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르크보드에 꽂힌 다트를 뽑자, 뾰족한 끝에 꿰뚫린 종이가 함께 딸려 나왔다. 토토르트 아우렐리우스는 그 위에 쓰인 글자를 천천히 읽어 내렸다. 잼 만들기 정도라면, 사무소가 수주하는 업무 난이도로는 평균 정도에 해당할 거다. 휴가를 마치고 잔업 명목으로 받은 서류 업무를 끝냈으니, 이제는 현장에 돌아갈 때였다.
일 하나를 깔끔히 처리해 놓으면 자기도 편하고 사무소에도 도움이 되고 하는 거지. 시선을 종이에 고정한 채로 2층으로 어기적어기적 올라가서, 사무실 문 너머로 외쳤다.
서류처리는 오케이. 당분간의 신규 의뢰들은 개인적으로 처리 가능(객관적으로 사무원들의 능력을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는 노트북으로 간단한 인터넷 서핑을 하고 있었습니다. 뭐. 노트북이 이 스펙으로 인터넷 서핑만 하다니. 너무한 거 아니냐는 물음을 할지도 모르지만 핸트폰 대란은 이미 지난 일.
그러다가 토토르트 아우렐리우스가 올라오자 안부를 물으려 한 다음에 가져온 의뢰를 보려 합니다.
"휴가는 괜찮았나 토토르트 아우렐리우스군?" 가볍게 안부부터 물으며 의뢰를 슥 훑어보고는 간단하지. 과일들로 잼을 만들 건데 혼자선 부치다는 의미지. 라고 말하면서 수락할 건가? 잼은 보통 덜 익어도 괜찮은 것이니 지금 연락하면 괜찮다고 여길지도 모르겠군. 이라고 말하려 합니다.
"여담이다만. 판매용이기 때문이 위생은 신경써야 할 걸세." 그러니까 장갑과 위생모같은 것 말이지. 라고 말하며 같이 갈 이가 있나? 라고 물으려 합니다.
"하루하루 달라지는게 나이라던데 맞군."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의뢰에 혼자 가도 괜찮겠다라는 말에 의뢰를 읽으면서 가볍게 희망을 깨줍니다.
"유감스럽게도 의뢰에 2인이라고 꼭 집어주고 있다네." 어디 보자.. 잼을 만들려는데 혼자선 무리입니다. 잼을 두 개 이상 끓여야 하니 살필 사람 두 명에 유리병 소독까지 하면 세명은 필요하니 최소 2명은 필요합니다! 라는군. 이라고 말하며 나라도 같이 가주랴? 라고 말하려 합니다.
"위생용구는 주지 않겠는가. 새로 사오면 귀찮을 따름이며.." 규격에도 좀 맞지 않겠다고 하겠지. 라고 느리게 말하려 합니다.
"유감스럽게도 절감하는 중이니." "뭐. 인간의 최고 전성기는 30대라는 말도 있지."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라고 농담처럼 말하고는 고개를 끄덕이자. 연락은 내가 하지. 라고 끄덕입니다. 그리고 연락을 하면 당장 와주시면 저야 좋죠! 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릴지도 몰라요?
"대중교통으로 가면 들고 오긴 힘들겠군. 내 차로 가겠나?" 가볍게 물으면서 차 키를 빙글 돌립니다. 토토르트가 차가 있다면 그걸 얻어탈 생각도 있겠지만.(해결사 월급이 얼만데 차도 못사고 집도 못사는 건가. 라는 생각을 할지도 모릅니다)
"40대일지도 모르잖나." 30대가 그리운 말일세. 라고 말하며 빙글빙글 도는 차 키를 운전을 하겠다는 말에 잠깐 바라보긴 하지만
"괜찮겠나?" 라는 짧은 물음과 함께 가볍게 차 키를 넘겨줍니다. 그러고보니 사장님 차가 뭐였지. 람뭐시기였나. 벤 뭐시기였나 롤 뭐시기인가.. 포 뭐시기인가.. 어쨌거나, 그런 '비싼' 차를 몰라고 가볍게 말하는 사장님을 봐도 긁으면 뭐 어떻겠나. 라며 대수롭잖게 말할지도요.
키를 받았다. 키에 박힌 로고가 장난 아니게 위압감을 뿜는다. 어지간한 담력이 아니었다면, 보통 사람은 키의 무게를 못 이기고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을 거다.
다행히 '일 모드'로 스위치가 들어간 토토르트 아우렐리우스는 그렇게 허당이 아니다. 5년이나 사무소에서 밥벌레 노릇을 했으니, 람...? 벤...? 아무튼 이... 외제차의 운전대를 잡는다고 긴장하는 일은 없었다.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하지 않는가. 휠 있고, 기어 있고, 안전벨트 있고. 대부분의 자동차와 비슷하다. 일단은.
"그렇다네. 다만 의뢰인의 작업장 근처에 주차장이 있다 하니 거기에 주차해 두도록 하는 게 낫겠군"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하고는 주차장도 대충 검색해 봅니다. 그렇게 간다면.. 의뢰인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사장님이..아니 사장님은 들어가고도 남고 토토르트도 웅크리고 들어가면 들어갈 것 같은 잼을 끓이는 냄비를 들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오늘 할 작업은.. 크게는 세가지네요!" 과일손질, 잼만들기, 포장으로요! 라고 말하며 과일은 세~네 종류만 할 생각입니다! 라는군요. 살구, 체리, 샤인머스캣, 복숭아.
