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빈의 시선이 돌아간 곳에는 아무 것도 없다. 다만 시선을 되돌릴 때 그의 귓바퀴가 살짝 빨개져 있는 게 보일 뿐이다. 팬 위에서 달아올라 있는 지방들 위에 야채가 와르르 쏟아지자, 기름이 야채를 익히는 고소한 냄새가 등천했다.
"응. 다음번엔 내가 네 옆에서 깨워줘야겠다. 밥은 데워뒀지?"
하고, 성빈은 팬을 솜씨좋게 들까불며 당신을 바라보고 싱긋 웃는다. -그의 성격상, 그가 당신의 방에 당신을 깨우러 올 때라면 오늘 아침처럼 같은 이불 안에서 눈을 뜨는 일이 벌어질 가능성은 아주 낮겠지만, 그는 당신만큼이나 당신과 맺어두고 있는 이 관계를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은 재확인할 수 있으니 나쁠 것은 없겠다.
"호랑이네 집에 가면 카레를 해볼까."
야채를 볶는 것은 금방이었고, 이내 미디엄 레어로 익힌 스테이크에 아스파라거스와 그린빈, 양파가 가니쉬로 곁들여진 풍성한 스테이크 플레이트 2장이 마련되었다.
쩔쩔매고 있는 당신에게 성빈은 아예 얼굴에 웃음기를 숨길 생각 없이 싱글벙글한 채로 농을 던졌다. 그러나 그는 손을 뻗어 당신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며 한 마디를 더 덧붙였다.
"그렇지만 오빠는 아침에 호랑이 얼굴 보고 싶으니까, 호랑이만 괜찮다면 깨워줄게."
부드럽게 머리를 삭삭 쓸어주고 나서야, 성빈은 자기 몫의 포크와 나이프를 집어들고 스테이크를 잘라 먹기 시작했다. 응, 이 정도면 됐네. 혼자 만들어 먹는 것이라면 별 성을 들이지 않고 그냥 대강 익혀서 먹어치웠겠지만, 오늘은 공을 들인 보람이 있어 다행이라고 성빈은 생각했다. 스테이크의 별난 점은 그것이었다. 그냥 단순하게 고기를 불에다 굽는 건데 정성을 들이고 들이지 않고에 따라 티가 팍팍 난다는 것. 그러다 당신이 프라이팬 이야기를 하자, 성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면 프라이팬에 낮은 돈까스 망을 받쳐두고 뚜껑을 덮으면 해결될 거야. 우리 집도 보통은 그렇게 해서 먹는걸."
그러면 이제 카레 만드는 법이나 카레 재료 문제만 해결하면, 다음 번에 성빈을 당신의 집으로 초청하는 데에는 별 문제가 없을 것 같다. 성빈은 다시 식사를 시작했다. 자른 스테이크 조각을 반찬삼아 밥을 먹던 성빈이, 입에 있는 것을 넘기고는 잠깐 가만히 있다가 당신을 보며 한 마디 덧붙였다.
찾았다 인증코드 나야말로 지금 이게 꿈은 아닌지 얼떨떨해. 바로 어제 정주행 한번 해보고 눈물이 핑 돌아서 그냥 잠자리에 누웠는데... 응, 그렇잖아도 혐생 관련해서 고생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 다시 한 번 잘 부탁해. 짤막짤막하게 돌리는 것도 익숙하니까 그 점은 걱정하지 않아도 돼.
>>652 아, 지금 나가봐야 하는구나.. 혹시 언제쯤 돌아올지 대략적으로라도 알려줄 수 있어? 만나는 지점 같은 경우에는 호랑이가 성빈이네에 놀러왔다가 성빈이네 집에 아무도 없어서, 성빈이 방에서 기다리다가, 방에 호랑이가 있는 줄 모르고 비 맞은 생쥐 꼴로 들어온 성빈이가 호랑이 보고 ˚0˚ 하고 놀란다던가.. 아니면 두 사람이 같이 하교하다가 때아닌 급작스런 봄비를 같이 맞았다던가?
아침에 등교 채비를 마치고 대문을 열고 나설 때까지만 해도 하늘이 맑고 햇빛이 눈부셔 봄기운이 완연했기에, 당신과 함께 나온 성빈도 하늘을 올려다보며 "오늘은 좀 덥겠다. 집에 올 때는 마이는 벗어야겠네." 하고 말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시원하게 불던 봄바람이 복선이었을까 점심시간 때에는 하늘이 온통 먹구름으로 뒤덮여 봄비가 후득후득 내렸기에 당신의 반 학우들 중에서 우산을 가져오지 않은 사람들이 울상이 되었으나, 또 수업이 모두 끝나고 학생들이 하교할 때에는 또 비가 그쳐 먹구름 사이로 제법 하늘이 얼굴을 빼꼼 내밀고 있었다.
당신의 일주일 시간표 중에는 성빈과 종례 시간이 같은 날이 있었다. 그런 날이 되면 성빈은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당신에게 문자를 보내 어디서 만나서 같이 가자고 하거나, 혹은 당신의 반에 찾아오곤 했다.
"랑아."
당신의 금색 눈동자와 소년의 짙은 녹색 눈동자가 마주칠 때, 그의 얼굴에는 언제나 그렇듯 익숙하게 따뜻한 미소가 걸렸다. 아직 먹구름이 가시지 않아 음울한 봄의 하늘 아래에서도 소년의 얼굴은 부드러운 온기로 빛나고 있었다.
너무 늦었다아아아8w8!!! 내일을 기다리고 있을게. 굳이 내일이 아니더라도 오랫동안 기다릴 수 있으니까 걱정 말고 호랑주 일 잘 끝마쳤으면 좋겠다. 일단 상황은 저렇게 써뒀는데, 뭔가 이 부분은 잇기 힘들어서 고쳐줘야겠다거나 이 부분이 좀더 구체적이었으면 좋겠다거나 하는 부분이 있으면 말해줘.
전과 다를 것 없이, 창문을 통하여 인사를 하고 등교를 했던 하루. 장호랑 또한 전과 다를 것 없이 수업에는 집중을 하지 않고 창 밖을 보며 언제쯤이야 지루한 수업이 끝날지를 걱정하기만 했다. 지평선을 가리는 산허리 뒤로 시커먼 구름이 조금씩 다가오는 것은 점심시간이 끝나고 나서야 알았다. 비가 내린다는 것은 하교시간 직전이 되어서야 알아버렸고. 여러모로, 너무 늦어서 어찌 할 도리가 없는 상태. 친구들을 보내고 청소도 다 끝난 교실 안에서, 장호랑이 입술을 쭉 내밀고 창 밖을 보았다. 여전히 비, 비, 비. 내심은 최성빈이라는 멋진 남자가 우산이 있다고 둘이 달싹 붙어서 가는 상황을 생각하기도 하다가, 랑아 하고 부르는 소리에 퍼뜩 일어나 고개를 돌렸다.
"오빠!"
아무도 없는 시간대에 감사하며 크게 최성빈을 불러보고 쪼르르 걸어나가 바로 앞에 찰싹 붙었다. 두 눈을 크게 뜨고 성빈의 얼굴을 보다가- 두 손 어디에도 없는 우산의 부재를 발견했다.
"어, 어쩌지 나도 우산 없는데..!"
곁눈질로 창 밖을 보아하니, 금방 끝날 비는 아닌 것 같았다. 시야를 가득 가린 어두운 구름은 저 멀리의 산 너머도 가리고 있었으니까. 단지, 자그마한 바람은 들었다. 날씨도 안좋고 하니까 이대로 비가 그칠 때 까지 같이 있고 싶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