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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음
(/8xYPD6Tn6)
2020-11-15 (내일 월요일) 00:13:19
이 상황극은 5분만에 개그로 끝날수도 있고, 또다른 장편이야기가 될수도 있습니다.(물론 그때는 다른 스레를 만들어주세요.)
아니면 다른 스레의 자캐가 쉬어가는 공간이 될수도 있습니다. 크로스 오버도 상관없습니다.
자유 상황극 스레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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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음
(Lcvzv644Fk)
2021-03-04 (거의 끝나감) 01:19:17
졌다.
평생을 무에 정진하며, 어떻게 하면 상대를 이길 수 있을 지 연구했다.
단순한 싸움이 아닌 관객을 만족시켜줄 그 짜릿한 한 순간을 그려내고 싶어 죽음의 무도를 피범벅이 될 만큼 연습했다.
모래 위에 내 상대의 붉은 피가 뿌려질때마다, 귀부인과 걸인을 가리지 않고 날 위해 뿌려대는 꽃잎과 함성들이 나의 무대, 나의 전장을 장식했다.
그렇게 나는 생사를 건 단 한순간을 매일같이 누려가며 춤추고, 밤에는 나를 원하는 여인의 허리를 붙잡고 춤을 추었다.
그저 춤으로 끝내어, 나의 이 행복한 살육으로 점철된 아름다운 도살장에서의 삶을 끝낼 일도 없었지만.
허나. 지금 나는 졌다.
온 몸에 새겨진 생채기에서 핏방울이 흘러나와 모래 위에 떨어져 뭉쳐있다.
그 피에 젖은 손틈을 벗어난 검이 바닥을 나뒹굴고 있다.
나의 이름을 연호하던 이들은 어느새 내 상대의 이름을 열광하며 부르고 있다.
나를 위해 뿌리던 꽃잎은 이제 저자를 위한 융단이 되어 이 야만스러운 무대를 채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가장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은, 나를 쓰러트린 자 그 자체이다.
나는 나보다 몇배는 더 큰 거한들을 날카로운 일격으로 베어넘겼다.
흉악한 괴물을 연상시키는 이들 앞에서도 냉정을 유지하며 쇼를 승리로 마무리지었다.
허나 내 앞에 서, 승리를 가져간 이는... 그런 부류가 아니었다.
낮의 무대에서는 한번도 볼 수 없었던 자. 있어도 이상할 게 없지만, 없는것이 당연하다 여겨졌던 자.
그래. 그는, 아니 그녀는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위압적이지도, 흉측하지도 않은 아름다운 여성이.
나를 압도적인 무력으로 이기고,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올려다본 하늘은 기분이 나쁘도록 눈이 부셨다.
그녀가 눈이 부셨던 것이라 비유하는 이들을 베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믿을 수가 없어."
생각한 그대로의 말을 꺼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