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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자살하고 그렇게 한 범죄자를 찾아 죽이려 했으나 실패했다는 꽤나 불행한 스토리에 루르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었다. 그렇군, 그런데, 그래서? 로 이어지는 의미없는 질문 3박자를 뱉을것만 같은 시큰둥한 표정의 루르는 '그랬구나' 하고 한 마디를 뱉을 뿐이었다. 누가 더 불행한지 겨뤄보자 - 라고 말한다면 자신도, 자신의 자매들도 만만치 않은 스토리를 안고 살아가고있었다. 20대가 되기도전에 사형대로 올라간 젤러시나, 빵 한조각에 눈을 잃을뻔하고 객사할뻔한 블랑슈, 이용은 당할대로 당하고 데미휴먼이라고 살처분당할뻔한 나. 그 외에도 두 명이나 더 있었지만 거기까지 생각하진 않기로했다.
" 그래서, 그게 무슨 상관이야? "
아내가 죽은거랑 헬멧이랑 어떤 연관이 있는지 전혀 감이 안잡히는데. 물론 루르는 제 나름대로 머리를 써보긴했다. 속죄의 의미로 쓴다던가, 이 엿같은 세상에 얼굴 보여주기 싫어서 쓴다던가. 하지만 정확히 딱 떠오르는 답은 없었을뿐이다.
짝짝짝. 루르는 무미건조하게 박수를 쳤다. 이번에도 그렇군, 그런가, 그래서?로 이어질수 있는 멍한 표정이었지만 나름대로의 신념이 있다는 점에는 칭찬을 줄 수 있었다. 그 왜, 우리도 신념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이니까. 언젠가는 데미휴먼이 일어설 수 있고 당당하게 나아갈 수 있으며 더 나아가서 누구보다 위에 서있는, 그래. 이상향을 만들기 위해서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이니까. 신념은 무서운 법이다. 강한 신념과 올곧은 정신만 있다면 해내지 못할것이 없다. 뭐든지 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무식한 이들이 신념을 가지면 무서운 법이라고 하는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틀려먹은 신념을 가지고 믿고 행동한다면 그 파급은 엄청날테니.
" 그렇게 될지 안됄지 모르겠지만 응원을 해줄게. "
반쪽짜리 응원이지만. 사격을 배웠다는 말에 루르는 호오- 하고 또 조금 흥미가 동하는 듯 했다. 사격도 이쪽이라면 엄청나게 배웠거든, 죽지 않으려고. 남들은 연필잡고 공부할때 총을 다루는 법을 배웠지. 권총부터, 맨패즈까지 내가 다루지 못하는 총은 이 세상에 없어. 루르는 그렇게 말하며 나름대로 자부심을 내비췄다. 분명 기억속에서 지우고싶고 인생의 오점이라고 할 수 있는 과거였지만 그래도 배워온 것고 남겨온 것은 있었다.
루르는 콜트가 다가오자 우왓, 하고 짧은 소리를 내며 한발짝 더 물러섰다가 침대에서 떨어질 뻔 했다. 그 이상 다가와주지 않았으면 하는데. 하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대로 쭈그러들어 말이 나오지는 못했다. 그리고 들려오는 이야기를 잘 들어보면, 적이지만 나를 위해주었다 - 라는 것이다. 루르는 가만히 이야기를 듣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니까, 왜? 이해하기 힘들었다. 어떤 감정에서 생각이 나와서 이런 행동을 했을 터인데 한 번 감정이 쓸려나가고 남아 있는 것들이라고는 입에 담을 수 없는 것들만 남아버렸으며 감정표현이라는 것은 남을 흉내내기밖에 해보지 못했고 이제와서 시카와 자매들에게 조금씩 조금씩 잃어버린 감정을 배워가고 있는 루르에게는 정말로, 이해하기 힘든일이었다. 너와 같이 이야기하고싶을 뿐이다 - 라는 말에 루르는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였다.
" 어.. 그게.. 왜? "
이해할 수 없어. 아니, 이해가 안돼. 이해하고싶지도 않아. 루르는 그렇게 말하며 불안한듯 손으로 총알을 만지작거리며 손장난을 쳤다. 속도는 점점 더 빨라져 어느순간 팅, 하고 손에서 놓쳐버려 바닥에 경쾌한 소리와 함께 나뒹구는 소리에 앗. 하고 정신을 차린 루르는 도망가지 않고 왜 여기 있는거냐는 말에 어.. 어.. 하고 말을 잇지 못했다.
아직은 도망칠 때가 아니다. 물론 잠깐 너무 답답해서 도망칠 생각도 했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다. 조금 더 정보를 모은 다음에 돌아갈 생각이었다. 만에하나라도 이런 일이 생긴다면 시카가 했던 말은 반드시 데리러 갈테니 갈 때 까지 기다리고 있어라. 였다. 스스로 나올수도 있지만 기다리라는 말은 그간에 뭔가 준비할 게 있다는 이야기였고 덤으로 요즘들어 계속해서 마주치고 일을 방해하는 녀석들의 정보를 모을 수 있다면 모으라는 이야기였다. 물론 CPA로 끌려가서 블랑슈가 당했던 험한 일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바였고 그래서 급하게 젤러시가 구하러 간 것이었지만 이번에는 이야기가 달랐다. CPA로 끌려간다면 이송 도중에 구해올 계획까지 세워놓았으니까.
