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일지도 모르잖나." 30대가 그리운 말일세. 라고 말하며 빙글빙글 도는 차 키를 운전을 하겠다는 말에 잠깐 바라보긴 하지만
"괜찮겠나?" 라는 짧은 물음과 함께 가볍게 차 키를 넘겨줍니다. 그러고보니 사장님 차가 뭐였지. 람뭐시기였나. 벤 뭐시기였나 롤 뭐시기인가.. 포 뭐시기인가.. 어쨌거나, 그런 '비싼' 차를 몰라고 가볍게 말하는 사장님을 봐도 긁으면 뭐 어떻겠나. 라며 대수롭잖게 말할지도요.
키를 받았다. 키에 박힌 로고가 장난 아니게 위압감을 뿜는다. 어지간한 담력이 아니었다면, 보통 사람은 키의 무게를 못 이기고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을 거다.
다행히 '일 모드'로 스위치가 들어간 토토르트 아우렐리우스는 그렇게 허당이 아니다. 5년이나 사무소에서 밥벌레 노릇을 했으니, 람...? 벤...? 아무튼 이... 외제차의 운전대를 잡는다고 긴장하는 일은 없었다.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하지 않는가. 휠 있고, 기어 있고, 안전벨트 있고. 대부분의 자동차와 비슷하다. 일단은.
"그렇다네. 다만 의뢰인의 작업장 근처에 주차장이 있다 하니 거기에 주차해 두도록 하는 게 낫겠군"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하고는 주차장도 대충 검색해 봅니다. 그렇게 간다면.. 의뢰인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사장님이..아니 사장님은 들어가고도 남고 토토르트도 웅크리고 들어가면 들어갈 것 같은 잼을 끓이는 냄비를 들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오늘 할 작업은.. 크게는 세가지네요!" 과일손질, 잼만들기, 포장으로요! 라고 말하며 과일은 세~네 종류만 할 생각입니다! 라는군요. 살구, 체리, 샤인머스캣, 복숭아.
"작은 과도가 보이는 걸 보니 그런 모양이군." 과도를 들고 얼굴을 비춰 보는 사장님. 체리를 잘라서 씨를 제거 후 냄비에 던져넣기. 작업 자체는 간단한 편이지만(포도씨 제거나 사과나 복숭아 깎기, 티스푼으로 씨 떠내기 보다야.) 체리의 크기가 작다 보니 저걸 다 채우려면..이 가장 큰 걸림돌일지도 모릅니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나." 기계적으로 체리를 자르며 사장님이 토토에게 묻네요. 자금사정이라던가. 집이라던가.. 그런 것도 포함되려나..
둘이서 체리를 엄청 들이붓습니다. 뭐.. 설탕도 들어가야 하니, 가득 채우진 않겠지만 토토르트가 들어가도 될 것 같은 곳에 체리를 어느 정도 채우려면 최소 10키로는 잘라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고보니 예전에 체리 살 때 900그람인데 비닐봉지 하나에 쏙 들어갔던가.. 그리고 씨랑 줄기도 포함일테니..(멍댕) 아니 이건 넘어가고.. 하다보니 채워지긴 하겠죠. 질문에 답하는 토토르트를 봅니다.
"그나마 다행이지 않은가." "어디서 털리진 않았으니."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러고보니 토토르트 군은 숙소던가? 라고 가볍게 물어봅니다. 비자금이나 통장이 있다는 건 관리를 하고 있다는 거니..
"통장이 마이너스인 적이 있었던 아니마만 알죠. 내가 손에 들고 있는 돈이 전부 내 돈일 때의 쾌감은."
투명한 마스크에 가려 있는 입이 실없이 웃었다. "솔직히 숙소에 사는 게 더 편하잖아요. 출근하느라 안 귀찮고. 원룸에 틀어박혀 사느니, 사무소 건물에 방값 내고 살 겁니다."
단순한 계산으로 토토의 몸 부피만큼 체리를 깎아서 넣는다면, 체리가 토토의 살이랑 무게가 같다는 가정 하에 6~70kg를 깎아야 한다는 말이 되지만... 사이사이 빈 공간 같은 것을 생각하면 그만큼은 아닐 것이다. 나이가 들어 머리가 굳은 토토는 여기까지만 계산하기로 했다.
"뭐, 내 대업을 이루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일 아니겠어요. 그때까진 착실히 일이나 하는 거죠."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입 다물길 잘한 것 같다. 높은 곳에서 떠드는 거라면 괜찮을 텐데 뭘 그리 유난이냐 할 수도 있겠지만, 유황앵무의 목청은 만만하게 볼 데시벨이 아니다! ……기껏 입을 다물었건만 머릿속이 근본부터 잔뜩 시끄러웠다. 생각만으로 열심히 재잘거리던 시즈카는 자동차 시동 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 잘은 모르겠지만 이것 하나만은 확실해 보였다. 그러니까 물구나무 서서 엉덩이로 박수 치면서 딱 봐도 저 사람이 이번 사태의 원흉인 듯싶다!
