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6243924> 자유 상황극 스레 2 :: 1001

이름 없음

2020-11-15 00:13:19 - 2021-09-12 23:02:17

0 이름 없음 (/8xYPD6Tn6)

2020-11-15 (내일 월요일) 00:13:19

이 상황극은 5분만에 개그로 끝날수도 있고, 또다른 장편이야기가 될수도 있습니다.(물론 그때는 다른 스레를 만들어주세요.)

아니면 다른 스레의 자캐가 쉬어가는 공간이 될수도 있습니다. 크로스 오버도 상관없습니다.

자유 상황극 스레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530 이름 없음 (S4izcHicuc)

2021-06-05 (파란날) 12:53:49

베고 또 베어 마침내 정상의 자리에 섰다.
그러나 내게 남은건 허망함 뿐이었다.


일곱살때. 처음으로 잡은 검, 마을에서 제일 강한 용병과 싸워 스무합만에 승리를 쟁취했다. 녀석은 분했던지, 진검을 꺼내었고, 나는 열 아홉 합만에 다시 승리했다.
재밌었다. 짜릿한 승리의 쾌감이 머릿속에 가득 터져나왔고, 더 많은 승리를 갈구하기 시작했다.

여덟살때. 허름한 망토와 낡은 목검이 전부인채, 집을 나와 제국의 수도로 향했다. 길은 멀었지만 현상수배범, 초보사냥꾼, 그럭저럭 강한 몬스터와 자웅을 겨뤄 전부 이겨내었고, 수도에 도착하여 모험가로써의 첫 발을 내딛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여전히 즐거웠다.

열두살때. 더이상 제국에선 날 이길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지루했다. 듣기만 해도 즐거운 포부를 밝히며 내게 덤벼왔지만, 전부 두 합도 겨루지 못하고 죽어버렸다. 제국과 홀로 전쟁을 벌여도 이길수 있을거란 생각이 들자, 나는 검을 버리고 나뭇가지를 손에 들었다. 익숙하지 않은 오른손으로 잡은채, 다시 한번 허름한 망토를 두르고 변방의 나라로 떠났다.

열다섯살때. 어느덧 오른손으로 밥 먹는것이 익숙해질 즈음, 처음으로 내 공격을 받아낸 전사를 만났다. 그만 감격해서 울어버리고 말았다. 왼손으로 나뭇가지를 잡고 전력으로 베어버렸고, 녀석은 그렇게 두 합만에 죽어버렸다.
그리고 날 덮쳐오는, 절망의 해일. 어째서? 좀더 놀아줬으면 했는데. 짜릿한 승리의 기쁨이 이때부터 기억나지 않기 시작했다. 내가 좀더 약했더라면, 아니, 약한 너네가 나빠. 그런 생각을 하며 들고있던 나뭇가지마저 버렸다.

열아홉, 지금으로부터 삼년전. 무형검이라는 이명이 생겼다. 그리고 더이상 아무도 나와 싸우지 않았다.
세상의 끝에서 절망하던 도중에, 한 아이를 만났다. 버려진 고아였고, 금방이라도 죽을것같이 보였다. 그런 아이가 꼭 나를 닮은것같아서 거두었다. 치료해주고, 밥을 먹였다.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은건 얼마만인지. 오랜만에 맛을 느낄수 있었다.

스물. 아이가 건강해졌고, 뭘 해야 할지 모르던 내게 목표가 생겼다. 이 아이랑 살아가자. 아버지가 되어서, 이 아이가 크는걸 지켜보자. 제국의 변두리에 집을 지었고 농사를 시작했다. 사악한 드래곤도 한번의 칼질에 베어버린 내가, 고작 채소를 갉아먹는 벌레를 다 잡지 못해 끙끙거리는 꼴이 우스웠다. 아이와의 물장난에서도 이기지 못했고, 그만 기뻐서 울어버렸다. 요새는 고아원에서 수녀님을 도우며 아이들에게 검술을 가르쳤다. 당당하게 돈을 벌고, 얼마 되지 않는 돈이지만 아이들과 함께 식사를 하며 매일을 충실하게 보냈다.

스물 하나. 아이에게 엄마가 생겼다. 수녀님과 결혼할수도 있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신님, 고마워요.

스물 둘. 아이에게 동생이 생겼다. 예쁜 여동생이구나. 네가 오빠니까, 잘 지켜줘야해.

스물셋의 여름.
집에 오니 모두가 죽어있었다.
제국의 기사들이 집을 불태우고 있었다.
왜?

아이가 수인이라? 내가 너무 강해서, 내 아이가 두려워서?

나는 두렵지 않은가?

스물 셋의 겨울. 현재로 돌아와서.
제국의 수도, 국왕이 사는 드높은 성문 앞에, 나는 진검을 들고 서있다.
눈 앞에 펼쳐져있는, 수많은 기사단과 화포. 다중마법방어진과 하늘을 나는 용들, 그 위에 올라탄 기사단.

" 저기 말야, 문좀 열어줄래. 그냥 국왕에게 묻고 싶은게 있을 뿐이야. "

나는 나지막히 성문 앞에 서서 말을 뱉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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