" 내가 탈출하려고 하면.. 그래, 네 말대로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치겠지. 응. "
그런데, 그걸 내가 왜 신경써야해? 일순 멍해보이던 루르의 눈이 반짝 빛났다. 감정이 쓸려나가고 그 빈자리를 채운것. 삶에 대한 열정과 동시에 내가 빼앗긴 것과 내가 가지지 못한 걸 가지고 있는 이들에 대한 분노. 내가 가지고 있던 단 하나의 소중한 것 마저 모조리 빼앗아간 이들에 대한 증오와 분노가 그 남은 자리를 채웠고, 결국 종국에 남은것은 시카와 그 자매들 뿐이었다. 그 외에 것들이 죽어나가던 어쩌던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 있지. 사람들은 참 웃겨. 그 사람들이 나한테, 우리 가족한테 한 일은 신경쓰지 않고 오직 자신들의 안위만 생각해. 그래서 - 나도 당한대로 돌려주겠다는데 뭐가 나쁘다는건지 모르겠네. 있지, 그 많은 사람들이 내가, 젤러시가, 블랑슈가,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죽어나갈때 신경이나 써줬어? 정답은 아니야. 그런데 왜 나는 그걸 신경써야해? "
"난 너가 나쁘다고 말하진 않았다." "아무도 몰랐지... 가족이 죽어갈때. 아무도 신경 안 썼어."
내 아내가 죽었어도 유산 했어도 세상은 아무도 신경 안 썼다.
"그럼 누가 신경 썼으면 어땠을까. 누가 그 옆에서 도와줬으면... 누가 그 상황에서 빠져나오게 해줬으면."
"누가 밤하늘에 펼쳐진 수많은 별빛중 하나가 꺼진다고 신경이나 쓸까?" 누군가가 신경 썼으면... 꺼지지 않을거야.
"너는 예전 임무에서 만난 우리들의 머리를 쏘지 않았어. 그저 제압할 뿐이었지."
"거기에 있는 데미휴먼은 물론 인간도 죽지 않았어. 게다가..." "너가 쏜 인간중 하나는 어머니 였다. 그것도 데미휴먼의 어머니."
"너가 죽이지 않는 다는 선택은, 어머니를 잃은 데미휴먼을 만들지 않았다는거다. 너가. 너가 '선택'을 해서 일어난 일이다."
그리고는 병실 문쪽으로 걸어갔다.
"너에게는 더 쉬운길이 있어. 너는 이제 힘도 있고 너는 선택도 할수 있다." "선택이 없고 힘이 없는 사람은 너같이 힘있는 사람만 구할수 있지."
"이번에 너가 내릴수 있는 선택은 그거야. 감시가 없는 여기서 그저 나간다. 아니면 그냥 여기서 올때까지 기다린다야."
"전자는 위험은 전혀 없다. 내가 있지만 나는 그저 넘어갈거다. 그냥 나가서 너의 가족에게 연락해 만나면 넌 돌아간다. 이 주변 누구도 피해를 입지 않는다." "후자는 위험이 있다. 네 가족들은 여기 오고 여기 사람들은 다치고 위험해 지며 가족들은 위험한 작전을 펼치고 이니시에이터들은 또 여기로 와서 싸우겠지."
너는 어디에 있냐. 결론은 그것이었다. 갑자기 찾아와선 알지못할 소리를 늘어놓는줄로만 알았는데 의외로 자신을 계몽하려든다던지, 새로운 걸 가르치려 한다던지 하고 있는 모습에 루르는 적잖이 당황했고 속이 울렁거릴 지경이었다. 그래. 내가 나쁜게 아니고, 그들이 나쁜거야. 그래. 그들이 신경썼다면 하늘위에 별이 꺼질 일은 없었을거야. 하지만 중요한 건 결과야. 아무도 신경써주지 않았고 하늘위에 별이 꺼졌어. 중요한 건 그거지. 결국 남는 건 내 곁에 누가 있느냐고, 누가 나를 챙겨주느냐야. 부모라는 사람들은 태어난지 5분만에 날 넘겼고-애초에 만들어진 생명이었지만-팀이라고, 전우라고 같이 작전을 수행해온 사람들은 필요가치가 없어지자 누구보다 먼저 자진해서 날 죽이려들었어. 근데 시카는, 내가 데미휴먼이라는 이유만으로 날 받아줬어. 지금까지 내가 살아있을 수 있게 해주었고 나한테 내가 잃어버린 감정이란걸 가르쳐줬어. 선택? 그건 선택지가 있는 사람들이나 하는거야. 선택지가 없는 사람은 선택할 것도 없지. 내가 할 선택지라곤 그저 시카를 믿고 따를 뿐이야. 시카를 믿고, 자매들을 사랑하고 살아갈 뿐이야. 그게 내 선택지야.
루르는 장황하게 말을 하고는 목이 말라졌는지 물을 집어들어 세모금을 한 번에 마시고는 이불을 정리했다. 신념은 확고했다. 잠깐 너무 지루해서 조금의 익사이팅이 필요했지만 금새 사그라들었기에 그냥 다시 누워있기로 정한 것이다. 바닥에 떨어진 탄알을 주워 다시 손에서 굴리며 말은 고맙네. 하고 한 마디를 뱉는 것도 잊지 않았다. 선택은 선택지가 있는 사람들이 하는거야. 루르는 왜인지 그 말이 다가왔다. 자신이 한 말에 자신이 감동받다니, 이건 이거 나름대로 멋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