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6243924> 자유 상황극 스레 2 :: 1001

이름 없음

2020-11-15 00:13:19 - 2021-09-12 23:02:17

0 이름 없음 (/8xYPD6Tn6)

2020-11-15 (내일 월요일) 00:13:19

이 상황극은 5분만에 개그로 끝날수도 있고, 또다른 장편이야기가 될수도 있습니다.(물론 그때는 다른 스레를 만들어주세요.)

아니면 다른 스레의 자캐가 쉬어가는 공간이 될수도 있습니다. 크로스 오버도 상관없습니다.

자유 상황극 스레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479 이름 없음 (XKgjbV2YZ6)

2021-05-28 (불탄다..!) 14:22:36

>>478
(사소한 반항은 이미 많이 겪어봐서 안다는 듯, 눈썹을 까닥이는 것으로 답했다. 그리고 흰 눈밭 아래에 깔린 희미한 녹초지를 찾아 주둥이를 묻는 사슴의 모습을 지켜보다, 당신이 어설프게 조준하는 모습을 곁눈질로 훝는다. 하지만 점점 갖춰져가는 자세에 피식 웃음을 흘리지만, 총성에 묻히고 만다.) 당신 같은 사람이란건 무슨 뜻이니. 과거가 아닌 현재의 일인만큼 물어두고 싶구나. 옆에서 술이나 마시며 집중을 방해하는 늙은이? (자리서 일어서며 털이 달린 낡은 후드를 뒤집어쓴다. 눈보라도 마침 가늘어지고, 저 멀리 뛰어간 새끼사슴의 모습은 뿌연 눈보라 속에 모습을 감추게 된다.) ...숨이 멎지않았어. 또 급하게 쐈구나. (부츠 속에서 그가 몸에 걸친 것 중 유일하게 광택을 유지하고있는 사냥칼을 꺼내들어 당신에게 내민다.) 마음 속의 기도를 잊지마렴.

#괜찮아! 나야말로 고맙지! 나도 이따 저녁에 돌아올게!

480 이름 없음 (mQ8WYVA9As)

2021-05-28 (불탄다..!) 17:24:30

>>479
그것도 괜찮게 들리네요. 그럼 옛날 일도 안 알려주는 주제에, 옆에서 술이나 마시며 집중을 방해하는 늙은이라고 해둘게요. (신발에 떠밀리는 눈만치 감촉되지 않는 중량의 목소리로 대답하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묵직한 라이플을 갈무리해 어깨에 걸치면 예의 쓴말이 들리고, 사슴이 사냥꾼을 기다려주는 것도 아닌걸요, 따위의 말로 대꾸할까 하던 아이의 궁리는 날 서 빛나는 사냥칼에 조용히 사그라든다. 슬금 싫게 여기는 눈을 하며 칼자루를 받아든다.) ...목이었죠? (등에는 총을, 손에는 칼을. 사냥감에 접근하는 걸음은 빠르지 않되 주저가 없다. 무릎 굽혀 앉고 적절한 위치를 찾아 날을 꽂아넣는다. 비록 당신 말하는 마음 속의 기도는 이해할 수 없고, 따라서 진실되게 따른 적도 없지만 쇠하는 생명은 예나 지금이나 딱하게 비치고, 따라서 연민만은 하게 된다. 냉정하게 깜박이던 눈이 곧 당신 있는 쪽으로 향한다.)

#응 느긋하게 돌아와~!

481 이름 없음 (VfpFv0aHew)

2021-05-28 (불탄다..!) 20:12:39

>>480
(사슴의 목에 금속을 박아넣은 당신의 시선이 닿을 때 즘이면, 그저 눈을 감고 있을 뿐이다. 몰아치는 눈보라가 약해졌다고 한들 그저 한 명의 인간이 우뚝 서서 버텨낼 만한 것은 아니었다. 자세가 흔들리고, 눈꺼풀에 흰 눈조각이 붙어 한껏 떨려와도 기도를 멈추지 않았다. 짧은 묵념 끝에 천천히 눈을 뜨고, 당신을 내려다본다.) ...이 말만은 해야겠구나. 처음 해주었던 네가 사냥에 소질이 없다는 이야기는 철회해야겠다. (아마도 그의 고집으로 보아, 처음이자 마지막 칭찬일 지도 모른다. 칼은 당신에게서 회수하지 않은 채로 그 옆에 한 쪽 무릎을 눈밭에 대고 앉아 사슴의 몸뚱아리를 허리춤에 차고있던 로프로 묶어 썰매에 연결했다.) 그래서, 댓발 나온 입술은 언제쯤 집어넣을 거니. 옛날 일을 들을 때까지 평생 오리입으로 지낼 셈 같은데.

482 이름 없음 (mQ8WYVA9As)

2021-05-28 (불탄다..!) 23:54:48

>>481
(철회해야겠다. 당신이 다시 있을지나 모를 칭찬을 마칠 때, 큼지막한 눈은 여느 아이와 달리 휘둥그레지지도, 이채가 감돌지도 않는다. 묵언은 태연하다 못해 무념하다. 삼박 눈을 감았다 뜨며 피 묻은 날을 눈벌에 문질러 닦고 뒤집어 닦는 모습만이 그 나이대 아이답다. 성글게 남은 혈흔을 내려다보니, 이는 다시금 보아야만 한번 받은 호언을 거푸 되씹는 양같이 현시된다. 닦이지 않은 선혈은 장갑 표면으로 잡아 훔치고 사슴과 썰매의 연결을 관찰한다. 이윽고 당신을 노린 것은 댓 발 입술 소리가 마뜩잖았기 때문이다.) ......하는 일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하셨지요. 옛날에도 지금과 같은 일을 하셨던 거예요? (하라는 대답은 않고 오히려 반문을 던지니, 아무래도 오늘의 반항도 짧게 끝나지는 않을 성하다.)

483 이름 없음 (bbKF9a.IqQ)

2021-05-29 (파란날) 01:42:23

>>472

"동생들?"

순간 멍하니 반문했다. 소원을 물어봤는데 본인이 아니라 주변 사람을 말하는 인간은, 처음이었다. 물론 예전에 받은 기도들 중 가족이 잘 되게 해달라는 소원을 빈 이들은 있었다. 하지만 그건 어느정도 본인이 자리를 잡고 난 뒤에 하는 말이지, 자기보다 주변 먼저 챙기는 사람은 보기 드물었다. 요즘 세상에 이런 사람이 아직 남아있었나. 자신의 이익 앞에 천륜도 저버릴 수 있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인데, 조금은 놀랐다.

"그야 그렇지. 신들도 멋있는 이야기 먼저 퍼트리거든. 자기 PR의 세상이니까."

이거 영업비밀인데, 말했다가 만신전에서 쫓겨나는거 아닐지 모르겠다. 쫓겨나도 재주가 있으니 어디서든 먹고 살 자신은 있지만. 주신인 아버지가 노하면 그건 그것대로 큰일이었다. 아직은 인간들과 섞여 살고 싶었으니까.

당신이 비닐봉투를 뒤적여 캐릭터 반창고를 꺼내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이에 맞지 않게 귀여운 반창고를 보면 반사적으로 웃음이 흘렀다. 당신이 반창고를 내밀면 받아들고 엄지로 매만졌다. 당신의 손마디에도 붙어있는 반창고를 보곤 당신의 당부에 시선을 마주쳤다. 소독하고서 약 바르고 붙이라는 당부. 본인도 상처입었을텐데 다른 사람들을 챙기는 마음씀씀이가 남다르게 느껴졌다. 그제서야 문득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선행을 베푸는 사람을 보면, 인간들은 꼭 저런 사람이 잘 되어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당신 역시 잘 되어야 하는 그런 사람일 것이다. 세상은 꼭 그렇게 나쁜 곳만은 아니었다. 신이라는 명목 하에 너무 오래 잊고 있었다. 세상에 좋은 면도 있다는 것을. 당신처럼 좋은 사람도 있다는 것을.

"뭐, 못 갈 대학을 갈 수 있게 해줄 순 없지만..."

당신이 내민 사탕 두 개를 챙겨가며 말했다. 당신의 빈 손에 대신 금색 핀이 자리했다. 뱀 두 마리가 지팡이를 감싸고 있는 형태였다. 사과 맛 사탕을 까서 입에 넣고 굴리다가, 당신을 마주 보고 미소지으며 말했다.

"노력하면 원래 수준보다 더 좋은 대학에 갈 수 있게 해줄게. 상업이나 여행, 무역 쪽이 좋겠다. 그 쪽이 내 분야라 빨이 잘 듣거든."

사과 맛 사탕을 어금니로 깨물어먹고 나서 남은 사탕과 반창고를 손에 들었다. 입안에 단맛이 맴돈다. 나지막히 입을 열었다.

"고마워."

사탕과 반창고를 챙겨넣고 나서, 당신의 머리에 손을 얹고 쓰다듬었다가 떨어졌다. 당신 자신에게도 축복을 걸어주기 위함이었다.

"다 잘 될거야."

주변에서 바람이 불었다. 바람에 맨션의 창문이 흔들릴 정도였다. 풍압을 이기지 못한 창문이 깨지면, 어느새 신은 자취를 감춘 후였다.


/ 늦어서 미안, 어떻게 이을지 고민하다가 늦었네. 나는 여기서 막레로 할게! 고마웠어.

484 이름 없음 (PEO8B/wDKE)

2021-05-30 (내일 월요일) 00:19:40

>>482
(당신에게서 돌아온 반문은 일순 뇌리를 꿰뚫는 기억의 편린이었다. 이제와서야 쓰디 쓴 극약, 그리고 스스로 타 마신 독약 역시도 밟히고 밟혀 볼모지로 변한 땅에 틈 하나 주지 못했지만, 얄궃게도 타의로 인해 새겨진 깊숙히 찔린 삽질 하나가 파묻혀있던 오물을 찌른 셈이었다.) 너같은 아이가 한 명 있었단다. 말이 많고, 궁금한 건 참지 못하는. 거기다 행동력까지 있었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어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야. (꽈악. 굵디 굵은 로프가 쥐어짜지는 소리가 어렴풋이 눈보라를 뚫고 들어온 짐승의 울음소리 같다. 썰매 방향을 틀어, 저 멀리 있을 보금자리를 향해 몸을 돌린다.) 그 아이는 내가 쏜 총에 맞아 죽었지. 너무 성가셨거든. (짧은 침묵. 나른한 웃음소리를 흘리며 당신을 돌아본다.) 믿을 용기가 있다면, 거짓도 진실이 되는 법이란다. 그러니 진실되게 말하자면, 네가 참 혹은 거짓을 가려낼 수 있을 때까진 이 사실을 명심해두렴. (럼으로 목을 적시고, 썰매를 끌고 나아간다.)

485 이름 없음 (JaUjYkB/t2)

2021-05-30 (내일 월요일) 00:29:19

문을 여니 고소한 빵 냄새가 코를 간질인다.

가게를 둘러보니 계산대 뒷편에 알이 둥근 은테 안경을 쓴, 어쩐지 흐릿한 인상의 점원이 한 손에 든 도톰한 책을 읽고 있었다.

486 이름 없음 (rbG5fV5p6s)

2021-05-30 (내일 월요일) 10:44:31

선배, 이제 일 좀 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언제까지 저한테 보고서 부탁하실 거에요. (당신의 책상 위에 서류를 올려놓다가, 경찰 뱃지 옆에 놓인 어린 아이의 사진을 바라본다.) 딸입니까?

