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진은 장난감 상자를 뒤져봅니다. 작은 나무블럭, 이미 피에로가 삐져나온 깜짝상자, 장난감 자동차. 좀 더 깊숙히 손을 넣어보니 손에 뭔가 잡히는데요. 천 재질의 통통한 무언가.. 인형인가요?
도진이 그것을 잡아 손을 빼내려는 찰나,
뭔가가 손목을 잡아챕니다. 아주 차가운 것이요.
>>407
사장님은 책상을 조사합니다. 책상 위는 뭔가가 많이 널부러져있네요. 자세히 보니... 어린이가 사용하는 스케치북과 크레파스인가요? 이상한 것은, 크레파스가 하나같이 모두 두동강 나 있네요. 그 중에서도 빨간 크레파스가 유난히 닳아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스케치북에는 [그림일기]라고 적혀 있습니다. 열어 볼까요?
사장님은 스케치북을 열어 봅니다. 어린아이의 글씨로 꾹꾹 눌러 적힌 글씨와 정성들인 그림이 돋보이는 그림일기네요.
5월 26일
(집과 나무, 그리고 집 옆에서 가족 한 쌍이 웃고 있는 그림)
새 집으로 이사를 왔다. 내가 아파서, 여기 있으면 빨리 나을거라고 아빠가 그랬다. 전에 다니던 유치원에 이제 못 간다고 해서 슬펐다. 그렇지만 아빠가 다 나으면 유치원에 가서 친구들이랑 다시 놀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얼른 낫기로 아빠랑 약속했다.
6월 3일
(방 안에 있는 여자아이와 검게 칠해진 무언가. 인형놀이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새 친구가 생겼다. 이름은 (검게 마구 칠해져 있다)다. 나 혼자 놀고 있는데 갑자기 나와서 놀랬다. 그래서 누구냐고 물어보니까 엄마랑 아빠랑 내가 이사오기 전부터 여기 계속 있었다고 했다. 나랑 친구를 하고 싶다고 해서 좋다고 했다. 우리 집 주변에 내 친구는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매일매일 자주 놀자고 약속했다. 기분이 좋았다.
6월 7일
(엄마와 함께 웃으며 쿠키를 만드는 그림. 검은 무언가가 옆에 같이 있다)
오늘은 엄마랑 같이 쿠키를 만들었다. 밀대로 반죽을 미는 건 힘들었지만 쿠키 틀로 찍는 게 재미있어서 괜찮았다. 사실 쿠키를 (검게 칠해져 있다)랑 같이 만들고 싶었는데, (검게 칠해져 있다)가 자기는 못 한다고 했다. 그리고 엄마랑 아빠같은 어른들한테는 마법 때문에 자기가 안 보인다고 했다. 그래서 그냥 내가 만든 쿠키를 (검게 칠해져 있다)랑 내 방에서 나눠먹기로 했다.
몸이 아파졌다. 머리가 아파서 하루종일 누워 있었다. 더워서 이불 덮고 있기 싫은데 엄마가 나으려면 덮어야 한다고 해서 꾹 참았다. (검게 칠해져 있다)는 옆에서 나를 계속 보고 있다. 놀고 싶다고 했더니 할 일이 있다고 나중에 놀자고 했다. 내가 아파서 그런 걸까? 빨리 나아야겠다.
6월 25일
(그림이 둘로 나뉘어 있다. 여자아이가 울고 있는 그림, 여자아이와 검은색 물체가 같이 웃고 있는 그림.)
오늘은 머리가 너무 아파서 조금 울었다. 그런데 (검게 칠해져 알아볼 수 없다)가 만지니까 괜찮아졌다. 그런데 그 뒤가 계속 기억이 안 난다. 계속 생각해내려고 했는데 잘 모르겠다. 엄마는 내가 계속 누구랑 얘기하고 돌아다녔다고 했다. 기분이 이상했다.
6월 30일
(어린 여자아이가 웅크려서 울고 있다. 검은색 물체는 근처에서 입이 찢어져라 웃고 있다. 검은 물체의 눈과 입이 새빨갛다.)
(검게 칠해져 있다)가 계속 놀자고 한다. 나는 놀기 싫은데 계속 놀자고 한다. 자기랑 같이 안 놀면 계속 아플거라고 했다. 그래서 저리 가라고 했더니 자꾸 놀자고 귀에 속삭인다. 나는 무섭고 머리도 아파서 자꾸만 눈물이 났다. (검게 칠해져 있다)는 계속 옆에서 웃고 있다. 자고 싶은데 계속 나를 괴롭힌다. 자꾸 놀자고 한다.
나랑 놀자. 나랑 놀자. 나랑 놀자. 나랑 놀자. 나랑 놀자. 나랑 놀자. 나랑 놀자. (노트 한 장을 빼곡하게 채웠다) 나랑 안 놀아 주면 (빨갛게 선이 죽죽 그어져 있어서 알아보기 힘들다.)할 거야.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머리가 따라가지 못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리라. 강한 아귀로 제 손목을 잡아채는 그것에, 그는 무어라 말도 나오지 않음을 느낀다. 이건 시체? 하지만 이렇게 살아 움직이는데?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불쾌감이 세포 하나하나를 자극해 오고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게 아니란 걸 그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 여기까지 와서 이곳의 더러운 물건들도 만졌겠다, 사람인지 시체인지 모를 거라고 만지지 못할 것도 없지. 이미 손도 잡혔으니 이것보다 더 최악은 없을 것이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가 낮게 신음하며 제 손목을 잡아챈 찬 손의 손목을 똑같이 잡아 쥐고는 있는 힘껏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도진은 끝없는 불쾌감 속에서, 손에 잡힌 무언가를 세차게 끌어당깁니다. 그리고 그것은 의외로 손쉽게 끌려나왔습니다.
털 색이 바랜, 낡은 곰인형이요. 마치 거짓말처럼, 도진의 손에는 방금 잡아챘던 차가운 손목의 촉감이 아니라 인형 특유의 보송하고 푹신한 감각만 남아 있습니다. 곰인형은 과거에 많은 손을 탄 듯 여기저기가 헤져 있습니다. 그런데, 배가 유난히 볼록하네요. 더듬어 만져 보면 딱딱한 이물감이 느껴집니다. 배에 뭔가가 들어 있나 보네요.
>>425
사장님은 스케치북을 덮었습니다. 탁. 그런데, 뭔가가 떨어지네요. 도화지를 오려놓은 것 같은 작은 종잇조각입니다. 종잇조각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