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판 유저들에 의해 지정된 공식 룰을 존중합니다. ※친목&AT필드는 금지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금지입니다! ※모두에게 예의를 지켜주세요. 다른 이들도 당신처럼 즐겁고 싶어서 상판을 찾았다는 점을 잊지말아주세요! ※지적할 사항은 상대방의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부드럽게 해주세요. 날카로워지지 맙시다 :) ※스레에 대한 그리고 저에 대한 정당한 비판을 환영합니다. 다만 의미없는 비난은 무시하겠습니다. ※인사 받아주시고, 인사 해주세요! 안녕하세요 라는 다섯글자에는 생각보다 많은 힘이 있답니다. ※17세 이용가를 지향합니다. 그렇다고 수위와 아슬아슬한 줄타기는 하지 말아주세요! ※저는 굉장히 편한 사람입니다. 질문하는 것 그리고 저라는 사람을 어렵게 여기지 말아주세요 XD
검은색의 마호가니 원목을 사용한 몸체에 흰색 가죽을 덧대어 만든 모던한 느낌의 의자에 앉은 여자는 말했습니다. 눈의 흉터를 긁적이다가 생각보다 많이 이른데요? 하고 덧붙이곤 고갤 돌렸습니다.
" 차질없이 진행됐으니까 괜찮아. 하고싶은 말과 해줘야 하는 말 전부 해줬으니까 "
검은 가죽장갑을 벗으며 책상위에 가지런히 올려놓은 다른 여자는 겉옷을 벗어 옷걸이에 걸고 물 한잔을 쭉 들이키고는 책상앞에 앉아 펜을 집어들었습니다. 펜 끝을 입에 물고 곰곰히 생각에 잠기기 시작했고 곧 방 안에는 침묵이 내려앉았습니다. 할 말이 없으면 안 하면 되는 거 아닐까 - 그 말을 증명하듯 내려앉은 침묵은 전혀 불편치 않았습니다.
" 몇이나 죽어나갈까요? 아니, 그딴건 상관없지. 옳은 일을 하는거잖아요? 몇 명이 뒤져나가던 상관없어"
침묵을 깬 말은 혼잣말마냥 허공을 향해 뱉어졌고 정처없이 떠돌던 말은 제 갈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흩어져가던 말을 잡아 다시 내치듯 끼익 하고 문을 열고 들어오는 다른 이가 말합니다.
" 그게 네 문제인거야. 아무 생각없이 부수고 죽일 생각만 하니까 ■■도 너한테 별 말 안하는거 아니겠냐? " " 갑자기 시비네 뒤지고싶나 진짜..? 네 머리 먼저 걷어차줄까? "
말다툼이 일었고 곧 싸움으로 번질 분위기였지만 상서열자에 ■■인 ■■■의 말에 ■■■는 아니 그냥 말이 그렇단거지.. 하고 이를 뿌득갈며 한 수 무릅니다.
펜끝을 입에 물고있던 이가 그만들 하렴. 하고 말하자 언제 싸웠냐는듯 분위기는 다시 식었고 입가에 부드러운 호선을 그린 ■■는 오늘의 일이 만족스러웠단 듯 둘의 어깨를 톡톡치곤 고생했어. 하고 말했습니다
" 잃어버린 것을 되찾을 때가 되었구나 "
■■는 그 말을 끝으로 방에서 나갔습니다. 하나 둘 방을 나가자 주인을 잃은 공간에는 다시 적막이 내려앉습니다.
여성의 눈에 눈물이 고입니다. 이내 그녀는 눈을 깜빡이며 눈물을 삼켜냅니다. 일반적으로 죽음이란 걸 접해보지 않은 일반인 입장에서는, 이번 일 때문에 많이 놀랐겠지요. 바로 코 앞에서 사람이 죽었는데요.
“키아라 로체스터입니다. 당신은요?”
여성이 진정한 것 같자 키아라는 그녀의 어깨에서 손을 뗍니다. 그리고 자신을 소개하며 악수를 청합니다.
“이니시에이터 일을 하기 전에, 군에 오랫동안 있었습니다.” “크토니안들을 상대하는 부대에 있었죠.”
아직 앳된 티를 벗지 못한 20대 시절, 눈 앞에서 전우가 처음 죽었을 때, 키아라는 많이 슬펐습니다. 마치 자기 잘못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그런 자신이 원망스럽기도 했습니다. 수많은 죽음을 겪은 지금도 아직 누군가의 죽음은 익숙해지지 않았습니다. 죽음이란 원래 그런 것이니까요.
상황이 정리되었지만 장내는 아직도 어수선했습니다. 넓디 넓은 홀에 있는 사람들은 아직도 혼란스러워하는 이들 몇 명,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올라온 CPA측 인원들, 그리고 키아라와 중년의 여성이 전부였습니다.
유페미아는 조금 망설이다 손에 묻은 피를 재킷 앞섶에 닦고는 키아라의 내민 손을 잡고 흔든다. 방금 전 일에 놀라 손은 조금 차갑게 식었지만, 손에 적당히 힘이 실려있는 좋은 악수다.
"이래뵈어도 나도 이니시에이터라네. 일단은, 말이네."
"그렇구만..."
키아라의 군 생활 이야기에, 유페미아는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크토니안을 상대하는 부대라. 그렇다면 키아라도 크토니안에 대해서 자신만큼은 아니지만 빠삭하게 알고 있으리라. 대학교수 시절, 학생들과 크토니안을 관찰하기 위해 비슷한 군 부대의 보호를 청한 일이 있었다. 문득, 키아라가 그때 만났던 지인을 알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혹시, █부대의 쥬나이퍼 리 중위를 알고 있나? 5년 전에 그녀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네."
