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닉이 무미건조하게 말한다. 소장은 그런 사람이었다. 귀찮은 일은 굳이 혼자 도맡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 그런주제에 지금은 가장 복잡한 에이전시의 소장을 맡고 있었다. 참으로 아이러니였다. 소장의 눈에 탁자에 거의 군사들이 열병식하듯 오와 열을 맞추어 자리를 찾아가는 과자와 음료수가 눈에 띄었다.
"오, 좋은데? 너는 꼭 이런거에 신경쓰더라. 무슨 군인애들처럼."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 여기에 마침 요나카가 있는게 다행이라고도 느껴진다. 그러니까, 다른 대원이 아니라 요나카라서 다행이라는거다. 찰리였으면 분명 말도 안 통했을거고 귀요미는 애초에 손이 없으니까. 그나마 정리정돈에 일가견 있는 그녀가 지금 일엔 적임자였다.
"너희 이번 월급도 과자로 대신줄까? 이거 다 내 사비다. 너희 급여에서 조금도 더 까지 않은 내 사비. 그러니까 감사하면서 먹으라고."
어느샌가 소장은 정리에서 손을 완전히 때고는 소파에 몸을 삐딱하게 앉히고 있었다. 완전히 요나카에게 정리정돈을 일임한 것이었다.
"뭐, 근데 어쩔 수 없지. 그냥 칙칙한 분위기라도 살려볼까해서 시작한게 왜 이런 전통이 됐는지... 내 생각엔 조만간 과자때문에 이 장사도 접을거같다."
어려운 단어가 거대한 형체에서 흘러나오자 오니는 한순간 멍한 얼굴을 한 체 올려다 본다. 음, 그렇군. 오니는 마음 속에서 무언가를 되새김질 하더니 한손에 들고 있던 샌드위치를 한번 더 베어물고 오물거린다. 오물거리는 동안에도 멍하니 올려다보던 오니는 입에서 오물거리던 것을 꿀꺽 삼킨 후에야 천천히 입을 연다.
" 귀요미... 응, 알겠다."
정말 안건지, 아닌건지 모를 얼굴을 한체 작게 중얼거린 오니는 잠시 고민스러운 듯 남은 샌드위치를 바라보다 여러가지 목소리가 섞여서 들려오는 물음에 자그마한 입술을 연다. 오니 특유의 송곳니가 살며시 보일 정도로 크게 벌어진 입술 틈에선 조금이나마 확신이 찬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나는 리아, 코드네임은 롱고미니아드."
자신의 이름을 말하는 것이라 그런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한 오니는 일단 거대한 형체에서 적의가 느껴지지 않았는지 단창 근처에 가져가두었던 손을 거둬들이곤 머리를 쓸어넘긴다. 검정색 머리카락이 비단처럼 부드럽게 넘겨지고, 그 뒤에 숨겨져 있던 두개의 붉은 눈동자가 올곧게 올려다보기 시작했다.
"탄생. 테라 표준 시간 계산법으로 인정받는 1초를 세슘 133 원자의 바닥 상태에 있는 두 초미세 준위(準位) 사이의 전이에 대응하는 복사선의 9 192 631 770 주기의 지속시간으로 삼는 방법에 의하면 4년 전. 발견 및 명명 1년 전. 아르고 에이전시에서 전력화, 2주."
콜로서스는 그렇게 말했다. 모든 것에는 기준이 필요하고, 자신이 어떤 기준을 가지고 말하는지도 역시 중요하다. 콜로서스는 그렇게 말하고는 그 거대한 몸집을 움직여 뒷걸음질쳤다. 1톤에 가까운 덩치가 발걸음을 놓았다 떼자 쿵, 쿵, 하고 지축이 울리는 소리가 리아의 근처까지는 충분히 갔을 터다. 콜로서스는 그 자리까지 물러난 뒤 리아에게 왜 자신이 물러났는지 설명해주었다.
"오리지늄 광석. 탄소기반 유기체의 생명활동으로 정의되는 세포간 상호작용 방해. 확인된 질환, 비가역적인 시각, 청각, 후각 상실, 비가역적인 유전자 손상, 기형아 출산, 백혈병, 암, 세포분열 정지, 심정지, 다발성 장기부전 등 생명활동 정지시킬 위험 있음."