487 이름 없음 (/ERnkZViFI)

2021-05-30 (내일 월요일) 17:17:10

"대체 내가 뭘 어쨌다고 인간 세계에 이런 식으로 퍼져있는거야?!"

인간들이 살아가는 세상과는 다른 먼 어딘가에 있는 올림푸스. 그리고 그곳의 신 중 하나인 제우스는 크게 한탄하며 인간세상에서 가지고 온 신화책을 읽으면서 격노했다. 거기에 쓰여있는 내용 하나하나를 절대 인정할 수 없다는 듯이 결국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번개불을 이용해 완전히 태워없애버린 후에야 그 신은 겨우 진정했다. 허나 당황스러운 감정을 전혀 감추지 못하며 금발 머리카락을 꽉 잡다가 살며시 놓았다.

"올림푸스를 지배하는 최고의 신이라는 것은 인간들이 번개나 그런 것을 무서워했으니까 그렇다고 쳐도 그 이후의 내용은 완전 왜곡에 쓰레기잖아. 그보다 왜 기억에도 없는 것들이 멋대로 내 자손이니 뭐니 하는거야?! 오랜 시간동안 할 일만 하고 살았는데 왜 유부남이 되어있고 바람둥이가 되어있는건데?!"

바로 근처에 있는 다른 신에게 따지듯이 그렇게 이야기를 하지만 그저 하소연에 가까운 목소리였다. 그만큼 지금 이 상황이 억울하다 못해 짜증이 난다는 듯 다시 머리카락을 콱 쥐어잡다가 놓으니 절로 머리카락 몇가닥이 우수수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어쩌는게 좋을까? 어떻게 해야 이 왜곡된 이미지를 바꿀 수 있을까? 혹시 좋은 아이디어 있어?"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다가 사실 권위를 위해서 제우스의 자손이라고 칭하던 이들 때문에 제우스가 졸지에 바람둥이가 되었다는 설을 보면서 써봤어.
상대 신은 아무나 상관없어. 헤라도 상관없고, 아폴론이나 아르테미스, 포세이돈 등등. 신화의 내용이 사실은 인간들이 멋대로 왜곡하고 오버한 내용이라는 설정으로 했기 때문에 원작 신화와는 다른 성별이나 성격이어도 오케이!
막 이게 제우스의 망상이라던가, 뜬금없는 말로 꼽을 주고 가버린다거나 그런 거 아니면 어떤 전개라도 괜찮아!

488 이름 없음 (k/0o2ist92)

2021-05-30 (내일 월요일) 22:49:35

>>484
...정말 있었던 일이에요? 아니면 제게 들려주기 위해 진실처럼 꾸며낸 거짓일 뿐인가요? (아이가 알 방도는 없다. 당신이 어수선한 말로 흐트리는 일 없이, 눈 한 점 내리지 않는 설원처럼 명명하게 말하지 않는 이상. 당돌한 물음을 내놓는 아이의 한쪽 눈이, 눈조각이라도 들어간 것처럼 잠깐 빈미한다. 눈을 굳게 감았다 뜨고, 자리 털고 일어나 느짓이 당신 발자국을 따른다. 사냥할 때의 과단성은 평시라고 일변하지 않는다. 두려움 비치지 않는 동자가 잠연히 당신을 바라본다.)

489 이름 없음 (Uzh2oD5UC.)

2021-05-31 (모두 수고..) 07:37:29

>>485
트레이에 치아바타 샌드위치와 에그타르트, 초코칩 쿠키와 마카롱을 담아 계산대에 올려놓은 뒤, 그는 카드를 내밀었다.

"계산해주세요."

490 이름 없음 (QW3upyvtvo)

2021-05-31 (모두 수고..) 08:54:24

>>486

"비슷한 거."

대답하긴 했지만, 부연을 할 생각은 없는지 선배는 그냥 그대로 책상 위에 엎드렸다. 한숨이 나오기 딱 좋은 순간에, 얼굴을 묻는 팔 사이에서 말소리가 흘러나온다. 내가 낳은 자식은 아니더라도, 나한테는 소중한 존재야.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에서 읽어낼 수 있는 감정은 참으로 미묘한 뉘앙스다. 자랑스러워하는 건지, 씁쓸해하는 건지…….

"……보고서는 고마워."

491 이름 없음 (r4JsvDcY.6)

2021-05-31 (모두 수고..) 09:42:17

>>487

"그러게요, 아빠."

비실비실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는 소리가 섞여 들어갔다. 대꾸한 신의 모습은 어라, 흔히 '학생'이라고 불리는 인간들이 입고 있는 옷차림새다. 단정하게 목 아래까지 꼭 잠그고 있는 단추, 넥타이도 빼먹지 않았으며, 재킷 또한 야무지게 여물어져 있다. 참던 웃음이 기어코 터져서 짓궂게 깔깔대는 이 얼굴. 어디서 보았더라, 헤르메스라고 불리던 그 신과 닮았다. 제우스, 당신을 아빠라고 칭한 것을 보아 이 신도 인간 세상에서 퍼진 자신들의 이야기를 알고 있는 모양이다. 자신이 당신의 아들이라는 이야기까지 말이다.

"인간 리셋?"

증거 인멸이죠, 증거 인멸. 그런 목소리가 따라붙는다. 정말 간단하고도 확실한 방법이었다. 과장되고 거짓투성이 신화를 없애고, 그를 알고 있던 인간들까지 없애면 바람둥이 유부남 설은 사라질지도 모른다. 대신 폭군이나 인간 박해, 그런 꼬리표가 붙겠지만. 이리 보니 어째 인간들이 보는 신화 속 이야기가 영 틀리지는 않은 모양이다. 헤르메스, 전령의 신, 장난의 신, 나그네신…. 하소연하는 당신을 보고도 낄낄대며 장난이나 치고 있으니.

"아, 리셋하면 안 되겠다. 저 한창 노는 중이라서."

아무래도 교복을 입고 있는 이유가 인간 사이에서 학생 흉내라도 내면서 놀고 있는 모양이다. 이 장난기는 당신의 머리카락이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지자 좀 사그라드나 싶다. 인제야 좀 진지하게, 짐짓 고민하는 체를 하는 것이다. 턱을 한 손으로 쥐며 과장된 행동과 함께.

"너그럽게 인간들을 봐주시는 건 어때요? 귀엽잖아요, 아빠."

#헤르메스의 성별은 안 정했고
#시대적 배경이 현대라고 생각하고 이었는데 아니라면 말해줘!!

492 이름 없음 (rydvM29Vv2)

2021-05-31 (모두 수고..) 10:39:03

>>490

"...그런 사정이 있었으면 진작 말하면 좋았잖습니까."

다시금 어린아이의 사진을 바라보았다가, 어쩐지 짠한 느낌이 들어 사진에서 시선을 떼었다. 일은 몰라도, 위로는 젬병이라. 결국 다시금 일 이야기로 귀결되고 말았지만.

"현장 출동 명령 입니다. 습격 사건인데, 피해자가 아직 살아있대요."

책상 위에 엎드린 당신에게 들리도록 말하고 조용히 당신을 바라봤다. 잠시 자리를 비웠다가, 에너지 드링크를 가져와 당신의 얼굴 옆에 내려놓았다.

"이거 드시고 같이 가보시죠."

493 이름 없음 (siBV5Gosc6)

2021-05-31 (모두 수고..) 13:09:12

>>492

“……내가 후배 하나는 잘 뒀지.”

잠깐 고개를 들어 당신이 내려놓은 걸 보나 싶더니, 몸을 일으켰다. 이내 드링크의 뚜껑을 망설이지도 않고 바로 돌려 열고는, 그리 말하며 웃는다. 그 웃는 표정과 목소리에, 금방의 쌉싸래한 맛은 이미 흔적도 없었다. 당신에게도 그쪽이 더 익숙하기는 할테다. 성정이 거칠어지기 쉬운 험한 일을 하는 수사본부의 인원치고는 드물게도, 유들유들하다는 평을 듣는 사람인데.

“가자, 가.”

운전은 네가 하는 거지? 그리 덧붙이며, 한번에 들이킨 드링크의 병을 휴지통 안으로 솜씨 좋게 던져넣었다.

494 이름 없음 (rydvM29Vv2)

2021-05-31 (모두 수고..) 14:31:53

>>493

"저도 선배님의 파트너를 하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서장님께서 민완형사로서 선배님께 많이 배우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당신이 몸을 일으켜 드링크를 마시는 모습을 바라봤다가, 웃는 얼굴을 마주봤다. 미소짓는 당신의 얼굴에 방금의 사진은 잊어버린 것 처럼, 자연스럽게 화제를 전환했다.

"식사는 안 하셔도 되겠습니까? 그걸론 배고프실텐데."

운전은 젊은 제가 해야죠. 당신이 던진 드링크 병이 포물선을 그리며 휴지통으로 들어가는 걸 보며 말했다. 홀인원이네요. 덧붙이곤 경찰차가 주차되어 있는 쪽으로 향하며 말했다.

"피해자는 현재 입원치료 중입니다만, 현장과 병원. 어느쪽 먼저 가보시겠습니까?"

495 이름 없음 (6KFsKjcNy6)

2021-05-31 (모두 수고..) 15:15:45

" —들려? 이 사이렌 소리? "

주홍 물감을 쥐어짠듯 짙게 물든 노을을 등지고서, 한 여인이 능청스레 입을 열었다. 새하얀 와이셔츠 위로 낭자한 선혈들과 두 뺨 가득 말라붙은 핏자국. 비린내나는 기괴, 찬란한 노을의 아름다움, 그 기이함. 여자가 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처참히 으스러진 발목이 바닥 위로 붉은 자국을 그려낸다. 그럼에도 여자는 계속해서 걸었고, 이윽고 당신의 앞에 다다라서야 자세를 낮추어 상처가 가득한 손으로 당신의 뺨을 쓸어내리는 것이다.

" 나는 곧 죽겠지. "

여자가 힐긋 고개를 돌려 빌딩 아래 혼잡한 도로를 내려다보았다. 당신을 바라볼 때와는 달리 텅 빈 눈빛이었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려, 당신과 눈을 마주할 때는, 벅찬 감정이 구겨지고 구겨져 꾹 눌린 그 오렌지빛 눈동자가 가득하다. 노을을 닮은 그 눈. 지긋지긋한.

" 함께 죽자. 그리고 이 지긋지긋한 악연의 고리를 끊어버리는거야. 몇 번의 삶을 걸쳐온... "

여자가 느릿히 입술을 잘근였다. 무언가 하고픈 말이 있는 모양이다. 잠시 눈동자를 굴리고, 돌아와 당신의 몰골을 훑어보던 여자가 건조한 얼굴로 다시 입을 연다.

" 아니면, 또 내 손에 죽던가. 이젠 익숙할테니말야. "

#
운명의 혐관(...)같은 느낌으로 쓴 자유상황극. 집착 빌런vs히어로 구도인데 사실 사실 히어로쪽 본성이 진성 또라이고 빌런은 생각보다 착한 놈이다! 라는 설정도 괜찮을 거 같네. 아무튼 뼈대는 악연의 붉은 실로 얽힌 운명이라는 설정! 편하게 이어줘!

