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6243924> 자유 상황극 스레 2 :: 1001

이름 없음

2020-11-15 00:13:19 - 2021-09-12 23:02:17

0 이름 없음 (/8xYPD6Tn6)

2020-11-15 (내일 월요일) 00:13:19

이 상황극은 5분만에 개그로 끝날수도 있고, 또다른 장편이야기가 될수도 있습니다.(물론 그때는 다른 스레를 만들어주세요.)

아니면 다른 스레의 자캐가 쉬어가는 공간이 될수도 있습니다. 크로스 오버도 상관없습니다.

자유 상황극 스레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161 이름 없음 (YxVS6yTCeY)

2021-01-22 (불탄다..!) 20:16:07

>>160
/응 나도 좋아! 그럼 1:1 관련해서는 조율 스레 가서 마저 이야기하자!

162 이름 없음 (/0kWQvgN96)

2021-01-23 (파란날) 00:24:12

"작은 것아. 네가 어떻게 내 이름을 아는 거냐? 어떻게 내 이름을 말할 수 있는 거지?"


나는 단의 턱에 양 손을 얹었다. 단의 평면에 얼굴을 바짝 들이대면, 그것이 보인다. 날 올려다보면서 목이 터져라 내 이름을 부르짖는 작은 것이.

이런 것들이 꼬이는 건 가끔 있는 일이었다. 대부분은 나의 거처 어딘가에서 꼬물거리며 돌아다니고 있다. 의식도 목적도 없는 것처럼. 그 작은 것들이 눈 앞에서 알짱거리면 그냥 치워버렸다. 어떨 때는 있는 줄 모르고 밟아버릴 때도 있었고, 너무 많이 튀어나오면 그것들이 온 곳을 찾아내 씨를 말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것들은 어디선가 자꾸 튀어나왔다. 작고 꼬물거리는 것들은 어느새 나의 일상에 녹아들었다. 하지만 지금 이건 확실히 비일상적인 사태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믿을 수 없군. 이런 게 가능한 일이었다는 건가?"


혹시나 내가 말하는 것이 녀석에게 나쁜 영향을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는 생각 없이 치워버리곤 했지만 이 녀석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하고 있지 않은가. 이 특별한 녀석은 나의 궁금증과 흥미를 돋우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나는 녀석을 위해 입을 가리고 목소리를 작게 하였다. 과연 이 녀석이 내 말에 대답할까? 나는 너무나 궁금했다.


//코스믹 호러풍의 우주적 존재와 인간이라는 설정!

163 이름 없음 (zHIkqfyK9o)

2021-01-29 (불탄다..!) 09:53:57

성간이동이 상식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시시각각 우주괴물에게 위협받고 있는 이러한 세상에서 당신이 왜 외곽 황무지를 거닐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중요한건 당신의 눈앞에 있던 괴물이 한번에 터져나갔다는것이다.

"어어... 괜찮나? 아니면 그쪽도 나처럼 저놈들 잡으러 온건가? 그럼 사과하지."

아직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큼직한 플라즈마 라이플을 들고있는 중년의 남성이 당신에게 무심하게 말을 걸었다. 당신의 눈앞에서 괴물을 터뜨린건 전혀 신경쓰지 않는 모양새다.

"그건 그렇고 근처에서 이정도 크기의 칼 못봤나? 사실 그거 찾으러 온거라서."

오히려 그런말을 하며 손짓으로 칼의 크기를 가늠해보였다. 손짓을 보아하니 칼의 크기도 플라즈마 라이플만큼이나 큰것같다.

164 이름 없음 (w0Q3yQ2FUU)

2021-01-29 (불탄다..!) 13:43:48

>>163

모두가 세상을 같은 눈으로만 바라보았다면 이렇게나 눈부신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을까. 세상의 가장가는 대세이자 관심의 대상인 존재가 있을지라도, 그림자에 가려진 그 옆 길에 눈을 돌리는 것이 바로 진정한 개척자의 도리이리라. 너무 휘황찬란한 설명이었나? 그렇다면 남들의 눈길이 돌아간 사이 주변에서 노다지를 캐먹으려는 꼼수쟁이, 정도로 그녀를 소개하자.

" 아—, 뭐예요. 기껏 내가 다 잡아뒀더니. "

진심을 담은 야유가 당신을 행해 꽂혀든다. 앳되어보이는 여자는 황무지 바닥에 손을 딛고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는데, 온 몸에 모랫가루를 묻히고 있는 꼴을 보아하니 '기껏 다 잡아두었다' 라는 말은 아마 거짓에 가까웠을 듯 했다. 괴물이 터지는 순간 둥그런 구슬처럼 눈이 커졌으니 아마 괴물을 잡을 깜냥도 되지 못했을테다. 큼, 몸집이 작은 여자가 헛기침을 내뱉자 자잘한 모래알이 풀풀 날아오른다. 모래알을 제법 많이 삼킨 모양이었다. 허나 별 일 아니라는 듯 익숙히 입 안의 모래알을 뱉어내는 모습을 보니, 얼마 안가 황무지에서 얻은 못된 질환으로 요절길을 걸을지도 모르겠다. 앳된 여자가 저와 함께 바닥을 뒹굴던 플라즈마 피스톨 두 정을 집어들었다. 에이씨, 하는 작은 소리와 함께 힘겹게 두 총을 털어내던 여자는 남자의 물음에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인다.

" 혹시 잃어버린 거예요? 안타까워라, 그런 게 황무지를 홀로 누비고 있었다면 벌써 누군가가 훔쳐 팔아버렸을걸요. "

여자가 권총 하나를 힘겹게 허리춤에 꽂아넣으며 조잘댔다. —내가 훔쳤다는 건 아니고. 여자가 반박자 느리게 덕붙였다.

" 젠장. 이러면 뭐 얻어갈 것도 없는데. "

여자가 허리를 숙여 바닥에 떨구어진 괴물의 눈알을 집어들었다. 알 수 없는 점액질이 잔뜩 묻어 무척이나 불쾌했지만, 뭐라도 건져가려면 어쩔 수 없다. 여자는 얼굴을 잔뜩 찡그린 채로 낡고 큼지막한 크로스백에 괴물의 눈알을 챙겨넣었고, 몇 번이나 옷가지에 제 손을 닦아내며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 뭐, 중요한 칼이에요? "

흩날리는 모랫가루에 여자가 한쪽 눈을 찡그리며 물음을 던졌다.

165 이름 없음 (0Da7iAXU.s)

2021-01-29 (불탄다..!) 17:06:56

>>164

'기껏 다 잡아두었다'는 여자의 말을 믿는듯한 표정은 지어보이지 못했지만 여자의 자존심을 위해서라도 믿는다는 말이라도 하기로 했다.

"그... 물이라도 줄까."

별로 효과를 기대할만한 말은 나오지 않았지만.
남자 자신도 그렇다고 생각했는지 짧게 으음, 하는 소리를 내더니 되돌아온 물음에 대답이나 하기로 했다.

"중요하다기 보다는... 없으면 번거로워지지. 일할때 쓰는 물건이니까."

새로 사는데 드는 비용과 적당한 무기를 고르는데 드는 시간, 그것을 다시 손에 익히는데까지 감수해야할 불편함에 대해서는 굳이 설명하지 않았지만 어쨋든 남자에게 있어서는 꽤나 아쉬운 상황이 되어버리는것이다.

"낡은거니까 팔기도 힘들겠지만."

아차, 이러면 훔쳤는지 떠보는것처럼 들리나.
마침 여자가 크로스백에 괴물의 눈알을 챙겨넣는것을 봤으니 그걸로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혹시 찾는거 도와주지 않을래? 찾는동안 나오는 괴물은 다 잡아서 주지."

166 이름 없음 (w0Q3yQ2FUU)

2021-01-29 (불탄다..!) 18:02:25

>>165

" 준다면 고맙게 받죠. "

눈꺼풀을 간질이는 모랫바람을 손으로 휘적이며 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덤덤한 얼굴을 해보였지만, 사실은 어서 깨끗한 물로 까실대는 입을 헹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던 것이다. 여자가 괜스레 제 옷매무새를 다듬고 머리카락을 정돈하며 느긋히 당신이 물을 건네주기만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뭐, 그리 간절한 것은 아니라는 듯한 여유를 피우기 위함이었지만 중간중간 참치 못하고 터져나오는 잔기침이 그녀가 깨끗한 물을 무척이나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여실히 드러낸다.

