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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이 열렸다고 하는 현장까지는 아직 조금 더 걸어가야했습니다. 걸어가는 와중에 이미 해는 저물고 달이 뜨고 별이 떴으며 하늘은 구름이 껴서 앞길이 보이지도 않는 정도였습니다. 더구나 외벽근처의 숲에 있었기에 나무가 울창하여 보이지 않는앞이 더욱 보이지 않아 으스스한 분위기마저 내고 있었습니다. 얼마간 걸었을까요, 도착한 현장은 아웃월드의 창이 열렸다고 보기에는 너무나 깨끗했습니다. 본디 아웃월드의 창이 열렸다면 순수 크토니안이 쏟아져나와 주변 일대는 쑥대밭이 되고 그 현장이 기본적으로 생각하는 창이 열린 곳의 모습이었습니다. 허나 도착한 현장은 아웃월드의 창이 열린게 맞나 싶을정도로 깨끗했습니다. 혹시 잘못온게 아닌가 싶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보자 창이 열렸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으나, 무언가 있었던것만은 확실해 보였습니다. 처음으로 보인 것은 피가 묻은 칼. 아마 칼을 사용하는 이니시에이터의 무기였겠지요. 무언가를 밟는 느낌에 발을 들어보자 바닥에는 이미 사용한 탄피가 굴러다녔습니다. 그 앞에는 반으로 부숴진 소총이 쓰러져있었습니다. 무언가가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고 말하고 있는 듯한 것들을 지나서 앞으로 더 들어가자 여덟구의 시체가 발견되었습니다.
이니시에이터였던듯 저마다 가까운 곳에 무기가 떨어져있었고 목에는 이니시에이터의 명찰과, 신분증을 주변에 떨어트린 이도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요. 무엇인지 확실친 않지만, 무언가 있었던 것은 확실합니다.
숲에 도착하곤 현장이 너무 깨끗한 것에 고개를 갸울인다. 현장을 살펴보고 무기와 시체를 발견하자 다시 고개를 갸울이게 된다. 총체적으로 수상한 상황이다. 배경지식을 모르고 그냥 왔다면 분명 크토니안의 가능성은 생각조차 못하고 저 시체들은 지능이 있는 누군가의 소행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흐음, 이 일을 하면서 크토니안 시체보다 인간 시체에 더 익숙해지면 곤란한데. 막연하게 부모님이 원할 바람직한 삶(?)의 준거를 가늠하던 마리야는 이윽고 한 치의 동요나 비위 상함도 없이-지극히 마리야 그레고로브나 다웠다- 시체들을 뒤적거리기 시작한다. 신원을 알면 단서가 될까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사인을 알기 위한 의도도 컸다. 죽은 이유를 알면 누구의 소행인지 대강 짐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정어정 걷던 리코는 무언가 이상한 걸 밟은 감촉에 발을 크게 떼었다. 바닥에 굴러다니던 무언가를 밟은 것 같았다. 그 앞쪽에는 부숴진… 총으로 보이는 것도 있었다. 그럼 이건 총알인가? 탄피에 대해 잘 모르는 리코는 막연히 저 부숴진 총에서 나온 거라고 생각하고 조심조심 다시 발을 내딛었다. 좀 더 앞으로 나아가보니 그곳에는 쓰러진 사람들이 있었다.
“…사람…”
하나, 둘, 셋… 여덟 명의 사람들이 쓰러져 있었다. 자고 있는 건 아닌 것 같다는 그런 막연한 느낌이 든다. 누가 보더라도 이건 사이좋은 낮잠시간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니까. 리코는 조심스럽게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건드려 봤다. 어깨를 잡고 흔들흔들, 일어날까?
의문을 담은 눈짓이 주변의 정경을 훑었다. 시체 여럿, 널브러진 무기와 신분증 등. 일대는 기이할 정도로 고요하고, 시체들은 이상하게도 한 곳에 모여있다. 본능적인 긴장감에 꼬리를 꼿꼿이 세운 것도 잠시, 그의 시선이 주변을 한 차례 둘러보았다. 시체를 뒤적거리는 일은 굳이 그가 나서지 않아도 인원이 충분해 보인다. 그는 두리번거리며 주변에 남은 흔적을 찾아보았다. 발자국이나 핏자국이나,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이런저런 자취들을. 밤눈이 더 밝았다면 좋았을 텐데, 아쉬운 일이다.
키아라가 사건 현장에 도착하자, 일반적인 창이 열린 곳이라곤 도무지 생각할 수 없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보통 난장판이기 마련인데 이것은 마치... 을씨년스러운 숲 속의 살인사건 현장 같군요. 군데군데 무기와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습니다. 확실히 정상은 아닌 상황이었습니다.
한참을 걷다보니, 드디어 무언가 나타난다. 평상시의 유페미아였다면 자신의 눈 앞에 놓인 게 시체라는 걸 알아챘다면, 리코의 눈을-정확히는 리코의 눈 위로 닾힌 방호복의 창이었겠지만-가려주려 했겠지만, 지금은 너무 흥분한 나머지 그것도 잊고 시체가 있는 쪽으로 달려나갔다.