그리고 마지막으로 울림통이 크게 울리면서 리아에게 하고 싶은 말을 했다.
"아르고 에이전시의 전력보존 및 공공선을 위해, 최소 5m 거리를 권장함 ㅡ 살고 싶으면 떨어지라 이거지!"
"냅둬~ 소장님한테도 연락 안한걸 보면 어지간히도 급한 일이 있었나보지. 군대였으면 바로 영창감이었겠지만,"
그를 포함해 누군가는 착해빠졌다 말하겠지만 그녀에겐 이것 또한 시간죽이기나 마찬가지였다. 말마따나 멍청하게 당직자 대타를 뛸 시간에 밖에 나가서 오리지늄 조각 몇개 쥐어들고 공기나 하는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건물을 비워둘 수도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그녀에게 있어서 이곳은 집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집을 지킬 개도 있어야겠지. 물론 그녀는 새지만,
"진짜 군부 소속이었던 애들이 그런말 들으면 슬퍼할걸? 난 평범한 용병나부랭이일 뿐이야.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게다가 기왕 놓는거 보기좋게 두는게 좋지 않을까? 그녀 스스로는 평범함, 대충을 고수할진 몰라도 일까지 대충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무슨 일을 맡기건 너무 멀쩡하게 해와서 문제일뿐,
"그건 좀... 그리고 이정도는 상사 위치에서 직원들도 써먹고 하는 거야. 소장이 이정도로 해주는데 대원이라고 과자 하나 못사올까봐?"
삐딱하게 소파에 앉은 그가 꺼낸 말에 잠깐 심드렁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젓다 다시 정리를 시작했다. 과연 몇명이나 모일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파티중 뒤늦게 들어올 사람도 있을테니 넉넉하게 챙겨두는건 당연했다.
"그게 또 아르고만의 특징 아닐까? 너무 무르지도, 그렇다고 각박하지도 않은 환경이니까. 그렇다고 장사 접을거같다 해서 무지막지한 일거리 하나 들고왔다가 치료비가 더 나가도 곤란한데?"
콜로서스의 말을 오니는 멍하니 들었다. 제대로 이해한 것은 맞는가 싶을 정도로 멍하니 콜로서스를 올려다보던 오니는 머릿 속에 맴도는 콜로서스의 말을 어떻게든 자신이 알아들을 수 있게 조합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간추리고 보니 머리속에 남는 것은 ' 4년 전 탄생, 발견 1년 전, 에이전시에 2주 전에 전력화' 라는 한 문장이었고, 그제야 알아들었다는 듯 다시 빛을 되찾은 눈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다 갑자기 커다란 소리를 내며 물러서는 것을 보며 다시금 고개를 기울인다.
" 위험하다는거구나. 그렇지만 우리 에이전시 소속이라는거. "
얼추 모든 것을 이해했다는 듯 뿌듯함을 담은 눈으로 콜로서스를 올려다보며 말한 오니는 이내 잠시 말을 고르는 듯 빈손으로 뺨을 매만진다. 그동안의 일들을 떠올리며 어떤 말을 할지 고른 오니는 팔짱을 낀 체 자신만만하게 말한다.
" 내가 귀요미의 선배야, 선배. 귀요미 - 선배 알아? "
자신만만하고 들뜬 목소리와는 다르게 덤덤한 무표정이었지만 아무튼 신난 감정을 담은 목소리로 말한 오니는 한걸음 더 나아간다.
" 이렇게 혼자 있으면 외롭거나 하지 않아? 그거 괜찮아? "
선배라는 입장에 선 오니는 후배를 챙길 마음이라도 생겼는지 조금 남은 샌드위치도 잊은 체 걱정스런 물음을 던진다.
