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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굴복하고 항복한 것처럼 리스는 천천히 무릎을 꿇었고 가온 역시 내밀었던 발톱을 내리면서 괜히 분한 척 표정을 보였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소아는 계속 깔짝거리기 시작했고 적호는 그게 마음에 안 드는지 소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검은 번개를 내리치면서 소아를 공격하려고 했다. 아무래도 상당히 약이 오르고 열이 받는 모양이었다.
"건방진 설표놈이 어디서...!!"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석상의 뒤쪽에서 하얀 빛이 솟아올랐다. 그리고 그 뒷편에서 느껴지는 무수히 많은 인기척들. 그것은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었다. 이어 석상의 뒤에서 샤베르가 튀어나왔고 그는 적호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이야기했다.
"신 여러분! 우리의 고향을 이렇게 엉망으로 만들어버린 저 녀석을 혼내줍시다!!"
뒤이어 석상 뒷편에서 정말로 많은 신들이 튀어나왔다. 박쥐, 곰, 토끼, 낙엽, 코스모스 등등. 수많은 수인 신과 화인 신이 튀어나와서 적호에게 달라붙었고 팔과 다리, 그리고 몸을 붙잡았고 생각도 못한 일에 적호는 바둥거리면서 그들을 떨어뜨리려고 했다.
"뭐, 뭐냐! 갑자기 어디서?! 이...이런 건방진 놈들...!! 너희같은 것들이 뭉친다고 한들...나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시끄럽습니다! 이 석상으로 향한다는 말을 듣고 혹시나 해서 따라왔는데 이런 추악한 힘을 가진 신이 누리님을 포함해서 다른 이들을 공격하다니! 이 가리에서 당신의 존재를 용납하는 이는 없습니다! 없고요! 우리 가리의 저력을 보여주는 겁니다. 네! 네!"
이어 발톱을 꺼내서 적호를 할퀴려고 하면서 샤베르는 다른 신들과 함께 적호를 붙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상대는 고위신.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건방지다라. 그 애는 그 말을 잠깐 생각하긴 했지만 그저 흘러들어버렸습니다. 어쨌든 적의 말을 듣고 그 말에 말려들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건 정말 바보같은 짓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보다 방금 맞은 검은 번개가 조금 아플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그 애는 그게 아픈지 안 아픈지 모를 정도로 열중해있기도 했습니다. 갑자기 튀어나온 다른 신들이 적호를 붙잡고 있는 틈을 잘 주시해야 했거든요. 그 애는 수많은 신들이 적호를 붙잡고 있는 틈을 잘 비집고 적호를 공격하려 했습니다. 다른 신들은 다치지 않게 말이죠. 그 애는 깔짝거리던 공격에 힘을 실어 한 방 한 방을 대단히 힘을 주어 빈 틈을 공격하려 했습니다. 그 애의 작은 체구가 다행히 도움이 되는 날도 있었습니다. 그 애는 푸른 눈으로 때릴 곳을 집중하면서도 급소를 노리려 했습니다. 어쨌든 그 애의 적은 적호이며, 석상은 다른 신들이 알아서 잘 해줄거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지금은 적호와 끝장을 봐야했습니다.
소아 님께서 계속해서 적호를 공격하는 모습을 보며 작게 몸을 움찔, 했다. 무표정했던 모습이 살짝 사라지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소아 님을 바라보던 중, 적호가 공격을 하려는 듯한 모습을 눈치 채고는 자신도 모르게 움직이려던 바로 그 순간, 석상의 뒤쪽에서 솟아오르는 하얀 빛. 그리고... 나타난 수많은 신들.
"...?!"
그에 순간 정말로 깜짝 놀란 듯한 표정으로 멍하니, 멍하니, 그 '신' 님들을 바라보았다. 적호에게 달라붙어 나름대로 공격을 가하려는 '신' 님들을. 수인 '신' 님, 화인 '신' 님, 할 것 없이 모두가 각자의 힘을 발휘하여 어떻게든 라온하제를 지키려는 그 모습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리고... [지금이야.] 곧바로 몸을 움직였다. 머리보다도, 이성보다도, 몸이 먼저. 순식간에 생겨난 활은 바로 적호를 겨냥했고, 무표정이 되어버린 화살 여러 개를 '신' 님들을 피해서 적호를 향해 쏘려고 했다. 하지만... [......] "......"
