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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미하게 헤실헤실 웃으며 소아 님의 말씀을 따라 대답했다. 지금 이 순간은 언제나 흘러갔다. 매 순간순간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과거로 넘어가 버렸으니. 그러므로 이렇게 별들과 반딧불이들이 빛나고 있는 지금의 이 풍경은, 소아 님의 말씀대로 오늘, 여기서만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소아 님의 푸르른 눈동자를 자연스럽게 마주 바라보며, 그 속에 담긴 조금은 따뜻한 빛과 이어서 들려오는 소아 님의 말씀에,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내 배시시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것으로도 충분할 것이었다. 자신의 표정은 이미 기쁘다는 감정을 드러내주는 따스한 분위기였으니.
그러다 소아 님께서 자신의 제안에 해주시는 대답을 가만히 듣고는, 이내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끄덕였다.
"...네, 얼마든지요, 소아 님. 소아 님께서 원하실 때, 언제든지 저에게 말씀해주세요. 바로 보여드릴게요!“
의지가 반짝반짝이는 눈빛으로 두 손을 작게 꼬옥 주먹 쥐었다. 정말로 가끔이라고 할 지라도 좋았다. 자신이 조금이나마 기쁨을, ‘행복’을 드릴 수만 있다면.
그러다 소아 님께서 자신을 빤히 보다가 그대로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오시자, 멍하니 있다가 한 박자 늦게 깜짝 놀란 듯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 ㄴ, 네! 저는 괜찮아요, 소아 님. 이렇게 눈밭 씨 위에 눕는 것은 처음이긴 한... 에, 에취...!“
그러나 말과는 다르게 결국 다시 두 손으로 입가를 가리곤 작게 재채기를 해버렸다. 차가운 겨울 바람에 목도리와 모자로 반쯤 덮인 얼굴과 맨 손이 빨개졌다. 살짝 몸을 떠는 와중에도 자신은 괜찮다는 듯이 소아 님께 희미하게 웃어보였다.
드디어 그들은 비나리에 도착했다. 도착한 비나리는 역시 황폐한 느낌 그 자체였다. 평소에는 무지개가 피어나는 폭포지만, 지금은 폭포도 힘없이 흐르고 있었고 그 어디에서도 무지개는 보이지 않았다. 주변의 나무들도 황폐해졌고, 저 멀리 보이는 신과 나무들 역시 시들시들, 말라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가온은 순간적으로 쓴 표정을 지었지만 애써 마음을 다 잡는 모습을 보였다.
아무튼 비나리에 도착했지만 주변은 생각보다 훨씬 조용했다. 마치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한산하고 고요한 분위기는 이질적으로 느끼기 딱 좋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누리는 품 안에 빛나는 구체, 인연의 결정체를 꼬옥 끌어안았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무도 없는걸까? 일단 엄마가 있는 안으로 들어갈까?"
그렇게 이야기를 하며 누리는 앞으로 천천히 걸어가려고 했다. 그 와중에도 주변은 정말로 고요하고 조용했다. 정말로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마치 이 근처에 위험요소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고요하고 조용한 바람 소리만이 조용히 울릴 뿐이었다.
도착한 비나리 역시 황폐하기 그지 없는 풍경이었다. 어두운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자신도 모르게 품 안에 안은 론을 더욱 꼬옥 끌어안았다. 여전히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잘 알 수 있었다. 지금 이 곳이 너무나도 조용하다는 것을.
"......"
불어오는 바람 소리마저 고요하기 그지 없는 가운데, 그 바람조차도 뭔가 불길했다. 정확하게 그 이유를 알 수는 없었지만, 그럼에도 모든 것들이 전부 다 불길했다. 그렇기에 앞으로 걸어가는 누리 님을 쫓아 들어가면서도 주변을 경계하는 것을 그만두지 않았다. 언제든지 반격할 준비를 하려는 듯이, 론을 한 팔로 꼬옥 끌어안고 다른 손으로는 활을 쥐었다. 어쩌면 곧바로 방어막을 펼칠지도 모르는 일이었지만.