496 이름 없음 (78QIj0/m7I)

2021-05-31 (모두 수고..) 20:08:31

>>491

"아빠라고 하지 마. 아무튼 인간리셋. 사실 생각 안해본 것은 아닌데 그게 절차가 상당히 복잡해서. 일단 올림푸스의 신들을 모아서 회의를 한 후에 찬성표를 많이 받아야할테고, 여기 말고 다른 곳의 신들과도 만나서 서로 협의를 해야하고 그 이후에는 그 사라진 인간들이 모두 저승으로 갈테니 저승으로 가서 또 협의를 해야하는데 하는데만 몇십년이 걸려."

헤르메스의 말에 제우스는 생각을 안해본 것은 아니라는 듯이 주절주절 말을 읊었다. 그리스 지대가 이 세상의 전부라면 자신들끼리만 서로 협의해서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으나 다른 지역의 신들을 설득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아프다는 듯이 제우스는 이마를 꽉 잡았다.

"대체 넌 어쩌다가 신화에선 그렇게 일만 하는 신으로 그려진거야? 지금도 이렇게 당당하게 논다고 말하는 이가 신화에선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 심부름꾼으로 그려지는건 불공평한거 아니니?"

물론 신이라고 해서 항상 일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는 하지만, 자신보다는 훨씬 좋은 이미지로 가득한 헤르메스가 부럽다는 듯이 제우스는 괜히 토라진 목소리를 내면서 표정을 찡그렸다. 그러다가 슬쩍 헤르메스가 입고 있는 교복을 바라보면서 제우스는 뚱한 표정으로 헤르메스에게 말했다.

"인간들이 없어지면 그 교복이라는 것을 입고 어울려 놀 수 없어서 그런게 아니고? 귀엽지 않은 것은 아닌데 이대로 봐주면 계속 내가 쓰레기에 바람둥이가 되잖아. 이렇게 된 이상 인간 상태로 놀면서 사실 제우스는 그런 신이 아니라고 변호를 해주면 안될까? 넌 놀 수 있고, 나도 조금은 이미지를 원상복구할 수 있고 일석이조잖아."

물론 그렇게 한다고 한들 이미지가 확 바뀌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이었으나 지푸라기 잡는 기분으로 그렇게 부탁하며 제우스는 잔에 잠긴 넥타르를 마시면서 헤르메스에게 한 잔 마시겠냐게 물었다.

/나도 현대라고 생각하고 썼으니 괜찮아!

497 이름 없음 (zK7vtxHJps)

2021-06-01 (FIRE!) 00:06:46

>>488
진실 같은 거짓, 거짓 같은 진실. 무슨 차이가 있겠니. 어차피 과거의 일인 걸. 우리가 지나온 흔적 역시 새 눈에 파묻히겠지. 우리가 신경써야할 건 네가 잡은 이 사슴으로 만들어낼 첫끼를 포르치니 버섯을 넣은 스튜로 할 지, 허브솔트와 카이엔 페퍼를 곁들인 구이로 할 지 정하는 일이란다. (평소처럼, 취기 섞인 가벼운 목소리다. 신앙심이 깊은 걸까, 죄가 깊은 걸까 알 수 없을 정도로 음주를 하고, 기도를 한다. 이러한 사냥 외에 그의 하루 일과는 항상 별 다를 바가 없었다. 그리고 돌아온 오두막에는 한기가 돌고 있었다.) 난로에 불 좀 떼주겠니. 난 이녀석을 작업실로 옮겨야겠구나. (그는 돌아오자마자 잦은 기침을 하고, 럼을 마시며 목을 달랬다.)

498 이름 없음 (XW6aL8L7P6)

2021-06-01 (FIRE!) 00:30:06

>>494

서장을 인용한 당신의 말에, 눈썹을 들어올려 조금 미묘한 표정을 짓는다. 정작 본인에게는 칭찬 한 마디 없었는데. 하지만 그 역시, 농담기가 다분한 몸짓이라. 이내 외투를 집어들고, 한동작으로 휙 걸친다.

“다녀와서 먹지, 뭐.”

간단한게 대답하고, 씨익 웃는다. 이래서야, 끼니 때는 제대로 챙기기나 하는 걸까 싶다. 그러고보면 당신의 선배는 꽤나 마른 체형이다. 형사라는 직업은, 몸이 재산일텐데.

“병원 먼저.”

기억이 흐려지기 전에 증언을 듣고, 현장 정보랑 대조해보자며, 자연스레 조수석의 문을 열어 차에 탄다. 안전벨트 까먹지 마. 그리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고.

499 이름 없음 (yKsWxPAR/E)

2021-06-01 (FIRE!) 01:12:52

>>498

방금 내가 뭔가 말실수라도 했나. 당신이 눈썹을 들어올리며 미묘한 표정을 지으면 진중한 표정으로 고민했다. 저는 국가공무원1종시험을 패스한, 속칭 캐리어 출신으로 촉망받는 것에 비해서 아직 경험이 부족했다. 선배는 수사본부에서도 손꼽히는 베테랑으로 가서 많이 배우라고 서장이 직접 얘기했던 터다. 그래서 우선은 당신과 조금 더 인간적으로 가까워지고 싶었다. 문제 아닌 문제라면, 저는 완벽주의자에 가까웠고 당신은 유들한 인상에 비해 빈틈이 없는 편이라는 것이었다.

"그럼 다녀와서, 함께 식사하러 가시죠. 선배."

당신과 나란히 걸으며 말했다. 당신과 함께 있으면 제 체격에 비해 마른 당신의 체형이 도드라져 보였다. 제가 고등학교 때 운동부였다는 걸 감안해도 확연한 체격차이였다.

"네, 병원 먼저."

증언 수집의 중요성인가. 당신의 말을 듣고 내심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운전석에 올라타서, 오사카 미쿠니 병원 주차장으로 네비게이션을 찍었다. 안전벨트 까먹지 말라는 당신의 당부에, 벨트 먼저 매고 시동을 걸었다. 차를 출발시켜 서를 빠져나오면서 당신에게 넌지시 물었다.

"드라이브할 때 음악은 듣는 편이십니까?"

500 이름 없음 (8XhjqSG0Us)

2021-06-01 (FIRE!) 05:16:32

고대로부터 까마득한 세월 동안 이어지던 천마전쟁에 종지부가 찍힌지도 어언 1천년.
그 때부터 지금까지 천상이든 지하든 지상이든 천계인과 마계인은 어디서 어떻게 마주치더라도 싸움 따윈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장소 불문 이유 불문하고 절대 싸우지 말 것. 이라는게 길고 긴 평화 협정의 내용이었으니까.

하지만....

천마간 협정에서 유혈 사태를 초래하는 전투를 하지 말라고 했지 개인간의 사.소.한 다툼까지 금한 건 아니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게 자신에게 그렇게 치명적이 될 줄 그 누가 알았을까...

전쟁터에서 나만 집요하게 죽이러 쫓아오던 망할 천사놈이 그걸 괴롭힘으로 바꿔서 쫓아다닐 줄은...!

딸랑~

"어서오세ㅇ......"

지상 어느 도시의 어느 거리에 자리한 카페에서 일을 하던 중인 나는, 문이 열리는 소리에 언제나처럼 손님을 맞기 위해 밝은 목소리로 인사를 하며 문을 돌아봤다. 그러나 들어온 사ㄹ 아니 천사놈을 보고 급속도로 표정이 굳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긋지긋함. 저 놈을 보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감정이었다.

제길. 여긴 어떻게 찾아낸거지. 결계와 봉인 몇겹이나 해두었는데. 그것도 며칠 전에 새로 깔은건데! 그거 하느라 철야까지 했는데! 속에 오만가지 욕과 별별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당장 전력으로 쫓아내고 싶었지만 여긴 도시 한복판이고 지금은 가게 안에 인간도 제법 있었다. 하는 수 없이 표정관리를 하고 평범하게, 최대한 평범하게 접대, 하는 척을 했다.

"...주문...하시겠어요...?"

어금니를 살포시 물고 웃는 내 얼굴은 가관일게 분명했다. 차라리 가관이라고 비웃어도 좋으니 제발 나가달라고, 나는 필사적인 눈빛을 보냈다. 제발 가! 가!!!

//전쟁 끝났으니 평화롭게 살고 싶은 마계인(악마) & 어째서인지 이 마계인(악마)만 죽어라 쫓아다니는 스토커 천계인(천사)! 로 이어주실 분!
천사가 악마를 쫓는 이유는 사랑도 좋고 애증도 좋고 그냥 심심해서도 좋다! 이어주는 참치에게 맡기겠다!

501 이름 없음 (8XhjqSG0Us)

2021-06-01 (FIRE!) 05:45:11

>>500 추가. 맥브레이커는 사절이다!

502 이름 없음 (eJp8vFP/Nw)

2021-06-01 (FIRE!) 23:23:29

>>499

“듣지, 운전 안 할 때도 듣고.”

평소였다면 왜, 틀어주게? 하는 반문 정도는 이어질 법 했는데, 정작 찾아든 건 침묵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런 재미없는 대답으로 대화의 맥을 끊어놓는 건 이쪽의 성격상 내키는 일은 아니었지만, 생각하는 일이 있다보니 자연히 대답이 단조로워진 탓이다.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과 말하는 것 정도를 양립시키지 못해 쩔쩔 맬 사람도 아니다. 침묵은 잠시고, 다시 말소리가 이어진다.

“근데, 지금은 브리핑이 더 듣고 싶네.”

요약해볼 수 있겠어? 덧붙인 말은 의문문이라기보다는 평서문에 가깝다. 그야, 하지 못 할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당연한 말이었다. 당신이 현장에서 기가 꺽이는 온실 속 화초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여태까지 보아왔던 것만으로도 충분히 알고 있다. 뭐, 현장에는 캐리어조라고 하면 재수없는 책상붙이라는 인상이 있지만.



# 뭐라고 대답할까 생각하다가 조금 늦었다, 미안!
# 그리고 이쪽도 막연하게 생각해둔 이미지는 있지만 그쪽 참치가 '선배'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를 얘기해주면 좋겠어~ 일단 이쪽이 생각하는 '후배'는 건장한 젊은 남성에 엘리트? 다른 사람한테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선배'한테는 깍듯한 편이고… < 같은 느낌.
# 그쪽 참치가 처음 시작한 배경의 상황극이니까 배경 설정 추가는 맘껏 해줘~ 이번 레스로 배경이 일본인 걸 알아서 좀 신났어ㅋㅋ

503 이름 없음 (r94sQJteqQ)

2021-06-02 (水) 02:01:44

>>495 "아-주 잘 들리네요, 늦을 줄 알았더니, 요즘은 출동 속도가 참 빨라졌어요. 그쵸?"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된, 그의 숙적만큼은 아니었지만 멀쩡하다고 말하기에도 어려운 몰골을 한, 청바지와 티셔츠 위로 검은 가죽 재킷을 걸친 여성이 빌딩 바닥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며 명랑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 말투는 숙적에게 건네는 말보다는, 이웃에게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듯 가볍고 태연스러웠다. 이어, 머리 위로 드리워지는 그림자에, 그는 가만히 여자를 올려다보았다. 숙적의 손길을 피할 여력도 없어보였던 그였지만, 여자의 손끝은 그의 피부끝에 닿지 못했다. 그의 몸이 자디잘게 조각나는 듯 하더니, 그 자리에서 흩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도 잠시, 사라졌던 자리에서 아주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재생되듯 되돌아온 그는, 조금 전과 다름없는 몰골로 고통스러운 듯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죽음을 재촉하더라도 숙적에게 희롱당하는 것 만큼은 참을 수 없었던 것일까? 더 이상 움직일 힘도 없는 듯한 모양으로 축 늘어진 채, 그는 이어지는 여자의 말을 가만히 듣다, 입꼬리를 히죽 올리며 웃었다. 함께 죽자,악연의 고리를 끊어버리자, 라. 그는 여자의 손이 미처 거두어지기 전에, 손을 뻗어 꽉 쥐더니, 힘울 주어 그녀를 바닥에 내치고 양 손목을 뒤로 잡아 단단히 고정한 뒤, 재빠르게 그 등 위로 눌러앉아 제압했다.