"5년 전 일이니까, 더이상 중위가 아닐지도 모르지만 말일세."
이게 무슨 일인지, 중얼거리는 키아라의 말에 유페미아도 생각에 잠긴다. CPA를 겨냥한 명백한 테러행위에 '가엾은 자들과 왕을 위해, 우리가 왔다'는 의미불명의 선언. 유페미아는 멀어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회장을 나오면서 문 쪽의 괴한이 데미휴먼이었다고 쑥덕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물론, 데미휴먼에 대한 인식이 안좋다는 것은 알기에 그 말을 곧대로 믿기에도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러고 보니, 자네는 사태가 일어났을 때 강연단 위에 없었지. 혹시 문 쪽의 괴한이 어떻게 생겼는지 봤나? 강단 위에서는 조명 때문에 아무 것도 안 보였다네."
유페미아는 주황빛 머리에 주근깨, 그리고 장난스런 수풀색 눈을 지니고 있던 젊은 중위를 회상했다. 10년 사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는데, 5년이면 강산은 변하지 않더라도 사람은 많이 변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5년 전 주나이퍼는 중위였고, 유페미아는 교수였지만, 이제 그들은 각자 중위도 교수도 아니게 되었으니. 정확히 말하자면, 주나이퍼는 진급했고 유페미아는 인사정리 대상에 들어간 것이지만 말이다.
"예전에 우리 연구팀을 호위해준 군인들 중 한 명이었다네. 연구 목적으로 '벽' 너머로 갈 일이 있었거든."
"마취총을 쏘는 법도, 총을 쏘는 법도, 모두 그녀에게서 배웠다네. 그녀가 없었다면 이니시에이터가 될 엄두도 못 냈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은인이야. 그녀를 아는 사람을 만나다니 반갑구먼."
유페미아는 괴한이 토끼 귀를 지니고 있었다는 키아라의 말에 생각에 잠겨 자신의 턱을 쓰다듬었다. 그럼 자신이 들었던 쑥덕거림이 정확했던 모양이구먼.
"데미휴먼이라... 그럼 주동자는 데미휴먼이고, 피해자는 반(反) 데미휴먼 인사라는 말이 되는구먼. 연구 팀장이 무슨 말을 했는지 우리 모두 들었으니까 말이야."
"설마 그렇기 때문에 일어난 사건일까, 방금 일은?"
유페미아에게는 데미휴먼에 대한 안좋은 편견은 없다. 크토니안에 대한 비이성적인 공포가 없다 보니, 그 공포가 데미휴먼에 대한 무분별한 증오로도 번질 일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 대해 드러나있는 정보들만 놓고 보면, 한번쯤은 할 수 있는 생각이다. 키아라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는 몰라도.
유페미아는 크토니안을 두려워하지 않고, 따라서 데미휴먼을 무서워하지도 증오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데미휴먼의 인권을 위해 뭔가 노력을 한다거나 하지는 않고, DPM같은 '드러나있는' 폭력 집단만 알고 있다 뿐이지 데미휴먼들이 겪고 있는 크고 작은 차별에 대해서도 무지하지만 말이다. 좀 각박한 평을 내리자면 죄를 지은 여인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들을 말릴 생각은 안 하고, '쯧쯧쯧' 혀만 차대는 방관자, 그것이 유페미아의 현재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키아라의 진심 어린 위로에 유페미아는 웃어 보인다. 자신을 믿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내 말이 그 말일세. 인간이나 데미휴먼이나 다 같은 사람인데 말이지."
유페미아는 혀를 끌끌 차며 키아라의 말에 맞장구쳤다.
키아라의 딸이 데미휴먼이라는 말에는, 유페미아의 눈이 동그래진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대답이었기 때문이다. 이내, 유페미아의 얼굴에 동정-은 상대를 깔보는 것이기에 아니고-, 이해-는 데미휴먼은 커녕 아이 자체를 키워 본 적이 없는 유페미아로서는 불가능하겠지만- 그래도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는, 그런 표정이 차오른다.
"그렇구만, 그동안 맘고생이 심했겠구먼...."
이번에는 유페미아가 키아라의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려주 차례다.
한편, 유페미아의 마음 한켠에는 전쟁터가 벌어진다. 너무나도 질문하고 싶은 질문이 있는데, 그것이 엄청난 실례일 수도 있다는 걸 알기에 고민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천사와 악마가 아닌,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에티켓"이라는 요정과 "과학적 호기심"이라는 요정이 유페미아의 어깨 위에서 싸우고 있는 꼴이다.
키아라는 유페미아의 토닥임에 마음이 안정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확실히 키아라는 걱정이 많이 되었습니다. 이번 일로 분노한 누군가가 데미휴먼들이 잔뜩 모인 보호소로 화살을 돌리지 않을까봐요. 그리고, 유페미아는 크토니안에게 감염된 경로를 물어보았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질문입니다. 키아라는 미간을 찌푸리며, 잠깐 고민하다 입을 열었습니다.
"으음... 그냥 놈의 타액에 감염되었다고 해야 할까요. 그 이상은 말씀드리기 곤란하군요."
아주 길고 거대한 뱀 크토니안이었다죠, 아마? 키아라는 금세 고개를 저어 생각을 떨쳐내었습니다. 그 당시의 기억은 별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순간이었습니다. 사실 그 기억도 이젠 흐릿해져 잘 기억나지도 않고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