그 애는 도착한 비나리를 둘러보았습니다. 조용한 비나리 주변부를 살피다가 금방 그만두었습니다. 그 애는 조금 시무룩한 듯, 푸르른 눈동자를 살며시 내리깔았습니다. 하늘부터 땅까지, 그 애가 알고 있던 비나리가 아님을 안 순간, 그 애는 그저 눈을 깜빡이다 심호흡을 몇 번 했습니다. 이전 지역처럼 그 애가 다른 이들을 도와 원래대로 돌려놓으면 될 일입니다.
엄마? 그 애는 누리님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그 애는 한 박자 늦게 그 의미를 알고서 한 발짝 뒤로 물러섰습니다. 이럴 땐 몇몇이 들어가고, 몇몇은 남아 있는 방법을 택하는 게 현명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 애는 밖에서 어떤 상황이 일어날지 대비하는 쪽을 택하기로 했습니다. 만약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다면, 바로 달려갈 생각이었습니다. 그 애는 헐렁한 흰 티셔츠를 몇 번 팔랑팔랑하다가 인기척도 내지 않고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리스와 소아는 주변을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 때문에 좀처럼 마음을 놓을 수가 없는 것일까?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가온 역시 주변을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킁킁, 냄새를 맡는 듯한 모습을 보이다가 가온은 폭포 뒤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모두에게 이야기를 했다.
"모두 조심해주십시오! 흑호의 냄새입니다! 그리고...이건..."
또 다른 냄새를 포착했는지 가온은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와 동시에 하늘 위에서 검은색 번개가 몰아쳤고 땅에 연쇄적으로 떨어졌다. 곧 하얀 연기가 모두의 시야를 가렸다. 뒤이어 연기가 사라지자 보이는 것은 사악하게 웃고 있는 흑호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언니..?!"
"백호 선배!"
참으로 차갑고 무표정하게 모두를 바라보고 있는 백호의 모습이 있었다. 모두와의 인연을 잃은 지금, 그녀의 시선은 정말로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가온과 누리의 말에는 전혀 대답을 하지 않으면서 오로지 차가운 시선만을 보내며, 흑호는 웃으면서 한걸음 다가왔다.
"네 지역에 잠들어있는 사신을 깨워서 되찾는다고 한들...뭐가 달라지지? 그 땅이야 다시 오염시키면 되고, 다음에는 사신과 너희들의 인연 또한 끊어버리면 되는 일이지. 아니면...지금 당장 여기서 너희들의 인연을 끊어주면 되겠느냐?"
늙은 목소리가 주변에 강하게 퍼졌고 흑호는 손을 뻗었다. 그 손에는 정말로 불길한 느낌의 붉은색 에너지가 모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명백히 모두를 겨냥하고 있었지만 어디로 날아갈지 알 수 없었다.
"모두들 피해!! 엎드려!!"
뒤이어 누리의 다급한 목소리가 그곳에 크게 울렸다. 그에 따를지, 아니면 다른 행동을 취할지는 자신의 자유였다.
역시 개과의 능력은 대단했습니다. 흑호의 냄새를 맡은 가온님의 말을 따라 그 애는 시선을 옮겼습니다. 그 애는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 흑호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이들의 경악과 당황 사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백호를 보았습니다. 그 애는 미리내에 박혀 살다 보니 소문으로 알음알음 알았을 뿐, 모습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는데, 그것은 마치 인형과도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얼굴에 빛도 사라진, 차가운 얼음과도 같은 인형이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이 아닌 살아있는 어떤 것은 모두 인연을 갖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것이 끊어진 이는 과연 살아있는 존재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를 일입니다.
맺은 것은 어려우나, 끊기는 쉽다던가요. 그 애는 흑호가 모으는 꺼림칙한 붉은 에너지에 시선을 거두지 않았습니다. 고도의 집중력을 보이며 어디로 튈지 모를 그 에너지에 집중하면서도, 누리님의 말을 들으면서도, 피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여차하면 바로 튀어 나갈 준비를 했습니다.