"작은 과도가 보이는 걸 보니 그런 모양이군." 과도를 들고 얼굴을 비춰 보는 사장님. 체리를 잘라서 씨를 제거 후 냄비에 던져넣기. 작업 자체는 간단한 편이지만(포도씨 제거나 사과나 복숭아 깎기, 티스푼으로 씨 떠내기 보다야.) 체리의 크기가 작다 보니 저걸 다 채우려면..이 가장 큰 걸림돌일지도 모릅니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나." 기계적으로 체리를 자르며 사장님이 토토에게 묻네요. 자금사정이라던가. 집이라던가.. 그런 것도 포함되려나..
둘이서 체리를 엄청 들이붓습니다. 뭐.. 설탕도 들어가야 하니, 가득 채우진 않겠지만 토토르트가 들어가도 될 것 같은 곳에 체리를 어느 정도 채우려면 최소 10키로는 잘라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고보니 예전에 체리 살 때 900그람인데 비닐봉지 하나에 쏙 들어갔던가.. 그리고 씨랑 줄기도 포함일테니..(멍댕) 아니 이건 넘어가고.. 하다보니 채워지긴 하겠죠. 질문에 답하는 토토르트를 봅니다.
"그나마 다행이지 않은가." "어디서 털리진 않았으니."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러고보니 토토르트 군은 숙소던가? 라고 가볍게 물어봅니다. 비자금이나 통장이 있다는 건 관리를 하고 있다는 거니..
"통장이 마이너스인 적이 있었던 아니마만 알죠. 내가 손에 들고 있는 돈이 전부 내 돈일 때의 쾌감은."
투명한 마스크에 가려 있는 입이 실없이 웃었다. "솔직히 숙소에 사는 게 더 편하잖아요. 출근하느라 안 귀찮고. 원룸에 틀어박혀 사느니, 사무소 건물에 방값 내고 살 겁니다."
단순한 계산으로 토토의 몸 부피만큼 체리를 깎아서 넣는다면, 체리가 토토의 살이랑 무게가 같다는 가정 하에 6~70kg를 깎아야 한다는 말이 되지만... 사이사이 빈 공간 같은 것을 생각하면 그만큼은 아닐 것이다. 나이가 들어 머리가 굳은 토토는 여기까지만 계산하기로 했다.
"뭐, 내 대업을 이루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일 아니겠어요. 그때까진 착실히 일이나 하는 거죠."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입 다물길 잘한 것 같다. 높은 곳에서 떠드는 거라면 괜찮을 텐데 뭘 그리 유난이냐 할 수도 있겠지만, 유황앵무의 목청은 만만하게 볼 데시벨이 아니다! ……기껏 입을 다물었건만 머릿속이 근본부터 잔뜩 시끄러웠다. 생각만으로 열심히 재잘거리던 시즈카는 자동차 시동 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 잘은 모르겠지만 이것 하나만은 확실해 보였다. 그러니까 물구나무 서서 엉덩이로 박수 치면서 딱 봐도 저 사람이 이번 사태의 원흉인 듯싶다!
시즈카는 푸드덕거리며 내려가서 해리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당연하게도 설명의 8할이 쓸데없이 긴 말("아니 그러니까요 웬 차가 딱 보이는데 뭔가 딱 봐도 내가 나방맨인데요~ 하게 생긴 거 있죠? 그나저나 차 저렇게 꾸며놓는 거 불법 튜닝 아니예요??? 엄마야 세상에나 세상에~ 차량개조도 신고하면 포상금 받을 수 있나? 아! 이게 아닌데!")이었으므로 과감히 생략한다.- 다시 하늘로 날아오르려다, 화들짝 날갯짓을 멈추고 바닥에 내려앉았다.
"아! 그런데 어떡하죠! 해리 씨 차 있어요??? 저는 날아가서 어떻게 쫓아간다 쳐도~ 해리 씨는 맨몸이라면 달려서 따라가야 하잖아요!!! 아니면 제가 먼저 쫓아가서 연락이라도 드려야 하나??? 지금이라도 먼저 날아갈까요?? 이렇게?"
"미안하군. 그 기분은 아마 평생 모를 것 같다만." 지금 통장이랑 투자로 굴리는 게 얼마더라.. 라고 가늠해 보지만. 가늠이 안 되는 듯 금방 포기합니다.
"사무소가 편하다면 그렇게 살아도 상관없지." 그리고 원래 방값은 적다. 관리비는 있겠지만. 이라고 말하려 하네요. 예를 들자면 누가 뭘 화장실에 버려서.. 라면 그 관리비는 청구된다는 거지. 라고 생각하지만 이럴 때 말하기 좋은 주제는 아니기에 체리를 써는 데 열중하는군요.
"뭐.. 하고자 하면 종로의 삐까번쩍한 건물을 사서 해결사를 해도 상관은 없었겠다만.." 그러면 이런 의뢰는 안 들어왔을 거 아닌가.라고 느릿하게 말합니다. 체리.. 진짜 그만큼 들어갈지도 모르지만 설탕도 넣어야 하니까 그정도는 아닐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