" 흐음, 그렇구나. "

여자가 시선을 제 크로스백에 처박은 채 가벼운 추임새를 덧붙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남자의 말을 제대로 듣고 있긴 한 것일지 의문스러울 태도였다. 한참이나 제 크로스백을 매만지던 여자가 별안간 고개를 처들며 남자의 눈을 바라보았다. 꼭 고양이처럼 날카롭게 올라간 눈꼬리가, 더욱 가늘어져 남자를 톡 쏘아본다.

" 날 의심하는 건 아니죠? "

흠, 여자가 두 손을 허리춤에 올리며 어깨를 으쓱였다. 아무래도 남자의 제안이 퍽 나쁘진 않았던 모양이다.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리고, 얄쌍한 턱을 문지르며 고심하던 여자가 탁! 하며 제 두 손바닥을 마주 부딪혔다. 결론을 내렸으니 어서 제 말에 집중을 해보라는 신호였다.

" 뭐, 좋아요! 까짓거 도와주도록 하죠. 대신 무턱대고 요란하게 괴물을 잡으면 안돼요. 저런 식으로 잡으면 비싼 값에 팔아먹을 수 없다구요. "

여자가 남자의 뒷편으로 손가락을 치켜들며 어깨를 으쓱였다. 엉망진창으로 조각이 나버린 괴물의 사체였다. 사실 남자보다는 그녀가 아쉬울 처지이긴 했으나 아무렴 당돌한 그 태도는 굽힐 생각이 없어 보인다. 여자가 다시 한 번 제 옷가지에 손을 닦아낸 뒤 악수를 하자는 듯 손을 뻗어냈다. 그리곤 역시나 앳된 얼굴로 맑은 미소를 떠올리며,

" 알리샤예요! "

하고 제 이름을 건네는 것이다.

167 이름 없음 (4kGgSlpWF6)

2021-01-30 (파란날) 11:52:20

>>166

"물정도는 가지고 다니는게 좋다. 처신하는하는법도."

여자의 서투른 허세를 못봐주겠다는듯 사족을 덧붙히긴 했지만, 남자는 자신의 물통을 여자에게 건네주었다. 시원한 물이 꽤 가득 차있는 통을 뚜껑도 따주면서.

"의심하는하는건 아냐. 넣어둘 곳도 없어보이니."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말을 듣는둥 마는둥 하면서까지 챙기던 크로스백을 슬쩍 들여다보려 했지만 의심한다기보다는 단순한 호기심적인 행동에 가까웠다.

"어쨋든, 으음. 도와준다니 고맙군. 잡는방식은 노력해보지."

정말로 노력해야할것 같았는지 들고있던 라이플을 가늠하듯 만져보며 대답했다. '좀 빗맞춰야겠군.' 이라고 중얼거리던무렵 여자가 손을 내밀자 남자또한 장갑낀 손을 내밀고는 가볍게 악수하면서,

"이든이다. 잘 부탁하지."

덤덤하게 자신의 이름을 답했다.

168 이름 없음 (3FZTOZF7oc)

2021-01-31 (내일 월요일) 00:46:15

>>167

" 함부로 물건을 잃어버리고 다니는 분께 들을 이야기는 아니네요. "

여자의 말은 퍽 건방졌다. 허나 그것은 완전히 상대를 깔보는 정도는 아닌, 까칠한 사춘기 청소년의 빈정댐에 가까웠다. 여자가 가볍게 감사 인사를 건네며 물통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적당히 물 한두 모금으로 입을 헹구어낸 뒤, 고개를 돌려 그것들을 뱉어냈다. 여자는 한모금을 더 삼켜낼까 고민했으나 자신만만하게 내뱉은 말이 체면을 쿡쿡 찔러댔던지라 금방 작심하고서는 물통을 남자에게 건네주었다.

" 그렇다면 다행이구요. "

여자가 크로스백을 걸어 잠구며 대꾸했다. 그러다 문득 호기심 가득한 남자의 시선을 느끼고는, 괜스레 가방의 표면을 툭툭 치며 그의 관심을 환기하려 드는 것이다. 실은 그리 소중히 여기는 크로스백의 내용물이라 해보아야, 방금 전 해체된 괴물의 눈알과 같이 죄 징그럽고 몇 푼 안 될 잡동사니가 전부였다. 황무지가 아닌 우주괴물에게 눈길을 돌린다면 몇 푼 어치는 더 얹어 받을 수 있었겠지만, 그녀는 여전히도 황무지가 좋은 모양새였다.

" 별 말씀을. "

여자가 남자의 손을 잡으며 가볍게 흔들었다. 짧은 악수 뒤로 그녀는 살며시 걸음을 내딛어 산만히 걸어대기 시작했는데, 가볍게 뒷짐을 쥐고서 주변을 둘러보는 것을 보니 대강이라도 그 칼의 행방을 찾으려는 심산인 듯 했다.

" 좋아요, 이든. 칼을 어디서 잊어버렸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거예요? 아무래도 그 커다란 칼이 길바닥에서 얌전히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 같진 않고, 누군가가 주워갔을 가능성이 크겠네요. "

탐정이라도 된 듯한 말투였다. 어쩌면 그녀는 오랜 과거에 장래희망으로 탐정을 꿈꾸어 보았을지도 모른다. 터무니 없는 어린 아이의 꿈처럼 느껴질테지만, 황무지에서 괴물의 잔해를 팔아치우는 일보다야 훨씬 생산적이고 건강한 직업이라라. 여자가 산만하게 움직이던 걸음을 멈추었다. 여자의 낡은 신발코가 남자를 곧게 마주본다.

" 칼의 주인은 그쪽이니까, 행선지를 정해요. "

여자가 자신만만한 태도로 말했다.

169 이름 없음 (v5DPhuXKRw)

2021-02-01 (모두 수고..) 09:49:10

>>168

"...그건 잘하는군."

여자를 가리키며 내뱉은 말은 그녀의 빈정거림을 받아치기위함이긴 했지만 그 말을 차마 부정할 순 없다는걸 인정하는 내용이기도 했다.
어쨌건 말이야 맞는말이기에 긴 말은 하지 못한채 물병을 받아들고는 '마셔두는게 좋을텐데.' 하고 딴소리를 덧붙힐뿐이었다.

"생업인건가?"

여자가 가방을 툭툭 치자 아차하는 느낌으로 재빨리 시선을 돌렸지만 결국은 그렇게 물었다. 남자가 보기에도 가방안의 내용물은 그다지 대단치 않았던탓에 오히려 관심을 끌었던것이다.
그러고는 가볍게 주위를 둘러보는 여자의 뒤를 조금 쫒는가 싶더니 금세 시야를 멀리 돌리고 걸음은 거의 멈추다시피했다. 모르긴몰라도 남자가 괴물을 사냥할때도 이렇게 하지 않을까.

"주워갔다면 정말 곤란해지는데. 하긴, 괴물이 삼킨것보다는 나을지도 모르겠군. 운이 나쁘다면 괴물잡다 칼까지 잡을수도 있으니."

여자의 추리에 대답하는 모양새는 탐정의 질문에 대답하는 의뢰자와도 닮아있었다. 남자가 그 사실을 눈치챌락말락 할무렵 남자를 마주보고 던진 질문에 흠, 하고 새까만 눈동자를 굴리더니 여자와는 반대로 자신없는 떨떠름한 태도로 대답했다.

"여기 어디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미 행선지를 골랐다가 실패했다는 이야기다.

170 이름 없음 (ehJYfl3IUg)

2021-02-10 (水) 00:56:56

몰래 너한테 카톡 하나 보내놓고 빠져나왔다. 주는대로 다 받아마신 덕에 잠깐 바람쐬고 온다는 핑계에도 막는 사람이 없었다. 바깥은 춥고 바람은 씽씽 불고 술 깨기엔 딱 좋은 환경이다. 웬만해선 나오고 싶지 않은 날씨이기도 했다. 건물과 건물 사이 틈으로 들어가 보냈던 카톡을 쳐다봤다. 이제야 1이 사라진다.

[우리 잠깐 얘기 좀 해]

이제야 1이 사라진다. 너무 심각해보이는 것 같아서 뒤늦게 하나 더 보냈다.

[1분만 더 있다가 나와!]

그리곤 주머니에 휴대폰을 쏙. 차가운 공기에 손끝이 어는 것 같아 손도 넣었다. 조금 더 기다리니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빼꼼 내미니 네 얼굴이 보였다. 조용히 손짓해 너를 불렀다. 이제 우리는 마주보고 서 있고 나는 오랫동안 미뤄둔 말을 할 차례였다.

"우리... 그만하자."

네 눈을 보고 있는데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게 느껴졌다. 잠깐만, 이거 아닌데! 눈물까지 날 정도로는 아니었는데! 주머니 속 손을 꺼내 뺨을 문지르다 외쳤다.