경계를 하며 앞으로 조심스럽게 나아가던 중, 가온 님께서 뭔가를 알아차림과 동시에 검은색 번개가 여기저기에 내리쳤다. 그에 깜짝 놀라 몸을 웅크리면서도, 반사적으로 경계를 늦추지 않고 활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하얀 연기가 사라지자 보이는 것은... 흑호와 백호 님...?
"...!!"
차갑게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는 백호 님의 모습에 충격을 받은 듯이 멍한 표정으로 백호 님을 바라보았다. 그렇기에 흑호가 하는 말 따위 들려오지 않았다. 자신의 눈에는 그저, 백호 님의 차가운 표정만이 보일 뿐. ......배, 백호 님...
그러나 정신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백호 님을 구하기 위해서라도, 자신은 정신을 차려야 했다. 그렇기에 누리 님의 다급한 목소리에 ...핫, 정신을 차리며 곧바로 바닥에 엎드렸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하여, 구슬을 빛내며 모두의 주변에 거대한 방어막을 치려고 했다. 화살로 흑호의 손을 맞춰버릴까, 도 잠시 생각했지만 겨우 자신의 화살 따위로는 막는 것은 불가능할 지도 몰랐으니까. 그렇기에 일단은 방어에 집중하려고 했다. 오로지 지키겠다는 일념 하나로. 아랫입술을 꽈악 깨물며. 방어막이 더욱더 강해지는 것 같기도 했다.
누리의 말에 가온은 물론이고 리스도 바닥에 엎드렸다. 하지만 소아는 엎드리지 않았고 피하려는 듯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번개는 정말로 날카롭게 주변을 감싸듯이 빠르게 스쳐지나갔고 그것은 피하기도 힘들 정도로, 마치 자유로운 의지가 있는 것처럼 주변을 감싸면서 소아를 압박하려고 했다. 하지만 리스의 방어막이 쳐졌고 그로 인해서 어떻게든 방어막이 깨지는 것으로 상쇄할 수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꽤 엄청난 압박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상대의 공격은 강력했으니까.
"적호와 청호를 어떻게든 몰아낸 모양이지만, 거기까지다. 애송이들."
"누가 거기까지라는거냐! 이 라온하제를...반드시 너의 손에서..!!"
"입 다물어라. 늑대여. 너 같은 것이 고위신인 나에게 대항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은호조차도 압도한 나의 힘을 너무 얕보는구나."
그것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당장 은호만 해도 상당히 다친 상태로 돌아오지 않았던가. 힘의 차이는 그만큼 클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만큼 분위기는 긴박하게 흘러갔고 그것은 곧바로 터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바로 그곳에 강한 돌풍이 불어닥쳤다. 그리고 은색의 빛이 주변으로 강하게 퍼져나갔다. 바람의 중심에는 상처를 회복한 것으로 보이는 은호가 서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흑호는 웃기지도 않는다는 듯이 피식 웃었고, 백호는 차가운 눈빛으로 은호를 바라보았다. 그 둘의 모습을 바라보며, 특히 백호를 좀 더 길게 바라보던 은호는 다시 시선을 흑호에게 돌렸다.
뒤이어 은호는 빠르게 흑호에게 달려들었고, 흑호는 피식 웃으면서 은호에게 달려들었다. 두 고위신이 충돌하고 하늘에선 은색 번개와 검은색 번개가 연쇄적으로 몰아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무표정한 상태로 바라보던 백호는 손을 높이 들었다. 손 끝에서 하얀색 에너지 덩어리가 모이기 시작했다. 그녀가 겨냥하고 있는 것은 흑호와 싸우고 있는 은호였다.
그 애로선 튀어나가지 않은게 잘 된 이야기였습니다. 그 애는 숙였던 몸을 바르게 세우고서 작은 손에 주먹을 꼬옥 쥐고선 자세를 취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은호님이 등장하면서 흑호와 싸우는 것을 보고 백호에게로 시선을 옮겼습니다. 고위신끼리의 대결은 정말이지,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보였습니다.
