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소개도 계획대로 마무리했기에 오니는 뿌듯했다. 안그래도 차려진 과자가 많으니 적당히 먹고 방으로 돌아가서 쉬면 딱 좋을 것 같았기에, 오니로서도 기분은 최고였다. 물론 그것이 무덤덤한 표정 밖으로 한눈에 나타나진 않았지만 이따금 좋은 모양으로 꿈틀거리며 휘어지는 눈썹을 보면 오니의 기분이 좋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을 것이었다. 중요한 점은 그런 미세한 변화를 알아차릴 사람이 있냐의 문제였지만.
그때 귀에 익숙한 목소리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알아차린 오니는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그곳에 있는 것은 위태위태하게 걸어오는 리타를 보며 '오, 귀여운 후배' 하고 생각하고 마는 오니였다.
" 리아 - 라고 불러도... 괜찮아. 판도라."
" 아니, 리타. "
긴장된 기색으로 물어오는 리타를 부드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잔잔한 물결 같은 목소리로 짧게 짧게 끊어서 말을 던진다. 정말이지, 이젠 적응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싶긴 했지만.. 리타도 노력을 하고 있겠거니 생각하고 마는 오니였다.
" 괜찮아. 앉아도. 같이 먹을래, 과자? "
주춤거리는 리타의 머리 위에 조심스럽게 손을 얹으려는 듯 부드럽게 손을 뻗으며 잔잔한 물음을 던진다. 리타가 전혀 긴장할 필요없다는 듯 오니의 붉은 눈은 전장에서의 빛을 발하고 있지 않았다. 그저 누구도 돌을 던지지 않은 물결조차 없는 호수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딱히 인기를 위해서 이런짓 하는거 아냐~ 그럴거면 전장에 나가는게 아니라 아이돌을 했겠지. 그 왜 어디 유명한 택배사에는 전직 아이돌이었단 사람도 있다며?"
나름 뼈가 있는 그의 말을 농담으로 되받아치며 웃는 그녀의 모습은 익살스럽기 그지없었다. 주변에 다른 리베리 종족이 있다면 말싸움나기 딱 좋은 상황이었겠지만... 없으니까 비로소 하는 농담이 아닌가, 게다가 알게모르게 그런 얼타는 면모는 비단 리베리들 뿐만 그러진 않을 것이다.
"그 진짜가 진짜로 되려면 좀 사람들 모아두고 공지라도 하라구~ 그러지 않으면 내가 챙겨버릴테니까,"
자기 급여가 아까운줄도 모르는 그녀는 서슴없이 그렇게 내뱉었다. 물론 돈이 급했다면 여기서 이렇게 노가리를 까는게 아니라 한시간이라도 더 오래 오리지늄이나 캐고 앉았겠지. 무엇보다 그녀는 제물 같은 것을 종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건강도 둘째치고, 중요한건 오로지 목적뿐이었으니까.
"뭐... 틀린 말은 아니네... 나라고 무적은 아니지. 어디 무적의 용이라도 나타나지 않는 이상 뭐든 만능으로 해낼 수는 없으니까, 가능하면, 피할수 있을만큼 피하고 놀려먹을수 있을만큼 놀려먹고?"
정돈도 다 끝났겠다, 다시 자기 자리에 앉아 몸을 웅크린 그녀는 한쪽 손을 케이프 밖으로 꺼내 주먹을 쥐었다 펴길 반복했다. 아직까진 감염 축에도 안들만큼 안정범위랬나, 아니면 여태까지 그런 난장판에서 굴러온 사람 치곤 기적적일만큼 피폭량이 적다 했나, 그렇대도 나날이 올라가는 수치는 무시할수 없는 일이었다. 언젠간 망가지겠지.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었다.
"몸? 솔직히 말하면 별로야. 왜 그런 말이 있잖아? 한창 일하던 사람이 갑자기 하던걸 그만두고 쉬면 몸이 급격하게 쇠약해진다는거, 오히려 그곳에 있었을 때가 더 안정적이었어."
한번에 간파될 정도의 거짓말, 혹은 농담이었다. 오리지늄은 그리 간단한 논제가 아니란건 그녀 역시 눈 앞에 있는 소장만큼이나 잘 알고 있을터였다. 오히려 멀어지면 멀어져야지 가까이 한다고 좋을게 없는것, 그게 바로 원석이지 않을까?
—감사합니다. 그녀가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별 것 아닌 일에도 감사와 사과의 인사를 덧붙이는 것은 몸 구석구석에 끈적히 달라붙은 그녀만의 가련한 습관이리라. 리타가 조심스레 옆자리의 의자를 끌어 앉았다. 가볍게 인사를 한 뒤 그녀가 천천히 테이블 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제가 좋아하는 감자칩이 있는 것을 발견하곤 심심한 미소를 지어올리다, 제 머리 위로 느껴진 손길에 느릿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다.
"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해요. 저도 리아씨랑 함께 과자를 먹고 싶어서... "
그녀가 살며시 리아의 얼굴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다시 생각해보니 어딘가 웃긴 대답이긴 했지만, 틀린 부분은 없으니 구태여 고칠 필요는 없어보였다. 같이 먹고 싶다는 리아의 말은 한껏 긴장해 빳빳해진 그녀의 자세를 풀어주기 충분했다. 조금은 부드러워진 어깨로, 잠시 입술을 달싹이던 리타가 감자칩 한 조각을 집어들며 입을 열었다.
" 사람들이 많네요... 처음 뵙는 분들도 꽤 있는 거 같아요. "
그러니까, 이른바 스몰톡을 시도한 것이다. 그녀에게 있어서는 엄청난 발전이 아닐 수 없었다. 사람들의 시선만 닿아도 제 고리와 날개를 보는 것은 아닐까, 불쾌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전전긍긍하던 날들이 엊그제 같건만. 아직 갈길이 멀다 한들 그녀는 제 나름의 천리길을 걸어왔으니 스스로를 다독여주기 충분하리라. 그녀가 어색히 미소를 머금었다. —이거, 맛있어요. 리타가 리아 쪽으로 조심스레 감자칩 봉지를 밀어주며 덧붙였다. 정말요. 하는 확신과 함께.
자기 소개를 끝마친 테티는 꺼낸 망치를 다시 등에 매고는, 가장 가까운 자리에 착석했다. 신입의 긴장감은 온데간데 없고 단지 눈 앞에 있는 과자에만 정신이 팔린 테티의 크림색 귀가 쫑긋한 것은 한 여성의 목소리였다. 정확히는 '서포터'라는 자신과 같은 포지션에 흥미가 동한 것이다. 운이 좋게도 바로 옆자리에 그녀가 앉아있는 덕에 테티는 과자를 한 입 물고는 우물거리며 곁으로 바싹 다가갔다.
"오라클 씨. 오라클 씨." 조금 전 대원들 앞에 서서 긴장한 그녀의 모습은 개의치 않은 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그녀를 속삭이듯 부르는 꼴이 참으로 해맑았다.
"제 이름 기억하시나요? 테티에요 테티, 정확히는 빅! 테티지만요. 이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니고요, 아까 그랬죠? 서포트라고! 저 다 들었어요!" 이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면 전부 알 사실을 무슨 희대의 비밀을 캐낸 것 마냥 발언하며,
"서포트면 어느 쪽이에요? 치료? 버프? 아 혹시, 저랑 같은 디버프 계열일까요! 저랑 같은 포지션은 저와 어떻게 다르게 싸울 지 전부터 궁금했었거든요. 하지만 아직 한달 밖에 안 되어서 한번도 못 본 거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