"나 너랑 비밀연애 못하겠어!"

큰일났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설상가상으로 목소리까지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애들이 너 애인 없는 줄 알고 맨날 소개팅 끼워넣으려고 하는 것도 싫고, 누구한테 너 번호 따일 뻔 했다는 얘기 듣는 것도 싫었어. 또, 아까 네 옆에 있던 애! 걔 완전 너한테 관심있는 것 같단 말이야......."

허엉—. 멍청한 소리까지 났다. 진정해보려고 애쓰지만 계속 훌쩍거리게 됐다.

"진짜 짜증나......."

중얼거리곤 양손에 얼굴을 묻었다. 다 쏟아내고 났더니 눈물은 멈췄는데 뒤늦게 밀려오는 쪽팔림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171 이름 없음 (Xxgeuw/5Ro)

2021-02-10 (水) 01:02:07

"대체 왜 제물이 필요없다는데 계속 제물을 바치는거야? 인간 녀석들은."

온 몸이 붉게 물들어있는 거대한 드래곤은 자신이 살고 있는 동굴 앞에 놓여있는 제단을 바라보며 짜증을 냈다. 이전에 직접 마을로 내려가서 불을 뿜으며 제물은 필요없다고 그렇게 화를 내면서 이야기를 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또 인간이 제단 위에 앉아있었기에 드래곤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그 커다란 주둥이에서 한숨을 내쉬었다.

"이름 모를 인간아. 제발 돌아가. 좀 돌아가. 부탁이니까 제발 돌아가서 너네 마을 사람들에게 제물은 바치지 좀 말라고 해. 너도 잡아먹히는건 싫을 거 아냐. 나도 인간을 잡아먹고 싶지 않으니까 제발 돌아가."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 이야기하는 것이 이런 일이 한두번이 아닌 모양이었다. 앞발을 들어 훠이훠이 휘두르자 절로 작은 바람이 불었다. 세 번 그렇게 휘두른 후에 앞발을 내려놓은 드래곤은 고개를 내려 인간과 눈을 마주하려고 하며 다시 말을 걸었다.

"아니면 그렇게 하지 마라고 해도 인간을 제물로 바치는 이유가 있어? 있다면 좀 들어나보자. 그래야 다음에 내려가는 일이 있을 때 나도 뭐라고 이야기라도 하지."

/제물로 바쳐진 인간에게 드래곤이 제발 필요없으니까 돌아가라고 하는 장면이야. 제물인 인간 설정은 자유롭게 해도 괜찮아!

172 이름 없음 (UPENSJ6d/c)

2021-02-10 (水) 02:41:05

>>170
"...그래, 그럼 여기까지 하자."

착잡했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이 친구가 비밀 연애에 따라준 것은 내가 원했기 때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거다. 저렇게 말하는 걸 보면 억지로 한 거겠지. 소개팅 이야기도, 번호를 달라는 요청도 늘 단칼에 거절해왔고, 옆에 앉은 아이와도 일정 거리 이상 다가오지 않게끔 처신했다. 그런 걸 생각하면 억울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거다. 받아들여야만 하는 일이었다. 좀 더 분명하게 말하자.

"네가 공개 연애를 하고 싶어하는 거, 잘 알겠어. 그럼에도 난 공개연애를 할 수 없어. 누가 됐든, 한 쪽이 일방적으로 희생해야 하는 연애는 더 하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헤어지자. 이게 내 입장이야."

쓰라리지만, 더 곪기 전에 해야 하는 일이다. 내가 됐든, 저 애가 됐든, 일방적인 희생이 필요한 연애는 하는 게 아니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으며 고개와 시선을 상대에게로 단단히 고정했다.

173 이름 없음 (almNz4YAw2)

2021-02-10 (水) 02:51:51

>>171
붉은 드래곤이 살고 있는 동굴 앞에 놓여있는 제단에는 한 소녀가 다소곳이 무릎을 꿇고 앉아있었어요. 옅은 갈색 피부에 색이 바랜 은빛 머리칼, 탁한 보랏빛 눈동자를 가진 소녀는 애티가 나는 얼굴에 어울리지 않게 착 가라앉은 얼굴을 하고 있었답니다. 드래곤이 앞발을 휘둘러 바람을 일으키자 가맣게 때가 탄 얇은 원피스가 바람에 나부껴 팔다리의 멍자국이 언뜻언뜻 비쳤어요. 작은 손으로 치맛자락을 꼭 쥐고 있던 소녀는 가까이 다가온 드래곤의 콧잔등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습니다.

"사람들이 제물을 바치는 이유는 저도 몰라요. 그리고 누가 시켜서 온 거 아니에요. 저는 천하게 태어나서 제물로 바쳐지기 위해 키워졌어요. 드래곤 님이 제물이 필요 없다고 해서, 이제 더 이상 제물이 될 필요가 없어졌다 해도 앞으로 제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제물이 되는 것 말고는 살아있을 의미도 가치도 없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저를 잡아먹어 주세요."

174 이름 없음 (Lcf3hFAW06)

2021-02-10 (水) 04:07:12

>>170

[알았어]
[곧 갈게]

그 사람이 보내는 메세지는 길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그는 말이나 글로 자기 생각을 길게 표현하지 않았다. 천 가지 감정과 만 가지 경우를 헤아려도 혀 끝이나 손 끝으로 내놓는 말은 그렇게 길지 않았다. 그러나 그 길지 않은 말들은 항상 당신에게 서투나마 다정했다. 지금도, 그는 감정이 잘 드러나지 않는 얼굴 아래로 초조한 기다림을 숨기고 있다가 당신을 찾아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불쑥 내놓은 그만하자, 라는 그 말에, 그 감정이 옅어 조각같은 얼굴에도 선명하게 가슴을 옥죄는 경악이 번져가는 게 보였다. 순간 가슴이 칼에라도 찍힌 것처럼 턱 멈춰버린 호흡을 고르는 소리가 찬바람 사이로 먹먹했다. 그러나 그가 경악을 덜어내고 호흡을 고르는 데에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당신이 차마 양손에 파묻은 얼굴을 들지 못하고 있을 때, 당신의 손끝에 와닿는 게 있었다.

" 자. "

하는 목소리와 함께 당신의 손끝에 닿아오는 그것은 주머니 속에서 따스하게 잠들어 있던 부드러운 손수건이었다. 그 사람은 언제까지고 담담하게 상냥했다. 그것은 당신의 손끝에서 묵묵히 기다려줄 것이다. 그것을 받아들고-혹은 뿌리치고 나면, 이어 나직한 목소리가 다가오겠지.

" 네가 어떤 마음으로 그런 말 하는지 나도 잘 알아. "

당신이 거부없이 넙죽넙죽 받아마신 술잔들 중에는 분명히 사심이 담긴 것들도 있었을 것이다. 다른 이들에게 '애인이 없다' 고 인식되어 있는 건 그뿐만이 아니라 당신도 그랬다. 표현하지 않을지라도, 그 속에 쌓여가는 생각들은 당신과 똑같았다. 그렇지만 그런 생각이 아무리 많이 쌓여도, 그는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 그래서 그런 거 다 거절하고 있어. 말했잖아. "

그는 담담한 얼굴로 나직하게 말했다. 일견 무뚝뚝하게 들리는 말이었지만, 찬 바람을 가로질러 와닿는 그 말은 분명히 따뜻한 것이었다.

" 난 너 아니면 싫다고. "

그 사람은 잠깐 주변을 휘휘 둘러보았다. 확실히 아무도 없다. 이 틈새에는 당신과 그 둘뿐이다. 그는 당신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코트 앞섶의 단추를 풀고는 당신에게 품을 벌려보였다. 무거운 이야기를 하려면 진정할 시간이 필요했다.

175 이름 없음 (Lcf3hFAW06)

2021-02-10 (水) 04:08:30

/ 앗... 새벽에 잇는 사람이 없으리라고 생각하고 느긋하게 다른 일 하면서 천천히 잇고 있었는데 다른 사람이 이을 줄은 몰랐네. 확인하지 않고 레스 작성해서 미안해. >>174는 스루하거나, 원 레스를 작성한 참치가 좋을 대로 처리해줘.

176 이름 없음 (Xxgeuw/5Ro)

2021-02-10 (水) 09:33:57

>>173

"이젠 하다하다 제물로 바칠 용도로 동족을 키우는 일까지 일어났다 이거야?"