이내 곧 멈칫. 무표정이 살짝 슬픈 듯한 표정으로 변하더니 이내 결심한 듯이 활을 없앴다. 그리고 대신 두 손을 뻗었다. 여기에 등장하신 모든 '신' 님들을 향해. 그리고... 그 '신' 님들에게 전부 다 방어막을 주변에 쳐드리려고 했다. 적호의 공격이 날아와도 막아낼 수 있도록. 만약 누군가가 다친다고 한다면, 곧바로 공격보다는 치료에 들어갈 생각이었다.
리스가 방어막을 치고, 소아가 급소를 노리면서 공격을 시작했고, 아사는 찰싹찰싹을 시도했고 가온 역시 다리를 잡아서 넘어뜨리려고 시도했다. 수많은 신들의 공격에 적호는 제대로 일어서지 못하고 몸을 바둥바둥거리다가 단번에 힘을 주었다. 이내 곧 모두에게 엄청난 압력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 압력을 이기지 못하면 단번에 날아갈지도 모를 정도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신들은 절때로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강하게 붙으려고 했다. 온 몸에 불이 붙은 것처럼 뜨거운 기운이 모두에게 감돌았고 그것은 모두에게 고통을 주기 딱 좋았다.
"감히...감히...!! 감히...이...하찮은 것들이..!"
"...모두들..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하압!!"
한편 뒤에서 힘을 모으고 있던 누리는 자신의 힘을 단번에 방출했다. 곧 주변으로 은색 빛이 모든 것을 감싸기 시작했고, 적호의 몸에서 무언가가 밖으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생명력'. 이전에 누리가 한번 보여준 적이 있는 바로 그 힘이었다. (주 - 100일 극장판 이벤트때의 일입니다.)
".....!"
순간적으로 적호는 몸을 비틀거렸고 가온은 누리를 바라보면서 크게 외쳤다.
"누리님! 지금입니다!"
"응!"
이어 누리는 빠르게 뛰어서 가리의 색. 주황색으로 빛나는 구슬을 조심스럽게 석상 앞 제단 위에 끼워넣었다. 그와 동시에 하늘을 향해 주황색 빛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적호는 순간 당황하면서 누리를 바라보았다.
"네..네 녀석..!!"
이어 다른 지역에서처럼, 주황색 빛은 하늘에서 땅으로 천천히 떨어지기 시작했고 생명력을 잃고 죽어가던 나무들의 모습이 다시 평소의 붉은 낙엽이 가득한 생명력이 넘치는 숲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황폐했던 풍경은 곧 풍성한 풍경으로 바뀌었고, 나무에는 풍성한 열매가 주렁주렁 다시 열리기 시작했으며, 시원한 가을바람이 곧 주변에 불어닥치기 시작했다.
"어째서냐..어째서..어째서...내가...!! 이런 하찮은 신들 따위에게..!! 어째서...!!"
곧 가리의 주변에 결계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그 결계에서 버티기 힘든지 적호는 괴로운 표정을 지었고 크게 괴성을 지르면서 울부짖기 시작했다.
그 애는 압력에도 굴하지 않았습니다. 압력에 굴하는것은 광전사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그 애의 푸르른 눈은 더없이 빛났고, 그 애의 공격은 압력에 굴하지 않고 더없이 빨라졌습니다. 단번에 방출된 누리님의 힘에 몸을 비틀거리는 적호에도 굴하지 않고 여전한 공격이었습니다. 그 애는 적의 마지막을 확실히 보는 애였습니다. 만약이나 설마라는 생각은 하지 않도록 말입니다. 만약 적호가 이겨낸다면, 설마 적호가 살아난다면, 이라는 예고는 그 애에겐 너무 가혹한 일이었습니다. 그 애는 확실히 적호를 끝장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끝난듯 누리님이 석상 앞에 구슬을 끼워넣자 괴로워하는 적호에 그 애는 조금 거리를 벌려두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전투태세는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 애는 재차 물어보는 적호를 향해 굳게 다문 발그란 작은 입술을 오물오물 열었습니다.
