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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살짝 풀린 듯한 저 표정을 마리야는 너무나도 잘 안다. 우유 사탕을 씹으면서 거울을 볼 때 자신이 딱 저런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앞으로 자주 해올게. 그러면서 마카롱은 빼고 덜 단 것을 우물거린다. 아 그리고 단 거 하니까 그쪽 질문에도 대답할 겸 생각나는 게 있는데.
"너한테 왠지 잘해주고 싶어서."
널 보면 아빠나 미호 소장님을 볼 때랑 비슷한 느낌이 들어. 두 사람 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가족이니까 귀납적으로 생각하면 너한테 호감을 가지고 있다고도 볼 수 있을 거 같아. 사실 일차적인 목적은 감시가 맞지만 호감을 가지고 있는 상대에게 잘해주면 좋다고들 하잖아? 그래서 오는 김에 둘 다 하면 어떨까 싶었어. 무표정으로 줄줄 읊는 말은 감정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지만 나름대로 고민을 한 결과물이었다.
"왜인지는 물어봤자 나도 몰라. 난 감정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편이라. 사실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고민하는 것도 좀 어렵거든."
없는거랑 모른건 많이 다른건데. 루르는 고개를 갸웃했다. 모른다는건 있지만 모른다는거고, 없는건 그냥 아예 없는거야. 모르는지 어쩌는지도 몰라. 루르는 속으로 생각했다. 어릴때는 그저 감정이 있는 이들이 부러웠다. 감정표현을 하고, 기뻐서 웃고 슬퍼서 울고 화가나서 화를 내고 침착하려고 냉정해지는 이들이 부러웠다. 루르는 그래서 그들을 흉내냈다. 자신이 아닌 다른 이의 숨을 뱉고 거울 앞에 서서 타인의 모습으로 절정을 맞았다. 넘쳐흐르는 자신을 흘려보내고 내가 아닌 누군가가 되었다. 그들이 부러웠으니까.
" 나한테 잘해줘도 얻을 수 있는거 없어. "
루르는 단칼에 말하고는 눈치를 보다가 뭐 어때. 하고 마카롱 하나를 더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맛있네. 나중에 ■■■한테 해달라고 해야겠어. 직접 만들어서 가져온다면 더 맛있을거야.
세월이 흐르면 마리아도 정들었던 보호소를 떠나고, 언젠가는 엄마의 품도 떠나야 할 때가 올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키아라는 어찌해야 할까요. 자신의 삶의 전부인 마리아가 제 품을 떠난다면... 이 거친 세상에 마리아를 내보내는 것이 두렵기도 하지만 마리아는 분명 잘 헤쳐나가겠죠. 착하고, 똑똑한 아이니까요.
예를 들어서 아빠나 미호 소장님을 좋아하는 것처럼 단순한 건 쉽게 알지만 지금 내가 가지는 호감의 이유를 고민하면 수학문제 푸는 것처럼 어려워. 사실 그 이유를 규명하려고 잘해주는 것도 있어. 얘기하고 잘해주다 보면 왜 그런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마카롱들을 꺼내서 루르 쪽으로 밀어주며 고개를 갸울인다.
"물론 물리적인 건 얻을 수 없겠지만 정신적인 이득은 내가 정하는 거야."
담담하게 대꾸하곤 마카롱만큼 단 과자들을 추려서 추천한다. 네가 지금 먹고 있는 건 마카롱이고 이건 다쿠와즈, 에클레어, 츄러스, 브라우니. 다 비슷하게 달지만 식감이나 맛은 다 다를거야. 이미 이름 알고 있다면 미안. 좋아하는 맛이나 싫어하는 맛 있으면 다음에 만들어올 때 참고할 테니까 말해.
어려운 말을 하는구나. 루르는 그렇게 말하곤 한 쪽에 걸쳐있는 날개를 만지작 거리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아, 지금 딱좋아. 제일편해. 원래는 날개가 한 쌍이 있어야 했기에 침대도 넓은 편이지만 루르는 옛날에 한쪽 날개를 잃어버렸고 그래서 안그래도 넓은 침대는 더욱 더 넓어졌다. 날개 하나가 없으면 좋은 아주 사소한 것들중에 하나랄까. 다시는 하늘을 날지 못하겠지만.
" 만들어온거야? "
너 보기보다 대단하구나. 루르는 멍하니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동생도 요리잘해. 이것저것 만들 줄 알아서 언니들의 술안주나, 간식거리나.. 아니면 밥 같은 것도 전부 만들어. 병원밥은 별로야. 너무 싱겁고..
미약하지만 나름대로 부루퉁한 티를 내며 대꾸한다. 나름 성의를 담아서 호감의 표시로 가져왔는데. 말은 그렇게 하면서 생각한다. 블랑슈나 젤러시 말고도 자매가 더 있었구나. "...그 동생이 너희를 많이 좋아하는구나." 그런 요리를 다 만들어준다는 건 좋아하는 사람들이 먹어줄 때 드는 기분이 투자한 시간에 비해 이익이 된다는 거겠지. 그런 걸 먹다 병원 밥을 먹으면 당연히 심심할 거야. 담담하게 공감해 준다.
"원래대로라면 잡으러 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
너는 범죄자이고 사회로부터 격리되어 교정과 죗값을 받아야 하는 게 원칙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봤을 때는 CPA나 코르포 데이가 너희 자매들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되지 않으니 너를 잡아 보았자 자원 낭비인 것도 사실이야. 내가 잡고 싶어도 못 잡을 거란 소리야. 그리고,
"...사실 감정적으로는, 잡고 싶지 않을 것 같아."
마지막 말은 조금 망설이다 덧붙인다. 단 것을 베어물었을 때와 비슷하게, 조금 멍한 눈빛과 풀린 눈가를 잠시 보이면서.
날 잡아가야 하는게, 우리 가족을 잡아야하는게 너희들의 일이라면 그대로 하도록 해. 뭐라고 할 생각은 없어. 이해나 입장이 다른것은 이해하니까. 대신에 나도, 우리 가족도 우리가 해야할 일을 할거야. 우리가 해야만하고 우리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을 할거야. 그리고 그걸 위해서라면 뭐든 할 준비가 되어있어. 잡을 수 있으면 잡아봐 절대 잡히지 않을거니까. 이래봬도 하나하나 계획하고 움직이는 스타일이거든.
루르는 그렇게 말하곤 흐암 - 하고 하품을 하고는 아래로 조금 녹아내렸다. 선반위에 있는 총알 하나를 집어 손장난을 치고 있는 루르는 가만히 허공을 바라보며 대답을 기다렸다. 대답이랄까, 단순히 상대의 생각이 알고싶었다. 어째서 나한테 동질감을 느끼는걸까. 아니, 나에게 동질감을 느낄거면 거기 있지 말고 차라리 우리한테 합류하란말이야. 한 명이라도 뜻을 같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그거대로 좋은거라고 언젠가 블랑슈가 말한 기억이 난다. 시카는 더 이상 가족을 늘릴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너희만 있다면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아.' 라고 종종 말하곤 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