소녀의 말을 들은 드래곤은 참으로 어이가 없다는 듯이 벙찐 표정을 지었다. 제물은 필요가 없다고 그렇게 인간들의 마을에 내려갈 때마다 말을 하고 위협을 했는데 대체 어쩌다가 자신에게 바칠 용도로 키우는 인간이 생기는 일이 일어난건지 드래곤은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조만간에 또 마을에 내려가서 더 크게 위협을 해야겠다고 생각하지만 일단 그보다 먼저 해결해야 할 것은 제발 자신을 잡아먹으라는 인간 소녀를 돌려보내는 일이었다.

"왜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어? 이름 모를 인간인 네가 어떻게 자랐는진 모르겠지만 너도 살면서 하고 싶은 것이 한둘 정도는 있었을거 아냐. 보아하니 그 마을 인간 놈들에게 맞기라도 한 것 같은데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다른 마을에 가서 살면서 네가 하고 싶은 것이라도 해."

인간인 이상, 정확히는 생명체인 이상 아예 하고 싶은 것이 없진 않을 거라고 생각하며 드래곤은 그 욕구를 자극하려는 듯 그렇게 이야기했다. 허나 그렇게 되면 이 소녀가 마을에 돌아가서 말을 전할 수 없을테니 조금 귀찮겠다고 생각하지만 팔다리의 멍으로 보아 돌아가봐야 도망쳐왔다고 또 폭력에 시달릴지도 모를 일이니 멍자국 때문에라도 마을에 돌아가라고 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냥 내가 마을에 내려가서 더 이상 제물 좀 바치지 말라고 할테니까. 집이라도 하나 불태워버리면 될까. 아. 좋은 생각이 났어. 너에게 가장 폭력을 행사한 집이 누구지? 그 집을 불태워줄게. 연약하고 힘도 그리 강하지 않은 이들 주제에 제물로 바치겠다고 동족을 키우고 폭력까지 행사하다니. 널 잡아먹는 것보다 그 자의 집을 불태우는 것이 더 유익하겠네."

177 이름 없음 (almNz4YAw2)

2021-02-10 (水) 12:47:36

>>176

어쩌면 제물이라는 것은 핑계였을지도 몰라요. 산 아랫마을에는 몇 년에 한 번꼴로 외모가 다르게 태어나는 아이들을 액받이라고 해서, 견딜 수 없는 고통과 슬픔을 끊임없이 주고 나이가 차면 자연에게 바친다는 둥 허울좋은 구실로 처리해버리는 풍습이 있었답니다. 점점 드래곤의 위협이 강해지니 더 이상 그의 심기를 거스를 수 없는 인간들은 액받이를 처리할 다른 방법을 찾기로 했다나 봐요. 자세한 사정은 드래곤도 소녀도 잘 몰랐겠지만요.

"다른 마을이 있다고 들어는 봤지만, 제가 거기 가서 뭘 할 수 있겠어요? 나 같은 아이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미워한다고 했단 말이에요. 거기 가서도 미움만 받게 될 거야.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아요."

소녀는 너무 많이 울어서 더 이상 눈물이 나오지 않는 사람만 지을 수 있는 표정을 하고 있었어요. 세상을 모두 내려놓은 것만 같았죠. 해보고 싶은 건 많았지만 이루어질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태연히 그렇게 이야기했어요. 그리고 이어지는 드래곤의 말에 유약하게 고개를 저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제물은 바치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나 때문에 마을을 공격하면 괜히 드래곤 님만 미움받을 거야. 지금도 내가 도망쳐서 사람들이 찾고 있어요. 마을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잡히면 어떻게 될지 상상도 하기 싫어. 그러니까 그냥 이대로 잡아먹어주세요."

/잇다 보니까 이런저런 설정이 붙었네. 생각했던 설정이 아니라 잇기 어려우면 살짝 말해줘!

178 이름 없음 (Xxgeuw/5Ro)

2021-02-10 (水) 13:47:45

>>177

대체 얼마나 마을 사람들에게 험한 꼴을 당했는지 도저히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드래곤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로 죽음을 각오하고 있다는 것은 둘째치더라도 그 원인이 아무리 생각해도 숭고하고 고귀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 더욱 드래곤으로서는 마음에 들지 않은 일이었다.

"너 같은 인간은 대체 무슨 인간이지? 내 눈에는 너나 마을의 다른 인간들이나 별 차이가 없어. 아니. 오히려 번거롭고 귀찮게 하는 것은 판박이네."

제발 자신을 잡아먹어달라고 하는 것 같은 소녀의 말에 드래곤은 듣기도 싫다는 듯이 두 앞발을 들어 자신의 머리에 붙어있는 귀를 막았다. 그 상태에서 시선은 마을이 있는 방향으로 향했다. 도망쳐서 사람들이 찾고 있다는 것으로 보아 제물이 아니라 스스로 여기에 왔다는 이야기 같았기에 드래곤은 흥미롭다는 듯이 웃음소리를 냈다.

"아무튼 인간아. 네 말에 따르면 겁도 없는 마을 사람들이 이곳으로 올 수도 있다는 이야기겠지? 잘 됐네. 마을까지 내려가지 않고 위협을 해서 더 이상 쓸데없는 짓을 하지 않게 할 수 있겠어. 제물을 바치지 않을 거라고 말을 하지만 그래도 확실하게 한 번 더 말해서 더 이상 이따위 쓸모없고 처리하기도 힘든 일을 못하게 만들어야겠어. 미움이라고 했니? 인간에게 미움을 받는게 두려워할 것 같아?"

할테면 해보라는 듯이 드래곤은 하늘을 향해 거대한 불꽃을 내뱉었다. 하늘 높게 날아오른 불꽃은 높게 높게 저 멀리 날아가다 사르륵 공기에 녹아내리듯이 사라졌다.

"이름 모를 인간아. 나는 인간을 잡아먹는 것보다 멧돼지나 곰을 잡아먹는 것을 더 좋아해. 그 사냥감들도 약한 객체가 공격받으면 강한 객체가 목숨을 걸고 덤비는데 너희 마을 사람들이란 것들은 오히려 약한 동족을 괴롭히고 제물로 바치기 위해서 키운다고 하니 그 사냥감들보다 못한 녀석 같은데 그런 이들 때문에 죽은 것은 억울하지 않니?"

/아니야! 전혀 어렵지 않아!

179 이름 없음 (almNz4YAw2)

2021-02-10 (水) 15:42:44

>>178

소녀의 여리고 매끄러운 갈색 피부는 여름에 가장 빛나는 나무를 닮았고, 색이 바랜 은빛 머리칼은 이른 새벽녘 서늘한 공기의 색을 머금었습니다. 모두 밝은 피부에 어두운 머리색을 가진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른 것들이었죠. 드래곤의 눈에는 다 똑같은 인간으로 보이겠지만 인간들은 그렇지 않았어요. 어딘가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소녀와 같은 이들은 무언가 특별한 존재들이어서 보통의 인간들이 시기하고 질투해 괴롭힘을 당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몇몇 간악한 인간들은 그런 사실을 꽁꽁 숨겨왔고요. 그럴 수 있는 힘만 있었다면 이 커다란 드래곤도 없애버리려고 했을 것이 인간이라는 족속입니다. 자신들보다 강하고 특별한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용납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 인간이라는 말입니다.

드래곤이 하늘을 향해 거대한 불을 뿜어내자, 그것을 보고 깜짝 놀란 소녀가 어깨를 움츠렸어요. 지금까지는 드래곤이 소녀에게 호의적이어서 두려운 티를 내지 않고 참아낼 수 있었지만 저렇게 불을 뿜는 모습은 역시 무섭거든요. 하지만 멀리까지 날아가서 사르르 녹아내리듯 사라지는 불꽃을 바라보는 소녀의 탁한 보라색 눈동자가 반짝 빛났습니다.

"미움을 받는 것은 슬픈 일이에요. 아무리 사람들이 드래곤 님을 해치지 못하더라도 미움을 받으면 마음이 외롭고 아프잖아요. 몸이 다치는 것보다 마음이 다치는 게 더 아프고 괴로워요. 그리고 당연히 억울하죠. 나도 사랑받고 싶었고, 행복하고 싶었어. 하지만 어쩌겠어요. 나는 이렇게 태어났는걸. 어차피 다를 거였다면 나도 드래곤 님처럼 강하게 태어났으면 좋았잖아."

소녀는 울지도, 웃지도 않았어요. 당연한 일이라는 듯이 그저 담담한 얼굴로 드래곤을 올려다볼 뿐이었습니다.

180 이름 없음 (Xxgeuw/5Ro)

2021-02-10 (水) 16:17:06

>>179

드래곤의 눈에 소녀는 참으로 딱한 이로 비쳤다. 당연히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적어도 동족에게는 사랑받을 수 있고 그 삶이 행복할 권리가 있는데 그녀는 그 당연한 것조차 누리지 못하고 있었으니 어떻게 딱하지 않을 수 있을까? 대부분 제물로 올라온 이들은 살려달라고 하기 바빴기에 너무나 담담한 그녀는 드래곤에게 있어 딱함과 동시에 신기한 존재였다.