"어머나, 싫은데요? 죽고 싶으면 혼자 죽으세요. 안 말려요."

숙적의 등에 올라앉아 여유롭게 양 손목에 수갑을 채운 뒤, 권총을 손가락에 걸고 빙빙 돌리며, 그는 생글거리는 낯으로 나긋하게 대꾸했다.

"그런데, 제 컨디션에서 잘 생각하고 결정한 거 맞죠? 그게 아니라면 차라리 구조 요청을 하는 게 어때요? 원한다면 구급차는 불러 줄 수 있는데... 아, 물론 구속되실거고, 지금까지 적하신 죄목이면 여생을 따뜻한 감옥에서 보내실 수 있겠네요. 주기적으로 노역도 나가실 테니 심심하진 않으실 거예요. 새 친구도 사귀실 수 있을 거고... 아, 근데 그 손버릇은 고치는 게 좋겠네요, 모범수라도 되고 싶으시다면요!"

피투성이가 된 숙적의 등에 올라타서는 마치 친구와 수다를 떠는 듯 발랄한 투로 재잘거리는 그 모습은, 모 히어로보다는 적어도 제정신은 아닌 미치광이에 가까웠다. 그러던 그는 아! 하고 말을 멈추더니,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아까부터 궁금한 게 있었는데요. 곧 죽으신다면서요. 그럼 함께 죽는 거나, 그쪽이 절 죽이시는 거나, 별 차이 없지 않나요? 그리고 악연의 고리를 끊고 싶으시다면서요. 저도 완전 동의하는 바인데, 저희가 한날 한시에 죽는 거보다는, 좀 시간차를 두고 죽는 게 좀 악연을 끊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한... 50년 이상 정도면 끊어지고도 삭아 없어질 것 같은데! 어때요? 전 어차피 오래 살거니까 오늘이나 근시일내에 먼저 죽으시면 까짓거 50년 이상 살고 죽을게요. 그럼 저희 다음생에도 다시 볼일 없지 않을까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진성 또라이 느낌이 좀 살았으려나 모르겠네ㅋㅋㅋ 열심히 캐입해봤는데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다:)

504 이름 없음 (r94sQJteqQ)

2021-06-02 (水) 02:04:39

>>503 오타가 났네ㅠㅠ
힘울 주어 - 힘을 주어
적하신 - 적립하신

505 이름 없음 (27neOyvdQs)

2021-06-02 (水) 17:25:43

>>497
(당신이 말할 때, 아이는 긴 날숨을 쉰다. 이렇게 될 줄 빤히 알았다는 듯하다. 탐탁지 않다. 그런 마음 담아 기침하는 당신을 보지만, 이런 때일수록 군말이 무용함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자박자박 벽난로로 향한다. 불 떼라 이야기도 전에 익숙하게 성냥을 집고서. 마른 가지 던져 넣고 성냥 그어 불을 피우는 꼴은 막힘 한 순간 없다.) 생각해봤는데요, 첫 끼는 구이가 좋겠어요. (당신이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예의 낮은 어조로 이른다. 불을 지필 때까지만 해도 한 무릎을 바닥에 댔다가, 지금은 아예 다리를 세워 앉은 자세다. 눈길은 타는 장작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고추가 얼마큼 남았죠?

506 이름 없음 (/XoegoWalY)

2021-06-02 (水) 22:20:19

신을 모시고 있는 신사 안에 있는 새전함 앞에 전통옷을 입고 있는 이가 초콜렛 케이크를 올렸다. 신에게 공물을 바치는 것 치고는 영 그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오히려 표정에서 온갖 귀찮음을 표현하면서 아무 것도 없는 허공을 바라보며 그는 투덜거리면서 이야기했다.

"여깄어요. 여기있어. 한정 판매 초콜릿 케이크."

아침 일찍. 그것도 딱 한정으로 열개만 판매한다는 조각 케이크를 손으로 가리키면서 그는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대체 어딜 보면서 이야기를 하는지 그의 시선은 허공. 아니, 어쩌면 신사 윗 부분을 바라보면서 이야기하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무리 제가 이 신사의 다음 신주라고는 하지만 벌써부터 너무 심부름 시키는 거 아니에요? 대체 이것 때문에 휴일인데 새벽부터 일어나서 줄을 섰다고요. 다음부터는 이런 심부름은 시키지 마세요."

마치 신에게 직접 말이라도 거는 것처럼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입고 있는 전통옷의 소매를 정리하면서 그는 다시 물었다.

"더 시킬 거 있어요? 있으면 빨리 말해요. 마음 바뀌기 전에."

/신과 차기 신주의 관계로서 올렸어! 맥브레이커만 아니면 무엇이든 환영! 어떤 신인지, 성별은 무엇이고 어떻게 생겼는지는 모두 상대방이 자유롭게 정해도 괜찮아!

507 이름 없음 (W9o.lqW8CA)

2021-06-02 (水) 22:23:47

>>502

"그러시군요. 다행입니다."

예상했던 답변이 아니라 조금 놀라긴 했지만, 이어진 침묵에도 별다른 내색 없이 운전을 했다. 경찰차는 도로를 시원하게 내달려 네비게이션이 안내하는 길을 향해 가기 시작했다. 차는 규정속도를 준수하는 안에서, 막히는 구간에서는 우회를 하며 멈추는 일 없이 나아간다. 침묵에 자연히 배기음이 주변음으로 깔렸다. 이어서 당신의 목소리가 들리면 룸미러로 당신을 바라봤다가, 다시 전방을 주시하며 말했다.

"습격당한 피해자는 미츠바시 안나, 23세입니다. 전문대학의 만화과에 재학 중이고, 편의점의 야간 아르바이트생으로 일하고 있고요."

입을 열기 전에 누락된 정보가 없는지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발화했는데, 대답하는데 걸린 시간이 그리 오래진 않았다.

"피해자의 증언에 따르면, 퇴근길에 괴한에게 스토킹을 당했다고 합니다. 피해자가 이상한 낌새를 채고 도망가려 할 때 다리에 충격이 느껴졌고, 머리를 맞은 후에는 기억이 없다는군요."

언덕을 오르기 전 기어를 변속하며 말했다. 병원이 언덕 위에 있기에 한 행동이었다. 주차장에 도착하면, 후진주차로 차를 세우곤 말했다.

"이미 요시다 경부보가 증언을 수집해서, 가급적이면 중복 질문은 피해야 할 것 같습니다. 피해자의 입장도 고려해야 할 것 같고요."

# 괜찮아, 나도 텀이 길어서 너참치도 편하게 해!
# 선배에 대한 이미지라고 하면 경험이 많은 베테랑이고, 수완도 유머감각도 있는 느낌? 아무래도 후배 보다야 유도리가 있는 타입이라고 생각했어. 너참치가 생각한 후배의 이미지도 일단 내가 생각한거랑 크게 다르진 않은 것 같아.
#배경이 마음에 들었다니 다행이네. 혹시라도 의견이나 건의사항이 있다면 말해줘. 일단 오사카 모 경찰서가 배경이라고 생각했는데 당연히 실제지명이나 인물과는 상관이 없고. 일본 형사드라마 느낌이라고 생각하고 쓰긴 했어!

508 이름 없음 (8K0u.M0gvw)

2021-06-02 (水) 23:08:05

>>506

남들이 보기엔 전통옷을 입은 남자가 혼자 떠드는 걸로 보였겠지만, 그 앞에는 제대로 상대가 있었다. 단지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 그 상대는 그가 내려놓은 케이크를 집어들어 경사라도 난 듯 기뻐하고 있었다.

"이거다 이거! 본녀는 이것이 먹고 싶었던거다! 아하하!"

아침 일찍부터 고생한 그와 달리 한없이 순순하게 기뻐하는 상대, 신이라 불리우는 여성은 그가 뭐라고 투덜대건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케이크를 바라보며 이걸 어떻게 먹을까 하는 고민 삼매경이랄까. 그 와중에 그가 부탁을 더 들어줄 것 같자 그건 또 귀신 같이, 아니, 신 같이 인가. 아무튼 잽싸게 캐치하고 또다른 소망이 담긴 눈을 그에게로 돌렸다.

"다음 신주면 이미 신주인거나 마찬가지 아니더냐. 네 아비는 본녀를 보지 못 해 부탁이든 뭐든 할 수 없었기도 하고. 아무튼 네가 정녕 다른 부탁도 들어주겠다니 내 하나 더 맡기도록 하마."

본론에 들어가기 앞서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는 건 역시 신 답다고 할지. 여신은 잘 걸렸다는 표정으로 씨익 웃더니 긴 옷자락 안에서 희고 가는 손을 꺼내어 검지손가락을 세웠다. 하나만! 할 때처럼 손짓을 하고 사뭇 비장하게 말했다.

"네 아비가 애지중지 해온 귀한 술이 창고에 있음을 너도 잘 알테지? 이 케이크의 반주로 그것을 딱 한잔만 하면 좋겠구나. 아, 물은 타지 말고 얼음만 세개 넣어서 부탁하마. 지금 먹을거니까 바로!"

바로, 라는 말을 굳이 강조해가며 케이크만큼이나 황당한 부탁을 한 여신은 기대에 찬 눈빛을 그에게 보냈다. 더 보고 있으면 눈에서 빔이라도 나오지 않을까 싶을 만큼.

//일단 여신이란 설정만 달아봤는데 맘에 들지 모르겠다. 불편하면 찔러줘!

509 이름 없음 (/XoegoWalY)

2021-06-02 (水) 23:36:28

>>508

도데채 왜 아버지에게도 보이지 않는 신이 자신의 눈에만 보이는지 그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특별한 피가 흐르는 것도 아닐테고 가문 대대로 신이 보이는 것은 더욱 아닌 것 같은데. 어릴 적에 자신에게 무슨 축복이라도 내려서 이런 일이 벌어졌나 생각을 해보나 그 진실을 알 수 있는 방법은 더 이상 없었다.

아무튼 이 신사에서 모시는 여신이 케이크를 집어드는 모습을 바라보며 그는 그래도 아침 일찍 나가서 고생한 보람은 있다는 듯이 웃어보였다. 누가 저 여신을 보고 신이라고 생각할지. 적어도 근엄하고 분위기 있는 모습을 떠올리는 이들의 상상을 무너뜨리기엔 충분하다고 그는 생각했다.

"지금이라도 잇지 않겠다고 아버지에게 말할까 고민 중이거든요? 멋대로 이미 신주라고 단정짓지 마요."

