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막 대청소를 해서 기억 속의 그 어떤 모습보다도 깨끗할 사무소에 의뢰인이 들어옵니다.
"안녕하세요, 의뢰를 하려고 하는데요... 어... 그... 실종된 사람 찾는 일도 하시나요?"
의뢰인은 게임 로고가 들어간 검은 에코백을 하고 있습니다. 저 게임은 '마스터 오브 드래고니카'네요! 가상현실 게임으로, 알에서 태어난 새끼 용을 파트너로 삼아 여기저기 여행하고 강해지는 게임입니다. 아기용을 다양하게 커스터마이징 할 수 있어서 많은 장인들이 멋진 용을 만들어내곤 했지요. 이 게임도 헤븐즈 판타지아 못지 않게 오래된 게임입니다. 어쩌면 여러분도 해봤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먼저. 실종된 사람을 찾는 의뢰는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종 기간과 위험도에 따라 기본급이 다르며, 기간이 길고 위험도가 높은 경우 추가의 수당이나 추가적인 정보요청이 잦을 수도 있습니다." 일단 찾고자 한 인물의 정확한 정보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라고 천천히 말하려 하네요.
의뢰인은 여러분에게 인사를 합니다. 어정쩡한 모습이 커뮤니케이션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는 것 같네요. 앉아서 시원한 녹차를 마시며 사장님의 말을 듣습니다.
"그럼 일단 들어주세요. 어, 실종 기간은... 짐작 가는 날짜가 있긴 한데 솔직히 정확하겐 잘 모르겠어요. 어쩌면 한 달일수도 있고, 일주일일수도 있고 며칠일수도 있고... 현실에서 자주 만나는 사이는 아니라서요. 주로 가상 현실에서 만났죠. 제가 찾고자 하는 인물은 '헤븐즈 판타지아'라는 게임의 랭킹 1위 유저인 '건빵천국'이에요. 저는 편하게 '건빵이'라고 불렀죠."
...가상 현실에서 실종된 걸까요? 의뢰인은 말을 잇습니다.
"헤븐즈 판타지아가 오래된 게임이니 혹시 모르실 수 있을 것 같아서 설명 먼저 할게요."
의뢰인은 잠시 설명합니다. 헤븐즈 판타지아는 세계를 창조한 신이 5대 천사와 함께 세계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중 첫 번째이자 가장 강한 천사인 루시퍼가 반란을 일으켜 신을 살해하고 대신 나머지 네 천사들에게 봉인당했다는 배경 설정이 있는 게임입니다. 유저들은 루시퍼의 봉인이 불안정하다는 이유로 여러가지 퀘스트를 수행하게 되지요. 그리고 올해에 드디어 최종보스인 루시퍼와 싸울 수 있는 컨텐츠가 업데이트 되었습니다. 많은 유저들이 도전했지만, 루시퍼를 잡았다는 이야기는 어디서도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건빵이는 혼자 레이드에 도전하려고 했어요. 랭킹 1위인데다 만렙만 참가 가능한 단체 레이드인 폭주한 사대천사 레이드도 혼자 돌았던 녀석이라 그런가보다, 하고 넘겼죠."
랭킹 1위의 위엄입니다!
"저는 최근에 바쁜 일이 이것저것 생겨서 게임에 잘 못 들어갔어요. 게시판도요. 그런데 그 일들이 끝나서 들어가보니까, 아니 글쎄, 건빵이가 사라졌다는 거예요.뭔 일인가 해서 알아봤더니 건빵이가 혼자 루시퍼 레이드 도전하고 나서 돌아오지 않았다는 거예요. 레이드가 끝나면 성공했든 실패했든 근처 마을로 보내지는데 하루종일 아무도 본 사람이 없었다지 뭐예요. 근데 건빵이만 사라진 게 아니었어요. 그 레이드 이후 루시퍼도 소환 아이템을 제단에 올려놔도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요. 지금은 운영진이 막아놔서 못 들어가지만 건빵이 이후에 도전한 세 팀이 똑같은 증언을 했어요."
기이한 일입니다.
"무슨 일이 있었나 직접 들으려고 건빵이네 집에 가니까 건빵이가 없었어요. 냉장고에 있는 신선식품들은 죄다 상해 있었으니 며칠동안 집에 들르지 않은 건 확실했죠. 곧 돌아오겠거니 해서 집에서 기다려봤는데 올 생각을 않더라고요. 전화도 안 받고, 채팅도 안 보고. 할 수 없이 마지막 수단으로 여기 왔어요."
"이름은 들어 보았습니다만. 실제로 한 적은 없군요" 그러나 일단 기본적 설명을 해주는 의뢰인의 말을 듣고는 랭킹 1위라는 것에 대단한가..? 라고 생각하네요.
