프긴 할 것이다. 비싼 담배만 한 보루씩 사가니까.
".....차라리 죽으라 그러지?"
그 전설의 연속 당직 생체리듬도 금연도 전혀 바라던 바가 아니었다. 가볍게 도미닉을 째려보다가 염력으로 자기 몸을 두둥실 띄워 소파에 눕는다. 누우며 끄응 하고 신음을 내는 것은 덤이다.
"매일 매일 세상이 흉흉해지네. 학교랑 애들은 안 건드렸으면 좋겠는데."
혀를 차며 소파에 몸을 더 파고들어 편안한 자세를 잡았다.
"리유니온 쪽에서 마약공방을 하나 집어 삼키고, 자기들 상품에 저순도 오리지늄을 첨가해서 판매하고 있다는 전황은 포착했는데... 시간을 두고 광석병 감염자수 변동추이를 살펴봐야 뭘 자세히 알 수 있겠어."
할 말 없다는 소장의 대답에 라이레이는 어깨를 으쓱였다. 이런 불안정한 구조로 8년 가까이 되가다니, 운이라 해야 할지 실력이라 해야 할지.
"그걸 알면 찰리 월급을 올려주거나 가정교사라도 붙여주질 그래."
아직 미성년자인 찰리에게 보호자에 가장 근접한 사람은 도미닉이었으니, 눈을 가볍게 뜨며 제안하였다. 찰리한테 월급을 준다고 해도 막.. 엄청 대단한 소비를 하지는 않으니까, 차라리 월급을 삭감하고 교사를 붙이는게 장기적으로 옳은 선택일까. 모르겠다. 이런건 전문가가 따로 필요한 법이지.
"아.... 네가 그렇게 말하면 걔들 진짜 마약에 손대는거잖아....."
마약은 자연스럽게 사회의 취약계층을 파고들고, 위생도 면역력도 그닥인 그들이 저순도라 할지언정 오리지늄을 직접 신체에 흡수하고 있다면 빠른 시일 내에 광석병이 발병할 것이다. 인간관계가 파탄난 취약계층이 더 많은 마약을 섭취하니까 연고도 없이 몰래 광석화해서 2차 감염원이 될 것이고... 어쩌면 섹터에서 의뢰를 할 때에는 빈민촌 철거 및 감염자 퇴거 의뢰가 될지도 모르겠다.
"작전비 조금만 주면 색터 행정부에 견적 올릴만한 보고서 작성해올게."
이 사태를 미리 파악하는 섹터는 고름을 미리 짜서 좋고, 우리는 행정부의 신뢰와 일거리를 확정적으로 독점할 수 있어서 좋다. 문제는 그게 진짜임을 밝히는데 돈이 들어가서 그렇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