"흐음... 어딜 보자....!"
유페미아는 혹여나 감염되지 않도록, 등에 짊어지고 있던 커다란 스포츠 배낭에서 집게가 달린 지팡이를 꺼내, 엎드려 있던 시체를 바로 눕힌다. 혹여나 순수 크토니안의 공격 흔적이나, 감염 흔적을 시체에서 찾을 수 있을까 싶어서였다.
누군가(쿠보타)가 빛이 없냐고 묻자, 시체-지금 유페미아에게는 시체가 시체가 아니라, 흥미로운 크토니안의 흔적!으로 보인다-에서 눈을 떼지 않은채, 허리춤의 벨트에 걸어놓았던 손전등을 풀어 목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대충 던져준다.
시체들은 하나같이 깔끔하게 죽어있었습니다. 어디 하나 과도하지 않고 깔끔하게 가슴에 두 발, 머리에 한 발. 한 사람에 세 발이상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은 금방 알 수 있었습니다. 그도 그럴게 옷에 나있는 구멍은 모든 사람이 두 개였고 마지막으로 머리에 한 발을 맞았다는 것은 그냥 맨 눈에 봐도 알 수 있었거든요. 이 야밤에 이렇게 정확하게 사격을 가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그저 놀라울 뿐입니다.
신원을 확보하고, 뭔가 단서가 될 만한것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쓰러진 이니시에이터를 만졌을때 ‘찰칵’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마리야가 뒤적거린 이니시에이터는 뒤적거림과 동시에 몸에서 연기가 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일종의 부비트랩으로, 연막탄을 깔아놓았던게 시체를 뒤적거림과 동시에 발화했고 뒤이어 새하얀 연막이 일대를 뒤덮어 한치앞도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리코가 흔들었던 이니시에이터는 쾅 - 하는 소리와 함께 폭발을 일으켰습니다. 마찬가지의 부비트랩으로 폭탄을 깔아두었던게 흔들리는 충격에 폭파한 모양입니다. 다행히, 아예 몸을 뒤집은게 아니라 터진 폭탄은 이미 바스라진 이니시에이터가 몸으로 전부 막아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유페미아가 뒤집은 이니시에이터도 마찬가지로 뒤집어짐과 동시에 불꽃이 치솟으며 폭발을 일으켰습니다. 몇개의 부비트랩이 더 있는지는 모르지만 총 두 개의 폭탄와 한 개의 연막탄이 터졌습니다.
안그래도 어두웠던 숲에 하얀 연막이 깔리자 말 그대로 한치 앞도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상황이 돌아가는지, 누가 다쳤는지 조차 알 수 없게 되었을 때 탕 - 하는 시원한 격발음이 울렸고 동시에 총탄이 날아들었습니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걸로 보아 첫 발이 빗나간 듯 했고, 뒤이어 다른 곳에서도 격발음이 울렸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곳에서. 여러 곳에서 동시에 격발음이 울리며 총탄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흔들흔들, 어깨를 흔들었을 뿐인데 굉음과 함께 폭발이 일어났다. 리코는 저도 모르게 폴짝 뛰어올라 뒤로 물러섰다. 뭐지? 큰 소리가 났어, 뭐지? 눈을 동그랗게 뜬 리코가 주변을 둘러보자 한 쪽에서는 불길이 솟고, 한쪽에서는 피어 오르는 새하얀 연기가 모든 것을 뒤덮고 있었다. 연기는 곧 이 일대 전부를 뒤덮었고, 상황파악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연기로 뒤덮이는 걸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총성이 들려왔다.
“어? 뭐야…?!”
여기서 들리나 싶더니 이번엔 저기서, 동시에 여러 곳에서 울리는 총성에 리코는 일단 그 자리에 납작 엎드렸다. 어디로 피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어디로 총탄이 날아가는지도 모르겠는 상황에서 최대한 머리를 굴린 것이었다. …사실 무서워서 그 자리에 웅크리는 거나 다름없었지만.
두 번의 폭음이 연달아 일어나는 그 찰나의 순간, 주변이 순식간에 하얀 연기로 뒤덮혔습니다. 누군가가 연막탄을 건드린 모양입니다.
“누구 다친 곳은 없습니까?”
연막 속에서 연이어 총소리가 울리자 키아라는 사상자가 발생하지 않았는지 확인하려 했습니다. 방금 전의 폭음도 있었고요. 이런 상황에서 섣불리 움직이면 상대의 표적이 될 수 있으니, 키아라는 그 자리에 꼿꼿히 서 있는 채였습니다. 그런 키아라의 머릿속에 스쳐지나가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혹시나 이 상황 자체가 함정은 아닐지. 창이 열렸다고 했건만 지금 이곳에 크토니안이라곤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모든 것이 온전한 채였습니다. 창이 열렸다는 말을 빌미로 일행들을 꾀어낸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젠장.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에 뒤늦게 함정임을 깨닫고 아빠의 말버릇이 옮겨져 나온다. 뒤이은 총알 세례에 몸을 낮추곤 이를 악문다. 보통때라면 이 상황에서 제일 약자인 누군가를 보호하거나 달려들어 총잡이부터 제거하겠지만, 연막탄이 터진 상황에서라면 그런 것도 불가능하다.
