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는 별 쓸모가 없어 보입니다. 심지어 지하라서 능력도 봉인된 것과 비슷한 상태네요... 아, 기사님이 집은 초콜릿이 굉장히 맛나보입니다. 이비가 마신 생수도 목넘김이 좋은 고급품이네요. 돌아갈 때 미니바에 있는 것들을 선물로 들려주면 좋을 것 같아요.
무빙워크가 없었기 때문에 여러분은 길을 따라 열심히 걸어갑니다. 다행히 길은 그리 길지 않았고, 바닥이나 벽이나 천장에서 수상한 일이 일어나지도 않았습니다. 길 끝에 거의 다다르자, 어떤 여성이 여러분을 맞이합니다.
"'하얀 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어라, 차에 타기 전에 재현이 능력으로 본 그 사람이네요! 높은 사람처럼 보이는 제복이며, 뒤에 있는 비서 같은 사람 하며... 아무래도 여기 책임자 같죠?
"설명할 것이 많습니다. 수상한 차를타고 여기까지 오셨다는 건, 길어질지도 모를 설명을 들어줄 수도 있다는 뜻으로 이해해도 되겠지요. 사무실로 안내하겠습니다. 그동안 질문이 있으시다면 가는 길에 받겠습니다."
그는 여러분과 다섯 발자국 정도의 거리를 두고서 앞서 걸어갑니다.
가는 길에 여러분은 여러가지 시설과 마주합니다. 동물의 피를 뺀다거나, 누군가에게 수상한 약물을 주사하고 반응을 기록하는 사람이라거나... 아무리 봐도 수상한 과학 단체지만 다행인 사실이 있다면, 지난번처럼 인간과 동물을 반반 섞은 것 같은 괴이한 생명체가 둥둥 떠 있는 커다란 시험관 같은 건 없었다는 겁니다.
어느 정도 걷자, 비서로 추측되는 사람이 '관리자 사무실'이라 적힌 문을 엽니다. 그는 비서에게 고개를 끄덕이고서 안으로 들어가 자기 자리에 앉습니다. 여러분은 큰 원형 나무 테이블에 딸린 바퀴 달린 의자에 앉으면 되겠네요. 비서가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길어질지도 모르는 설명이라? 우리를 리무진까지 태워서 여기에 데리고 온 데에는 나름대로의 중요한 사정이 있다는 소리일까? 여전히 경계를 거두지 않은 채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여기저기서 풍기는 약품 냄새따위에 코를 킁킁거렸다. 저번같은 실험체는 없지만, 혹시 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비윤리적인 실험을 진행하고 있을지 누가 알까! 언뜻 눈에 띈 주사기 끝이 유난히 날카로워 보이는 듯 해 몸을 가볍게 떨었다.
이윽고 관리자 사무실로 안내된 뒤 비서에게서 음료를 권유받았지만, 가볍게 거절했다. 굳이 무언가 마시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는... 돌려 말할 필요도 없겠죠. 인공적으로 아니마를 만드는 실험을 하는 공간입니다. 아, 대학교에서 보셨던 그런 것과는 다릅니다. 이런 일을 하다보면 가끔 다른 쪽으로 빠져버리는 사람들도 있죠. 그들은 이미 저지른 일에 대한 댓가를 받았습니다. 물론 여러분의 주의를 끌기 위해 그들이 썼던 수단을 썼던 건, 정말 죄송한 일입니다만, 다른 방법도 없었습니다."
비서는 여러분 앞에 주문한 음료를 내려놓습니다.
"하하, 어디서 났긴요. 저금한 걸 다 깨먹는 중이죠." "월급 안 받아도 하겠다는 사람들이 많아서 다행입니다." "그러게요."
그는 비서와 주거니 받거니 대화를 나누다가, 물 한 잔을 마시고 말을 잇습니다.
"그럼... 어디서부터 설명할까요. 아, 그 전에 혹시 진짜 앰플을 갖고 계시다면 돌려받고 싶습니다. 위험한 물건입니다. 여러분 같은 아니마라면 더더욱. 폐기 처분을 진작에 했어야 했는데 말입니다... 이쪽으로 들어온 건 다 폐기했고, 가지고 계신 것이 마지막입니다."
