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에서 먼저 깬 쪽은 다름 아니라 장호랑 쪽이었고, 습관처럼 기지개를 펴려다가 자기 몸에 닿는 다른 누군가를 확인하고는 깜짝 놀랐다. 잠은 한방에 날아가고 어쩌다 이런 상황이 되었는지를 고민하던 찰나에 성빈이가 몸을 뒤척였다.
"헉...!"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키려던 시도는 단단히 감긴 팔에 저지되었고, 심장이 쿵쾅거리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지금 시간이 몇 시지, 어쩌다 이렇게 됐지.... 몰래 나갈 수는 없으려나....... 하지만 마지막 수는 물리적으로 불가능 했고 숨을 죽이며 성빈이 일어나기를 기다려야만 했다. 왜냐면 지금 성빈이를 깨울 용기는 없었으니까..
지금까지 꿈인 줄로만 알았던 그것은 현실이었다. 현실이라는 것을 깨닫고 난 이후로도 여전히 성빈의 체취며 온기로 가득한 이불 한가운데가 얄궂기 그지없다. 당신이 품속에서 들썩대자, 꾹 감겨 있던 성빈의 짙은 눈꺼풀이 바르르 떨리며 떠졌다. 깊이감을 담고 반짝이는 녹색의 눈동자가 말없이 당신의 금빛 눈동자와 시선을 맞췄다.
...그러나 그는 품 안에 안긴 당신을 보고 화들짝 놀라거나 성을 내지 않았다. 그저 당신의 어깨에 감긴 팔을 느슨히 풀어서, 당신이 떠날 수 있도록 해주는 것뿐이었다.
당신이 그의 품에서 벗어난다면 그가 곧 자리를 털고 일어나 앉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당신이 그의 품에서 벗어나지 않고 계속 누워 있는다면, 그는 당신에게 말없이 이마를 기대어올 것이다.
눈빛이 얽히고 성빈이 부스스하게 웃자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아무리 서로 오랜 시간을 같이 보냈다지만 이렇게 아침부터 끌어안고 있는 것은 불쾌하지 않을까.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눈을 얇게 뜨고 깜빡였다.
"읏."
이마의 온도가 따듯했다. 성빈의 손은 종종 차가울 때가 있었으나 이불 안이여서, 그리고 머리여서 그런지 전혀 차갑다는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지금 성빈이의 얼굴을 제대로 볼 자신이 없어서 눈을 질끈 감고야 말았다. 발칙한 생각이지만 키스하고 싶어. 이루어지지 않을 생각일 것을 알지만 성빈이가 먼저 와주었으면 좋겠어서 괜시리 몸을 더 웅크렸다.
그러나 당신의 우려와는 다르게 성빈은 어떤 저품이나 불쾌함 따위를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당신의 우려섞인 질문에 오히려 반문을 건넸으니까, 그는 당신에게 이마를 기댄 채로, 가장 가까이 맞닿아 있는 그 녹색의 눈동자 안에는 어떤 꺼림이나 주저함의 기색도 없었다. '주변의 시선' 이라는 것에 주저하고 있었을 뿐, 그가 여기는 그와 당신 사이의 거리는... 어렸던 그 시절부터 지금까지 전혀 멀어지지 않았나 보다. 그는 그저 다시 눈을 감을 뿐이다. 길다란 속눈썹이 곱게 닫힌다.
당신이 눈을 질끈 감자, 문득 성빈의 이마가 당신의 이마에서 툭 떨어지는 게 느껴진다. 오늘의 단꿈은 여기까지일까, 싶을 때 조금 다른 게 당신의 이마에 닿았다. 이마보다 좀더 부드럽고 좀더 말랑한 게, 살며시 톡, 하고 부드럽게 그렇지만 분명하게 당신의 이마를 찍고 떨어져나갔다.
"잘 잤어?"
눈을 뜨면, 태연하게 아침인사를 건넨 소년이 아직 다 떨어져나가지 못한 졸림은 머금은 미소를 옅게 짓는 것이 보일 것이다.
이마에 확실한 감촉이 닿았다 떨어지면 장호랑은 한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 했다. 귀 끝이 빨개질 만큼 너무 선명한 감촉이어서, 얼굴을 들키지 않게 이불 속으로 머리를 집어넣었다. 공교롭게도, 상대의 체취가 더 강하게 나는 곳이러 쿵쿵거리는 심장 소리가 더 커졌을 뿐이지만.
"나, 나는 아무 꿈도 못 꿨어.."
왜냐면 꿈보다 더 좋은 현실을 보냈으니까. 이불을 뒤집어쓴 체 대답을 하다가, 잠결에 몰래 한 고백이 떠오른다. 기억할까. 기억했으려나.
"그...! 오빠 어제 무슨 꿈 꿨어..?"
이불 안에서 얼굴만 조금 내밀고는 성빈이를 바라보며 물어봤다. 설마 꿈이라고 하던 그게 내가 말한 그거라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