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가 이사벨과 함께 지낸지도 한 달 정도가 되어가고 있었다. 다른 조직의 추격에 대한 걱정도 슬슬 잊혀져 갈 때쯤 해리는 뭔가를 결심했는지 아리에스를 불러 단 둘이 만나기로 했다. 집에서 좀 떨어진 아무도 없는 건물 옥상에서 기다리던 해리는 곧 아리에스가 자신을 찾아오자 그에게 말했다.
'여, 잘 지냈냐?'
'Boss가 계속 널 데려오라고 하는 걸 어떻게든 얼버무리고 있는데 퍽이나 잘 지내겠다. 이제 슬슬 돌아갈 때가 되지 않았어?'
'......'
'Hey Hey Hey? 내 말 듣고 있는 거야 해리?'
'......난 안 가.'
아리에스의 대답을 듣고 침묵에 잠겨 있던 해리가 입을 열자 아리에스는 자신이 못들을 걸 들었다는 것처럼 반문했다.
'...Pardon?'
'그러니까 안 간다고. 난 더 이상 조직으로 돌아가지 않을 거야.'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냐? 나더러 Boss에게 그 말을 전해달라고 여기로 부른 건 아니겠지?'
'네가 아니면 그걸 전해줄 사람이 없어. 내가 돌아가서 이 말을 했다간 나뿐만 아니라 그녀의 목숨도 보장 못할 거 아냐.'
'그럼 나는? 아니, 나 뿐만이 아니라 아니마 매매단 그룹 138과 싸워 죽어나간 녀석들은? 그 녀석들은 다 개죽음이라는 거냐?! 지금 넌 조직을 배신하려는 거야 이 멍청-어리석은 놈아!'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다고 그래! 그리고 나도 이젠 사람 때려잡는 일은 지긋지긋하다고!'
'너만 지긋지긋한 줄 알아! 나도 그 짓을 10년 가까이 해왔는데 그래도 도망치지 못하고 있어! 한번 조직에 속한 이상 우린 거길 벗어날 수 없고 벗어나서도 안되는 거야! 그게 우리에게 걸맞는 위치라고! 그 여자 집에서 사랑놀음이나 하며 뒹굴거리다보니 동료들의 피비린내를 잊어버린 모양인데...'
난데없이 조직을 떠나겠다는 해리의 말에 강하게 반대하던 아리에스가 이사벨까지 언급하려 하자 해리는 순간적으로 아리에스의 멱살을 쥐고 소리쳤다.
'다른 건 다 그렇다 쳐도... 그녀를 이 일에 엮을 생각은 꿈도 꾸지마 새꺄...!!'
'...아직도 마음 속에 분노의 Flame을 갖고 있으면서 기어코 조직을 떠나려는 거구만. 안 그래?'
'......'
'좋아. 어디 마음대로 해 봐. 하지만 충고하나 하지. 넌 지금 벌집을 건드린거야, My friend. 아니마 매매단 그룹 138 뿐만 아니라 이제 우리 조직까지 너랑 그 여자를 노릴테니까. 그리고 나도 이젠 널 못 도와줘.'
'...어디 와보라지. 죄다 머리통을 부숴줄테니까. 그녀는 쓰레기나 다름 없던 내 삶에 살아갈 이유를 준 여자야. 내가 죽었으면 죽었지 절대 그녀에겐 손 끝 하나 못대게 하겠어.'
아리에스의 멱살을 놓은 해리는 앞으로의 험난함을 경고하는 아리에스에게 기 죽지 않고 받아치며 자리를 떴다. 그 뒷모습을 보며 아리에스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괴로워하며 자리에 주저앉아 오랫동안 자리를 뜨지 못하고 있었다.
"아! 곰젤리는 저도 뭔지 알아요! 여기저기서 곰젤리를 많이 팔길래 무슨 행사라도 하나 했더니~ 지난번에 그런 일이 있었다면서요???? 그거 진짜 재밌어보였는데! 그때 여기 없었던 게 아쉽네요~ 진짜 젤리가 걸어다녔어요?? 먹어도 배탈 안 났어요??? 건드리면 또잉또잉 말랑말랑했고????"
도대체 이런 일은 왜 한 건지 모르겠단 말에 고개를 빠르게 끄덕거렸다. 이런 걸 해서 얻는 게 대체 뭔가 싶고, 무엇보다도 이런 일은 보기에도 끔찍했다. 이 기술은 처음 나왔을 때부터 생명윤리의 문제로 토론거리가 되곤 했었지 않나! 시즈카는 벌레를 싫어하는 편이었지만 그렇다 해서 살아있는 생물을 잔인하게 대하는 것이 옳다곤 생각하지 않았다.
