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고 에이전시. 이곳에 들어온지도 거진 4년째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런들 어떠하리. 사샤는 과거의 추억에 얽매여 사는 사람이 아니었다. 추억 따위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못한다며 매정하게 다른 이들과의 기억을 져버리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시도때도 없이 과거의 기억을 수면 위로 끄집어 올려내는 것 또한 아니었다. 그런 것은 늘상 ㅣ떠올랐다 한들 담배 연기와 함께 공기 중에 흩어지기 마련이었다.
사샤는 평소와 다를바 없는 발걸음으로 평소와 다를바 없는 흡연실로 들어섰다. 늘상 어딘지 나른하게 하루하루를 흘려보내는 듯 보이는 것이 바로 사샤였으나, 정작 그녀가 깊은 생각에 잠겨 있을 때는 그리 많지 않았다. 주로 멍하니 별 생각 없이 시간을 흘려보낼 뿐. 사샤는 평소에 저가 피우는 독한 담배를 입에 물고 그 끝에 불을 붙였다. 흡연실 내부에는 얼마 지나지 않아 희뿌연 연기가 매캐한 연기과 함께 피어올랐다. 후각이 예민하게 발달 된 사샤에게 있어 담배 냄새란 그닥 반길만한 것이 못 되었으나, 그것에도 적응한지 오래였다. 의자에 앉아 조용히 담배를 태우는 모습은 평소에 빈번히 보이는 모습 중 하나였을 것이다. 사샤는 흡연실로 다가오는 또 다른 누군가의 기척을 느끼곤 제 머리카락 사이에 솟은 듯이 보이는 동그란 귀를 쫑긋거렸다.
왠지 흡연실에서 보이면 안 될 얼굴이 보이는 것 같은데. 사샤는 말 없이 담배 연기를 한 번 길게 내뱉은 뒤, 너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네로의 사려 깊은 태도와 부드러운 목소리는 도나의 진정되지 않는 마음을 조금씩 누그러뜨려 주었다. 그녀는 몸을 꽁꽁 감싸고 있는 꼬리를 느슨하게 풀고서, 또 약간의 용기를 내어 선배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여러 사람 앞에 서는 건 익숙하지 않아서... 이렇게 둘이 대화하는 건 괜찮은데."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있지만, 금세 고개를 돌려 눈을 피했다. 그래도 다른 이들의 시선이 거두어진 것을 똑바로 인식하게 되어 긴장은 많이 풀어져 있었다. 도나는 조용히 몸을 일으켜 테이블로 향했다. 굳이 네로의 주변을 빙 돌아서. 그녀는 종이컵에 담긴 콜라를 입에 머금었다. 찌르르하게 탄산이 올라와 얼굴을 찌푸렸지만 속은 시원해진 듯 보였다.
"고마워요, 선배. 저는 이런 자리에서까지 도움만 받고 있네요."
그녀가 이 정도까지 사회성을 기를 수 있었던 데에는 소장의 역할이 컸지만 네로의 도움 또한 적지 않게 영향을 주었다. 신체의 치유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상담 또한 꾸준히 해주고 있었으니까. 도나는 옆에 놓인 비스킷을 하나 베어물었다. 그리곤 눈을 동그랗게 뜨며 이거 맛있다! 먹어 봐요. 하는 표정으로 네로에게 같은 종류의 비스킷을 내밀었다.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엑스칼리버. 거창한 코드네임과는 영 동떨어진 나긋나긋하고 앳된 얼굴을 한 소녀였다. 이름은 에덴 마이어- 올해로 19세라고 했던가, 음주나 흡연 같은 게 합법적으로 가능한 성년이 되려면 아직 더 기다려야 할 텐데.
그녀는 궐련보다는 전자담배를 더 선호했지만, 매캐한 종이담배 냄새에도 퍽 익숙했다. 흡연실에 자욱한 매캐한 연기에도 에덴은 눈 하나 까닥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사샤의 가까운 곳에 앉아서는, 주머니에서 길다란 아토마이저를 꺼내서는 스읍, 하고 니코틴 증기를 흡입했다가 내뱉는다. 그녀는 이런 방식으로 사샤와 동석하겠다는 뜻을 간접적으로 내비치곤 했다. 보통 담배 냄새와는 다른 애플민트 향이 코끝에 걸린다.
새하얀 머리카락과 그에 대조되는 붉은 홍채, 관자놀이 부근에 솟아난 뒤틀린 뿔, 나긋나긋하고 앳되어 보이는 얼굴. 아는 사람이었다. 아니, 아는 살카즈라 해야할까. 너는 눈 하나 까딱 않고 기다란 아토마이저를 꺼내 니코틴 증기를 흡입하며 동석했다. 사샤의 손가락 사이에 걸린 매캐한 향과는 조금 다른, 애플민트 향이 사샤의 후각을 건드렸다.
"네, 좋은 저녁이예요."
사샤는 입에 담배를 문 채 네 인사를 받았다. 그 덕에 발음이 조금 뭉그러졌지만, 말을 알아듣지 못 할 정도는 아니었다. 저리 차가운 인상이지만, 사샤는 기본적으로 아르고 에이전시 사람들을 상대로는 경어를 고집했다. 친분과는 별개로 같이 일을 하는 관계이니 만큼 존중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흡연실에서 보기에 썩 달가운 얼굴은 아닌데요, 후배님."
사샤는 손가락 사이에 담배를 끼운 채 네 얼굴을 바라보았다. 흡연실에서 마주치기에는 다소 앳되어 보이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