"사냥감보다 못한 그 인간들의 애정 따위는 받을 마음 없어. 애초에 네가 뭐라고 한들 나는 널 포함해서 인간들을 잡아먹을 생각 따위 없어. 솔직히 이야기해서 드래곤들에게 있어 인간 고기는 정말로 먹을 것이 없을 때 고민고민하다가 어쩔 수 없이 먹는 것에 지나지 않거든. 이 근처에 먹을 것이 그렇게 많은데 왜 내가 굳이 맛도 그다지 없는 인간을 잡아먹어야 하는건데?"

자신에게 있어선 맛도 없고 그리 좋아하지도 않는 것을 먹으라고 제물로 바치는 것이었기에 정말로 마음에 들지 않는지 드래곤은 한숨을 크게 내쉬며 절대로 잡아먹지 않겠다는 듯이 거센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말이 끝나자 드래곤은 앞발을 뻗어 저쪽 방향을 손으로 가리켰다.

"제물로 바쳐진 인간들 중에선 저쪽 방향에 있는 조금 멀지만 다른 마을로 가는 이도 있었어. 그 마을로 가서 도움이라도 받아보는 건 어때? 억울하다는 것은 곧 살고 싶다는 이야기잖아? 그렇다면 드래곤에게 잡아먹어달라고 부리는 용기를 다른 마을에서 살고자하는 마음으로 바꿔서 살아봐. 드래곤이 먹지 않고 풀어줬으니 넌 제물이 아니아 자유야. 뭘 해도 좋다는 이야기야. 마을 사람들이 무서워? 아무리 무섭다고 한들 드래곤인 나보다 무섭진 않잖아?"

소녀를 지나 드래곤은 앞으로 저벅저벅 걸어간 후에 마을로 내려가는 길목을 바라봤다. 저기로 날아가면 사람들이 있을까? 있다면 쫓아버리겠다는 듯이 드래곤은 입에 불꽃을 머금었다.

"이 세상에 살아있는 이상 너도 사랑받고 행복할 자격이 있어. 동족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제물로 바치려는 그놈들은 얼굴만 인간이지, 속은 괴물이야. 너는 괴물이 아니라 인간이잖아? 그러니까 제물로 올라와서 제발 잡아먹어달라고 귀찮게 하지 말고 네가 살고 싶은 삶을 직접 만들어봐. 자유잖아. 한번만 더 잡아먹어달라고 하면 강제로 물어다가 다른 마을에 버리고 갈 거니까 물려가기 싫으면 네 발로 직접 걸어가."

181 이름 없음 (almNz4YAw2)

2021-02-10 (水) 18:00:51

소녀에게는 용기를 가지고 살아라는 말, 너도 사랑받고 행복할 자격이 있다는 드래곤의 말이 너무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따뜻한 말을 들은 것이 처음이라서 더 기쁘고 아프게 느껴졌죠. 소녀는 가만히 앉아서 드래곤이 해주었던 말을 몇 번이나 곱씹었습니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지만 가슴이 따갑고 시려워서 입술을 꾹 깨물었어요. 그래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소녀는 자유보다는 안정을 바랐어요. 하지만 드래곤은 이미 떠나라고 말했는데 여기서 지내게 해달라고 떼를 쓴다면 그에게마저 미움을 받아버릴 거라고 생각했어요. 더구나 제 앞을 지나쳐간 드래곤이 다시는 이쪽을 봐주지 않을 것처럼 돌아서 있어서 조금은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했답니다.

조용히 제단에서 일어난 소녀는 드래곤이 가리켰던 곳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드래곤이 사람들을 잡아먹지 않고 놓아주었는데 여태까지 마을에 돌아온 사람이 한 명도 없는 이유는 그의 말대로 모두 다른 마을로 갔기 때문일까요. 마을로 돌아오는 길에 산짐승에게 잡아먹히거나, 산적을 만나 몹쓸 짓을 당한 사람들도 분명 있었을 거예요. 끝까지 살아서 다른 마을에 가더라도 똑같이 미움을 받거나 누군가의 노예가 되어 불행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겠죠. 과연 소녀는 어떤 길을 걸어가게 될까요. 아마도 앞서 말한 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을 거예요. 소녀에게 주어진 것은 그저 최악과 차악만이 남은 불운한 선택지뿐이로군요. 어쩌면... 죽음으로 행복을 찾을 수도 있겠죠.

소녀는 드래곤이 해주었던 따뜻한 말의 여운만을 가슴에 품은 채 다른 마을이 있는 방향으로 미련 가득한 느린 발걸음을 떼어놓았습니다. 그리고 나무가 울창한 숲길로 들어서기 직전에 문득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았어요. 소녀가 바라보는 곳에는 온몸이 붉게 물들어있는 거대한 드래곤 한 마리가 우두커니 서있었습니다.

"고마워요. 안녕."

소녀의 작은 목소리는, 불어오는 산바람을 타고서 드래곤에게 전해졌을까요.


//더 이어볼까도 했는데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아서 막레로 가져왔어. 짧았지만 정말 즐거웠구 고마웠어! 편안한 설 연휴 보내고 항상 행복하고 건강해야 해 참치야!

182 이름 없음 (Xxgeuw/5Ro)

2021-02-10 (水) 18:44:56

>>181 막레 잘 받았어! 깔끔하면 깔끔한 마무리로구나! 사실 소녀에 대한 이야기가 조금 더 궁금해서 1:1을 제안해볼까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저렇게 끝을 내면 아무래도 더 이을 여지가 없을 것 같기도 해서 애매하긴 하네.
아무튼 참치도 설 연휴 잘 보내고 행복해라!

183 이름 없음 (almNz4YAw2)

2021-02-10 (水) 20:03:33

>>182 사실 소녀의 이야기는 상판에서 풀기엔 너무 어두워서 여지를 남기지 않고 끝맺었다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해볼게! 우리 드래곤은 정말 드래곤스러워서 돌리는 내내 즐거웠어. 그럼 즐상판 되구 담에 어딘가에서 또 만나!

184 이름 없음 (sTSQy7mAU.)

2021-02-16 (FIRE!) 00:31:29

오후의 햇살이 스며드는 한적한 숲길에서 두 사람의 목소리가 도란도란 울린다. 성인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한 어린 티가 나는 목소리가 힘을 주어 신신당부를 하니, 장난기가 묻어나오는 낭랑한 목소리가 장난스레 대답한다.

"아시겠죠, 솔레이 님? 이번에는 꼭, 꼭! 정해진 일정대로 움직이셔야 돼요. 아셨죠?"
"알겠어, 큐브. 그동안 고생시켜서 미안~ ...그래도 추가 근무수당은 꼬박꼬박 줄건데 조금만 봐주면 안될까?"
"....."

큐브라 불린, 신신당부를 하던 가무잡잡한 피부에 보라색이 도는 검은 머리카락과 검은 눈동자의 하인이 대답 없이 빤히 바라보자, 장난스럽게 말하던 살구색 피부와 주황빛 머리카락, 푸른 눈동자의 큼지막한 몽둥이를 등에 맨 용사, 솔레이는 식은 땀을 흘리며 아하하, 하고 웃었다.

"농담이야, 농담. 이번엔 절대 딴길로 안 샐게, 약속!"

그제서야 큐브는 인상을 풀었지만, 몇번이나 일정이 어긋났던 일이 생각났는지, 큐브는 기어이 잔소리보다는 우는 소리에 가까운 투로 쫑알거리기 시작했다.

"지체되는 것도 안돼요! ...진짜 어쩔 수 없는 경우에는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웬만하면 지체되지 않게 해주세요. 세멜레 님께 보고드리는 건 제 몫이란..."
"...큐브, 저것 봐!"

솔레이는 큐브의 잔소리를 들으며 주변을 살피다,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큐브의 말을 자르고 어딘가를 가리켰다. 제 우는 소리를 끊어버린 솔레이를 원망스레 바라보던 큐브는, 솔레이의 손끝이 가리키는 방향을 보고 두 눈을 크게 떴다. 그 곳에, 작은 몸집의 사람이 쓰러져있었다. 솔레이는 조심조심 쓰러진 사람에게로 가까이 다가갔고, 큐브가 급히 그 뒤를 따랐다. 솔레이는 엎어져 있는 이를 조심스레 바로 누이고, 자세히 살폈다. 색이 바랜 은발에 옅은 갈색 피부를 가진 어린 소녀였다. 팔다리에는 조난으로 인한 것이라기에는 부자연스러운 멍자국이 있었고, 두 눈은 힘없이 감겨져 있었지만 코 밑에 손을 가져다 대니, 희미하게나마 숨결이 느껴졌다. 소녀의 상태를 살핀 솔레이는, 좀 전과는 달리 진지한 표정으로 큐브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큐브, 추가 수당은 얼마든지 줄게. 이 아이 좀 봐줄 수 있어?"