일단 몸을 땅에 바짝 낮추고선 자신이 뒤적거렸던 시체를 들어올려 그 뒤 혹은 아래로 비집고 들어간다. 일종의 방패로 삼는 셈이다. 고인에게는 미안하게 되었지만 일단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자신의 코앞에서 폭발-크토니안과는 관련이 없는 자극!-이 일어나자 그제서야 유페미아는 지나친 학구열이 불러왔던 일종의 황홀경에서 빠져나온다. 유페미아는 리코를 붙잡고 뒹굴어 리코를 지키려 했지만, 리코는 데미휴먼의 빠른 반응속도로 이미 바닥에 엎드린 뒤였다. 유페미아 역시 그 옆에 리코를 감싸듯이 바짝 엎드려, 아이의 귓전에 속삭인다.
"리코 군, 아무래도 이건 함정이었던 것 같네. 아무런 소리도 내지 말게나."
이 정도로 두꺼운 연막이면 상대도 자신들을 보지 못할 테니, 조용히만 한다면 안전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사항에 가까운 추측이었다.
막 발소리를 죽이고 아래를 살폈던 때, 거센 폭음이 울렸다. 뒤이어서는 연막이 퍼진다. 사태가 정확히 어떻게 전개되는지는 몰라도, 적어도 폭탄이 터질 동안 저곳에 있지 않았던 것만은 옳은 판단이었나 보다. 그는 시야가 더 흐려지기 전에 몸을 돌려 처음의 자리로 돌아갔다. 시야가 차단된 자리에 뛰어드는 것만큼 궁지에 몰리기 쉬운 상황이 없다지만, 총성이 울려대는 상황에서 연막 밖의 눈에 띄는 자리에 서 있고픈 마음 역시 전무했던 탓이다.
함부로 움직여서 좋을 게 없다는 의견에는 그도 동의한다. 아마도 키아라의 것이라 추정되는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는 우선은 몸을 숙이고 상황을 지켜보았다.
한참동안 총탄이 퍼부어졌습니다. 아마 여기까지 오는 와중에 보였던, 숲속에 널브러져있던 탄피들은 여기서 나온것들이었겠지요. 그런 생각이 주마등을 스쳐갈때 쯤 사격이 거두어졌고 잠시간 조용해진 후에, 그리고 연막이 어느정도 사라져서 조금 정도는 앞이 보이게 됐을 때 보인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정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엄청난 사격소리가 있었으니 분명 여러명이 있는 것이 기본일터인데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주변이 잠잠해지고 나서야 돌아봤을 때 총탄을 쏟아부은 것은 사람이 아니고 총 자체였다는 것을 아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네 정의 기관총이 수풀 여기저기에 숨겨져 있었고 무선조종으로 총을 쐈는지 옆에는 작은 안테나도 달려있었습니다.
아직 명령이 끝나지 않았는지 기관총은 찰칵,찰칵, 하고 빈 총의 소리를 내고 있다가 명령이 끊긴 시점으로부터 조용해졌습니다. 세찬 바람이 불었고 바람이 연막을 씻어가자 드디어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달빛이 비춰들어오기 시작했고 확인한 주변의 상태는 말 그대로 엉망진창. 온 사방에 총탄이 꽂혀 땅이 파이고 나무가 부숴졌고 이니시에이터들의 시체는 이미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아직 무슨일이 더 있을까 싶어 움직이지 않았던게 잘한 일이었을까요. 나무 위에서 누군가가 툭, 떨어졌고 사박사박 하는 소리와 함께 천천히 이쪽으로 오고 있었습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천천히 보이기 시작한 모습은 은회색 머리에 한 쪽 뿐인 날개를 가진 데미휴먼이었고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는 기관단총 하나를 메고 이쪽으로 천천히 걸어오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clr darkgary lightgray>" 정말로 다 죽일 생각은.. 없었는데.. "<clr>
이대로 계속 쏟아지는게 아닐까, 그런 착각이 들 정도로 퍼붓던 총탄이 그쳤다. 아직도 귀가 멍해. 쫑긋거리던 리코의 귀에 찰칵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사라지고, 그 뒤를 이어 누군가가 걸어오는 듯한 사박사박, 발소리가 들렸다. 누군가가 오고 있다. 하지만 에피가 아무런 소리도 내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했으니까. 리코는 가만히 숨을 죽인 채 엎드려 있었다. 귀 끝이나 꼬리가 파르르 떨리는 것 까지는어떻게 할 수 없었지만.
"..."
최대한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가능한 움직이지 않으려고 하면서, 가만히. 풀숲에 웅크리고 숨은 호랑이처럼. ...호랑이와의 차이점이 있다면 지금은 리코 쪽이 사냥을 당하는 쪽이라는 것이었지만, 아무렴 어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