그리 말하는 것은 일종의 약한 반항이었다. 다른 형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릴 적부터 교육을 받은만큼 이미 그의 길은 신주에 맞닿아있었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이 신주가 되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저 신의 심부름이 귀찮고 번거로웠을 뿐이었다.

"왜 하필 그 술이에요?! 새벽부터 줄을 서서 케이크를 사왔더니 돌아오는게 아버지에게 쫓겨나는 미래로 이어지는 천벌인 것은 너무한 거 아니에요?!"

허나 곧 신의 부탁에 그는 크게 당황하면서 뭐 이런 일이 다 있냐는 눈빛을 보냈다. 기대에 가득 찬 저 눈빛은 무슨 말을 해도 꼭 이루고야 말겠다는 마음이 가득해보였고 어설프게 이야기해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기에 그는 정말로 빠른 어투로 말을 이었다.

"좋아요. 잘 생각해봐요. 그 술을 가져오려면 일단 아버지 몰래 꺼내야 하는데 차기 신을 모시는 신주가 도둑질을 하는 이였습니다 라는 말이 퍼지면 차후 평판이 매우 매우 매우 매우 안 좋아지지 않겠어요? 하지만 조금만 시선을 돌리면 와! 편의점에서 파는 주스가 케이크와 먹으면 그렇게 맛있다는데! 그런고로 주스를 사올게요! 자. 무슨 맛?!"

갑자기 기습적으로 던지는 질문은 얼떨결에 답을 하는 것을 노린 것이었다. 물론 그 술수가 저 신에게 먹힐지는 그도 알 수 없었다.

/앗! 아냐! 어떤 신이라고 해도 괜찮은걸!

510 이름 없음 (QDbjHdDAJY)

2021-06-03 (거의 끝나감) 00:02:25

>>509

그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이미 신주로의 마음을 굳힌 것을 아는 것처럼 여신은 그래 그래 하고 그의 반항 어린 말을 흘려넘겨주었다. 이러는게 한두번, 아니, 한두해도 아니다보니 그러려니 한 걸지도 모른다. 그러니 어서 가서 술이나 꺼내와줬으면 하는데, 아이쿠야. 당황한 그로부터 돌아오는 말들에 여신은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신의 부탁을 들어준 대가가 천벌일 리가 없잖느냐. 에잉. 시끄러운 녀석 같으니."

여신은 한 손에 케이크를 들고 다른 손으로 귀를 막는 시늉을 하며 투덜댔다. 여신의 입장에선 그 한잔 꺼내오는게 뭐 그리 어려운가 싶을 뿐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술병 아니 술항아리라도 홀랑 가져가버릴 수 있는 걸 딱 한잔만으로 끝낼 요량으로 갖다달라 한 것을. 그가 당황한만큼 여신도 기분이 꿍해졌다. 기분이 그러하니 그의 설득이 통했을 리가 있는가. 어찌어찌 저를 설득해 주스로 타협하려 하는 그를 가늘게 쏘아보며 대꾸했다.

"그러면 허락을 맡고 한잔만 받아오면 되지 않느냐. 본녀가 몰래 가져오라 한 적도 없거늘. 무얼 그리 어렵다고 징징대느냐. 징징대길! 아니면, 그래, 본녀가 직접 항아리째 가져다 마시고 네 방에 빈 항아리를 놓아두어도 괜찮다는 것이야? 어디 한번 대답해보거라!"

세상에. 신력으로 사람을 곤란하게 만들겠다는 신이라니. 여전히 한 손에 케이크를 든 여신은 귀를 막던 손으로 이제 허리를 짚고 당당하게 서서 그를 내려다보며 말하고 있었다. 세전함 위에 서서 짐짓 엄한 얼굴을 하고 있는 모습이 퍽이나... 신 답다. 자기중심적인 신. 딱 그 자체였다. 탕! 마치 성난 토끼가 뒷발을 구를 때처럼 발을 굴러 소리를 낸 여신이 다시금 입을 내밀고 투덜대었다.

"어려운 일도 아닌데 한번 시도 정도는 해봐주면 좋지 않느냐. 그리고, 네가 시키는 걸 들어주라길래 말한 것 밖에 없단 말이다. 본녀는."

그 뒤로 이어지는 궁시렁 궁시렁. 주스라니 본녀를 애로 보는 것인가 최소한 커-피는 마실 줄 안단 말이다 본녀는 애가 아니야! 등등의 말들로 보아 아무래도 주스로 설득하려 한 점이 좋지 않았나보다. 여신의 표정은 좀처럼 풀릴 기색을 보여주지 않고 있었다.

511 이름 없음 (Vjkcj8OS8A)

2021-06-03 (거의 끝나감) 00:30:51

>>510

"아버지가 그 술을 얼마나 애지중지하는지 몰라서 그런 말을 하는 거예요. 이자나기님이 내놓으라고 해도 절대로 안 내놓을걸요? 그 술을 구하겠다고 얼마나 고생을 하셨는데. 그보다 정말로 그럴 참이에요?!"

저 신이라면 정말로 그럴지도 모를 것 같았기에 그는 만약 정말로 그런 일이 벌어지면 당장에 짐을 싸고 친구 집에 도주를 해야겠다는 계획을 머릿속으로 세웠다. 물론 저 신이라면 그걸 또 쫓아오지 않을까 싶었으나 신보다 아버지가 노발대발하는 모습이 그에겐 더 무서운 일이었다.

아무튼 제대로 삐졌는지 표정이 꿍해져있는 그 여신을 바라보면서 그는 혀를 찼다. 곧 애써 그는 합리화를 했다. 이대로 들어가면 정말로 술을 다 먹고 항아리를 자신의 방에 놓아둘지도 모르니까 대책을 세워야한다면 애써 핑계거리와 합리화거리를 만든 후에 그는 입을 열었다.

"주스를 먹는다고 애는 아니잖아요. 카페에 가면 케이크에 주스 시키고 먹는 이가 얼마나 많은데. 오히려 이건 애가 아니라 트랜드에요. 트랜드. 이 세상의 유행 같은 거라구요. 아무튼 다음에 또 새벽에 줄 서서 케이크 사올테니까 표정 풀어요. 응?"

물론 다음 휴일이 되어야 가능하겠지만 한번 줄을 섰으니 또 다시 줄을 서지 못할 것은 없었다. 아무튼 상대는 자신의 집안이 모시는 신이었으니 결국 지는 것은 자신이라는 것을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렇게 대화도 가능한만큼 더욱 더.

"그러니까 다음주에요. 다른 디저트도 포함해서."

512 이름 없음 (QDbjHdDAJY)

2021-06-03 (거의 끝나감) 00:59:31

>>511 시간이 늦어서 답레는 오전이나 오후 중으로 들고올게! 좋은 밤 보내 너참치야!

513 이름 없음 (Vjkcj8OS8A)

2021-06-03 (거의 끝나감) 01:07:53

>>512 나도 슬슬 자야하던 참이었어!
난 아마 저녁 시간 이후에야 잇기 가능할 것 같은데 아무튼 편하게 이어줘! 마찬가지로 좋은 밤 보내! 너참치야!

514 이름 없음 (QDbjHdDAJY)

2021-06-03 (거의 끝나감) 16:37:01

>>511

"애지중지해봐야 술은 마셔야 가치가 있는 법이지. 이자나기? 그치는 달라고 하지도 않고 가져갈거다! 흥. 못할 건 또 무어냐!"

심기가 까칠해졌어도 한마디 한마디 정성스러운 말대답을 해주는 걸 보면 이 여신도 마냥 고집만 부릴 생각은 없나보다. 정말로 토라졌으면 진작 말도 안 하고 틀어박혔을텐데 그러지 않는게 증거인 셈이었다. 그래도 여전히 꿍-한 표정에 인왕마냥 당당한 자세로 세전함 위에 서 있었다. 미간을 한껏 찡그리고 볼에 바람을 한가득 넣은 얼굴이 순전히 어린애 같지만 여신으로서는 최대한의... 불만 표출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방식 중 하나였다.

한창 그리 대치 중이던 그를 보며 저것이 또 머릿속으로 잔머리를 굴리고 있구나, 오늘은 순순히 넘어가주지 않을테다, 하고 결심하는 여신이었으나. 그 결심이란 물가의 모래성 같은 것이었다. 슬슬 밀려오는 물살 같은 그의 말에 결국은 또 넘어가고 말았다. 케이크에 주스를 곁들이는게 애 같은게 아니라 트랜드라던가 세상의 유행이라던가 하는 말들이 요 세상물정 모르는 여신의 귀를 재주좋게 간질인 성과였다. 거기다 다음주에도 케이크를 또 사다준다고 하니, 그것도 다른 것도 같이라고 하니 안 넘어갈 수가 없었다.

그의 노력 끝에 그때까지 꿍하던 얼굴이 슬그머니 풀린 여신은 세전함에서 내려가 늘 있던 자리로 돌아가며 중얼거렸다.

"네가 그렇게까지 말하니 이번만은 본녀가 넘어가주마. 대신 네 입으로 한 말이니 꼭 지켜야 할 것이야. 다음주에도 이 한정 케이크와 다른 걸 사오기로 한 것 말이다."

이래뵈도 신님이니 약속을 어기면 어떤 벌 아닌 벌을 내릴 수도 있었다. 여신은 그에게 그걸 잊지 말라는 듯이 사뭇 진지한 엄포를 놓고서 신사의 계단에 앉았다. 그리고 아직 손도 못 댄 케이크를 무릎에 놓고서 그를 향해 긴 소매자락을 흔들었다.

"알았으면 어서 가서 주스나 사오거라. 본녀는 그, 귤맛이 나는게 좋다. 뜨겁지 않고 찬 걸로!"

귤맛이라는 희안한 주문이지만 긴 시간 여신의 부탁, 이라 쓰고 잔신부름을 해온 그라면 그게 오렌지를 뜻하는 걸 알 것이다. 미적대다 주스 미지근하게 만들지 말고 퍼뜩 다녀오거라! 여신의 재촉이 방정맞게 펄럭이는 소매자락을 타고 그에게로 날아들었다.

515 이름 없음 (Vjkcj8OS8A)

2021-06-03 (거의 끝나감) 19:03:05

>>514

겨우 어떻게든 위기를 넘겼다고 생각하며 그는 안도했다. 물론 그 때문에 다음주에도 새벽에 일어나서 줄을 서야 하지만 당장의 위기를 어떻게든 넘기는 것이 그로서는 중요했다. 귀찮긴 하지만 그래도 자신의 집안에서 모시는 신이었으니 어쩔 수 없는 도리이자 운명이라고 넘겨버리면서 그는 말했다.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안 지킨 적 있어요? 이번만 해도 조금 짜증을 내긴 했지만 그래도 새벽에 잘 일어나서 잘 갔다왔잖아요? 요즘 이렇게까지 하는 차기 신주가 어딨겠어요? 다른 신사에 가면 다들 신은 없다고 하면서 신사는 내팽겨치고 관심도 안 가지고 그럴걸요?"

실제로 그런지 안 그런지는 알 수 없었으나 적어도 자신이 이만큼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어필하듯 이야기를 하며 그는 귤맛 주스를 사오라는 말에 작게 소리없이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귤이 아니라 오렌지라니까요. 진짜 귤맛 주스를 사오면 맛이 틀리다고 뭐라고 할거면서. 아무튼 기다려요. 금방 사올테니까. 어차피 편의점은 요 근처기도 하니까요."