"...평화가 좋거든요..."
소아는요... 평화가 좋아요. 싸움 없는. 왠지 결론만 나온것 같지만요. 적호에게 한 일에 비해 흘러나온 곱고 작은 목소리는 왠지 행동과 상반된 말이었습니다. 광전사가 할 말은 아닌것 같았지만, 사실이었습니다.
모두의 힘을 믿고, 자신 역시도 신통력으로 방어막들을 만든 두 손에 힘을 주어 버텼다. 그리고 이내 곧 누리 님께서 구슬을 끼워넣음과 동시에 솟구치기 시작하는 주황색 빛. 그 빛에 의하여 다시금 생명력을 찾기 시작하는 가리의 모습을 지켜보며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다행이예요, 정말...
그러나 계속해서 들려오는 적호의 목소리. 괴로운 듯한 그 모습을 바라보는 표정은 어느새 다시 그 무표정으로 변해있었다. [끝까지 제 분수도 모르는 너 같은 것에게 들려줄 대답 같은 건 없어.] "......" [끝까지 그런 자세라면 평생 모르겠지. 그 이유를. 불쌍한 것. 여전히 제가 제일 하찮다는 것도 깨닫지 못했구나.] 적호의 괴로운 듯한 목소리를 끝까지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지켜보았다. '신'과도 같은 모습으로.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똑바로 선 채.
약해빠진 소리라고요. 하지만 그 애는 움찔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그것밖에 보지 못 하는 상대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 줄 필요도 없습니다. 그 애는 불그스름한 입술을 꾹 닫은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긴 말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고위신이라고 자신을 억압하려고 하는 적호에 작은 연민을 느꼈지만 그저 그것뿐이었습니다. 어쨌든 우리의 목숨을 위협한 적은 모두 배제할 뿐입니다. 그러나 누리님의 말씀에 전투태세는 갖추었으나 전투는 하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그 애도 중요하긴 하지만 다른 신들도 중요하니까요.
적호가 모습을 감추고, 백호가 모습을 드러내 환하게 반짝이는 모습은 정말로 아름다웠습니다. 그 애는 조그만 입술을 오물거리다 살짝 웃었습니다. 그 애는 어쨌든 지금 이순간이 기쁜듯 보였습니다.
"지금 상황을 봐. 누가 네가 이겼다고 할 수 있어?" 너랑 같이 있던 검댕이도 너를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지 않을까? 네 부하 퍼랭이 보기 부끄럽지 않아? 그래도 걔는 우리를 몰아붙이기는 했는데 말이지. 라고 무척이나 부드럽게 속삭이려 합니다. 고위신인데 그러면 고위신 망신이야. 어설프게도 나빠라 라고 말하려 합니다. 나쁘려면 확실하게 나쁘던지. 라고 말하려 하고는 도망친 자리를 보면서 인연의 조각을 바라봅니다.
무척이나 희미하고 차가운 웃음을 짓습니다. 아사는 다른 이들을 보면서 수고했어. 라고 말하려 합니다.
기억이 끝이 나자, 곧 빛은 사라졌고 주변은 어느새 모두가 평소에 알고 있던 바로 그 가리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풍요롭고 시원한 가을의 기운이 돌고 있는 바로 그 가리의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가리에 살고 있는 신들은 크게 환호성을 질렀고 샤베르는 더욱 기쁜 표정을 지었다. 다시 마음껏 요리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그리도 기쁜 것일까?
ㅡ너희들의 용기. 그것을 이곳에서 잘 보았다. 축복의 여우가 맡긴 인연의 조각은 돌려주도록 하겠다.
ㅡ상대가 고위신이라고 하더라도 물러서지 않고, 용기를 내서 싸우는 모습.
ㅡ그것이 바로 너희가 가지고 있는 '인연'의 힘이다. 그 인연의 힘을 이끌어서 위기를 넘어보도록 해라.
