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소 앞에 검은 리무진 한 대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 운전석에는 아무도 없군요. 사실 운전석 의자 자체가 없어요. 뭔가 많이 없는 차네요. 아, 다른 차와 다른 부분이 보입니다. 핸들 중앙에 원래 있어야 할 경적 대신 무언가가 장착되어 있습니다. 저건... 터치가 가능한 액정 화면인걸까요...? 파란 배경에 '코드를 스캔해주세요.'라는 문구만 검은 글자로 떠 있습니다. 아무래도 코드 같은 무언가를 화면에 대야 움직이는 모양입니다.
사람이 편하게 앉을 수 있게 되어 있는 뒷좌석에는 카드 한 장이 있습니다.
'초대장을 스캔해주시기 바랍니다.'
어제 발견한, 이상한 다면체들을 퍼즐처럼 맞춰서 얻은 그 초대장 말하는 거겠죠? 그걸 스캔해야 움직이나보네요.
그런데 이제와서 말하기도 좀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진 않지요? 이 차, 타도 되는 걸까요...?
이비는 신기한 듯 손톱 끝으로 유리창을 톡톡 두드려보다 금새 물러났다. 신기한 건 신기한 거지만, 지금까지 겪었던 사건들이 머릿속에 스치며 작은 불안감을 자아낸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단순한 보물찾기일 가능성은 절대로 없을 것 같고, 우리에게 어떤 속셈으로, 뭘 원해서 접근한 걸까? 역시 아니마 실험사건과 관계되었던 저번의 그 앰플을 원하는 걸까? 본능적인 거부감에 미간을 찌푸리며 입술을 비죽거렸다.
“굉장히 수상한 거 다들 느끼시죠~? 어쩐지 기분 나빠요!”
그래도 사건을 파헤치려면 탑승하는 수 밖에 없나~. 고민하는 얼굴로 탑승석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와! 하고 탔다가 영원히 고통받는 실험체가 되는 건 아닐까. 아니, 이렇게 대놓고 보내온 걸 보면 또 그렇지는 않지 않을까? 아니, 그래도 사람을 그렇게 여기는 막 되어먹은 사람들인데. 혼란스럽다.
재현의 능력으로 차를 한 번 봅시다! 음... 어떤 사람이 차 안을 손대고 있습니다. 아, 사물의 입장에서 읽는 능력이니 재현을 손대고 있다고 생각해도 되겠군요. 남성인지 여성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키는 꽤 큽니다. 높은 위치에 있는지 옷에서 고급스러운 느낌이 납니다. 그는 핸들을 마지막으로 확인하고 밖으로 나가고, 여기서 능력이 끊깁니다. 차 안에 일정 속도 이상으로 올라가면 폭☆8하는 폭탄 같은 건 없나보군요! 다행입니다.
무지하게 수상한 자동차지만 여기까지 온 이유도 있을 거고, 어차피 여러분은 휘말릴 때까지 휘말린 상황이니 끝까지 가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거라 생각합니다. 물론 갔다가 그대로 납치로 이어져 실험체가 될 수도 있고, 장기가 털릴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건 그냥 가장 나쁜 상황을 가정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아니마니까 웬만해서는 빠져나올 수 있을 겁니다. 차 안에 비치된 음료나 과자에 수면제 같은 것도 없을 거구요. 아마도요.
"영 찜찜한 게 사라진 건 아니지만, 그래도.. 생각해 보니 우리를 생포하고 싶었으면 이렇게 모셔가듯이 하진 않았겠지요?"
어디까지나 제 추측이지만, 부디 들어맞아서 별 일 없었으면 좋겠네요~. 넋두리하듯 중얼거리며 사무소 인원들이 한두명씩 자동차에 탑승하는 것을 확인하고서는, 동료들을 따라 느릿하게 몸을 싣기로 했다. 어쩌면 대학교 사건과 같이 비윤리적으로 실험당하는 사람들이 아직까지 남아있을 수도 있지. 조금 긴장한 듯 몸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끼며, 핸들을 응시했다. 목적지에 가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일련의 사건들이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일까.
수상한 흔적 같은 건 딱히 없는 것 같습니다. 안은 생각보다 깨끗하고, 넓고, 발 닿는 곳에 깔린 천은 푹신하며, 리무진 내 미니바에 있는 음료 및 간식들은 하나같이 맛나보입니다. 설마 가는 길에 빼먹는다고 돈을 청구하진 않겠지요?
안 가고 싶어보이는 레온, 산책 나가는 리트리버 같은 재현, 무슨 일 생기면 다 때려부술 것 같은 기사님에 마지막으로 희망적인 생각을 하는 이비까지 착석하고... 핸들은... 음, 어쨌든 누군가는 핸들에 달린 기계에 초대장을 스캔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넘어갑시다.