선배라. 대충 무슨 개념인지는 안다. 먼저 들어오면 선배. 늦게 들어오면 후배. 하지만 콜로서스에게는 어디까지나 그런 개념이 있다 정도였지 그렇게 와닿는 개념은 아니었다. 콜로서스는 리아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대충 선배가 후배를 챙겨준다니 자기도 그러고 싶은 모습이었지만 콜로서스는 그런 상황은 피하고 싶었다. 그런데 다가오는 걸 어쩌랴. 콜로서스는 나중에 이 사람이 오리지늄 중독에 의한 급성 장기부전으로 사망하거나, 평생 병원신세를 지게 된다면 소장에게 어떻게 자신이 아무 과실도 없는지 설명할 방법도 생각해보기로 했다.
"...알고 있다ㅡ알아ㅡ그런데?"
대답하는 콜로서스의 목소리에는, 진중한 중년 남성의 목소리와 어린 여자아이의 목소리, 그리고 방금 대화를 나눈 리아의 음색도 흘러들어갔다. 좋게 말하면 합창이요, 나쁘게 말하면 통제되지 않은 공론장의 고성 같은 소리로 대답한 콜로서스는, 외롭지 않냐는 질문에 외롭다, 는 개념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외로우려면 일단 혼자 있거나 혼자 있지 않더라도 주변과의 상호작용이 완전히 차단된 상태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외로웠는가? 그것 역시 인간적인 개념이었고 콜로서스에게는 그다지 와닿지는 않았다. 오리지늄 창고에서 처음 눈을 떴을 때도 오리지늄의 매우 불안정하지만, 동시에 예측 불가능하고 흥미로운 특질이 콜로서스에게 계속 탐구거리를 던져주었기에.
"이제 1년 되어 간다고 모르는 소리하네. 요즘 용병들이 격식을 얼마나 차리는데. 저번에- 어디더라, 시라쿠사쪽 용병단이랑 마주친적 있었는데 무슨 작은나라 군대 수준이더라. 호박에 줄 긋는다고 뭐가 어떻게 되나. 뭐, 너가 그렇다는건 아니고."
소장은 태연자약하게 말을 이어간다. 그 말에서 용병단장으로서의 경험이 묻어났다. 이래봬도 아르고는 7년 정도 되었고 잘 알 수는 없지만, 소장이 이렇게 작게나마 사설경비업체를 꾸릴 수 있는 것도 분명 어떠한 끗발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하 PMC는 요즘같은 세상에선 레드오션이나 다름 없었다. 그 가운데에서 버젓이 살아남을 수 있는것도 나름의 노하우가 작용하는 까닭일 것이다.
"얼씨구. 그럼 다음에는 너희들끼리 돈 좀 모아서 해봐라. 나는 이제 손 땔란다."
그는 질렸다는 듯이 말했다. 생각해보면 저번에도 저저번에도 그는 그렇게 말하곤 했지만, 그 말과는 달리 매번 대원이 조금 생겼다 싶으면 대원들에게 아무런 언질 없이 갑자기 제 돈으로 과자를 사와 신고식을 여는 것이었다.
"치료비는 상관없어. 그래서 그 사이비 병원네랑 계약 맺은거니까. 지금까지 아르고가 망하지 않고 있는것도 그거때문이지. 너희 치료비를 나 혼자서 어떻게 감당하냐."
사이비 병원이라고 하면, 아르고와 계약을 맺고있는 그 의료시설을 말하는 걸테다. 어떻게보면 요나카가 여기에 있는 것도, 그 외의 다른 대원이 여기에 있는것도, 아르고가 아직까지 유지 될 수 있는 것도 바로 그 계약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 덕에 아르고 에이전시는 전 세계의 별종들이 모인 아지트가 되었지만 말이다.
"차라리 잘 됐어. 사실 감염위험 때문에 너희들 작전보내는것도 뭣했는데 그쪽은 적어도 조치라도 취해주니까."
선배와 후배의 개념에 대해 안다고 말하는 콜로서스의 말에 더욱 눈이 반짝이는 빛을 되찾으며, 오니는 정답이라도 찾은 것처럼 힘껏 주먹을 쥐어보인다.
" 선배는 후배를 도와줘야 하는 법이야. 여기 와서 매년 그랬어. 지금도. "
하지만 외롭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는 콜로서스의 말에 다시금 팔짱을 낀 오니는 고민에 빠진다. 좀 더 쉽게, 그것이 무엇인지 설명할 수 있는 말이 있지 않을까. 자신이 다른 사람들처럼 말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으면 좋을텐데, 하는 상념에 젖던 오니는 이내 좋은 방법이 생각났다는 듯 다시금 자신감을 충전한 표정으로 콜로서스를 바라본다.
