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스캣을 떼서 한 번 정도는 잘라야겠지." 일종의 시간을 절약하기 위한 방안이던가. 라고 말하려 합니다. 체리가 끓고.. 주방 안이 체리향으로 훅 차오를 때 즈음에 다른 찬물에 유리병을 소독하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토토의 질문에
"아 네! 저희는 품질을 중요시해서요. 먹는 데 살구 껍데기는 좀 질기잖아요. 체리는 잘 찢어져서 괜찮은데 말이죠." 그래서 건져낸답니다. 다행히도 저희가 설탕을 적게 넣는 타입이라 뭉개지면 살구 껍질이 잘 분리되니 그걸 잘 건져내면 된답니다! 라고 말하는 의뢰인.. 묘하게 수다스러워 보입니다.
"이제 체리를 담을 시간일지도 모르겠군." 샤인머스캣은 떼내고 자르다 보니 체리가 다 끓여지는 모양입니다. 샤인머스캣이 끓을 때 적당히 저어주고 담고 그러면 될 것 같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날아가는 길에 나방의 날개가루가 풀풀 날리는 듯했다. 동그란 눈이 북적거리며 모여든 나방 떼를 흘끗 보다 다른 곳으로 돌려졌다. 어우... 여러모로 정신건강에 좋지 않은 광경이다. 시즈카는 필사의 노력으로 현재 상황에 대한 감상을 속으로만 중얼거리는 인내력을 발했다. 멀찍이서 바라보는 벌레는 안 무서워해서 다행이지, 저런 광경의 한가운데에 휘말렸다면 아주 소리를 지르며 난리를 피우고도 남았을 것이다.
차는 그리 멀리 가지 않았다. 컨셉만 봐선 우중충한 산 속 동굴로 들어갈 것 같더라만 그건 또 아니었나 보다. 그래도 형태만은 멀쩡하게 갖춘 건물에 이르러서, 시즈카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해리를 발견하고 근처의 작은 나뭇가지에 내려앉았다.
"도착이네요! 와... 그런데 이게 다, 나방 데리고 뭘 하는 짓일까요? 그리고 뭣보다! 저 건물 본인 걸까요? 아니라면 또 그것만큼 무시무시한 일이 따로 없는데! 지금 어디 대학교도 나방이 기승이라서 딱 저렇게 됐다고 하더라고요~ 아무튼간에 뭘 하려는진 몰라도 끝내긴 해야겠죠! ...어, 그럼 이제 저 사람한테 말 걸면 되는 건가요?? 여기요~!하고?"
"제가 공권력을 등에 업은 친구를 둬서 아는 데 말입니다, 이런 녀석들은 순순히 나오지 않을겁니다. 분명 음습한 지하에 처박혀 비밀스러운 음모를 꾸미고 있겠죠. 그러니 가서 끝을 보는 걸로 합시다. 나방으로 사람을 습격하는 짓이나 하는 놈을 상대하는 데 조용히 넘어갈 거 같진 않네요."
해리가 고개를 저으며 말한 뒤 먼저 건물 안에 있는 계단을 통해 지하로 내려갔다. 지하엔 문 하나가 있었고 그 문에 달린 작은 창 너머로 꽤나 넓직한 공간과 그곳에서 여러 종류의 나방들을 케이스에 넣어두고 뭔가에 열중하는 남자가 보였다. 시즈카가 봤던 나방처럼 꾸민 모습 그대로인 남자는 아직 해리와 시즈카를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뭔가에 열중하고 있었고 그걸 창 너머로 슬쩍 본 해리가 시즈카에게 말했다.
"선배가 말한대로군요. 모스맨 코스프레치곤 공들인 흔적과 나방을 가지고 뭔짓을 할지 모르는 위험함이 같이 보이는 놈입니다. 어쩔까요? 제가 먼저 들어가서 시선을 끌까요? 아니면 선배가 뭐라도 하실 계획이 있으십니까?"
"하긴 그게 맞겠죠! 애초에 당당한 사람이었으면 이런 짓 안 해요! 그리고 나방맨 코스프레도 안 했을 거고! 그렇다고 말로 설득하기엔 위험해 보이기도 하고… 막무가내로 들어가서 두드려 잡기엔 여러가지로 따져야 할 문제고 많고~ 사회인으로서의 제 상식이 그러면 안 된다고 하고 있네요? 어렵구만 어려워~"
시즈카는 다시 사람으로 변해 슬금슬금 계단을 내려갔다. 여전히 말마디를 줄이지 못하는 입과는 달리 행동은 참 얌전했다. 시즈카는 창문으로 건너편을 엿보다 쏙 몸을 숨겼다. 남자가 뒤돌아볼 낌새는 없었지만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다. 시즈카는 해리 옆에 바짝 붙어서 귓가에 속닥였다. 그래도 목소리를 죽이고 말하니 다행일까, 작은 목소리로도 속닥속닥 잘도 말했다.