그 애는 백호를 보고 있었습니다. 다른 이들은 어쩐지 백호님이라며 아우성을 치고 있었지만, 솔직히, 그 애는 소문만 무성히 들었을 뿐, 실제로 본 적은 제로에 가까울 정도였기에, 다른 이들이 왜 저러는지 이해는 못 했습니다. 그러나 은호님이 잘 부탁한다며 다른 이들과 그 애에게 맡겨두었기 때문에, 그 애는 생각보단 몸을 먼저 움직였습니다.
그저 강요가 아니라 부탁이었기에, 그 애는 몸을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은호님을 향하는 게 분명한 백호의 하얀 에너지 덩어리를 보고 생각보단 몸이 먼저 나간 것은, 그 애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 애는 신통술로 바람보다 재빨리 백호에게로 달려나가며, 백호의 팔을 잡아채 공격의 궤도를 바꾸려고 했습니다. 그 애가 맞는다고 해도, 그 애는 그다지 상관 없는 듯 보였습니다. 그 애는 오로지 은호님의 부탁을 이행하기 위해 움직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은호님이 다치지 않는 것도 중요했기 때문에 백호에게 생기는 '작은' 상처는 용서해주리라 믿었습니다.
다행히 자신의 방어막이 어느 정도는 효과가 있었던 것 같았다. 물론 당연하게도 방어막은 깨져버렸지만. 하지만 그럼에도 일단은 지켜내는 데에 성공했다. 아무도... 아무도 다치시지 않게 할 거예요...!
그리고 최고의 방어는...
이어지는 긴박한 분위기 속, 고개를 아래로 푸욱 숙였다가 이내 들려오는 강한 돌풍 소리에 고개를 들고 앞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보이는 은호 님의 모습.
"...!"
은호 님을 부르려던 목소리는 여전히 나오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상황을 파악하는 데에는 문제 없었다. 은호 님께서 하시는 말씀도, 백호 님의 차가운 무표정도, 전부 다 이해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은호 님과 흑호가 싸우기 시작하는 것을 불안한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백호 님께서 손을 들어올려 하얀색 에너지를 모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지금까지와는 달리, 차가운 무표정으로 변하지 못했다. 활을 든 손을 치켜올려 화살을 겨누기는 했지만, 그 손조차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으니. 지금까지 나타났던 비웃는 듯한 차가운 표정 대신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것만 같은 표정으로, 백호 님의 손을 겨냥했다. ...하지만...
"......" [......멍청한 것.] 저는... 저는... 백호 님...
자신이 쏜다면 백호 님께서 다치실 것이고, 자신이 쏘지 않는다면 은호 님께서 다치실 것이었다. ...하지만... 아랫입술을 꽈악 깨물어 울음을 참아내며, 결국 당겼던 활 시위를 놓았다. 그러나 자신의 화살이 향한 곳은 다름 아닌 백호 님의 하얀 에너지 덩어리 쪽. 흡수하는 화살을 이용하여 그 에너지를 최대한 흡수시켜 다른 '신' 님들께서 다치시지 않게 상쇄시켜 버리려는 목적으로, 그런 화살을 쏘려고 했다.
"-!! -!!"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최대한 쥐어짜내어 백호 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울먹이는 표정은 처절하기까지 했다.
백호가 은호를 향해서 공격을 가하려고 하자 소아는 정말로 빠르게 백호에게 달려들어 팔의 궤도를 바꾸려고 시도했다. 그리고 하얀 에너지 덩어리를 향해서 리스의 화살이 날아갔고 에너지를 흡수하면서 저 멀리 멀리 날려버리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래봐야 공격 하나를 막은 정도. 고위신 급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에 가까운 신의 힘은 절대로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이어 차가운 백호의 시선이 모두를 향해서 돌아왔다. 그리고 그녀의 입이 열리자 들리는 것은 놀라울 정도로 무감정한 목소리였다.
"...방해를 한다면, 너희들부터 제거해주겠어."
"그만해! 백호 언니!!"
이어 누리가 모두를 가로막듯이 앞으로 다가섰다. 그리고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백호를 바라보면서 필사적인 목소리로 이야기를 했다.
"제발 그만해! 백호 언니! 엄마를...엄마를 정말로 쏠 거야? 인연을 잃어서...정말로 모든 것을 잊어버린거야?"