"의심하시는 것도 무리는 아니죠. 확실히 그건 아니마라고 볼 수 없는 존재였으니까요. 좋습니다. 긴 설명 전에 먼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우린 다 ㄷㅜ..." "험한 말은 자제하셔야죠." "...죽을 위기입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더 많은 아니마가 필요하고, 우리들은 그걸 위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그 앰플은 이 시설에서 일하던 ㅁ..." "이번 건 그냥 말하셔도 될 것 같네요." "미친 과학자가 연구 자료를 빼돌려, 연이 있는 곳에 새로운 연구실을 차려서 만든 겁니다. 뭘로 댓가를 지불했는지는 모르지만 안에서 설비 등을 빼돌린 자와 주고받은 편지 내용으로 추측해봤을 때, 진행하는 연구를 토대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아니마는 아니지만 귀여운 동물 귀나 꼬리를 가질 수 있게 만드는 사업을 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아니면 반려동물이 사람 말을 할 수 있게 만든다든지."
......그게 실제가 되었다면 돈은 많이 벌었겠네요. 그는 기사님을 보며 말합니다.
"돌려주고 싶지 않으시다면 계속 갖고 계셔도 됩니다. 단, 그 누구에게도 닿으면 안 되고, 특히 아니마는 더더욱 안 됩니다. 또한 앰플을 깨서 내용물이 외부와 접촉하게 만들어도 안 됩니다. 아니마라면 기화한 내용물과 잠깐 접촉해도 신체에 이상이 생길 가능성이 있습니다. 폐기처분을 하시겠다면 현장을 직접 보실 수 있으니 돌아가실 때까지 고려해주십시오."
설명을 들어보니 대체 어떻게 세상에 나왔는지 모를 위험한 물건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졌습니다. 이과... 대체 무슨 일을 저지르고 있는거야......
"그럼 이제 긴 설명을 해볼까요. 비밀리에 현재 진행형으로 진행되고 있는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그 프로젝트의 목표는 '다른 세계와 통하는 문을 여는 것'입니다. 물론 다른 세계가 없을 수도 있지만, 신화에 따르자면 악귀들은 다른 세계에서 이 세계로 건너왔고, 그게 사실이라면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는 뜻이 되기 때문에 프로젝트를 만든 사람들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나봅니다."
하여간 높으신 분들의 판단이란!
"그리고 놀랍게도 다른 세계는 실제로 존재합니다. 확인을 마친 우리들은 뒤에 무엇이 존재할지 모를 검은 문을 여는 프로젝트라는 뜻에서 그때까지만 해도 '다른 세계 프로젝트'라는 가칭으로 불리던 프로젝트에 '검은 문 프로젝트'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는 물을 조금 마십니다... 잠깐만요, '우리들'이요?
"하지만 신화처럼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면, 그건 그 다른 세계에 또다른 악귀들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솔직히...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몇 차례 열쇠구멍으로 엿본 모습들은 악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첫 번째 재앙 때와 지금은 전력차가 너무 큽니다. 문이 열리고, 통제에 실패한다면 세계는 아수라장이 되는 겁니다. 저는 그런 의견을 몇 번이나 말했지만 그들은 듣지 않았죠. 결국 저는 저와 의견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함께 프로젝트에서 빠져나와 '하얀 문'을 만들었습니다."
허. 실소가 터져 나온다. 그래서, 지금 그 미ㅊㅡ돌아버린 과학자가 겨우 그런, 악세사리 즈음으로 사용될 귀와 꼬리같은 것을 만들려다 그 사태가 일어난 거다? 그런 것 치고는 ‘귀여운’ 정도가 아니던데. 뭣도 모르고 연구에 희생되었던 피해자들의 모습이 생각나는 듯 해 이마를 가볍게 짚었다. 세상에 그런... 악마같은 자식이. 그딴 연구를 위해서 희생된 사람들의 지인들은? 혹여나 그를 찾고 있을지도 모르는 가족들은? 끓어오르는 열을 애써 식히며 마음 한 구석에 꾹꾹 눌러 담으며 남은 설명에 집중하기로 한다.