큐브는 어쩔 수 없이 또 지체되겠다는 예감에, 반쯤 해탈한 얼굴로 아이의 앞에 쪼그려 앉아 아이에게 손을 향하고 주문을 외었다. 아이의 팔다리에서 멍자국이 사라졌지만, 아이는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이에게 향했던 손에서 빛이 사라지자 큐브는 솔레이에게 말했다.

"외상과 내상은 나았지만 깨어나려면 좀 걸릴 거예요. ...이 곳에서 야영을 하면서 기다릴 수밖에 없을 텐데... 그렇게 하실 거죠?"

"역시 큐브야, 나를 잘 아는구나!" 부러 너스레를 떨어봤지만, 돌아오는 싸늘한 시선에 솔레이는 멋적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미안, 여기 추가 수당. 치료 마법이랑, 하루 정도 지체될 거니까... 자! ...늘 고생시켜서 미안해."

솔레이가 추가 수당을 담은 돈 주머니를 건네며 머쓱하게 사과하자, 큐브는 그것을 받아들고 가방에 넣으며 반쯤 포기한 듯한 투로 대꾸했다.

"하루보다 더 지체되지만 않게 해주세요... 깨어나면 이야기를 들어보고, 가능한 한 신속하게 아이가 가야 할 곳에 아이를 맡기고, 목적지로 가는 거예요."
"당연하지! 고마워. 그럼 나, 불 피울 거 좀 모아올 테니까, 이 아이 좀 부탁할게!"
"예에."

큐브가 아이를 여분의 침낭 안에 뉘여놓는 사이, 솔레이는 떨어진 나뭇가지를 주워와 쌓아두고 불을 피웠다. 모닥불에 불이 붙자, 냄비와 물, 향신료, 전에 들렀던 마을에서 구입한 채소와 여행길에 잡았던 들짐승의 고기를 꺼내 식사준비를 하는 사이 날이 저물어가고, 고기와 채소, 향신료의 향이 어우러져 맛있는 냄새가 풍길 즈음 날이 완전히 어두워졌다. 스튜가 눋지 않도록 힘차게 저으며 솔레이가 말을 꺼냈다.

"거의 다 되어가는데, 슬슬 일어나주면 고마울 텐데 말이야."
"그럼 좋겠지만, 아무래도 저희가 발견하기 전에 큰 일을 당한 것 같으니까요. 아이 여차하면 아이 몫은 남겨뒀다가 데워서 주던가 하죠."
"음, 그래야겠네."

185 이름 없음 (TJfyTvQYmw)

2021-02-18 (거의 끝나감) 10:57:38

ㄱㅅ

186 이름 없음 (i1L3TcDbbQ)

2021-02-20 (파란날) 19:20:20

"이모~ 여기 국밥 특으로다가 든든~하게 하나 말아주시고, 보통 하나 포장해 주세요. 그리고 참이슬 빨간 거 하나요."

...
"그래서, 퇴근하고 저녁 약속을 잡았는데 메뉴를 주문하기도 전에 까였다고요?"

"아 ㅋㅋ 선배 제가 말했잖아요. 과장님 눈 엄청 높다니까. 그 잘생긴 얼굴에 과장도 일찍 달아놓고 왜 아직까지 결혼을 안 했겠어요?"

"게다가 선배는 벌써 낼모레 서른… 아! 알았어요. 미안, 미안해요. 그만 울어요… 자. 여기 물티슈요. 눈 좀 닦으라고요. 자기가 팬더야 뭐야."

화장 안 하는 게 더 예쁘다니까…
"…네?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아. 나왔다. 천천히 들어요. 뜨거워."

후배는 선배 쪽으로 그릇을 밀어놓고 가만히 제 잔을 채웠다.

187 이름 없음 (fqhgfpbMs6)

2021-02-20 (파란날) 20:12:02

>>186
한바탕 울고 나니 머리가 식었고, 결혼 소리에, 낼 모레 서른 소리에 재차 삼차 기분이 가라앉았다. 과장님이 나와 같은 마음인 경우에도 별로 행복하진 않았을 지도 모른다는 깨달음 덕분이었다. 덕분에 미련이 씻은 듯 내려갔다. 한참 후배 앞에서 눈물을 보였던 것도 창피했고. 눈물을 닦는데, 화장 안 한 게 더 예쁘다니 하는 소리를 희미하지만 똑똑하게 들었다.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과장님이 이런 기분이셨구나. 마음이 잘 맞는 후배인 줄 알았더니 알고 싶지 않은 것을 알아버린 기분에 애석했지만, 이것 또한 내 잘못도 저 친구 잘못도 아니라는 생각에 고맙다, 라고만 대꾸하고 말없이 국밥을 떠먹었다. 술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맨정신으로 해야 하는 말이 있으니까. 그릇을 깨끗이 비우고, 목을 가다듬은 뒤 말했다.

"국밥 고마워요, 이야기 들어준 것도. 근데 다음엔 이러지 않아도 돼요. 과장님께도 일에 지장 안 가게 하겠다고 말씀드린 참이라."

까였는데 뭐 어쩌겠어, 단념하고 밥줄 붙잡아야지. 눈물 나는 거야 심정적인 거고. 그건 그렇고, 이것보다 더 중요한 이야기가 있지.

"그리고 아무 말도 안했다고 둘러댈 거면 좀 더 작게 말하는 게 어때요? 다 들렸거든요. 무슨 내용이었는지 굳이 말하지 않겠지만, 확실히 정리하고 싶은데... 어느 쪽인지 직접 말해줄 수 있어요?"

어느 쪽, 이라고 뭉뚱그렸지만 맥락이 있으니 뭔 소린지는 알겠지. 기왕이면 부장님과 그랬던 거처럼 허심탄회하게 풀고 싶긴 했지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니 어떤 대답을 하든 나는 나대로 선을 지켜야겠다.

188 이름 없음 (YK8WiHwG1s)

2021-02-20 (파란날) 22:59:45

>>187
뜬금없이 걸려온 전화에 고민 없이 달려 나왔고, 선배가 과장님과 잘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내심 기뻐했다. 속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장난스러운 태도로 말을 이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따끔한 죄의식뿐이다. 선배가 배를 채우는 동안 말없이 술잔을 채우고 비우기를 반복했다. 애매하게 반쯤 채워진 마지막 잔을 앞에 두고, 그릇을 깨끗이 비우고 운을 떼는 선배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다음엔 이러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가슴이 뜨끔하다. 확실히 정리하고 싶다는 말에는 목구멍이 턱 막힌다. 뺨이 얼얼해지는 것은 비단 술기운 때문만이 아니다. 매번 이런 식이다. 나를 바라봐 주길 바라면서 먼저 다가갈 용기는 없고, 관계가 깨어질까 두려워서 무던해 보이려 애를 쓴다. 지금처럼 중요할 때에는 솔직하게 말하지도 못하면서. 묘하게 선을 긋는 듯한 선배의 태도에 평소처럼 너스레를 떨 분위기가 아니라 입술이 쉬이 떨어지질 않는다. 벼랑 끝에 내몰린 기분이다.

"저, 선배 좋아해요."

이것 말고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선배도 알고 있지 않았냐는 둥의 사족은 붙이지 않았다. 하필이면 이런 국밥집에서 취중고백이라니, 꼴사납다. 물론 조금도 취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결국 시선을 피하며 남은 술을 입에 털어 넣었다.

"먼저 나가있을게요."

대답을 듣기도 전에 도망치듯 자리를 일어나 계산을 마치고 식당 밖으로 빠져나왔다. 대답은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대답을 들을 자신도 없었다. 아직은 쌀쌀한 밤공기를 맞으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한 손에 든 검은 봉지가 참 초라하다.

189 이름 없음 (AEXzpvbNtg)

2021-02-21 (내일 월요일) 08:20:03

>>188
저 선배 좋아해요. 그 말을 남기고 후배는 밖으로 나가버렸다. 작은 중얼거림이 예방 주사 역할을 했는지 그렇게 충격적이진 않았다. 오히려 친한 후배라지만 거리 조절을 못했던 게 미안하기도 했고, 스스로가 한심하기도 했다. 그런 감상에 오래 잠겨있을 시간은 없었다. 계산을 마치고 식당 밖으로 나오니, 검은 봉지를 들고 담배를 피고 있는 후배가 보였다. 듣기 싫겠지만 대답은 해야지.