모두에게 텔레파시를 보내면서 말을 전한 백호는 크게 울부짖으면서 위엄을 뽐내기 시작했고 뒤이어 모두를 바라보면서 한 가지 이야기를 더 전했다.
ㅡ절대로 너희들의 탓이 아니니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면 죄책감을 버리거라! 나쁜 것은..일을 꾸민 재앙의 여우니까.
그 말을 끝으로 백호는 정말로 크게 울부짖으면서 단번에 뛰어올라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아무래도 다른 사신들처럼 이 근방을 수호하려고 하는 것일까? 백호가 사라지자 누리는 자신의 손에 쥐어져있는 빛나는 구체를 잠시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야기했다.
"이제..정말로 얼마 남지 않았어. 미리내. 그곳으로 가자. 거기에 있는 현무를 깨우고 모든 인연의 조각을 찾고.. 정화하자."
"알겠습니다! 누리님...!!"
이어 가온은 워프를 하기 위해서 신통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샤베르는 면목없다는 듯이 천천히 다가오면서 모두에게 이야기했다.
"아무래도..미리내로 가려는 모양이군요. 그곳도 분명히 이곳처럼 되어있을 것 같은데...가능하면 힘을 빌려주고는 싶지만..보다시피..저..요리사라서..여기에 있는 신들에게 음식을 만들어주고 기력을 회복시켜줘야해서..같이 갈 수가 없습니다. 네. 네. 죄송합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그..그래도 이건 제가 드릴 수 있습니다!"
이어 샤베르는 자신의 신통력을 사용해서 정말로 맛있게 구워진 사과구이를 모두에게 내밀었다.
다행히 가리는 정화되었다. 그럼 남은건 미리내. 그리고 역시나 미리내가 대상인듯 했다. 혹독한 겨울의, 그러나 당사자는 알지 못하는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 애는 싸움이라면, 온화한 그 모습을 던지더라도 광전사의 면모를 보일것이 분명했다. 모든 이와 인연이며 그것이 사명이라면 맞서주는게 인지상정이었다. 그 애는 물러설 이유를 찾지 못했다. 죄책감은 전혀 없었다. 그 에에게 재앙은 적이었고, 재앙은 곧 적이므로. 미리내를 관리한다면 더욱더 마지막까지 싸울것이었다.
샤베르님의 사과구이를 받고 감사함의 표시로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 애는 피할수없은 마지막 순간을 맞이할것이었다. 드디어 그곳으로, 그 애의 본거지로 향하고 마는 것이었다.
다시 론을 천천히 품에 안아들고, 풍요로워진 가리의 모습을 조용히 둘러보다가 이내 곧 들려오는 백호 님의 말씀에 천천히 고개를 돌려 백호 님을 바라보았다. ...'인연'. 조용히 론을 더욱 꼬옥 끌어안았다. ......'죄책감'.
어디론가로 뛰어올라 사라지신 백호 님의 뒷모습에 다시 한 번 더 느릿하게 허리를 꾸벅, 숙여 인사를 공손히 올렸다. 그리고 미리내를 정화하기 위하여 다시 가온 님께로 걸어가던 중, 샤베르 님께서 자신들에게 다가와 사과구이를 내밀자, 잠시 사과구이와 샤베르 님을 멍한 표정으로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내 곧 조용히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천천히 손을 내밀어 그것을 받아들었다.
[......정말로 고마워요, 샤베르.]
잠시였지만, 호칭이 변화하였다. 부드럽게 눈웃음을 지으며 샤베르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마치 한 명의 '신'과도 같이.
[...여기에 있는 모두를 잘 부탁할게요. 오직 샤베르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니.]
여전히 목소리를 내지 못하여 텔레파시를 통한 말이었지만, 적어도 이 텔레파시를 들을 수 있는 샤베르에게는 전해질 것이었다. 자신의 진심을.
"......"
그리고는 다시 가온 님의 근처에 섰다. ...마지막 장소. 미리내. 이제, 그 곳에서 현무 님만 깨우면... 그런다면 그 때에는...