"은호는 나의 적. 재앙의 여우의 일족으로서 나는 배신한 은호를 제거할 뿐이야. 인연. ...그런 것은 나에게 처음부터 없었어."
"백호 선배!!"
백호에게 달려들면서 가온이 백호를 어떻게든 막아보려고 힘을 주었다. 자연스럽게 백호와 가온의 힘싸움이 시작되었다. 백호에게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한다면 지금이 딱 적기였을지도 모른다.
//이럴 때 설득빔을 날리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본 것들을 떠올리면서요. 고로 9시 40분까지 반응레스를 받겠습니다.
다행히 소아 님과 함께 백호 님의 공격을 막는 것은 성공했다. 물론 그래봐야 이제 겨우 하나 정도였지만. 하지만 그럼에도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무감정한 백호 님의 목소리에도, 결국 자신들이 해내야 하는 목표는 단 하나 뿐이었으니까.
누리 님과 가온 님의 저지에도 백호 님께서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멈출 생각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반응을 이끌어내야 할 것이었다. 그것이 바로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이었으니. 자신들이 맡은 일이었으니.
"......"
그러나 여전히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쇳소리같은 소리 마저 나오지 않는 목을 부여잡으며 아랫입술을 꼬옥 깨물었다. 울음 가득한 표정으로. 그러나...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면, 직접 전해드리는 수밖에.
[...백호 님! 백호 님! 제발, 제 목소리가 들리시나요...?!]
텔레파시를 이용하여 백호 님의 머릿속에 직접 목소리를 내어보려고 했다.
[백호 님! 제발 정신을 차려주세요...! 은호 님은 백호 님의 적이 아니예요! 백호 님의 가족이시자, 언니이시자... 백호 님과 가장 깊은 인연을 맺고 계셨던, 언제나 서로가 서로의 곁에 있었던, 그런 존재이시란 말이예요!]
처절한 표정만큼이나 처절한 목소리였다. 적어도 백호 님께 전해졌으면, 하는 마음이 만들어낸.
[바로 앞에 계신 누리 님도 모르시겠나요...?! 은호 님의 따님이시자, 은호 님께서 죄를 뉘우치시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시기로 결심하셨던 계기이시기도 하신 '신' 님이세요! 그리고 백호 님 역시도 은호 님과 함께 새로운 삶을 살아가시기로 하셨었다구요...! 정말로, 정말로... 하나도 기억나지 않으시는 건가요...?!]
머릿속으로 울리는 리스의 텔레파시에 백호는 순간 움찔하는 모습을 보였다. 인연의 조각 속에서 본 모습들을 거론하는 그 모습에 백호는 계속해서 움찔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머리를 두 손으로 움켜잡았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흑호는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작게 혀를 찼고 손을 백호 쪽으로 뻗었다. 그 모습에 은호는 순간적으로 당황하면서 흑호를 향해 소리쳤다.
"뭘 하려는거냐! 흑호!"
"꽤나 저 녀석이 소중한 모양이군. 너나 저 애송이들도. 그렇다면..보는 앞에서 이번에야말로 확실하게 없애버리면 어떨까?"
이어 흑호는 단번에 검은 에너지 덩어리를 모은 후에 백호를 향해서 쏘았다. 그 에너지 덩어리는 정말로 빠르게 날아갔고 무자비하게 백호를 날려버릴 기세로 점점 커져갔다. 그리고 그 모습을 확인한 가온과 누리는 백호를 대피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백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그 에너지 덩어리를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필요없는 존재. 그래서 제거. 그렇다면 운명을..."
뒤이어 아주 큰 폭발소리가 들려왔다. 검은 연기가 모든 것을 감싸 시선을 가렸지만, 곧 그 연기는 바람에 의해서 사라졌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온 몸으로 흑호의 공격을 방어한 은호의 모습이었다. 한쪽 무릎을 꿇고 온 몸이 심하게 그을린채로 기침을 하는 은호는 순간적으로 몸을 비틀거렸다.
"엄마!!"
"은호님?!"
이어 가온과 누리는 빠르게 은호에게 달려가서 그녀를 부축하려고 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백호는 멍한 표정으로 은호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