"저는 OO 씨를 좋아하지 않아요. 다른 분께 마음이 있었던 것과는 별개입니다. 연애 상대로 생각해본 적 없고, 그럴 수도 없다는 게 정확하겠네요. 그간, 사적인 일로 대단히 실례가 많았습니다. 다음부터는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계산은 마쳤으니 좀 앉아있다가 조심히 돌아가요. 회사에서 뵙겠습니다. "

고개를 가볍게 숙여보이고 돌아섰다. 새삼 무상감이 들었다. 연애라는 게 뭐길래 선배가 돼서 그렇게 못 볼 꼴을 보이고 거리 조절을 못했을까. 다시는 실연당하고 술같은 거 먹나 봐라. 마시더라도 폰을 꺼두고 홈술해야지.

190 이름 없음 (XdQqAPFaXA)

2021-02-26 (불탄다..!) 22:00:37

"주인… 속상한 일 있었어요?"


너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공손히 두 손을 모으고 침대맡에 서있던 메이드의 꼬리가 축 늘어진다.


"에구. 왜 이렇게 기운이 없어요… 자아, 이리 오세요."


그녀는 침대에 사뿐히 걸터앉아 두 팔을 활짝 벌린다. 

너를 올려다보는 눈길이 퍽 다정하다.


"… 어서요."

191 이름 없음 (TgVoGr5H9o)

2021-02-26 (불탄다..!) 22:54:55

>>190

"이런 식의 업무는 부탁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합니다만, 뭐하는 짓이죠?"

고개를 움직일 겨를도 없이, 어처구니가 없는 얼굴로 멍하니 서 있던 그가 냉랭한 목소리로 침대 위에 앉아있는 하인을 나직이 질책했다.
순간적으로 떠올랐던 모멸감과 당혹스러움은 온데간데 없이 무표정하기만 한 얼굴로, 그는 문을 가리켰다.

"나가십시오, 당장."

192 이름 없음 (11oqwhlcO6)

2021-02-26 (불탄다..!) 22:59:52

>>191 차라리 잇질 말지 ㅎ;

193 이름 없음 (/D.wqNfmvo)

2021-02-26 (불탄다..!) 23:05:08

답레로 꼽주지 마라 좀;
전부터 그러네

194 이름 없음 (LT74/kafX2)

2021-02-26 (불탄다..!) 23:09:13

솔직히 어그로성 아니냐? 이거?
걍 잇기 싫으면 안 이으면 되지 왜 이러는거임?
전부터 이러는 이들 은근히 나오네

195 이름 없음 (TgVoGr5H9o)

2021-02-26 (불탄다..!) 23:31:50

>>191입니다. 메이드가 고용주의 가장 사적인 공간, 그것도 침대 위에서 안아주겠다고 하는 상황이 고용주 입장에서는 기겁할 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이었습니다만, 원하지 않았던 전개라면 얼마든지 스루하셔도 됩니다. :)

196 이름 없음 (Jx1gJ/ARyI)

2021-02-26 (불탄다..!) 23:36:25

>>195 개인적으로 끊어먹고 하는 것과는 별개로 레스에 적힌 내용은 제대로 읽어주고 잇는게 도리이지 않을까... 190레스에 > 너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등의 상대도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데 앞뒤맥락 없이 고용주 성격적 전개만 밀어붙인 것 같아 보이네

197 이름 없음 (bWEDCA5XQ6)

2021-02-27 (파란날) 02:17:48

어디에나 흔하고 평범한 시골 소녀 마리
조금 왈가닥이며 부모님 농사를 잘 돕지만 가끔은 할일을 빼먹고 시간 나면 한적한 호수에서 빵을 먹으며 새들을 관찰하는게 이 시골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취미인 그런 평범한 여자아이...
하지만 별똥별이 하늘에 아름다운 선을 그은 날 즈음 이후 마리가 달라졌다.

적은말수와 무언가를 초월한듯한 그 특유의 미소 특히 별똥별이 떨어진 직후엔 홀로 멍하니 나사빠진 사람마냥 서서 무서울 정도로 남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다행인지 불행인지 요즘은 예전처럼 곧잘 남들과 이야기도 하고 농사일은 오히려 예전보다 능숙해진듯 남은 일을 효율좋은 기계처럼 빠르게 처리했다.
외적인 변화로는 글쎄... 예전의 그녀와 똑같았지만 왠지 기분상 그녀의 검은 눈속에선 그날 지나간 유성같은 유리조각들이 반짝거리는 기분이였다.

어른들은 그런 그녀를 드디어 철이 들었다며 별 신경쓰진 않는다.
그녀와 같이 다니던 무리도 딱히 이상한것을 못느끼는것 같았다.

그런 그녀가 어느날 말을 건다.

"...왜 그렇게 쳐다보는거야?"

//옛날에 한번 썼던 글이지만 사람마다 진행은 다를수 있을것 같아서 다시 가져와봤어
혹시 문제가 된다면 지우도록 할께...

198 이름 없음 (2IEr8y/DSg)

2021-02-27 (파란날) 02:50:31

>>197 마리에게 약간 두근대는 정도의 츤데레 남자애가 틱틱거리며 반응해도 괜찮을까!

199 이름 없음 (bWEDCA5XQ6)

2021-02-27 (파란날) 03:02:10

>>198 물론이야! 무엇이든 이을 자신 있다구
해피엔딩은...노력해볼께

200 이름 없음 (2IEr8y/DSg)

2021-02-27 (파란날) 03:12:04

>>197
"누가 쳐다봤다고 그래?"

확실히 쳐다보고 있었던 소년은 소녀의 말에 홱 고개를 돌렸다. 그것도 모자라 발이 간지러운 것처럼 괜히 신발로 빽빽한 들풀을 꾹꾹 눌러 즙을 낸다. 상냥한 어른이 보고 있었다면 "얘, 그러면 신발에 풀즙이 묻잖니."라고 면박을 줄 만한 풍경이었다. 하지만 그럴 어른이 없기에, 그리고 소녀가 그런 말을 하진 않을 거라고 믿기에 소년은 마음껏 가벼운 짜증을 바닥에 풀었다.

"그냥, 뭐 있잖아. 너 요즘 재미없지 않아?"

소녀가 재미없는지 아닌지 소년이 알 바는 아니지만, 그냥 좀 그렇게 느껴졌을 뿐이다. 소녀에게 그렇게 관심을 주고 있는 건 아니다. 누구한테나 그렇게 보이니까 소년도 그렇게 느끼는 거다. 아무튼, 그렇다. 소년은 자기합리화를 했다.

"그냥, 그냥, 아니... 됐다..."

소년은 살짝 간지럽기도 하고, 조금은 찜찜하기도 하고, 두근거리기도 하고, 발밑에 짓밟힌 풀즙처럼 혀를 말리게 하는 쓴맛도 느껴지는 듯한 감정을 속으로 삼켰다. 뭔가 잊고 있는 것 같은데, 아. 어머니가 돼지들을 보고 있으라고 했었지. ...됐어, 마리가 더 중요해.

201 ㅇㄱㅇ (bWEDCA5XQ6)

2021-02-27 (파란날) 03:12:22

>>198 미안 슬슬 잠이 와서...답레는 내일 잇게 될것같아 어짜피 여기는 뭐든 자유니까 좋을대로 써주면 뭐든 기쁠것같아 그럼 내일봐잘자!!

202 이름 없음 (kU.sQGT1q.)

2021-02-27 (파란날) 04:21:46

(너는 오늘도 거무튀튀한 색으로 물든 창문을 보면서 불만의 한숨을 내뱉었다. 어디서 오는지 모를 검은 연기가 구름을 밀어내고 버젓이 햇빛을 가리고 있는 빛 적은 도시의 창문은 수시로 닦아도 순식간에 더러워지기 마련이다. 너는 어차피 외출할 생각이었다며 검은 이물질로 얼룩덜룩한 노랬던 장화에 발을 밀어넣고 검은 끈을 조이고, 정식 방호복에 비해선 부족하지만 괜찮은 수제 방호복을 입고, 방독면을 쓴 채 밖으로 나갔다. 여기까지 읽었다면 나의 정체가 궁금할 것이다. 나는 유령이다.) 테레사, 창문은 오늘도 내가 닦을까? (너의 허락을 구했지만 대답을 듣지 않고 더러운 걸레가 마법처럼 깨끗해질 때까지 쥐어짰다. 아닌 게 아니라, 마법이다. 너는 더러운 걸 싫어하니까, 내가 있어서 꽤 도움이 되었다. 나는 너의 집-원래 주인이 없으니 너의 것이라 해도 좋겠지.-의 창문을 닦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친밀감이 있는 상태. 꺄악 유령이다! 하고 도망치는 것 등은 스루함.