물론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다음에 오렌지라고 할 것 까진 않았으나 그래도 굳이 그렇게 정정을 하며 그는 잠시 기다리라는 말과 함께 신사 밖으로 나갔다. 십 분 정도 지났을까. 여유롭게 걸어오는 그의 손에 오렌지 주스가 들려있었다. 여신이 있는 곳까지 걸어간 후에야 발을 멈춘 그는 오렌지 주스를 내밀었다.

"정말 제가 보면 어쩔려고 했어요? 이렇게 먹고 싶은게 많은데. 신이니까 아버지 꿈에 나타나서 이걸 먹고 싶으니까 바쳐라. 식으로 말하고 그런 건 불가능했어요?"

516 이름 없음 (QDbjHdDAJY)

2021-06-03 (거의 끝나감) 20:25:24

>>515

얼른 주스나 사올 것이지, 머리 좀 컸다고 갈수록 말재간만 늘어서 이제는 한마디도 지지 않으려고 하는 그를 보며 여신은 금방이라도 표정을 바꿀 듯이 입술을 내밀었다. 어릴 때는 그나마 귀염성이라도 있었는데 지금은 하는 말마다 맞는 말만 하니 번번히 언쟁에서 지는 신세였다. 그래도 나름 신이라고 자존심은 있었으니. 나 불만이요- 하는 표정을 한 채로 투덜대었다.

"약속도 신주의 일도 네가 좋아서 하는 것을 왜 본녀에게 무어라 하는 것이냔 말이다. 여하간 인간들이란 정을 줄 만 하면 어찌 이리 방자해지는지! 에잉, 귤이면 어떠하고 오렌지면 어떠냐! 냉큼 사오기나 해라!"

투덜투덜, 궁시렁궁시렁. 그에게는 익숙할 그 태도의 끝은 무안함의 호통이었다. 그거 부르는게 귤이면 어떻고 오렌지면 어떠냔 말이다. 말만 통하면 됐지. 잠시만 기다리라며 신사 밖으로 나가는 그를 향해 기어코 입을 삐죽댄다. 그래도 다시 삐질 생각은 없어서 그가 주스를 사들고 돌아왔을 때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수고했다. 음. 제대로 차가운 거로구나."

그가 내미는 주스를 받은 여신은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이제 기분 좋게 케이크와 주스를 먹으려고 했다. 주스를 따서 먼저 한모금 마시고 케이크에 손을 대는 모습은 신이 아니라 보통 인간에 가까웠다. 예쁘게 장식된 케이크를 어디서부터 먹을까 하는 고민이 얼굴에 한가득 드러나는, 그냥 보통 인간. 허나 보이는게 그리 보여도 여신은 신이었다. 제멋대로에 시간이 얼마가 지나도 늘 한결같은 신이었다.

"네 말처럼 할 수는 있지만, 그걸 너무 남발하면 신력 남용이라고 위에서 시끄러워서 말이다. 그리고 네 아비가 한창 신주일 적에는 가끔 바치는 술로 충분했다. 속세의 먹을거리 같은 건 그다지 흥미가 없었어."

여신이 평소 방정맞거나 철없게 굴어도 행실 자체가 비뚤어진 건 아니어서, 먹으면서 말을 한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제대로 그의 물음에 답을 해주고 나서 초코 케이크를 먹기 시작했다. 한입 먹을 때마다 살살 녹는다느니 이 맛이라느니, 하는 말을 들어보면 전에는 음식에 관심이 없었다는게 거짓말 같이 보였다. 신이니까 거짓말을 할 리는 없...지도 않나?

517 이름 없음 (Vjkcj8OS8A)

2021-06-03 (거의 끝나감) 20:58:52

>>516

"신의 세계도 뭔가 규칙이 많은가보네요. 하긴 그런 것이 없으면 완전 혼란스러우려나."

어디까지 허용되고 어디까지 허용이 안되는진 신이 아니었기에 알 수 없었으나 확실히 규칙이 없으면 지금쯤 많은 사람들이, 아니. 멀리 갈 것 없이 자신의 집안처럼 신을 모시는 곳은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는 괜시리 몸을 부르르 떨었다.

허나 단 하나. 속세의 먹을거리 같은 것은 흥미가 없다는 그 말에는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이 그는 멍하니 여신을 바라봤다. 과거에는 먹을 것에 흥미가 없었는데 자신에게 심부름을 시킨 시기에는 먹을 것에 흥미가 커졌는지 묻고 싶었으나 필시 또 뭐라고 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는 일단 입을 다물었다.

"그거 맛있어요? 완전 맛있게 드시는데. 어떤 맛이에요?"

자신이 사 왔지만 정작 자신은 그 맛을 알 수가 없었기에 그는 괜시리 궁금증을 느끼며 물었다. 그리고 가만히 근처에 있는 나무로 걸어가서 등을 살며시 기대며 그늘 속에 쏘옥 들어갔다. 아직 더위가 세상을 덮을 시기는 아니었으나 나무그늘이 있으면 괜히 들어가고 싶은 심리였다.

"아무튼 이렇게 공물도 바쳤으니 다음 시험에서 좋은 점수가 나오는 축복이라던가 그런 거 해주면 안돼요? 그렇게 해서 시험 잘 쳐서 성적이 오르면 제 용돈도 오를테고, 용돈이 오르면 다른 맛있는 것도 바칠 수 있고 서로 윈윈일 것 같은데."

물론 정말로 해달라는 듯이 간절한 부탁어조는 아니었다. 장난스럽게 말을 거는 일종의 장난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518 이름 없음 (6NfoB7.lW.)

2021-06-03 (거의 끝나감) 23:38:21

>>507

요시다 경부보인가. 꽤 젊은 친구인데, 괜찮았을런지. ‘스토킹’이라는 단어가 피해자의 표현을 그대로 옮긴 거라면, 역시 중요해지는 것은 그 기간이다. 범인은 언제부터 피해자를 따라다녔을까? 어째서 그 사람이어야만 했지? 무얼 위해 뒤를 쫓은 걸까? 그리고 왜, 피해자를 공격하고서도, 끝내지 않았을까. 그 부분에서 그는 잠시 멈춘다. 그리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현장에 있었는데도, 피해자가 살아남은 걸 ‘다행’이라고 생각하고난 후에는 별 수 없이 입맛이 쓰다.

어떻게 다행이라고 말할까, 그 젊은이는 언제나와 같을 거라고 믿었던 일상의 순간을 습격당했는데. 사실 범죄라는 건 대부분 그렇게 갑작스럽지만, 소위 ‘치정’ 범죄들은 정말로 질이 나쁘다고, 그는 생각한다. 어느 부분이 그렇냐고 한다면, 잡힌 범인들이 집착과 애정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제정신이 아니라는 부분들이. 구분하지 못하는 건지, 하지 않는 건지 생각하면 더욱 더.

이 사건의 경우에는 아직 그렇게 결론이 난 건 아니지만. 그는 한숨을 내쉬는 대신, 한 번 시선을 굴리고, 생각의 방향을 바꾼다. 어떨 땐 그 사고의 전환이 그리 쉽게도 된다는 사실을 싫어하지만, 그렇다고 찝찝한 생각들에 천착해봤자 피해자가 구원받지는 않는다. 사실 이제는 이 모든 생각의 흐름도 눈을 한번 깜빡하는 사이에 본인도 명확히 깨닫지는 못할 정도로 자연스레 이루어진다. 그러니, 아무튼이다. 아무튼…… 그 범인은 어디로 갔을까.

“……요시다는 병원에 남았어?”

글쎄, 병원에 간 피해자를 찾아올 정도로 뻔뻔하거나 용감하거나 멍청한 녀석은 흔하지 않지만, 확인해야할 부분들은 있는 법이다.



# 에고 늦었다!

# 중요한 부분은 아니지만 묘사에 사용하기 위해서 묻는데, 후배는 경부보일까, 아니면 경부일까? 캐리어는 1년이면 경부로 승진한다고 해서…
# 선배는 논캐리어거나/적어도 현장에 남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경부 쯤에서 멈췄겠지 싶거든… 경시는 아닐 것 같았달까.

# 사건 짜느라 힘들면 얘기해줘ㅋㅋㅋ… 추리물의 구성이 아니어도 괜찮으면 나도 즉석에서 설정 붙이면서 진행할테니까.
# 일단 나참치는 추리를 할 능력은 없다(선언)

519 이름 없음 (7cOmIoDlPM)

2021-06-03 (거의 끝나감) 23:53:03

상황이 심상치 않았다. 내부에서는 비명소리와 광기어린 외침, 그리고 이상한 외국어를 지껄여대는 듯한 소리가 한꺼번에 뒤섞여 고막을 연신 때려대었다.

"뭐하고 있어! 이 분들 당장 다 체포해!"

중년의 나이를 바라보기 시작한 남성은 함께 온 팀원들에게 악다구니에 가까운 명령을 내렸고, 그보다 당연히 더 젊을수밖에 없는 다른 대원들은 자신들 앞을 막는 사제들에게 거의 사정을 해 가며 물러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검은 옷을 입은 성직자들은 요지부동이었고, 경찰. 그것도 SWAT 대원들은 그 위압적인 모습이 무색하게 쩔쩔매고만 있었다.

"에이. 재수가 없으려니까... 자꾸 이러시면 공무집행방해로 입건됩니다! 당장 나오세요!"

차마 그들에게 총을 겨누지는 못했다. 그들이 가진 흉기는 이 자들이 아닌, 저 안에 있을 '누군지, 무엇인지' 모를 흉악한 이에게 향해야 했으니까.

팀장은 한시가 급했다. 생전 이해하지 못할 헛된 일로 구할 수 있는 무고한 이를 놓친다면 그는 더 이상 자신도, 이 성직자들도 용서하지 못할 것이었다.

"야! 뭣들 하고 있냐니까! 됐어! 내가 연다. 들러붙으면 테이저라도 쏴버려!"

총성은 들리지 않았다. 아니. 그래서 더 큰일이었을지 모른다.
음산하고 역겨운 낮은 목소리. 높고 광기에 찬 목소리. 무고한 이의 비명과 살인자의 웃음소리가 전부 한데 뒤섞인, 귀로 듣는 지옥도 그 자체가 문틈으로 스멀스멀 기어나오고 있었다.
그 중간중간 쾅쾅대며 발작을 하는 문을 성직자들은 온갖 기도문을 시끄럽게 외워대며 막아세웠고, 또 그 앞에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SWAT, 즉 남자와 그의 팀원들이 있었다.

결국 완력으로 사제들을 떼어내고서 소총을 꺼내들고, 굳게 잠겨 쿵쿵대던 허름한 문을 발로 걷어차 부서뜨린 다음 행여 숨어있는 이가 있는지, 그리고 그렇다면 바로 쏴버릴 각오로 총구멍을 들이대며 한두바퀴를 훑었다.

하지만 그는 곧 후회했다. 차라리 그의 눈 앞에 들이닥친게 흉기를 든 괴한이기를 바랬다.

"하느님 맙소사..."

베테랑 대원에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고, 그 뒤를 따른 대원들 목에서도 비명이 터져나오고 말았다.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고, 누가, 혹은 무엇이 튀어나왔는지는... 순전히 재량에 맡긴다!