"그럼 이건 어떨까요? 제가 지나가던 앵무새인 척하고 시선을 끌어볼게요! 그 사이에 해리 씨가 손을 쓴다든가? 뜬금없이 앵무새가 나타나면… 좀 어이가 없을 테니까 주의는 확실하게 끌지 않을까요? 아! 그리고 위험한 상황에서는 제가 능력을 쓸 수도 있으니까요~! 제 목소리를 들은 사람은… 아, 벌레도요! 어쨌든 제 목소리를 들으면 정신이 쏙 빠지거든요? 그게 제 능력이거든요! 이 아이디어 어때요? 네?"
"일종의 시간절약인 셈이겠군." 고개를 끄덕입니다. 무어. 이것저것 안정되어가고 있다는 건 나쁜 소식이 아니겠던가.. 라고 말하다가 그러고보니 최근에 잡힌 의뢰 중 출장 업무가 있군. 이라고 말하네요..
"살짝 식으면서 잼 병을 진공으로 만드는 거라 그렇답니다~" 그래도 냄비를 고정하고 기울이는 장치는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라는 의뢰인의 말 대로 냄비를 낑낑거리며 옮겨 고정한 다음 기울이면 그대로 떠서 잼 병에 넣으면 되는군요... 그동안 포도잼도 천천히 끓고 있으려나.. 살구는 의외로 체리보다 더 쉬울지도 모릅니다.
"씨가 꽤 쉽게 분리되는군." 자르자마자 씨가 바이바이하며 뚝 떨어지니(이건 실제 경험담) 체리보다 쉽네요. 이럴 바에는 차라리 다 넣고 끓인 뒤에 씨랑 껍데기를 분리하는 게 더 나았을지도 모르지만 정성일지도..
"확실히 그 편이 더 낫겠네요. 사람보단 동물이 뜬금없이 나타나면 주의를 끌면서 동시에 더 안전하죠. 저나 선배가 다치면서 의뢰를 해결할 이유는 없으니까요."
시즈카의 제안이 더 낫다고 판단한 해리가 문을 살며시 열어 시즈카가 앵무새일때 들어갈 수 있을만큼의 틈을 만들고 말했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선배. 위험하다 싶으면 바로 이쪽으로 도망치시구요."
문 너머에서 약간 허스키한 목소리가 계속해서 뭔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됐어... 더 완벽하게 조종할 수 있겠군. 이 녀석들이 계속 사람들을 덮치게 하고, 그때마다 내가 나타나서 이 녀석들을 내 번데기 총으로 잡아서 퇴치해주는거야. 그러면 사람들은 나방 사냥꾼인 나에게 나방 퇴치를 계속 의뢰할 거고 그럼 난 부자가 되겠지! 흐흐흐... 그야말로 '킬러 모스'가 아닌가! 좋아 좋아! 다음 실험 장소는 어디로 하지? 그래...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이 좋겠군. 아이들은 나방을 무서워하니 내 활약을 각인시키기 충분한 곳이야..."
"알겠어요~! 해리 씨도 조심하시면서~ 위험하다 싶으면 도망가는 거예요? 굳이 우리가 직접 해결해야 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솔직히 이 정도면 민원으로 처리하는 것도 가능할 것 같기도? 아, 아무튼 가볼게요!"
시즈카는 해리가 열어준 틈으로 들어갔다. 앵무새가 종종거리면서 걷는 폼이 조금 우습게 보이기도 했다. 그러거나말거나 시즈카는 제법 진지하게, 고개를 쭉 빼면서 남자를 몰래 훔쳐보다가…… 어처구니 없는 소리에 발로 이마를 짚었다! ……아니, 그럴거면 차라리 공부해서 세*코에 취직하든가! 아님 어린이 TV쇼 공채 지원을 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덕분에 왜 저런 컨셉을 밀고 있는지 이해할 수는 있게 되었다. 미지의 광기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낼 수 있게 된 건 다행이긴 했다. 그렇지만 이건 아니지! 시즈카는 종종걸음으로 남자의 뒤로 다가가 천천히 목을 가다듬고는, 빼액 소리를 질렀다.
"야!!!!!!!!!!!!!!!!!!!!!!!!!!"
……본래의 본인 목소리가 아닌, 앵무새의 성대로 흉내낸 굵직하고 마초적인 남자 목소리였다!
따질 내용이 한둘이 아니라 무엇부터 지적해야 할진 모르겠지만, 우선은 가장 화나는 지점은 이거다.
아니! 애들을! 왜! 괴롭혀! 애들한테 안 좋은 기억이라도 남으면! 어쩌려고! 마음같아선 한 마디 한 마디 똑바로 때려박고 싶지만 앵무새인 척을 해야 하니 새 울음소리만 낼 뿐이다. 시즈카는 고개를 아래로 꺾다가 빙글빙글 휘젓는 등 광기의 앵무새를 흉내내며 괴성을 질러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