시즈카는 푸드덕거리며 내려가서 해리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당연하게도 설명의 8할이 쓸데없이 긴 말("아니 그러니까요 웬 차가 딱 보이는데 뭔가 딱 봐도 내가 나방맨인데요~ 하게 생긴 거 있죠? 그나저나 차 저렇게 꾸며놓는 거 불법 튜닝 아니예요??? 엄마야 세상에나 세상에~ 차량개조도 신고하면 포상금 받을 수 있나? 아! 이게 아닌데!")이었으므로 과감히 생략한다.- 다시 하늘로 날아오르려다, 화들짝 날갯짓을 멈추고 바닥에 내려앉았다.
"아! 그런데 어떡하죠! 해리 씨 차 있어요??? 저는 날아가서 어떻게 쫓아간다 쳐도~ 해리 씨는 맨몸이라면 달려서 따라가야 하잖아요!!! 아니면 제가 먼저 쫓아가서 연락이라도 드려야 하나??? 지금이라도 먼저 날아갈까요?? 이렇게?"
"미안하군. 그 기분은 아마 평생 모를 것 같다만." 지금 통장이랑 투자로 굴리는 게 얼마더라.. 라고 가늠해 보지만. 가늠이 안 되는 듯 금방 포기합니다.
"사무소가 편하다면 그렇게 살아도 상관없지." 그리고 원래 방값은 적다. 관리비는 있겠지만. 이라고 말하려 하네요. 예를 들자면 누가 뭘 화장실에 버려서.. 라면 그 관리비는 청구된다는 거지. 라고 생각하지만 이럴 때 말하기 좋은 주제는 아니기에 체리를 써는 데 열중하는군요.
"뭐.. 하고자 하면 종로의 삐까번쩍한 건물을 사서 해결사를 해도 상관은 없었겠다만.." 그러면 이런 의뢰는 안 들어왔을 거 아닌가.라고 느릿하게 말합니다. 체리.. 진짜 그만큼 들어갈지도 모르지만 설탕도 넣어야 하니까 그정도는 아닐 겁니다.
토토는 소리를 내면서까지 웃을 만큼 활기찬 성격이 아니라 웃지 않았지만, 그래도 제법 웃겼던 모양이다.
"어찌됐든 내가 눌러살 거라는 거만 알아 두십쇼. 뭐, 빼라면 뺄 거지만요..."
어느새 발치에 씨가 수북히 쌓였다. 저걸 땅에다가 심으면 나도 영농 후계자가 되는 것인가, 하고 토토는 실없는 상상을 했다. 허리를 한 번씩 펴 가며 꾸준히 일을 계속했다. 이런 일이라면 차라리 열 명이든 스무 명이든 불러도 괜찮았을 법하지만, 사실 주방이 그렇게까지는 넓지 않을지도 몰랐다.
"뭐, 종로에 있는 기업들 본사에 기둥 몇 개는 사장님 거잖아요. 엄밀히 따지면 우리도 대기업이지."
모스맨 코스프레! 남자의 모습을 정확하게 맞추어 요약한 말에 시즈카는 열심히 몸을 들썩거렸다(아무래도 인간으로 치면 고개를 끄덕거리는 동작이었던 듯싶다). 얼마나 나방을 좋아하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고도의 컨셉을 맞출 수 있는 걸까? 시즈카도 본인이 평범한 성격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이번 사건의 원흉과는 그 광기의 정도가 비교할 수준이 아니었다. 어우, 이과생이 컨셉에 미치면 그렇게 되는 걸까? 불현듯이 몰려오는 소름에 시즈카는 몸을 오소소 떨었다. 쭈뼛 선 머리털에서 파우더가 풀풀 날렸다.
"오케이~ 듣고 보니 그렇네요? 일리가 있구만요! 그럼~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저는 먼저 얼른 가볼게요!"
시즈카는 말을 마치고 날개를 활짝 펴며 하늘로 날았다.
"안녕히계세요 해리 씨~ 저는 세상의 모든 굴레와 속박 아 아니 이게 아니라! 이쪽으로 가볼테니까 따라와주세요~! 아참! 혹시나 저 놓친다면 전화해주시고!!! 그러고보니까 제 전화번호 모르시죠? 제 번호는 ***-****-****이니까 안 보이면 꼭 전화 주시는.... 아니지! 채팅으로 불러도 되겠구나! 어쨌든 나중에 봐요? 힘드시면 천천히 오셔도 되니까 너무 무리하시진 마시고~ 오늘 길에 조심하시고~ 안녕~!"
"돈을 착실히 모은다면 딱히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 않은가." 그러고보니 예전에 샀던 땅에서 온천이 터지는 일이 있었던가. 라는 농담을 합니다. 사실 터진 적 없기는 한데. 뭔가 그렇게 말하니까 진짜 터질 것 같단 말이죠(?) 아니 더한 게 터지려나.(?)
"향이 좋군" 벚꽃향은 체리향이랑 그 외 다른 걸 섞는다고 하던가 체리에 설탕이 부어지고...설탕이 체리즙으로 붉게 물들어갑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샤인머스캣 자르기... 설탕이 부어진 솥이 천천히 끓어오르는 것을 보면.. 확실히 잼이 만들어지기는 하는지. 달큰한 향이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잼의 양이 양이다 보니 레몬즙도 상당량이 들어갈지도요.
"샤인 머스캣 다음은 살구겠나.. 살구는 끓이면서 껍데기는 건져낸다고 들은 것 같다만." 이라고 느리게 말하려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