520 이름 없음 (w.dGUeuWKY)

2021-06-04 (불탄다..!) 00:20:21

>>517

"네, 요시다 선배는... 병원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요시다를 일컬어 선배,라고 말하고도 입에 잘 붙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요시다가 저를 싫어하는 티를 내서 더 그렇기도 했다. 물론 그렇다 해서 그가 나쁜 형사라는 것은 아니다. 논캐리어 출신으로 경부보까지 올라오는데 최소한 2~4년은 걸렸을 것이고, 그만큼 공적도 쌓았을테니까. 캐리어는 계급이 바로 그 경부보부터 시작하니, 신입인 제가 같은 계급장을 달고 있는 것이 싫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건 내 잘못이 아니다. 깊이 생각해보면 요시다의 잘못도 아닐 수 있다. 뭐가 문제인걸까. 경찰 조직 그 자체의 문제일까? 아니면 사람의 마음이?

그제서야 머리가 밝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사람의 마음. 모든 것은 사람의 마음이 문제인것으로, 이번 사건의 피해자를 습격한 범인 역시 비뚤어진 마음을 가지고 있던 게 문제인 것이다. 범죄의 동기가 무엇인지 아직 속단할 순 없지만, 집착은 기형을 낳고 종내에는 파국을 불러온다. 미디어에서 그려지는 이미지와 달리 실제 범죄자 대다수는 우월하지도 않고 충동을 제어하지도 못하니까.

주차장에 경찰차를 세우고 나서도, 잠시 운전대 위에 손을 얹은 채 멈춰 있었다. 당신이 시선을 굴리는 게 느껴질 정도로 차 안은 고요했다.

"지금쯤 요시다 경부보가 피해자 가족들을 응대하고 있을 겁니다."

결국 호칭은 원점으로 돌아간다. 저는 1년만 지나면 달라질 계급장이 겹친다는 이유로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바로 그 호칭으로. 피해자의 상태가 정확히 어떨지 모르니 말하는 게 더욱 조심스러웠다. 적어도 요시다 선배가 가족들을 상대하는 동안은 증언을 들을 시간이 있을 것이다.

"슬슬 들어가실까요, 선배."

아니면 담배라도 드릴까요, 하고 선뜻 말했다. 정작 저는 피우지 않지만, 접대용으로 들고 다니는 것이었다. 그러고보니 당신이 담배를 피웠던가. 서에서 피는 모습은 아직 못 본 것 같아 긴장을 풀 겸 물어본다.

# 괜찮아! 정성들여 써준 게 보여서 고마운걸.
# 일단 갓 발령된 캐리어 출신이란 점에서 경부보로 설정했어. 경찰서장 식으로 말하자면 후배는 아직 햇병아리. 선배에게 무사히 가르침을 받으면 1년쯤 후에는 경부로 승진하게 되겠네.
# 나도 선배는 현장에 남아있는 쪽이었을거라 생각했어. 선배는 경찰서장하고도 말을 터놓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가 아닐까 싶었고. 사실 경찰서장이 일부러 두사람을 파트너로 붙여놓은 걸수도 있겠다 싶어.
# 응, 나도 쓰면서 피해자나 범인 등 제 3의 인물이 나오면 구분해서 알 수 있게 서술하도록 할게. 너참치도 캐릭터 등장시키거나 설정 붙이고 싶으면 해도 돼, 모르겠으면 서로 조율하면 되니까.
# 라고 하기엔 이미 선배가 독백으로 생각한 게 예리했는걸! 나도 노력은 하겠지만 구성이 어설프거나 그럴 수 있으니... 너그럽게 봐주길 바래. 고마워.

521 이름 없음 (w.dGUeuWKY)

2021-06-04 (불탄다..!) 00:21:37

# 앗 잘못 걸었다 미안! >>518

522 이름 없음 (n82alHLNss)

2021-06-04 (불탄다..!) 01:07:34

>>520

“너 담배 피워?”

그리 말하는 표정은 역시나 웃는 표정이다. 반은 농담, 혹은 반 이상 농담. 담배 냄새는 커녕 말끔한 스킨 냄새만 나는 후배가 담배가 필요하냐 묻는 게 어쩐지 유쾌해서, 그는 조금 웃어버린다. 이 정도로 깍듯하게 철저하면 융통성이 있다고 해야하는 건지 역으로 없다고 해야하는 건지. 하지만 그가 애연가이든, 언젠가부터 함께 살게 된 어린 아이 때문에 금연을 결심한 왕년의 애연가이든, 병원 부지 내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도, 병실 내에서 담배 냄새를 풍기는 것도 역시 좀 그렇다.

이어서 본인이 담배를 피울 것 같았냐며 되묻는 목소리에는, 조금 능청스러운 데가 있다. 성실한 후배를 놀려먹으면 서장이 잔소리할텐데. 그렇지만 그렇게 곧이 곧대로 놀려먹어질 만큼 요령 없기만 한 후배도 아니었으니, 이 정도는 괜찮겠지. 약간의 웃음이 있은 후, 병실을 찾아 가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는다. 아무래도 가족 면담은 병실이 아니라 상담실 같은 데서라도 하고 있겠지. 피해자 면담이 먼저지만, 그쪽 이야기도 들어보긴 해야할 것이다. 아니, 요시다가 들으러 갔으니, 보고로 받는 게 나으려나.

병실의 문을 두드리고, 문을 여는 것은 후배의 몫이다. 딱히 잡일을 시킬 생각은 아니었으나, 처음 보는 사람에게 다가가기엔 후배의 인상이 더 나을 것 같다는 정도의 감상은 있었다. 키가 커서 역으로 위압적인가? 굳이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문을 열자, 피해자, 아니, 미츠바시 안나가 그 자리에 있었다. 안나의 의무기록에 적힌 상병명은, 둔기에 의한 타격. 습격으로 정신을 잃었다길래 경막하 출혈이라도 있으면 어쩌나 했는데, 경미한 뇌진탕 증상을 보이는 것 외에 그녀는 ‘건강한’ 편이었다.

단어 하나하나에 냉소적으로 굴어봤자 달가울 일이 없는데 또 이러지. 본인이 유들유들하다는 평가를 듣는다는 게 조금 웃기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는 여전히 불안한 눈빛을 한 안나에게 웃는 표정을 보이는 걸 잊지는 않는다. 깨어난 지 얼마되지도 않은 사람한테 낯선 이들이 찾아오는 일이 달가울리야 없으니. 이 일을 하면서 환영받을 거라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고, 별 수 없는 일이라는 정도의 감상만 달아둔다.

“미츠바시 안나 씨, 맞으십니까?”



# 후배씨 체향(?)은 날조네~ 뭔가… 굳이 향수 뿌리며 멋내는 타입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어서…(?)
# 앗 그럼 바로 설정을 하나 붙여볼까(?) 서장님은 캐리어 출신이고, 사실 선배의 동기라는 설정은 어때?
# 그리고 사정청취 파트는 그대로 진행해도 좋고, 적당히 상황요약으로 넘겨도 ok야~ 모든 장면을 일일히 묘사할 필요는 없으니 편할대로

523 이름 없음 (mey99Xcd8U)

2021-06-04 (불탄다..!) 17:07:14

>>517

여신의 대답에 그가 그런가보다 하는 반응을 보이자 여신도 그런거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규율의 대부분이 서로 간섭하지 말자는 식이라는 건 뭐, 묻지 않았으니 말하지 않기로 했다. 인간인 그가 신들의 규율을 자세히 알아서 뭐에 쓰겠는가. 그저 이 맛난 케이크를 한입 가득 넣고 오물오물 하며 자리를 그늘로 옮기는 그를 힐끔 곁눈질했다. 그늘 아래 나무에 등진 그에게서 다시 시선을 케이크로 돌렸다가, 곧 그에게로 돌아가버렸지만.

"별걸 다 묻는구나. 그리 궁금하면 와서 한입 먹어보렴."

앞서 했던 말 때문인가, 대뜸 무슨 맛이냐고 묻길래 여신은 티 안 나게 당황했다. 맛...이라고 해봐야... 혀끝의 단 맛 밖에 잘 모르겠으니 말이다. 애둘러 말을 돌리면서 먹고 싶으면 이리 오라고 휙휙 손짓을 했다. 맛이 궁금하면 직접 먹어보는게 제일 좋지 않느냐고 뻔한 소리도 슬쩍 말을 흐려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뒤에 이어진 그의 장난기 어린 말에는 짐짓 화를 내는 시늉을 했다.

"이그. 그거야말로 신력의 남용 아니더냐! 인간사는 인간 스스로가 만들어가야 하는 법.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있는 정도의 일에 신력을 바란다면 그 대가가 배로 돌아오게 되는 것임을 차기 신주로서 배우지 않았더냐. 에잉, 못난 것. 알면서 그러하니 더욱 못났구나. 올해 부적은 축사도 뭣도 없을 줄 알아라!"

여신은 자신에게 이익이 돌아오는 점을 미끼 삼은 것은 일언반구도 없이 그가 그런 말장난을 친 걸 약간의 타박을 담아 돌려주었다. 아주 아주 약간의 타박과 함께 못났다며 뭐라 하면서도 그를 보는 얼굴엔 슬그머니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그와 여신이 처음 만나 지금까지 단 한순간도 변한 적 없는 말간 미소였다. 어찌 보면 그를 마냥 어린애라고 생각하는 걸까 싶은 그런 느낌이 담겨 있었다.

"그렇-게 귀엽던 것이 어찌 저런 못난 놈이 되었을지. 쯧쯧... 본녀에게는 아직도 요만한 네가 눈 앞에 선한데 어찌 이리 빨리도 자라버리냔 말이다. 좀더 천천히 자라면 좀 좋아."

그리고 그 느낌이 마냥 느낌만은 아니라는 걸 보여주듯, 이어지는 투덜거림의 내용은 훌쩍 커버린 그에 대한 불평이었다. 너무 빨리 자랐다며 한탄까지 하는데, 부러 과장스러운 말투가 진심은 아닌 듯 보였다.

//어제는 피곤해서 못 이었다아악...

524 이름 없음 (DyV5k1pyw2)

2021-06-04 (불탄다..!) 19:27:08

>>523

"별 걸 다 묻는다니요. 새벽에 나가서 사온 케이크라고요. 당연히 맛이 궁금하죠! 그런데 괜찮아요? 한 입 먹었다고 양 줄어든다고 뭐라고 하는 거 아니에요? 그리고 방금 그 말, 이 신사까지 와서 기도하는 이들이 들으면 난리 날 거라고요. 물론 정말 혼자의 힘으로 못 하는 것도 있겠지만 대부분이 방금 제가 말한 것처럼 사사로운 것들인데."

못난 것이라고 말하는 말에 그는 괜히 얄미운 어투로 그렇게 이야기했다. 물론 방금 여신이 말한대로 대가가 배로 돌아오게 된다는 것을 아버지에게 배웠기에 삐지거나 심통이 나거나 톡 따지는 어투는 전혀 아니었다. 그저 장난기를 가득 담은 말을 끝으로 그는 소리를 전혀 내지 않으면서 입꼬리만 위로 활짝 올렸다.

"어쩌겠어요. 이렇게 자라버린 것을. 언젠가 제가 결혼해서 자식이 생기면 그때 그 기분을 다시 느끼면 되겠네요. 물론 먼 훗날의 이야기 같지만."