" 귀요미, 귀요미는 혼자 있는게 좋아? 다른 누군가랑 이렇게 이야기를 자주 하는게 좋아? "
중간 중간 말을 올바르게 이어나가려는 듯 짧게 짧게 끊어서 말을 이어간 오니는 말을 마치고는 조심스럽게 콜로서스의 눈치를 살핀다. 자신 딴에는 최대한 외로움이라는 감정과 밀접할법한 말을 꺼내본 것인데 올바르게 콜로서스에게 전달이 될지는 자신이 없는 모양이었다.
" 외로움이란 건 다른 누군가랑 이야기를 자주 하고 싶은거야. 응, 그런거야. "
그래서 콜로서스는 어때? 하고 묻는 듯 콜로서스를 올려다보며 대답을 기다리는 오니는 자신이 제대로 된 선배가 되어줄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콜로서스의 목소리가 울렸다. 콜로서스에게는 표정을 보일 얼굴도 없고, 감정을 다른 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 손가락도 없고, 그나마 있다면 음파를 통해 전해지는 어조 정도일 것이다. 혼자 있다는 개념은 이해할 수 없었다. 이 테라 전역에 오리지늄들이 존재하는 한, 콜로서스는 절대 "혼자"라고 할 수 없었고, 그가 만약에 (느낄 수 없지만) 외로움을 느낀다면 그것은 테라에 그를 제외한 모든 오리지늄이 절멸된 뒤에나 가능할 것이었다. 그렇기에 콜로서스는 혼자가 될 수 없었고, 혼자가 되는 상황을 시뮬레이션할 최소한의 정보조차도 없었다.
"혼자라는 개념, 하모나이트에게는 의미 없음."
콜로서스는 "오리지늄 재해 위험"이라 써붙여진 상자를 들었다. 그 상자에는 로트번호와 함께 안정화 물질을 섞어 침식방지 처리한 오리지늄 1kg이라고 적혀있었다. 콜로서스는 그 상자를 리아에게 보여주면서 들었다.
"오리지늄. 많음. 하모나이트. 이야기. 많음. 외로움. 오리지늄 절멸 전까지는. 느낄 수 없음."
오리지늄을 보여주며 전혀 외롭지 않다는 듯 말하는 콜로서스를 보며 윽, 하는 짧은 소리를 낸 오니는 이젠 어려워서 모르겠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며 중얼거린다. 자기보다 말을 잘하는 다른 사람들을 데려오는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일단 할말은 해야겠다는 듯 입술을 연다.
선배 역할은 포기하지 않았는지 콜로서스의 호칭으로는 후배를 채택한 체 혼을 내듯 말한다. 물론 고칠 수 있긴 하겠지만, 매번 부셔버리면 분명 회사로서도 곤란할 따름일테니까. 이런건 다음부터는 부수지 않게 선배로서 엄하게 주의를 줘야한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물론 그것이 콜로서스에게 전달이 제대로 되어질지는 알 수 없었지만.
" 그래도, 창고에 있으면 내가 종종 찾아올게. 위험하다고 하니까, 거리를 두고 이야기 하면.. 괜찮을거야, 아마. "
부족한 말재주였지만 이로써 부끄럽지 않은 선배가 되었다 생각하며 옅은 미소를 지은 오니는 알았냐는 듯 콜로서스를 올려다본다.
한숨, 아무래도 이해하지 못했나보다. 그럴 법도 하다. 콜로서스와 같은 하모나이트들은 그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인간 역시도 하모나이트의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한다. 하모나이트의 지성은 탄소기반 유기체에 머무는 신경계로 사고하는 인간의 변덕스럽지만 따뜻한 것이 아닌, 조건과 입력이 동일하다면 무조건 같은 값을 배출하는 차가운 기계의 회로기판 따위에 더 가까우니까 말이다. 적어도 호기심에 있어서는 콜로서스는 비슷했지만, 다른 것은 달랐다.