곧 들린 해리의 물음에 시즈카는 척 하고 양 손으로 허리를 짚으며 당당하게 섰다!
"솔직히 나방은 징그러워서 제 정신건강을 생각하면 안 따라가고 싶은데!!!! 아니아니 세상에나~~?!! 방금 전에 첫 의뢰라고 하셨죠?? 그렇다면 당연히 따라가야죠!! 직장 선배으로서 후배를 돕는 건 당연한 일 아니겠어요? 사실 선배라고 해서 그렇게 대단한 건 없겠지만~~~ 어쨌거나 같은 일 하는 사이에 서로 도우면 좋죠~ 아! 물론 해리 씨가 사양한다면 억지로 따라가진 않을게요!!"
"우와~ 진짜 신기하네요? 근육도 전기신호같은 것도 없는데 젤리가 어떻게 걸어다녔을까요??? 에이, 궁금하긴 한데 그런 거 열심히 따지고 싶진 않으니까 이건 패스! 제가 예전에 유*브에서 거대젤리 리뷰 본 적 있거든요? 대충 그거랑 비슷한 느낌일 것 같구… 그나저나 엄마야~ 웃으니까 멋있으시네요! 고맙다고 해주심 저도 기분이 좋죠! 어쨌든~~~ 그럼 이제 할 일도 알았겠다, 가자구요!!!"
말을 마친 시즈카는 힘차게 걸었다. 사실 완전히 마쳤다기엔 걸어가는 도중에도 재잘거리는 말마디가 참 많았다. "아~ 요즘 날씨가 덥긴 한데 밤에는 시원해서 산책하면 참 좋죠~"라든지, "아, 이걸 안 물어봤었네? 해리 씨는 무슨 아니마예요? 저는 앵무샌데~ 그래서 말이에요, 저 소리 흉내내는 거 되게 잘 해요! 하나 해볼까요? *왥옹-* …방금 진짜 고양이 같았죠?" …등등의 잡담이 질리지도 않고 걸어가는 길에 끼였다. 그래도 분위기를 살필 줄 영 모르는 것은 아니었는지 목소리는 좀 전보다는 작게 하고 있었다. 기왕 조용히 해줄 거라면 아예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더 나을 텐데, 그렇다고 정말로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을 것이다. 조용한 사람이 시즈카일 리 없다.
시즈카는 쉴새없이 재잘거리다 해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말하면서도 잘 듣는 게 특기라면 특기! 시즈카는 귀 옆으로 손바닥을 쫙 펴고는 고개를 주억거리다, 엄지를 척 세우며 자신 있게 말했다.
"오케이~! 잠시만 기다려보세요!! 얼른 보고 올게요~"
쭉 뻗은 손이 끝으로부터 연분홍색 날개깃으로 변해갔다. 시즈카는 하늘로 높이 날아 아래쪽을 살폈다. 자동차가~ 어디 있을까? 아님 자동차 말고 다른 발견할 거라도! 습관적으로 생각한 것을 주절주절 떠들려다 합! 하고 입이 다물렸다. 부리 맞부딪치는 소리가 딱 울렸다. 참! 이거 어쩌면 미행이 될지도 모르는 일인데 시끄럽게 굴면 곤란하겠지!
앵무새로 변한 시즈카의 시야에 들어온 건 마치 나방을 본 딴 것처럼 튜닝이 된 고급 자동차였다. 선탠이 철저하게 되어있어 안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창문 너머로 얼핏 보이는 실루엣의 손 끝에 나방들이 하나둘 모여들고 있는 걸로 보아 이 차의 주인이 나방 습격 사건의 범인임을 알 수 있었다. 곧 자동차가 시동이 걸리고 어디론가로 향하다가 그리 멀지 않은 건물 앞에 멈춰 서고 문이 열리며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수고했다 얘들아... 곧 맛있는 먹이를 주마.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결과를 알아내면 본격적으로 써먹을 수 있어...!"
나방의 날개를 본 딴 다소 조악한 종이 날개에 나방처럼 생긴 가면을 쓴 기괴한 모습의 남자가 중얼거리며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나방들도 그 뒤를 따라갔다. 아무래도 시즈카는 범인을 제대로 발견한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