결혼이고 자식이고 아직 그런 것에는 접할 수 없을 정도로 그에겐 먼 미래의 이야기였다. 애초에 결혼을 할지, 자식을 얻을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었다. 딱히 연애나 사랑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막상 자신을 대입하면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런 멋 훗날의 이야기였기에 전혀 감이 오지 않는게 원인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따지면 저도 누군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귀여워해주던 누나가 알고 보니 집에서 저만 볼 수 있는 신님이었고 이렇게 심부름을 시킬 것은 예상도 못했거든요? 어릴 때 아버지와 어머니가 얼마나 당황했는줄 알아요? 아. 보셨겠구나. 아무튼 그것 때문에 넌 무조건 신주가 되어야한다고 말을 듣고 교육을 받았고..."

생각해보면 그때가 모든 시작이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신을 볼 수 있는 신주의 아들이었기에 반드시 신주가 되어야 한다며 이것저것 교육을 하고 예법을 익히고 절차를 익히고, 해야 하는 이를 배우던 그때 그 순간을 기억하며 그는 피식 웃음소리를 냈다.

"그래도 무조건적으로 네네 하면서 순종적인것보다는 이런게 좀 더 낫지 않아요?"

/괜찮다아! 편할때 이어주면 그걸로 족해!

525 이름 없음 (mey99Xcd8U)

2021-06-04 (불탄다..!) 20:34:49

>>524

"본녀가 주겠다 해놓고 그런 째째한 짓은 하지 않을테니 염려 마라. 일일히 시끄러운 녀석 같으니. 정녕 그들이 그것을 알아도 난리 칠 이는 거의 없을거다. 애시당초 보이지도 않는 신에게 의지하려 하는 시점에서 문제를 어떻게든 해볼 여력이 남았다는 의미 아니더냐. 정말로 위급하고 궁지에 몰렸다면 신 따위에 의지하지 않는게 인간임을 본녀도 잘 알고 있으니 말이다."

여신은 케이크를 먹던 손도 멈추고 따박따박한 대꾸를 돌려주었다. 장난스레 말하던 그와는 좀 다르게 진지함이 살짝 들어가있었다. 경도의 인간불신 기미가 보이긴 하지만 신이 하는 말이니 그냥 인간을 잘 아는구나 싶을만한 말이었겠다. 손을 멈춘 김에 그대로 턱을 괸 여신은 얄밉게 웃으며 떠드는 그를 빤히 응시했다. 뭐가 그리 즐거운지 실웃음까지 흘리는 그를 보며 지나가듯 말했다.

"네 자식 역시 나를 볼 수 있을거란 보장이 없지 않느냐. 아마 못 볼게다. 본녀를 보지도 못 하며 말도 통하지 않는 아이를 상대로 너와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면, 따끔히 정정해주마. 절대 그렇지 못할 거다."

그의 집안에서 그가 보이는 아이로 태어난게 기적 같은 일이었다면 여신에게도 정말 정말 드문 일인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정확히 말은 하지 않았지만 어쩌면 그가 처음일수도 있었다. 여신이 이곳에 신으로 모셔진 이래 처음으로 소통하게 된 인간일 수도 있는 거였다. 그런 주제 탓인가, 어쩐지 차분해진 여신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당황했어도 금방 기뻐하지 않더냐. 신주 집안에 신을 볼 수 있는 아이가 태어났다고 네 아비가 난리를 떨던게 아직도 눈앞에 선하다. 거기에 결과적으로 신주 일이 너와 잘 맞으니 된 것 아니냐. 네가 받아들였기에 그리 된 것을 너도 알고 있을텐데? 네 그런 성미상 맞지 않는 일을 떠맡았다고 해서 억지로 하지도 않을테고. 그거야말로 네에네에 하며 순종적인 것보다는 나은 셈이지."

본녀가 굳이 말로 하게 만든다며 여신은 다시 한번 그를 못난 것이라 불렀다. 말은 그렇게 해도, 희미하게 입술 끝을 올려 미소를 지었다.

//응! 고맙다 너참치야!

526 이름 없음 (DyV5k1pyw2)

2021-06-04 (불탄다..!) 20:53:20

>>525

"혹시 모르잖아요. 그럼 저는 어디 태어났을 때 볼 수 있을 거라고 누가 예상했겠어요? 일단 절반은 제 피가 흐를텐데 가능성이 제로는 아니잖아요?"

물론 그렇게 말하는 당사자인 그도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냐면 그건 아니었다. 자신처럼 신을 볼 수 있는 케이스가 있었다면 자신의 아버지, 혹은 어머니가 분명히 이야기를 해줬겠지만 적어도 자신은 들어본 적이 없었고 따로 조사를 해도 비슷한 케이스를 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자신은 왜 신을 볼 수 있는 것인가. 그에 대한 답도 알 수 없었다. 그저 우연이자 기적이라고밖엔 설명할 수 없었다.

"애초에 딱히 싫어하지도 않고 괜찮으니까요. 지금처럼 갑자기 심부름 시키는게 아니라면 더 좋을 것 같은데 우리 신 님은 절대 그럴리가 없을테고, 오히려 제가 볼 수 있고 교류를 할 수 있다고 더 신나서 시킬 것 같고. 신력으로 인간처럼 변해서 돌아다니는 그런 것이 좀 더 편하지 않아요? 그것도 금지되어있을 것 같진 않은데."

물론 신은 신 나름대로 사정이 있을테니 굳이 더 추궁하진 않으며 그는 곧 여신의 말에 괜히 소리를 내어 크게 웃으면서 두 눈을 활짝 떠 여신을 바라보면서 괜히 한마디 더 대꾸했다.

"자꾸 못 난 것이래. 진짜 못난 것에게 제대로 대접 받아볼래요? 신사 안 대청소 할 거니까 몇 시간 나가 있으라고 할지도 모른다구요. 아니다. 순종적인 것보다는 낫다고 하니 봐줄게요. 사실 대청소 그다지 하고 싶지도 않으니까."

신사의 크기를 생각해보면 대청소를 했다간 정말 하루종일 해야할 수도 있었다. 영상물에서나 볼법한 대비로 신사 앞을 무한정 쓰는 것부터 시작해서 걸래로 구석구석 닦아내는 것은 그야말로 중노동이었기에 그것은 피하고 싶다고 생각하며 그는 양손으로 깍지를 낀 후에 앞으로 쭈욱 뻗으면서 말했다.

"오래오래 아주 잘 모셔줄테니까 쭉 있어요. 심부름만 좀 줄여주시고. 아무튼 케이크 다 먹고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잘 버려요. 슬슬 들어가서 잠이나 잘건데 더 지시할 일 있어요?"

527 이름 없음 (RkBPUIp4VE)

2021-06-04 (불탄다..!) 23:04:27

>>522

#기다려줘서 미안하지만 자꾸 텀이 길어지고 현생 사정상 여기까지밖에 못 이을 거 같아. 놀아줘서 고마웠어!

528 이름 없음 (VZ9DT4j7jM)

2021-06-04 (불탄다..!) 23:24:35

>>527 아쉽네… 그래도 재밌었어! 현생 일 다 잘 풀리길 바랄게~ 언젠가 또 놀자~

529 이름 없음 (eizg77vJak)

2021-06-05 (파란날) 03:29:01

" ••• 스러져가는 영토의 마지막 여제가 되는 것 만큼, 비참하고도 숭고한 일이 어디있겠습니까. "

노파가 여자의 머리를 빗으며 말했다. 그 손길에 맞춰 백색에 가까운 상아빛 금발이 햇빛에 비추어 아름다운 빛깔을 뽐낸다. 비참하고도, 숭고하다라. 여자가 마주한 거울을 물그럼 바라보며 눈꺼풀을 깜빡였다. 구김 하나 없이 고요한 얼굴이다. 노파가 슬금 여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항상 그렇듯, 심드렁한 얼굴로 손길을 옮겨 여자의 옷매무새를 다듬어주는 것이다. 새하얀 머리칼과, 새하얀 피부와, 새하얀 옷가지들. 온갖 티 없이 맑은 것들로 치장된 그녀가 거울 저편의 자신을 바라본다.

" 우리의 신을 알현하실 준비는 다 되셨습니까. "

'신'. 여자는 말 없이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자신을 부모의 손에서 빼앗아 푸른 첨탑에 가두어 둔 그들은 항상 '신'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주 오래 전, 우리의 신이 찾아와 손수 대륙을 빚으시고 불쌍한 사람들을 먹이시고••• 그들은 항상 똑같은 이야기를 읊고, 매정한 손길로 여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당신은 오직 '신' 만을 위한 성스러운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미소를 지었다.

'신'은, 미바렌의 사람들을 사랑한다고 했다. 그래서 수 천년이 지날 동안 미바렌을 떠나지 않으시는 것이라고. 지극한 사랑으로 우리를 돌보는 것이라고. 그러나 결국 지금의 미바렌은 어떠한가. 황금빛으로 빛나던 과거는 아스라진지 오래다. 점차 황폐해져가는 대륙과, 시도때도 없이 들이닥치는 마족들과, 살 길을 찾아 도망치는 사람들과, '여제'를 믿지 않고 엇나가기 시작하는 지방 영주들. 그는 정녕 미바렌을 사랑한다 말할 수 있는가.

" '그 분' 의 존재를 부정하고 계신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

별안간 노파가 입을 열었다. 여자는 별다른 기색 없이 고요한 얼굴이다. 감정은 그녀에게 허락된 영역이 아니었기에. 여자의 얼굴을 살핀 노파가 말을 이었다.

" 사실, 전대 여제께서도, 그 전대의 여제께서도 처음에는 그 분의 존재를 믿지 않으셨지요. 허나 그분들의 최후는 어떠했습니까. 기꺼이 그 한 목숨을 바쳐 희생하셨지요. 미바렌을 위해, 또 '그 분'을 위해. "

노파가 자세를 낮추어 다시 한 번 여자의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그 분'의 앞에 서기에, 주름 한 점 용서치 않는다는 것이다.

" 이 말이 무엇을 뜻하는 것이겠습니까. "

노파가 허리를 피며 끄응, 하고 소리를 냈다. 허나 아픈 기색 없이 심드렁한 얼굴이다.

" '그 분'의 존재는, 거부할래야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

신을 알현하러 가실 시간입니다. 여자가 거울을 바라보았다. 새하얀 머리와, 새하얀 피부와, 새하얀 옷. 그 사이에서 옅은 녹색 눈동자만이 이질적으로 빛나고 있다.

*

성의 가장 윗층은 여제에게만 허락된 공간이다. 오로지 여제와, 그녀의 '신' 에게만. '신'은 탑의 가장 높은 곳으로 찾아와 자신의 진실된 모습을 드러낸다고 했다. 평소에는 평범한 소년의 모습으로, 병약한 여인네의 모습으로, 새침한 동물의 모습으로 세상을 보살핀다 말했다. •••웃기는 소리. 여자는 그 말을 씹어삼켰다.

여자는 성전 안으로 발을 들였다. 공기가 차갑다. 오랜 시간 생명이 머무르지 않은 듯한 공허한 분위기였다. 생명이 고팠던 바람이 주위로 들러붙듯 모여드는 그 감각에, 그녀의 피부 위로 소름이 끼쳐온다. 쏟아내리는 빛줄기를 향해 몸을 낮추고, 다리를 굽혀 앉고, 차분히 눈을 감아내리며 그녀가 중얼였다.

" 여제 에르바가 신을 뵙습니다. "

그녀는 신을 믿지 않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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