"그렇다면 가상현실과 현실의 외양 둘 다가 필요할 것으로 사료됩니다." 고개를 끄덕이고는 집에 있는 가상현실기기 쪽은 조사해 보셨습니까? 라고 물어보려 하네요. 냉장고에 있는데 상할 정도면 셍각보다 오래 전일지도. 냉장고에서 길면 일주일 정도는 버티던데. 라고 생각하려 합니다.
의뢰인은 핸드폰으로 스크린샷과 사진을 보여줍니다. 스크린샷에 나온 캐릭터는 가벼운 갑옷과 망토를 걸친 검사로 보입니다. 사진은 의외로 평범하네요. 거리에서 지나치면 기억 못 할 정도로 평범합니다.
"문의는 해봤는데 '게임에서 오류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나 '개인 기록이므로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같은 대답만 보내줘서 아무런 쓸모가 없어요. 해킹을 할 수도 없고 정말... 개발사가 다 그렇죠, 뭐. 아, 솔플 날짜는 6월 24일 저녁 정도였을거예요."
솔플 날짜까지 알지만 개발사에서는 매크로같은 대답만 받는 모양입니다.
"오랫동안 게임을 해왔지만, 이런 일은 건빵이가 처음이에요. 그리고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네요."
하다못해 레이드 중간에 튕겼더라도 그게 현실 사람에게 영향이 가진 않았을 것입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군요.
"그냥 사라지진 않았을 거예요. 제단 근처를 조사하면 뭔가 나올 것 같은데, 제단 근처 필드도 모두 만렙 몬스터가 득시글대는 지역이라... 저는 랭커도 아니고 심지어는 힐러 겸 잡캐라 혼자서는 무리라서요. 실종자 수색의 일환으로서, 괜찮으시다면 게임 내에서의 조사에 동참해주셨으면 합니다."
"레벨은 괜찮아요. 마지막 챕터라 계정을 생성하면 경험치 포션을 주거든요. 그걸 쓰면 만렙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근처까지는 갈 수 있어요. 장비도 지급하지만 성능이 중간 수준이라 나중에 만나면 제가 창고에서 꺼내드릴게요."
하긴 뭐 이번에 루시퍼 잡으면 게임도 끝이니 경험치 포션을 팍팍 뿌리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루시퍼 레이드가 만렙 레이드니까 이번에 새로 들어온 유저들도 발 정도는 들일 수 있게 하자는 목적이겠죠.
"혹시 몸 쓰는 게 힘드시면 소환사는 어떠세요? 아님 테이머도 괜찮아요."
이제는 유자에게 직업 추천까지 해줍니다! 마치 뉴비를 발견한 고인물 같습니다.
"혹시 레벨이 어떻게 되세요? 어느정도는 장비빨로 커버할 수 있어요. 아니면 거기 관광이나 하고 오려는 사람들이 쓰는 방법이긴 한데, 무적 스크롤을 잔뜩 사서 그거 쓰면 돼요. 물론 돈이 좀 많이 깨지긴 하는데 저한테도 좀 있으니까... 아마 괜찮겠죠. 우리 목적은 사냥이 아니라 조사니까요. 몬스터도 최대한 피해보고."
"210이면 괜찮네요. 장비랑 버프 둘둘 감고 가면 아마 죽기 전에 제가 힐로 살릴 수 있을 거예요... 무적 스크롤이요? 인챈트 스킬 찍은 유저들만 만들 수 있어서 경매장에만 나오는 아이템이라 가격이 좀 왔다갔다 해요. 평균적으로 백만 골드쯤 있으면 하나 살 수 있죠. 아님 확률이 많이 낮긴 한데, 현질을 해서 랜덤박스 까는 수밖에 없어요."
여기도 랜덤박스가 있습니다! 랜덤박스는 우리들의 적! 게임 회사 다녀서 받는 월급을 랜덤박스로 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몸 쓰는 직업이면 몽크가 적당하겠네요. 현금이 깨지냐니, 당연하죠! 일단 캡슐 사는 것부터가 돈이 드니까요. 게임 안에서 파는 캐시 아이템들도 많고요."
말을 마친 의뢰인은 1층에 있는 캡슐들을 살핍니다.
"여기도 캡슐이 있네요. 다행이다. 그럼 다음주에 게임 속에서 보면 될 것 같아요. 캐릭터 만들면 '에덴'이라는 마을에서 시작하는데 거기서 보면 되겠어요. 아이템 챙겨갈게요. 참, 제 닉네임은 '코리안탑클래스힐러'예요."
그렇게 의뢰인은 돌아가고, 다음 주에 보기로 합니다. 다시 만날 때까지 열심히 게임에 적응해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