“그래서, 그 검은 문이란 거랑, 인공 아니마 연구는 무슨 관계가 있는 거에요?”
그들을 통제하기 위해 아니마의 힘이 필요하다는 건 또 어떤 의미고요. 여러모로 머리가 복잡해지는 것 같아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가 손을 뗐다.
"감사합니다. 이제 이 위험한 물질이 드디어 세상에서 사라지게 되겠네요. 혹시 원하신다면 폐기 과정을 직접 보실 수 있습니다."
그는 앰플을 받아서 비서가 건네는 작은 금속 상자에 넣습니다. 미리 준비하고 있던 것처럼, 상자 속 완충제의 모양이랑 앰플 모양이 딱 들어맞습니다. 이러면 떨어뜨려도 깨질 일은 없겠네요.
"그렇습니다. 그 시절에는 용이나 기린 같은 환상종이 있었고, 그들이 강한 힘으로 최전선에서 싸웠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날개짓으로 폭풍을 불러 일으키고 울음소리로 번개를 떨어뜨리던 그들은 없고, 그나마 남아 있는 아니마들도 멸종이라는 이름 아래 소멸하여 계속 줄어드는 상황이지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인공적으로라도 아니마를 늘려서 제 2의 재앙에 대비해야 합니다."
하기야 지금 용 군단 같은 게 있었으면 이런 연구도 안 했겠죠. 그리고 멸종은... 그렇네요. 지금 여러분이 대화하고 있는 이 순간에도 어떤 동물종의 마지막 개체가 사망하고 그에 해당하는 아니마가 소멸하고 있을 겁니다.
"윗 사람들의 생각이야 제가 아나요. 아마 다른 세계의 물질 같은 걸 독점해서 어떻게 해보려는 생각 같았는데 말입니다... 몇 번 대화는 해봤지만, 모든 생각이 돈으로 흐르는 것 같았습니다. 통제라... 글쎄요, 제가 나오기 전까지는 몇 겹으로 문을 감싸서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했는데 지금은 어떠려나 모르겠군요. 예, 저도 그렇기 때문에 초반에는 검은 문 프로젝트를 박살내려고 했었습니다. 여러가지 시도가 모두 실패한 결과가 지금 이거라고 보시면 알맞습니다."
여러분의 말에 그는 여러가지 감정이 섞인, 그리고 뭔가 기운이 많이 빠진 것 같은 표정을 짓습니다.
"이쪽에서 저쪽이든, 저쪽에서 이쪽이든, 단방향이면 상관이 없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서로를 관측하게 되면 그건 이미 좌표가 찍혔다고 봐야 합니다."
아이고 맙소사 그렇게 됐으면 우린 정말 망했어요...!
"사람 쪽은 신청자에 한해서 실험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물 쪽은 의견을 받을 수 없으니 끝까지 최대한 편안하게 있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는 있습니다. 그리고 혼의 발현인 아니마를 인공적으로 만드는, 불가능해야 할 실험임에도 불구하고 성과는 꾸준히 있으니 두 분 신께서 이 실험을 지지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지만 할 게 아니라 직접적인 뭔가를 보여줬으면 하지만 신이 다 그렇지요. 지금은 신화가 만연하던 시대가 아니니 그러려니 합시다. 의지만 보여줘도 어디예요.
"지난 사건들로 인하여 여러분이 일정 이상 관련되어버습니다. 아마 검은 문쪽에서도 여러분에 대해서 알고 있을 거고, 이건 신입 분들도 예외는 아닐 겁니다. 저는 설명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느꼈기 때문에 여러분을 여기로 모신 겁니다. 여러분은 싸웠고, 보았고, 알았기 때문에 들을 권리가 있습니다."
오늘 초청은 자세한 설명, 그리고 위험한 앰플 회수 및 폐기가 목적이라는 뜻으로 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