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와 후배의 개념에 대해 안다고 말하는 콜로서스의 말에 더욱 눈이 반짝이는 빛을 되찾으며, 오니는 정답이라도 찾은 것처럼 힘껏 주먹을 쥐어보인다.
" 선배는 후배를 도와줘야 하는 법이야. 여기 와서 매년 그랬어. 지금도. "
하지만 외롭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는 콜로서스의 말에 다시금 팔짱을 낀 오니는 고민에 빠진다. 좀 더 쉽게, 그것이 무엇인지 설명할 수 있는 말이 있지 않을까. 자신이 다른 사람들처럼 말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으면 좋을텐데, 하는 상념에 젖던 오니는 이내 좋은 방법이 생각났다는 듯 다시금 자신감을 충전한 표정으로 콜로서스를 바라본다.
" 귀요미, 귀요미는 혼자 있는게 좋아? 다른 누군가랑 이렇게 이야기를 자주 하는게 좋아? "
중간 중간 말을 올바르게 이어나가려는 듯 짧게 짧게 끊어서 말을 이어간 오니는 말을 마치고는 조심스럽게 콜로서스의 눈치를 살핀다. 자신 딴에는 최대한 외로움이라는 감정과 밀접할법한 말을 꺼내본 것인데 올바르게 콜로서스에게 전달이 될지는 자신이 없는 모양이었다.
" 외로움이란 건 다른 누군가랑 이야기를 자주 하고 싶은거야. 응, 그런거야. "
그래서 콜로서스는 어때? 하고 묻는 듯 콜로서스를 올려다보며 대답을 기다리는 오니는 자신이 제대로 된 선배가 되어줄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콜로서스의 목소리가 울렸다. 콜로서스에게는 표정을 보일 얼굴도 없고, 감정을 다른 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 손가락도 없고, 그나마 있다면 음파를 통해 전해지는 어조 정도일 것이다. 혼자 있다는 개념은 이해할 수 없었다. 이 테라 전역에 오리지늄들이 존재하는 한, 콜로서스는 절대 "혼자"라고 할 수 없었고, 그가 만약에 (느낄 수 없지만) 외로움을 느낀다면 그것은 테라에 그를 제외한 모든 오리지늄이 절멸된 뒤에나 가능할 것이었다. 그렇기에 콜로서스는 혼자가 될 수 없었고, 혼자가 되는 상황을 시뮬레이션할 최소한의 정보조차도 없었다.
"혼자라는 개념, 하모나이트에게는 의미 없음."
콜로서스는 "오리지늄 재해 위험"이라 써붙여진 상자를 들었다. 그 상자에는 로트번호와 함께 안정화 물질을 섞어 침식방지 처리한 오리지늄 1kg이라고 적혀있었다. 콜로서스는 그 상자를 리아에게 보여주면서 들었다.
"오리지늄. 많음. 하모나이트. 이야기. 많음. 외로움. 오리지늄 절멸 전까지는. 느낄 수 없음."
오리지늄을 보여주며 전혀 외롭지 않다는 듯 말하는 콜로서스를 보며 윽, 하는 짧은 소리를 낸 오니는 이젠 어려워서 모르겠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며 중얼거린다. 자기보다 말을 잘하는 다른 사람들을 데려오는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일단 할말은 해야겠다는 듯 입술을 연다.
선배 역할은 포기하지 않았는지 콜로서스의 호칭으로는 후배를 채택한 체 혼을 내듯 말한다. 물론 고칠 수 있긴 하겠지만, 매번 부셔버리면 분명 회사로서도 곤란할 따름일테니까. 이런건 다음부터는 부수지 않게 선배로서 엄하게 주의를 줘야한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물론 그것이 콜로서스에게 전달이 제대로 되어질지는 알 수 없었지만.
" 그래도, 창고에 있으면 내가 종종 찾아올게. 위험하다고 하니까, 거리를 두고 이야기 하면.. 괜찮을거야, 아마. "
부족한 말재주였지만 이로써 부끄럽지 않은 선배가 되었다 생각하며 옅은 미소를 지은 오니는 알았냐는 듯 콜로서스를 올려다본다.
한숨, 아무래도 이해하지 못했나보다. 그럴 법도 하다. 콜로서스와 같은 하모나이트들은 그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인간 역시도 하모나이트의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한다. 하모나이트의 지성은 탄소기반 유기체에 머무는 신경계로 사고하는 인간의 변덕스럽지만 따뜻한 것이 아닌, 조건과 입력이 동일하다면 무조건 같은 값을 배출하는 차가운 기계의 회로기판 따위에 더 가까우니까 말이다. 적어도 호기심에 있어서는 콜로서스는 비슷했지만, 다른 것은 달랐다.
"오리지늄 왜곡장 전개 위력 시범 중 사고. ㅡ 다음부터는 안 그럴게!"