차는 부드럽게 출발합니다. 하지만 목적지를 알려주거나, 목적지까지 얼마나 걸린다는 안내방송은 나오지 않네요. 다만 밖을 보면, 대중적인 길을 그다지 이용하지 않는다는 사실 정도는 알 수 있을 겁니다. 이렇게 좋은 리무진이 비포장 도로를 달린다니! 이건 정말 차에 대한 모욕이 아닐까요? 다행히 비포장 도로를 달리고 일부러 긴 길로 간다고 해서 여러분이 불편해지는 일은 없는 것 같습니다. 차가 꽤 좋군요.
30~40분 정도 달리던 리무진은 복잡한 공장 지대를 지나 어딘가로 향하더니... 갑자기 아무 것도 없는 장소에 멈춰섭니다. 여기가 목적지인 걸까요? 아무 것도 없는데? 설마 우릴 여기 갖다 버리려고 한 수작인걸까요? 다행히 그런 건 아니었습니다. 차가 올라가 있는 땅이 천천히 밑으로 내려갑니다. 마치 엘리베이터 같습니다.
죽 내려가서 마침내 바닥에 닿자, 달리느라 자동으로 닫혔던 차 문이 열립니다. 여긴 통로 같습니다. 차에서 내린 다음 걸어서 오세요, 라는 뜻이겠지요. 불은 밝고 걷기 불편한 턱이나 돌멩이 같은 건 없어보입니다. 길은 깨끗합니다. 여러분이 모두 내리면 차는 알아서 주차장으로 갈 겁니다.
이비는 리무진 내에 비치되어 있던 생수 한 병을 들고 이리저리 돌려 보며 이걸 먹어도 될지, 먹으면 안 되는걸지 한참 생각했다. 비용은 둘째 치고서라도 뭔가 이상한 게 들어 있지는 않을지 걱정이 되었던 탓이다. 왜, 있잖아요. 수면제라던지 독약이라던지~! 당장 효과가 나타나지 않더라도 나중에 중요한 때에 갑자기 쓰러지고, 그러면 어떡해. 홀로 머릿속으로 한참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사투를 벌이다가, 결국은 따악 한 모금만 마시고 제자리에 돌려 놓는다.
“오~. .......수상한데!”
뭐야, 뭐야? 액션판타지 영화 도입부야? 실로 거대한 단체의 지하본부같은 통로를 바라보면서, 미심쩍은 눈빛으로 발밑을 주의하며 걷기 시작했다. 갑자기 바닥이 덜컹 꺼진다던가, 벽이 좁혀진다던가, 천장이 다가온다던가!
지도는 별 쓸모가 없어 보입니다. 심지어 지하라서 능력도 봉인된 것과 비슷한 상태네요... 아, 기사님이 집은 초콜릿이 굉장히 맛나보입니다. 이비가 마신 생수도 목넘김이 좋은 고급품이네요. 돌아갈 때 미니바에 있는 것들을 선물로 들려주면 좋을 것 같아요.
무빙워크가 없었기 때문에 여러분은 길을 따라 열심히 걸어갑니다. 다행히 길은 그리 길지 않았고, 바닥이나 벽이나 천장에서 수상한 일이 일어나지도 않았습니다. 길 끝에 거의 다다르자, 어떤 여성이 여러분을 맞이합니다.
"'하얀 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어라, 차에 타기 전에 재현이 능력으로 본 그 사람이네요! 높은 사람처럼 보이는 제복이며, 뒤에 있는 비서 같은 사람 하며... 아무래도 여기 책임자 같죠?
"설명할 것이 많습니다. 수상한 차를타고 여기까지 오셨다는 건, 길어질지도 모를 설명을 들어줄 수도 있다는 뜻으로 이해해도 되겠지요. 사무실로 안내하겠습니다. 그동안 질문이 있으시다면 가는 길에 받겠습니다."
그는 여러분과 다섯 발자국 정도의 거리를 두고서 앞서 걸어갑니다.
가는 길에 여러분은 여러가지 시설과 마주합니다. 동물의 피를 뺀다거나, 누군가에게 수상한 약물을 주사하고 반응을 기록하는 사람이라거나... 아무리 봐도 수상한 과학 단체지만 다행인 사실이 있다면, 지난번처럼 인간과 동물을 반반 섞은 것 같은 괴이한 생명체가 둥둥 떠 있는 커다란 시험관 같은 건 없었다는 겁니다.
어느 정도 걷자, 비서로 추측되는 사람이 '관리자 사무실'이라 적힌 문을 엽니다. 그는 비서에게 고개를 끄덕이고서 안으로 들어가 자기 자리에 앉습니다. 여러분은 큰 원형 나무 테이블에 딸린 바퀴 달린 의자에 앉으면 되겠네요. 비서가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길어질지도 모르는 설명이라? 우리를 리무진까지 태워서 여기에 데리고 온 데에는 나름대로의 중요한 사정이 있다는 소리일까? 여전히 경계를 거두지 않은 채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여기저기서 풍기는 약품 냄새따위에 코를 킁킁거렸다. 저번같은 실험체는 없지만, 혹시 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비윤리적인 실험을 진행하고 있을지 누가 알까! 언뜻 눈에 띈 주사기 끝이 유난히 날카로워 보이는 듯 해 몸을 가볍게 떨었다.