203 이름 없음 (PmhU/s4746)

2021-02-27 (파란날) 06:47:24

204 이름 없음 (bWEDCA5XQ6)

2021-02-27 (파란날) 11:59:20

>>200

집으로 돌아가는 새들의 소리
스쳐지나가는 바람소리
이어지는 들풀들의 작은 아우성
그 무엇도 순간 둘 사이의 정적을 메우지 못했다

"..하하...하하하! 그게 무슨소리야"

다행히도 곧 명랑하게 울려퍼지는 소녀의 웃음소리가  기계적으로 울린다.
이게 그렇게 웃길일인가 싶을 즈음에 일정하게 이어지는 웃음소리는 어느 기점으로 뚝 그치고 소녀는 조금 빠르게 소년에게로 걸어간다.

순간 마주친 그녀의 눈에서 별빛이 빠르게 지나갔다.

"내가 어디가 재미없는데?"

입은 웃고있지만 어쩐지 그를 지켜보는 두 눈만은 섬뜩하다

205 이름 없음 (hemiiT/U16)

2021-02-27 (파란날) 12:47:31

>>202
(이 놈의 창문은 아무리 닦아도 도무지 깨끗해지지 않는단 말이지. 나는 욕 대신 한숨을 푹푹 내쉬면서도 장갑 낀 손으로 걸레를 집어들었다. 그러나 익숙한 너의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었다.) 아. 안녕, 유령아. 검은 아침이네. (좋은 아침이라는 인사 대신 나는 늘 너에게 그런 인사를 건네며 웃었다. 방독면에 가려지기는 했겠지만. 그리고 오늘도 창문 청소를 도와주려는 너의 마법을 신기하게 지켜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응, 고마워. 그럼 저 위쪽만 부탁해. 아래는 내가 할 수 있으니까. (봐도봐도 신기하단 말이지. 저 마법. 나도 할 수 있으면 좋을텐데. 나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물이 뚝뚝 떨어지지 않을 정도까지 걸레를 힘들게 쥐어짰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창문을 닦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너에게 말을 걸었다.) 다 닦으면 말해줘. 그래도 너 덕분에 오늘도 일찍 끝나겠다. 고마워, 유령아.

/유령 이름을 알지말지 몰라서 그냥 유령이라고 쓰긴 했는데 혹시 이름을 알고 있다는 설정이 좋다면 장난 섞인 애칭 정도로 생각해줘.

206 이름 없음 (FdR63Im9tg)

2021-02-28 (내일 월요일) 21:42:56

이상한 것으로 범벅된 눈알이 상대를 응망한다. 이리저리 난잡하게 어질러진 방 안. 차분히 정리된 것이라곤 하나도 찾을 수 없는 이곳에서 기묘한 시선만은 올곧게 쭉 뻗어 나갔다. 간신히 일 분은 넘겼을까. 시선은 상대에게서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어떠한 낌새도 파악할 수가 없었다.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행동의 의중을 파악하기에는 억만큼의 시간이 있어도 불가능할 것이다. 극심한 애정이 흘러넘치다가도 곧잘 미움에 잠겨 누군가를 삼키려고 준비하는 듯한 얼굴. 이런 것을 유애라고도 부르던가. “가지 마.” 상한 입술이 열렸다 닫힌다.

207 이름 없음 (P5WzWWb45s)

2021-03-01 (모두 수고..) 00:36:55

또각 또각
일정한 간격으로 구두굽소리 그리고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다른이들의 발소리
소리의 중심이 점점 그것에게로 다가온다

"조용! 제가 알아서 하도록 하죠 그외의 인부들은 전부 돌아가세요"

겨우 장지문같이 얇은 거리임에도 낮과 밤, 하늘과 바다, 그와 같은 것들만큼 저 너머와 그것이 있는곳은 거리감이 있는듯 했다.
하지만 그 교양있는 언어로 일행을 진두지휘하는 여성의 목소리에는 거리를 메울만큼의 묘한 힘이 실려있다.
.......

"가지 않습니다"

그것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방안을 둘러보며 이질적인 거리사이를 순식간에 넘어오는 그녀
어딘가의 모델 같이 큰키의 마른여성은 척 보기에도 화려해보이는 치장으로 어림잡아 그녀가 걸친것으로만 이 일대를 사버릴 수 있을것 같았다.

"나는 마담 카멜라 당신은 누구죠?"

208 이름 없음 (P5WzWWb45s)

2021-03-01 (모두 수고..) 00:37:22

>>207>>206추가

209 이름 없음 (mvtwLkUC9w)

2021-03-01 (모두 수고..) 01:08:49

>>207

“날 기억하지 못해?” 가지 않는다는 확고한 대답에도 불안한 마음이 퍽 위태롭다. 아까만 해도 상대가 어디론가 훌쩍 떠나버릴까 봐 애를 태웠는데 이제는 불안의 이유가 기억 쪽으로 넘어왔다. 자신의 이름까지 밝히며 질문해 오는 그녀가 낯설기만 하다. 벼랑 끝으로 내몰린 느낌. 사지가 저렸다. 눈부신 치장에 한 번이라도 눈을 꽉 감으면 중심을 잃고 떨어질 것만 같다. “...정말 나를 몰라?” 손을 들어 아무렇게나 그녀의 옷자락을 잡아본다. 그리고는 평생 말하지 않을 것 같던 이름을 뱉는다. “노아.”

210 이름 없음 (P5WzWWb45s)

2021-03-01 (모두 수고..) 01:35:09

>>209

"노아...노아...노아...흠 진명?..이 아니군"

어쩐지 일이 쉽게 풀린다했다니
그녀는 주머니에서 시가를 꺼내 숨을 들이킨다.
향은 깊은 산의 흐르는 개울 향 푹 썩어 이끼로 뒤덮힌 커다란 나무향 조용한 새벽에 동트는 태양의 향등 표현하기 어려운 향이 방안을 채운다

"그럼 노아 당신은 기억하고 있나요? 당신이 누구인지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지"

211 이름 없음 (Lcvzv644Fk)

2021-03-04 (거의 끝나감) 01:19:17

졌다.

평생을 무에 정진하며, 어떻게 하면 상대를 이길 수 있을 지 연구했다.
단순한 싸움이 아닌 관객을 만족시켜줄 그 짜릿한 한 순간을 그려내고 싶어 죽음의 무도를 피범벅이 될 만큼 연습했다.

모래 위에 내 상대의 붉은 피가 뿌려질때마다, 귀부인과 걸인을 가리지 않고 날 위해 뿌려대는 꽃잎과 함성들이 나의 무대, 나의 전장을 장식했다.

그렇게 나는 생사를 건 단 한순간을 매일같이 누려가며 춤추고, 밤에는 나를 원하는 여인의 허리를 붙잡고 춤을 추었다.

그저 춤으로 끝내어, 나의 이 행복한 살육으로 점철된 아름다운 도살장에서의 삶을 끝낼 일도 없었지만.

허나. 지금 나는 졌다.
온 몸에 새겨진 생채기에서 핏방울이 흘러나와 모래 위에 떨어져 뭉쳐있다.
그 피에 젖은 손틈을 벗어난 검이 바닥을 나뒹굴고 있다.

나의 이름을 연호하던 이들은 어느새 내 상대의 이름을 열광하며 부르고 있다.
나를 위해 뿌리던 꽃잎은 이제 저자를 위한 융단이 되어 이 야만스러운 무대를 채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가장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은, 나를 쓰러트린 자 그 자체이다.
나는 나보다 몇배는 더 큰 거한들을 날카로운 일격으로 베어넘겼다.
흉악한 괴물을 연상시키는 이들 앞에서도 냉정을 유지하며 쇼를 승리로 마무리지었다.

허나 내 앞에 서, 승리를 가져간 이는... 그런 부류가 아니었다.

낮의 무대에서는 한번도 볼 수 없었던 자. 있어도 이상할 게 없지만, 없는것이 당연하다 여겨졌던 자.

그래. 그는, 아니 그녀는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위압적이지도, 흉측하지도 않은 아름다운 여성이.
나를 압도적인 무력으로 이기고,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올려다본 하늘은 기분이 나쁘도록 눈이 부셨다.
그녀가 눈이 부셨던 것이라 비유하는 이들을 베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믿을 수가 없어."

생각한 그대로의 말을 꺼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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