"오리지늄 왜곡장 전개 위력 시범 중 사고. ㅡ 다음부터는 안 그럴게!"
하지만 창고 문을 함부로 부수면 좋지 않다는 대전제 자체에는 분명히 동의했기에, 그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답을 내놓았다. 오리지늄 처리한 격벽이 박살나서, 만약 오리지늄 분진이 위험수준으로 뿌려진다면.... 그 결과는 오리지늄에 대해 초등학생 수준의 상식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잘 아테니 말이다. 콜로서스는 종종 찾아오겠다는 말에도 "확인, ㅡ 알았어!"라고 짧게 답해서 긍정했다. 거리를 두고 이야기하면 괜찮을 거란 말에는 음... 일단은 인간들 사이에서 '그러려니 한다'로 통하는 자세로 일관하기로 했다.
긍정적인 대답이 돌아오자 흡조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오니는 만족스러움이 담긴 답을 내놓는다. 선뜻 긍정적인 대답을 돌려주는 콜로서스를 마음 속의 후배란에 저장을 한 오니는 이어지는 긍정적인 대답들에 전전긍긍하던 것이 가시는 듯 이내 평상시처럼 무덤덤한 표정과 자세로 돌아온다. 한결 여유가 돌아왔다는 듯 다시 남은 샌드위치를 입에 털어넣은 오니는 그것을 마지막으로 꿀꺽 삼킨다.
" 그러면 여기 수리에 관한 건 내가 보고해둘게. 후배는 푹 쉬도록 해. "
굳이 자신이 보고할 필요는 없었겠지만 선배라고 불린 만큼 이정도 수고는 해도 괜찮을거라 생각한 듯, 자신에게 맡기라고 말한 오니는 다시 휴게실 쪽으로 향하려는 듯 몸을 돌려 발걸음을 옮기려다 멈춰선다. 그리고는 콜로서스를 보며 말을 고르는 듯 입술을 달싹거리더니 천천히 말을 뱉어낸다.
" 다음에 또 보자, 귀요미 후배. "
다음에 또 얼굴을 보게 될 것이라는 여지를 만들어 둘 생각인 듯 차분한 목소리로 마지막 말을 남긴 오니는 창고에 관한 보고를 하기 위해 걸음을 서두르기 시작했다.
"나 새대가리인걸 이제 알았어? 1년동안 몇번이나 마주쳤으면서? 리베리들이 다 그런건 아니지만... 뭐, 그래. 그쪽 용병친구들은 군 태생이라 해도 이상할거 없이 굴긴 하지..."
호박에 줄 좀 긋는다고 다이아몬드가 될수야 없겠다만 다수의 사람이 모이면 나름의 규칙을 짜기마련이었다. 그런 의미에서도 그가 이곳을 이끌고 있기에 이만큼 이뤄낼 수 있던 걸지도 모를일, 그렇게 생각해보면 그의 정체는 이젠 꽉 끼어서 머리 그 자체가 된 것같은 헬멧만큼이나 궁금증 천지겠다.
"소장님 벌써 그 말한지 너댓번은 더 된거 같은데? 항상 그렇게 말하다가도 소리소문없이 뭔가 또 챙겨오잖아."
이쯤 되면 소장이 아니라 셔틀아닌가,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던 그녀는 그가 치료비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금방 납득해버렸다. 확실히 메딕이 있다 해도 병원만큼 좋은 곳은 없더랬다.
"뭐, 틀린 말은 아니네. 그래도 사이비 병원이라도 있는게 어디야? 셸터에서 기약없이 끙끙 앓는 것보단 좀 수상쩍어도 제대로 치료받는게 낫지.
정 감염 위험이라던가 걱정되면 위험한 곳엔 나같은 사람들 보내면 되잖아? 다른 쪽은 어떨진 몰라도 내 주무대는 오염구역 한복판이었으니까,"
이런 발언은 평범한 대원들에겐 위험하기 그지없겠지만 그녀에겐 일상적인 업무나 마찬가지였다. 오리지늄만이 기분나쁘게 널려 주변의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곳에서 멀쩡히 돌아다닐 수 있는 이는 그리 많지 않으니까, 물론 말은 이렇게 해도 담당자인 그가 기각하면 소용없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