이윽고 관리자 사무실로 안내된 뒤 비서에게서 음료를 권유받았지만, 가볍게 거절했다. 굳이 무언가 마시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는... 돌려 말할 필요도 없겠죠. 인공적으로 아니마를 만드는 실험을 하는 공간입니다. 아, 대학교에서 보셨던 그런 것과는 다릅니다. 이런 일을 하다보면 가끔 다른 쪽으로 빠져버리는 사람들도 있죠. 그들은 이미 저지른 일에 대한 댓가를 받았습니다. 물론 여러분의 주의를 끌기 위해 그들이 썼던 수단을 썼던 건, 정말 죄송한 일입니다만, 다른 방법도 없었습니다."
비서는 여러분 앞에 주문한 음료를 내려놓습니다.
"하하, 어디서 났긴요. 저금한 걸 다 깨먹는 중이죠." "월급 안 받아도 하겠다는 사람들이 많아서 다행입니다." "그러게요."
그는 비서와 주거니 받거니 대화를 나누다가, 물 한 잔을 마시고 말을 잇습니다.
"그럼... 어디서부터 설명할까요. 아, 그 전에 혹시 진짜 앰플을 갖고 계시다면 돌려받고 싶습니다. 위험한 물건입니다. 여러분 같은 아니마라면 더더욱. 폐기 처분을 진작에 했어야 했는데 말입니다... 이쪽으로 들어온 건 다 폐기했고, 가지고 계신 것이 마지막입니다."
"의심하시는 것도 무리는 아니죠. 확실히 그건 아니마라고 볼 수 없는 존재였으니까요. 좋습니다. 긴 설명 전에 먼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우린 다 ㄷㅜ..." "험한 말은 자제하셔야죠." "...죽을 위기입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더 많은 아니마가 필요하고, 우리들은 그걸 위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그 앰플은 이 시설에서 일하던 ㅁ..." "이번 건 그냥 말하셔도 될 것 같네요." "미친 과학자가 연구 자료를 빼돌려, 연이 있는 곳에 새로운 연구실을 차려서 만든 겁니다. 뭘로 댓가를 지불했는지는 모르지만 안에서 설비 등을 빼돌린 자와 주고받은 편지 내용으로 추측해봤을 때, 진행하는 연구를 토대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아니마는 아니지만 귀여운 동물 귀나 꼬리를 가질 수 있게 만드는 사업을 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아니면 반려동물이 사람 말을 할 수 있게 만든다든지."
......그게 실제가 되었다면 돈은 많이 벌었겠네요. 그는 기사님을 보며 말합니다.
"돌려주고 싶지 않으시다면 계속 갖고 계셔도 됩니다. 단, 그 누구에게도 닿으면 안 되고, 특히 아니마는 더더욱 안 됩니다. 또한 앰플을 깨서 내용물이 외부와 접촉하게 만들어도 안 됩니다. 아니마라면 기화한 내용물과 잠깐 접촉해도 신체에 이상이 생길 가능성이 있습니다. 폐기처분을 하시겠다면 현장을 직접 보실 수 있으니 돌아가실 때까지 고려해주십시오."
설명을 들어보니 대체 어떻게 세상에 나왔는지 모를 위험한 물건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졌습니다. 이과... 대체 무슨 일을 저지르고 있는거야......
"그럼 이제 긴 설명을 해볼까요. 비밀리에 현재 진행형으로 진행되고 있는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그 프로젝트의 목표는 '다른 세계와 통하는 문을 여는 것'입니다. 물론 다른 세계가 없을 수도 있지만, 신화에 따르자면 악귀들은 다른 세계에서 이 세계로 건너왔고, 그게 사실이라면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는 뜻이 되기 때문에 프로젝트를 만든 사람들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나봅니다."
하여간 높으신 분들의 판단이란!
"그리고 놀랍게도 다른 세계는 실제로 존재합니다. 확인을 마친 우리들은 뒤에 무엇이 존재할지 모를 검은 문을 여는 프로젝트라는 뜻에서 그때까지만 해도 '다른 세계 프로젝트'라는 가칭으로 불리던 프로젝트에 '검은 문 프로젝트'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는 물을 조금 마십니다... 잠깐만요, '우리들'이요?
"하지만 신화처럼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면, 그건 그 다른 세계에 또다른 악귀들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솔직히...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몇 차례 열쇠구멍으로 엿본 모습들은 악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첫 번째 재앙 때와 지금은 전력차가 너무 큽니다. 문이 열리고, 통제에 실패한다면 세계는 아수라장이 되는 겁니다. 저는 그런 의견을 몇 번이나 말했지만 그들은 듣지 않았죠. 결국 저는 저와 의견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함께 프로젝트에서 빠져나와 '하얀 문'을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