하지만 창고 문을 함부로 부수면 좋지 않다는 대전제 자체에는 분명히 동의했기에, 그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답을 내놓았다. 오리지늄 처리한 격벽이 박살나서, 만약 오리지늄 분진이 위험수준으로 뿌려진다면.... 그 결과는 오리지늄에 대해 초등학생 수준의 상식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잘 아테니 말이다. 콜로서스는 종종 찾아오겠다는 말에도 "확인, ㅡ 알았어!"라고 짧게 답해서 긍정했다. 거리를 두고 이야기하면 괜찮을 거란 말에는 음... 일단은 인간들 사이에서 '그러려니 한다'로 통하는 자세로 일관하기로 했다.
긍정적인 대답이 돌아오자 흡조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오니는 만족스러움이 담긴 답을 내놓는다. 선뜻 긍정적인 대답을 돌려주는 콜로서스를 마음 속의 후배란에 저장을 한 오니는 이어지는 긍정적인 대답들에 전전긍긍하던 것이 가시는 듯 이내 평상시처럼 무덤덤한 표정과 자세로 돌아온다. 한결 여유가 돌아왔다는 듯 다시 남은 샌드위치를 입에 털어넣은 오니는 그것을 마지막으로 꿀꺽 삼킨다.
" 그러면 여기 수리에 관한 건 내가 보고해둘게. 후배는 푹 쉬도록 해. "
굳이 자신이 보고할 필요는 없었겠지만 선배라고 불린 만큼 이정도 수고는 해도 괜찮을거라 생각한 듯, 자신에게 맡기라고 말한 오니는 다시 휴게실 쪽으로 향하려는 듯 몸을 돌려 발걸음을 옮기려다 멈춰선다. 그리고는 콜로서스를 보며 말을 고르는 듯 입술을 달싹거리더니 천천히 말을 뱉어낸다.
" 다음에 또 보자, 귀요미 후배. "
다음에 또 얼굴을 보게 될 것이라는 여지를 만들어 둘 생각인 듯 차분한 목소리로 마지막 말을 남긴 오니는 창고에 관한 보고를 하기 위해 걸음을 서두르기 시작했다.
"나 새대가리인걸 이제 알았어? 1년동안 몇번이나 마주쳤으면서? 리베리들이 다 그런건 아니지만... 뭐, 그래. 그쪽 용병친구들은 군 태생이라 해도 이상할거 없이 굴긴 하지..."
호박에 줄 좀 긋는다고 다이아몬드가 될수야 없겠다만 다수의 사람이 모이면 나름의 규칙을 짜기마련이었다. 그런 의미에서도 그가 이곳을 이끌고 있기에 이만큼 이뤄낼 수 있던 걸지도 모를일, 그렇게 생각해보면 그의 정체는 이젠 꽉 끼어서 머리 그 자체가 된 것같은 헬멧만큼이나 궁금증 천지겠다.
"소장님 벌써 그 말한지 너댓번은 더 된거 같은데? 항상 그렇게 말하다가도 소리소문없이 뭔가 또 챙겨오잖아."
이쯤 되면 소장이 아니라 셔틀아닌가,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던 그녀는 그가 치료비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금방 납득해버렸다. 확실히 메딕이 있다 해도 병원만큼 좋은 곳은 없더랬다.
"뭐, 틀린 말은 아니네. 그래도 사이비 병원이라도 있는게 어디야? 셸터에서 기약없이 끙끙 앓는 것보단 좀 수상쩍어도 제대로 치료받는게 낫지.
정 감염 위험이라던가 걱정되면 위험한 곳엔 나같은 사람들 보내면 되잖아? 다른 쪽은 어떨진 몰라도 내 주무대는 오염구역 한복판이었으니까,"
이런 발언은 평범한 대원들에겐 위험하기 그지없겠지만 그녀에겐 일상적인 업무나 마찬가지였다. 오리지늄만이 기분나쁘게 널려 주변의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곳에서 멀쩡히 돌아다닐 수 있는 이는 그리 많지 않으니까, 물론 말은 이렇게 해도 담당자인 그가 기각하면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런 것도 있고, 여기 다른 리베리나 종족이 없어서 망정이지 요나카의 이런 서슴없는 발언들은 가끔씩 싸움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리고 소장은, 그런 트러블이 일어나는걸 원하지 않았다. 수습하기 귀찮으니까. 그리고 그녀는 자신을 단순한 용병이라고 생각하고 특별한 것 없는 리베리라고 생각하는 듯 했지만, 뭐 솔직히 그건 맞는 말이었지만 조금은 자신의 경력에 믿음을 가졌으면 했다.
"그랬었지. 근데 이번엔 진짜라고."
이것도 저번에 한 말. 다음 과자파티는 또 언제가 될까. 도미닉이 그러기전에 대원들이 먼저 돈을 모으는 날이 오긴 할까?
"네가 그런 일을 하고 있었던건 잘 알고있는데, 그래도 너 혼자 보낼 수는 없어. 너라고 무적은 아니잖아. 팀이 있으면 팀을 활용해야지. 가장 좋은건 오염 구역은 피하는거고."
도미닉이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일단 소장으로서 일말의 책임감이었고, 두 번째는 최근 본 의료차트가 머리에 스쳤기 때문이었다. 갈수록 요나카의 혈중 오리지늄 농도가 치솟고있었던 까닭이다. 지금 당장은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감염 증세가 전무한 그녀였지만 이대로면 분명 어떻게 될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라는걸 도미닉은 경험으로서 알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